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시간을 접으며

2019.03.16 12:0103.16

칸마다 바르게 늘어선 고딕체 숫자들은 아직 채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상태다. 양반다리를 한 다리가 저린지 그녀는 이따금 자세를 뒤척인다. 쉼 없이 달력 종이들을 바스락거리는 그녀다. 그녀의 시선은 손끝에 달라붙어 얽힌 숫자들을 떼어낸다. 계속해서 침을 적신 손톱 밑은 불어터져 있다. 좁은 골방 한 가운데에 그녀가 앉아있다. 이젠 쓸 사람도 없는 방석 하나를 더 겹쳐 앉았지만 여전히 꼬리뼈 부근이 뻐근했다. 그녀는 반짇고리에서 기다란 스프링을 집어 든다. 종이 가장자리의 구멍들에 말려들어가는 스프링은 언뜻 공회전만 거듭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밥그릇에 물을 따르려다 멈칫한다. 두 모금만 겨우 방울져 떨어질 뿐이었다. 예정대로 남편이 돌아왔다면, 새벽 약수터에서 떠온 물로 페트병은 가득, 차있을 터다. 하지만 지금은 시(詩)를 끼적인 그의 빛바랜 종이만 남았다.

 

노란 노끈으로 단단히 묶은 달력 묶음을 그녀는 양손에 쥐어든다. 여섯 시간 넘게 한 자리에서 꼼짝 않은 몸은 목각인형 마냥 삐거덕거린다. 그녀는 집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거리의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지난날에 밀린 일감을 처리하느라 쉴 새가 없었다. 공장 과장에게 겨우 사정사정해서 다시 일감을 받아올 수 있었다. 떼어낸 굳은살이 다시 곰팡이처럼 핀 발바닥이 욱신거린다.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녀가 앉을 자리는 없다. 턱밑까지 여민 보라색 패딩이 덥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 없이 꽉 들어찬 사람들의 온기 때문이다, 식지 않는 산 자들의 온기, 이다.

 

그녀는 조금씩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손잡이를 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사람들 사이에 선 자신에 이제 익숙해진 그녀다. 갈 곳 없는 눈길은 자꾸만 사람들의 가방이나 핸드폰 따위를 오간다. 유행 액세서리 마냥 자주 보이던 노란 리본은 때가 탄 모습으로 이따금 눈에 띌 따름이다. 그녀는 고개를 돌린다. 옆 남자의 진한 향수냄새가 거슬렸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호흡을 멈춘다. 조금씩 입 안의 들숨을 내보낸다. 남편이라면 향수 냄새를 묘사한답시고 옆 남자의 몸에 바짝 붙어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었을 것이다. 항상 갖고 다니던 A5크기의 낱장에 모나미153 볼펜을 휘갈기면서. 그렇게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고, 그녀는 그에게 그 짓 좀 그만하라고 성화를 냈을 것이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는 중얼거렸을 것이다. 시를 써야 해. 그리고는 아내의 화를 듣기 싫어 달력 묶음 두 개를 들고 쌩하니 먼저 가버렸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남자가 어떻게 그 섬까지 가서 일을 할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향수를 풍기던 옆의 남자가 내린다. 그녀는 다시 정상적으로 숨을 쉰다.

 

 

 

 

그녀는 집 안을 노려본다. 새벽 어스름이 발을 들인 집 안은 어둡다. 낯선 냄새가 한가득 코끝을 간질인다. 체육관 한 귀퉁이에 남이 빌려준 담요를 덮고 누운 채 한밤중에 깼던 날을 기억한다. 팔꿈치를 긁적이던 그녀가 움직임을 멈춘다. 꿈에서 얼핏 본 단어가 기억난 때문이다. 잊어버릴까 그녀는 서둘러 남편이 쓰던 종이에 단어를 적는다.

 

누런 눈.

 

노란 눈인지, 싯누런 눈인지, 샛노란 눈인지 뭔지 헷갈린다. 어쨌든 비슷한 의미의 단어였다. 그녀는 그렇게 기억해낸 남편의 시어(詩語)들을 훑어본다. 개중엔 단어 말고도 어미나 조사 따위들도 섞여 있다. 문득 거기서 냉기를 머금은 짠내가 풍겨온다. 그녀는 충동적으로 종이를 구석으로 치워버린다. 구름 속으로 기운 달의 형체가 바닥에 어른거렸다. 세월호라는, 그 배에서 남편은 밤낮 가릴 것 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무 의미 없는 대화도중 느닷없이 그는 다음 연을 시작할 첫 시어를 찾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가 방금 기억해낸 ‘누런 눈’도 그것들 중 하나였다. 그러면서 그는 완성한 부분까지의 시를 외는 것이었다. 꽤 긴데도 그는 글자 하나 틀린 적이 없었다. 시는 가족 이름처럼 혀에 달라붙어 있어야 생생함을 잃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시 따위의 예술과는 거리가 먼 그녀는 단지 흘려들었다. 다음 달엔 이사를 가야할 것 같다는, 그런 말로 대화를 끝냈던 그녀였다.

 

종이에 적힌 시어들을 바라본다. 그가 배에서 읊어주었던 시가 형체 없이 바스러진 모습이다. 일순 그 위로 그의 잿빛 무른 피부가, 허물어진 몸이 겹쳐 보인다. 바닷바람에 곱은 그녀의 두 손이 떨렸다. 머릿속은 달력의 마지막장을 넘기면 나타나는 하얀 면지 같았다. 남편의 눈은 감겨 있었다. 누런 눈. 그녀는 중얼거린다. 그때 남편의 눈은 어땠을까. 시가 되지 못한 시어들로 하얬을 것 같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의 눈은 항상 불그죽죽했다. 실컷 울고 난 사람처럼. 그러면, 누런 눈은, 누구의 눈이지.

 

그녀는 가슴팍으로 당긴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아직 새벽이었다.

 

 

 

 

공사장을 가로지른다. 물 빠진 주황빛의 포클레인들이 요란하게 난동을 피운다. 그녀가 세들어 살고 있는 반지하 건물에서 불과 한 블록 떨어진 곳이다. 철물점으로 향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재개발 공사가 시작된 곳이다. 아웃라인은 역 근처 낡은 다세대 주택단지까지. 물론 그 안에 그녀의 집이 빠질 리가 없다. 공사 중, 이라는 노란 팻말과 안전표시등이 그녀의 발목에 채인다. 방을 빼야 하는 기한이 언제까지인지 그녀는 기억하려 애쓴다. 집주인은 친절했다. 그녀가 밀린 월세를 내겠다고 한 날, 진도의 체육관에 있어도 집주인 여자는 아무 말 않고 몸 성히 돌아오라고 말했다. 늦은 밤 그녀가 달력 자투리 선을 자르던 커터칼로 무작정 손목을 그었을 때도 괜찮다고, 괜찮다며, 괜찮다고, 했다. 아침에 창문으로 드는 햇볕보다 집주인의 배려가 더 따뜻했다. 하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다고, 집주인은 말했다.

 

구청에서 하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정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팽목항에 다녀간 수많은 정치인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더 좋은 데 있을 거예요. 나랏일이라니까, 일단 임대 아파트라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기다리라고 했다. 그녀의 경험으로, 기다림은 그다지 나쁜 것이 아니다. 일감 삯을 떼여도 일주일, 이주일 후엔 받는다. 남편의 알아들을 수 없는 시도 계절이 바뀌면 의미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1년을, 2년을 기다려도 그들은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완성하지 못한 시를 바다 속 어딘가에 두고 온 남편뿐이다. 신혼 때부터 살던 집을 삼킨 쥐꼬리만큼의 배상금이다. 그녀는 또 뭘 기다려야 할 지 생각해본다.

 

철물점의 주인은 여느 때처럼 자기 손바닥만 한 TV를 켜둔 채 졸고 있다. 볼록 진 화면에선 오후 다섯 시 뉴스가 흘러나온다. 세월호 인양을 어떻게 할 것인가, 를 두고 앵커 양쪽에 앉은 교수와 선박 전문가가 설전을 벌인다. 그녀가 달력을 묶을 노끈 세 무더기를 집어 주인 남자에게 돌아올 때까지도 그들의 설전은 여전하다. 언제 해야 안전하다,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어차피 지금 해도 시신은 찾을 수 없다, 미루자....... 주인 남자가 거스름돈 오백원을 내민다. 문득 그녀는 ‘동전 하나’를 떠올린다. 수화기 너머로 남편이 들려주었던 시엔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다. 동전 하나. 그녀는 라이터 하나를 달라고 한다. 철물점을 나오지만 포클레인 소리는 여전하다. 그녀는 귀를 막는다.

 

 

 

 

그녀는 누런 눈, 타르, 의자, 커서, 쓰레기통, 그리고 동전 하나가 적힌 종이를 내려다본다.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을 보는 기분이다. 남편이 또 어떤 난해한 시를 지었던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여자는 한 번도 시를 읽은 적이 없다. 시란 달력에 적힌 숫자들처럼, 좌우나 위아래로 끊임없는 팽창을 거듭하는 액체괴물 같은 것이라는 게 그녀가 언젠가 새벽에도 불을 끄지 않은 채 시를 끼적이는 남편의 등에 대고 말한, 그녀의 시학(詩學)이었다. 무작정 단어들을 연결해본다. 오락가락 서로 의미가 연결되지 않는 단어들이 한 줄씩 이어진다. 남편의 시를 흉내내는 건 어렵지 않다. 보는 사람이 이게 뭔 개소린가, 하면 된다. 그러고 보면 남편도 비슷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좋아하는 음식도, 옷도, 취미도 뚜렷하지 않았다. 그녀가 하자는 대로 했을 뿐이었다. 시를 쓰는 남자, 그리고 돈 버는 것에 대한 욕심이 없는 인간, 이라는 점을 제외하곤. 아, 그리고 아침밥은 항상 자신이 차리던 사람이었다는 것.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는 새벽에 일어나 시를 읽거나 쓰곤 했으니 말이다. 새삼 그가 일주일에 두세번 꼴로 내놓았던 삼층밥의 설익은 맛이 혀끝을 간질였다.

 

달력을 묶는 데 쓰고 남은 자투리 노끈을 치우다 라이터를 발견한다. 음식점에서 나눠줄 법한 싸구려 라이터다. 엄지로 탁탁 불을 켠다. 종잇장 같은 불꽃이 솟는다. 그녀의 짤막한 호흡에 부딪친 불꽃이 비틀거린다. 촛불집회에 친구와 함께 다녀왔다는 집주인 딸의 말을 기억한다. 한겨울, 그녀는 몸살 때문에 한 번밖에 가지 못했다. 집주인 딸은 친구와 싸웠다고 했다. 친구는 유명한 가수를 보러 갔는데 막상 그날은 모두발언 시간과 시민단체 공연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재미없다, 시간만 날렸다는 친구의 말에 발끈한 집주인 딸이 오는 내내 말다툼을 했다고.

 

그 애는 누굴 좋아하니? 그녀가 물었다.

 

SG워너비라던가, 몰라요.

 

그 날 그녀는 철물점 컴퓨터를 빌려 집주인 딸이 말한 가수를 검색해보았다. 그들이 부른 노래를 들었다. 아는 노래가 없던 차에 익숙한 멜로디 하나가 귓바퀴를 휘감았다. ‘내 사람’이라는 곡이었다. 남편이 자기 직전에 흥얼대던 노래라고, 그녀는 짐작했다. 새로 창을 띄워 가사를 읽어 내렸다. 옛날 같았으면 민망해할 내용이었지만, 그땐 어쩐지 허망한 기분만 가득했다. 민망해할 대상도 없었으므로. 이후로 그녀는 그 노래를 다시 들은 적이 없다. 다만 어렴풋한 가락만 기억하는 게 전부였다.

 

 

 

 

옷장 밑에서 상자 하나를 꺼낸다. 그녀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밀어 넣는다. 건물 뒤쪽의 버려진 공터로 잰 걸음을 놀린다. 서늘한 봄바람이 겨우내 얼어붙은 살갗을 녹이다 만다. 무너진 담장과 지워진 표지판이 눈에 띈다. 공터 구석에 그녀는 상자를 내려놓는다. 여러 겹으로 둘러싼 테이프를 한 겹씩 벗겨낸다. 찌익, 찍 뜯어지는 소리가 살가죽을 벗기는 것만 같다. 상자 안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직 입어보지도 못했다던 남편의 작업복이다. 제주도로 친구들과 함께 유람을 간다는, 남편의 말을 그녀는 되뇐다. 같이 시 쓰고 소설 쓰는 친구들인데, 영감도 얻을 겸, 창작 할 겸 떠난다고. 그녀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며, 거리에 나앉게 생겼는데 제정신이냐고 화를 냈다. 일주일만 있다 오겠다고, 그는 서둘러 말을 맺은 뒤 전화를 끊었다. 이후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그녀는 지금이라도 당장 돌아오라고 소리쳤다. 남편은 그때마다 최대한 빨리 가겠다며, 그녀의 화를 가라앉히려는 양 방금 떠오른 시상을 장황하게 늘어놓곤 했다. 그녀가 기억해내는 시어들은 그 순간의 흔적이다.

 

불을 붙인 라이터를 상자 안으로 떨어뜨린다. 불꽃은 곰팡이 핀 상자를 조금씩 삼키며 몸을 부풀리기 시작한다. 벌건 불길 사이로 건너다보이는 작업복에서 그녀는 눈길을 돌린다. 시신을 건진 뒤 그녀에게 찾아온 건 낯선 회사의 관계자들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제주도의 건설현장 인부로 일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약간의 조의금과 함께 그들은 합의서를 내밀었다. 이번 사고를 이유로 소송을 거는 등 문제 삼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조의금 100만원은 큰돈이었다. 거의 그녀의 한달 치 월급과 맞먹는.

 

아줌마, 아줌마! 거기서 뭐하는 거예요? 여기서 쓰레기 태우면 안 돼!

 

인근 아파트 단지 경비가 나타나 그녀를 향해 다가온다. 그녀는 경비를 멍하니 바라보다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한다. 무어라고 떠드는 경비의 말소리가 점차 등 뒤로 멀어진다. 얼마나 달렸는지, 그녀는 걸음을 멈춘다. 뒤를 돌아본다. 불길은 경비의 바람대로 쉬이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일순 불길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주문을 외듯 그녀는 손톱 크기의 붉은 점 같은 불길을 노려본다. 자기 몸만큼, 저 공터만큼 더 커져서, 활활 타올라 ‘쓰레기’를 치우려는 경비도, 집도, 그냥 다 집어삼켰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다 없던 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벤치에서 몸을 일으킨다. 예의 공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근린공원이다. 꽉 찬 보름달이 그녀의 시선 끝에 걸려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있어봤자 한밤의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연인들이 전부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왔을 때, 그녀와 그가 늦저녁에 자주 들르곤 하던 공원이다. 조그만 연못과 호수를 각양각색의 꽃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곳에서라면 시를 백편도 더 써낼 것 같다고 좋아하던 남편은 한 편도 쓰지 못했다. 라디오를 듣거나 꽃을 실컷 구경하는 그녀 옆에서 그는 빈 종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렇게 쳐다보고만 있어도 돈이 나오면 좋겠다고 비꼬았다. 서점에서 캐셔로 일하던 그녀에게 자신이 쓴 시로 빼곡히 채운 노트 한 권을 건네는 그의 모습을 그녀는 잊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등단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의 실력이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돌아온 신춘문예나 공모전 예심평에서 그의 시는 ‘겉멋만 잔뜩 든, 삶과 죽음을 피상적으로만 해체하는 시’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그때마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심사위원들이 하나 같이 눈깔이 삐었다고 역성을 들어줘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가 돗자리 한 가운데 앉아 빈 종이만 바라보던 곳을 찾아 그녀는 걷는다. 그곳에 가면 그가, 그의 흔적이라도 남아있을 것 같다. 자신이 그를, 그의 흔적을 보고 울지, 아니면 공터에서처럼 지우려고 할지 그녀는 모른다. 이제 싹을 틔우는 나뭇가지들이 머리 위를 가린다. 숨을 들이마실 때 묻어오는 싹들의 생기 어린 냄새가 이질적이다. 삶과 죽음을, 그녀는 의식적으로 보폭을 넓힌다, 피상적으로만 해체하는, 몸에 땀이 찬다, 시, 발을 멈춘다. 앞에 나타난 것은 조그만 돌들로 둥글게 쌓아 만든 연못이다. 옆엔 개나리와 벚꽃나무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녀의 기억대로라면 그들은 개나리와 벚꽃나무 사이에 앉았다. 연못의 수면이 그녀를 비춘다. 언제 그들이 그곳에 앉았느냐는 듯. 헝클어진 머리에 사흘째 입고 있는 셔츠와 카디건 차림의 연못 속 그녀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공원 후문으로 나온 탓에 그녀는 헤맨다. 사거리 대로변인 탓에 오가는 차나 버스가 많았다. 사람들은 상가 불빛들을 차양처럼 쓰고 다닌다. 주머니를 뒤져본다. 철물점에서 노끈을 사고 받은 거스름돈 오백원짜리 하나가 잡힌다. 버스 요금은 그 두 배다. 그녀는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을 지난다. 시민 게시판과 길거리 전봇대는 언젠가 공장에서 돌아오는 그를 배웅하러 나갔을 때와 같이 지저분하다. 그때는 각종 대출과 과외, 학원 전단진가 붙어있었다. 지금은 뉴스에서 들어보았던 각종 정치용어들만 난무한다. 좌파, 극우, 종북, 폭동, 인양, 노란 리본, 탄핵 무효. 그 사이의 노란 리본을 보는 기분은, 꼭 빚쟁이들 틈에 껴있는 남편을 보는 것 같다. 문득 그녀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린다. 대통령 얼굴이 남편의 얼굴보다 더 낯익었다. 희뿌연 남편의 얼굴 위로 입꼬리를 바짝 위로 당긴 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대통령의 얼굴이 겹쳐진다. 그녀는 체육관에 대통령이 나타났을 때, 뛰어다녔다. 대통령에게 한 마디라도 더 뭐라 말하고 싶어 뛰어다녔다. 그러나 헛걸음질이었다. 마이크를 쥔 대통령과 그녀의 사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만큼이나 깊고 넓었다. 대통령은 그 너머에서 관망하기만 했다. 그녀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든다. 시민게시판에 걸린 플랜카드를 올려다본다. 제 8차 촛불집회, 지난 집회다. 그날 그녀는 남편의 물건을 담은 상자를 든 채 이 동네 저 동네 분리수거장을 돌아다녔다. 버릴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태우기가 겁나서였다. 불을 직접 떨어뜨려 재가 되는 것을 지켜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 상자는, 남편의 흔적들은 어디에도 분리수거 되지 못했다. 왜냐면 쓰레기가 아니니까.

 

그녀는 전단지를 떼기 시작한다. 노란리본, 그림과 글자만 남겨놓는다. 다른 부분은 다 떼어 찢어버린다. 정류장에 덕지덕지 붙은 각 정당들의 선전물을 잡아뗀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녀의 우악스런 손길을 피해 멀찌감치 떨어진다. 국민 여러분, 저희가 세월호를 기억하겠습니다....... 세월호 인양보다 시급한 건 민생경제입니다....... 대통령과 여당만 없었다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겉멋’만 든 말들이 허공에서 부서져 내린다. 저희 당을 믿어주십시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들의 죽음을 ‘피상적’으로 멋대로 해체해버린다. 종이가 뜯겨져나간 자리는 지저분하다. 그녀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족족 전단지와 선전물들을 뜯어낸다. 악취가 풍긴다. 죽음을 지우려는 산 자들의 악취다. 그녀는 숨을 꾹 참는다. 더러워 견딜 수가 없다. 언제 발을 삐끗했는지 복숭아뼈 언저리가 뻐근하다. 그래도 그녀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옆으로 소방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스쳐간다. 어디에 불이 난 걸까. 어느 새 그녀는 양팔 가득 종이 무더기를 들고 있다. 몇 장이 팔 사이로 빠져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몸을 굽혀 떨어진 것들을 하나하나 줍는다. 숨었던 참을 간간이 내쉰다. 횡단보도를 가로지른다. 퇴근하는 사람들로 횡단보도는 북적거린다. 초록불은 10초만을 남겨두고 있다. 순간 그녀의 몸이 뒤로 휘청거린다. 눈앞에 전단지 무더기가 흩날린다. 부딪친 남자는 건너편 인도로 건너가기 바쁘다. 그녀는 흩어진 전단지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다 불태워버려야 했다. 그녀는 라이터를 찾아 주머니를 더듬거린다. 아까 공터에 버리고 온 게 기억난다.

 

빠앙, 버스 경적 소리가 길게 그녀를 관통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맞은편 인도에 주저앉아 있다. 그녀가 거리에서 뗀 전단지들이 자동차들 바퀴에 스쳐 휘날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로 전단지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건너편 인도로, 바퀴에 휘말린 채 어딘지 모를 곳으로. 아스팔트 도로 밑에는 죽은 사람들이 묻혀 있다, 는 남편의 목소리가 머릿속 한 구석에 울려 퍼진다. 그거 괜찮다, 고 그녀는 말했다. 여전히 무슨 뜻인지는 몰랐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빨리 돌아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통화를 끊었다.

 

 

 

 

경찰은 그녀에게 무단으로 전단지를 떼어갔다고 한 시간 가까이 잡아두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경찰이 남편의 죽음을, 정확히는 세월호 희생자의 유족이라는 것을 확인하곤 얼른 돌려보냈다. 괜한 뒷말 나오는 게 싫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시커멓게 탄 공터를 지난다. 불이 붙은 마른 잔디는 금세 숯덩이로 변해버린 뒤다. 어제 그 소방차가 정말 왔다 간 모양이다. 공터에서 올라오는 흐릿한 탄내를 그녀는 삼킨다. 주황빛 포클레인들은 어제보다 더 숫자가 늘어난 상태다. 흙을 파내고 철골을 세우고, 사람도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떨지 그녀는 궁금해진다. 남편이 다시 되살아나는 형상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다시 살아나면, 그땐 시 따위 쓰지 않지 않을까. 한 번 죽다 살아난 정신에 시를 지을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그녀는 집 앞에 다다른다. 현관문에 붙은 쪽지를 들여다본다. 내일 점심때까지는 집을 꼭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말이 적혀있다.

 

집 안에 고여 있던 퀴퀴한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찬다. 머리가 어지럽다. 냉장고 문을 열지만 시원한 물은 없다. 다시, 물을 떠올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상기한다. 바짝 마른 입 안을 침으로 애써 적신다. 그녀는 널브러진 방석 두 개를 겹쳐 앉는다. 아직 미처 하지 못한 일감들이 세 무더기나 쌓여있다. 서둘러 해치워야 한다. 다시 달력을 접기 시작하는 그녀다. 종이를 접는 게 아니라 잊을 수 없는 시간을 접는 듯한 기분이다. 반듯하고, 곱게 접어서 영원히 간직하려는 것처럼. 그 안에 남편이 있고, 남편이 쥐고 있던 명찰의 학생이 있다. 그녀는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너머, 돌아온 자와 돌아오지 못한 모두를 응시한다. 아스팔트 도로 밑엔 죽은 사람들이 묻혀 있다, 그녀는 그 말을 곱씹는다. 종이에 적어놓은 다른 단어들을 떠올린다. 여전히, 어디에 무엇이 위치하고 어떤 의미를 이루는지 그녀는 모른다. 그래서 언젠가 그들에게 남편의 시를 읊어줄 것이다. 그래야만, 그 시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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