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 안녕.

 

소년은 기다렸다. 그것은 우주로 보내는 조난의 신호였다. 멀고 먼 옛이야기로 보내는 회신. 10여년 전의 자욱에의 좇음. 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오지 않으리란 것도 안다. 자신은 그저 단편이다. 짧고 고독한 고등학생일 뿐이다. 알지만 소년은 기다리고 있다.

9월의 거리. 소년은 몸을 떤다. 매미소리를 들으며 선풍기 바람을 맞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날씨가 금방 추워지고 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틈 사이로 소년이 걷고 있다. 친구들과 섞여 앞을 다투는 아이들에게 길을 양보한다. 소년이 저만치 뒤로 떨어지고 만다. 소년에게 학교생활이란 유쾌한 것이 아니었으나 불쾌한 것도 아니었다. 교실에서 가만히 그는. 그 소년은. 겉돌아 멀리로 세계를 유영하는 그는. 아주 심각한 병에 걸리고 만다.

 

달칵.

- 회신(0)

 

그는 그 병을 좋아하였다. 정말 그 언젠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으니까. 밤에 언제고 신에게 빌었던 소원을, 소년은 목에 걸어 보란 듯 모두에게 보였다. 어떤 이도 모르는 그만의 사정을 오직 자신만큼은 맹신하고 있었다. 난 슬프지 않아. 그저 지독한 병에 걸린 것 뿐이지. 선생님이 부른다. 공상으로, 공상으로 소년은 자신을 빠트린다. 깊지만 닿을 듯 얕은 맡으로 숨을 민다.

 

 

<스바루의 사정>

 

그녀는 마을의 대형 마트에서 일한다. 식료품들을 팔고 홍보한다. 스스로 늙은 아줌마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주부였다.

 

마사코 씨!

 

남자에게 맡길 법도 한 상자를 가리킨다. 사람이 좋은 마사코 씨는 웃는 인상을 지키려 하였다. 

 

정말 마사코 씨가 없으면 안 돼!

 

누구에게나 듣는, 듣기 좋은 말. 그녀는 좋은 사람이다. 늙은 여자이지만 기운 차고 오지랖도 넓은 푸근한 여자이다. 그녀는 그것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자신이 나른 상자는 다른 직원들 역시 작업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었으니까. 운이 좋게 자신이 보인 것일 뿐이다.

 

마사코, 오늘도 기분 좋네?

 

동료가 친근하게 물어온다. 그녀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안녕, 오늘도 좋은 하루. 그런 수 천 번의 말들. 

 

정말 마사코는 언제나 사람이 좋다니까.

 

그래, 그래. 이러다 온 동네가 자신을 찾겠다는 그런 흔한 농담들. 아주 기분 좋은. 아주 신이 나는. 아주, 아주 기분이. 그녀는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가면은 좋지 않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는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바뀌게 하는 지 그녀는 알고 있다. 나는, 나는. 최면보다 그녀는 약이 필요했다. 정말 모든 것들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그런 약이, 사람이 있을까.

 

그거 들었어?

 

응?

 

요새 아이들이 거기에 빠졌대!

 

뭐길래?

 

어머, 아직 몰라?

 

그리 큰 비밀도 아닌 일상의 이야기를 동료는 목소리를 낮추며 조용히 이야기하였다. 

 

만남 채팅 말이야.

 

뭐!

 

그녀도 안다. 뉴스에서 떠드는 문제의 사이트. 누구나 쉽게 가입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순진한 여자아이가 속아 이상한 남자를 만나고 범죄가 일어난다. 그녀는 맞장구를 쳤다.

 

그거 문제네.

 

그럼, 우리 딸도 거기에 빠져선!

 

어머, 정말?

 

그녀는 적당히 상대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조심히 응해주었다. 오바하지도 심드렁해 있지도 않는다. 동료가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본다.

 

마사코 너도 말이야, 조심해.

 

응?

 

내가. 낡은 청사진의 여자도 아닌 내가. 동료를 마주 보며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매력이 있던가.

 

마사코네 아들 말이야. 

 

아.

 

스바루하고도 잘 이야기해.

 

동료의 눈치는 미심쩍고 미안한 기색이 들어 있었다. 만남 채팅에 남자아이들도 피해를 보았던가. 아마 돈을 갈취당하고 폭행을 당하는 그런 일을 말하는 걸까. 동료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들. 그녀의 아들. 그 애의 나이가 어떻게 되더라.

 

우리 애는 그런 거 안 해.

 

혹시 모르지, 세상일이란 게.

 

동료가 말한다. 그녀는 가면을 쓰고 있다. 그녀 주위의 것들이 어떻게 되어도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그녀는 제 얼굴을 잊듯 세상의 일을 모조리 잊은 듯 보인다.

 

범죄자가 알고 보니 가까운 이웃이었다던가 하잖아.

 

동료의 표정을 살핀다. 실수를 했다는 표정. 말을 고치는 표정. 눈치를 보는 표정. 세상은 수 만가지의 표정을 짓고는 하였다. 마트의 식자재를 옮기듯. 신호등의 초록 불을 기다리듯. 그녀는 말하였다.

 

설마.

 

그리고 웃음. 웃어넘기는 말과 일들. 그래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니까. 골치 아프게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건 우리 마트의 쾌활한 마사코 씨가 아니다. 잘 벗겨지지 않게. 잘 넘어지지 않게. 마사코씨는 세상이 좋았다.

정말 그래요, 마사코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녀는 동료의 말을 곰곰이 곱씹었다. 아들과 대화를 나누어 본지 오래되었다. 직장에서 했던 것처럼 집도 쾌활한 장소로 바꾸어 보자. 그래, 그래 한 번 신명 나게 바꾸어 보자. 스바루의 방은 비어있었고 컴퓨터 화면은 켜져 있었다. 회신이 오지 않은 빈 채팅방 하나. 그리고 글자 하나. 안녕.

그 화면은 문제의 만남 채팅 사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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