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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원소 학교

2020.09.28 09:5909.28

 

바람

장이선은 새 수학노트에 이름을 적고 있었다. 방금 반 이동을 해서 주위의 아이들은 어수선했다. 중학교 때부터 알던 아이들은 다 상위 반으로 가버리고 이 반엔 이선만 왔다. 고등학생이 돼서 마련한 파란 노트는 아직 접힌 자국도 없이 빳빳했다. 이선은 네임펜 뚜껑을 닫고 생각했다. 장이선. 배나무 이()에 배 선().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아빠에게 물어봐도 배나무 배, 표면적인 뜻만 말해줄 뿐 이선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무슨 한문선생이 그렇게 대충대충 이름을 짓는 지 모를 일이었다. 이 자가 다스릴 이() 정도만 됐어도 자신의 능력과 관련 있는 이름이구나 했을 텐데, 배나무 배는 도무지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이선은 바람을 다룰 줄 알았다. 그 능력을 알게 된 건 초등학교 이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이 종례시간에 말했다. 침을 손가락에 바르고 머리 위로 들면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있다고. 그 이야기는 자기가 가는 방향을 알아야 잘 살 수 있다는, 맥락 없는 훈화를 하기 위한 서두였다. 맨날 폴로셔츠에 왕버클 벨트를 차는 선생님이었다. 가끔 교실 한 구석에 골프가방을 세워두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하교길에 이선은 선생님이 말대로 검지에 침을 바르고 손가락을 들었다. 그랬더니 손톱이 있는 손가락 면이 시원해졌다. 이선은 생각했다. 앞쪽이 시원해졌으면 좋겠는데. 그 생각을 하자마자 손가락 앞면이 시원해졌다. 이선은 반복했다. 이선이 생각을 바꿀 때마다 시원해졌으면 하는 손가락 부분이 시원해졌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되었다. 난 바람을 다룰 수 있구나.

바람을 다룬다고 해서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부모님도 헛소리라고 치부했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건 어느 과학기관에 끌려갈까봐 무서웠다. 더운 날 자신에게 바람이 불게, 추운 날 자신에게 바람이 안 불게 할 수는 있었지만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겠다고 바람을 마구 일으켜보는 것도 두려웠다. 동네 집들이 다 날아가 버리면 뭐라고 한단 말인가. 바람을 다루는 능력으로 이익을 본 일은 초등학교 오학년 때 과학의 날 행사가 전부였다. 이선은 고무동력기를 날렸는데 심사를 보던 선생님이 어떻게 고무줄이 끊어진 고무동력기가 오 분 동안 하늘에 떠있을 수 있는지 신기해했다. 그걸로 도 대회까지 나간 게 끝이었다.

배나무 배. 그래도 까마귀 날 때 배 정도는 떨어뜨릴 수 있겠네. 이선이 혼자 낄낄거리며 수학노트를 펼쳤을 때 누군가 이선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니 처음 보는 남학생이 서있었다. 피부가 까맣고 바짝 말라 미역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선은 말했다. 미역 같다. 그 학생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고 이선은 얼굴이 빨개졌다. 말도 목구멍을 통과하는 바람인데 왜 이건 조절할 수 없는지 모를 일이었다. 미역이 이선에게 물었다.

나 여기 앉아도 돼?

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역답지 않게 목소리는 좋았다. 소라 안을 웅웅거리며 울리다가 나오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다행히도 이건 말로 뱉지 않았다. 미역과 이선은 수학과 영어 이동수업 반이 겹쳤고 그 때마다 같이 앉았다. 두 번째 영어시간이 돼서야 이선은 미역의 이름이 김동철이라는 걸 알았다.

 

이선은 동철이 자석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이름도 움직일 동에 철 철을 쓸 것 같이.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동철은 수학을 잘했지만 영어는 못했다. 이선이 끙끙대는 문제를 단숨에 풀어버리고 설명해 줄 때는 멋있었고, 이상한 발음으로 떠듬떠듬 영어를 읽을 땐 귀여웠다. 물론 같은 분반이니 실력은 비등비등했겠지만.

야자 때 짝꿍한테 동철이 이야기를 해주자 짝꿍은 이상하게 웃으며 이선에게 말했다. 너 가슴에 이상한 바람이 들었네. 이선은 짝꿍에게 조용히 하란 의미로 입김을 불었다. 짝꿍은 인상을 찌푸리며 저녁으로 먹은 소고기폭찹 냄새가 난다고 했다. 이선은 짝꿍에게 헛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만, 가슴이 폭찹폭찹 뛰었다. 그런가, 이선은 인터넷 강의를 멈추고 생각했다. 정말 바람이 들어버렸나.

곧 학교 체육대회라 애들이 들떠있었다. 이선의 반 남자 애들은 계속 칠판에 이름을 적었다가 지웠다가 했는데, 축구 포메이션을 정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선은 그게 쓸데없이 엄청 나대는 것 같고 꼴 보기 싫었다. 그래서 깝친다, 말했다가 한 이틀 동안 핀잔이란 핀잔은 다 들어야 했다. 들떠있는 건 동철도 마찬가지였다. 수업 쉬는 시간에 동철은 자신이 나갈 축구에 대해 떠들었다. 축구는 삼 반 애들이 잘하는데 우리 반이 못이길 정도는 아니야. 이선은 턱을 괴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동철은 자신의 공책에 원 열한 개를 그리고 이선이 알지도 못하는 이름들을 적어 넣었다. 동철의 이름은 맨 위에 있었다. 난 공격수야, 동철은 그 이야기를 수능 만점을 받은 것 마냥 이야기했다. 이선은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동철의 이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침내 체육대회 날이 되고 이선은 자신의 계주와 동철의 축구 시간대가 겹친 것에 분노했다. 아니, 여자 경기는 여자 경기대로 몰고 남자 경기는 남자 경기대로 몰아야지. 이선의 화에 공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침부터 파란색으로 맞춘 반티를 입고 스탠드에 줄줄이 앉아 경기를 구경했다. 화를 내다 지쳐 경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응원단장들이 파도타기는 왜 그렇게 시키는지 짜증만 났다. 점심을 먹은 후에, 이선의 반 계주선수들과 동철의 반 축구선수들이 동시에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운동장에선 축구를 하고 그 둘레의 트랙을 계주선수들이 뛰는 거였다. 선생님들의 배구와 피구는 운동장 구석에 있는 강당에서 한다고 했는데 학생들에게 별로 관심거리는 아니었다. 동철은 금방 눈에 띄었고, 이선이 손을 흔들자 동철도 이선을 봤다. 그리고 말했다. 힘내! 이선은 계주가 아니라 국토대장정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축구경기와 계주는 동시에 시작했다. 이선은 세 번째 주자였고 앞의 주자들이 뛰는 동안에 축구만, 사실은 동철만 보고 있었다. , 준비해! 선생님의 소리에 정신을 차렸을 땐 앞 주자가 바통을 내밀고 있었다. 이선이 바통을 잡고 달리기 시작하려고 할 때 동철도 공을 몰고 골대로 달리고 있었다. 이선은 달리려는 걸 멈추고 동철을 바라봤다. , 뭐해. 앞 주자가 이선을 밀었지만 이선의 시선은 동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동철이 수비수 한 명의 태클을 피하고 슛을 때렸다. 그 때 이선은 바람이 불게 했다. 두 손을 뻗고 바통을 마법지팡이처럼 흔들었다. 좀 더 공이 강하게, 골대 안으로 날아갈 수 있도록. 골대 위로 날아가던 동철의 슛은 골포스트를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이선은 그걸 보고 나서야 달리기 시작했다. 반 애들 모두가 이선에게 너 뭐하는 거냐고 묻고 있었지만 이선은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 숨겼어야 했다. 조절 했어야 했다. 꾹 눌러 말을 참았어야 했다.

이선은 축구가 끝나고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동철에게 다가갔다. 동철의 골로 동철의 반이 이겼고, 동철은 한참 반 친구들의 축하를 받다가 혼자 따로 나와 있는 상태였다. 머리까지 땀으로 젖어있었고, 까만 피부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고, 다가오는 이선을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도 참았어야 했다. 좋아해. 이선은 말하고 입을 가렸다. 변하는 동철의 얼굴만 보고도 뭐라고 대답할지 알 수 있었다. 난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몰랐어. 동철의 말을 듣고 이선은 가까스로 웃으며 뭐라뭐라 말하다가 자신의 반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짝꿍이 이선의 들썩이는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동철은 이동수업 때 이선에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을 걸어왔다. 이선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대답했다. 하지만 둘 다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멈췄을 때 전과 다르게 어색했다. 자석은 당기는 것만 아니라 밀어내기도 하는구나. 이선은 생각했다.

이선은 동철이 괘씸했다. 자신을 찼다고 싫어진 건 아닌데 그냥 꼴 보기가 싫었다. 특히 아무렇지도 않게 점심시간마다 운동장에 나가 축구하는 모습이. 이선은 점심시간 때마다 나가 조회대에 앉아 운동장의 바람을 멈췄다. 동철에게 부는 바람만 멈췄다. 동철이 조금이라도 더 힘들기를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동철이 이선에게 말했다. 웃지 말고 들어봐. 요즘 이상해.

뭐가?

내가 운동장에 나가면 바람이 안 불어.

내 감정은 눈치 못 채면서, 그건 잘도 눈치 챘구나. 하하하, 이선은 아무 말 없이 동철을 마음껏 비웃어주었다.

 

여름방학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이선은 평소처럼 조회대에서 바람을 멈추고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지만 그냥 버릇처럼 하고 있었다. 동철은 운동장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좀 더 땀 흘리며 뛰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철이 찬 공이 구석의 강당 쪽으로 굴러갔다. 미안, 동철이 외치며 강당으로 달려갔다. 그 때 조회대 뒤를 지나던 애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멍하니 동철을 보고 있던 이선도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봤다. 아이들이 모두 동철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 강당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당이 기울고 있었다.

이선은 눈을 비볐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확실했다. 강당이 무너지고 있었다. 동철은 아무것도 모르고 강당 밑에 가 공을 주웠다. 안 돼, 이선이 소리 질렀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이 동철에게 빨리 나오라고 손짓했다. 동철은 가만히 서서 위를 쳐다봤다. 강당의 유리창이 깨졌다. 파편들이 동철에게 쏟아졌다. 동철은 얼굴을 가리고 바닥에 엎드렸다.

바보야, 그게 엎드린다고 될 것 같아. 이선은 자기도 모르게 달리고 있었다. 강당 쪽으로 달렸다. 강당에 가까워지려고 하는 아이는 이선 밖에 없었다. 강당이 점점 더 빠르게 기울었다. 일층의 문들이 깨지고 먼지가 뿜어져 나왔다. 안 돼. 이선은 외쳤다. 달리면서 팔을 뻗었다. 강당이 무너지는 반대 방향으로 바람이 불게 했다.

하지만 바람이 무너지는 강당을 막을 수 있을까. 여태까지 고무동력기나 날린 게 다인데. 이선의 생각처럼 강당은 기우는 걸 멈추지 않았다. 돌가루들이 동철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선은 생각을 멈췄다.

할 수 있어. 나 밖에 없어. 내가 해야만 해.

이선은 집중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풀 때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바람이 강해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역부족이었다. 이선은 집중했다. 점심시간에 급식소로 달릴 때만큼. 자신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소리를 내며 불었다. 이선은 집중했다. 쉬는 시간 잠자는 동철의 얼굴을 볼 때만큼, 영어를 발음 할 때 입술을 볼 때만큼. 수학을 풀 때 찌푸린 눈썹을 볼 때만큼. 체육대회 날 동철에게 다가갈 때만큼.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강당 뒤로 심어진 나무들이 휘청했다. 강당 옆으로 커다란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강당이 본격적으로 쓰러졌고 떨어지는 파편들을 멀리 날렸다. 동철은 회오리바람 가운데에 있었다. 회오리바람에 가려 동철은 보이지 않았다. 제발. 제발제발. 제발제발제발. 강당이 납작하게 다 무너질 때까지 이선은 버티고 있었다. 이선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인중을 타고 코 밑으로 뭐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회오리바람이 사라지기 전에 이선은 기절했다.

 

방학식 때 동철은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론 멀쩡했다.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무너진 강당에 대해 떠들었다. 강당이 있던 곳은 접근금지라고 쓰인 줄들로 둘둘 감겨있었다. 애초부터 부실공사라더라, 원래 거기 지반이 약했다더라. 지반이 약했는데 거기 나무뿌리들이 감싸고 있어서 여태까지라도 버틴 거라더라. 이선은 그게 무슨 소용이냐 싶었다. 몇몇 애들은 이선을 보고 속닥거리기도 했다. 운동장 한 가운데에서 기절한 이선은 멀쩡히 두 발로 걸어 나온 동철보다 소문거리였다. 동철은 이선에게 다가와 소곤거렸다.

야 그 말했었잖아. 나 운동장에 있을 때 바람이 안 부는 것 같다고, 그 바람이 모였다가 나 살리려고 단번에 불었나 봐. 너도 봤지? 그 회오리바람.

선생님들이 하나 둘씩 운동장으로 나오고 동철은 자기 반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뒤 돌아보고 말했다. 근데 너는 왜 기절한 거야.

이선은 하하하, 웃었다. 진심으로 재밌어서 웃었다. 됐어, 저 눈치코치 없는 놈은. 이선은 생각했다. 이선은 방학식이 끝날 때쯤 뒤쪽에 서있는 짝꿍을 찾으려 주변을 살피다가 옆 반에 옆선이 괜찮은 아이를 발견했다. 짜식 괜찮네, 이선이 조절하지 못하고 말했다.

 

박흥기는 세상에서 가장 인기 없는 동아리인 원예부의 부장이었다. 부원은 없었다. 그래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세상에서 제일 인기 없는 동아리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고나니 동아리라고 부르기도 뭐했다. 흥기가 주로 하는 일은 학교 주변 화단에 물을 주고, 교무실 안의 작은 꽃 화분 몇 개와 교장실의 커다란 나무 화분 몇 개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흥기를 제외한 모든 애들은 원예부를 선생님 따까리라고 불렀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원예부를, 그러니까 흥기를 좋아했다. 흥기가 관리하는 화분은 얼마나 시들시들하든 삼 일만 있으면 다시 살아났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흥기의 별명은 지저수였다. 수 자는 나무 수()자를 쓰는 거라고 학교에서 제일 인기 없는 한문 선생님이 설명해주었다.

흥기는 자신의 재능을 초등학교 1학년 때 알았다. 너무나 생생히 기억나서 요즘도 종종 꿈으로 꿀 정도였다. 교실 뒤에서 조그마한 산세베리아를 키웠는데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날에 그날 주번인 사람이 물을 주기로 되어 있었다. 흥기는 산세베리아에 세 번째로 물 주는 사람이었다. 흥기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전에 컵에 물을 가득 받아 산세베리아에 부어주었다. 그때 산세베리아의 잎이 살짝 떨리는 걸 본 것 같았다. 흥기는 손가락 사이에 산세베리아 잎을 넣고 만졌다. 산세베리아 잎은 적당히 차가웠고 부드러웠다. 흥기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했다. 입을 가까이 대고 산세베리아에게 말해주었다. 잘 자라야 해.

다음날 흥기가 학교에 갔을 때 다른 반 아이들, 심지어 선생님들까지 흥기의 교실에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흥기가 간신히 그 인파들을 헤치고 교실 안에 들어섰을 때 흥기도 놀라고 말았다. 교실 뒤편, 작은 화분에서 나온 산세베리아가 사물함을 다 덮고도 교실 맨 뒤 책상까지 뻗치고 있었다. 흥기의 담임선생님이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까지 했지만 하루 만에 그렇게 자랐다는 증거가 없어서 방송되지는 않았다. 결국 그 산세베리아는 잎을 하나씩 잘라 반 아이들에게 분배되었다. 흥기 어머니의 편의점엔 아직 그 산세베리아가 자라고 있다. 그것이 흥기가 기억하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일이었다.

점심시간에 흥기는 또 아이들에게 불려갔다. 흥기는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학교 운동장 구석에 완공식을 앞두고 있는 강당이 있었다. 흥기가 나무를 돌보러 교장실에 갈 때마다 교장선생님은 강당을 바라보며 자신이 쎄빠지게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 그 노력의 결과 뒤에서 흥기는 담배를 애들에게 바쳐야 했고, 맞아야 했고, 욕을 들어야 했다. 아이들에게 맞은 날이면 흥기는 강당 뒤에서 아이들이 버린 담배꽁초를 줍고 주저앉아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편의점 담배가 자꾸 사라진다는 엄마의 말에 어떻게 무표정으로 있을지, 몸에 난 상처는 선생님들에게 어떻게 변명할지,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

야 네 이름이 흥기면 너네 형은 놀기냐?

이런 말들이 시작점에 있는 것 같긴 하다.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할 만한, 유치하게 이름으로 놀리는 말들. 그 정도는 웃어넘길 만 했다. 근데 그게 점점 심해졌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는 이름과 아버지가 없다는 것으로 아이들이 놀렸다. 이건 아닌데, 생각할 틈도 없이 도를 넘어가 버렸다. 웃는 게, 서있는 자세가, 그냥 모든 것이 재수 없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맞았을 땐 어? 했다. ? 가 흥기가 한 반응의 전부였고 이미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었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이사를 오면서 먼 곳으로 와서 바뀔 수 있을 줄 알았다. 입학했을 때 아무도 자신을 모른다는 게 눈물 날 정도로 좋았다. 아이들은 먼저 가만히 있는 흥기에게 말을 걸어주었고, 대화를 나누어주었다. 괜찮아.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급식소를 나오면서 흥기는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다 괜찮아졌어. 그래서 원예부도 만들었다. 처음엔 부원도 몇 명 있었다. 전학 와서 처음으로 친해진 아이들이 부원이 되어주었다. 흥기는 그게 시작일 줄 알았다. 자신의 새로운 시작. 하지만 끝은 너무 빠르게 찾아왔다.

그때는 강당이 지어지는 도중이었고 흥기는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는 중이었다. 지어지고 있는 강당 뒤로해서 운동장 한 바퀴를 돌면 점심시간 산책으로 딱이었다. 인부들도 그 때가 점심시간이어서 사람은 없었다. 좋아하는 만화의 주제가도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게 보였다. 흥기는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게슴츠레 눈을 뜨니 아이들 몇이 구석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못 본 척하고 도망가자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제 친구도 생겼다고 자만한 걸까. 행복이 막 생겼다고 그게 영원히 내 곁에 남아있을 거라 생각한 게 잘못인 걸까. 아버지 없는 아이라고 욕먹지 않게 가르치려 했던 어머니 때문인지도 모른다. 항상 흥기의 납작한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해준 말들. 네가 옳다고 생각하면 포기하지 마라. 한 아이가 딱 한 그루 서있는 나무에 담배를 비벼 끄는 걸 보고 흥기는 다가갔다. 아이들이 모두 흥기를 쳐다보았고 흥기는 말했다. 그러면 안 돼. 나무가 싫어해.

그렇게 흥기는 다시 쳇바퀴로 돌아왔다. 탈출한 줄 알았던 쳇바퀴로. 달라진 건 돌아온 쳇바퀴에는 철조망이 감겨있었다. 괴롭힘은 중학교 때보다 더 심했고 그보다 상처가 더 컸다. 친구들은 흥기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대화를 해주지 않았다. 급식을 다시 혼자 먹었고, 원예부도 아무 말 없이 나오지 않았다. 흥기는 이제 매일 밤 엄마의 편의점에서 담배를 훔쳐야 했다.

나무가 시러해애. 무슨 시발 초딩이냐.

아이들은 강당 뒤에서 흥기를 괴롭히며 놀렸다. 반년이 지났는데도 나무가 싫어해는 아직 유효한 농담거리였다. 흥기는 죽고 싶어질 때마다 최대한 자기가 관리하는 화분들을 생각했다. 교무실 창가의 화분은 이제 곧 꽃을 피울 거고, 아직 화단에 진드기가 다 사라지지 않았고, 자기가 없으면 교장실의 나무는 교장선생님이 금방 말려 죽일 거라고. 그래도 가끔은 아무리 화분에 대해 생각해도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다는 생각이 이길 때가 있었다.

강당 완공식 전날이 그런 날이었다. 다음날 완공식을 강당 안에서 할 거니까 아침에 다들 거기로 모이라고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흥기는 그날도 흠씬 두들겨 맞았다. 담배를 국산으로 챙겨왔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이들이 침을 뱉으며 사라지고 흥기는 흉터 가득한 나무 옆에 앉아있었다. 흥기는 나무의 흉터를 만졌다. 사라져, 흥기가 말했지만 나무의 흉터는 사라지지 않았다. 흥기가 죽어버려, 란 말을 들어도 아직 죽지 않은 것처럼. 흥기는 교복에 묻은 흙먼지를 털었다. 이제 죽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쓸모라곤 없는 인간이니까. 어머니가 해 준 말처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까. 흙 묻은 소매로 눈을 문지르는데 갑자기 누군가 말했다. 아니, 속삭였다. 아니, 흥기가 느꼈다. 머릿속으로 직접 어떤 이미지가 들어왔다.

땅이 무너질 거야.

흥기는 그려낼 수 있었다. 강당에 모여 있는 학생들을, 그리고 땅이 꺼지고 무너지는 강당을. 흥기는 강당을 쳐다봤다. 새로 지어진 강당은 너무나 튼튼하고 강해보였다. 흥기는 땅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한 번 똑같은 이미지가 흥기에게 보였다. 흥기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진짜라는 걸. 자신의 상상이 아니라는 걸. 땅이 흥기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교실로 돌아간 흥기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다. 선생님에게 말할까. 어떤 선생님이 강당이 무너질 것 같아요. 제 눈에는 보여요.’ 말하면 믿어줄까. 아이들에게 말할까. 내일 강당으로 가지 말라고. 흥기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내 말을 들어주겠어.

흥기는 고민하고 고민했다. 청소시간, 저녁시간, 야자시간 끝까지 고민했다. 그리고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나무를 심자.

산사태를 막으려고 나무를 심기도 한다니까. 땅이 꺼지지 않게. 다른 아이들은 가방을 싸고 교실을 나가고 있었다. 흥기도 가방을 싸며 생각했다. 근데 나무를 어디서 구하지. 나무를.

답은 쉽게 나왔다. 흥기의 주머니에는 교장실 열쇠가 있었다.

 

학교에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흥기는 교장실로 갔다. 교장실엔 커다란 나무화분이 일곱 개 있었다. 흥기는 그걸 하나하나 강당 뒤로 날랐다. 하필 교장실은 학교 사층에 있었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팔이 빠질 듯 아팠다. 그래도 흥기는 이를 물고 화분들을 날랐다. 일곱 개의 화분 전부를. 혹시나 해서 교무실의 꽃 화분들도 날랐다. 꽃 화분을 드는 데도 팔이 후들거렸다. 그걸 나르는 데만 해도 두 시간 가까이 시간이 지나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자정이 가까웠다.

나무를 옮겨 심으려고 할 때 흥기는 한 가지 잊은 게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 삽이 없었다. 혹시나 인부가 두고 간 게 있지 않을까 강당 주변을, 강당 안까지 구석구석 다 뒤졌지만 삽은 없었다. 시간도 없었다. 흥기는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손끝은 금방 까졌다. 손톱 사이로, 까진 상처로도 흙이 들어갔다. 상처 난 손이 흙에 닿을 때마다 눈을 질끈 감을 정도로 쓰라렸다. 후들거리는 팔로 한참을 팠지만 별로 파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흥기는 생각했다. 이게 가능은 할까. 의미는 있는 일일까.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 무시하는 아이들의 얼굴도 불쑥 떠올랐다. 걔네들이 다 죽는 게 나랑 상관있나.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살려야 하는 아이들인가. 흥기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때 무언가 흥기의 납작한 뒤통수로 떨어졌다. 나뭇잎이었다. 사람 손바닥만 한 나뭇잎. 흥기는 고개를 들었다. 상처 가득한 나무가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흥기는 다시 팔을 움직였다.

모르겠어.

그런 거 모르겠어. 가능은 한 지, 의미는 있는지, 나하고 상관이 있는 일인지, 내가 살려야 하는 지. 흥기는 옮겨 온 나무들과 상처 있는 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모르겠지만 해야지. 지저수니까. 난 죽은 나무도 살리는 사람이니까. 흥기는 팔에 힘을 가득 주었다. 손을 최대한 넓게 폈다. 더 빠르게, 조금 더 빠르게. 흥기는 반복했다. 가져온 나무와 꽃들을 모두 심을 만큼 땅을 팠을 땐 동이 트고 있었다.

흥기는 나무 하나하나를 옮겨 심었다. 옮겨 심을 때마다 상상했다. 나무들의 뿌리가 땅 깊이 내리는 장면을. 그 뿌리가 땅을 단단히 고정하는 장면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강당과 피곤한 표정으로 교실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흥기는 나무 하나하나에게 흥기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주었다. 최고로 순수한 사랑을.

 

완공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갑자기 강당 뒤편으로 커다란 나무 일곱 개가 더 생겨 사람들이 놀라긴 했지만, 완공식은 진행되었다. 교장선생님의 말은 언제나처럼 지루했고, 한문 선생님은 평소처럼 떠드는 아이들의 뒷목을 때렸고, 몇몇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가기 전에 담배를 피울 계획을 세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는 생각도 없었다. 평범한 하루였다.

그동안 흥기는 교실에서 자고 있었다. 강당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흙투성이인 흥기의 몰골을 보고 웅성거렸지만 깨우진 않았다. 흥기의 표정은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그날 하루 종일 흥기는 잠을 잤고 아무도 흥기를 찾지 않았다. 흥기는 끊임없이 자라는 산세베리아 꿈을 꾸고 있었다.

 

한참 자습 중이던 삼학년 교실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복도 끝에 있는 반이었다. 비명의 주인공은 원도화였다. 하지만 아무도 도화를 신경 쓰지 않았다. 교실 맨 앞에 앉아 졸고 있던 한문 선생님조차 또 쟤야, 하는 귀찮은 표정만 지었을 뿐이다. 도화는 삼초정도 비명을 지르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엠피쓰리에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최대로 올렸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떤 미친 학교가 수능 백 오십일 전에 강당을 짓기 시작한단 말인가. 진짜 다 불질러버리고 싶었다. 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도화는 열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갓난아기 때 열이 펄펄 끓어서 부모님을 당황시킨 적이 있었는데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얼굴에 올라왔던 발진들이 고스란히 점이 되어 남은 것 말고는. 그밖에도 생일날 케이크 위에 초 다섯 개를 맨 손으로 잡아 끈다든가 삼겹살이 구워지고 있는 철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는다든가 화장실에서 휴지를 손에 쥐고 힘을 주다가 휴지가 타올라 집에 불이 날 뻔하는 등 부모님을 당황시키는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도화는 상처하나 없이 잘 자랐다. 도화는 자신의 건강한 신체와 능력이 좋았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불을 지를 줄만 알고 끄지는 못한다는 점이었는데, 도화는 그것만 해도 감사했다.

하지만 동생은 달랐다. 몸이 여리고 키도 또래보다 작았다. 여러 번 병치레를 했고 그럴수록 부모님의 얼굴도 야위어 갔다. 그래서 도화는 성공해야 했다. 꼭 성공해서 부모님의 배달전문 중국집을 꼭 커다란 중식당으로 바꿔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뭐야 무슨 장녀의 부담감이야? 친구가 말했을 때 도화는 그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장녀의 부담감. 도화는 그 부담을 충분히 지고 갈 수 있었다. 그 누구보다 강하니까.

 

도화는 한증막을 좋아했다. 주말이면 동네 목욕탕에 가서 한 두 시간 앉아있다 나오곤 했다. 몸과 정신의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날도 수건을 하나 머리 위에 올리고 몸을 지지는 중이었다. 그 강당공사 때문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제 철근들이 땅위로 머리를 빼꼼 내밀고 있는 중이었다. 가면 갈수록 소음은 점점 더 심해졌고 선생님들은 네가 참으라는 말만 하고 있었다. 한 번 교무실에서 그걸 어떻게 참아요, 소리를 질렀는데 교무실 밖 화단에 물을 주고 있던 일학년 애까지 도화를 쳐다봤다. 부담감이라고는 없는, 참 팔자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아무튼 그 스트레스 때문에 목과 어깨가 걸렸다. 계란 하나를 사서 까먹고 있는데 아주머니 셋이 여긴 왜 이렇게 뜨거워, 하며 한증막 안으로 들어왔다. 아주머니들은 수다를 떨었다. 도화는 한숨을 쉬었다. 여기까지 소음이라니. 한참 떠들던 아주머니 중 한 명이 갑자기 목소리를 바꾸며 말했다. 근데, 그거 들었어? 그 목소리가 얼마나 진지하던지 눈을 감고 천장을 보던 도화도 귀를 쫑긋 세웠다.

동네에 자꾸 애들을 끌고 가려는 사람이 있대. 어떤 애가 끌려가다가 마침 다른 어른이 지나가서 간신히 빠져나왔대. 그냥 다짜고짜 잡아 끌면서 꼬마야, 같이 가자, 한다더라.

도화는 작게 비웃었다. 늘 있는 동네 괴담 아닌가. 사탕으로 애를 꾀는 유괴범,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다니는 바바리맨……. 도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증막에서 나가려고 하는데 아주머니들이 도화를 붙잡았다. 학생도 조심해. 도화는 네,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 이야기를 비웃었으면 안 되는 거였다. 자신이 했던 멍청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 손에 끌려간 아이가 동생이 될 줄은 도화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학교로 걸려온 아빠의 전화를 받고 도화는 소리를 지르며 병원으로 달렸다. 눈물이 왈칵왈칵 쏟아졌다. 아니야, 이게 뭐야. 두두두두, 땅을 뚫는 드릴 소리에 맞춰서 도화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렸다.

동생은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아직 의식은 차리지 못했다고 했다. 목격자의 말은 이랬다. 어떤 사람이 동생을 끌고 가고 있었고, 자기가 그걸 보고 쫓아갔다. 그 사람은 자기를 보고 동생을 담벼락 쪽으로 밀치고 도망갔다. 아마 그 담벼락에 머리를 세게 부딪힌 것 같다. 도화는 동생의 작은 손을 잡고 울었다. 동생이 아픈 건 단순히 운이 나쁜 거라고 생각했었다. 운이 나쁘게도 도화처럼 태어나지 못하고 약하게 태어나서라고. 근데 이건 뭐야. 지금은 왜 이러고 누워있는 거야. 동생을 이렇게 만든 어떤 악의, 사람의 악의를 들쳐본 것 같았고 도화는 처음으로 무릎이 휘청하는 기분이었다.

도화는 학교 대충 점심까지 있다가 조퇴해 병원으로 갔다. 거기서 머리가 엉망인 아빠와 교대를 하고 저녁에 중국집 일을 대충 마친 엄마와 교대했다. 범인은 아직까지도 잡히지 않고 있었다. 도화는 병상 옆에서 책을 보다가 동생을 보고 울거나 무력감에 휩싸여 멍하니 앉아있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수능이 다가온다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이러다가 동생이 영영 일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더욱 컸다. 범죄자도 아직 잡히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삼일이 지나고 동생은 일어났다. 도화는 깜빡 졸고 있었다. 누나, 누나,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니 동생이 도화를 보고 있었다. 도화가 간호사 선생님, 선생님, 소리를 지르며 복도로 나가려는데 동생이 말했다. 그건 동생이 어릴 때부터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누나 미안해. 그 말을 듣고 도화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화가 났다. 동생을 저렇게 만들었고, 저런 생각을 들게 한 것에게. 도화는 동생과 눈을 맞추고 자신의 진심을 고스란히 담아 동생에게 말했다.

네가 미안한 일이 아니야.

 

동생이 퇴원을 하고 도화는 교무실에서 선언하듯 말했다. 저 좀 빨리 가야되겠습니다. 선생님들은 그래라, 하며 도화를 보내주었다. 또 교무실에서 소리를 지를까봐 그런 것 같았다. 도화는 매일매일 자신의 동네 어귀 전봇대에 기대서 책을 보고 영단어를 외웠다. 그 새끼를 내 손으로 잡을 거라고 도화는 다짐했다. 단어 세 개 보고 주변 살피기, 숙어 하나 외우고 주변 살피기, 수학 문제 두 개 풀고 주변 살피기를 하다가 혼자 걸어가는 어린 애가 있으면 같이 집까지 가주었다. 아이가 도화를 심하게 경계할 때면 도화는 자신의 교복과 명찰을 보여주었다.

언젠가는 한 아이가 도화에게 물었다.

언니는 안 무서워요?

. 도화는 망설이다 덧붙였다. 난 너만 한 동생이 있어.

 

수능은 다가오고 있었고, 수능 전 마지막 사설 모의고사는 아예 망쳐버렸다. 도화는 다시 몇 번이고 채점표를 다시 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교실에서 비명을 지를 생각도 나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도화를 걱정했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대학은 가야하지 않겠니. 담임선생님이 도화에게 말했다. 대학. 생각을 하자 가슴이 막막해졌다. 바꿔야 하는데, 엄마 아빠의 중국집을 바꿔줘야 하는데. 그리고 또 바꿔야할 게 있는 것 같은데. 도화는 그날 오답노트를 만들다가 지쳐버렸다. 전봇대에는 들리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동생이 문을 열어주었다. 동생은 웃으며 도화에게 물었다. 누나, 호연이 데려다준 적 있어?

호연이가 누군데?

왜 이렇게 머리 묶고 예쁜 애. 걔가 누나가 집에 데려다 줬다고 했다. 고맙다고 해 달랬어.

동생은 자꾸만 웃었다. 아직 머리에 흉터도 다 사라지지 않았는데. 만날 아파 학교에 제대로 나가지 못해서 친구도 없는 동생이, 저렇게 웃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 도화는 생각했다.

내가 바꾸긴 뭘 바꾸냐. 동생 표정이나 바꾸지.

수능 날은 운이라도 좋겠지. 뭐라도 되겠지. 도화는 책 몇 권을 챙겨 전봇대로 나갔다.

도화의 운은 수능 날 보다 삼일 빨리 찾아왔다. 전봇대에서 자꾸만 헷갈리는 수학공식을 외우고 있었다. 누가 도화 앞을 지나갈 것처럼 하다 갑자기 도화의 손목을 잡았다. 도화는 고개를 들었다. 마스크를 낀 남자가 도화의 손목을 잡고 끌었다.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구취가 심했다. 그 남자가 웅얼거리면서 말했다. 꼬마야, 같이 가자.

너구나. 도화는 알 수 있었다. 도화는 들고 있던 책을 바닥에 던졌다. 책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올랐다. 그 남자가 놀라 도화의 손목을 놓았을 때 이번엔 도화가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남자의 주변에서 불꽃이 튀었다. 남자의 옷에도 불이 옮겨 붙었다. 남자가 허우적거리는 꼴을 보자 도화는 웃음이 났다. 짜증도 났다. 화도 났다. , 수험생을 잘못 건드렸어.

나 재수할 거야 개자식아.

도화의 목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삼 일 후에, 도화는 피켓을 든 후배들의 배웅을 받으며 고사실로 올라갔다.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후배들이 외치는 소리가 쩌렁쩌렁했다. 도화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두 번 때렸다. 괜찮아. 후회는 없어. 도화는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마셨다.

하필 그해 수능은 불수능이었다.

 

김우는 담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상성적으로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우를 측은해하는 말투가 짜증났다. 삼촌이 죽은 후로 반항적임, 이라고 중학교 선생이 적어놓은 생활기록부를 본 게 분명했다. 담임은 얼굴에 점이 많았는데 말을 할 때마다 우는 그 점을 싸인펜으로 잇는 걸 상상했다. 그 비호감이 갑자기 확 커진 순간이 있었다. 학기 초에 상담을 할 때였다. 어느 대학 갈 거니, 담임이 물었을 때 우는 그냥 되는대로요, 대답했다. 담임의 얼굴이 묘하게 팽팽히 펴져 점 사이가 멀어졌다. 그게 무슨 책임감 없는 말이야. 우의 얼굴은 묘하게 구겨졌다. 어쩌라고 꼰대야. 우는 속으로 말했다.

그래도 모든 선생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우는 상담실을 좋아했다. 상담실은 은퇴를 앞둔 한문 선생이 지키고 있었다. 항상 음료수가 가득 쌓여있었고, 쉬는 시간마다 찾아가 마셔도 한문 선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 한 번 학생 목을 때렸다가 학부모한테 된통 깨졌다는데 그래서 그런 것 같았다. 한문 선생은 우가 무슨 말을 해도 유유자적이라, 같은 이상한 말만 했다. 그래서 좋았다. 뭘 더 묻거나 가르치려들지 않아서.

선생님 대학을 꼭 가야 할까요 담임이 가라던데, 물어도 한문 선생님은 몰라, 근데 갈 거면 연애는 적당히 해라 집 가까운 대학 가지 말고, 했다.

학교에서 우가 좋아하는 공간은 하나 더 있었는데, 운동장 구석에 있는 연못이었다. 원래는 그 자리에 강당이 있었다고 했다. 근데 그 강당이 무너져 학생 한 명이 죽었다나. 그리고 그 혼을 달래기 위해 연못을 만들었다나. 그런 괴담에 나올 것 같은 소문이 있었다. 그런 소문 때문에 다른 아이들은 연못에 잘 오지 않았지만, 우는 상담실에 가지 않으면 그 연못으로 갔다. 학교 안에 있는 것 치곤 꽤 괜찮은 연못이었다. 물도 맑았고, 뒤로 쭉 늘어선 나무들도 멋있었다. 제일 좋은 건 구석져서 담배를 피우기 좋다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나무 뒤에 숨어 담배를 하나 피우고 교실로 돌아가곤 했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고 싶었다. 거스르지 않고 가면 가는대로, 못 가면 못 가는대로. 장애물이 있으면 애쓰지 않고 돌아가고, 장애물이 없어도 그것에 너무 기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역행하려고 노력해봤자 아무런 소용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적이 있었다.

언제 느꼈는데?

한문 선생이 물었다. 한문 선생과 우 사이에 있는 테이블에는 우의 담배가 올려져 있었다. 여태까지 연못에 아무도 안 왔는데 그것도 하필 한문 선생이. 아니 그리고 언제 이런 주제까지 왔지. 우는 입을 다물었다. 한문 선생은 들고 있던 막대기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탁, 테이블을 내리쳤다. 우는 몸을 움찔했다. 우 앞에 놓여있던 오렌지 주스도 넘칠 듯 일렁거렸다.

너 이름 뜻이 뭐냐.

한문 선생이 뜬금없이 물었다. 우는 벗 우요, 대답했다. 한문 선생은 지갑을 꺼내더니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내 딸도 이 학교 다녔거든. 이름은 이선인데, 원래 이 자가 옮길 이 자였어. 근데 걔 할아버지가 출생신고를 술 마시고 해서, 아무튼 그러니까, 술은 마시지 마라. 그렇다고 담배 피우란 소리는 아니다.

훈계도 오랜만에 하려니까 못 하겠네, 한문 선생은 혼잣말을 하고 우에게 벌로 화단 관리를 하라고 했다. 다음날부터 우는 화단과 교무실의 화분 관리를 하게 되었다. 그냥 물만 주면 되는 거라 어렵지는 않았다. 담임이 네가 그걸 왜 해?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한문 선생은 음료수를 사들고 들어가다 화단에 물을 주는 우를 보면 저수가 참 잘했는데, 추억에 잠긴 듯 중얼거리곤 했다. 우는 저수지가 여기서 왜 나오지, 했다.

 

우는 악몽을 꿨다. 또 그때 그 일이었다. 우는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서랍을 뒤졌지만 담배가 똑 떨어져 있었다. 아 씨, 우는 대충 외투를 걸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담배를 사려고 편의점에 갔는데 늘 있던 아줌마는 없고 웬 젊은 남자가 서있었다. 그 남자는 카운터 뒤에 화분 쪽으로 허리 숙이고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우가 들어오자 벌떡 일어났다. 뭔가 어벙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어서오세요, 남자가 말했다. 우는 평소처럼 말했다. 말보로 아이스 블라스트 하나요.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뒤돌아섰다. 됐다. 우는 슬쩍 미소지었다. 근데 그 남자는 그대로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우 쪽으로 섰다. 그리고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두꺼운 손을 내밀었다. 신분증이요.

, 뭐 하는 새끼야. 우는 생각했지만 티 내지 않았다. 원래 여기서 맨날 샀는데, 원래 아주머니가 항상 계시잖아요, 그래서 두고 나왔는데, 말했지만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우는 신분증 가져 올게요, 하고 편의점을 나섰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별 게 다 안 됐다. 다른 편의점에 가려고 발길을 옮기는데 누가 뒤에서 김우, 하고 불렀다. 뒤 돌아보니 담임이었다. 아 진짜 재수 없네. 우는 입술을 물었다. 담임은 회식을 갔다 왔는지 취해있었다. 옷에서는 고기냄새가 풍겼다. , 여기 살아? 담임이 물었다. 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도 저기 중국집 근처에 살아.

담임은 골목 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화반점이요? 거기 맛없잖아요. 우가 말하자 담임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내가 뭘 잘못했나. 진짜 상성이 안 맞는 담임이었다. 담임은 우를 노려보다가 이렇게 만났으니 뭐라도 사준다며 편의점에 끌고 들어갔다. 우는 당황해 손을 빼려했지만 뭔 힘이 그렇게 센지 풀 수가 없었다.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아까 그 어벙이가 말했다.

신분증 벌써 가져오셨어요?

뭐라 변명도 하기 전에 우는 귀를 잡혀 그대로 끌려 나갔다.

편의점 앞에 놓인 테이블에서 된통 깨졌다. 너 어릴 때부터 담배 피우면 뒤져, 아주 리터럴리 뒤진다고. 담임의 브레이크는 우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아예 풀려버린 것 같았다. 담임의 목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뒤지면 뭐 어때. 우는 이제 빨간 싸인펜으로 점을 잇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편의점 안에서 어벙이는 자꾸 이쪽을 흘끔거렸다. 우는 담배 하나 사려다 이게 뭔 꼴인지 짜증만 솟구쳤다.

한 삼십분을 따발따발 떠들던 담임이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목소리를 줄였다. 얼굴의 붉은 기운도 많이 사라져있었다.

너 한문 선생님한테도 걸렸다며. 한문 선생님한테도 뭐, 대충 살고 싶다고 했다며. 왜 그러는 거야.

우는 이를 물었다. 그걸 말하다니. 한문 선생에 대한 배신감으로 몸이 떨렸다. 담임은 여전히 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약간 풀어진 표정이었다. 우가 제일 싫어하는 표정. 며칠 굶은 개새끼를 쳐다보는 표정이었다.

널 보면 내 동생이 생각나. 널 갉아먹지 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러는 거야.

우는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중학교에 들어와서 처음 맞은 여름방학 때 아빠, 삼촌과 우는 계곡으로 놀러갔다. 재밌었다.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구워먹고 튜브를 타고. 계곡에서 하룻밤 자고 갈 계획이었다. 그때까진. 해 질 무렵부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빠와 삼촌이 돌아다니며 텐트를 점검했다. 비가 온다는 말이 없었는데. 금방 그치겠지. 아빠와 삼촌이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우는 텐트에 누워 비를 멈춰보려고 했지만 그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나이를 더 먹고 세지면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깜빡 잠들었다. 누가 다급히 우를 흔들어 깨웠을 땐 텐트 안까지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텐트를 접고 건너편으로 건너가야 했다. 물은 이미 잔뜩 불어나 있었다. 맑은 물은 온데간데없고 흙탕물이 계곡 상류에서부터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먼저 아빠가 건너고 삼촌이 계곡 한가운데 서서 우를 받아 건넸다. 삼촌이 우를 안고 아빠에게 건넬 때 말했다. , 너 많이 무거워졌다. 거기에 대답하려고 뒤를 쳐다봤을 땐 삼촌이 없었다. 아빠가 우를 내려놓고 하류로 뛰어갔다. 우도 뒤를 따라 달려갔다. 우는 외쳤다. 멈춰. 물은 멈추지 않았다. 너무 많은 물이 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제발 멈춰. 우는 간절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더 뛸 수 없을 때까지 달리며 제발 멈춰달라고 빌었다. 결국 삼촌은 찾을 수 없었다.

그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고 물속에 들어가 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종이배처럼 둥둥, 떠가고 싶었다. 이제 가 볼게요. 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임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너 벌로 운동장 청소 시킬 거야.

그러시던가. 우는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쌀쌀해지는 저녁시간에 우는 운동장을 돌며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벌써 이 개월 째였다. 아마 우가 고등학교 들어와서 주운 쓰레기만 모아도 운동장을 가득 채울 것이다. 우는 저녁시간이 끝날 때쯤 연못 근처까지 왔다. 거기서 집게와 포대자루를 던져놓고 담배를 하나 물었다. 막 불을 붙이려고 할 때, 발소리가 들렸다. 우는 물고 있던 담배를 담장 너머로 던졌다. 담배가 아까워 죽겠지만 간신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소리가 난 쪽을 봤다. 거기엔 처음 보는 사람이 서있었다. 뭔가를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씻지 않은 듯 냄새가 심했다. 뭐지, 누구지, 우는 그 남자를 쳐다봤다. 기름통을 양손에 들고 있었다. 남자는 우와 눈이 마주치자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꼬마야.

네 선배를 원망해라.

그리고 학교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뭐야. 우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수상해 보이는 뒷모습을. 하지만 곧 고개를 돌리고 담배를 다시 꺼냈다. 담배를 피우며 설마, 하는 감정을 죽여 나갔다.

우가 막 두 개비 째의 담배꽁초를 버렸을 때였다. 비명소리가 학교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 직후 사층 끝 교실 창문에서 무언가 붉게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명, 우는 못 박힌 듯 서서 그걸 바라보았다. 비명소리는 점점 뚜렷해졌다.

불이야.

붉은 기운이 삼층에서도, 이층에서도 일어났다. 아이들과 선생 몇몇이 일층에서 뛰어나왔다. 우는 학교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연못의 물을 최대한 끌어왔다. 우가 끌어온 물은 얼마 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능력을 쓰지 않아서인지도 몰랐다. 안 돼, 우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창가 쪽으로 건물에서 나오지 못한 아이들이 몰렸다. 아이들이 그림자처럼 일렁거렸다. 우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은 연기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우는 가져온 물을 불이 보이는 곳에 뿌렸다. 그럴 때마다 불은 잠깐 사그라질 뿐, 금방 기세를 되찾았다. 복도 하나의 불도 끄지 못한 채 우는 연못에서 끌어온 물을 다 썼다. 숨이 턱 막히고 눈물이 나왔다. 우는 불이 번지는 복도에 서서 울었다. 나 때문이야. 이번에도.

그 때 누군가 계단에서 내려왔다. 담임이었다. 담임은 기절한 애 두 명을 업고 있었다. 담임은 우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뭐해, 빨리 나가. 담임은 우까지 잡고 건물 밖으로 달렸다. 우는 담임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그랬어요. 담임이 우를 보며 대답했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선생님이 책임질게.

담임은 아이들과 우를 건물밖에 던져놓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가지마세요, 우가 소리쳤지만 담임은 이미 연기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우는 눈물을 닦고 주변을 살폈다. 아직 창가엔 아이들이 있었다. 뛰어내리는 아이들을 받기 위해 몇몇의 아이들과 선생들이 건물 아래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누군가는 소화기를 뿌리고, 누군가는 안으로 들어가려는 아이들을 붙잡고 말렸다. 다 살릴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우는 너무나도 보잘 것 없었다. 자신의 무력함에 욕지기가 나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 혼자서는.

우는 다시 연못 쪽으로 달렸다. 뭐라도 해야 했다. 막 운동장 한가운데를 지날 때 우의 옆을 지나 달려가는 두 사람이 있었다.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 둘 다 학생이나 선생은 아니었다. 우는 눈물을 훔치며 그 사람들을 바라봤다.

왠지 낯이 익은 사람들이었다.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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