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미코는 눈을 끔뻑였다. 한밤중 병원의 대합실에서 모자가 만나는 건 흔한 일이다. 다른 한 명이 자살시도만 하지 않았다면. 마실 거라도 내주어야 하나 고민하지만 병원의 간호사가 해야 할 의무는 아니다. 둘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어야겠다. 미코는 총총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둘이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간호사가 상관할 일은 아니다. 둘 사이의 무슨 일이 벌어지든 일개 간호사인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끼익.

 

소년이 휠체어를 밀며 병실로 향한다. 대화는 잘 된 걸까. 소년이 고개를 숙인 채 지나간다. 미코는 대합실에 멍하니 서 있는 여인을 본다. 여자는 가만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문을 열고 나갔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혹여나 창을 여는 소리가 날까 소년이 있는 병실로 걸음을 재촉인다.

 

 

<마사코의 슬픔>

 

소년은 창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뛰어내리거나 날카로운 것을 쥐고 있지도 않다. 미코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괜히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자, 이제 자야지. 늦었어.

 

휠체어를 당기며 미코의 손을 피한다. 소년의 어리광을 많이 봐주었다. 환자는 이 소년 뿐이 아니다. 미코는 고개를 돌려 문밖을 건너다보았다. 소년에게 쓰인 시간이 많았다. 그녀는 병실을 나와 밀린 업무들을 차례로 정리하였다.

소년은 자신이 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어리광이라는 걸 안다. 엄마를 미워하고 있다. 어린 애나 할 법한 말을 하고 있다. 팔과 다리를 다쳐 창을 오르지 못한다. 또 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겁쟁이.

 

그는 제 주위의 것들에 겁을 먹었다. 소년을 둘러싼 콘크리트들이 둔중한 음을 내며 몸을 밀고 온다. 그는 제 자신이 질식하였으면 했다. 신이시여 듣고 있다면 나의 소원을 들어 줘요.

나의 소원은.

 

 

<마사코의 기쁨>

 

좋은 소식을 알려드릴게요.

 

마사코는 정신을 차릴 때까지 자신에게 온 문자를 눈치채지도 못하였다. 문자에서, 메일에서, 그 사이트에 까지. 아들의 계정으로 들어간 만남 채팅 사이트에는 자신에게 온 문자와 같은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달칵.

 

그녀는 머리를 눌렀다. 멍하다. 잃을 듯 흔들거린다. 메시지. 이상한 메시지.

 

- 좋은 소식을 알려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어머니. 

아드님의 일은 유감이에요.

하지만 아직 기회가 있어요.

고칠 수 있어요.

 

마사코는, 그녀는, 스바루의 어머니는, 우리 마트의 쾌활한 마사코 씨는.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중얼거리는 입술. 말소리가 소음이 되어간다. 커다란 동작에서 숨죽이는 괜객들처럼 세상은 그녀의 울부짖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다문 밤의 어느 곳에서 메시지가 들어온다. 그녀에게 건네어진다.

 

고칠 수 있어요.

 

메시지들이 쌓인다. 마사코의 눈앞에서. 마사코의 코앞에서. 마사코의 입과 손의 끝에서. 그녀를 이루고 있는 갖은 조각들에서. 마사코는 머리가 아팠다.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쫓지 못해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마사코는 컴퓨터 화면에 대고 말하였다.

 

누구야?

 

- 천사.

 

말도 안 되는 소리.

 

- 맞아요. 말도 안 되죠.

 

장난치지 마. 이런 장난 재미없으니까.

 

- 보여드릴게요.

 

무얼?

 

- 고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고친다는 거야?

 

- 과거로 돌아가서 당신과 스바루의 관계를.

 

말도 안 돼.

 

- 스바루에게는 당신이 필요해요.

 

나도 알아, 안다고.

 

- 당신이 바꿀 수 있어요.

 

바보 같은 환상에 홀리는 기분이다. 누군가 쳐놓은 장난 같은 함정에 빠지는 기분이다. 쾌활한 마사코 씨는 화가 났다.

 

이 따위 장난이 재밌어?

대체 누가 그따위 말을 들어 주겠어!

대체 어느 누가 그런 쓸데없는 장난질에 놀아 주느냐고!

재발 날 가만히 내버려 둬!

 

- 보여드릴게요, 지금.

 

마사코 씨. 그녀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 지 잠시 잊은 듯 보였다. 세상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책상을 내려치는 그녀의 손이 꽉 쥐어져 있다. 

마사코는 여름 냄새를 맡았다. 따스했고 화사했다. 어린 아이 하나가 누군가를 찾고 있었고 풍선이 보인다. 마사코는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일어난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그녀에게는 소원이 있다.

신이시여, 나의 소원은.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534 단편 복잡한 열의 히로 2020.10.27 1
2533 단편 21세기 뮤지컬 로봇이 23세기까지 살아남은 것에 대하여 미믹응가 2020.10.20 0
2532 단편 아빠의 고향 키미기미 2020.10.20 0
2531 단편 이제 미래는 없다 붉은파랑 2020.10.17 0
2530 장편 되감아요 스바루군, 돌아가요 마사코 씨 에필로그 키미기미 2020.10.15 0
2529 장편 되감아요 스바루군, 돌아가요 마사코 씨 (완)1 키미기미 2020.10.14 0
2528 장편 되감아요 스바루군, 돌아가요 마사코 씨 (14) 키미기미 2020.10.14 0
2527 단편 삼송동 블랙홀 오피스텔 해수 2020.10.10 0
2526 장편 되감아요 스바루군, 돌아가요 마사코 씨 (13) 키미기미 2020.10.09 0
2525 장편 되감아요 스바루군, 돌아가요 마사코 씨 (12) 키미기미 2020.10.08 0
2524 장편 되감아요 스바루군, 돌아가요 마사코 씨 (11) 키미기미 2020.10.05 0
2523 장편 되감아요 스바루군, 돌아가요 마사코 씨 (10) 키미기미 2020.10.04 0
2522 단편 신의 목소리 키미기미 2020.10.03 0
2521 장편 되감아요 스바루군, 돌아가요 마사코 씨 (9) 키미기미 2020.10.01 0
2520 장편 되감아요 스바루군, 돌아가요 마사코 씨 (8) 키미기미 2020.10.01 0
2519 장편 되감아요 스바루군, 돌아가요 마사코 씨 (7) 키미기미 2020.09.30 0
2518 장편 되감아요 스바루군, 돌아가요 마사코 씨 (6) 키미기미 2020.09.29 0
장편 되감아요 스바루군, 돌아가요 마사코 씨 (5) 키미기미 2020.09.29 0
2516 단편 샌드위치 맨1 아메리카흰꼬리사슴 2020.09.29 7
2515 장편 되감아요 스바루군, 돌아가요 마사코 씨 (4) 키미기미 2020.09.28 0
Prev 1 ...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