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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상인의 딸

2019.03.11 08:1503.11

 

부유한 상인의 딸이 죽었습니다.

 

 

상인의 딸은

그 못난 외모 때문에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못 했지만

상인은 딸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성대한 장례식이 열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인의 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못생기기로 유명한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장례식을 찾았습니다.

 

 

열린 관을 통해

그녀의 얼굴을 본 구경꾼들은

넓적하고 곰보가 잔뜩 낀 그녀의 얼굴에

실소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폭소를 자아낸 건

관속에 누운 그녀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천사처럼 새하얀 드레스에

그녀의 얼굴을 덮은 하얀 면사포…

 

 

그 모습은

무덤으로 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결혼을 앞둔 처녀에게나 어울릴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장례식장 안은

웃음 섞인 조롱으로 가득했고

그것은 상인의 가슴을 무척이나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상인은 절대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이어

장례식이 끝나고

딸의 시신이 든 관이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사람들은

또 어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며

상인과 딸의 시신이 든 관을 뒤쫓았습니다.

 

 

그리고 딸이 묻힐 무덤에 도착한 상인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상인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보란 듯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내더니

죽은 딸의 왼손 약지에 끼웠습니다.

 

 

그리고

딸의 관을 붙잡고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폭소하는 가운데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는 도둑이었습니다.

 

 

그날 밤

상인의 딸과 함께 묻힌

다이아몬드 반지를 훔치기로 결심한 도둑은

남들 몰래 그녀의 무덤을 파헤쳤습니다.

 

 

도둑이 관뚜껑을 열자

싸늘한 그녀의 주검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도둑은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지만

그녀의 약지에 낀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입꼬리가 올라갔습니다.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단단한 무언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도둑은

정신을 잃고 죽은 상인의 딸 위로 고꾸라졌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정신을 차린 도둑은

자신이 상인의 딸과 함께 관에 묻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때

관 밖에서 들리는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도둑은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굵고 근엄한 목소리의 주인은

상인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상인이 읽어 내려가듯이 읊는 그것은

성혼 선언문이었습니다.

 

 

도둑은 비명을 지르며 관뚜껑을 걷어찼지만

무겁고 단단한 관뚜껑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https://youtu.be/epaQEccBc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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