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7월 다섯 살>

 

마사코는 벤치에 누워 있었다.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서 웃고 있다.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거닐고 있다. 빙수를 파는 노점과 어린이용 놀이기구들. 마사코는 이곳이 눈에 익었다. 언젠가 와본 적이 있는 곳. 

 

엄마, 엄마.

 

마사코는 고개를 돌렸다. 아이 하나. 풍선과 녹아 내리고 있는 소프트콘. 마사코는 아이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 그 아이. 나의. 나의 아이.

 

스바루?

 

아이는 마사코가 있는 곳으로 몸을 돌리나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엄마야, 얘야 엄마가 왔어.

 

삑.

 

문자 하나. 마사코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켰다. 

 

- 지금 스바루는 마사코 씨를 몰라요.

 

그게 무슨 소리야?

 

- 마사코 씨는 따로 있어요.

- 지금 마사코 씨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는 상태예요.

 

다른 모습?

 

- 네, 남자일지도. 노인일지도. 어쩌면 학생일지도 모르죠.

 

스바루가 날 못 알아 본다는 거야?

 

- 그래요.

 

마사코 씨는 핸드폰을 꺼버린다. 내가 마사코다. 이 아이의 엄마. 누가 자신을 대신한다는 말인가. 스바루를 안아 올려 몸을 흔들었다.

 

진정하렴. 스바루, 엄마 왔어.

 

저기요!

 

귀에 익은 목소리. 땋은 머리와 베이지 색 티셔츠. 젊었을 적 자신의 모습이다. 

 

감사해요. 찾고 있었어요.

 

자신과 똑 닮은 여자가 스바루를 달래고 있다. 쪼그려 앉아 스바루의 머리를 쓰다듬던 그녀는 감사인사를 하고는 금방 자리를 떠났다. 마사코는 멍하니 모자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삑.

 

메시지 알림음. 마사코는 얼른 휴대전화를 열어 문자를 확인하였다.

 

- 조금 아시겠나요?

 

난 지금 어떤 상태인 거야?

 

- 거울을 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어요.

 

마사코는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자신의 차림새를 두 눈으로 확인하였다. 후줄근한 옷과 곰팡이가 핀 바지. 때가 탄 피부와 지저분한 머리. 주름이 가득한 얼굴. 몇 달째 씻지도 않은 추레한 행색의 남자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꺅!

 

화장실을 사용하던 한 여자가 마사코를 보며 소리 지른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마사코는 변태로 몰린다. 남자들이 마사코의 팔을 한 짝씩 들어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마사코는 허둥지둥 나무가 있는 벤치로 달려가 몸을 숨겼다.

 

이게 대체 뭐야!

 

- 남자가 되셨군요.

 

장난치니?

 

- 변하는 모습은 무작위예요. 제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적어도 여자로 해줘야 될 거아냐!

 

- 이제 진정이 되셨나요?

 

마사코는 숨을 골랐다. 이 이상하고 이해도 안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선 단어 하나가 필요했다.

 

시간 여행 같은 거니?

 

- 비슷하죠.

 

그럼 미래를 바꾸자는 말이지?

 

- 아니요.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어요. 바꿀 수 없죠.

 

그럼 어떻게 고친다는 거야.

 

- 바꿀 수 있는 게 하나 있어요.

 

뭔데?

 

- 마사코 씨, 당신이요.

 

마사코는 눈을 감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내가 정말 이 존재를 믿어도 되는 걸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니.

 

- 진정되셨어요?

 

그래, 말이나 해줘. 어떻게 해야 되는지.

 

- 스바루와 마사코 씨가 있는 장소와 시간을

- 하나씩 찾아가 볼 거예요.

 

하나씩?

 

- 네.

 

얼마나?

많이 걸리는 건 아니지?

 

- 걱정 마세요. 실제 세계는 멈춰있으니까요.

 

마사코는 고개를 저었다. 공상과학에 대해서 문외한인 그녀는 지금 순간들이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모든 게 혹시 꿈은 아닐까. 내가 잠든 게 아닐까.

 

- 꿈이 아니에요. 마사코 씨.

 

마사코는 이 의문투성이의 존재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만약 저 존재에 대해 길고 장황한 설명을 듣고 나면 머리가 펑 하고 터져버릴지도 모를 일이니까.

 

좋아, 해보자.

 

- 그럼 출발할게요.

 

마사코는 눈을 감았다. 누가 눈을 감아야 한다고 충고해준 것도 아니건만 통상의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행동하였다.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변하는 건 오직 자신 뿐이라고 했다. 내가 변하면 뭐가 달라지는 걸까. 갖은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비행하였다. 정말 내가 달라질 수 있을까.

바람.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때린다. 군밤 냄새가 났고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주변에서 휘날린다. 마사코가 눈을 뜬 그곳은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고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길을 걷고 있었다. 

 

- 도착했어요.

 

마사코는 공원 가운데로 서서 주위를 살폈다. 눈에 익은 곳. 전에 살던 집. 아주 오래전 스바루와 살던 옛집이 있는 곳이었다.

 

- 마사코 씨, 당신이 빌던 소원을 꼭 잊지 말아요.

 

마사코는 주위에 정신이 팔려 문자를 확인하지 못한다. 휴대전화의 빛이 깜빡거리다 얌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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