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개이비

2020.03.16 13:5803.16

“안녕히 가세요”

선욱은 맥주를 사서 나가는 손님에게 인사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차피 선욱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네평 남짓한 편의점은 선욱이 밤새 지키는 공간이었다. 때는 아침, 막 솟아오르는 햇볕이 창백한 형광등 빛을 밀어내고 있었지만, 눈만 따가웠지 좁고 갑갑한 편의점에 새아침 특유의 활기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욱의 마음은 들떴다. 근무교대 시간이 5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실 근무가 끝나봤자 원룸으로 직행해서 잠이나 자겠지만 그래도 퇴근을 싫다 할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대 시간에는 지수를 볼 수 있었다. 지수는 선욱에 이어 편의점을 지키는 오전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선욱은 지수를 처음 본 날을 기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수를 예쁘다고 생각하고 지수를 좋아하게 된 날은 기억했다. 지수가 교대에 늦은 날이었다. 단 2분 늦었을 뿐이지만 그 전에 한달 동안은 항상 교대 5분 전에 도착했기 때문에 선욱으로서는 다소 의외였다. 선욱은 잠시 편의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지수가 편의점 입구에서 4미터쯤 떨어진 곳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지수가 무엇을 하는지 보려고 선욱이 몸을 기울이는 순간 지수 근처에서 후다닥 하는 기척이 났다. 달아나는 뒷모습을 보니 고양이였다. 선욱은 자기도 모르게 고양이를 쫓아낸 것에 미안함을 느꼈지만 인사도 없이 갑자기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기도 어색했다. 더구나 지수는 고양이의 뒷모습과 선욱의 얼굴을 교대로 보더니, 휴대폰을 꺼내 시계를 확인하고는 오히려 자기가 더 당황한 눈치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늦었네요”

선욱은 자기도 미안하다는 말을 할 타이밍을 얻었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고양이를 놀래킨 것 같아 죄송하네요”

지수는 선욱의 사과를 예상치 못한 듯 작게 웃었다.

“괜찮아요. 자주 보는 아이라서 금방 또 만날 거예요”

“네”

선욱은 더 이상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두 사람은 더 이상 대화 없이 근무를 교대했다. 그 후로도 한 달간 선욱과 지수가 대화를 나눈 시간을 모두 합쳐봤자 2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서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선욱은 오늘도 지수의 얼굴을 볼 생각으로 들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사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은 작은 키에 매일 면도를 해도 턱과 구레나룻이 검게 되는 아저씨였다.

“어, 사장님 오셨어요?”

“그래. 이제 근무 교대해라”

“오전엔 지수씨 아니었어요?”

“그만뒀다”

“네? 왜요?”

“편의점 알바 그만두는 데 왜가 어디 있어. 관두면 관두는 거지”

선욱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무신경한 사장의 눈에도 선욱의 실망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지수가 아니라 내가 교대하러 와서 실망했냐? 그래도 연락처는 못 알려준다”

“여, 연락처는 무슨요!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선욱은 앞치마를 벗어 창고에 넣어두고 사장에게 인사를 한 뒤 편의점을 나왔다. 패딩 점퍼가 이렇게 어깨에 무겁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선욱이 생각해도 자신이 우스웠다. 한 달 동안 근무교대를 하면서 인사 외에는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고, 심지어 언제쯤 데이트를 신청하겠다는 계획조차 없었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자기한테 한마디 말 안 남기고 아르바이트를 그만 뒀다고 실망하는 꼴이라니. 선욱은 터덜터덜 걸으며 스스로를 비웃다가 마주치는 여자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깨닫고 일부러 고개를 들고 먼데를 보며 다른 혼잣말을 했다. 최악의 퇴근길이었다.

 

집에서 한잠 잔 선욱은 아무 옷이나 챙겨 입고 길거리로 나왔다. 선욱은 집에서 밥을 잘 챙겨먹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밥 차릴 기분도 나지 않았다. 뭐라도 남이 차려준 밥을 먹으며 기운을 차리자는 생각이었다. 안 하던 외식을 하자니 온갖 간판을 두리번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선욱에게 약 20미터 앞에 있는 ‘왈왈 애견카페’ 간판, 그리고 간판 아래 창가에 앉은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청바지에 맨투맨을 입은 지수였다.

선욱은 지수를 다시 못 만나리라 생각하던 중 엉뚱한 곳에서 그 얼굴을 보자 몸이 굳었다. 지수는 창가의 2인 테이블에 혼자 앉아 태블릿 PC인지 전자책인지를 보고 있었다. 가끔씩은 고개를 돌려 바닥에서 놀고 있는 개들을 살펴보았다. 아마 그 중 한 마리가 지수의 개일 거라고 선욱은 생각했다. 그 순간 지수가 고개를 들어 선욱이 서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선욱은 재빨리 몸을 돌려 아무 방향으로나 걷기 시작했다. 지수가 선욱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확인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선욱은 애견카페가 시야에서 벗어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될 때쯤 잠시 뒤를 돌아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걸음을 멈췄다. 아직도 가슴이 뛰고 있었다.

선욱은 그곳까지 걸어오며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다.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지수를 다시 만날 절호의 기회를 멍청하게 날려버린 자신에 대한 책망이었지만, 가장 마지막에 하고 있던 생각은 그 기회를 어떻게 다시 살릴지에 대한 것이었다. 선욱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개를 사자!’

 

그날 저녁 선욱은 삼십분 동안 웹서핑을 했다. 선욱은 예전에 개를 기르려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예전 애견문화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쇼핑몰 등지를 검색해보니 요새는 유전자 조작된 개를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았다. 펫토피아라는 이름의 회사는 개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을 사람이 기르기 좋게 유전자 조작을 했지만, 역시 수요가 많은 개 관련 상품이 가장 다양했다.

주문 방식은 먼저 일반적인 교배법에 의해 만들어진 품종별 구분에 따라 개의 외모를 고르고, 원하는 옵션을 추가하는 방식이었다. 펫토피아의 쇼핑 사이트에서 추천하는 옵션의 우선순위는 1. 산책 필요 없음, 2. 똥오줌 잘 가림, 3. 혼자 놀 수 있음, 4. 발정 없음, 5. 짖지 않음, 6. 털 안 빠짐 등이었다. 주요 옵션들을 묶어 놓은 패키지 상품도 있었다.

선욱은 개 가격표와 자신의 편의점 월급을 비교해보았다. 위 주요 옵션들이 포함된 프리미엄(희한하게도 가장 저렴한 패키지의 이름이었다) 패키지로, 사이트에서 여성들이 가장 좋아한다고 추천하는 웰시 코기 외모의 3개월령 강아지를 사면 한달 월급으로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매일 밤샘을 한다는 조건 하에서였다. 선욱은 아침에 5분 동안 지수의 얼굴을 볼 것을 생각하며 견뎠던 그 모든 밤을 생각했다. 한 달 월급은 충분히 투자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선욱은 강아지에게 땅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짜리몽땅한 것이 귀엽다는 이유에서였다. 방학 중인 대학생 선욱의 일과는 밤샘 아르바이트, 오전 수면, 13:00경 아침 식사 후 게임, 16:00경 땅이와 애견카페 출근 순으로 이어졌다. 카페 출근이 16:00인 것은 물론 카페에서 지수를 발견한 시간이 그때였기 때문이다.

처음 닷새간은 지수를 보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땅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즐거운 편이었다. 일단 얼굴이 귀여웠다. 그리고 몸통과 다리도, 짤막한 꼬리도 귀여웠다. 선욱이 편의점 근무를 마치고 집에 오면 이미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발소리만 듣고도 선욱이 온 것을 알고 짖다가(유전자 조작이 되어 짖는 소리가 크진 않지만, 열려 있는 창문 밖으로 들릴 정도는 되었다) 문을 여는 순간 온 몸을 흔들며 반짝이는 눈망우로 선욱을 환영하는 모습은 선욱에게 오랜만에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땅이는 산책도 필요 없고 펫토피아에서 공급하는 사료만 주면 다른 어떤 음식도 탐내지 않았다. 그래도 선욱은 매일 땅이와 산책을 하고, 가끔씩 고깃덩어리를 개밥그릇에 담아주었다. 물론 산책은 지수를 만날지도 모르는 애견카페에 가기 위해서 하는 것이었지만, 그 짧은 다리로 선욱을 따라 열심히 걷고 또 고기를 뜯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선욱은 행복감을 느꼈다.

그렇게 땅이와 함께한 지 엿새째였다. 선욱은 오늘도 편의점에서 집으로 퇴근하여 땅이와 인사를 하자마자 침대위로 쓰러졌다. 땅이는 주인이 피곤해보일 때에는 놀아달라고 보채지도 않았다. 13:00가 되어 일어난 선욱은 우선 땅이의 밥그릇에 펫토피아 사료를 가득 담아주고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 자신의 점심을 차려먹었다.

오늘은 카페 방문시간을 조정해볼 생각이었다. 16:00에 지수가 카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16:00에 카페에 간다는 것은, 사실은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지수가 16:00에 카페에 있었음은 아무리 늦어도 그 전에 카페에 도착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수정된 오늘의 계획은 식사를 마치고 바로 카페에 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선욱이 도착한 시각은 14:00이었다. 땅이는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다른 개들과 서로 냄새를 맡으며 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개의 귀를 물어뜯고 바닥에 구르다가도, 마치 엄마와 함께 놀이터에 온 아이처럼 1분에 한 번씩 선욱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했다. 선욱은 지수가 들어올지도 모르는 카페 입구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런 그로서도 땅이의 신나고 행복한 모습에서는 쉽게 눈을 떼기 힘들었다. 땅이가 다시 선욱과 눈을 마주쳤다.

“선욱씨?”

물론 땅이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마침내 지수가 선욱의 눈 앞에 서 있었다.

“아, 여기서 만날, 기다렸어요! 아니아니, 여기서 만날 줄이야!”

“네?”

발견하는 순서가 틀렸어! 선욱은 땅이에게 정신이 팔려 먼저 지수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었다. 같은 애견인으로서의 우연한 만남이라는 계획이 시작부터 틀어졌다.

“여기서 만날 줄이야!”

선욱은 하릴없이 준비한 대사만 반복했다.

“하하, 그러게요”

다음 대사를 쳐야 했다.

“개를 좋아하시나 봐요”

“네, 선욱씨도 개를 키우셨네요”

“웰시 코기 귀엽잖아요. 지수씨 개는 어떤 품종이에요?”

“그냥 믹스견이에요.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했거든요”

“아, 믹스!”

사실 선욱으로서는 믹스견도 보호소도 모두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저도 믹스 좋아하는데. 제가 갔던 가게에는 없더라고요. 귀한 품종이라 그런지”

“아하하하! 그러게요. 가게에서 찾으려면 귀한 품종이겠죠”

“네, 네, 맞아요”

그러나 선욱은 왜 지수가 웃는지 몰랐다.

“이렇게 뵈니 반갑네요. 혹시 누구랑 같이 오셨어요?”

“땅이랑요!”

“그건 개 이름이죠? 그럼 같이 앉아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선욱은 영문을 몰랐지만, 지수가 보는 선욱은 어느새 혼자서도 애견 카페에 올 정도로 개를 아끼고, 유머감각도 그리 나쁘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다만 지수는 선욱이 개의 품종만 묻고 이름을 묻지 않는 것이 다소 의외일 따름이었다.

“지수씨는 고양이도 좋아하고 개도 좋아하시나 봐요”

“아, 그때 길고양이 말씀이시죠”

“맞아요, 저도 동물들을 좋아하거든요. 개를 특히 좋아하지만”

“저도 개가 제일 좋아요. 물론 고양이도 좋아하고 야생동물들도 기회가 있으면 좋아하고 싶지만, 개를 키우다 보니까 개가 좋아졌어요. 어쨌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거잖아요”

“와, 그 말 멋있네요”

“멋있는진 몰라도 맞는 말이긴 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리 오래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자주 보는 걸로도 좋아질 때가 있어요”

“그럴 수도 있겠죠”

물론 선욱은 지수와의 근무 교대를 이야기한 것이었지만, 지수는 알았는지 몰랐는지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저 음료 좀 주문하고 올게요”

어쨌든 이 정도면 선욱으로서는 대성공이었다. 선욱은 다시 땅이와 눈이 마주치자 땅이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주었다.

“그건 무슨 신호에요?”

그새 돌아온 지수가 물었다.

“아, 그야. 그야 잘 했다는 거죠”

“땅이랑 진짜 친하신가 봐요

선욱은 그제서야 자기가 지수의 개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수씨 개는 이름이 뭐예요?”

“봉수요”

“꼭 사람 이름 같네요”

그것도 남자 이름이요. 아직도 애견문화에 눈꼽만큼도 감을 못 잡은 선욱은 그것이 지수의 남자친구나 옛 남자친구, 아니면 지수가 좋아하는 남자의 이름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게요, 그냥 그 이름이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귀여웠단 말이지. 귀여운 타입의 남자를 좋아하나 보군.

“땅이는 왜 이름이 땅이에요?”

“짜리몽땅한 게 코기의 매력이잖아요”

또 틀에 박힌 대사였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봉수라는 남자의 존재를 빼면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선욱의 마음이 부풀어 올라 카페 천장에 닿을 것 같을 때였다. 땅이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던 지수의 갑자기 눈빛이 바뀌었다.

“그런데 저 아이 혹시 개이…… 아니, 펫토피아에서 사신 거예요?”

“지수씨도 아셨군요! 거기가 제일 믿을 만하죠”

“믿을 만하다……”

“왜 그러세요?”

“선욱씨는 유전자 조작에 거부감이 없으신가 보네요”

“네, 알아보니까 ‘조작’이라는 어감이 좀 그래서 그렇지 아주 안전하고, 아무 문제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렇게 개를 유전자 조작하는 게, 마치 개를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라 물건 다루듯이 한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그렇게는 생각 못 해봤네요. 그냥 조작하면 여러 가지로 주인도 편하고 개도 편하다고 해서 그렇게 좋다고만 생각했어요”

“개도 편하다는 건 우리 인간 입장에서 알 수 없는 거고요, 결국 선욱씨는 철저히 본인을 위해서 그 개를 키우시는 것 아닌가요?”

선욱은 지수가 화난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당황했다. 기왕 개를 키우는 거 조금 편하게 키우는 게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당연히 나 좋자고 개 키우는 거지 키우기 싫은데 일부러 자신을 괴롭히려고 키우는 사람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설령 개 입장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키우는 사람이 편하려고 하는 게 잘못은 아닌 것 같아요”

“사람이 자기 편함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죠. 하지만 단지 자기가 편하려고 다른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조작하는 건 옳지 못한 일 아닐까요?”

“사람들은 고기를 먹잖아요. 유전자 조작 같은 수준이 아니라 아예 그 생명을 통째로 앗아가는데 그것도 문제인가요?”

“하지만 자기가 먹을 소를 키우면서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않죠. 선욱씨는 땅이를 좋아하신다면서요”

“좋아해요,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진짜 좋아하니까 매일 애견카페에도 데리고 오죠”

“그렇네요”

그러나 지수의 말투는 선욱의 말을 전혀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진짜 좋아해요. 제가 땅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증명할 수도 있어요!”

“증명이요?”

마침내 지수가 선욱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할 만한 호기심을 보였다.

“그런 걸 어떻게 증명하죠?”

“글쎄, 방법은…… 아무튼 좋아하는 게 사실이니까 증명할 수도 있을 거예요”

지수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었다. 재미있는 숙제가 던져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땅이에게만 좋은 것. 선욱씨한테는 하나도 좋거나 즐겁지 않고 오로지 땅이를 위한 무언가. 그런 일을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맞아요! 좋은 생각이네요. 그렇게 할게요!”

선욱은 동아줄을 잡은 기분이었다.

“그, 그럼. 제가 땅이에게 뭘 해줬는지 지수씨에게 알려주려면……”

“연락처요?”

선욱은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그냥, 내일 여기서 다시 뵙죠”

“아, 네! 그래요! 내일 이 시간에 여기서. 굳이 연락처는 필요 없죠! 하하, 제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선욱은 급히 땅이의 하네스에 줄을 매고 애견카페를 나왔다. 나오면서 지수에게 인사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엄청난 용기로 연락처를 달라는 말을 꺼냈는데 이렇게 쉽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지수를 보는 순간만 해도 최고가 될 줄 알았던 하루가, 최악의 하루로 마무리되려 하고 있었다. 선욱은 애꿎은 땅이를 급하게 잡아끌었다. 그래도 충성스러운 개 땅이는 선욱이 당기는 대로 열심히 따라갈 뿐이었다.

집에 도착한 선욱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서로 동물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에는 계속 미소를 날려주던 지수가 땅이를 펫토피아에서 샀다는 걸 알게 되자 연락처를 주는 것조차 거절했다. 동물을 보통 좋아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야, 원래는 네가 날 도와줘야 되는데 이제 내가 널 모셔야 된단다”

선욱은 멍하니 땅이를 쳐다보았다. 선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말 순수하고 예쁜 눈망울이었다. 이제 선욱은 지수와 한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선욱은 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땅이에게 구체적으로 뭘 해주면 되는지 지수에게 묻지 않고 온 것이 후회되었다.

결국 기댈 것은 또 인터넷 검색뿐이었다. 지난번에 쇼핑몰만 둘러봤던 선욱은 이제야 애견카페 몇 군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유전자 조작 개는 몇 년간 애견인들 사이 최대의 화두였다. 모든 애견인들이 서로 만날 때마다 유전자 조작 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애견인은, 유전자 조작 개에 대해서 어느 한 가지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한 의견은 좋은 게 좋다는 쪽이었다. 주인도 편하고 개도 행복하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거였다. 그들은 유전자 조작이 된 개를 ‘품종견’, 그렇지 않은 개를 ‘자연견’이라고 불렀다. 원래 품종견은 선택된 개들 간의 반복된 자연생식으로 특정 형질이 강화된 개들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인위적으로 형질을 조작한 개들을 부르게 된 것이다.

다른 쪽은 지수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편의를 위하여 동물의 유전자를 조작한다는 것은 그들과 반려하여 살아간다는 행위의 본질을 배신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유전자가 조작된 개는 개가 아니라며, 개 같지만 개 아닌 ‘개이비’라고 불렀다. 개이비를 키우는 ‘사람’은 ‘사(람)이비’였다. 그냥 개는 물론 그냥 ‘개’였고.

그런데 자기는 지수에게 자랑스럽게 펫토피아에서 개를 샀다고 말하다니! 선욱은 검색을 하고 알아갈수록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애꿎은 땅이를 욕하려다가도, 결국 그 눈을 보면 마음이 약해졌다. 어쨌든 이제는 최선을 다해 지수와의 약속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선욱은 땅이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누구에게 물어볼지 생각했다.

 

“제 행복이 땅이의 행복이래요”

“뭐라고요?”

“땅이 유전자를 조작한 펫토피아에 물어봤는데, 펫토피아에서 파는 모든 동물들은 주인의 행복이 자신의 최우선 순위래요. 제가 행복해하는 걸 땅이가 제일 좋아한대요”

유전자 조작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던 선욱이지만, 이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도 울컥함을 느꼈다. 선욱과 지수는 다음날 애견카페에 함께 있었다.

“개답네요”

지수도 선욱과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 이제 어쩌죠. 제 행복하고는 상관없이 땅이의 행복만을 위해야 하는데……”

“그러게요, 어려운 문제네요”

그리고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땅이와 봉수만이 바닥을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무슨 숙제도 아니고, 할 수 없으면 할 수 없는 거죠. 그냥 행복하시고 땅이 많이 사랑해주세요. 봉수야~”

선욱의 울컥함은 순식간에 절박함으로 바뀌었다.

“바, 방법이 있어요!”

지수는 의자에 앉은 채 아래로 손을 뻗어 자신에게 달려온 봉수를 어루만지며 반문했다.

“어떤 방법이요?”

“그, 주인의 행복이 땅이의 행복이라니까, 제가 주인을 안 하면 되죠”

“설마 땅이를 파양하신다는 거예요? 그거야말로 개한테 가장 큰 스트레스인데? 겨우 내기 하나 이기려고? 와, 어이가 없네”

“아니아니, 아니에요. 그것도 펫토피아에 알아봤는데 거기 개들은 무슨 무리생활 유전자를 어떻게 조작해놔서, 주인을 금방 바꾼대요. 만약의 경우 다른 사람에게 쉽게 보낼 수 있게 짧으면 3일, 길어봐야 일주일이면 원래 주인 완전히 잊고 새 주인한테 적응한대요”

“진짜 편리하네요”

아무리 눈치 없는 선욱이라도 그 말에 담긴 경멸의 뉘앙스는 눈치 챌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지수는 가게를 나가고 다시는 선욱을 보지 않을 것이다. 뭐라도 던져야 했다.

“지수씨가 입양해주세요”

“네?”

“지수씨는 원래 개 좋아하시잖아요. 땅이도 예쁜 개고. 양육비는 다 드릴게요. 그리고 지수씨와 땅이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

“아, 소름 돋아”

그것은 혼잣말이었다. 지수는 아예 선욱을 무시하기로 한 것 같았다.

“그럼 그냥 땅이 입양만 해주세요. 데려가서 지수씨가 땅이를 최대한 행복하게 해주세요. 양육비는 드리고 싶지만 받기 싫으시다면 안 드릴게요. 저도 땅이랑 정 많이 들었다고요. 진짜 땅이의 행복을 위해서 데려가시라는 거예요. 분명 지수씨는 저보다 더 잘해주실 거잖아요”

지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땅이를 쳐다보았다.

“진심입니다, 지수씨. 땅이랑 같이 행복하세요”

정말이었다. 지수와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가 얼마나 동물을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자기처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핑계로 인터넷으로 개를 구입하는 사람보다야 개한테 더 잘해줄 것이 분명했다. 이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었다.

“안 그래도 하나 더 입양할까 생각 중이었으니, 땅이는 데려갈게요. 삼일이면 주인 잊는다는 건 진짜죠? 안 그러면 그래도 선욱씨가 키우는 게 땅이한테 나을 거예요”

“진짭니다. 설명서에도 나와 있고 전화로도 확인했어요”

“네, 그럼 데려가겠습니다”

‘다음에 뵐게요’는커녕 ‘안녕히 계세요’조차 없었다.

 

골목길에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추분을 지나서 18:00가 조금 넘으면 해가 지는 계절이었다. 기분 좋은 날이면 아무 계단에 앉아 맥주라도 한 캔 할, 서늘한 저녁이었다. 물론 지금의 선욱은 깡소주라면 몰라도 혼자 맥주를 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무거운 출근길 발걸음을 디디는데, 어이없게도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선욱이 어디서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구슬픈 곡조였다. 짐작키로는 학기 중에 어느 친구에게 고전영화관에 끌려가서 보았던 70년대 한국영화에 나오는 배경음악 같았다. 선욱은 자기를 동정하는 촌스러운 취미는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날 밤 선욱은 편의점에 찾아온 손님 여럿을 놀라게 했다. 물건을 찾는 사람의 등 뒤에서 갑자기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혼잣말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릴 웅얼거리기도 했다. 그것이 그나마 직장이라서 자제한 결과였다.

그 후 이주동안 선욱은 집에 올 때마다 땅이를 찾았다. 이름을 부른 것은 아니었다. 머릿속으로도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땅이의 집과 화장실이 있던 자리에서 텅 빔을 보았다. 잠만 자고 게임만 하는 집안 바닥은 아무것도 없이 밋밋했지만, 그의 발 디딤은 무언가 차일까봐 조심하는 종종걸음이었다. 잠자리에 누운 그의 손은 자꾸 침대의 빈자리를 더듬었다.

그래도 선욱은 한 번도 땅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도 부르지 않았다. 적어도 이주 동안은.

이주하고도 하루째 되는 날 선욱은 뻘쭘하게 빈 개줄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최근 어느 인터넷 소설 플랫폼에서 본, 존재하지 않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물론 선욱은 자기가 든 개줄 끝에 땅이의 하네스가 달려 있다고 믿지는 않았지만, 맨 손으로 애견카페에 가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딱하기도 해라, 그렇다고 빈 목줄이 입장권으로 통할 리도 없건만.

애견카페의 사장도 똑같이 선욱을 딱하게 여긴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원래부터 사람만도 입장할 수 있는 곳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빈 개줄을 가지고 카페에 들어선 선욱은 스스로의 머뭇거림 말고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선욱은 기다렸다.

한낮부터 카페 문 닫는 시간까지 우두커니 앉아서 기다렸다. 하루 종일 수십마리의 개들이 오갔다. 수십명의 사람들도 오갔다. 그 중에 땅이와 지수는 없었다.

다음날도 선욱은 기다렸다. 다음날도 땅이와 지수는 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선욱은 기다리려 했다. 하지만 애견카페 휴일이었다.

다음날은 다시 기다렸다. 또 땅이와 지수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같은 하루가 반복됐다. 이미 이틀째부터 애견카페 사장은 선욱을 신경쓰고 있었다. 닷새째가 되자 영업 개시하자마자 카페에 들어온 선욱에게 사연을 물었다. 선욱은 기다리는 개가 있다고 답했다. 사장은 혼자 카페에 와서 개를 기다리는 사람을 전에도 몇 번 보았다며, 서비스 음료까지 가져다 주었다.

선욱은 사실 자신이 기다리는 개가 펫토피아에서 만들어졌다고 고백했다. 사장은 그 말을 듣자 선욱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다행히 선욱은 그런 사장이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장은 자기가 처음 키웠던 유전자 조작 개, 혹은 개이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펫토피아에서 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세상에는 그렇게 착하고 예쁘고 키우기 쉬운 개를 버리는 사람도 있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누군가 밤중에 카페 앞에 개를 묶어두고 갔다는 것이다. 까만 포메라니안이었다. 그런 일이 흔히 있다면 오는 대로 다 키울 수도 없겠지만 카페 영업하며 단 한번 뿐이었고, 개도 워낙 예뻐서 그냥 가게 마스코트로 키우기로 했다고 한다. 이름은 사장의 이름과 카페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왈자라고 지었다.

그쪽으로 유전자 조작이 되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손님으로 오는 모든 사람과 개와 잘 지냈다고 했다. 영업 마인드가 있는 듯 처음 보는 손님에게 오히려 더 잘 했다. 색깔도 검고 크기도 작아서 남의 발에 채이기 딱 좋았지만 하도 활발하고 시끄러워서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애견 카페에 사나운 개는 잘 오지 않지만, 가끔 조금 사나운 녀석이 와도 왈자가 특유의 친화력 또는 객기와 난리법석으로 금세 길들여 놓았다.

그렇게 왈자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왈자는 아무리 많은 사진이 SNS에 공유되어도 자기 초상권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심지어 왈자를 산책시키러 카페에 오는 손님도 있었다. 사실은 꽤 많았다. 회사원도 있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도 있었다. 왈자는 사람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초에 왈자는,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버려진 개였다. 그렇게 시끄럽던 왈자는 겨우 1년 만에 기력을 잃기 시작했다. 뛰기보다는 걷고, 힘차게 짖기보다는 와서 얼굴만 부볐다. 사장이 산책 가자며 개줄을 들면 좋다고 뛰고 꼬리를 흔들었지만 네발이 모두 바닥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럴 때마다 사장은 오히려 가슴이 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왈자는 사장과 함께 카페로 출근하려고 했다. 집에서 카페까지는 겨우 30미터 거리였지만, 그날 왈자에게는 너무 먼 거리였다. 사장은 왈자를 안아서 카페에 데려오지 않은 것을 오랫동안 후회했다고 한다.

사장의 눈이 다른 때보다 더 반짝거렸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얘기를 처음 듣는 선욱이 사장처럼 자제력을 발휘하기는 힘들었다.

사장은 테이블에 얼굴을 묻은 선욱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선욱이 흐느끼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가끔씩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보고 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사장은 먼 곳을 바라보며 왈자를 생각했다.

그때였다.

선욱이 갑자기 고개를 쳐들어 테이블이 넘어질 뻔 했다. 그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땅이가 선욱을 보며 짖고 있었다. 지수는 결국 개줄을 놓쳤다. 선욱은 달려오는 땅이를 안아 올렸다.

“문 수리비나 내놔요”

지수의 말이었다.

“네?”

선욱은 얼굴을 핥는 땅이 때문에 정신없어 하며 겨우 대답했다.

“삼일이면 주인을 잊는다며요? 그런데 이주 동안 집에 가겠다고 어찌나 문을 긁어대던지. 긁지 않으면 앉아서 문만 보고 앉아있고요. 밥도 거의 안 먹어요”

“네”

“주인을 하나도 안 잊는다니까요?”

“네”

선욱은 아직도 지수와 대화할 틈을 못 찾아 짧은 대답만 계속하고 있었다. 선욱은 땅이를 끌어안았다가, 멀리 들었다가, 같이 뛰다가, 쫓아 뛰다가, 다시 땅이한테 쫓겼다. 누구라도 무성의한 대화태도라고 지적할만 했다. 특히 개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사람이 말을 하는데 개랑 놀겠다고 무시하다니!’ 하고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카페에 있는 누구도 선욱을 탓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무시당한 지수도 그냥 자리를 잡고 앉아 가만히 선욱과 땅이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누가 뭐래도 진짜 사람과 진짜 개였기 때문이다. 진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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