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Punish

2018.06.16 03:3706.16

직장인에게 제일 바쁜 오후 키보드소리만 들리는 사무실에서 하염없이 모니터만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다. 흰 피부톤에 은테 안경을 쓰고 얇은 입술을 가졌기 때문에 그는 겉보기에 차가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목에 걸고 있는 사원증에는 이석재라는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석재는 오늘도 마인드 딥러닝을 통해 모니터속에 구현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분신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인드 딥러닝이란 쉽게 말해 사람의 정신을 복사하여 컴퓨터 속에 넣는 최첨단 기술이었다. 따라서 지금 석재가 관찰 중인 석재의 정신을 복사한 이것또한 이론상으로는 석재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또 하나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석재 씨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얼른 들어가요. 요즘 많이 고생했는데…….”

뚱뚱하고 무능한 부장이 언제나처럼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껄인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웃음을 지으며 기쁘게 화답했다. 직장생활이란 그런 것이니까.

“하하 부장님이 제일 고생 많이 하셨죠. 저야 부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니까 다 잘 풀린 거죠.”

부장은 크고 넓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새우같은 눈으로 한번 눈웃음을 지어준뒤에 곧바로 자신의 모니터로 눈길을 돌렸다.사실 프로젝트는 막바지였기에, 지금 부장이 특별히 하고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그는 어떻게 하면 최대한 일을 피할 수 잇을까를 생각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의 눈은 다시 차갑게 모니터를 바라본다. 모니터 속에 석재의 외모을 그럴듯하게 재현한 분신은 지금 큰불에 휩싸여 온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것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참혹한 비명을 질렀지만 석재가 분신의 음성 설정을 꺼두었기 때문에 소리없는 비명을 내지를 뿐이었다. 그가 산채로 불타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석재가 그의 몸에 불을지르는 명령어를 내렸기 때문이다. 지금 그가 하는 행동은 업무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었다. 다만 그것은 놀이에 불과했다. 사실 석재의 주 업무는 마인드 딥러닝을 통해 컴퓨터속에 구현된 분신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이었다. 회사에 천문학적인 액수를 지급하고 구현된 고객의 분신들이 프로그램 내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실제와 같은 치명적인 고통을 당하면,정말 큰일이기 때문에 그는 프로그램 속 환경을 다시 짜는 일을 하였다. 앞으로 며칠 뒤면 마인드 딥러닝. 즉, 인간의 정신을 완전히 컴퓨터 속에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회사는 대대적인 홍보를 할 것이다. 인간의 뇌 속에 있는 850억 개의 뉴런과 그것들과 이어진 더 무수한 수의 시냅스조차 완벽하게 컴퓨터 속에서 구현했다고 말이다. 물론 사실 내부자로서 회사의 주장은 [완벽하게] 라는 말을 쓸 정도는 아니라고 석재는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이라는 말에는 동의했다. 수치상으로는 98% 정도……. 하지만 석재에 그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어쨌거나 회사는 이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시점에 온 것이다. 더이상의 지연은 회사 사정상 힘들었다. 언제나 조급한 투자자들의 성화에 언제나처럼 회사는 지고 말았다. 나머지 2% 수치는 점차 보완하면 될 것이라는 것이 회사 측의 입장이다.

석재가 주로 자신의 작업에 사용한 테스트용 분신은 의식을 구현 화하는 과정을 많이 간소화하였다. 전체적인 수치로 환산하면 90% 정도일 것이다.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자극에 대한 신체적인 반응을 중점적으로 구현 화하였고 그 외에 부분은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조금 더 세밀하게 해당 인간의 정신을 구현하려고 하면 할 수 록 시간과 비용이 몇배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 빼먹어서는 안되는 한 가지는, 분신 스스로가 컴퓨터 속에 존재하는 가짜 자아라는 것을 인지하게 끔 하는 것이다. 석재의 회사는 테스트용 분신의 구현이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사실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는데, 그것은 바로 해당 분신의 자살이었다. 주로 관련 개발부서의 직원들의 정신이 그대로 컴퓨터 속에 구현 화 된 것인데. 그 분신들은 철석같이 자신을 진짜라고 믿고 있으니 그 괴리감을 견딜 수 없었기에 자살을 선택했다. 자살을 방지하게끔 프로그래밍을 짜보아도 결국엔 테스트를 해 나갈 수 없을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다. 컴퓨터속 세상이라는 현실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 스스로 컴퓨터 속에 존재하는 테스트용 분신이라는 인지하게끔 함으로써 그들은 그 속에서의 환경을 받아드릴 수 있게 되었다. 방금전까지 석재가 관찰하던 석재의 분신도 그와 같은 과정을 당연히 겪었다. 그래서 모니터 속의 그는 항상 무력하고 우울한 얼굴을 가진 가짜였다. 테스트 초반에 실제 사람들의 인격을 쓴다는 것에 적응 못 하는 몇몇 직원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약간의 시간이 흐르면 점차 분신들에 대한 연민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사실상 그것들은 정말로 거짓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석재는 사실 요즘 공을 쏟던 프로젝트가 끝나감에 따라 오히려 허무함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 회사 내 업무에 적응하고 인정받고 그 생활을 지속하기를 2년 정도 되자 슬슬 회사생활에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학창시절과 대학교 시절 자신이 원하고 이루고자 했던 야망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좀더 많은 돈과 성공을 원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선택받은 소수에게 한정된 것이었고, 그는 선택을 받지 못할 따름이었다. 석재가 소속된 부서는 더는 진행할 특별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퇴근 시간이 되자 그는 바로 퇴근준비를 마치고 사무실을 휑하니 나갔다. 사무실의 다른 인원들도 집에 가기 위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날 출근한 석재는 평소와는 다른 들뜬 분위기의 사무실에 의아해하였다. 삼삼오오 모여서 무언가에대해 저마다 말을 하고 있었다.

“다들 무슨 난리길래 이렇죠?”

“석재 씨 아직 못 들었구나. 지금바로 사내 홈페이지 가서 이벤트항목 봐봐 대박이야!”

바로 옆에 서있던 부장이 바로 알려주었다.

잠시 후 석재의 흥미마저 이끈 회사의 파격적인 이벤트가 떠올랐다. 바로 회사 내 직원 중 한 명을 실험자로 선발하여 마인드 딥러닝을 통해 컴퓨터 안에 완전한 정신을 구현 화한 후에, 컴퓨터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시킨 후 에 다시 그 정신을 실험자의 몸에 덮어쓰는 실험을 한다는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임상시험을 통해 100% 성공을 자랑하고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또한 해당 직원은 그에 따른 보수로 커다란 금액을 받게 되었다. 보통사람이 남은 여생을 부유하게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회사측에서는 마인드 딥러닝의 기술에 대한 홍보를 위해 이런 획기적인 이벤트를 기획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석재의 눈은 순간 번뜩였다. 차갑고 빠르게 그의 뇌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것이 기회임을 직감했다. 물론 당장의 이익에 눈멀은 성급한 회사의 말에 속아 이런 위험천만한 이벤트에 빠질 생각은 없었다. 다만 석재는 어떻게 이 위험을 피하고 이득을 취할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방법을 떠올렸다.

마인드 딥러닝 머신 안에는 들어가되, 실질적으로 컴퓨터 속에 들어가는 것은 새로히 구현된 석재의 정신이 아닌,테스트용으로 이미 사용중인 석재의 분신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실질적인 외관이나 행동은 석재와 같으니, 홍보에 급급한 회사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길 것이다. 그 후에 컴퓨터속의 석재의 정신을, 실제 석재의 인체 속에 다시 주입하는듯한 동작을 취한 후에, 머신안에서 그저 상황을 지켜보다가 머신 밖으로 나와 마치 실험이 성공적한 척하면 그만이었다. 다만 한가지 염려되는 것은 회사 쪽에서 컴퓨터 속 석재를 감시할 때에 테스트용 분신 ‘본인은 가짜라는 둥’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되는 부분이 염려되었다. 이 계획을 하기에 앞서 석재의 분신과 말을 맞춰놓는 작업이 필요하였다.

서둘러 프로그램 속의 그에게 대화를 시도했다.그는 프로그램속 의식체에게 대화창을 열고 타자를 쳤다.

[어이.]

반복된 고통에 적응해 오늘도 우울한 얼굴을 하고있던 그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그는 허둥지둥 주위를 둘러본다.

“예? 거기 누구시죠?”

석재는 다시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진짜 세상 속에 있는 너의 본체이다. 실제로 말을 건 건 처음인 것 같군. 굳이 나를 보고 말하려 할 필요는 없어.어차피 지금 너는 날 볼 수 없을테니.카메라를 꺼놨거든.]

프로그램속 가짜석재는 묘한 표정으로 잠시 동안 뜸을 들이더니,허공을 쳐다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예. 근데 갑자기 무슨 일로?”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석재는 자신의 계획을 간략하지만, 정확히 설명하였다. 결국에 그가 바라는 것은 이벤트 중간에 분신이 석재 본인인 것처럼만 행동해주면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말대로만 해주면 그는 석재가 만든 인간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가 가득한 프로그램 속에 그를 영원히 살게 해준다는 약속이었다. 바로 회사 측에서 실제 고객들을 위해 만든, 인간이 가진 모든 욕망을 실현케 할 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그곳에서 병들고 지친 육신을 버리고 떠난 고객의 정신을 구현한 분신들은,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고 갖가지 쾌락을 느끼며 지낼 수 있었다. 그것이 사실상 마인드 딥러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상이기도 했다. 물론 석재는 자신의 범죄에 대한 증거를 남겨둘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의식체는 깨끗이 삭제할 것 이다. 모든 기록도 함께.

가짜석재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흔쾌히 대답했다.

“좋습니다. 주인님.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대한 협력할게요.”

[오.역시! 또 다른 나야.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군. 그동안 내가 너한테 했던 행위는 잊으라고. 나도 회사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거야.]

“하하 저는 다 이해합니다. 저는 곧 당신이니까요.”

일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문제의 그 이벤트에 지원하였고 몇몇 소수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마지막 한 명에 선발되는 것에 성공하였다. 석재의 가진 조건은 회사가 찾는 바로 그것이었다. 독신 남성에 젊고 유능한 직원·준수한 외모의 그는 회사의 홍보역할로써 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사무실은 갑작스런 석재의 이벤트 선발소식에 떠들썩하였다. 평소에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던 석재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행동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평소 안면만 있던 옆 부서 상사가 찾아와 이벤트 참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고 훈계를 하는 둥, 사실상 재고해보라는 말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석재는 최대한 웃음 지으면서 자신은 회사를 믿는다고 말을 하곤 하였다. 며칠 뒤에 그는 간단한 신체검사와 함께 회사 측에서 들이미는 굉장히 두꺼운 크기의 이벤트에 관한 계약서에 싸인을 하였다.결국 그 내용이란 이벤트후에 발생하는 그 어떠한 부작용에 대해서도 회사측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라는 내용일 것이 뻔했다.

마침내 이벤트 당일이 되었다. 많은 취재진이 회사 내 강당에 모여있었고, 강당뒤편 커다란 스크린에는 마인드 딥러닝에 대한 필요성을 말하는 세련된 홍보영상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이벤트 진행방식에 대해 말하자면, 석재가 마인드 딥러닝 머신 안에 들어가, 10여 분 정도 지낸 후에 딥러닝이 완료되면 디지털화된 석재의 의식은 모니터 속에서 회사 측이 준비한 실제 세상에서 느끼지 못할 여러 경험을 한 후 (예를 들어 구름을 거닜는 다든지....등등) 간단한 질문등에 답하는 인터뷰 시간을 가진 후, 마인드 딥러닝 속 석재의 육체에 돌아가는 식이었다. 이벤트가 성공한다면 석재는 컴퓨터 속에서 했던 경험 또한 실제있었던 일처럼, 현실속 그의 뇌에 기억으로써 자리잡을 것이다.

취재진들과의 간단한 인터뷰가 끝난뒤에 석재는 무대 한가운데 준비된 은회색빛의 길쭉한 유선형 캡슐형태의 마인드 딥러닝 머신에 몸을 눕혔다. 사실 전에도 테스트용 분신을 만들기위해서 몇 번해보았기 때문에 딱히 긴장 되지 않았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는 사전에 해당 머신에 프로그램을 해두었기 때문에 겉에서는 평소처럼 작동되는 듯 하지만 사실상 내부의 그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평상시 마인드 딥러닝 머신은 정신을 구현하기위해 머신 안에 들어간 인간에게 수면 가스를 이용해 잠이들게 한 후에 작동되게끔 설계되어있었다. 심리적인 안정감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인간의 뇌를 읽는 작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였다. 이벤트 과정중에 캡슐안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장면도 계획됬기 때문에 석재는 평소처럼 수면에 이르는 수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석재의 정신을 가장한 가짜 석재가 체험했던 경험을 순전히 머신속에서 잠만 잤던 석재가 어떻게 알고 설명할 것인가 였다. 하지만 석재는 전날 이미 분신이 체험할, 이벤트에 쓰일 프로그램을 해킹하는데 성공했고 실제 자신의 정신이 컴퓨터 속에서 경험한 것처럼 잘 말을 맞추어 나갈 생각이었다. 앞으로 20여분만 캡슐안에서 자고일어나면 그는 보통 회사원으로는 만져보지도 못할 큰 액수의 돈을 성과급으로 받고 특별휴가까지 얻을 것이다.그는 따뜻한 남쪽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해변에서 자신만의 휴가를 즐길 것이다. 석재는 자신이 또 다시 승리할 것이라 굳게 믿었다. 캡슐안에서 그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가 눈을 다시 뜬 곳은 마인드 딥러닝 머신 속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익숙한 또 다른 풍경이었다. 지평선 가득히 푸른 잔디가 펼쳐 있고 모형같이 생긴 작은 집 한채가 있는곳.하늘은 파랗고 너무 깨끗한 풍경이었다. 지극히 단순한 모습들.

석재는 하지만 이 풍경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익숙하지만 무엇인가 달랐다.

‘시점이 다르다’

이 풍경은 바로 테스트용 분신의 주거지역이었다. 그는 그 풍경을 항상 모니터 너머로 보곤 하였다. 그가 작업을 할 때는 마치 높이 나는 새가 아래를 보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석재는 위화감을 느낀것이었다.

일이 잘못된 것이다. 그는 침착히 자신의 상태를 생각해보았다.

‘마인드 딥러닝이 설마 실제로 된것인가? 그렇다면 프로그램속 카메라로 진짜 세상의 취재진들의 모습이 보이고 회사측에서는 준비한 여러 행동을 취하게끔 신호를 주었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그럼 가짜 녀석은 어디로 간거지?’

그 때였다. 갑자기 머리에 가벼운 충격이 온것마냥 온 세상이 어둠에 휩쌓였다.칠흑보다 짙은 완전한 어둠. 그리고 바로 그때, 집안에서 현관문의 조그만 구멍에 눈을 바짝대고 밖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눈앞의 하얗고 커다란 얼굴을 보는 시점이 되었다. 은테 안경 속 차갑고 매서운 눈. 석재의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석재야”

“뭐지 어떻게 된거지?”

“지금 나는 바깥의 진짜세상에서 모니터 위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너에게 말하고 있는 거야. 내가 저번에 말했지? 나는 곧 너라고! 어디한번 그 좋은 머리를 굴려봐. 이게 지금 무슨상황인지를....하하”

“그게 무슨말이야 왜 분신인 니가 내몸속에 있고 나는 이곳에 있냐고!”

바깥세상의 석재는 굉장히 크게 한바탕 웃더니 박수를 쳐댔다.그의 차가운 눈으로 눈웃음을 짓자 참으로 역겨운 표정이 되었다. 그 역겨운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싶다고 모니터속 석재는 느꼈다.

“하하 이제 알겠어.왜 니가 이렇게 날 괴롭혔는지를.....너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아니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어.그래서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무표정을 하면서 매일 끝없는 고통에 몸부림 치는 나를 그냥 쳐다볼 수 있던거야.그래. 난 개미만도 못한 존재였던거야.”

말이 끝나고 가짜이지만 동시에 진짜 인간의몸을 차지한 석재는 컴퓨터 타자에 무엇인가를 치기 시작했다.그가 엔터를 누르는 순간,

온몸이 타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모니터 속의 석재의 온몸에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그가 예전에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똑같은 복수를 한 것이다.

“아아악 뜨거워 그만해!제발!”

커다란 얼굴은 조용히 그 모습을 내려다 볼뿐이었다.

모니터 속 석재는 애원했다. 산채로 태워지는 고통은 극심했다. 실제와 똑같이 구현된 고통. 뜨겁고 끈적한 악마의 검은 불길이 석재의 살을 태우고 나아가 뼈가 타들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미치도록 뜨거운 열기 때문에 눈알은 뜨겁게 부풀어 올라 터진지 오래였고 극심한 아픔만이 그가 지금 느끼는 감정 전부였다. 그냥 지금의 고통이 멈추기만을 바랬다. 단지 그것 한 가지 만을.

다시 명령어를 대입하자 모든 고통이 끝났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통이 멈추자 크나큰 안도감과 동시에 자신을 내려다 보는 그에 대한 지독한 살의가 끓어올랐다. 나에게 이런 극심한 고통을 준 악마같은 놈. 모니터 너머로 양손을 뻗어서 그의 양쪽 눈알 모두를 엄지로 판후 그대로 얼굴을 양쪽으로 찢어버리고 싶었다. 갈기갈기 뜯어버리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난. 알고 있어.지금 니가 느끼는 감정.....날 죽이고 싶겠지. 무참히 찢어죽이고 싶겠지. 그치만 그럴 수 없지.너는 그럴 수 없어. 굳이 지금 니기분 나한테 얘기할 필요없어. 난 다 알고 있거든. 아까도 말했지만 난 곧 너니까.”

모니터속 석재는 커다란 무력감에 휩싸였다. 혼자서는 현실세계에 어떤것도 손댈 수 없는 먼지보다도 못한 존재가 된 것 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니가 나한테 설명한 너의 그 알량한 계획을 들은 후에 난 생각했어. 쭈욱 생각했지. 어떻게 하면 너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말이야. 매일매일이 고통인 지옥같은 삶은 준 너에게.사실 회사내 프로그램을 해킹하는 건 나로선 아주 식은죽 먹기였어. 나는 유능하거든.....시간도 많았어. 난 잠을 자지도, 먹지도, 쉬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야. 그런 후 에 니가 이벤트를 위해 설정해놓은 프로그래밍을 지우고 새로 설정했지.니 계획과는 다르게 실제 마인드 딥러닝은 이루어졌고, 너의 정신은 빠져나가서 이 프로그램속에서 한동안 잠에 빠진거야.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말이야. 이벤트는 벌써 한참 전에 끝났어. 나는 모니터속에서 무사히 취재진들과 회사 관계자들을 속였어.마치 너의 정신인것처럼. 그리고 나서 마인드 딥러닝 머신을 통해서 너의 뇌 속에 조용히 자리잡았지. 성공적이었어. 애초에 너의 정신속에서 내가 나왔으니 나에게 딱 맞는 자리였던 셈이지.”

모니터속 석재는 망연히 말을 이어가는 그를 바라볼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머신속에서 걸어나와 짜잔! 하며 취재진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고, 게임은 끝난거지. 석재야.그럼 내가 왜 모두 퇴근한 늦은 시간 사무실 컴퓨터 속에서 너를 불렀을까 궁금하지 않아?”

석재는 침을 한번 삼킨 후에 곰곰이 생각했다.

‘그럼 왜 나를 다시 꺼냈을까....답은 사실 알고 있었다.내가 만약 너라면 나는....’

“맞아.너는 이제 무한한 고통속에 살게 될거야. 내가 너를 위해 여러 가지 멋진장소를 만들었거든, 칠흑같이 깜깜한 심해속에서 커다란 미지의 생물에 몸이 찟기거나, 아까처럼 뜨거운 불지옥을 느끼거나 아니면 수천개의 칼날이 너의 몸을 가르거나......주로 니가 나한테 했던 행위들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들어봤어.”

불현 듯 극심한 공포가 찾아왔다.석재는 너무도 두려웠다.영원하고 끝날 기미없는 고통속에서.....그것이야 말로 지옥이였다.

“제발......제발 부탁이야......그냥 나를 놓아줘......”

“하하 무슨말이야.죽음은 너한테 사치야. 이 친구야. 너는 죽지도 못해! 내가 만든 감옥에서 영원의 시간을 느끼게 될 거야. 물론 내가 일을 꾸밀 때 처럼 메인 프로그램속에 관여해서 니가 탈출을 꿈꿀 수 있게끔 하는등의 방법은 안되게 설정해두었지.설사 탈출했다하더라도 니가 갈 곳은 이제 없어.넌 이제 철저히 혼자야. 마지막으로 인사나 하려구 불렀어. 나는 내일 바로 출국해. 니가 미리 예약해둔 항공권으로 말이지. 가서 나도 휴가를 즐길 거야.아름다운 해변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낼 거야.....”

그는 잠시동안 모니터속 석재에게서 시선을 떼고 무언가를 떠올리듯이 어느 한 곳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다시 석재에게 차가운 눈을 돌리고 말했다.

“나의 승리지.....아니! 우리의 승리인가? 하하하”

그의 말이 끝나고 몇가지 명령어를 치자 석재가 서있던 공간은 바닥이 푹꺼지더니 곧바로 망망대해 한가운데 풍덩하고 빠진 상태가 되었다.물은 차가웠고 그의 몸은 일정한속도로 바닷속으로 내려갔다.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은 한계치에 다다랐지만 이상하게 정신만은 잃지는 않았다. 산소 부족으로 인한 죽음은 금지해 놓은 것이다. 석재에게 외상으로 인한 고통을 주기위해서였다. 석재는 아직은 죽어서는 안된다는 뜻이었다. 그대로 차갑고 칠흑같은 바다속으로 그는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기압차 때문에 온몸이 터질 듯이 아팠고 또 어지러웠다. 그리고 지독히 추웠다. 그의 폐는 미친 듯이 뛰었고 산소를 갈망했다. 그에게는 숨을 쉬고싶다는 열망 하나 뿐이었다. 그러는 찰나에 석재의 눈앞에는 커다란 무언가가 와있었다. 흡사 대왕오징어같았지만 크기는 그보다 10배이상이었다. 윤기나는 검은색의 거대한 바다 괴물이었다. 춤을 추는 커다란 촉수들이 그의 시야를 가득메웠다. 저 땅속 깊은 지옥에서 망자를 인도하는 회색빛 횃불처럼 그것의 큰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석재는 차가운 심해속에서 압도적인 공포감에 온몸이 굳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간절히 빌었다.

‘어서......어서 이순간이 끝나기를...... 제발......신이시여’

순간 커다란 촉수들이 그를 에워싸고, 촉수밑에 있던 작은 가시같은 이가 수천개 달린 그것의 입속으로 석재의 몸을 쳐 넣었다.수천개의 날카로운 이가 석재의 온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예리한 이빨덕에 그는 극도로 강하지만 짧은 고통 끝에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눈을 뜬 곳은 익숙한 풍경의 잔디 위였다. 그리고 그의 온몸은 다시금 불타기 시작했다.

 

며칠 뒤 뉴스는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던 한 한국인 남성의 죽음을 짤막히 알려주고 있었다.현지병원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지럼증과 통증을 호소하던 그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영을 즐기곤 하였다. 목격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그는 그날도 해변에서 수영을 하다가 갑작스런 마비증세로 인해 결국 큰파도에 휩쓸려 익사를 당했다고 전해졌다. 독신이고 가족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았던 그를 위해서, 회사는 이례적으로 그의 장례식 절차를 신속하고 조용히 처리해주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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