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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네 이름을 말하라

2019.03.05 09:3903.05

마을 한가운데에 서 있는 시커먼 나무 기둥 주변에 마른 장작들이 쌓였다. 벌거벗겨진 채 뒤로 손이 묶여 끌려나오는 마녀의 알몸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끔찍한 흉터와 벌어진 상처가 가득한 살에 침을 뱉기 위해 서로를 밀쳐댔다. 사방으로 휘저어지는 초점 없는 시선이 닿을 때마다 신의 이름을 부르고 성호를 그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악함과 저주와 불길함을 마녀에게 몰아넣고 봉인하기 위해 사람들은 안간힘을 썼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어쩌면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필사적으로 시커먼 믿음을 붙잡으려 애썼다.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희망은 연기처럼 빠져나갔다.

 

사람들의 외침 소리가 허술한 창틀 사이로 밀려들어올 때마다 다니엘은 숨이 턱 막혔다. 어서 화형대로 가야 했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공포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몇 번이나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엠마는 다니엘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땀에 전 얼굴로 부풀어 오른 배를 붙잡은 채 엠마는 애절한 눈으로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제발, 가지 말아요.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여기서 나와 우리 아기를 지켜줘요. ! 제발!"

 

엠마의 애원이 비명으로 바뀌며 진통이 시작되었다.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다니엘! 어서 나와요! 준비가 끝났소. 어서, 어서 저 마녀를 불태워 버려야 해!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소. 달빛이 사라지면 끝이야!"

 

미끄러운 엠마의 손이 더 강하게 다니엘을 움켜쥐었다. 다니엘은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엠마의 손목을 붙들고 잡혀 있는 손을 빼냈다.

 

"안돼요! 당신이 가버리면 난... 무언가가 다가와요! 시커먼 어둠이 날 덮치려 해요! 아악!"

 

"마녀의 저주요! 지금 당장 그 마녀를 끝장내야 해! 그 사악한 악마의 혓바닥이 우리 아이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잘 알고 있잖소!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불태워야 해! 엠마. 조금만 참아요. 조금만. 금방 돌아올 거요. 내 손으로 악마의 저주를 끝장내겠소. 우리를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

 

검은 구름 한 점이 달을 슬쩍 덮었다. 조금 흐려진 달빛이 다니엘의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등을 돌린 다니엘에게 엠마가 외쳤다.

 

"다신 날 보지 못할 거예요! 지금 그 문을 열고 나가면! 제발!"

 

"닥쳐!"

 

다니엘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러고는 무서운 얼굴로 엠마를 노려보며 외쳤다.

 

"말조심해! 여자의 목소리에는 사악한 힘이 실린다는 걸 몰라? 감히 함부로 그런 말을..."

 

엠마가 이를 악물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끈적한 침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다니엘의 표정이 무너지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달빛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문 밖에서 다시 한 번 사람들이 외쳤다.

 

"다니엘!"

 

다니엘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기도문을 외웠다. 떨리는 다리로 바닥을 쾅쾅 굴렀다. 잠시 후 신음하는 아내를 가면 같은 얼굴로 바라보며 다니엘이 말했다.

 

"마녀의 저주가 당신을 덮치고 있소. 이것 밖에 방법이 없어요. 다녀오겠소."

 

끼이익. 나무문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 문이 닫혔다. 혼자 남은 엠마의 비명이 어둠을 찢으며 퍼져나갔다.

  


 

기둥에 매달린 마녀의 눈은 이미 뒤집어져 있었다. 턱을 치켜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검은 구름이 보름달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 왔다. 서둘러 달려온 다니엘이 기도문을 외우며 바닥에 놓인 기름통을 손가락으로 휘저어 성스러운 문자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는 통을 들어 마녀에게 끼얹었다.

 

"아아아아아악!"

 

마녀의 비명 소리가 하늘을 찌르자 달을 덮치던 먹구름이 물러났다. 다시금 보름달이 둥그런 모습을 드러내자 마녀의 모습이 달빛 속에 환히 드러났다. 그 모습은 바로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던 마샤의 얼굴 그대로였다. 마샤는 겁에 질린 얼굴로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마지막 힘을 짜낸 듯 처절한 목소리였다.

 

"살려주세요! 전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요! 대체 왜 나를 아아악!"

 

기름이 벌어진 상처에 스며들자 다시금 끔찍한 고통이 되새겨지는지 마샤가 몸을 뒤틀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있던 마샤의 엄마가 터져 나오는 비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입을 찢어! 사악한 저주가 흘러나온다! 누구의 이름을 부를지 몰라!"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디선가 돌멩이가 날아와 마샤 옆을 스쳤다. 그걸 신호로 돌멩이가 하나 둘 마샤를 향해 쏟아졌다. 그 중 하나가 마샤의 얼굴에 맞았다. 마샤가 입 속에 고인 피를 탁하고 뱉어내자 조금씩 다가오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서로 엉키며 뒤로 물러났다.

 

"뭐해! 다니엘! 어서 저 마녀를 불태워!"

 

다니엘은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누구보다 마음이 급한 건 다니엘이었다. 엠마의 비명 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절차를 따라야 했다. 그게 다니엘의 일이었다. 다니엘은 마샤를 향해 외쳤다.

 

"네 이름을 말하라!"

 

마샤는 절망에 빠진 눈동자로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이미 말할 기력도 없어 보였다. 몇 번 힘겹게 숨을 들이 쉰 뒤 마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다니엘, ..."

 

"불경하다!"

 

다니엘이 눈짓하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내가 다시 한 번 기름을 끼얹었다. 비명을 지를 힘도 없는지 마샤는 축 늘어진 고개만 살짝 돌렸다.

 

"네 이름을 말하라!"

 

"..."

 

마샤는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 번 기름이 끼얹어지고 마지막으로 다니엘이 외쳤다.

 

"네 이름을 말하라!"

 

"끼아아아아아"

 

마샤가 허리를 꺾으며 하늘을 향해 소름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이 벌벌 떨며 저마다 악귀를 막는 주문을 외웠다. 그 울림이 달빛이 일렁이는 화형대 주변을 소용돌이쳤다. 물러났던 먹구름이 사방에서 달을 덮쳤다. 다니엘이 다급하게 외쳤다.

 

"전능하신 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옥으로 사라져라!"

 

다니엘이 들고 있던 횃불을 마샤에게 던졌다. 여섯 방향에 서 있던 주변의 사내들이 다니엘을 따라 횃불을 던졌다. 기름먹은 마른 나무에 순식간에 불이 옮겨 붙었다. 지옥에서 솟아오른 듯한 불길에 마샤가 휩싸였다. 혼절하여 쓰러지는 마샤의 엄마를 주변 사람들이 겨우 부축했다.

 

"나는... 죽지... 않는다..."

 

불타는 화형대에서 목소리가 흘러 나왔지만 그건 마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마샤를 마녀로 몰았던 사람들이 기겁하여 뒤로 물러났다.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겨우 다리를 버티고 서 있었다. 날름대는 불길이 다니엘의 뺨을 핥을 듯이 넘실거렸다. 다니엘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신의 권능에 굴복하라! 사악한 악마! 지옥으로 돌아가라!"

 

"불이 나의 생명일지니. 어리석은 자여."

 

새카맣게 탄 마샤의 몸을 감싸며 불길이 더 크게 솟아올랐다. 다니엘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나는 생명의 원천이요.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심연이요. 나는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일지니. 너희는 나를 두려워 할 것이다."

 

"불을 꺼! 불을!"

 

다니엘이 외치자 기름통을 들고 있던 사내들이 이번에는 물을 담아와 불길에 쏟기 시작했다. 그래도 불길은 잦아들지 않았다.

 

"너희는 불로 나를 태울 것이다. 너희는 망치로 나를 짓이길 것이다. 너희는 사슬로 나를 묶어 노예로 삼을 것이다. 너희는 불에 타고 짓이겨지고 사슬에 묶인 나를 두려워 할 것이다. 나약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온갖 이름으로 나를 구속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는다... 내가 죽지 않으매 너희는 결코 이길 수 없다!"

 

불길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온 마을을 뒤덮었다. 다니엘은 자기도 모르게 엎드려 머리를 감쌌다.

 

"두려워하지 말라."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다른 목소리였다.

 

"어찌하여 그들을 두려워하는가. 어찌하여 너희는 너희의 형제를 불태우는가."

 

목을 조여오던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다니엘은 무거운 목소리에 짓눌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라 하였으니 너희는 사랑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눈을 뜨라. 눈을 감고 휘두르는 칼로 너희는 스스로를 벨지니. 눈을 뜨고 속죄하라."

 

다니엘은 고개를 들었다. 광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길은 어느새 사그라들고 새까만 잿더미가 된 마샤만이 화형대 위에 쓰러져 있었다. 잿더미에서 솟아오른 검은 연기가 어디론가 흘러갔다. 다니엘의 집 방향이었다.

 

"엠마!"

 

다니엘은 미친 듯이 뛰었다.

  


 

다니엘이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살을 찢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니엘은 엠마의 이름을 부르며 부술 듯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갔다. 동시에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침실로 뛰어 들어간 다니엘은 순간 멈칫했다. 온통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엠마가 아직 탯줄과 태반이 그대로 달려있는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다. 다행히 산모와 아기 모두 무사했다. 다니엘은 신에게 감사하며 성호를 그었다.

 

탈진한 듯 보이는 엠마가 입술을 달싹였다. 다니엘은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엠마..."

 

"뭐라고?"

 

"...내 이름은... 엠마예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다니엘은 멍하니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살짝 웃으며 안고 있던 아기를 건넸다.

 

"...딸이에요.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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