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마사코는 가을 속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기다렸던 것들이 심술을 부리듯 다시 멀어지려 한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옛날에나 흘러나오던 안내 방송 음악이 촌스럽게 울려 퍼지고 마사코의 목소리가 파묻힌다. 들리지는 않았다. 어쩌면 무심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고 마사코는 이름을 외고 있다. 사고 경위는 실족사. 짐을 이던 청년이 넘어져 그의 무거운 여행용 가방이 남자를 밀었다고 전해 들었었다. 이름을 외운다. 마사코가 달린다. 그녀의 가을로, 숨이 차게. 마사코는 달렸다.

 

 

<おめでと 축하합니다>

 

미코는 다리를 주물렀다. 이름도 몰랐던 작은 마을이 역을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런 곳에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구나. 미코는 괜히 중얼거려 보았다. 스바루는 꼼짝도 않고 서 있다. 엄마를 찾고 있는 걸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금방 추워질 것이다. 미코는 일어나 간이매점의 가판대로 몸을 일으켰다. 따뜻한 캔 음료를 고르며 진열대를 구경하다 간이 제비뽑기를 발견한다. 

 

운세 뽑기 인가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는 그의 앞으로 동전을 두며 미코는 뽑기 통을 흔들었다. 운세 뽑기는 신사에나 있을 물건이었지만 작은 가판대와 조용한 마을과의 조합에 이질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미코는 막대를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남자는 건성으로 막대에 쓰인 번호를 확인하고는 종이를 뒤적거렸다. 

 

여기 있소.

 

스바루는 여전히 역 앞 한가운데에 서 있다. 미코는 상점 주인이 건넨 종이를 펼쳐 보았다. 

 

'소길'

 

미코는 벽에 기대어 작게 웃었다.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어중간한 운세. 운세 종이 밑에는 어울리지 않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감사합니다.'

 

상점 주인이 멋대로 써놓은 걸까. 차 음료를 두 손에 들고서 미코는 스바루가 서 있던 역 앞으로 걸어갔다. 군중 사이를 걸으며 스바루를 부른다. 소년을 부른다. 

 

스바루!

 

소년이 보이지 않는다.

 

스바루는 역으로 들어갔다. 촌스러운 음악이 들려왔고 귀에 익지 않은 가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목소리. 어떤 목소리. 스바루가 역 안으로 들어간다. 

스바루는 아빠의 모습을 알지 못하였다. 그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아이의 학교 입학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사진들은 몰래 본 적이 있었다. 아주 어릴 적 엄마의 소지품이 담긴 상자를 멋대로 꺼내며 놀았었다. 스바루가 보았던 사진들에는 남자와 엄마의 얼굴이 행복한 듯 웃으며 찍혀있었다.  스바루가 있는 곳으로 남자가 눈을 든다. 그가 돌아보는 곳으로 스바루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설명을 할 수 없는 그리움을 소년은 느꼈다. 그런 그리움의 목소리를 소년은 들었다. 엄마. 엄마의 목소리.

보기에도 거대한 배낭을 이던 청년이 비틀대었고 곧바로 넘어진다. 음악 소리가 역 안을 채운다. 가을이 내는 모든 소리가 전철이 내는 소리에 물이 든다. 남자가 배낭에 맞고 넘어진다. 남자는 넘어지는 그 순간에서도 눈을 돌리지 않는다. 스바루를 기억이라도 하려는 듯이. 스바루에게로 인사라도 하려는 듯이. 철도로 떨어지는 남자를 향해 달려가는 누군가. 전철 기사의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스바루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목소리와 달려가는 달음질을 따라 스바루는 손을 뻗었다.

 

 

마사코는 연신 소리를 질렀다. 하얀 장갑을 낀 자신의 손이 그 이에게 닿기를 바랐다. 잡아서 자신의 품에 안겨 있기를 바랐다. 그 이가 배낭에 맞아 철도로 떨어진다. 마사코도 그를 따라 몸을 던졌다.

 

엄마!

 

전철이 굉음을 내며 바람을 일으킨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몇몇이 소리를 질렀다. 스바루는 더욱 끌어안았다. 꽉 잡아 날아가지 않게, 어딘가로 사라져버리지 않게, 스바루는 팔을 풀지 않았다. 마사코는 울었다. 목을 놓아 울었다. 자신의 품에 안겨 있기를 바랐던 오래전의 기억에서 마사코는 자신을 다그쳐 울었다. 스바루가 마사코를 안고서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요. 옷의 섶들이 온통 젖어 색이 바래질 때까지 스바루는 마사코를 안고서 속삭여주었다.

 

이제 괜찮아요.

 

해가 저물고 여름의 끝으로 온 바람이 불어온다. 멀리로 미코가 스바루를 부르고 있고 안내 방송용 음악도 나오지 않는다. 전철역은 전의 사고로 안전바가 설치 되어 있었다. 역을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 스바루와 마사코의 주위로 빠르게 흐른다. 마사코는 돌아왔다. 스바루는 되감았다. 

마사코는 완전히 돌아왔고 스바루는 끝까지 되감았다. 미코 누나가 말하였다. 그런 건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면 돼. 엄마, 나는 어떤 존재였나요. 스바루는 미코가 부축하여 줄 때까지 마사코를 안아주었다. 날아가면 안된다. 해야 하고 하고 싶었을 말들이 정말 많을 테니까. 하고 싶었고 해야 했었던 말 역시 정말로 많을 테니까.

 

미코가 뽑았던 운세 종이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다 하늘로 날아간다. 마지막 글귀가 바뀌어 있다. 휴대전화 메시지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스바루가 되감았던 기억의 끝에서 마사코가 돌아왔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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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키미기미 20.10.14 01:37 댓글

    마지막 에필로그가 남아 있습니다.

    스바루가 빌었던 소원과 마사코가 빌었던 소원은 결국 하나로 묶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로 모자 사이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또다시 싸우고 화해도 했다가 다시 싸우기도 하겠죠. 인생을 살아가는 게 물이 흐르는 것과 같아서 어떤 일을 맞던 결국은 살아지더랍니다. 스바루군과 마사코 씨도 결국은 살아가겠죠. 충분히 좋은 쪽으로 살아갈 겁니다. 그 편이 저나 여러분들에게 훨씬 좋을 테니까요.

    마사코는 스바루가 어떤 선택을 하든 담담히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행복한 쪽으로요.

    스바루의 소원도 마사코와 같습니다. 그는 자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만큼 엄마에게도 솔직해지자고 다짐했죠. 결국 둘의 소원은 서로에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믿음과 용서에 있습니다.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군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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