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인생서점

2020.09.16 11:2509.16

8월 밤의 소낙비는 짙었다.

감시읍(甘試邑)은 그물 조끼에 묻은 빗방울을 털어내며 걸음을 바삐 옮겼다. 왜 어제도 오늘도 비가 내리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내일도 내리지 않을까? 장마철은 분명 지난달에 지났다고 하지 않았나. 그가 아침에 휴대전화로 검색해본 – 그의 집엔 TV가 없었다 – ‘의정부 날씨’에 비구름은 없었다. 아니, 있었나? 감시읍은 퇴근길에 비를 맞아 불쾌해진 머리로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으나 수고에 응하는 답이 없자 그만두었다. 애초에 이렇게 흠뻑 젖은 이유는 감시읍, 바로 본인이 저녁 운동을 핑계로 퇴근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제 탓이라고 생각하니 찝찝했다. 과연 걷는다고 칼로리가 얼마나 소모될까. 근육은 생기긴 할까?

7월을 마지막으로 폐업한 롯데마트를 지나 이미 한참 걸어온 참이었다. 이따금 보도 한가운데에 도사린 웅덩이를 가로등 불빛으로 피해가며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편의점 하나가 나온다. 싸구려 비닐우산이라도 사자고 그는 생각했다. 돈이 아깝지만, 마침 그는 최근에 하나 있던 우산을 잃어버린 참이었으니까. 아마 어느 가게 우산꽂이에 꽂혀 있을 것이다. 보라색 접이식 우산이었다. 꼭 지금 눈앞에 보이는 서점 우산꽂이에 얌전히 꽂힌 저것처럼…

저거네.

감시읍은 쾌재를 불렀다. 우산값 삼천 원이 굳은 것이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서점 쪽으로 다가갔다. ‘인생서점’이라는 어찌 보면 거창하고 어찌 보면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이 좋아할 듯한 이름의 서점에, 감시읍은 지난번 방문했었다. 비가 그치고 갠 날이었을 것이다.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옆구리에 끼고 퇴근하다가 서점 구경을 하러 들어간 참에 우산꽂이를 써먹었을 것이고, 그대로 잊고 집으로 돌아갔으리라.

별안간 그는 주춤했다. 잠깐, 그런데 지금은 밤 열 시가 넘지 않았나? 왜 서점이 영업 중이지?

감시읍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가 인생서점을 처음 방문한 날도 늦은 밤이긴 했을 것이다. 퇴근길이었으니까. 그날 잠깐 서점 주인과 대화도 나누었는데. ‘되게 늦게까지 영업하시네요.’라고 그가 건넨 말에 서점 주인은 ‘7월부터 8월까지, 매주 금요일 밤엔 늦게까지 서점을 열어요. 하다가 반응이 괜찮으면 쭉 밤에도 열 수도 있겠네요.’라고 답했지.

그럼 그 날은 금요일 밤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금요일이 아니지 않은가. 감시읍은 휴대전화로 날짜를 확인했다. 목요일이었다.

그는 빗물로 어룽진 안경을 벗으며 눈을 깜작였다. 왜지?

뭔가 석연찮았으나 또 다른 무언가가 그의 등을 떠밀었다. 지금 앞뒤 가릴 때야? 얼른 저 서점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우산을 꺼내 와.

감시읍은 홀린 듯이 걸어가며 괜스레 서점 밖을 두리번거렸다. 옆집이 부동산이었고, 버스 정류장이 근처에 있었으며 가로수로 심긴 은행나무 두어 그루가 서점 안을 엿보고 있었다.

‘인생서점’이라고 쓰인 둥글고 푸른 조명 간판이 유리 벽에 붙어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유리 벽 너머로 들여다보니 기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보였고, 그는 안심했다. 뭐야, 다른 사람들도 있네.

그렇게 그는 문을 열었고, 그 순간 암흑이 쏟아졌다.

 

 

첫 번째 모임에서.

촛불이 밝혀졌을 때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감시읍은 거의 어둠에 익사하기 직전이었으니까. 그러나 일렁이는 빛 속에서 펼쳐진 풍경은 그를 더욱 얼어붙게 했다.

막막할 만치 검은 것이 감시읍을 응시하고 있었다.

먹빛보다 검었다. 한밤중에 그늘을 드리운 나무 아래를 지날 때의 어둠이었다. 촛불이 옅게나마 빛을 비추었으나 ‘검은 것’에겐 빛 한 점 묻지 않았다.

감시읍은 눈을 깜박여보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않고서야 오밤중에도 어지러이 길을 밝히는 간판으로 가득한 이런 세상에 이토록 검은 것이 있으랴. 심지어 살아있지 않은가. 비록 사람처럼 눈알과 치아 가득한 입을 보이진 않았으나, 감시읍은 그것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감시읍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가 서점 밖에서 들여다봤던 사람들은 감시읍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푸석푸석해 보이는 누런 살가죽 구멍에 끼인, 생기도 없고 실핏줄은 터져버린 눈들이 테이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마른 침을 삼켰다. 뭘까, 이 기분. 뱀굴에 떨어진 한 마리 생쥐는 이런 기분일지도 몰랐다. 본능이 비명을 질러댔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때, 검은 것이 말했다.

“왔나? 앉게.”

그 말이 바위처럼 떨어져 감시읍의 본능을 깔아뭉갰다. 죽지는 않았으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그는 빈 의자를 발견했고, 거기에 앉았다.

도망가겠다는 의지는 아직 살아는 있었으나 빈사 상태였다.

검은 것이 다시 말했다.

“새로 온 자가 있나?”

쉬다 못해 상한 목소리가 대꾸했다. 감시읍의 옆에 있던, 눈 밑이 검은 노인이었다.

“청목영, 당신 눈이 옹이구멍 다 됐군. 새로 온 젊은이가 있지 않나.”

그러자 생기 없는 여덟 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감시읍을 바라보았다. ‘젊은이’는 숨이 막혔다. 뭐라 받아쳐야 한단 생각이 들었으나, 등가죽에 소름만 돋을 뿐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라곤 한 마디도 없었다.

옆의 노인이 감시읍을 의아한 낯으로 바라보았다.

“여기 끼기엔 너무 젊은데. 혈색도 좋고. 자살이라도 했나?”

얼빠진 감시읍이 입을 소리 없이 벙긋거렸다. 자살이라고? 무슨 소리야.

다행히 파리한 낯의 여자가 한마디 거들었다.

“열 번째로 들어온 이인가 보네. 젊을 수도 있지, 놔둬. 왜 남의 죽은 얘길 들춰내려고 해? 처음부터 들볶으면 도망가서 다음엔 안 온다니까.”

검은 것, 청목영도 수긍했다.

“그래. 그럼, 처음 온 이에게 내 소개부터 하지. 나는 낮에 이 책방 안으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은행나무일세. 밤엔 푸른 간판의 빛을 받아 내 그림자 언저리가 푸르게 빛나지. 그래서 청목영(靑木影)이라네.”

다른 여덟도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했다. 제 차례가 되자, 감시읍은 젖은 손바닥을 바지에 비비며 겨우 말했다.

“감시읍이라고 합니다.”

청목영이 일렁였다.

“시읍이라니, 시험이 치러지는 고을이란 뜻 아닌가? 자넨 시험당할 운명인가 보군.”

감시읍은 당황했다. 제 이름의 뜻을 단번에 알아챈 이는 두 번째로, 첫 번째는 대학 시절 사학과 교수였다. 그 교수, 감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내력과 시읍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얘기하느라 학생들 쉬는 시간을 다 잡아먹었지.

대학 시절을 떠올리자 당황은 익숙한 피곤함으로 바뀌었고, 감시읍은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이게 다 뭘까 했는데 꿈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청목영은 나무 그림자이고, 옆의 사람들은 귀신이라 이거지? 서점 유리 벽 바깥쪽에 ‘지역 소모임을 가질 분들은 언제나 환영’이란 쪽지가 붙어있긴 했지만, 설마 이 밤 중에? 그것도 귀신들? 좋다, 좋아. 꿈이면 그냥 흘러가게 놔두자. 꿈에선 언젠가 깨어나기 마련이다.

감시읍에게서 관심을 거둔 청목영은 이내 여덟 명의 귀신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감시읍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부묵자(副默子)의 이야기는 음탕해. 나름의 교훈을 덧붙인다고는 하지만, 이런 남녀가 합석한 자리에서 꺼낼 수 있는 이야기들은 아니지.”

일동이 왁-하고 웃었다. 감시읍은 더는 축축하지 않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방금 그건 농담이었나?

“요즘 작가 얘길 하세. 제성(諸星)의 그림은 거칠지만 나름대로 보는 이를 끌리게 하지. 그리고 그의 고전 재해석 능력은 탁월하다고 볼 수 있어.”

그림이라니? 감시읍은 미간을 좁혔다. 귀신들도 그림책을 읽나.

“나는 지충(志忠)의 이야기가 더 좋아. 사람을 웃게 하거든. 요즘 일에도 밝고 말이야.”

“이 사람아, 자네의 ‘요즘 일’은 적어도 수십 년 전일세.”

그로선 더 알아듣기 힘든 일이었다. 아마도 청목영과 귀신들이 입에 올린 이들은 옛날 사람인 것 같았다.

이런 한담이 끝도 없이 이어지다 마침내 끝이 났을 무렵, 청목영이 말했다.

“자넨 말이 너무 없더군. 다음 모임은 일주일 후일세. 참석하지 않거나, 또 이렇게 과묵하게 굴면 혀가 잘릴 거야.”

귀신들이 낄낄거렸다. 감시읍은 번쩍 정신이 들어 청목영을 보았으나, 청목영은 그저 일렁일 뿐이었다. …웃는 건가? 방금 그거 농담이었어?

촛불이 꺼졌다. 청목영이 말했다.

“끝났네.”

그리고 나무 그림자는 서서히 옅어지더니 사라졌다.

감시읍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다들 나간 건지 아무도 없었다. 더는 아무도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인생서점 밖으로 나온 감시읍은 멍하니 길에 서서 제 손을 꿈지럭거리다가 아, 하고 외쳤다.

그러고 보니 우산, 안 갖고 나온 것이다.

서점을 돌아보자, 유리 벽 너머로 보랏빛 우산이 우산꽂이에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귀신들로 가득 찼던 서점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차마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비도 그쳤고, 더는 지붕 아래 머물 이유가 없었다.

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감시읍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슴푸레하게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 후 일주일간 감시읍이 어떻게 지냈냐 하면,

금요일 : 아침 출근길엔 아직 열리지 않은 인생서점을 긴가민가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괜히 서점 앞 은행나무를 노려보며 발로 차볼까 고민하던 그를 수상쩍다 여긴 행인이 그의 뒤에서 인기척을 냈을 땐 화들짝 놀라 도로 걸음을 떼어냈다.

토요일 : 그는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는다. 집에서 혼자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놀던 그는 아주 잠깐 인생서점에서의 기이한 경험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편의점에 갔고, 맥주와 안줏거리를 한 아름 사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엔 실컷 퍼마셨다.

일요일 : 숙취로 날려버린 하루였다.

월요일 : 괴롭게도 한 주일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는 출근하며 인생서점을 흘겨보곤 고개를 저었다. 밤에는 버스로 퇴근했다. 해 떨어진 시간에 집까지 걷는 운동조차 귀찮았던 차에 귀신은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준 셈이었다.

화요일 : 그는 오래간만에 6시 전 일찍 퇴근하며 인생서점에 들렀다. 나무 그림자도 없었고, 귀신들도 없었다. 대신 그가 기억하고 있는 단발머리의 주인 여자가 그에게 눈인사를 건네곤 계속 책을 읽었다. 그는 괜스레 긴 테이블을 쓰다듬어보고, 청목영이 앉아있던 자리를 어슬렁거리고, 시선을 끄는 제목의 책을 꺼내 뒤적여보고, 아래 칸의 중고 서적도 꺼내 들춰보았다. 그러다 ‘조선해학 파수록’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작가 이름에 ‘부묵자’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입을 내밀고 이맛살을 찌푸리다 제가 어디서 ‘부묵자’라는 이름을 들어봤는지 기억해냈다. 그는 값을 치르고 서점을 나왔다. 책은 아주 쌌다. 삼천 원도 안 했으니까.

수요일 : 일하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그는 ‘조선해학 파수록’을 읽었다. 동료들이 우와, 시읍씨 뭐해? 고전문학 읽어? 하고 알은체를 했다. 그는 어설프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 눈엔 그렇게 보였다니 다행이었다. 책장을 조금만 넘겨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냥… 조선시대판 음란 서적이라는걸. ‘켄터베리 이야기’와 같은 부류였고, 술술 읽혔다. 집에 돌아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그의 품 안으로 은행잎 한 장이 팔랑이며 떨어졌다. 연둣빛 한 귀퉁이가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보다가 그는 침을 삼켰다. 어쩐지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느낌이었지만…

그 외엔 아무렇지 않았다.

목요일 낮, 감시읍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잇새로 씹히는 쌀알의 단맛과 짭조름한 된장국 국물을 음미하다 고개를 들자, 물방울 몇 개가 유리창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비가 오고 있었다. 출근할 때만 해도 맑았던 하늘이었는데. 오늘도 그는 우산이 없었다. 다시 인생서점에 두고 온 보랏빛 우산이 생각났다.

망할 우산, 그냥 하나 사 버려. 감시읍은 그렇게 생각하며 열무김치를 씹다가 입안 살을 깨물 뻔했다.

밤이 되자 그는 107번을 타고 퇴근길에 올랐다. 비에 젖은 우산을 개켜 좋아하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자 졸음이 밀려들었다. 도착하려면 20분도 안 남았는데 여기서 자면 분명 이대로 종점까지 떠밀려갈 것이 뻔했으므로, 감시읍은 눈을 부릅뜨고 잠을 참는 중이었다.

그때 혀가 미친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정확히는 비명을 지르려 하며 안전바를 붙들었다. 벌린 입 사이로 주르륵 무언가 흘러내리더니 마스크를 적시곤 바닥으로 떨어졌다. 입안에 쇠 맛이 나는 액체가 잔뜩 들어찼다.

사람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자넨 말이 너무 없더군.’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학생 둘이 감시읍을 대신해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아저씨, 이거 뭐예요. 코로나 아니야?”

“야이씨, 병원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저씨, 괜찮아요?”

그는 대답 대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안전바를 쥔 손에 힘을 준 채, 버스 바깥 풍경에 눈길을 주었다. 병원조차 닫은 시간이었다. 성모 병원 응급실이라면 아직 열려있겠지만, 거기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혀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아니, 정말 찢어지고 있었다. 마치 혀를 사이에 끼운 두 개의 보이지 않는 가위 날이 서서히 맞물리는 것 같았다.

‘다음 모임은 일주일 후일세.’

창밖 풍경을 보니 마악 인생서점을 지나친 참이었다. 그는 핏물을 한 모금 삼키곤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곤 하차 벨을 눌렀다.

‘참석하지 않거나, 또 이렇게 과묵하게 굴면 혀가 잘릴 거야.’

버스는 낙양물사랑공원 정거장에서 멈춰섰고, 그는 튕기듯이 뛰어내려 달음박질쳤다. 그는 이 아픔, 이 기묘한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답은 하나였다. 그리고 아주 가까웠다.

 

 

두 번째 모임에서.

유리문 상단에 달린 금속 종이 쨍-하고 울었다.

은행나무 그림자, 그리고 귀신들이 그를 바라보았을 때, 감시읍은 찢겨 나가는 통증이 사그라든 것을 느꼈다. 그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이 자들은 대체 그에게 얼마만큼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걸까? 혀 다음은 뭘까, 손가락 하나?

청목영이 위엄있게 말했다.

“앉게.”

감시읍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빈 의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앉았다. 너무 털퍼덕 앉은 탓인지 엉치뼈가 아팠다.

토론이 시작되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감시읍이었다. 이번엔 작정하고 수다를 떨 생각이었다.

“최근에 읽었다고 하기엔 뭣합니다만, 만화책 ‘식객’을 읽다 보면 배가 고파지지 않나요?”

그는 제가 ‘절대 배고플 리 없는 이들의 모임’에 있단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귀신들이 고개를 젓거나 갸우뚱하게 기울이는 것을 보았으나 감시읍은 눈치채지 못했다. 또다시 혀가 잘릴 위협에 놓이지만 않는다면야 아무래도 좋단 생각에 그만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저는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그 만화책을 본 날, 경전철 타고 부대찌개 거리까지 찾아가서…”

귀신 하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가서, 뭘 했는데?”

청목영이 기이한 소리를 냈다. 나뭇잎 덮인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였다. 감시읍은 바짓자락을 움켜쥐었다. 청목영, 그는 분명 그림자일 터인데도… 아니, 그보단 청목영이 낸 소리의 의미가 중요했고, 분명했다. 감시읍이 실수했단 뜻이리라.

“왜 그러나, 청목영. 산 사람의 냄새라도 맡았나?”

귀신들이 문드러진 코로 킁킁댔으나, 그들은 냄새를 맡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청목영이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코도 썩 좋지 않아서 말이지. 그러나 흐릿하지만, 있어. 산 것의 냄새.”

귀신들의 시선이 감시읍에게 쏠렸다.

누군가가 적의 띤 목소리로 재촉했다.

“계속 말해 봐. 찾아가서, 뭘 어쨌다고?”

감시읍은 제가 호흡을 참고 있었음을 깨닫곤 천천히, 숨을 뱉어냈다. 그리고 들이마셨다. 냄새라고? 하, 들킬 거였다면 진작에 들켰을 것이다. 숨을 참다니 얼간이 같은 짓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그만큼 절박했고, 두려웠다. 이들은 그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치들이었다.

얘기해.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얘기하라고. 이야기하는 동안 청목영과 귀신들은 나에게 고통을 주지 않아. 내가 모임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한, 그들은 나를 괴롭히지 않아.

이 생각을 떠올리자 감시읍의 머리는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다. 귀신들 몇이 히죽거리며 그를 힐금거렸다.

“산 인간이면 찢어버리지, 우린.”

“그래, 조각조각 내버려.”

“그리고 씹어 삼키거든.”

놀랍게도 청목영이 감시읍을 거들었다.

“그만, 아직 저 젊은이가 살아 있단 확증은 없지 않나. 이야기를 마저 듣지.”

감시읍은 전혀 피 맛이 느껴지지 않는 입안에서 잘 돌아가는 혀를 낼름거리며 말을 마저 이었다.

“찾아가서 냄새만 맡다 돌아왔지요, 뭐.”

실망한 귀신들이 탄식했다.

“시시하군. 젊은이, 재밌는 이야기는 할 줄 몰라?”

“아니, 하려던 얘기가 정말 그게 다인가? 사실 자넨 산 인간이고, 음식을 먹고 돌아온 것이 아니란 말이지?”

귀신 하나가 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감시읍을 노려보고 있었다. 충혈된 샛노란 눈이 튀어나올 같았다.

“살아있는 인간이라면야 밥이고 국이고 다 먹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제사상 음식 냄새나 맡을 수 있을 뿐이야. 고기가 뜯고 싶을 땐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의 무덤을 파헤치거나 차에 치인 동물들을 줍는 신세라고. 자네가 산목숨이라면 죽여버리겠어.”

누군가가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렸다.

“모처럼 포식하겠는데. 어때, 청목영. 긴장한 산목숨의 식은땀 냄새를 맡을 수 있나?”

그때 서점 한구석에서 찍, 하고 날카로운 단말마가 울렸다.

청목영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이제는 아닐세.”

귀신 하나가 벌떡 일어나 소리가 난 곳으로 걸어갔다. 허리를 굽히곤 뭔가 찾는 듯이 바닥에 손을 대곤 더듬더니, 이윽고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찾았다!”

허공에 의기양양하게 들린 귀신의 손으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꼬리가 잡힌 쥐 한 마리였다. 죽어있었다.

귀신이 입을 크게 벌리곤 쥐를 제 입으로 가져가려 할 때였다. 감시읍은 눈을 질끈 감았으나 귀까진 막지 못했고, 귀신들이 쥐에 달려들어 소란을 일으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내가 주웠으니까 내 거야!”

“웃기지 마, 자네가 이 서점 주인이라도 되나?”

누군가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렸다.

“잠깐, 쥐를 죽인 건 청목영이잖아. 그가 결정하게 하세.”

소란이 잦아들자, 청목영의 검은 그림자가 모닥불처럼 떨렸다.

“오늘 모임에서 제일 말을 많이 한 사람에게 상으로 주는 건 어떤가?”

그러자 다들 한 마디씩 꺼내느라 테이블은 다시 어수선해졌다.

“그거 좋지, 공평하군.”

“역시 청목영은 언제나 옳아.”

귀신 하나가 여전히 의심스럽단 눈으로 감시읍을 쳐다보았다.

“저 젊은이는 정말 산목숨이 아니란 말이지? 청목영, 정말로 이젠 냄새가 나지 않나? 이건 어때, 저 젊은이가 쥐를 먹을 수 있나 보자고. 먹을 수 있다면 우리와 동류인 게지만,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누군가가 외쳤다.

“그만해, 자넨 한 번에 말을 너무 많이 하는군.”

“역시 쥐 고기가 탐나는 게지.”

감시읍은 젖은 손바닥으로 의자를 움켜쥐곤 억지로 웃어 보였다.

“저는 오는 길에 죽은 참새 한 마리를 먹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쥐 고기 경쟁에서 저는 빼셔도 된단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그 말에 귀신 하나가 언제 살기등등했었냐는 듯 감시읍을 칭찬했다.

“아귀 같은 자네보다 저 젊은이가 낫군.”

“흥, 그냥 배부르니 마다한 것일 뿐이잖나.”

감시읍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윽고 그의 안에서 불안이 도로 고개를 내밀었다.

말을 적게 하면 혀를 자르고, 말을 많이 하면 죽은 쥐를 먹인다니.

그는 서점 안을 둘러보며 마음을 가라앉히려다 청목영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지독할 만치 검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감시읍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 뒤로 저번과 같이 옛 책 이야기를 하다가 모임이 어찌어찌 끝났을 때, 감시읍은 살아있는 상태로 서점을 나올 수는 있었으나 이미 귀신 하나가 쥐를 씹어먹는 꼴을 본 후였다.

텅 빈 서점 밖으로 빠져나온 그는 유리 문의 손잡이를 잡곤 흔들어 보았다. 문은 잠겨있었고, 손잡이를 쥔 그의 손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감시읍은 더 참지 못하고 풀밭에다 토하고 말았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지?

 

 

주말에 그는 집에서 인터넷으로 ‘가로수’와 ‘훼손’ 그리고 ‘벌금’을 검색했다. 5만 원에서 3천만 원, 3년 이하 징역까지 다양한 결과가 나왔고, 머리가 식은 감시읍은 과연 은행나무 한 그루 베는 데에 그만한 모험을 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벌금형으로 끝난다 해도 인심 좋은 형사를 만나지 않는 한 얼마나 벌금을 물게 될지 알 수 없었다. 3천만 원이면 감시읍의 연봉보다도 많은 돈이었다.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또 의심스러웠다. 나무를 벤다고 한들 정말 청목영이 사라질까? 나무가 서 있으니 그림자가 생기는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해를 끼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임에 불구하고 서점에선 매주 목요일 밤에 귀신들이 독서회를 갖지 않는가. 그리고 그를 찢어 죽이겠다 위협하기도 했고. 감시읍은 그날 밤 느낀 살기를 똑똑히 떠올렸다. 귀신들은 청목영의 허락만 있었다면 그를 죽였을 터였다.

잠깐, 그는 무언가 깨달았다.

청목영은 감시읍을 죽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 어째서일까?

감시읍은 생각했다. 청목영은 내가 산목숨인 걸 눈치챈 것 같았다. 그런데 왜지? 왜 내 편을 들었고, 왜 굳이 번거롭게 쥐를 죽여가며 나를 살렸지?

또, 청목영의 정체에 관해서도 의구심이 생겼다. 가로수로 심긴 은행나무라고 해봤자 수십 년이 안 될 것이다. 어떻게 그는 감시읍의 이름의 유래를 단번에 알아차린 걸까? 마치 조선 시대에 살아봤다는 듯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감시읍은 어떤 가설을 떠올렸고 다음 날 대낮에 인생서점을 찾았다.

“사고 싶은데, 괜찮으시다면 팔아주세요. 아니, 괜찮지 않으셔도 팔아주세요.”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주인 여자가 난처한 낯으로 이마를 짚었으나, 물러날 생각이 없었던 감시읍은 진득하게 설득했다.

“1.5배, 어떤가요?”

주인 여자는 고심하다가 내뱉었다.

“2배.”

“좋습니다. 계좌 주시면 바로 입금할게요.”

휴대전화로 전송된 문자 알림을 본 주인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했어요.”

 

 

세 번째 모임에서.

독서회의 마무리 시간은 정당한 권리를 가진 불청객에 의해 깨져버리고 말았다.

“이게 뭐야. 어떻게 들어왔어요, 다들? 그리고 저건 뭐예요?”

서점 주인 여자가 손가락으로 청목영을 가리키자, 검은 나무 그림자가 한 차례 일렁였다. 웃음일까, 동요일까, 분노일까? 감시읍으로선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셋 다일지도 몰랐다.

청목영이 말했다.

“자네로군.”

감시읍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나무 그림자가 한 차례 거칠게 펄럭이자,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던 여덟 명의 귀신이 일제히 엎어졌다. 핏줄이 터진 눈, 누런 피부가 빠르게 변화하더니 점차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모두 정신을 잃은 듯, 눈은 감겼고 입은 멍하니 벌어져 있었다.

“어떻게 한 건가?”

청목영이 물었다. 감시읍은 그의 목소리가 시무룩하단 인상을 받았으나,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내곤 입을 열었다.

“당신과 다른 이들이 밤의 서점에 모이는 이유를 생각해봤죠. 맨 처음 떠올린 가설은 아이들이라도 떠올릴 수 있을 법한 것이었어요. 귀신은 밤에 강해지니까, 이 독서회는 밤에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청목영은 말이 없었다. 감시읍은 말을 이어갔다.

“그 가설은 기각됐어요. 일단, 청목영 당신은 내 혀에 긴 시간이 필요한 저주를 걸 정도로 충분히 강하죠. 그리고 여러분이 벌이는 일이라고 해봤자 고작 독서회인데, 그걸 위해 밤에 더 강해질 필요까진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다른 가설을 생각해봤습니다. 이 독서회가 밤이라 폐점한 인생서점에서 이루어지는 이유는…”

감시읍은 잠시 숨을 고르고 결론을 내놓았다.

“무허가 모임이라 그렇죠. 아닌가요?”

청목영이 일렁였다. 이번엔 감시읍도 알 수 있었다. 방금 그건 웃음이라고.

그는 계속했다.

“인생서점 밖엔 이런 쪽지가 붙어있죠. ‘지역 모임을 위한 장소를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뭐 이런 내용이었나요? 그렇지만 귀신을 환영한단 얘긴 쓰여있지 않았고, 더군다나 대여비를 낼 돈이 없는 귀신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겠죠.”

주인 여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거야…귀신이 서점에 몰래 들어와 독서회를 갖는단 발상은 평범한 사람이면 못 하지 않아요?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요.”

주인 여자가 너무나 태연한 얼굴로 그렇게 내뱉었기에, 감시읍과 청목영은 저도 모르게 그쪽을 돌아보았다. 감시읍은 생각했다. 한밤중에 자기 서점에 귀신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방금 알게 된 사람이 이렇게 태연할 수가 있나? 본인을 정말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마침 청목영도 주인 여자에게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저 인간을 불러온 건가?”

감시읍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허가 독서회를 끝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이 장소에 대해 정당한 권리를 가진 주인을 불러오는 것 아니겠어요? 시급의 두 배를 주곤 저 사람의 시간을 샀어요. 제발 부탁이니 한밤중에 잠깐만 서점으로 나와주면 안 되겠냐고 했죠. 저를 미친놈 보듯이 봤지만, 그래도 부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주인 여자 쪽으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주인 여자는 “아, 네.”라고 하더니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주었다.

역시 보통 대담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감시읍이 물었다.

“그리고 말인데요, 푸른 빛을 업은 은행나무의 그림자라는 본인 소개는 역시…거짓말이죠?”

청목영이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감시읍이 망설이다가 대꾸했다.

“은행나무 가로수, 고작해야 수십 년이나 살았을까요? 그런데 당신은 처음부터 제 이름의 뜻을 안다고 했죠. ‘시험이 치러지는 고을’이라고요. 이 이름의 뜻을 알아차린 분들은 제 인생에서 딱 둘이었는데, 한 분은 역사학과 교수였죠. 당신이 은행나무 중 역사학과 교수 비슷한 지위라서 제 이름의 뜻을 아는 것은 아닐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당신이 조선 시대에 살았던 경험이 있을 거라고 추측한 겁니다. 어차피 당신은 산 사람의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는 이가 아닐 테니 무리한 가설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청목영이 일렁이다가 말했다.

“보기보단 머리가 좋군. 추리 소설을 좋아하나?”

감시읍이 애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중학생 때 셜록홈즈 전집을 섭렵한 것은 벌써 이십 년도 더 전의 일이었고, 이젠 휴일에 휴대전화로 명탐정 코난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것이 다였다.

“맞췄네.”

불이 꺼진 서점, 청목영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양반의 자식이었지. 글줄 좀 꿰었으나 서자였으니 벼슬길은 막혀있다시피 했어. 한창 혈기 왕성할 나이에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나는 산속에 숨어 들어가 도적질을 하며 산을 오르내리는 선비들을 죽이는 것으로 낙을 삼았네. 죽기 직전까지 내 수족처럼 움직인 친구이자 부하인 이들이 여덟이었지. 나는 그들이 나에게 존대하지 않도록 했고, 나를 이름으로 부르게 했네. 아버지를 대감마님이라고 불러야 했던 입장에서 사람 간의 격이라는 게 크게 달갑지 않았거든.”

감시읍이 망설이다가 물었다.

“어떻게 죽었죠?”

청목영이 대꾸했다.

“내 아버지, 나를 수치스럽게 여긴 대감마님께서 관아의 도움을 받아 손을 썼지. 여덟은 죽고 나는 생포됐으나 그 날 밤 대감댁 은행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었네. 죽은 후 나는 은행나무에 깃들 수 있는 귀신이 되었지.”

그 이야기를 듣자 감시읍은 불편해졌다. 무서운 이야기를 보고 싶어서 펼친 공포 소설에서 인간들에게 환멸이 생겨나는 대목을 읽은 기분이랄까, 오싹한 한편으론 슬펐다.

그러나 죽은 일 자체는 너무나 오래전 일이기 때문일까, 정작 청목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내 부하들은 은행나무에 깃들 수 있는 능력은 없었으나 원념으로나마 남아 내 주변을 맴돌며 수백 년간 나와 함께 했네. 그 세월 동안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 처음은 내 원한, 다음은 참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죽어서도 끊지 못한 욕망에 관하여.”

“어떤 욕망이었나요?”

청목영이 중얼거렸다.

“양반들처럼, 내 아버지처럼 나와 내 벗인 여덟 명이 산속에 숨지 않고 쾌적한 공간에 한데 둘러앉아 옛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 나는 무수히 많은 은행나무에 깃들었고, 아주 가끔 서점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은행나무에 들어갈 수 있었네. 침입을 허락받지 않은 내가 서점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나무의 그림자가 되는 것이었고, 나는 그렇게 해서…”

감시읍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서점 안에 들어와 독서회를 열어왔던 거군요.”

그리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쓰러진 여덟 명의 사람들은 어느새 혈색을 되찾은 상태였다…여전히 잠들어있었지만.

“당신의 부하이자 친구인 여덟 귀신이 이 사람들에게 빙의한 이유는요?”

청목영의 답은 간단했다.

“내 친구들에게도 책장을 넘길 손가락이 필요했으니까. 나는 오랜 세월 은행나무의 혼과 결합하며 빙의 없이도 충분할 만큼 강해졌지만, 벗들은 그렇지 못했으므로. 여덟 명의 인간은 이 서점 근처에서 무작위로 선발했네. 야식을 나르던 배달부, 담배를 태우던 노인 등으로.”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청목영은 감시읍을 향해 일렁임 없이 서 있다가 물었다.

“묻고 싶었던 것은 이게 단가?”

“네, 어…아뇨, 잠깐만! 마지막 하나가 있어요.”

감시읍이 다급하게 외쳤다.

“당신들은 전부 조선 시대에 살았던 아홉 명의 인간이었댔죠. 왜 그 비 오던 밤, 이 독서회에 잘못 찾아온 나를 회원으로 받아준 건가요? 그리고 왜 살려뒀죠?”

청목영이 일렁였다.

“슬슬 신입 회원을 받을 때도 되었다 싶었으니까. 그리고 내 벗들이 빙의한 인간들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 내 원한과도 관계없는 무고한 이들이었으니.”

그러더니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식으로 독서회를 끝내게 될 줄이야, 참 아쉽군. 그래, 자넨 이렇게 서점 주인을 데려와 우릴 쫓아낼 정도로 독서회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가?”

감시읍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걸 말이라고 해? 혀를 자르려 들고, 죽은 쥐를 먹이려고 했잖아. 나를 그런 위험에 빠뜨리는 독서회를 계속했어야 한단 말이야?

주인 여자가 감시읍과 청목영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마치 ‘원한다면 밤엔 이 서점에서 독서회를 계속해도 좋아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감시읍은 그런 주인에게 입은 앙다물고 눈은 휘둥그렇게 뜬 채로 신호를 보냈다. ‘절대 안 돼요.’

그러거나 말거나, 청목영은 제 감상에 취한 듯 중얼거렸다.

“나무들의 죽음, 나무들의 인생. 그게 책이고, 책을 사고파는 곳이 서점이지. 그래서 이 서점의 이름은 썩 마음에 들더군. 사람의 삶은 인생, 나무들의 삶은 책이 되어 머무르는 곳. 낮에는 인생들이, 밤에는 귀신들이 독서회를 하는 곳이라…”

청목영의 검은 몸이 천천히 흩어지더니, 마침내 새벽 공기 속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귀신들이 사라진 서점에 서점 주인 여자와 감시읍, 그리고 기절한 여덟 명의 사람들만이 남았다.

감시읍은 생각했다. 몇만 원으로 귀신을 퇴치한 건 제법 가성비 좋은 결과였다…이게 아니라, 청목영의 마지막 말은 좀 명탐정 코난 마무리에 덧붙이는 신파 교훈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라고. 신파적이지도 않고, 교훈적이지도 않지만…감동적이긴 했다는 부분에서.

 

 

자신이 왜 이런 서점에 엎어져 잠들어있던 것인지 의아해하던 여덟 명의 사람들을 모두 내보낸 뒤, 서점 주인이 중얼거렸다.

“오늘은 엄청 일찍 문을 열었네요.”

감시읍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청목영이 차지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은 채로. 기다란 테이블의 가장 끝, 그러니까 독서회의 회장이 앉는 자리에.

오래되어 해묵은 책장이 펼쳐진 책을 덮자,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은행잎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감시읍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람이 가는 자리마다 머리카락을 흘리는 것처럼, 나무는 가는 곳마다 나뭇잎을 흘리게 되는 것일까? 설령 나무의 그림자라고 해도?

그러곤 청목영을 생각했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살아서는 양반의 서자이자 산적 떼의 두령이었던 이가, 죽어 귀신이 되어서는 은행나무에 깃들어 살며 이따금 서점 안에 들어와 친구들과 독서회를 갖는다, 라. 아마 그는 앞으로도 이 서점 저 서점 앞의 은행나무 가로수를 기웃거리며 벗들과 독서회를 열겠지.

감시읍은 머리를 쓸어넘겼다. 밤새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해 들은 머리가 멍했다.

그때 아침 햇살이 서점의 유리 벽을 넘어 감시읍의 눈가를 간질였다.

감시읍은 잠시 눈을 감고 햇빛을 느끼다가 아, 하고 작게 탄성을 질렀다.

잊지 말아야지.

그는 보랏빛 우산을 움켜쥔 채 서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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