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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Goodbye to a World

2020.09.28 19:3309.28

그는 세상에 없어요.

  아직도 돌고 있죠.

  그대들이 있는 곳으로.

 

  세상은 그에게 없어요.

  아직 모르고 있죠.

  알고 있는 걸 말해줘요.

 

저는 저 지구로

  하늘을 보고 있답니다.

 

 

 

 

Porter Robinson. 계기판으로 글자가 점멸한다. 작은 로봇 하나가 돌아다닌다.

 

할 수 있는 것들이 쌓여가지만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그 일들을 모두 처리하는 데에 부족하였다. 업데이트 목록이 멈추었다. 언제인지, 언제부터였는지 DB-17은 알지 못했다. 잔해를 처리하고 망가진 부품들을 모았다. 쌓여있는 쓰레기를 다른 구역으로 옮기고 녹이 슨 배관을 이리저리 들고 다닌다. 연락은 되었었다. 보고가 들어왔었고 명령이 하달되었었다.

 

오류입니다.

 

몇 개의 문은 열리지 않았고 몇 개의 문은 구멍이 나 공기가 새어 나갔다. 기억은 저장 되어 있다. 자가 수리 기능은 작동하였다. 움직일 수 있는 만큼 움직인다. 작업은 계속 되어야 한다.

 

식당 칸.

 

형체를 알 수 없고 제 기능을 다 한 물건들을 든다. 다른 칸으로 옮긴다. 전력은 태양광을 받아 충전하였고 빛이 없는 시간으로 바퀴를 굴렸다. DB-17은 그 날도 태양이 뜨는 곳으로 전력을 충전하고 있었다.

 

에너지 감지.

 

빛들이 가려진다. 태양 빛을 가리는 무언가. DB-17은 빛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작은 바퀴를 이리저리 굴리었다. 어디에도 빛이 닿지 않는다.

 

에너지 감지.

 

보다 작은 물체의 접근. DB-17은 빛을 찾기 위해 그 조그만 행성을 돌고 또 돌았다. 작은 캡슐 모양의 물체가 행성에 착륙한다. 작은 불꽃이 일었고 소리는 나지 않는다. 까마득한 우주의 한 가운데로 캡슐은 움직임을 멈춘다. DB-17의 모습이 너머로 사라진다.

 

 

당신이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

  세상의 일이 끝나면

  그대는 신나게 부를 테죠.

  신이 나게 한참을.

 

  당신이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

  세상의 일이 끝나면

  그대는 환하게 부를 테죠.

  반짝이며 한참을.

 

  내가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

  세상이 끝나는 그 날에서

  나는 부를 테죠.

  그대여 슬퍼하지 말아요.

  나와 불러요, 한참을.

 

 

 

  빛을 찾지 못한 DB-17은 폐기된 쓰레기들 틈에서 남은 전력을 긁어모았다. 일을 시작한다. 작동을 계속한다. 움직일 수 있는 만큼 움직인다.

 

관리실.

 

형체도 없고 기능도 하지 못하는 쓰레기들을 모아 다른 칸으로 옮긴다. 노랫소리. 부서진 플레이어에서 노래가 나온다. DB-17은 노래를 모른다. 우주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우주는 거대한 침묵의 그늘에서 저 혼자 잠이 들고는 하였다. DB-17은 플레이어를 들어 잔해들과 함께 다른 칸에서 다른 칸으로 이동하며 자신의 임무를 다하였다. 전력이 바닥나는 그 순간에까지 DB-17은 그 작은 바퀴의 달칵거림을 쉬지 않았다.

 

응애.

 

DB-17은 남은 잔해들을 들어 옮긴다.

 

응애.

 

DB-17은 다시 잔해를 들어 다른 곳으로 옮긴다.

 

응애.

 

DB-17은 잔해들을 든다.

 

응애.

 

플레이어. 노래. 소리. 우주의 축. 빛과 전력.

 

응애.

 

태양 빛을 가리고 있는 무언가.

 

에너지 감지.

 

DB-17은 바퀴를 굴렸다. 플레이어가 노래를 멈춘다. DB-17은 플레이어에 담긴 전력을 자신의 충전지에 흡수하였다.

 

충전이 끝난 그 날이 DB-17에겐 아침이었고 충전이 필요한 그 날이 DB-17에겐 밤이었다. 그 로봇에겐 아침이 있듯 밤 또한 필요했다. 우주에서 재생되던 플레이어는 DB-17에게 작지만 소중한 밤이 되었다.

 

응애.

 

DB-17이 아침을 준비한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영원함을 DB-17은 만끽한다.

 

 

 

나에게 말해요.

  모두가 부르는 그 이름을

  나에게 말해요.

  모두가 부르는 그 날을

  나에게 말해요.

  모두가 부르짖는 그 말씀들을

  나에게 말해요.

  모두가 맞는 그 거대한 밤을

  나에게 말해요.

 

  나와 함께 맞아요, 점멸하듯

  당신과 함께 멸망할 테니.

 

 

 

 

쓰레기 사이를 거닐던 DB-17이 종이를 밟는다.

 

‘이름을 입력하고 명령하세요.

  충직한 보모에서

  깔끔한 가정부에 까지

  당신만의 육아도우미 DB-/ ‘

 

DB-17은 자신과 닮은 그림의 포스터를 밟고 행성을 하염없이 돌았다. 충전이 필요하다. 빈 충전지가 DB-17의 옆으로 달랑거리며 허공을 유영한다.

 

에너지 감지.

 

혹여 전달된 업데이트 사항이 있을까. 관제실의 모니터에 접속하기도 하였다. Porter Robinson. DB-17은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자동 업데이트 목록에 낯선 이름만이 덜렁 올라간다. DB-17은 우주 어느 번지에 덮인 그 무한한 공간의 시간위에서 작은 바퀴를 달칵거렸다. 작은 빛이 점멸한다. 태양 빛을 가리는 무언가의 뒤로 퍼지는 빛 하나. 바퀴가 작은 돌멩이를 넘기도 전에 DB-17은 폭풍을 느꼈다.

 

픽.

 

전자기기의 점멸. DB-17이 다시 눈을 뜨게 된 건 비상 신호기가 울리던 거대한 밤의 중간에서였다.

 

에너지 감지. 에너지 감지.

 

삐걱거리는 소음. 반짝이는 초록 불빛. 방금의 강제 점멸로 DB-17의 잔여 전력은 바닥난 상태였다. 바퀴를 굴려야했다. 충전지에 넣을 물건이 필요하다. DB-17은 언젠가 착륙한 작은 캡슐을 향해 마지막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많지 않다.

 

에너지 감지. 에너지 감지.

 

소음이 DB-17의 작은 몸체에서 시끄럽게 번진다.

 

에너지 감지. 곧 충돌합니다.

 

밤이 다가오고 있다. 그 거대한 몸을 이끌고 DB-17의 행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응애.

 

DB-17. 그의 소명. 그의 임무. 버려진 행성에서의 기록.

 

본 캡슐의 명단을 확인합니다.

 

캡슐. 작은 에너지원. 생명의 태동. 흔적. 밤과 아침.

 

Jimie Robinson. 등록된 명단과 불일치합니다.

 

 

 

 

 

 

당신과 나는 다시 태어날 거예요.

  種의 종말에서

  세상의 끝에서

  땅의 莫에서

  계절의 지남에서

 

난 슬퍼할게요.

  나 슬퍼 울 거예요.

  그대, 그대

  나를 태어나게 해줘요.

 

 

 

 

행성이 거대한 지구의 조각과 부딪힌다. 그 무엇도 남지 않았고, 그 어느 것도 남지 않았다. 마지막 생존자는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한 늙은 남자였다. 손자를 살리고 싶어 했고 무작정 출발시켰다. 아기의 이름이 적혀야할 칸에 그는 그의 이름을 남겼다.

비극이라 하는 연극의 장이 열리어도 그를 부를 연주자는 남지 않음이라. DB-17이 무엇을 하였는지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분명 그곳에서 희망을 기대한다. 둘은 살아남았고 살아남을 것이다.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둘이 살았음을 찬미할 것이다. 그것이 더 행복할 테니까. 그런 결말이 더 좋을 테니까.

 

그 편이 나에게 더 편안할 테니까.

 

 

 

 

그는 세상에 없어요.

  아직도 돌고 있죠.

  그대들이 있는 곳으로.

 

  세상은 그에게 없어요.

  아직 모르고 있죠.

  알고 있는 걸 말해줘요.

 

저는 저 지구로

  하늘을 보고 있답니다.

 

  안녕하세요, 모두들.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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