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연작「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의 후편입니다.

 

 

 

 

 

 

 

 

“얘, 너 말이야 너. 그래, 너.”

 

여자는 군인 눈에 띄지 않게 골목으로 숨었다. 나는 서 있던 대열을 앞뒤로 확인하고는 군인들의 시선이 닿지 않을 때 여자를 뒤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미용실이었던 가게와 약국이었던 가게 사이에 있는 길이었다. 여자는 실외기가 붙은 가장 안쪽에 서 있었다. 햇빛이 들지 않아 여자는 암흑 속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으나 곧 겁 없이 여자에게 향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소리를 지르면 된다. 길에 사람들이 저렇게 서 있은 한 명쯤은 구하러 들어오겠지. 여자는 길이가 짧은 5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앞에 주머니가 있는 긴 후드를 입고 있었는데 이 더운 날 저렇게까지 두껍고 긴 옷을 입은 건 아마도 팔에 있을 상처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억지스러운 상상은 아니다. 상처는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원인이 되지 못했지만 심리적으로 사람들에게 불쾌감과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했으므로 많이들 상처를 가리려고 애썼다. 무슨 일이신데요? 햇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림자의 경계 앞에 서서 물었다. 낮은 명도 속으로 여자의 눈이 보였다.

 

“승희 맞지, 김승희.”

 

……내 이름.

 

“아줌마야. 기억 안 나지? 혜진이 엄마인데…….”

 

여자는 혜진이란 이름으로 내가 자신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안타깝게도 현재의 나로서는 기억을 상기시킬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멀뚱히 서 있기만 하자 여자는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왔다. 본능처럼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늘에서 벗어난 여자의 얼굴은 아까보다 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은 어떤 것도 끄집어내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는 실망한 기색 하나 없이, 도리어 자신이 나를 알아봤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여기는 것처럼 내 손을 감싸 잡았다. 손을 무르는 타이밍을 놓쳤다. 꼼짝없이 여자에게 손을 붙들렸다.

 

“많이 컸는데 얼굴은 정말 그대로구나. 한 번에 알아봤어.”

 

“저기 죄송한데 저는……”

 

여자의 손을 떼어내며,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말하려고 했다.

 

“이모는 괜찮으시고?”

 

행동을 멈추고 여자를 바라봤다. 당황하는 내 표정에도, 여자는 나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다는 듯한 친근한 표정을 멈추지 않았다. 이모라면 그때 죽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 여자는 이모가 죽기 전에 나를 알던 사이라는 뜻이다. 16년 전에 말이다. 그러면 내가 이 여자도, 이 여자의 혜진이란 자식도 기억 못 하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래서 저 여자도 내가 기억하지 못함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 듯했다. 16년 전에 나는 고작 여덟 살이었으니 온전한 기억이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사건을 기점으로 기억은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 충격 위주의 기억은 안온했던 시절의 대부분을 비틀고 깎았다. 그래서 나는 내 기억을 신뢰하지 않는다.

 

내 침묵이 길어지자 여자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듯 웃음기를 없애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싸 잡은 내 손등을 옅게 토닥였다.

 

“다들 그렇지, 다들 그래…….”

 

여자는 적당한 위로의 말을 찾다 실패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구태여 해설을 덧붙이지 않았다. 이모는 감염자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이모의 마지막은, 나를 아파트 현관에 내려두고 길에 엎어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돌아가던 모습이었다. 여기저기서 폭죽처럼 터지는 총성이 배경처럼 깔렸다. 이모는 총에 맞아 죽었는데 정확히 머리를 맞았는지 심장이나 배를 맞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어디를 맞았어도 이모는 죽었을 것이다. 감염자가 아니었으니까.

 

검사가 시작된 듯 대열에 서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여자는 내 손을 붙잡고 군인들의 눈을 피해 자연스럽게 대열에 합류했다. 손은 그때 빼냈다. 여자는 내 뒤에 바짝 붙어 섰다. 마치 어떤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좁은 보폭으로 검사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총을 든 무장군인이 서로 구역을 나눠 대열을 순찰했다. 우리에게는 그들에 대항할 무기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언제든 쏠 수 있다는 듯 총열과 개머리를 쥐고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든 쏠 수 있는 실탄을 두려워하면서도, 또 언제든 쏠 수 있는 실탄이기에 안심했다. 그 총구가 자신들에게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 누구도 민가에 투입된 총을 원망하지 않았다.

 

순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검사실에 들어갔던 남자가 포박된 채 끌려 나왔다. 남자는 “놔! 다시, 다시 한번 검사해봐. 나 멀쩡하다니까!”하고 외쳤다. 사람들이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러는 사이 또 한 명이 검사실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다음번 차례가 됐다. 여자가 내 어깨로 얼굴을 들이밀며 조용히 물었다.

 

“어머니는…….”

 

군인 한 명이 우리를 슬쩍 쳐다보고 지나쳤다. 나는 더러워진 신발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돌아가셨어요.”

 

내 차례가 되어 검사실로 들어갔다. 여자의 대답이나 표정은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다. 어쩌면 여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검사는 앞으로 두 번 남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해오던 검사는 이제 하루에 한 번으로 바뀌었고, 마지막 검사까지 통과해 감염자가 아니라는 최종 승인을 받으면 우주선에 탈 수 있는 탑승권을 얻을 수 있었다. 1인 1매, 본인 이외 수령 불가, 양도 불가의 깐깐한 표인 셈이다. 검사는 그다지 까다롭지 않았다. 오차 범위를 포함한 표준 체온에서 벗어나지 않고 피부에 멍이 있지 않으며 눈동자의 백탁 현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된다. 1차 검사실에서 내세운 기준을 그렇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이상 증후를 보일 시 검역소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세밀한 검사를 끝낸 후 이상이 없으면 돌려보낸다는데 아직까지 검역소에 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은연중 검역소에 들어가면 죽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추가 검사는 없고 바로 쏴 죽일 거라는 추측이 가장 유력했다. 과도한 비약은 아니었다. 무차별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 이미 많았다.

 

검사원은 흰색 가운과 흰색 마스크, 흰색 장갑, 마지막으로 흰색 위생 모자를 쓰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 달에 한 번 검사원을 마주할 때마다 기분이 더럽다. 무장한 군인을 보고 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인데 검사원 쪽이 조금 더 강하다. 검사원의 눈은 꼭 말라죽은 동태 눈깔처럼 생겨놓고서 모든 표정이나 행동이 감염자를 대하는 듯했다. 검사원과 내가 다를 거라고는 앉아있는 위치뿐인데 마치 검사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끌려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신분증과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그간의 검사 결과가 기록되어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 진행된 검사가 끝났음에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테이블에 깔린 위생 식탁보를 꼭 쥐고 있자 검사원이 그제야 내 눈을 바라봤다. 검사실 안에는 군인 두 명이 있었고 내 앞에 있는 검사원을 제외한 검사원 역시도 두 명이 있었다. 제각기 할 일이 있어 나에게 신경을 두고 있는 사람은 내 앞에 앉은 검사원 밖에 없었다. 이 검사원은, 그러니까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는 이 검사원은 내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검사원이 내 질문을 수상하게 여겨 곧장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군인들은 우리 집을 수색하러 갈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켕길 게 없으면 전혀 수상할 것 없는 질문이다. 나는 쥐고 있던 식탁보를 놓고 손을 허벅지 위에 편안히 올렸다.

 

“이틀 뒤에 정부 수송차량도 탑승권이 있어야 탈 수 있나요?”

 

다행히도 검사원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뒤에 서 있던 군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한 가지 더 물었다.

 

“그 수송차량에 휠체어도 탈 수 있나요?”

 

검사원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급하게 자료를 찾는 척했지만 대답을 듣기도 전에 군인이 내 어깨를 붙잡아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질문을 무르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당황했던 그 검사원의 행동이 어떤 답을 내포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나 다음은 여자 차례였다. 여자는 검사실로 들어가다 주머니에서 사탕 몇 개를 꺼내 내 손에 얼른 쥐이고는 모습을 감췄다. 몇 번씩 녹았다 굳기를 반복했는지 사탕과 껍질이 밀착되어 있었다. 그중 오렌지 맛 사탕 봉지를 까 덕지덕지 붙은 사탕을 떼어내 먹었다. 익숙한 맛이었다. 미각은 나보다 기억력이 좋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다. 이모가 그랬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전염병에 대한 뉴스를 보고 있을 때 이모가 말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똑똑해서 치료제도 곧 나올 거고, 그럼 아픈 사람들도 치료될 거라고 했다. 무서워하고 있을 나를 달래주기 위해 했던 말 같은데 나는 그때 학교가 휴교됐다는 사실이 마냥 신나기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모의 바람과 달리 상황은 악화되어 갔다. 전염병의 원인을 알 수 없고 무분별하게, 어느 순간 갑자기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이모는 나와 방을 따로 썼고 잠들 때에는 세 개의 방 문고리를 단단히 걸어 잠 갔다. 이모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 난리에도 날마다 마스크를 쓰고 나가 마트와 편의점에서 비상식량과 물품을 잔뜩 구비해놨고 집으로 공기가 쉽게 들지 못하도록 수건과 이불로 창문과 현관문 틈을 막았으며 물은 꼭 그날 치를 끓여서 사용했다. 내게는 한 시간에 두 번씩 손을 씻으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전염병으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모가 조금 더 일찍 ‘감염자가 살아 있을 때에는’ 전염시킬 수 없다는 걸 알았더라면 그런 수고는 하지 않았을 거다. 마찬가지로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감염될 사람은 감염된다는 걸 알았더라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주위를 살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승강기 위에 있는 CCTV는 작동하지 않은 지 십 년이었다. 치안은 해가 갈수록 나빠졌다. 그렇지만 그건 있는 것들의 걱정이었다. 딱 보기에도 지은 지 한 세기는 지난 듯한 6층짜리 복도식 아파트에서 무언가를 훔쳐가겠다는 머저리는 없다. 누군가 볼 새라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집으로 빠르게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일차 감염자를 ‘발원체發源體’라고 일컬었다. 발원체들은 10일간 몇 단계의 공통적인 증상을 보이다가 죽었다. 하지만 끔찍한 악몽은 여기가 아니다. 그 이후다. 죽은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인 무언가로 깨어나 사람들을 물어뜯었다. 영화에서 보았던 저주받은 자들처럼. 어떤 사람은 뼈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물어 뜯겼고 어떤 사람은 살점만 뜯기다 도망쳤다. 전자의 경우는 죽었지만 후자의 경우는 똑같은 증상을 겪다 죽었고 그들처럼 깨어났다. 전염의 경로는 ‘타액’으로 추정됐다.

 

원인은 여전히 모른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고 종말론자들에 의하면 지구가 비대하게 많은 한 생명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퍼트린 병이라고 했다. 발원체의 공통점이 ‘인간에 한정’된다는 것도 주장의 근거로 쓰였다. 하지만 결론은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바이러스가 왜 발생했으며, 죽었던 자들이 다시 살아나 인간을 공격하는 이 현상의 원인을 16년이 지난 지금에도 알지 못했다. 치료제를 만드는 시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전염이 확산되자, 책임자들은 선택해야 했을 거다. 감염된 모두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사람들을 구할 것인가. 결론은 후자였다. 총을 쏘아 죽였다. 감염된 사람들을 전부 다. 물론 그 과정이 깔끔하지는 않았다. 이모는 감염되지 않았지만 피를 묻히고 있었다는 이유로 보균자로 오해받아 총에 맞았다. 하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랬다. 살리려고 그런 거니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은 서글펐지만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모두가 슬퍼 서로의 슬픔을 들어줄 수도 없었다. 소통으로 증발되지 못한 슬픔이 발치에 깔렸다. 지구의 무게는 매해 높아졌다. 묻히지 못한 시체에 벌레가 들끓었다. 바람도, 이슬도, 흙도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행성이 되었다.

 

소독제를 탄 물을 한 컵 따라 마셨다. 컵을 탁자에 두다가, 액자가 비틀어져 있는 것을 보고 자리를 맞췄다. 사진에는 세 명이 있었다. 이모랑, 나랑 그리고……. 닫힌 방에서 “끄으으.”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본다. 아직 오후 2시밖에 되지 않았다. 딱 세 시간만 밖에 있다가 돌아와야지.

 

한 달 전부터 총 10개 구역에서 일주일에 한 대씩, 우주선이 순차적으로 발사되고 이제 마지막 차례다. 동아시아 구역 우주선 11호기. 위치는 상하이였다. 한국에서는 마지막 여정으로 이틀 후부터 정부가 운행하는 수송차량으로 자국민을 상하이로 이동시킬 계획이었다. 대부분이 떠나고 이제 마지막 차례의 사람들만 남았다. 수송차량은 서울에서부터 시작한다는데 차량이 한정적이어서 몇몇은 어차피 타지 못할 거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사설 수송 차량이 있는데, 문제는 한 명당 십이라는 거다. 그딴 돈이 뭐가 중요하다고. 더 화가 나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돈조차도 없다는 거다.

 

“왜 또 집에 안 있고 여기에 있니?”

 

‘다’ 동에 사는 207호 아저씨는 아내와 두 자식을 모두 잃었다. 발원체가 된 건 첫째 아들이었고 아내와 딸은 물렸다고 했다. 남자는 자신이 재수 없게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래서 남자는 죽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또 재수 없게’ 죽으려고 했을 때 내 울음소리를 들었다. 부모라든가 삼촌 같은 역할을 자처하지는 않았다. 챙겨주고 싶었지만 본인도 가진 것이 더럽게 없었다고 나중에야 말했다. ‘그냥 같이 사는 거잖니, 인간이 믿고 의지할 구석이 있어야 살아가는 거잖니…….’ 아저씨는 그런 이야기를 내가 고작 열 살이 되던 해에 했다. 그렇지만 그 나이에도 아저씨의 말이 어떤 뜻을 품고 있는지 알아듣기는 한 모양이다. 여태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뭐 대충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둘이 낫다는 거 아니었을까. 아저씨는 옆 벤치에 엉덩이를 붙였다.

 

“하기는 나도 집에 못 붙어 있겠더라, 아직까지. 집을 진작 팔았어야 했어. 사람보다 집이 더 많아질 거라는 걸 누가 알았겠니?”

 

아저씨의 농담은 언제나 맥이 빠지고 시시했다. 그렇지만 나름 헛웃음을 자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거기다가 웃긴 놈의 인간들이 아예 지구를 두고 이사를 간다니까. 내 집 팔이는 망했다.”

 

“그냥 아무 집에 들어가서 살아요.”

 

“주거침입죄로 잡혀가면 네가 영치금 넣어주려고?”

 

“신고할 사람도 없고 교도소 관리할 사람도 없잖아요. 그만해요, 재미없어요.”

 

감염된 사람들을 향해 쏘았던 총알은 그렇게 사회 시스템에도 구멍을 냈다.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다. 어떻게든 구멍을 메꾸면 그다음에는 유통과정에서 구멍으로 빠졌다. 아저씨는 사회가 커다란 기계고 모든 인간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톱니바퀴의 일원으로서 일을 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사회는 아주 커다란 싱크홀에 빠진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복구되지 못할.

 

“농담 좀 해. 사람이 농담도 하며 살아야지. 좀 웃고.”

 

“재미있어야 웃죠. 그리고 저 원래 이렇게 생겼어요.”

 

아저씨가 가자미눈으로 나를 슬쩍 흘겼다.

 

“그래, 어렸을 때도 그런 얼굴이기는 했다. 굳세게 자랐구나.”

 

마땅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아저씨는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저씨였다. 면도한 수염에도 흰털이 섞여 있다든가 눈가에 주름이 많아졌다는 것을 빼고는. 좋게 말하면 변한 게 거의 없다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예전에도 좀 노안이었다는 뜻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 차 트렁크에 짐을 싣는 두 명의 여자가 보였다. 12년 동안 우주선에 타야 하는 긴 여정을 대비하는 듯 짐이 한가득이었다. 다 들고 타지도 못할 텐데.

 

“아저씨는 가실 거죠? 상하이로요.”

 

아저씨도 그 여자들을 보고 있었다. 정부 수송차량이나 민간 수송차량을 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가용이 있으면 경계선까지는 갈 수 있다고 들었다. 그곳에서 다시 검사를 받고 수송차량으로 이동해 탄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 경계선도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이었으니 꽤 되는 거리였다. 결론적으로 이런 수단들은 나와 상관없다는 이야기다.

 

“갈 수 있으면 가지. 못 가면 안 가는 거고.”

 

“못 가는 건 또 뭐예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니.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확신을 안 해두는 거지.”

 

일리 있는 말이다. 언제 인간이 또 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이미 겪은 공포보다 더 크고 거대했다. 여자들이 도로 집으로 들어갔다. 오늘 안으로 떠날 예정인 듯했다. 먼저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동네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저는 안 가려고요. 타지도 못할 거예요.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아저씨가 나를 쳐다봤다. 아저씨와 이토록 오랫동안 친구를 할 수 있었던 건 아저씨의 비밀 보안 수준이 최상이기 때문이었다.

 

“아저씨 아는 동생이 질병관리협회에서 일하고 있단 말이야.”

 

“인맥자랑 그만 듣고 싶은데요?”

 

나이가 들면 주변인에 대한 자랑이 많아진다고 했다. 일전에 사돈의 팔촌 이야기를 세 시간 동안 들었던 악몽이 있던 지라, 나는 황급히 귀 털어내는 시늉을 하며 말을 잘랐다. 하지만 아저씨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한참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던 끔찍했던 일주일 동안 백신을 찾았다고 착각했던 때가 있었다고 하더라. 변했던 사람들이 그걸 먹으면 24시간 동안 다 나은 것처럼 멀쩡한 안색으로 돌아왔다고 했거든. 결론적으로는 아니었지. 정말 딱 하루만 잠든 사람처럼 편안해진 거였고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하더라. 어떤 한약이라고 그랬는데 인천 연안부두 쪽에서 나왔대. 일단 우주선에 타면 되지 않겠냐, 응?”

 

아저씨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범죄다. 어쩌면 인류를 다시금 바이러스의 공포에 밀어 넣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저씨는 나를 쳐다보며 다시 “응? 그렇지 않냐?”하고 되물었다. 아저씨를 멀거니 쳐다보다,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말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하지만 아저씨는 여느 때처럼, 농담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할 말을 했다.

 

“그렇게라도 함께 있어야지. 살아 있다는 건 희망이다. 희망은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어. 앞일은 정말 모르는 거라고. 죽어버리면 끝이잖냐. 그런데 살아있고 또 함께 있을 수 있지 않니. 네 엄마는 조금 특별하잖아. 희망을 쉽게 놓지 마. 탑승권 하나는 아저씨가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것 같구나.”

 

 

 

 

* *

 

 

 

 

이주 목적지는 5년 전 탐사에 성공한 ‘행성 92124’였다. 이 우주에 지구 말고도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행성이 있었다.

 

 

 

 

이 행성에는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우주 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가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송출되었을 때 사람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신이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인간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새 땅을 주셨다.

 

내가 이해하기로 우주선에는 인간만 탄다. 어떤 동물도, 어떤 식물도 함께 가지 않는다고 했다. 새로운 행성은 이미 그 행성만의 생태계가 있으므로 지구의 환경이 그 행성의 순환을 망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행성을 인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행성에 적응해야만 한다. 쉽지 않을 거였다. 하지만 내게는 그저 그럴듯하게 포장한 말처럼 들렸다. 무서운 거다. 갑자기 나타난 바이러스의 원인이 지구의 생태계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으니.

 

거실과 주방 형광등을 켜지 않은 채 식탁 의자에 앉아, 아저씨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미쳤어.”라고 중얼거렸다. 손에 쥐고 있던 컵에서 남은 물을 모두 마셨다. 생수가 마시고 싶다. 머리가 아파 올 만큼 아주 차가운 생수를. 물을 마실 때에는 반드시 소독제를 풀어야 했다. 불소 맛이 났고 미지근했다. 시침이 일곱 시를 가리켰다. 냉장고에서 한우 등심을 꺼냈다. 전날부터 핏물을 빼놓은 고기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고기를 씹을 때 핏물이 너무 흘러 치우기가 힘들었다. 16년 전 사태 이후로 제일 먼저 폭등한 것은 고기였다. 지구에 끝까지 남을 줄 알았던 치킨집도 문을 다 닫았다. 돼지고기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 비싼 한우마저도 그대로 버려졌다. 사람들에게 트라우마가 남은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고기처럼 씹어 먹던……. 덕분에 가축들은 문명 이후 처음으로 해방을 맞았다.

 

“나 들어간다.”

 

작은 방 문에 대고 말했다. 마스크를 쓰고 문을 열었다. 헉! 헉! 헉! 거칠었던 숨소리는 내가 모습을 나타내자 조금씩 잦아들었다. 인간보다는 조금 거칠지만 짐승보다는 미약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생명의 숨소리.

 

“배고프지.”

 

헉……헉…….

 

“자, 저녁밥.”

 

고기를 보고 흥분한 엄마가 상체를 흔들었다. 녹슨 휠체어가 꺽, 꺽, 소리를 내질렀다. 고기 한 덩이를 손에 쥐고 엄마 입에 물렸다. 엄마는 고기를, 아무튼 인간은 아닌 고기를 두 손으로 붙잡고 조용히 뜯어먹었다.

 

“나보다 더 근사하게 먹네.”

 

엄마는 1차 발원체였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무서운 힘으로 인간을 향해 돌진한다고 했지만 엄마는 침대에서 몸을 뒤척거리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죽었던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바이러스도, 평생 휠체어에 앉아 있던 엄마의 다리까지는 움직이지 못했던 것이다. 달려들지 못했던 엄마는, 게임으로 치자면 공격력 0에 수렴하는 캐릭터인 셈이었다. 배경처럼 있으나 마나 한. 죽여도 그만 안 죽여도 그만인. 이모는 엄마를 휠체어에 묶고는 방에 숨겼다. 언젠가 치료제가 만들어질 거라고 믿어서였다.

 

이모가 죽고 난 후에 한 달 동안 엄마가 있는 방을 열어보지 않았다. 그것들처럼 나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꼬박 한 달 동안 밖에 나가지도 않고 이모가 구비해둔 비상식량을 먹으면서 버텼다. 엄마가 있는 방은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그러다 상한 빵 하나를 전부 먹고 발열과 구토를 반복했던 그날 새벽, 나는 울면서 엄마가 있는 작은 방 앞으로 갔다. 몇 시간을 울었더라. 시간을 보지 않았으니 몇 시간을 울었는지 알 리가 없었다. 확실한 건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모든 슬픔을 토해냈다는 것이다. 목구멍에서 피 맛이 느껴질 정도로 소리를 내지르며 울었다. 엄마를 부르다 보면 어느 순간 엄마가 ‘승희, 왜 울어?’하고 천진난만하게 말을 걸어올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야속하게도 끝끝내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엄마가 죽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울음을 멈춘 후에는 방문 앞에 주저앉아 공격해오는 침묵을 견뎌냈다. 이모도 죽고, 엄마도 죽었다. 엄마가 죽었다니. 언제든지 나와 평생 함께 해줄 것 같던 엄마가 죽었다니. 내가 엄마를 굶겨 죽였다니. 내가 엄마를 죽였다니……. 엄마를 안고 싶었다. 나는 해가 뜰 무렵에 겁도 없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로써 감염자는 전부 사라졌음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틀어 준 안내 방송이 나오던 때였다. 나는 그곳에서 아직 죽지 않은 엄마를 보았다. 민머리에 피부와 눈동자가 하얀 엄마는, 씩씩 숨을 뱉으며 나를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씻을 때가 됐네. 냄새난다.”

 

엄마의 몸은 방부제를 잔뜩 바른 가죽 인형 같다. 몸에 털이 없어서 더러워지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엄마가 발원체가 되어 온 몸에서 피를 쏟아 낼 때마다 이모는 방바닥을 억척스럽게 닦던 손처럼 엄마의 몸도 벅벅 문질렀다. 밖을 배회하던 발원체들은 씻어내지 못한 오물로 더러웠지만 엄마는 달랐다. 하얗고 뽀얀 살. 혈관조차 보이지 않아서 마시멜로처럼 보이기도 했다.

 

휠체어를 끌고 방을 나섰다. 문턱을 넘느라 생긴 반동을 따라 엄마도 정처 없이 흔들렸다.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물탱크에도 소독제를 풀어서 샤워기가 내뿜는 물이 뿌옇다. 조금 차가운가 싶을 정도로 물 온도를 낮췄다. 엄마 피부에는 재생 능력이 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샤워를 시켰다가 뜨거운 물로 엄마의 한쪽 어깨를 다 익힌 경험을 통해 알았다. 그냥 고기구나, 잘 익은 백숙 같은 고기. 엄마의 흰 눈동자가 내 행동 하나하나 따라 움직였다. 샤워볼에 비누로 거품을 내고는 엄마 앞에 주저앉아, 발부터 닦기 시작했다. 상처가 나지 않게 조심히 닦아야 한다. 어깨가 익었을 때 그곳에 자리를 틀던 구더기를 치우느라 꽤 고생했었으니까. 그게 열 살이었나, 아홉 살이었나. 거품을 바르듯 닦으며 엄마의 발목에 깊게 파인 흉터를 봤다. 두 발목에, 그리고 두 손목에, 마지막으로 가슴에 똑같은 흉터가 있다. 아프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상처가 눈에 밟히는 건 별개의 문제다.

 

크으으……으……

 

“고맙다고? 알았어. 그러니까 허리 펴고 서 있어봐.”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해 허리는 늘 삼십도 쯤 앞으로 수그러져 있다. 엄마의 발을 닦을 때면 그 상태로 내 목과 어깨를 덥석 물리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리고 그 수 없이 많은 상상은 상상에서 끝났다. 아저씨의 말마따나 엄마가 ‘특별한’ 존재여서 그렇다. 다르게 말하자면 특별한 존재가 되기까지 살아남은 자가 엄마밖에 없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수건으로 몸을 살살 두드리며 물기를 닦는다. 엄마는 내 손길을 받고만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온순했던 것은 아니다. 엄마도 분명 나와 이모를 먹으려고 방바닥에 누워 격렬하게 몸부림쳤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 한 달 사이로 바뀌었다. 말을 하지 못하고, 머리카락은 다시 나지 않았지만 엄마는 마치 다른 행성의 이성적인 존재처럼 변했다. 공격하지 않는다. 나를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경계하고 낯설어하면서도 내가 자신을 보살피고 있다는 것을 아는 눈치였다. 어쩌면 인류에게 필요했던 시간은 딱 한 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한 달만 가둬두고 지켰더라면 이모도 죽지 않았겠지.

 

빨아둔 새 옷을 입혔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긴 티셔츠였다. 일으켜 세우는 건 예나 지금이나 되지 않았으므로 적당히 옷을 입히고 무릎에 담요를 올렸다.

 

죽으면 죽었구나, 하려고 했다. 머지않아 죽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죽였다는 생각은 들고 싶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엄마를 방에 가둬두었다는 괴로움은 꽤 컸다. 그때 내 나이가 고작 여덟 살이었다는 것을 알면 누군가는 거짓말이라고 비웃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을 납득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다. 휠체어에 앉은 엄마의 발에 양말을 신겨 주는 여덟 살 딸을 보고는 ‘어른스럽고’ ‘듬직한’ 딸이라고 칭찬하면서도 그 속은 또래의 여덟 살과 같기를 바라는 모순된 상상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가엽고 불쌍한 아이로 보는 시선에 이골이 났으니까. 눈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 눈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척하는 건 늘 나의 몫이었다.

 

금방 죽을 것 같던 엄마는 오래 살아남았다. 한 달 후의 엄마는 폭력적이지 않았고 나를 보고 달려들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얀 눈동자로 갑자기 나타난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먹고 싶어 하는 욕망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눈을 보고 알았다.

 

엄마를 숨겨두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발원체가 되기 전에도 별 다를 게 없었다. 엄마를 데리고 외출을 한 다는 게 여간 번거롭고 힘든 일이 아니었으므로 엄마는 그 전에도 지금과 다를 것 없이 대부분 집에 있었다. 엄마의 세상은 태어날 때부터 나를 낳아 지금에 이르기까지 집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은 엄마의 생활이 불편하지 않도록 이모가 촘촘히 설계한 독립된 나라였다. 바깥사람들은 쉽게 들어올 수 없는.

 

휠체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렸을 때에는 무릎을 꿇지 않아도 딱 이 정도 높이였다. 그때는 몸이 작아 엄마 무릎에 앉아 TV를 같이 보고 놀았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내가 떨어지지 않도록 두 팔로 단단히 내 몸을 붙들고는 했다.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게 있다. 무언가를 다짐하기 전에. 손도 묶여 있지 않은 엄마를 보며,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엄마 코앞으로, 입술 앞으로. 처음에는 손이 떨렸지만 곧 안정을 찾았다. 집이 조용하다. 아니, 지구 전체가 조용하다. 내 손바닥에 숨만 뱉는 엄마를 느끼다가 손을 내리고 고개를 퍼뜩 들었다.

 

“우리도 가야지, 가자.”

 

우리는 인류의 재앙이 아닐 거야. 그렇게 위대한 역할을 우리에게 줄 리가 없어.

 

 

 

 

* *

 

 

 

 

아저씨가 준 종이를 주머니에 구겨 넣으며 다시 물었다.

 

“아직도 있을 까요?”

 

“살아있다면 있을 거다. 원래 있던 한약이었으니 누구든 있겠지. 그게 배를 따뜻하게 해서 일시적으로 혈색이 도는 거란다.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겠네.”

 

살아있기만 하면 구할 수 있을 거라니. 그게 요즘 시대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걸 알고도 하는 말인가 싶다.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아저씨는 내가 취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보고 비관적이라고 나무랐지만 종말의 시대를 성장 배경으로 삼고 자라온 청년이 긍정적임을 바란다면 그것이야 말로 더 기괴한 일이 아닐까. 그렇지만 아저씨는 꿋꿋하게 ‘긍정적으로 살아’라든가 ‘좋게 생각하는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틈만 나면 내뱉었다. 그게 일명 꼰대의 대표적인 특징인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배낭의 잠금장치를 가슴에 둘러 채우는 동안에도 주변을 서성이며 뭐 하나 더 도와줄 거 없는지 살펴보고 있는 저 행동마저도.

 

“정말로 너 혼자 보내도 될지 모르겠다. 뭘 알고나 가는 건지 싶고…….”

 

“어제 아저씨의 그 느려 터진 노트북으로 다 알아봤어요. 걱정 마요.”

 

“어떻게 걱정을 안 하겠니.”

 

나한테도 아빠가 있었으면 딱 이랬을까, 가끔 생각했지만 아닐 것이다. 아저씨는 아저씨이기 때문에 다정한 사람이다. 아저씨라는 사람한테 아빠라는 오물을 묻히고 싶지 않다.

 

“아저씨는 가실 준비 다 하셨어요?”

 

“으응, 알아서 하고 있다.”

 

아저씨는 말을 똑바로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다가, 갑자기 얼른 출발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늦장 부렸다가는 해가 진다고 말이다.

 

인천 연안부두까지 가는 건 별 문제가 아니다. 다행히 두 발로 걷는 게 아니라 전동 킥보드가 있으니, 길만 헤매지 않고 곧장 간다면 부평에서 연안부두까지, 못해도 오늘 안에는 도착할 거였다. 전동 킥보드에 올라타고는 아저씨를 돌아봤다. 고작 하루다. 하루 만에 다녀와야 하는 거리였다.

 

“절대 집으로 들어가지 마세요. 문 열어보지도 마시고요.”

 

아저씨는 마치 학교 가는 자식을 배웅하듯 아파트 단지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게 내가 보는 아저씨의 살아있는 마지막 모습일 거라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직감처럼 조금이라도 느꼈더라면 나는 당장 전동 킥보드를 멈추고 달려가 꽉 한 번 끌어안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내려놓고 달려가던 이모를 보고도 아무런 불안도 예지 하지 못했던 나다. 나는 아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휙,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이모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열등한 생물이 인간이라고 그랬다. 근처에 큰 갯가재 식당이 오픈해서 첫날 엄마와 함께 셋이서 갔을 때 식당이 전부 좌식인 것을 알고 돌아오던 길에 내뱉은 말이었다. 사실 그날 하루만 말한 것은 아니다. 열등한 인간. 이기적인 인간. 잔인한 인간. 멍청한 인간…… 존재하는 갖은 부정적인 말들을 인간에게 다 붙여야 속이 시원한 이모였다. 그날을 떠올리면 근 이십 년이 지났음에도 가게 사장의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났다. 안타까운 표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었고 ‘아무래도 드시기는 힘들겠는데요’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모는 주인에게 대화를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대화가 아니게 된다는 걸 알아서였다. 이모는 엄마와 나를 옆에 두고 ‘진상’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모는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갯가재 대신 꽃게를 한 박스 샀다. 다음 날까지 손에 게 비린내가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먹었다. 이모가 하는 요리는 언제나 훌륭해서 그 한 박스를 다 먹은 영광의 흔적이었다. 이모는 집에 휠체어가 있으면 요리를 잘하게 된다고 했다. 안타깝다. 이모가 지금까지 있었으면 형편없는 내 요리 솜씨를 보고 그게 틀렸다는 것을 알 텐데. 그럼 자신의 요리 실력을 조금 더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이고 요리사를 계속 꿈꿀 수 있었을 텐데.

 

도시가 드라마 세트장 같다. 잘 꾸며져 있지만 실제로 사람은 살지 않는다. 세계 질병관리본부는 인구의 1/4인 25억 인구가 사망했다고 집계했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집계로 실제 사망한 총비율은 인구의 절반이다. 어느 곳에서는 질병관리본부의 집계가 ‘질병’만 추산했다고 주장했다. 내 생각에는 인터넷의 집계가 맞다. 그러니까 인구의 반이라는 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한 명은 사라졌다는 건데 주변만 둘러봐도 모두가 온전히 살아남은 집단이 없다. 원인 불명의 전염병으로 인류의 절반을 잃고 내가 가장 어이없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란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부터 익숙한 환경이었다는 듯이.

 

지구 인구가 반이나 사라지면 나는 지구가 가지고 있던 환경문제라든가 식량문제가 완전히 해소될 줄 알았다. 내가 초등학교 때 발표한 <지구 살리기 프로젝트>의 제1안이 ‘지구에 사는 인간을 반으로 줄이자’였으니까. 물론 죽이자는 건 아니었다. 다른 행성에 나눠서 살자는 거였지. 하지만 내 추측은 틀렸다. 지구는 이미 인간 말고 대부분이 멸종된 상태라서, 남아 있는 것을 관리할 인간이 사라지면 모든 게 인간과 함께 속수무책으로 사라지리라는 것을 몰랐다.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지고, 가축에게 줄 사료가 사라지고, 가축을 기르는 손길이 없어지고 그렇게 가축이 죽고 농산물이 죽고. 그런 연쇄작용이 그날 이후로 계속해서 퍼져나가며 지구는 결국 그 전보다 더 살기 힘들어졌다. 지구의 생태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피라미드가 아닌 단 하나의 수직이었으므로, 그 선이 끊기고 무너지면 그대로 모든 게 사라진다는 것을 지구인들은 진작 알았어야 했다. 사람이 사람을 착취해 불균형을 견디고 있었음을 말이다.

 

그래도 인류가 줄어서 좋아진 것은 있다. 공기. 인천 하늘이 이렇게 맑아질 거라는 걸 이모가 알았더라면, 그때 나를 두고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달려가지 않았을 텐데.

 

구글 지도를 따라 텅 빈 4차선 도로를 전동 킥보드로 달렸다. 도중 엔진 소리를 들은 건지 창문 밖으로 눈을 내미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렇지만 서로가 서로를 흘기기만 할 뿐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건물 중 반은 당시의 화재로 소실된 걸 복구하지 않고 뼈대를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었다. 신에게 버림받은 인간이라거나 우리는 멸종되어야 한다라는 종말론적인 현수막도 보였고 지금 구원받아야 천국 갑니다! 감염된 사람들은 무신론자였다!라는 현수막도 종종 보였다. 기회를 노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었다.

 

두 시간을 조금 넘게 달려 도착한 곳이 인하대병원이었다. 대부분은 불이 꺼져 있었지만 로비와 병실 몇 개에 불이 드문드문 켜져 있었다. 아마도 대부분이 노인들일 것이다. 보건센터에서 보호자를 잃고 홀로 생활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대학병원으로 불렀다. 그날로부터 일 년이 지났을 때일 것이다. 어려서 대부분의 기억이 희미하고 또 제멋대로 얽혀 있지만 어떤 장면들은 기억의 판에 압정으로 박아둔 것처럼 선명한 것들이 있다. 그건 내 기억의 흐름과 전혀 상관없이 동떨어진 항성 같은 기억이다. 옆집에 살았던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는데 할머니가 발원체였다.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루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던 터라 발원체가 되고 나서도 달리지 못했다. 엄마랑 비슷한 격이었다. 할아버지는 다행히도 물리지 않고 할머니를 밀어낼 수 있었다. ‘사실은 같이 죽고 싶었단다. 이 할아비는 할멈이랑 같이 가고 싶었거든.’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떠나기 전에 장롱 속에 오래 있어 나프탈렌 냄새가 풀풀 풍기는 남색 한복을 입고 나에게 말했다. 옆집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지 않는 몇 안 되는 사람이어서, 내 목소리가 조금만 더 컸다면 할아버지한테 병원에 가지 않고 나와 살자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면으로 생각하든 할아버지에게는 어린 나나 발원체로 살아 있는 엄마와 함께 있는 것보다 병원이 편할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그렇게 보냈다. 24시간 돌봄이 필요했던 환자들 중 보호자를 잃은 사람들은 병원에서 임의로 안락사를 진행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러니까 병원에 가면 죽고 싶은 사람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구 찾아왔니?”

 

깜짝 놀라 뒤돌았다. 하늘색 카디건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자였다. 나이는 중후해 보였다. 손에는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내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눈을 굴리자, 여자는 나에게 조금 더 다가왔다. 그제야 나는 여자 카디건에 달린 ‘신경외과 의사 박하은’이라는 명찰을 봤다. 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스스로 왜 이러는지 알지 못했다가, 웃으며 나를 지나치는 의사를 보고 알았다. 나는 은연중에 이 의사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설레발친 거다. 의사는 조금이나마 단서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신고하면 어쩌지…….

 

“저, 저……!”

 

그렇지만 일단 부르고 본다. 인류가 지구를 떠나기까지 이틀 남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랬을 것이다. 의사가 나를 돌아봤다.

 

“머, 머, 먹을 거 좀 있나요?”젠장. 이모가 말은 똑 부러지게 하랬는데.

 

병원은 생각보다 더 사람이 없었다. 안내데스크에도 아무도 없었고 접수처도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전동 킥보드를 로비 안에 세워두고는 의사를 따라 들어갔다. 의사가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몇 살이니?”

 

“어, 그게…… 스물셋인가 넷인가 해요.”

 

의사는 안타까운 탄식을 내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어렸구나. 지금도 어리고.”

 

승강기에 타고 의사가 4층을 눌렀다. 한국에 하루 동안 정전이 일어났을 때 유일하게 켜 있던 곳이 병원이었다. 감염된 사람들은 빛을 보고 달려든다. 시각이 둔해져서 구분할 수 있는 게 빛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밤새 병원으로 몰려들었던 감염자들은 개미떼와도 같았다. 감염 증세가 나타났던 사람들이 전부 병원으로 갔으니, 병원에만 비대하게 인구가 많았다. 병원에 갔던 사람들은 전부 죽었다. 그래서 사상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도 병원이었다. 그때 우리는 병원에 가지 못했다. 가지 않은 게 아니라 가고 싶었는데 가지 못했다.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가 낙오에서 귀결된 버림이라니.

 

“라면 좋아하니?”

 

“네, 네!”

 

라면의 단어를 듣자마자 침부터 고였다. 식욕이라는 게 제일 먼저 멸망한 줄 알았는데.

 

4층 로비의 긴 테이블에 앉아 의사가 끓여 온 라면을 먹었다. 의사는 맞은편에서 두 자리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병원에는 열아홉 명의 환자가 남아 있다고 했다. 다 떠나고 남은 숫자였다. 전부 보호자를 완전히 잃은 노인들이었다. 이 노인들은 거동이 불편해 멀리 나갈 수가 없다. 어떤 이들은 기계가 없으면 5분도 버틸 수 없었다. 의사는 4층 중환자실에 환자를 모두 몰아넣고 관리했다. 하지만 내가 라면을 다 먹고 4층을 살펴볼 때 나는 층 데스크에서 스무 개의 내진 기록표를 보았다. 딱 오늘 아침까지 기록된 건 스무 개…… 하나는 의사 본인 건가. 하지만 의사 이름은 없다. 대신 ‘박하와’라는, 의사와 비슷한 이름이 있었다. 기척이 들렸다. 보고 있던 내진 기록표를 내려놓고 급하게 액자를 집었다. 그 모습을 보더니 의사가 웃었다

 

“나도 그 사람 알지? 내 친한 선배였어.”

 

나는 그제야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의사와 우주복을 입은 여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어딘가 낯익은 얼굴인데 내가 이 얼굴을 어디서 봤더라.

 

“볼 때마다 자랑스러워. 인류의 구원이 됐으니까. 비록 선배도 안타깝게 갔지만…… 자신의 임무를 끝까지 수행한 건 변함없으니까.”

 

의사의 말을 듣고 기억났다. 그 사람이구나. 행성을 발견했다던, 그렇지만 이미 발원체여서 그곳에서 죽었다던.

 

의사가 다가와 액자를 쥐고 있는 내 손을 감싸 잡았다. 따뜻한 손이다. 체온이 있는 손이 나를 감싸 잡은 게 실로 오랜만이어서, 나는 하마터면 덥석 의사를 끌어안을 뻔했다. 혹은 그렇게 안기고 싶었다. 의사의 손은 굳은살로 투박했다. 하지만 손과 정반대로, 마치 나를 몇십 년 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측은하고 다정하게 그렇지만 연민과 동정이 섞이지 않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행동이다. 의사는 이틀 후에 마지막 수송차량을 타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곧바로 혼자 가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혼자 간다고 하면 혼자 남는다는 말이 되어버리니까. 의사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다. 아직은 의사를 믿을 수 없다.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대답하려고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아 고개만 끄덕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게 숙였다. 대답을 하면 눈물이 나올 것이다. 참아야 한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의사는 나에게 원한다면 병원에서 하룻밤 자도 좋다고 말했다.

 

엄마는 초등학교 입학식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닐 때에는 한 번도 온 적 없었다. 어린이집은 입구에 돌계단 다섯 개가 있었고 유치원은 애들이 말을 가려하지 않아서 안 된다고 이모가 말했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물론 지금도 제대로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모바일 입학통지서에 적힌 ‘부모님 참가’ 란을 확대해 이모에게 내밀었을 때, 이모는 밤새 주방 식탁에 앉아 통지서를 바라보다 결국 참가에 표시했다. 그날 엄마는 두꺼운 보라색 니트에 하얀색 중절모자를 썼다. 아침부터 드라이를 해줘 모자 밑으로 예쁘게 내려앉은 머리카락과 이모가 골라 바른 붉은 립스틱이 예뻤다. 이모는 엄마가 탄 휠체어를 끌고 운동장에 들어섰다. 입학식이어서 사람이 많았는데 엄마는 고만고만했던 아이들 중에서도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는 ‘승희야’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는 아이들이 많은 운동장을 신나 했다. 연신 웃으며 내 손을 붙잡고 신난다는 말을 반복했다. 엄마와 이모는 스탠딩 한 편에 자리 잡고 나를 바라봤다. 엄마는 계속해서 박수를 쳤고 내가 그런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었을 때 뒤에 있던 애가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던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쟤네 엄마 이상해.’그리고 그 엄마가 뭐라고 했더라. 아마도 ‘조용히 해, 쳐다보지 마.’라고 했을 것이다.

 

의사는 나에게 따뜻한 유자차를 주었다. 부드러운 극세사 담요와 간단한 요깃거리도 제공했다. 하룻밤 지낼 여유가 내게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의사가 내게 베푸는 친절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의사를 보면 이모가 생각났다. 왜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담요를 덮고 깜빡 잠든 시간은 대략 세 시간 정도였다. 하루가 지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걸까, 시간이 있으면 조금 더 쉬고 싶은데, 라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몸은 빠르게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둑어둑해진 병원 창밖을 바라보며 계단을 밟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야 할 텐데. 그리고 꼭 우주선에 탑승하기를 바란다고.

 

“안 돼! 나가지 마!”

 

의사의 목소리였다. 나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반쯤 내려갔던 계단에 서서 허리를 굽혀 3층 복도를 바라봤다. 복도는 컴컴했고 오로지 한 병실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거기서 들린 소리였다.

 

“하와야!”

 

문이 열리며 한 여자 아이가 뛰쳐나왔다. 아이는 계단을 향해 망설이지 않고 달려왔다. 그리고 나와 마주쳤다. 나는 아이를 보고 숨을 들이켜고는 멈췄다. 하얀 눈동자, 하얀 몸, 눈썹과 머리카락이 없는……. 의사는 다급히 아이를 쫓아 나왔다가 나를 보고는 손을 등 뒤로 감췄다. 그리고는 더듬더듬 내게 말했다. 내가 저 아이를 죽일 거라는 듯이.

 

“괘, 괜찮아. 얘는, 그러니까 얘는 너를 해치지 않아…….”

 

어쩌면 의사와 말이 잘 통할지도 모르겠다.

 

 

 

 

* *

 

 

 

 

‘사람들은 편의가 얼마나 이기적인 장애를 낳는지 알아야 한다.’ 

 

이모 에세이의 첫 문장이었다. 직업은 아니었고 내 기억으로 밤마다 맥주 한 잔씩 하며 블로그에 취미로 적었다. 이모는 엄마와 연년생이었다. 이모가 동생이었고. 엄마가 남들보다 하나 더 많은 염색체를 달고 태어나자 나의 외조부모님들은 급하게 이모를 가졌다고 들었다. 이모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책임자였다. 맞벌이였던 외조부모님들을 대신해서 엄마의 눈과 귀와 손과 발이 되어주던. 이모 서랍에는 각종 요리사 자격증과 불어로 된 합격증이 있었지만 이모는 한국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엄마가 홀로 살아갈 수 있었다면 이모는 나를 만나기도 전에 프랑스로 떠났을 것이다. 이모는 엄마 탓이 아니라고 말했다. 빌어먹게 휠체어도 올라가지 못하게 계단을 놓은 식당들과 지역을 넘나들지 못하는 장애인 택시와 보호자가 없이는 몇십 대씩은 기본으로 보내야 하는 지하철이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이모가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확실한 건 적어도 이모는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힘든 건 또 별개의 일이지만.

 

나는 의사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이고 손톱을 뜯는다. 나도 당신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번에도 말 대신 휴지 한 장을 뽑아 의사에게 내밀었다. 의사는 울지 않으려고 숨을 가다듬었지만 결국 휴지로 눈물을 훔쳤다. 의사는 내가 그 아이에게 겁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필요했던 것이다. 이모가 블로그에 자신의 일기를 썼던 것처럼.

 

“그래서 죽일 수 없었어. 태어난 지 고작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내가 죽이지 않아도 곧 죽을 것 같았거든.”

 

남편이 아이를 물었다. 남편은 발원체 였는데 병원에 환자가 많아 의사는 몰래 약품을 챙겨 집에서 남편을 돌봤다. 남편은 처음 증상을 보이고 열흘 뒤에 죽었다. 자정 즈음이라고 그랬다. 의사는 그때 동시다발적으로 죽어가는 환자들로 병원에 붙잡혀 있었다. 손을 쓸 수 없이 심장이 멎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의사는 남편 걱정을 했다. ‘하지만 걱정한다고 당장 집에 달려갈 수 있는 건 아니었어.’ 기어코 병원에 실려 왔던 모든 환자들의 숨이 멎고 그들의 시체를 수송하는 것까지 도운 후에야 집에 갈 수 있었고 죽어 있는 남편을 봤다. 의사는 사망신고를 하지 못한 채 울었다. 십오 년을 연애 후 결혼했던 사람이라고 했고 하와가 태어난 지 고작 한 달이 된 때라고 했다.

 

‘결국 그렇게 다 죽었지만 어쩌면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몰라. 남편에게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이이는 살았을지도 몰라.’

 

아니에요. 그래도 죽었을 거예요. 단지 쓸쓸하게 죽어간 게 미안해서 그런 거잖아요 마지막 순간에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못한 걸,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지 못한 걸.

 

옆집에 맡겼던 하와는 그날 아침에 집으로 데리고 왔다. ‘미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이라는 말을 하면서 아빠의 마지막만큼은 아이에게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는 그때 물렸다. 요람에 두고 아주 잠시 한눈을 팔았을 때 죽었던 남편이 눈을 뜨는 바람에.

 

“이 아줌마가 참 이기적이고 고집스럽지.”

 

하지만 나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살아가려면 때로 어떤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워져야 한다.

 

“연안부두에 일시적으로 혈색을 돌게 하는 한약이 있대요. 예전에 치료제인 줄 알고 퍼졌던…….”

 

의사가 “알아, 나도 들은 적 있어.”하고 대답했다.

 

“저는 그걸 찾으러 나왔어요. 그게 필요해서.”

 

의사가 나와 눈을 맞췄다. 내가 당신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안 것이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가족이니?”하고 물었다.

 

“엄마요.”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말없이 나를 꼭 끌어안았다. 아까 느꼈던 손의 온기처럼 따뜻한 품이다. 눈물이 날 줄 알았지만 나지 않았고 단지 졸음이 쏟아졌다. 따뜻하고 포근해서 나는 며칠이고 안겨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잠시, 거실에 웅크려 스스로를 끌어안고 잠을 자던 작은 내가 떠올랐지만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거긴 춥고 여기는 따뜻했으므로.

 

하와는 엄마와 비슷한 상태였다. 내가 손바닥을 내밀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안녕.”

 

킁.

 

“나는 승희야.”

 

킁킁. 

 

“하와야.”

 

…….

 

“너도 어이없게 자랐구나.”

 

나는 사람들이 언젠가 이 전염병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알아내야 된다고 생각했다. 죽었다고 판단했지만 자랐다. 어쩌면 진화일지도 모르는 무고한 사람들을, 전부 쏴 죽인 죗값을 산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살려고 그랬다고 한다면 나는 이 죄를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하와와 나는 4층 로비에 앉아 의사를 기다렸다. 해가 졌다. 의사는 조금 전 날이 곧 어두워질 테니 병원에 함께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길동무가 되어주겠다고 말했다. 의사는 카트를 끌고 열아홉 명의 노인이 누워 있는 응급실로 들어갔다. 하와는 내 오른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하나를 꺼내 하와에게 내밀었다. 며칠 전 만났던 아주머니가 챙겨 준 사탕이었다. 하와는 사탕을 바라보기만 했다. 껍질을 대신 까줬다. 사과 맛의 붉은 알사탕을 내밀었다. 하와는 바라보기만 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의사는 한 시간 가량 뒤에야 응급실에서 나왔다. 응급실 불을 전부 다 끈 채로, 문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꾸벅 인사를 하고 문을 완전히 닫았다.

 

의사는 하와를 3층 방에 가두고는 맡은 편 병실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침대 두 개를 붙여 우리는 천장을 보고 나란히 누웠다. 의사가 내 손을 잡았다. “용케 병원에 오지 않고 살았구나.”의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가고 싶었는데 못 갔어요.”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던 그날의 일이다. 말을 할 사람이 없기도 했다. 아저씨가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금세 지웠다. 아저씨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눈치였으니까.

 

“정전이 났잖아요. 증상이 나타나던 열흘 째 되던 날. 그래서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안 움직였어요. 그래서 못 갔어요. 휠체어를 끌어야 했거든요.”

 

이모는 몇 번이고 119에 전화했지만 이미 그곳도 불통 수준이었다. 그러다 112에 전화를 걸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환자를 이동시킬 수가 없으니 도와달라고 소리도 쳤지만 경찰은 끝내 오지 않았다. 어떤 말을 했는지는 듣지 못해서 모른다. 다만 이모가 휴대폰에 ‘사람이 죽어간다고!’하고 소리쳤던 기억은 난다.

 

“도와달라고 외쳤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제 기억으로는 그냥 정신이 없었던 것만 알아요. 복도에서 사람들이 사람을 한 명씩 업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어요. 이모도 엄마를 업으려고 했지만 이모는 작았거든요. 죽은 것과 다름없이 늘어진 엄마를 업고서 병원까지 달려갈 힘이 없었어요. 이모는 저를 데리고 남자라도 데리고 오려고 밖으로 나갔지만 밖은 더 끔찍했어요. 한 번 이모 손을 놓쳤어요. 사람들이 밀쳐서 넘어졌던 기억이 나요. 제가 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모는 허겁지겁 달려와 저를 끌어안았어요. 집에서 엄마가 죽어 가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엘리베이터만 없었어도 갔을 거예요. 누구의 도움 없이도. 아니면 계단에 휠체어가 내려갈 수 있도록 무언가의 장치만 있었더라도…… 그랬다면 엄마도 병원에서 총을 맞아 죽었겠죠. 엄마는 갈 수 없어서 죽지 않았어요.”

 

의사는 붙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어떤 위로도 담겨있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는 사람의 행동 같았다.

 

엄마가 증상을 보이고 죽기 전까지, 이모는 엄마가 있는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 방 앞에 쭈그려 앉아 책을 읽거나 게임을 했다. 이따금씩 문을 두드리고 ‘엄마?’하고 불렀고 머지않아 ‘엉, 승희야.’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엄마는 늘 나를 친구처럼 불렀다. 그게 좋았다. 엄마에게 딸이 아니고 친구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엄마의 어렸을 적 앨범에는 이모 외에 친구와 찍은 사진이 없었으니까. 내 유전자의 반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내가 추측할 수 있는 건 엄마가 원해서 나를 갖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이상의 어떤 생각도 일부러 하지 않았다. 다섯 살 때인가. 아마도 어린이집에 다녀왔을 때이니 그때가 맞을 것이다.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이모는 편의점에서 소주 다섯 병을 샀고 그날 온종일 그 다섯 병을 다 비웠다. 어떤 기념일인 것 같았다. 기념적으로 개 같은 날.

 

새벽에 눈을 떴다. 의사는 자고 있었다.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웅크렸다. 엄마와 손잡고 서본 적이 없다. 이모는 내가 조금 더 커서, 그러니까 엄마만큼 커지거나 엄마보다 커지면 힘이 생기니 그때 엄마의 손을 꽉 붙잡고 설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엄마만큼 큰다는 건 너무 먼 미래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누웠다. 그럼 함께 서 있을 수 있으니까.

 

‘엄마, 천장에 거울을 달아야겠어. 그러면 이렇게 누워 있는 우리가 보일 거야. 그렇지?’

 

‘엉, 승희야.’

 

그러다 잠이 오면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는 말없이 내 등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내 등을 툭, 툭, 치면서.

 

‘승희, 등. 숨소리.’

 

‘엄마도 배. 엄마 숨소리.’

 

의사는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나는 오랜만에 맡는 기름 냄새에 홀리듯 3층 로비로 나왔다. 의사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사용해 요리를 하고 있었다. 요리라고 해봤자 달걀과 통조림 볶은 것 따위였지만. 테이블에는 달걀프라이와 찐 옥수수, 참치 캔을 넣어 만든 샐러드, 그리고 인스턴트 수프 3개가 차려져 있었다. 의사는 내게 하와를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셋이 식탁에 앉았다. 의사는 웃으며 분주하게 수저를 쥐었다. 웃는다. 과도할 정도로 밝게. 어서 먹으라고 내 등을 쓸어내리고는 숟가락을 들어 수프를 떴다. 하와에게 내밀었다. 기억났다. 의사에게서 느껴지던 기시감. 정성스러운 식탁과 다정한 손길.

 

“먹지 마!”

 

의사의 손을 내리쳤다. 숟가락이 바닥으로 굴렀다. 의사는 내 버릇없는 행동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먹지 마, 승희야!’

 

그날 이모는 자신이 기껏 한 카레를 전부 버렸다. 다섯 살이었나, 네 살이었나. 젠장,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맛있게 먹으라고 웃던 이모는 결국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 세상이 힘든 건 세상의 탓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는 건 본인의 몫이었다. 나는 이모를 원망하지 않는다. 이모는 버텼다. 이모가 연애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은 있었을까. 어쨌든 누구라도 이모에게 딸린 두 식구를 환영하며 맞아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사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본인의 자리로 몸을 원상복귀시켰다. 병원이 적막하다. 4층에서 들려야 할 환자들의 기계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대로 식탁에서 벗어났다. 병원에서 나갈 생각으로. 하지만 곧 뒤에서 들리는 ‘탁’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렸다. 의사는 두 손에 깨끗하게 비운 그릇을 쥐고 있었다. ‘왜’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내 행동을 주체할 수 없다. 울고 있고 의사를 향해 왜 그랬느냐고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그러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의사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나를 처음 봤을 때 지었던, 측은하고 다정하게 그렇지만 연민과 동정이 섞이지 않는 눈빛이었다.

 

“없어…… 나도…… 찾았지만…… 그런 약……”

 

의사가 피를 토해냈다. 테이블에 엎어졌다. 아무런 미동이 없다. 하와가 의자에 앉아 나를 가만 쳐다봤다. 하얀 사람의 모습으로. 하와의 등 뒤 창문으로 아침 해가 내리쬈다. 뒷걸음질 치다 의사 옆으로 내내 가지고 있던 무전기가 보였다. 달려가 무전기를 쥐고 밖으로 뛰었다. 나를 따라오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무언가에 쫓기듯 달렸다. 죽은 의사 앞에 홀로 앉아 있던 하와의 모습을 애써 지우기 위해 가슴이 아플 정도로 달렸다.

 

로비에 있는 전동 킥보드를 끌었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젠장, 젠장, 젠장! 아무리 끌어도 움직이지 않아 결국 전동 킥보드를 버리고 달렸다. 가야 한다. 사람들이 지구를 완전히 떠나기 전에 엄마를 데리고 가야 한다. 우리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해야 한다. 우리도 이곳에 있다고 말해야 한다.

 

한참을 달리다 신발이 벗겨져 도로에 나뒹굴었다. 무릎과 손바닥이 바닥에 쓸리며 미끄러졌다. 이모의 손을 놓쳤을 때와 똑같이 아프다.

 

‘일어나! 일어나 김승희!’

 

그때 외쳤던 이모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섰다. 양쪽 무릎과 손바닥에, 그리고 팔과 종아리에 피가 흘렀지만 개의치 않고 달렸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집에 도착해야 한다.

 

어떤 종교인은 죄 많은 인간을 벌하기 위한 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나는 신이 싫다. 인간에게 다양성을 부여해놓고 그 삶을 장벽과 차별로 만들어놓은 그 잔인함이. 하지만 만일 신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더라면, 정말로 타락한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라면 지금이 기회다. 나에게 용서받을 기회.

 

현관문 앞에는 봉투 하나가 있었다. 아저씨의 이름이 적힌 탑승권이었다. 탑승권을 쥐고서 아저씨 집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다. 아저씨의 이름 석 자를 멋대로 불렀다. 현관문 손잡이를 쥐고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문 너머의 침묵이 주는 공포를 안다.

 

노을이 진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떠나야 했지만 도와달라고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는 반응이 없다. 조용하다. 우주가 지구로 범람한 듯한 고요다.

 

집으로 돌아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엄마와 만났다.

 

동아시아 구역 마지막 우주선 11호기의 출발까지 6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6시간 안에 상하이까지 가는 건 불가능이다. 침대는 이제 나에게 딱 맞는다. 어이없게 자라 버린 몸을 구겨 나란히 누운 엄마의 배를 끌어안는다. 이모가 지금의 나를 봤으면 등짝을 내리쳤을 것이다. 나약해지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겠지. 엄마 휠체어를 끌지 못해 기를 쓰는 나를 보며 콧방귀를 뀌고 ‘휠체어는 강인한 사람만 끌 수 있어’라고 말했던 그때처럼. 등에 손이 닿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엄마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엄마가 손가락으로 내 등을

 

툭, 

 

툭, 

 

친다.

 

“……엄마.”

 

크으……

 

“나 알지.”

 

크……

 

“내 숨소리…… 기억하는 거지.”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어떤 대답이 들리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엉, 승희야. 엄마는 안다. 엄마의 몸은 기억하고 있다. 내 숨소리를. 그래서 물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함께 할 수 있다. 내 숨소리를 기억한다면 사람들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 함께 할 수 있다. 엄마는 나를 기적이라 불렀다. 내 탄생을 그렇게 명하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불행도, 기적도 되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가 원한다면 기꺼이 기적이 되어줄 수 있었다.

 

피 굳은 손등으로 눈을 벅벅 문질렀다. 자리에서 일어나 무전기를 켠다. 시간 안에 우리가 가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면 된다. 우리는 강해서 살아남았다. 이 땅에 남아있는 누구라도 좋으니, 내 목소리를 들어주기를 바란다. 무전기에 대고 입을 연다.

 

“아직 이 행성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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