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 818 L쇼핑몰

 

 

 

 

 

외출은 정말 싫어하는 데, 오늘은 고대하던 신작 게임의 출시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대충 반바지에 반팔티를 걸치고 샌들 신고 팔자걸음으로 느긋하게 걸었다. 집에서 쇼핑 몰이 가까웠기에 금방 가서 구매하고 금방 돌아오면 되는 거였다. 그냥 주세요 하고 돈 주고, 거스름 돈 받고, 게임이 든 비닐봉지 들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오면 되는 거였다. 아주 쉬운 거였다.

 

그렇지만, 나는 봐버렸다.

 

성희였다. 우리 학교 학생회장. 만장일치로 뽑은, 모두가 좋아하고 모두가 인정하는 역대 최고의 학생회장. 성희의 부모님은 학교 이사장이고, 성희의 할아버지는 국가의 녹을 드시는 교육 쪽 큰 어른이고, 성희의 삼촌은 졸업생 출신으로 제자이자 후배들을 육성하는 열혈 교사이고, 볼 때마다 소리소리 지르는 교내 팬클럽까지 존재하는 인재 영재 수재인 자랑스러운 동기. 친절한 성격과 그에 뒤따르는 우월한 외모, 이 모든 건 신이 내린 운명의 금 수저라 모두가 속으로 인정하는 그런 아이.

 

이성희.

 

“어?”

 

그런 성희가, 차가운 눈빛으로, 에스컬레이터 끄트머리에서,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꼬마의 등을 툭 밀치는 광경을 봐버렸다는 말이다.

 

왜? 도대체 왜 성희가?

 

“아!”

 

히엥 하고 울며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꼬마의 허우적거리는 손에 걸린 그 뒤, 또 뒤 남자와 여자가 중심을 잃고 엉거주춤 다 같이 뒹굴었다. 셋은 그대로 에스컬레이터 한편에 서 있던 다른 사람들을 툭툭 치며 데굴데굴 굴렀다. 아수라장이 되고 본격적으로 서로 마구 얽힌 커다란 공처럼 돼버린 이들이 여기저기 부딪히며 에스컬레이터 밑으로 빠르게 추락하는 모습에, 나는 입만 벌린 채 얼어붙어 꼼짝도 못 했다. 쿵. 퍽. 쿠당. 콱. 으아앙. 아악! 이런 씨발! 비명과 혈흔, 욕설과 울음과 고통이 난무하는 가운 데, 내 시선은 다시 원인 제공자인 성희에게로 향했다.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봤어. 봤다고. 분명 밀었어. 저 애를 밀었단 말이야.’

 

나는 봐버렸다. 모두가 총애하고 찬미하는 역대 최고의 학생회장이자 금 수저인 성희가, 꼬마를 밀어버려 수십의 부상자를 발생하게 만든 지금 상황을. 왜? 도대체 왜? 다리가 떨려 더 서있을 수 없었다. 급히 주변의 구석을 찾아 벽에 등을 기대고 무릎을 굽혔다. 하아. 지금 내가 본 게 뭐지? 친구도 별로 없고, 소심한 내게 성희라는 존재는 말 한 번 못 걸 상대다. 학교가 자랑하는 별이자, 모두가 좋아하는 아이니까. 그 애를 잘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심 걸렸던 부분이, 이상하게도 모두가 성희를 회장님이라고 부르던 거였다. 보통 학생회장이라도,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나?

 

모두가, 성희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그대로 집을 향해 걸었다. 비닐봉지를 든 손이 떨렸지만, 떨리라지하고 내버려 뒀다. 두근두근 거렸다. 그 애가 나를 봤을 까? 못 봤겠지? 그 사고의 원인이 자기라는 걸 우연찮게 본 동급생이 있다는 건 전혀 생각지도 못 하겠지? 한숨을 쉬며 쇼핑몰을 나섰다. 어차피, 나와 성희는 어울릴 수 없는 존재야.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중얼거렸다. 금 수저는 금 수저랑, 흙 수저는 흙 수저랑. 태생이 천성이니, 뭐 내가 어떡할 수 있겠어? 걔인지 정확히 봤다고 자부할 수 있어? 고개를 연실 끄덕이며 나는 계속 걸었다. 휴대폰이 진동하며 울렸다. 슬쩍 보니 유일한 친구인 경수다. 뜸을 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톡은 안하고 왜 전화질이냐.” 내 갑작스런 공격에도 경수는 반응하지 않았다.

 

“야, 전화했으면 입을 열어!”

 

“......너 어디냐?”

 

“L 쇼핑몰.”

 

“......그거 사러 갔냐? 오늘 출시하는 그 게임?”

 

“어. 왜 전화했어?”

 

“너, 혹시 거기서 아무것도 못 봤냐?”

 

침만 꿀꺽 삼키고 조용한 내게, 경수는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야. 나 너 친구 맞지? 너 뭐 좋아하는 지도 알고, 씨발, 니가 나 뭐 좋아하는 지도 알고. 그치? 난 니가 오늘 그 게임 나오자마자 사러갈거라 알고 있었다. 거기 갈 거 알고 있었어. 그래서 전화 한 거야.”

 

“갑자기 왜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지랄이래?”

 

“태식아.” 경수가 목소리를 낮췄다. 둘만 통화하는 데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지만, 뭔가 엄청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전 나름 준비 자세로 볼 수 있는 그거라고 판단해 집중했다.

 

“거기서 뭐 본 거 없냐고.”

 

“하 참, 귀신같은 새끼. 안 그래도 에스컬레이터에서 사고 나서 사람들 막 구르고 떨어지고 난리 났었다.”

 

“그거 진짜냐? 정말이야?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고?”

 

“야. 갑자기 전화해서 뭘 봤는지 왜 물어보는데! 짜증나 죽겠구만. 생각 없이 왔다가 지금 큰 사고 현장을 본 거라고. 내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넌 모를......”

 

“성희 봤냐?”

 

“뭐? 누구?”

 

“이성희.”

 

나도 모르게 전화 통화를 종료해버렸다.

 

뭐지 이건하고 고민하기도 전에, 말 그대로 수 초 밖에 안지나 전화기가 미친 듯이 몸을 떨었다. 경수다. 다시 통화 버튼을 눌러 받으며 왜 여기서 이성희가 나와! 하고 소리치려는 순간, 평소에는 들을 수 없었던 경수의 가라앉고 떨리는 목소리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꼭대기에서 던져라. 추락시켜라. 제물을 바쳐라.”

 

“야, 목소리 깔지 말고.”

 

“바치면 계속 이어지리니.”

 

“아 뭔 소리야, 그게.”

 

“그러면 계속 너를 섬길 것이다.”

 

등골이 죽 떨리며 소름이 돋았다.

 

“아, 어, 너 지금 뭐라 했냐?”

 

“태식아. 오늘 일요일이잖나. 지금 당장 우리 집으로와. 부모님 지방 가셔서 나밖에 없다. 이거, 되게 심각한 애기야. 우연히 발견한 건데 이거, 장난 아닐 것 같거든? 전화해라. 톡하든가. 있다가 보자.”

 

통화가 끊겼다. 자, 이제 나는 어찌해야 하나? 경수는 내 유일한 친구다. 원래 베프는 아니었다. 나는 전학생이다. 이 지역에서 원래 살고 있던 사람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었다. 전학생은 초반에 모두가 경계하기 마련이다. 잘 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게, 시간이 지났어도 묘하게 반 아이들은 계속 나를 경계, 아니 무시했다. 왕따? 사실 내가 평범한 학생이고 특출 나게 잘하는 건 없지만, 그렇다고 따 당할 성격도 아닌데, 이상하게 모두는 나를 투명인간처럼 대했다. 아 그래 이게 왕따 일지도 몰라.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건데도 현실부정 마인드 컨트롤 중인지도 모르잖아. 경수는 그런 내게 유일하게 농담 걸고 장난치던 놈이다. 친해진 뒤 그는, 누누이 말해왔다.

 

“너, 행여 오해하지 마라. 너 왕따 아니다.”

 

“뭔 말이냐?”

 

“니가 왕따가 아니고, 얘네가 이상한 거야.”

 

“그러니까 그게 뭔 말이냐고.”

 

“아니, 너 그렇게 무시하는 데 이상한 거 못 느끼니? 너 소쇼패스니?”

 

“소쇼패스는 뭐냐?”

 

“하. 그냥 넘어가자. 아무튼, 니가 이상한 게 아니고 얘들이 이상한 거다.”

 

경수는 음침한 아이였다. 그냥 딱, 비주얼이 그랬다. 뭐랄까, 눈가에는 다크써클이 항상 가득 차 있고 왜소한 체구에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뭔가 책만 보는 그런 이미지? 처음에는 나도 그 이미지 때문에 쉽사리 접근하지 못 했다. 경수와 친해진 건 경수가 내게 다가와 먼저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나를 무시하고 보이지 않는 사람 취급할 때, 그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아 던진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너 뭔가 있지?”

 

“응? 뭐라고?”

 

“남들과는 달리 잘하는 거나 그런 거.”

 

“아 딱히, 없는데, 음.”

 

“그럴 리가 없어. 그렇다면 너도 얘들처럼 될 텐데.”

 

“뭔 소리야?”

 

“너는, 이상한 거 못 느끼냐?”

 

두 가지가 있었지. 모두가 나를 안 보이는 것처럼 취급하고, 모두가 동급생인 여자애에게 회장님이라 묘한 호칭으로 부르는 것. 그러나 말하지 못 했다. 소심한 성격이라. 가만히 쳐다보던 경수가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었다.

 

“우린 공통점이 있어. 그러니까 이제부터 친구다.”

 

 


 

 

경수는 굉장히 똑똑한 놈이었다. 알고 보니 엄청난 잡식의 소유자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나 흥미에 대해서는 가히 전문가 수준으로 파악하는 이였다. 주 장르는 오컬트였는데, 여기서 그의 음침함이 설명이 된다. 그러니까 되게 많이 알고 똑똑한데, 뭔가 현실에서는 쓸모가 없는 그런 거지. 일종의 덕후 레벨이 만렙 이라고 보면 된다. 확실히 보이는 겉모습과 본질은 다르다는 걸 정확히 알려주는 놈이다. 음침한데 뭔가 엄청 여유로운 인간이랄까. 그런 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낯설고 소름 끼쳤었기에, 살짝 걱정도 되서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경수의 집으로 돌렸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주택이다. 사정이 있어 혼자 지내는 내게는 그것도 엄청 부러운 거지만. 대문을 두드리기 전 현관 앞 벨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왔다.”

 

“어 기다려. 문 열게.”

 

삐익. 대문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문을 밀며 발을 들이밀었다. 편한 복장으로 경수가 서 있다가 손을 들어 반겼다. 뭐야, 멀쩡하네?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본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 놈 시키,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말하더니 뭐야 이 비꼬는 행동은? “아니 그니까 나 빨리 이거 깨야 되는데 왜 전화해서 집으로 오라고 그냐. 뭐 말 할라고 뭐가 중요한데 뭘 그렇게 목소리 쳐 깔고 심각 진지 모드냐고. 설마 아무것도 아닌 걸로 오라 한 거면 내가 진짜 성질 엄청 낼 거야! 우선 일단 배고프니 뭐부터 먹자!” 내 투덜거림에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경수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탕수육.” 중얼거리며 신발을 벗었다. “탕슉. 탕슉. 탕슉.” 경수가 거실에 놓여있던 테이블 위로 뭔가를 휙 던졌다.

 

“이미 시켰다. 짜장 세트. 그러나 이거부터 얘기하자. 엄청 중요한 거다.”

 

“이게 뭐야?” 낡은 노트였다.

 

“야 이거, 흙이 묻어있는데?”

 

“어. 캐낸 거다.”

 

“뭐? 이게 감자냐? 뭘 캐내?”

 

“말 그대로 땅 파고 캐냈다고.”

 

“왜?” 내 이 당연한 물음에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항상 당황하지 않는다. 그것이 경수의 대단한 점이기도 했다.

 

“이걸 어디서 왜 캐낸 겨?”

 

“너무 이상했거든.”

 

“뭐가?” 물었지만 나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와, 학급, 학우들. 경수는 대답 않고 낡은 노트를 펼쳤다. 뭔가 중얼거리던 그가 페이지를 펼쳐 내게 들이밀었다. “보이냐?” 희미한 글자로 적힌 숫자가 보였다. 818. 818? 8월18일? 오늘?

 

“밑에 읽어 봐.”

 

붉은 글씨가 누군가 휘갈긴 것처럼 지저분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818. 어디든 상관없다. 사람이 많은 곳. 꼭대기에서 던져라. 추락시켜라. 제물을 바쳐라. 바치면 계속 이어지리니. 그러면 계속 너를 섬길 것이다. 모두가 너를 칭송할 것이다.

 

 

 

“야 이거, 오늘 L 쇼핑몰 에스컬레이터 사고랑 연관 있는 거냐?”

 

경수가 페이지를 뒤로 넘겼다. 몇 번 넘기던 그가 갑자기 멈추고 내게 다시 노트를 들이밀었다. “여기도 봐봐.”

 

803. 뜻이 통하지 않는 이가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다. 속박하지 못 하는 것은 쳐내라. 철저히 무시하라. 밟아버려라. 너의 행동을 모두는 따를 것이니. 공격하라.

 

 

 

“8월3일. 설마, 이거 그때 그 거?”

 

“어. 그 날이면 그 난리 났던 그 사건밖에 없지. 김연수.”

 

“야 이거 뭐냐. 졸라 소름 돋는데? 김연수가 여기서 나오냐. 대박. 이거 도대체 어디서 구한거야? 아니 이거, 도대체 누가 쓴 거야?”

 

“나도 몰라.”

 

경수가 몸을 살짝 굽혔다. 긴장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조심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 예감에, 이건 주술 노트야.”

 

“뭐라고?”

 

“소원을 들어주는 노트. 하지만 그 대가를 치러야지. 그 대가를 나열한 노트야.”

 

“뭔 댕댕이 캣닢에 취하는 소리냐.”

 

경수가 씩 웃었다. 그가 검은색 수첩을 품에서 꺼냈다. 그게 뭔지는 나도 알고 있다. 미신이나 괴담으로 치부하는 온갖 주술과 저주에 관한 자료를 자기 나름 적어 둔 [경수 사전]이다. 손가락으로 톡톡 수첩을 두들기며 경수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나 더하기 하나. 데스노트 열풍이후 일본에서, 한 때 유행했던 건데, 원하는 걸 적은 일기장을 두 개 준비하고, 비밀스런 주문을 외운 뒤에 하나를 음기가 가득한 곳을 찾아 파묻어. 그리고 모종의 과정을 거쳐 다른 일기장을 펼치면, 지시가 기록돼. 뭘 해야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지 하는 거 말이야. 그러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계속 해봐.”

 

“그 지시는 점점 강도가 올라가. 하지만 그 돌아오는 소원을 맛 본 이들은 이미 빠져버려서, 어떻게든 그걸 이루려고 해. 한계를 넘어 살생의 수준에 다다라도, 처음 주술을 건 당사자는 이미 발도 못 빼는 상황이 되 버리는 거야.”

 

“허황된 소리긴 하지만 뭐 일단 그렇다 치고, 너 이거 어디서 발견 한 거야?” 내 질문에 경수가 슬쩍 눈을 치켜뜨며 올려봤다.

 

“내가 계속 말했지? 뭔가 이상하다고. 니가 이상한 게 아니라, 애들이 이상하다고.”

 

모두는 수업시간이 되기 일 분 전에 약속이나 한 듯 교과서를 펼친다. 선생님이 들어오면 모두는 허리를 바짝 세워 대기한 뒤 살짝 굽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수업시간에 졸거나 딴 짓하는 이들은 하나도 없다. 정확히 수업이 끝나고 십 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면, 모두는 다음 수업에 필요한 예습에 들어간다. 그러고 보니, 아주아주, 기괴하다.

 

“태식이 너 전학 오고 지금 두 달째지? 나 말고 말 건 애 있냐? 없잖아. 두 달이야. 두 달동안 무시하는 게 말이 돼? 하다못해 따 당하는 거라면 빵이라도 사오라고 셔틀 시켰겠지. 우리 반 일진 알아? 모르지? 야, 이거부터가 웃긴 거야. 일진 애들은 전학생 오거나 하면 지들 각인시키려고 나서게 되어 있어. 영철이가 짱 이야. 짱 이었지. 이 모든 건 단 삼 개 월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너 오기 전부터.”

 

“아니 나도 이상하다고는 느꼈는데, 그래도 이게 주술? 이런 이상한 비현실적인 상황이랑 대입하는 건 좀 아니잖......”

 

“나한테도 그랬어. 너 오기 전에. 친했던 놈들이 모두 갑자기 날 기피하기 시작했다고. 그 영철이 새끼는 쉬는 시간마다 나한테 빵 사오라고 시켰었거든? 그런데 안 그래. 말도 안 돼 이건. 그래서 내가 따로 조사하고 있었어. 이쪽 내가 전문 아니냐.”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야 경수가 말 한 심각한 일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었다. 나는 전학생이지만, 경수는 원래 이 학급에 소속되어 있는, 학우였다. 그도 지금 나 같은 일을 겪는다면 정말 이상한 거지. “그러니까 이 노트 어디서 구한 거야?” 경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책 읽는 동자.”

 

“응?”

 

“책 읽는 동자 밑에.”

 

우리 학교 운동장 구석에는, 책 읽는 동자의 동상이 있다.

 

“동상?”

 

“동상 밑에서. 발견했다. 학교 내의 동상이야말로, 온갖 괴담과 소문의 원천지거든. 그것이 바로 음기가 제대로 가득 찬 곳이야. 동상 주변을 샅샅이 조사했지. 몰래 하느라 힘들었어.”

 

말문이 막혔다. 학교 동상 밑에서, 이 노트를 발견했다. 노트에는 날짜와 해야 할 일들이 적혀있다. 기묘하다. 모두의 이상 행동에 대한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모두는 마치 의지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모두는 마치 누군가 시키는 것처럼 행동한다. 모두는 마치 누군가를 섬기는 것처럼 행동한다. 모두는, 성희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

 

“이성희.” 내 중얼거림에 경수가 고리짝 만하게 두 눈을 부릅떴다.

 

“그래! 그래서 내가 물어 본 거야. 너, 거기서 성희 봤어?”

 

“봤어.” 와 소름. 경수가 팔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난 이 일기장, 아니 주술 책이 성희 거라 믿고 있어.” 경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혜성같이 나타나서 학생회장이 되어 교내 최고의 아이돌이 되었다. 혹자는 그 아이의 가족이나 인맥을 말한다. 그래, 이사장이 아빠고 장관이 할아버지고, 삼촌이 교사고. 그런데 왜 애당초 처음부터 돋보이지 못 했나? 그런 대단한 인물이면 처음부터 빛나야 하는 거 아냐? 정확히 세 달 이야. 세 달 만에 그 애는 학교의 얼굴이 됐어. 모두는 성희를 좋아해. 이상하지 않아? 내가 너 전학 왔을 때 말 건거 기억나? 니가 이상한 게 아니라, 얘네가 이상한 거라고. 뭔가 잘못 됐어. 이 주술의 파급력은 한정 된 범위를 뛰어넘은 거라고.”

 

“그럼 그 연수 사건은......”

 

“김연수. 조만간 얘한테도 접촉할거야.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인간이 너랑, 나랑, 연수야. 나는 계속 관찰해왔어. 그리고 파악했지. 이 주술은 완벽하지 않아. 뭔가 리스크가 있고, 모두를 현혹시킬 수 없는 거야. 그게 바로 너와, 나와, 연수야. 아까 그 8월 3일 날 연수 사건을 봐도......”

 

 

 

쿵쿵쿵.

 

현관문이 울렸다.

 

쿵쿵쿵. 쿵쿵쿵. 쿵쿵쿵.

 

 

 

나와 경수 모두 얼어붙어 입을 다물었다. 쿵쿵쿵. 조용한 가운데 큰 소리로, 현관문이 떨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쿵쿵쿵! 쿵쿵쿵! 경수가 살짝,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문에 다가갔다. 나는 그저 지켜볼 뿐이다.

 

쿵쿵쿵!

 

“배달이요!”

 

“흐끼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갑작스런 목소리에 놀란 내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자 덩달아 현관문 밖에서도 비명이 울렸다.

 

“아아악! 뭐야! 배달이에요!!!!!!!!!!!”

 

“씨발 탕수육세트야! 탕수육 배달이었어! 아 존나 탕수육이었다고!”

 

내 울부짖음에 경수가 한 숨을 내쉬었다. 문을 열고 음식을 받으며 그가 계속 한 숨을 내쉬었다. 겁에 질려 창백한 표정으로 음식을 놓는 배달원의 손이 덜덜 떨렸다. “연극 부라, 대사 연습하던 거에요. 아저씨.” 경수를 보며 배달원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상한 애들 아녜요......” 고개를 계속 끄덕거리며 배달원이 쏜살같이 사라졌다. 벌쭘해진 나는 노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믿기지 않지만, 이것이 주술의 일원이라면, 설명은 된다. 경수가 그릇을 들고 테이블에 놓았다. 짜장면 두 개랑 탕수육 하나. 단무지 하나. 젓가락을 들 힘이 나지 않아 나는 그저 계속 쳐다만 봤다.

 

“쪽 팔리게. 비명을 지르냐. 탕수육한테.”

 

“아니. 야! 지금 그게 중요해? 김연수 얘기 하고 있었잖아!”

 

“그래. 내일 접근해 볼 거야. 애들이 다 휘까리 맛이 가서 뭔 인형처럼 구는데, 그래도 정상인 애 있어야지. 그게 그 무시무시한 연수 라 해도 우리한텐 천군만마잖냐.”

 

“난 절대 말 안 건다. 무섭다고.” 내가 답하자 경수가 킥킥 웃었다.

 

“여자 유도 도 대표라서 감히 말 붙일 수 있으려나 몰겠다. 일단, 먹자!”

 

 

 

2. 803. 김연수

 

 

 

8월3일에 벌어진 사건, 시작은 이랬다.

 

우리 반 맨 뒷자리에는 연수라는 여자애가 있다. 연수는 운동 선수였다. 유도. 운동하는 애들은 원래 좀 활발하고 한데, 연수는 의외로 별다른 행동 없이 조용하게 지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유도 선수 하면 큰 덩치로 나무 들이받고 커다란 타이어를 잡아당기며 근력을 키우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연수는 오히려 키는 크나 균형 잡힌 몸이라 호리호리한 편이었다. 항상 볼 때면,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노트에 뭔가를 끼적거리는 게 전부였다.

 

방과 후였다. 모두가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연수 역시 일어서서 나가려는데, 그런 연수 곁으로 삼삼오오 반애들이 몰려들었다. 영철이와 측근들.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경수와 같이 일단 지켜보고 있었다. 근래 변해서 사고도 안치고 예전처럼 애들도 괴롭히지 않던 놈이 갑자기 예전 어울려 다니며 다른 애들을 괴롭히던 일당을 끌고 연수를 둘러싼 것이다.

 

“뭐임?” 연수의 퉁명스런 대답에 둘러싼 애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바쁘니까 간다.”

 

점점 좁혀 들어와 버티고 선 영철 일당을 보며 연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 혹시 시비 터는 거? 왜 이제껏 조용하다가?”

 

 

 

“너는 학교에서 하는 게 뭐냐. 공부도 안하고 잠이나 자고. 그림 낙서나 하고. 왜 다녀?”

 

“니가 여자냐? 생긴 건 오큰데 그래서 남자 잘 만나겠냐?”

 

“너네 집 개 못산다며? 벌레 기어 나오는 반 지층에서 잠이나 제대로 자? 아빠는 또 집나가서 안 들어 온지 몇 년이나 됐다고 그러대?”

 

“그냥 학교 나가. 너 살길 찾아. 뭐 하러 학교 다녀. 재수 없으니까 우리 반에서 니 면상 좀 안 봤으면 좋겠어.”

 

“얼굴이 메주면 말이라도 곱상하게 하던가. 이건 뭐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고.”

 

경수가 내 팔목을 꾹 붙잡았다. 참지 못 하고 일어서려는 나를 말린 것이다. “야 저건 너무 심하잖아. 뭔 저런 개소리를 다 하냐.” 경수가 눈짓했다. “일단, 참아. 나도 빡 치는데, 연수 표정 좀 보라고.” 반 애들 모두 망발을 일삼는 영철 패거리와 연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집에 가려 하지도 않는다. 뭔가 이상했다. 감정이 없는 이들 같아 소름이 돋았다. 연수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정신공격이야. 힘으론 안 될 것 같으니까, 멘탈을 노리는 거야. 사람 잘못 봤지......”

 

경수의 알 수 없는 중얼거림에 물어보려는 찰나, 연수가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야 이것들 봐라? 말도 안 걸던 애들이 막 팩트 폭력 날리네? 본심 다 씨부렸냐? 제대로 설명해줄게. 나 학교에서 뭐하냐고? 운동 하지. 공부 안 해도 운동 특채로 니네는 꿈도 못 꾸는 대학 가. 학비 하나도 안내고. 다 내줄 거거든. 그리고 나 남자에 관심 없어 등신아. 반 지층 맞아. 우리 집 못사는데 조만간 잘 살게 될 거야. 이번에 도 대표로 뽑혀서 체전 나가서 우승 하면 도에서 상금 나올 거고 나중에 스폰도 잡힐 거거든. 이미 내 미래는 다 설계 되어 있다고. 아빠가 나간 거는 뭔 상관이냐 이 새끼들아. 그건 그거고 나는 나지. 내 면상 보기 싫으면 니네가 알아서 보지 말고. 보라 하지도 않았는데 뭘 쳐다보고 지랄이야. 그리고 사람 얼굴이 어떻게 메주냐? 말 곱상하게 해서 뭐? 그럼 니네가 돈이라도 주냐? 핑크 좋아하고 얘들아 안녕 좋은 아침 이 지랄 꼭 떨어야 여자로 보냐? 머리에 똥만 들어찬 것들이. 이게 팩폭이야 등신들아.”

 

 

 

“개 사이다네.” 경수의 혼잣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들이 갑자기 단체로 더위 먹은 것 마냥 이상해지더니, 아무나 막 붙잡고 시비 터네. 사람 잘못 건드렸어. 입 아프니까, 다 덤벼.”

 

연수가 두 팔을 들고 목을 까닥거렸다. 그러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덤벼들 거라 생각한 연수도 의아했는지 슬쩍 팔을 내렸다. 반의 공기가 싸해지며, 서늘해졌다. 등골이 오싹해지기 시작했다. 경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어딘가를 찾아 살폈다. 멀뚱히 서 있던 영철 패거리들과, 지켜보던 반 아이들이 누가 시킨 것처럼 거의 비슷하게, 연수를 보며 중얼댔다.

 

“메주 같은 년, 메주 같은 년, 메주 같은 년, 메주 같은 년, 메주 같은 년......”

 

모두가 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연수의 표정도 서서히 굳어졌다. “꼴 보기 싫어. 꼴 보기 싫어. 꼴 보기 싫어. 꼴 보기 싫어. 꼴 보기 싫어.......” 당황한 연수가 반 애들에게 외쳤다.

 

“뭐야! 너네 왜 이래!”

 

“반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반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반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반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반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결국 참지 못 한 내가 벌떡 일어섰다.

 

“이게 무슨 짓이야!”

 

반 아이들 모두,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공허한 시선에, 침이 나도 모르게 목 젓을 타고 내려갔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잠깐!” 경수가 갑자기 후다닥 뛰어 앞문을 열고 복도로 향했다.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나와, 연수의 눈이 마주쳤다. 연수가 순간, 책상을 들어 칠판을 향해 던졌다. 맨 끝자리에서 칠판까지 일직선으로 날아간 책상이 쾅 소리를 내며 튕겨져 교탁에 부딪혀 바닥에 굴렀다. 그 충격인지 반 아이들이 모두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연수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 나한테 말 거는 새끼들 있으면 다 뒤진다. 저거처럼 벽에 처박히기 싫으면 그 주둥아리들 다물고 있어라. 경고했다.”

 

가방을 들고 나가려는 연수의 어깨에 우연찮게 아직 서 있던 영철 패거리 중 하나가 부딪혔다. 교복 상의가 공중에 펄럭였다. 전광석화 같은 업어치기에 그는 이미 저 만치 나가떨어져 미동도 없었다.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며 연수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물론, 내 몸에 손대도 똑같고.”

 

뒷문으로 나가는 연수를 보며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이 터져 나왔다. 경수가 어느새 다시 들어와 내 팔을 붙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가방만 겨우 챙겨 끌려 나가는 동안, 경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도 해보라고 내가 다그쳐도 그는 고개만 끄덕일 뿐 답하지 않았다. 무엇을 찾고, 무엇을 봤기에 이러는 걸까. 그렇게 8월3일은 지나갔다.

 

 

 


 

 

 

쇼핑몰 사건 다음날 이었다. 어제 경수와 얘기한 내용과 노트가 아른거려 잠을 설쳐 등굣길에도 비몽사몽 하느라 넘어질 뻔 했다. 주술 노트라니 21세기에. 그걸로 학교를 조종하고 있다고? 다른 상황에서 들었다면 빵 터졌을 얘긴데.

 

교실에 들어섰다. 꽤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청소를 하고 있는 주번들을 빼고 대다수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교과서를 펼쳐 복습과 예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슬쩍 뒷자리를 봤지만 연수는 보이지 않았다. 경수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안 왔나? 연수는 항상 일찍 등교했었는데. 가방에서 교과서들을 꺼내 책상 안으로 넣으려는데, 뭔가가 잡혔다. 물컹했다. 설마. 아닐 거야.

 

“흐끼아으아야아아아악!”

 

내 비명소리에 몇몇이 고개를 돌려 쳐다봤으나, 곧 자세들을 바로잡았다. 황급히 손을 빼내 들었다. 물컹한 것의 정체는 쥐였다. 그것도, 목이 없는 시체.

 

“악 씨우아바랄 이게 뭐야야아아아아!”

 

만세를 부르는 포즈로 두 손을 번쩍 들며 기괴한 소리를 내질렀다. 쥐의 몸뚱이는 그대로 붕 날아가, 내 건너건너 앉아있던 여자애의 책상 위에 툭 떨어졌다. 여자애가 움찔했다. 움찔했다? 움찔했어? 반응을 보이네? 갑자기 든 생각이,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거란 거였다. 경수 이 놈은 대체 왜 안 오고 뭐 하는 거야. 나는 쥐의 시체가 던져진 책상으로 다가갔다. 여자애는 꼼짝 않고 앉아 있었지만, 몸은 여전히 살짝 떨고 있었다. 조심스레 쥐를 집어 들며, 앞에 앉아있는 여자애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이름이 뭐더라, 혜진 이었지.

 

“혜진아, 괜찮냐? 일단 미안. 던져서. 왜 이게 이리 떨어지냐.”

 

못 들은 척 혜진은 교과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는 지금 겁에 질려있다. 당연한 거지. 쥐, 그것도 머리 없는 시체가 눈앞에 있는데. 아직도 조금씩 떨리는 저 몸을 봐. 분명 이건, 참고할만한 상황이다.

 

“나와라. 태식아.” 어느새 나타난 경수가 문 앞에서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옆에 연수도 같이 서있었다. “우리 밖에서 얘기 좀 하자.” 쥐를 집어든 채 나는 그대로 문을 나섰다. 으웩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연수에게 급하게 눈인사를 했다.

 

“뭐할라고 그거.”

 

“아니, 뭐, 뭘 해. 버려야지. 이게 왜 내 책상 밑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런다고 집어오냐.” 연수가 킥킥 거리며 말했다.

 

“경수가 말한 그대로야.”

 

“뭐? 아니 경수가, 뭐, 뭐라고 말했는데?” 연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너 그때, 왜 일어났어? 모두가 나를 욕할 때.”

 

“응? 아니, 그건 좀 아니잖냐! 뭔 사람을 그렇게 무시하고 막말하고 말이야. 당연히 그런 건 아니면 아니다 말해야지. 안 그러냐? 경수야?”

 

“난 무서웠다.” 경수가 중얼거렸다.

 

“뭐?”

 

“그 때, 애들이 모두 한 결 같이 똑같은 말투로 연수한테 욕을 할 때, 정말 무서웠어. 보통 상황이 아니거든. 오죽하면 연수도 당황해서 소리치고......”

 

“말 똑바로 해라. 소리친 게 아니라 하지 말라 경고한 거야.” 연수가 지적했다. 경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넌, 아랑 곳 않고 일어나서 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외치더라.”

 

“야, 아니야. 그 때 나도 무서웠어. 그런데 그게 너무 불합리한 상황이라......”

 

 

“너는 겁이 없어.” 연수가 내 어깨를 치며 말했다.

 

 

“경수 얘도 그랬어. 태식이 너는 정말로 겁이 없는 놈이라고. 오늘 아침 상황 보니 더 이해가 가. 그 쥐 시체, 아직도 들고 있지? 안 무서웠나?”

 

“놀랬지. 하지만......” 내 대답이 채 이어지기 전에 경수가 끼어들며 말했다.

 

“그렇게 비명 한 번 지르고 다지. 너, 저번에 우리 집에서도 그랬어. 잘 생각해봐, 그 쇼핑몰에서 벌어진 사건. 그것도 니 말로는 충격적이라고 했는데, 그 이후 넌 아무렇지 않았어. 내가 너한테 처음에 말했지? 남들과는 다른 잘 하는 거 있냐고. 이제 알겠더라고. 너는 선천적으로, 겁이란 게 없어.”

 

복도 끝이 보였다. 뭐라고 답해야 될지 몰라 나는 그저 입만 다물고 있었다. 둘을 따라 1층 중앙 현관을 벗어났다. 탁 트인 운동장에 서서히 등교하는 애들이 보였다. 지금 시각은 오전 8시 30분이었다. 수업까지는 4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우리 셋은 그늘을 따라 걸으며 가까이 있는 벤치로 향했다. 경수가 앉고, 연수가 앉고, 내가 마지막으로 앉았다. 셋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정면만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경수가 말문을 열었다.

 

“좋아. 어제 너한테 한 얘기 다 그대로, 연수한테는 내가 다 얘기했다.”

 

“뭐라? 연수 같은 애가 니 말을 믿을 리가 없는데. 너 음침하잖아.”

 

“아냐 믿어. 운동 하는 우리들도 루틴이나 징크스 같은 거 있잖아. 그거 다 미신이야. 맞지?”

 

연수가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그 때, 유일하게 내 편 들던 애들이 너희 둘인 거도 다 보고 있었지.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지금 미쳐 돌아간다는 거 잘 알거야. 나는 선생님들도 수상해.”

 

경수가 검은 수첩, 일명 [경수사전]을 꺼냈다. 수첩을 펼쳐 쳐다보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 더하기 하나. 똑같은 노트를 두 개 준비해서 하나는 음기가 가득한 곳에 묻고, 피를 내어 다른 한 노트 왼쪽 상단에 묻히고 주문을 왼다. 자정이 지나면 머리맡에 두고 잔다. 새벽에 깬다면 효력이 발생되는 것이고 아침에 눈 뜬다면 실패한 것이다. 만일, 성공한다면 노트에는 해야 할 일들이 기록된다. 그 주기는 보통 60일 단위이나 거듭할수록 줄어든다.”

 

“8월3일, 8월18일. 지금은 보름밖에 안 걸린다는 거지?”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 할 일들의 난이도는 점점 올라간다. 하지만, 수행할수록 소원의 힘은 커진다. 소원의 범위는 한정적이나, 그 한정된 범위에서의 효력은 막강하다. 범위는 다른 노트를 파묻은 위치를 기반으로 한다.”

 

“학교 동상 밑이면, 바로 우리 학교네.”

 

“응? 뭔 학교 동상? 여기서 동상이 왜 나와?”

 

연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우리를 바라보았지만, 경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단, 소원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도 존재한다.”

 

“그게 우리구나?” 내 질문에 경수는 바로 답 하지 않았다. 침을 꿀꺽 삼킨 그가, 뒤이어 입을 열었다.

 

“그런 이들을 소멸 시키면, 더 강한 성취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씨풋.”

 

“뭘 소멸시켜? 우리? 그게 뭔 소리냐?” 경수가 수첩을 탁 닫았다. 연수가 물었다.

 

“그 뭐시기가 학교 동상 밑에 있는 건 어찌 알았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얻은 이 정보라면, 우리 이제 슬슬 위험해지는 거야. 연수한테 벌어진 거도 그렇고, 이제 너 태식이랑 나도 안전하지 못 해. 이해 됨?”

 

“야, 뭘 어떻게 해야 되냐? 넌 똑똑하니까 알 거 아냐.” 내 다그침에 경수가 한 숨을 푹 내쉬었다.

 

“딱히 없어. 일단 이 우연찮게 발견한 노트를 연구해야지. 내가 알기로는 이 주술, 그러니까 하나 더하기 하나를 파하는 방법은......”

 

“잠깐. 그런데 그 주술을 건 당사자가 성희라는 건 어떻게 확신 해?” 연수의 질문에 경수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매번 학급 수업도 빼먹고 지 맘대로 출석에 결근에 멋 대로인 학생을 어느 누가 좋아하겠어? 이미 거기서 답은 딱 나온 거야. 제대로 정신이 박힌 모범생이면 내신이나 주변 평판 때문에라도 처신을 조심하겠지. 성희는 안하무인이잖아. 그리고, 선생님들도 아무도 그런 걔를 탓하지 않아.”

 

 

라라라 라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듣던 유명한 CM 송이다. 우리 셋은 모두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남학생이 음악이 울리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고 앞장 서 걷고 있었다. 뒤로 좌우 덩치가 큰 남학생 둘이 연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며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누군가를 곁에 두고 보호하며 이동 중이었다.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 이마에 살짝 걸친 하얀 헤어밴드. 보라색 매니큐어. 백옥같이 흰 피부. 방긋 거리며 웃는 가늘어진 눈웃음.

 

“안녕하세요 회장님.”

 

“안녕하세요 회장님.”

 

등교하던 학생들이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넨다. 손을 들어 흔들며 그런 그들에게 답례한다. 라라라 라라라라라~ 라라라~ CM 송은 반복 재생인지 그런 그녀 곁에서 산뜻한 BGM을 만든다. 기상천외한 그 광경에 모두 숨을 죽였다. 일행이 천천히, 방향을 틀어, 우리 쪽 벤치로 향했다.

 

“이제 등교하니? 오늘도 참 곱네. 회장님.”

 

학생 주임 선생님이 인사하자 그녀가 눈웃음으로 답했다. 점점 더 심해진다. 뭔가에 홀린 듯 우리 셋 모두 벤치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안녕 회장님? 좋은 아침. 회장님. 이성희.

 

 

 

음악 소리가 멈췄다.

 

우리 앞에 선 성희의 표정은 방금 전과는 달리, 얼음처럼 창백하고 차갑게 굳어 있었다.

 

 

 

 

 

3. 819.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안녕?”

 

성희가 먼저 인사를 던졌다. 우리 셋은 침만 꿀꺽 삼키며 그런 그녀를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경수, 전학생, 연수. 너희들이 원래 친했었나?”

 

와 내가 아무리 전학생이지만 여기 학교로 온지 벌써 두달 짼데 어떻게 내 이름도 모르냐? “진짜 너무하네. 내 이름은 이......” 경수가 나를 저지하며 성희의 질문에 대꾸했다.

 

“원래 친했어.”

 

“그래? 그런데 당연히 원래 친했다고 하겠지. 친하냐고 물어봤는데 아니 우리 안 친해 할 사람 없잖니? 만약 그렇게 대답한다면 서로 맘 상 할 테니까. 사람들은 참, 힘들게 살아. 그치? 나는 이 사람이 너무 싫은데, 환경이나 평판이나 그런 걸 생각해서 티도 못 내고 표현도 못 하고 그냥 웃으며 고개만 끄덕여 동조해주지. 불편해.”

 

성희가 몸을 살짝 숙여, 경수의 눈을 또렷이 바라보았다.

 

“너는, 안 그래?”

 

주위 공기가 싸늘하게 식는다. 분명 여름인데, 우리 주변만 차가워진 느낌. 급변하는 그 흐름이 싫어진다. 끌려간다. 안 돼. 내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내 이름은 이태식이다! 이태식이야! 왜 아직도 모르냐. 같은 반인데! 사람 무시 하냐!”

 

경수와 연수가 서로 누가 눈이 더 큰지 내기하듯 커다랗게 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성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성희의 입고리가 살짝 올라갔다.

 

“태식이? 미안해.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이제부터 널 태식이라 부를게. 그러면 이제 내가 물어볼 차례야. 태식아. 너, 내 이름 아니?”

 

성희의 눈은 일말의 깜박임도 없이, 뚫어지게 내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 이름이 뭐니?”

 

 

 

이성희! 하지만 답 할 수가 없었다. 답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경수와 연수가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특히 경수의 눈길이 너무 뜨거워 데일 지경이다. 제발 좀. 그만 좀. 왜 자꾸 나서서 일 크게 벌리니. 가만히 있어. 알면 안 돼. 우리가 노트를 훔친 거를. 이 주술을 아는 거를. 살짝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야 뭐, 모두가 널 회장님이라 부르잖아?” 성희의 입고리가 더욱, 올라갔다.

 

“응. 하지만 나도 이름이 있잖니. 너 내 이름 몰라?”

 

“아, 그건, 음, 사실......”

 

“모른다면 모른다고 말해. 뭘 쪽팔려 하냐.” 경수가 대신 답했다. 일어서 있던 내 어깨를 눌러 앉히고, 후 하고 한 숨을 내쉰 그가 말을 이었다.

 

“회장. 우리는 그냥 어제 봤던 예능 프로그램에 관한 대화를 했을 뿐이야. 신경 안 써도 돼.”

 

성희는 대답 하지 않고, 계속 내 눈을 쳐다보았다. 빠져들 것 같아 나는 눈을 꾹 감았다.

 

“정말, 몰라?”

 

눈을 감은 채 고개만 끄덕거렸다.

 

“내 이름은 이성희야.”

 

성희가 앞머리를 걷어 올리며 웃었다.

 

 

 

“너희가 내 이름을 말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잘도 모른 척 하네. 아니 모를 리가 없잖아. 당연히, 너희만 나를 회장님이라고 부르지 않으니까. 안 그래?”

 

 

 

소름이 돋았다.

 

“또 보자.”

 

성희가 그대로 몸을 돌려 걸었다. 다시 블루투스 스피커를 든 남학생이 앞서고, 예의 CM송이 울려 퍼졌다. 상쾌하고 발랄한 노래. 라라라 라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성희 일행이 사라진 뒤, 경수가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야 이 미친놈아. 깽판 칠래?”

 

“아! 왜 때리고 그래!”

 

“아까 말했잖아. 듣지 않는 이들을 소멸하면 더 큰 성취를 얻을 수 있다고. 꼭 여기서 티를 내야겠냐? 쟤는 우리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악이 가득 찬 애야. 눈빛 보면 몰라?”

 

“이미 다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고!” 내 외침에 연수가 호응했다.

 

“그래. 태식이 말이 맞아. 쟤는 다 알고 있었어. 떠 본거지. 유도한 거야. 아 저 상판 진짜 재수 없네.”

 

경수는 말이 없었다. 잠깐 침묵을 유지하다가, 내가 불쑥 튀어나오는 개그 본능으로 어 유도 선수가 유도 당했네? 하려는 걸 눈치 챘는지 명치 때리기로 막고 나서,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주술 말이야. 하나 더하기 하나를 깰 수 있는 방법. 아까 말하다 말았는데, 이거 일본에서 유행은 했다지만 실제로 이뤄진 결과는 거의 없었거든? 괴담일 뿐이라고. 다들 넘어갔어. 그런데 왜 먼 이국땅인 우리나라에 언제 건너와 성공했냐 이거지. 이게 좀 더 연구가 필요하거든?”

 

경수가 수첩을 펼치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온갖 주술이 적힌 그의 수첩은 낡고 지저분했다.

 

“남들 다 욕할 때, 내 취미니까, 신경 안 쓰고 수집했어. 오타쿠라 놀려도 좋아. 그 오덕심에 이 상황을 알게 되고 깰 수도 있는 거잖아? 내 자부심이다. 이 수첩은 내 자부심의 결과야. 당연히, 그 개 같은 주술, 깨부순다.”

 

“다시 한 번 묻겠는데, 어떻게 동상 밑에 있는 걸 안 거지?”

 

연수가 정색하며 물었다. 사실 나도 내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경수는 어떻게 그 노트가 동상 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걸까? 좀 있으면 수업이 시작 될 터였다. 수업 시간에는 우리 끼리 대화하기 좀 그렇다. 수많은 눈이 있고 수많은 귀가 있으니까. 회장님의 충실한 수하들의. 여전히 성희는 수업에 참여하지 않겠지. 그녀는 수업 따위보다, 지시에 불복종 하는 우리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 중일 것이다. 아까 처음 그녀의 눈빛을 봤을 때 바로 감이 왔다. 그녀는 이미 사람이 아니다. 성희라는 거죽을 뒤집어 쓴 악마.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꼬마를 밀어버리던 그때와 지금, 단 두 번 만에 내 머릿속엔 그녀의 이미지가 깊이 각인되었다. 학교를 지배하는, 악마의 학생회장.

 

“후.” 경수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건 우연이었어.”

 

“사실 우연으로 동상 밑을 파본 다는 거. 말 안 된다는 거 너도 알지?” 연수가 답했다.

 

“나는 항상 공격 받아 왔어. 그게 가난이든 운동이든 외모든. 그래서 언제나 의심해. 믿음은 아픔만 줘서. 내가 너 백 프로 믿을 수 있게 해줘. 알았지?”

 

연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전은 운동을 할 시간이었다.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연수가 씩 웃었다.

 

“겁 없는 태식아. 경수 좀 부탁한다. 오후에 보자.”

 

체육관을 향해 연수가 사라지고, 나와 경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계획은 있냐?” 내 질문에 경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걷기만 할 뿐이다. “아 그리고 그 날, 8월3일 복도로 뛰어나가서 도대체 뭘 본거냐?”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건물 현관에 다가서자, 경수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태식아 너 혼자 살지?”

 

“응. 왜 갑자기 뜬금포냐?”

 

“오늘 방과 후에, 우리 셋이 너네 집에서 모이자. 괜찮지? 연수한테도 내가 말할 테니.”

 

“뭐 난 상관없다. 아, 연수도 온다고? 음. 방 돼지우린데.”

 

“좋아.”

 

여자애가 우리 집에 오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뭐부터 치워야 하지? 갑자기 고민이 늘어나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니 이런 고민 할 때가 아니라 성희랑 이 상황을 어떻게 타계해야 하는 게 더 중요한 고민이라고. 나도 참 태평하네. 정말 겁이 없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나를 보며 경수의 얼굴이 더 심각해졌다. 우리 둘은 세상 절망적인 표정으로 서로 말 없이 교실로 향했다.

 

 

 


 

 

 

낡고 지저분한 반 지하 원룸이고, 벽에 곰팡이가 쓸 정도로 축축한 습기로 가득했지만, 다행히 연수와 경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뭔가 고마워서 나는 계속 히죽거렸다.

 

“쩌네. 혼자 살고. 부럽다 야.” 연수가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

 

“옛날에 나 살던 곳이랑 되게 비슷해 여기.”

 

“뭐. 사람이 밥 먹고 잠만 자면 되지 다른 거 필요 있냐? 고딩 혼자 살기 딱 좋지 않아?”

 

“태식이 너 밥은 어떻게 먹고 다녀?” 경수가 물었다.

 

“밥? 그거 뭐 있냐? 돈 있으면 사먹고, 없으면 해먹고.”

 

“뭔가 하여가 타입이네.”

 

“서태지 하여가?”

 

“이방원 하여가. 나도 알아 그건.” 연수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경수의 매몰차고 차가운 대답도 돌아왔다.

 

“하여튼 니 아재 개그 진짜, 은근 짜증나는 거 아냐? 또 명치 맞기 싫으면 다물어라 그 주딩이.” 경수가 풀썩 자리에 앉으며 [경수사전]을 꺼냈다.

 

“자, 이제 내가 여기 모이자고 한 이유를 말해줄게. 우선, 너희들이 궁금해 하는 ‘어떻게 동상 밑에서 노트를 발견 했나’에 대한 답부터 해줄게.”

 

나와 연수 모두 자리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경수를 바라보았다.

 

“시도했었다.”

 

“뭐? 뭘 시도해?”

 

“하나 더하기 하나. 나도 시도해봤었다고.”

 

아! 그래서 경수가 그 노트를 발견할 수 있었구나! 자기도 똑같이 음기가 가득한 곳이 학교 동상 밑이라 생각해서 묻으려 하다가 성희의 노트를 발견 한 거야!

 

“왜 그 주술을 시도했어? 뭘 원했는데?” 연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경수는 우물쭈물 거리며 바로 답하지 못 했다. “뭘 쪽팔려 하냐. 우리끼리.” 연수가 어깨를 툭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어 얼굴 빨개지는 거 봐라. 이야, 혹시 너 누구 좋아하냐? 그런 거냐? 사랑하게 해주세요냐 혹시?” 점점 얼굴이 빨개지는 경수를 보며 나는 그제야 눈치 챌 수 있었다. 경수와 연수를 번갈아 보다가, 내가 박수를 짝 쳤다.

 

“대박! 반전! 연수랑 이뤄지게 해달라고 빌었구......”

 

경수 버전 헥토파스칼 킥이 내 명치를 가격하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지는 나를 보며, 연수의 입이 헤 벌어졌다. 쿠당탕! “으악 아퍼!” 슬며시 내지른 발을 거둔 경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싸늘하다. 차가운 비수가 내 명치에 날아와 박힌다. 눈치 없이 떠든 벌을 달게 받는다. 제길. 뭔가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기 뭐 해 그냥 구부러진 자세 그대로 누워 있었다. 분위기가 싸하다. 진짜 싸하다.

 

“......야. 뭘 그런 걸 가지고 주술에 의지하고 참 너도 애냐. 애지. 우리 애지. 하하. 나 지금 뭐라 떠드니?”

 

연수가 횡설수설 했다. 경수는 여전히 얼굴이 불타오르는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내가 몸도 약하고, 항상 음침하고 그래서, 연수 니가 부러웠다.”

 

“뭐가 부럽냐. 그리고 나같은 애를 뭐가 좋다고 그런......그 주술까지 그런 거 하고 그러냐......부끄럽네.”

 

연수도 얼굴이 빨개진다. 아니 지금, 남의 집에서 왜 서로 얼굴 붉히고 로맨스 찍고들 있냐. 바동거리며 일어서 자세를 고친 뒤,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정신 차리자! 일단 그거 넘어가고. 경수가 노트 발견한 거 이제 이해되니까, 연수 너도 수긍했지?”

 

“오케이. 역시 태식이네. 자자, 얼른 일단 이건 나중에 얘기하고 우리 성희 얘기로 넘어가야지.”

 

연수가 묘하게 높은 목소리 톤으로 대꾸했다. 경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래. 일단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경수가 수첩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내 정보로는 이 하나 더하기 하나는 시동 걸리면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주술이 한 번 발동하면 파기할 수 없어. 사실 보통 주술 걸린 소재를 처분하면 효력이 사라지거나, 역으로 주술을 건 당사자에게 그 화살이 돌아가게 되어 있거든? 그렇지만 이 하나 더하기 하나는 달라. 이 노트를 파기해도, 의미 없다는 거야.”

 

경수가 이번에는 그 성희의 주술노트를 꺼냈다. 낡고 색 바랜 노트가 그 자태를 드러냈다.

 

“연수는 처음 보지?”

 

“응. 되게 분위기 있네. 뭔가 기분 나빠.”

 

“아주 강력한 주술이 걸렸으니까.”

 

경수가 입술을 잘근 씹으며,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직도, 어떻게 이게 가능 한 건지 이해 할 수가 없어. 일본에서도 이건 성공사례가 없었거든. 그만큼 어려운 주술이라는 거야. 그런 거 있잖아. 악마 소환 주술 같은 거. 진짜 악마 소환했다 인증은 없었거든. 이거도 그런 경우지. 그런 게 왜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거지?”

 

“성희 삼촌, 체육 선생님 일본 다녀오지 않았어?”

 

내 대답에 연수와 경수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일본 유학 다녀온 거 아냐?”

 

“맞아. 우리 학교 졸업생 출신이고, 유도 연수 다녀온 거. 일본에서 공부하고 왔다고 했어. 어, 말 되네. 뭔가 소름 끼치는데? 유도는 일본에서 유래됐지. 당연히 우리 선생님도......”

 

연수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 연수에게는 스승이다. 연수의 앞길을 이끌어 줄. 연수가 운동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한 그런 존재.

 

“생각을 바꿔보자.” 경수가 침묵을 깼다.

 

“성희가, 하지 않았다.”

 

“뭔 소리야?”

 

“성희가 하지 않았다면?” 경수가 수첩을 펼치며 다시 말했다.

 

“8월3일 연수 사건 때 나는 교실 밖 창으로 지켜보고 있던 한 사람을 발견했어. 그리고 바로 뛰쳐나갔지.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 태식이 니가 잘 얘기해줬어. 그 사람은 바로, 성희의 삼촌이자, 우리 학교 체육 교사인 그 사람.”

 

경수가 수첩을 톡톡 건드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모두가 성희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런가? 체육 선생님도 그랬나?

 

“뭔가 중얼거리며 우리 교실을 지켜보고 있던 그는, 내가 복도로 뛰어나가자 금세 자리를 떴어. 아니 잠깐, 그때 느꼈던 위화감이, 잠깐만. 잠깐만. 수첩 좀 보자.”

 

경수가 수첩을 촤라락 펼치며 뭔가를 찾았다. 연수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오전에도 선생님과 함께 운동 했을 텐데. 더군다나 체육 선생님은 우리 학교 유도 전설로 통한다. 유도 선배로써, 연수가 넘어야 할 존재인 것이다. 존경하는 사람이 이 이상한 상황에 얽혀 있다는 것은 그녀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 맞아. 그 위화감, 이제 알겠어. 조종당하는 거야.”

 

경수가 한 숨을 훅 내뱉었다. 경수가 두 눈을 부릅떴다. 몇 번 눈가를 비비던 그가, 눈을 깜박거리더니 내 얼굴을 노려보았다. 뭔가 경수의 눈이 빛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야, 너 눈이 반짝거려.”

 

 

 

“귀신이다. 귀신에 씌었어. 그 귀신이 씌인 채로 넘어온 거야. 그리고 성희에게 하나 더하기 하나 주술을 건거야. 이제 알겠어.”

 

 

 

경수가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뜬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에 빙의되면 보통 입고리가 올라가. 그러니까 항상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8월3일 그 상황에 교사라면, 웃고 넘어갈 수 있나? 학생들이 모두 동급생을 멸시하는데? 내가 본 건 그거였어. 웃고 있었다고. 연수야. 너 운동할 때 선생님 표정 봤어? 어땠어?”

 

연수가 창백한 표정으로 답했다.

 

“항상 웃고 있어. 항상, 미소가 입 전체에 걸쳐진 채, 눈까지 웃고 있어.”

 

“왜 이국땅인 우리나라에서 이 강력한 주술이 발동 됐는지 이해가 가네. 저주를 안고 온 거야. 성희 삼촌, 그러니까 체육 선생님은 모종의 이유로 무시무시한 저주에 걸려 빙의 되어 돌아 온 거지. 그러면 이 하나 더하기 하나를 발동해서 얻는 것은 무얼까?”

 

뭔가 이유가 있나? 복잡한 건 싫었다. 이유라면 도대체 뭘? 체육 교사가 학교 장악해서 얻는 게 뭐가 있다고? 그리고 자기 자신도 아니잖아. 우리랑 똑같은 동급생인, 미소녀인 조카가 그 효력을 받는다. 음, 그러고 보니, 주워듣기로는 일본의 귀는 원(怨), 우리나라 귀는 한(恨)이라고 했었지. 원이 가득한 악귀. 전구가 머릿속에서 반짝, 켜졌다.

 

“야. 그거 있잖아. 그 하나 어쩌고 하는 주술 일본에서 성공한 적 없다 했지? 엄청 유행 탔는데도 말이야.”

 

“응. 성공사례는 딱히 없어. 그래서 그 파기 방법도 모르겠고.”

 

경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내가 지금 뭔 생각이 빡 들었는데, 있잖아. 경수 너처럼 일본에도 주술이나 오컬트에 미친 인간이 하나는 있지 않겠냐. 가정해보자고. 하나 더하기 하나 주술이 안 먹혀. 당최 안 통하는 거야. 그거에 반쯤 정신이 나가서 어떻게든 그걸 이루려 하는 거야. 자존심 문제거든. 원통 한 거야. 원. 그래서 그 주술의 저주를 우연히 일본으로 건너 온 체육 선생님한테 내린 거지.”

 

“그게 뭔 소리야?”

 

“일본이 아니면, 한국에서라도, 그 주술이 성공하길 빈 거야.”

 

“뭐라고?”

 

 

 

“원. 그 절박함과 원통함이 강력한 저주가 되어 체육 선생님한테 빙의 된 거야. 찌질 하게. 안방에서 안 되니 다른 곳에서라도 되길 바란 거지. 찌질 하네. 그 살이 성희한테 간 거고.”

 

 

 

경수가 무릎을 탁 쳤다. 깜짝 놀란 내가 바라보자, 경수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너 이 새끼. 발상이 대단하다.” 연수가 그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체육 선생님은, 음, 그러니까 조종당하는 거지?”

 

“그렇지. 걸린 채 넘어와서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술을 부린 거지. 그게 성희한테 간 거고. 성희의 바람이 주술로 이뤄진 거야. 그 애 또한 어떻게 보면 피해자야.”

 

경수가 슬쩍, 천장을 바라보았다. 침을 꿀꺽 삼키는 그를 보며, 나는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이거 한일전이네. 참나. 존심 상하네. 해보자 이거지.”

 

경수가 다시 두 눈을 비볐다. 이상하게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경수 너 눈이 되게 막 빛나......” 연수가 내 말을 듣고 경수의 눈을 쳐다보았다.

 

“어 그러네. 렌즈 했냐?”

 

“아니 이거, 주술이다. 안광술.” 경수가 답했다.

 

“귀신 보는 술이야.”

 

“으악! 왜 귀신을 보고 그래!”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 내가 지금 할 것처럼 말이야.”

 

“가끔 난 니가 나랑 같은 나이의 고딩인 게 믿기지 않는다. 너 지금이라도 돗자리 깔고 점집 차려야 되는 거 아니냐?”

 

“태식이 너, 잠 잘 자냐? 여기서? 뭐 막 악몽 꾸고 가위 눌리고 그런 거 없어?”

 

“아, 그, 몇 번 있긴 한데, 하도 당해서 그러려니 하거든. 어떻게 알았냐?”

 

“정말 대단한 놈이다. 너도. 너 이 방, 뭐가 있는지 모르지?”

 

경수가 천장을 계속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기 천장 구석에, 어마어마한 게 하나 붙어있거든. 아까부터 계속 거슬렸어. 천장 굽다리 귀신이야.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네. 매일 너한테 붙었을 텐데 버틴 너도 대단하다.”

 

“아 혹시 머리 긴 누나? 그 누나 만날 내 꿈에 나와서 친하게 말 거는데 일단 난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 안하는 주의니까. 자주 삐지긴 하더라. 화났는지 막 나한테 올라타고......”

 

연수가 입을 벌린 채 나와 경수를 번갈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너네 미쳤니? 지금 뭔 소리들이니?”

 

“아니 안 미쳤어. 나는 보는 거고, 태식이는 아는 거고. 태식이니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는 거야. 얘는 선천적으로 겁이 없으니까. 머리 긴 누나 말이야. 너한테 뭐라 하디?”

 

“별 거 없어. 놀자고. 외롭다고. 그런데 내가 피곤해서 자려 하면 그러니 내가 받아줄 수 있겠냐. 누나 외로운 거 알겠는데 그렇다고 졸려 죽겠는데 같이 놀 수도 없잖아.”

 

“해를 끼치진 않겠구나. 좋아.” 경수가 두 손을 깍지 끼며 기지개를 뻗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물 건너온 악귀에게는, 터줏대감이 인사해줘야 예의지.”

 

나와 연수 모두 영문을 몰라 그냥 쳐다만 보았다. 경수가 볼펜을 꺼냈다. 성희의 주술 노트를 펼치고, 백지 부분을 편 뒤, 볼펜으로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동서남북 표기를 한 뒤, 알 수 없는 문자를 그렸다. 노트를 끼적이며, 경수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 주술은 신 내림과 비슷한 거야. 나도 처음 해봐. 태식이 아는 누나 불러서, 태식이한테 씌울 거야. 물론 이번 일만 해결할 때까지야. 강력한 주술이야. 뭔가를 뭔가에 빙의하는 건, 그 여파가 어마무시하거든? 태식이니까 버틸 수 있는 거지. 성공하길 빌어라.”

 

“왜 내가 희생양이 되어야 하냐. 내 의사는 무시하고 그냥 니 멋대로 진행 하냐?” 내 투덜거림에 경수가 진지하게 답했다.

 

“탕수육 세트 다섯 번. 아무 때나 니가 말하면 내가 쏜다.”

 

“와 씨, 제길. 흔들리네. 부족해. 깐풍기 두 번 추가해라.”

 

“탕수육 다섯 번, 깐풍기 두 번. 보너스로 양장피 한 번.”

 

연수의 두 눈이 가늘어지며, 하릴없는 공허한 눈빛으로 나와 경수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오케이! 콜!”

 

“그럼, 시작한다.” 경수가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그가 노트 구석을 가리켰다. 나와 연수 모두 숨 죽여 경수의 손 끝을 쳐다보았다. 경수가 그리던 동그라미 바로 옆 장 백지에, 숫자와, 글씨들이 새겨지고 있었다. 붉은 글씨들은 거칠게 꿈틀거리며 노트를 채워갔다. 춤을 추던 글자들이 멈추고, 보고 있던 우리도 순간 숨을 멈췄다.

 

 

 

820.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죽여라. 죽이지 않으면 모두는 너를 다시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다. 죽여라. 죽이지 않으면 너는 모두 잃을 것이다. 죽여라. 다시 기억나게 해주지. 네가 이름을 물어봤던 이들이다. 죽여라.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라. 죽여라. 이들을 소멸해라.

 

 

 

“시간이 없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경수가 다시 뭔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계속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4. 820. 반격

 

 

 

 

 

노트가 예고한 날이 바로 오늘 8월 20일이다. 우리 셋은 다시 오전 일찍 모이기로 하고 전 날 헤어졌다. 연수를 먼저 보내고, 경수는 한 동안 집에 가지 않고 나와 함께 있었다. 천장에 붙어 있는 머리 긴 누나가 둥실둥실 내려와 내 어깨에 달라붙는 걸 확인한 후, 그제야 자리를 떴다. “의도한 건 아닌데 좀 미안하네. 어찌어찌 성공은 했다. 나 니 말대로 이쪽으로 나가야 할까봐 진로.” 살짝 뻐근했지만 뭐 그다지 크게 불편한 건 없어서 그대로 경수를 배웅했었다. 밤새도록 놀아달라는 누나를 피해 도망 다니느라 잠 한 숨 못 잤지만, 뭐, 이게 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이른 아침시간이었다. 오전 7시에 우리는 다시 내 집에 모이기로 했다. 창백한 표정으로 경수가 먼저 도착했고, 뒤이어 연수가 털레털레 등장했다. “잠 잘 잤냐?” 공허한 눈빛으로 보는 내게 경수가 말하다 말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미안.” 너 이 새끼. 연수가 들고 온 비닐봉지에서 삼각 김밥과 캔 음료를 꺼냈다.

 

“배 채워야 싸우지.”

 

“우와 고맙다. 이런 거 보면 너도 살짝 경수를......” 경수 버전 정권 지르기가 내 명치를 때리고, 쿨럭 하며 침을 흘린 내가 무릎을 꿇었다. “이거랑 그거랑 뭔 상관이야.” 연수가 웃으며 경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괜찮아. 신경 안 써.” 경수의 얼굴이 또 빨개지는 걸 보며, 이까짓 아픔 우정으로 승화해야지 하는 생각에 별 내색 없이 방구석에 주저앉았다. 서로 삼각 김밥을 입에 물며, 우리는 어제 밤늦게까지 의논했던 ‘반격’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했다. 경수가 굳은 표정으로 침묵을 깼다.

 

“태식이 책상 안에 들어 있던 목 없는 쥐의 시체는 혼절술의 일종이야. 주술을 건 당사자가 원할 때 쥐를 건드린 이는 의식을 잃게 된다. 그러나 내가 태식이 집 천장에 있는 굽다리 귀신을 태식이에게 빙의시켜서, 그 주술은 튕겨나갔을 거야. 즉, 역살을 맞게 된다.”

 

“하지만 주술을 건 이가 누군지는 확실치 않다.”

 

“저주라는 건 리스크가 커서, 실패했을 경우 그대로 술사에게 돌아가. 그것이 성희인지, 체육 선생님인지를 몰라. 역살을 맞으면 원귀를 쫓아낸다. 결국 우리도 패를 나눌 수밖에 없어.” 경수가 고개를 돌려 연수를 바라보았다.

 

“나와 연수는 체육 선생님을, 태식이 너는 성희를 맡는다. 우리를 보게 되면 혼절 저주를 발동하겠지. 그 틈에 반격한다.”

 

내가 정말 겁이 없는 걸까? 무섭다고 느낀 적은 많았는데, 그 이후에는 그저 물 흐르듯 흘려보내긴 했지. 과연 경수의 말이 맞는 걸까? 그나저나 뭔가 경수에게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 주술노트에 직접적으로 죽이라고 기록 된 건 이번이 처음일 텐데. 그만큼 위험한 상황인데 왜 떨리지가 않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파이팅 하자고.” 경수가 일어섰다. 나와 연수도 같이 일어섰다. 이제, 학교로 향할 시간이다.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이다. 그렇게 더웠던 날들인데 오늘은 묘하게도 서늘하기 까지 하다. 여차하면 장대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다. 나란히 서서 걷던 우리 앞에, 교문이 보였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 뒤 말없이 눈짓했다. 체육관으로 뛰어가는 연수를 따라 경수도 움직였다. “휴대폰으로 꼭 연락해야 돼!” 3층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학교 건물을 쳐다보았다. 우중충한 날씨에 어울리는 으스스한 자태다. 아무리 이른 시간이라지만 학생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 커다란 학교와 운동장에, 개미 한 마리도 없다. 밑에서부터 죽 올라가던 내 시선은, 건물 옥상에 다다라 멈췄다.

 

회장님이 서있었다.

 

기다리고 있구나.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발을 내딛었다. 천천히 걷다가, 점점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애들이 들이닥쳐 날 덮칠지도 몰라. 모두 다 어디 있는 거지? 성희를 만나기도 전에 먼저 당하면 큰일이다. 경수와 연수는 어떡하고 말이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와, 그런데 진짜 나 겁이 없긴 없나 봐. 한 번 죽었다 살아나서 일까? 애들한텐 얘기 안 했지만, 내가 혼자 사는 이유는, 모두다 사고로 돌아가시고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돌아가시고, 나만 살아남았었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지.

 

그러니까 말이야. 뭐 이런 때 삶이 어쩌고 세상이 밝게 빛나고 하자는 건 아니고. 나는 어쩌면 그때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는 거지. 그런데 우연찮게 살게 된 거고, 그래서 겁이 없어지게 된 게 아닐까. 겁이라는 거, 두려움이라는 거, 다 죽음과 연관 있잖아?

 

뭔 개똥철학이냐. 큭큭큭큭큭큭. 경수가 들으면 또 명치 때릴라. 입구 현관을 힘차게 밀었다. 불도 다 꺼져있어. 계속 주위를 살피며 나는 계단으로 올라섰다.

 

 

 


 

 

 

연수는 심하게 불안해했다. 경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동급생, 우리와 같은 또래라면 무서울 게 없다. 냉정하게 말하면 안 봐도 되는 이들이다. 어차피 추억할 것도 없는 학창시절이겠지. 하지만 지금 만나야 할 상대는 다르다. 현실적으로 연수의 앞길과 연관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유도로 성공해야 하는 연수에게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미안한 마음에 경수가 말을 걸려 하자, 연수가 먼저 말했다.

 

“모 아니면 도야.”

 

“응?”

 

“어차피, 나는 실력이 있고, 여기 아니면 다른데서 보여주면 돼. 그러니까 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걱정하지 마.”

 

“응. 알았어. 하지만 그래도 만반의 준비는 해왔으니, 너도 불안은 거둬.”

 

“너 묘하게 말투가 고루한 거 알아?” 연수가 어깨를 돌리며 피식 웃었다.

 

“불안을 거두라니. 뭔 선비 말투냐.”

 

“나야 어차피 혼자였고 뭐 취미 특기 다 그렇잖아. 그리고 고루라는 단어를 아는 너도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책 읽는 거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 운동만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네. 경수가 미처 답 하지 못하자 연수가 머뭇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생겨서 좋아. 친구도.”

 

“뭐라고?”

 

“아무것도 아냐. 자, 이제 들어간다.” 연수가 체육관 문을 열었다. 운동 준비를 하는 애들로 가득 들어차 있어야 할 테지만, 아무도 없었다. 경수의 머리가 지끈 거리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찌푸리며 걸음을 멈추는 그를 보며 연수가 당황해했다. “왜, 아무도 없는 거지?” 터벅터벅 하는 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짧은 머리를 한 커다란 덩치의 남자. 광대뼈까지 걸친 미소가 어울리지 않게 남자의 얼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바짝 긴장한 연수가 딱 멈췄다.

 

 

 

“연수야. 일찍 왔네?”

 

 

 

경수가 즉시 두 눈을 비비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감았다가 다시 뜨니, 시야가 맑아졌다. 안광술. 체육 선생님의 어깨 위로, 검은 아우라가 펼쳐진 게 보였다. 와, 저건, 뭐야. 흐리멍덩한 형체라 명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안개 속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품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태식이의 연락은 아직 이었다. 태식이가 성희를 만나면, 혼절 저주를 발동할 거고, 그 저주가 튕겨져 나가면, 주술의 원천이 누구에게 붙어 있는지 알 수 있어. 지금 이 모습으로만 보면 체육 선생님이 확실한데. 명확하지 못 해. 연수와 경수 앞에 멈춰 선 남자가 양 팔을 벌려 웃으며 말했다.

 

“뭐 하러 이렇게 일찍 나왔어?”

 

“경수야. 이제 어떻게 해?” 연수의 물음에 경수는 바로 답하지 못 했다.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은......”

 

체육 선생님이 갑자기 달려들었다.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성희의 모습이 나타났다.

 

“태식아.”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성희가 눈을 몇 번 깜박거렸다.

 

“내 이름이 뭐니?”

 

“이성희!” 내 외침과 동시에, 주변에서 학생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십 여 명은 되어 보인다. 정확히 일직선의 경계 뒤로, 멈춰 대기하고 있다. 뒷걸음질 치기 쪽팔리지. 여기까지 왔는데. 심장이 쿵쾅 거리며 뛴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성희가 살짝 놀라며 그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애들은 어디 있니?”

 

“여기까지 왔는데 숨길 필요 없지. 친구들은 체육 선생님한테 갔어. 바로 니 삼촌 말이야. 일본에서 돌아온. 아 참, 그리고 너 그 주술 효력, 오늘까지야. 우리가 깨부술 거거든.”

 

“하나 더하기 하나를 깬다고? 그건 불가능하단다.”

 

성희의 흰자위가 번져가기 시작했다. 나는 즉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성희의 두 눈이 완전히 흰자위로 덮였다. 왜 안 받는 거야. 신호음이 계속 울리고, 주위에 서 있던 애들이 조금씩, 발을 맞춰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니, 뭐가 불가능하냐! 해봐야 아는 거지! 야 너네 다가오지 마!”

 

전화 좀 받아라. 빨리. 전화 좀 받아.

 

“태식아.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일본에 다녀온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뭐?”

 

“내 이름은 이성희. 다른 이름은 하나카와 미오다.”

 

“엉?”

 

“우리 어머니는 일본인이야. 혈통으로 발동한 내 주술은 진짜다.”

 

성희가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옥상위에 있던 모두가, 두 팔을 들고, 뚜벅뚜벅 내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자살한 동급생. 이름은 태식이. 슬퍼라.” 성희가 웃었다.

 

 

 

“설마 빙의니 뭐 그런 거 생각했어? 진짜? 그럴 리가 있나. 그 주술 내가 만들었는데.”

 

 

 

“으아아아아아아악! 전화 좀 받아라아아아!”

 

내 고함소리에 다가오던 학생 중 하나가 몸을 움찔, 떨었다. 아. 이제야 생각이 났다. 쥐를 던졌을 때 책상위에 떨어진 그걸 보고 겁에 질렸던 애, 혜진이? 이거를 경수한테 말했어야 했어. 몸은 몰라도 정신까지 완전히 조종당하는 게 아니라고!

 

“오지 마! 너희들 나 죽으면 다 살인자야 살인자! 너네 빨간줄 긋고 인생 어떻게 살래? 야 사람이 태어나서 효도하고 사는 거도 힘든데 불효를 저질러야 되겠어? 너네 다 아는 거 알아! 얘 농간에 휘둘리지 마!”

 

몇 몇이 움찔 거리며 몸을 떨었다. 이거 통한다! 바로 옆에서, 귓가에 속삭이는 성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귀찮네. 이제 기절할 시간이야. 태식아.”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미처 피하질 못 하고, 연수가 바닥에 넘어졌다. “연수야!” 경수가 뛰어들려 했지만, 연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위험하니 다가오지 말라는 것이다. 주춤 한 틈을 타, 체육 선생님이 연수의 목을 졸랐다. 경수가 안절부절 못 하며 부랴부랴 가방을 열었다.

 

“어디 있냐. 어디 있어. 아 진짜 그거 챙겨왔는데.”

 

연수가 선생님의 손목과 팔을 잡았다. 힘을 주어 팔꿈치를 때고, 순식간에 방향을 비틀어 꺾었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선생의 몸이 옆으로 쏠려 넘어졌다. 팔 얽어 비틀기.

 

“아 찾았다!”

 

선생님이 팔을 빼려 몸을 돌렸지만, 그에 맞춰 연수도 놓지 않고 빙글 몸을 돌려 옆으로 뻗었다. 꺾은 상태 그대로 품에 안고, 두 다리를 들어 어깻죽지를 조였다. 그대로 관절 반대 방향으로 연수가 힘을 주었다. 팔 가로 누워 꺾기.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선생님의 강력한 힘에 꺾기가 풀리자 잡은 팔을 놓지 않고 연수가 몸을 돌려 선생님을 눕힌 뒤 그대로 팔을 겨드랑이 안쪽에 끼고, 다른 손으로 목 뒤를 감싸며 함께 조였다. 가슴을 압박하며 목과 팔을 조인다. 곁누르기.

 

 

 

“자!” 경수가 선생님의 이마에 뭔가를 탁 붙였다. 카악. 이상한 괴음과 함께 선생님의 사지가 풀리며 대자로 드러누웠다. 누르기를 풀고 연수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일어섰다. 숨을 몰아쉬며 쓰러져 있는 선생님의 이마에 붙어있는 걸 본 연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경수를 보며 말했다.

 

“헉, 헉, 저거 부적이야? 부적 맞아?”

 

“응. 마비술. 잠깐은 통할거야. 어제 내가 직접 만들었음.” 경수가 자랑스럽게 답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뭐긴 뭐냐. 친구지.” 저 멀리서 휴대폰 벨소리가 들렸다. “아 깜박 잊고 있었어!” 부리나케 달려 간 경수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귀에 대자마자 고함소리가 난무했다.

 

“이성희가 미오야!”

 

“뭐? 뭐라고? 갑자기 뭔 소리야!”

 

“하나카와다! 하나카와 미오다!”

 

“진정하고 제대로 말해 봐. 뭔 소리야 그게!”

 

“아나 씨브아으알! 주술을 만든 당사자라고!”

 

“아!”

 

경수가 폰을 내려놓고,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흐끼야아아아악! 태식이 특유의 비명 소리가 체육관을 울렸다. “혼절 저주 걸었어? 발동됐어?” “잠깐! 야 경수야! 그 얘네들 움찔거려. 백프로 조종당하는 거 아니야!” “뭐? 아니 음, 그래? 그렇다면.” 심호흡을 한 경수가 외쳤다.

 

 

 

“전화 끊지 말고 지금 즉시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춤을 춰!”

 

“뭐라?”

 

“춤을 춰! 최대한 팔 다리를 흔들면서! 춤을 춰!”

 

쿵! 바닥이 울리는 소리에 놀라 돌아본 경수의 눈에, 연수가 두 손을 탁탁 털며 어깨를 으쓱하는 게 보였다.

 

“부적이 떨어졌기에, 바닥에다 메치기로 다시 붙여줬지.” 대자로 뻗어있던 선생님은, 이젠 머리를 바닥에 박은 채 엎드려 있었다. “야 이 새끼야!” 전화로 고래고래 소리치는 태식이의 고함을 들으며, 경수가 두 눈을 감고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성희의 손가락이 내 목을 톡 쳤다.

 

[기절해라]

 

전화가 연결됐다! 목이 떨어져라 고함을 내질렀다.

 

“옥상이다! 이성희가 미오야!”

 

“뭐? 뭐라고? 갑자기 뭔 소리야!”

 

“하나카와다! 하나카와 미오다!”

 

“진정하고 제대로 말해 봐. 뭔 소리야 그게!”

 

“아나 씨브아으알! 주술을 만든 당사자라고!”

 

“아!”

 

혼절술이 발동되며, 어디선가 나타난 쥐의 형상을 한 그림자들이 빠르게 내 몸을 타고 올라왔다. 불쾌하고 더러운 기분이 들어 토할 것만 같았다.

 

“흐끼으야아아악!”

 

“혼절 저주 걸었어? 발동됐어?”

 

텅 하고 몸이 떨렸다. 쥐 그림자들이 후두둑 떨어지더니, 내 발 밑을 뱅글뱅글 돌다가, 방향을 바꿔 성희에게로 향했다. 어? 진짜 튕겨졌네? 발동 되었다는 대답을 하려다가, 움찔거리며 머뭇거리던 애들의 상태를 얼른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급하게 외쳤다.

 

“잠깐! 야 경수야! 그 얘네들 움찔거려. 백프로 조종당하는 거 아니야!”

 

“뭐? 아니 음, 그래? 그렇다면.”

 

널 믿는다 경수야. 우리 중에 니가 제일 능력자야. 분명 이 상황을 멋지게 타개해 줄 방법을 알거야.

어서! 알려 줘!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화 끊지 말고 지금 즉시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춤을 춰!”

 

“뭐라?”

 

“춤을 춰! 최대한 팔 다리를 흔들면서! 춤을 춰!”

 

 

 

“야 이 새끼야!” 휴대폰을 던질 뻔했다. 하지만, 그러면 나는 죽는다. 춤을 추라고? 이런 씨...... 쥐의 형상을 한 그림자들은 성희의 몸을 올라타고 있었다. 성희도 당황했는지 뒷걸음질 쳤다. “아니, 뭐야. 왜 역살이......” 성희의 흰자위로 가득 한 눈이 내 몸을 훑었다.

 

“그렇구나. 강력한 수호령이 붙어 있구나.”

 

“우리 집 천장에 사는 누나다!” 대답과 동시에 흐느적거리는 나를 보며, 성희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뭐......하니......?”

 

“춤춘다!” 허리를 돌리며 답하는 나를 보며 성희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의 두 눈이 서서히 감기고 있었다. “빌어먹을. 하지만 내가 기절해도 너는 죽은 목숨이야. 너까지.......나머지 둘 다 죽여서......이 주술을......완벽하게......”

 

성희가 쓰러졌다. 쥐의 그림자들도 사라졌다.

 

“야! 성희가 역살에 걸렸어!” 폰에 외쳤지만 답이 없었다.

 

“나 언제까지 춤춰야 돼?” 두 팔을 덩실덩실 흔들며 내가 물었다.

 

“경수야!”

 

 

 

“두려움을 이기는 건 더 큰 두려움이다. 드러내서, 보여라.”

 

 

 

어깨가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차가운 느낌이 목덜미를 훑었다. 감싸 안았던 두 팔을 풀며, 여인의 팔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흔들리는 내 두 팔에 맞춰, 여인의 가녀린 팔도 흔들렸다.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긴 여인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내 머리 바로 위로, 여인의 머리가 올라갔다. 퀭한 두 눈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검은 구멍 두 개뿐. 내 몸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였다. 나를 향해 다가오던 아이들의 눈이 공포와 경악으로 가득 찼다. 가장 앞서 오던 아이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빨을 부딪히며 몸을 떨던 다른 아이도 주저앉았다. 모두가 겁에 질려, 다리가 풀린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긴 머리의 여인이 그대로 머리를 돌렸다. 180도로 꺾여 목만 돌아간 여인은 성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은, 여전히 춤을 추고 있던 나는, 계속 이 춤을 추어야할지 망설여졌다.

 

“와, 천장 누나 나오니까 애들 다 올 킬 인데, 그런데 나 계속 춤 춰야 되냐?”

 

“춤은 예전부터 신과 대화하는 중요한 주술의 일종이야. 빙의된 귀신을 드러내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일단 옥상 가고 있어. 거의 다 왔다.”

 

아 계속 추라는 거네. “빨리 와라 얘들아......” 몸이 갑자기 뒤로 끌려갔다. 쓰러진 성희 쪽으로. “어라?” 몸을 돌려 보려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덜컹 하고 옥상 문이 열렸다. 경수가 두 눈을 비비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한냐 가면이다. 무시무시하군. 이제 둘이 붙을 거야. 태식이 너, 이제 춤 안 춰도 돼.”

 

다리가 풀리며 쓰러지려는 걸, 연수가 다가와 부축해줬다. 경수는 그저 보고 있었다.

칼을 문 한냐 가면 원귀와, 외로움에 천장에 붙어 있던 굽다리 한귀가 서로 얽혀서 사라지는 모습을.

원통하다. 원통하다. 원통하다.

원과 한이 사라지며 음산한 메아리를 보냈다. 경수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끝났다. 사라졌어.”

 

“그럼 이제, 얘들은 어쩌냐?” 연수의 질문에 경수가 가리킨 건 성희였다.

 

“쟤부터 깨우고 나서, 의논해보자고.”

 

 

 


 

 

 

그러니까 일단은, 성희도 우리 반 동급생이다.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가운데, 성희와 경수가 서로 눈싸움을 하듯 노려보며 앉아있었다. 영철이가 슬쩍 다가와 경수에게 말했다.

 

“어이. 찐따. 빵 사와라.”

 

“니가 가서 사 쳐 먹어라.” 연수가 대신 답했다. 자기보다 큰 연수를 멍하니 쳐다보던 영철이 뭔가 답하려 했으나, 연수의 눈빛을 보더니 조용히 사라졌다. 옆자리에 있던 혜진과 여학생들이 존경의 눈빛으로 그런 연수를 쳐다보는 게 보였다. 나는 멀찌감치 창가 구석에 앉아, 그런 광경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뭐, 다 잘 됐다. 애들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한테 말 거는 놈들도 몇 생겼고, 특히 게임 고수인 내 장점을 알게 된 애들 몇은 정기적으로 연락하자며 아이디를 공유했다. 경수와 성희 둘은 여전히 서로 노려보고 있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저 성희도 대단하고, 경수도 대단하다. 둘이 합쳐 모두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주술을 풀었으니. 이거야말로 극 과 극이 합쳐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의 바른 결과 아니겠는가. 반 쯤 협박당해 한 거겠지만.

 

지금은 조용하지만, 언제 다시 새로운 주술을 부릴지도 모른다. 저 악마, 이성희. 하지만 당분간은 어림도 없다. 경수가 있고, 연수가 있고, 무엇보다 선천적으로 겁이 없는 내가 있다.

 

모두가 성희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러고 보니 유일하게 대놓고 면전에서 이름을 부른 사람, 나밖에 없잖아?

 

역시 나는, 겁이 없는 게 맞다.

 

 

 

 

 

댓글 2
  • No Profile
    모르타 18.10.09 20:43 댓글

    역시 믿고 보는 후안님, 재미있어요!!

  • 모르타님께
    No Profile
    글쓴이 후안 18.10.10 11:35 댓글

    감사합니다. 개그 코드가 맞았는지 모르겠네요 ㅋ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037 0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9774 0
2479 단편 Call me Ishmael 2(完) 이억수 2018.10.19 1 0
2478 단편 Call me Ishmael 1 이억수 2018.10.19 1 0
2477 단편 삐거덕 낡은 의자 온연두콩 2018.10.18 4 0
2476 단편 BUSY 온연두콩 2018.10.18 4 0
2475 단편 이름 없는 싸움 김성호 2018.10.17 4 0
2474 단편 비취 라그린네 2018.10.17 6 0
2473 단편 고양이 카페트 선작21 2018.10.17 5 0
2472 단편 감가상각 선작21 2018.10.17 4 0
2471 단편 닫혀 있는 방2 모르타 2018.10.07 31 1
2470 단편 문 뒤에 지옥이 있다4 지현상 2018.10.06 47 0
2469 단편 한국 소설 문학의 화신 너울 2018.10.04 16 0
단편 모두가 성희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2 후안 2018.10.02 32 0
2467 단편 초광속 통신의 발명 너울 2018.09.28 18 0
2466 단편 모두 정화되기까지 후안 2018.09.27 14 0
2465 단편 감정을 감정하기 너울 2018.09.27 16 0
2464 단편 폴라로이드 사진 모르타 2018.09.15 18 0
2463 단편 지옥도 후안 2018.08.31 47 0
2462 단편 시체가 놓여있는 상점 유래유거 2018.08.19 53 0
2461 단편 분리수거 김성호 2018.08.16 58 0
2460 단편 Y의 딸 김성호 2018.08.16 50 0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4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