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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학교의 살인자(17)

2014.06.28 14:3206.28

17

 

교감은 미칠 지경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3일 전까지는 그랬다.

교장이 일주일째 나타나지 않고 나서야 비로소 교감은 뭔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말해서 교감은 첫 3일 동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교장이 나타나지 않자 교감은 오랜만에 마음 편안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교사들도 가을이 다가오는 가운데 조용히 지냈고, 교장의 결재가 반드시 필요한 서류는 수거함에 놔두었다. 3일이 지나자 교감은 자신이 반드시 무언가 해야만 하는지의 여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점심 시간에 초밥을 시켜 먹으면서 상량한 결과 교감은 반드시 행동을 할 필요가 없는데도 무엇인가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교장이 출근하지 않은 지 5일이 넘자 결재서류를 넣는 수거함이 꽉 차서 넘치기 시작했다. 교감은 오전 내내 결재서류를 수거함에서 꺼내어 교장실로 옮겨야 하는지 고민하다 점심 시간을 틈타 규정집을 뒤져보았다. 결재가 필요한 서류는 반드시 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있었지만, 결재가 필요한 서류는 수거함에서 꺼내어 교장실로 옮겨야 한다는 말은 없었다. 교감은 규정집을 덮었다. 교사들은 수거함이 꽉 차자 함이 놓인 책상에 결재서류를 쌓아올렸다. 교감은 아무렇게나 쌓인 결재서류를 보고 다시 불안감을 느낀 상급자가 출근하지 않을 때 하급자가 전화를 해보아도 괜찮은지 여부를 다시 규정집에서 살펴보았다. 그 말도 없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도 교장이 출근하지 않자 교감은 불안해진 나머지 추기경을 찾았다.

그런 건 담당자 재량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을 텐데요.”

교감은 다시 규정집을 펼쳤지만 퇴근 시간이 되어버렸다. 교감은 출근한 뒤 규정집을 읽기로 하고 규정집을 덮었다.

다음날 교감은 다시 책을 펼쳤지만, 재량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규정은 세 개밖에 되지 않았다. 교감은 세 규정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다가 이윽고 노트를 꺼내 베껴 적었다.

 

1. 이 규정집에 열거된 모든 교칙에 대해 교장은 재량 하의 지도를 할 수 있다.

2. 1항 교칙에 대해 교장은 무제한의 재량을 가진다.

3. 이 규정집의 모든 규정에 대해 교장은 영구하고도 무제한적이며 침해불가능한 재량을 가진다. 이에 대한 세부 사항은 여백이 모자라므로, 역시 재임중인 교장에게 권한을 맡긴다.

 

3번 규정은 규정집 맨 마지막 장 여백에 손으로 쓰여 있었다. 교감은 안타까웠다. 교장과 교감의 차이라니! 자음 한 개가 재량이라는 무한대에 가까운 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교감은 조금 슬퍼졌지만 다시 추기경을 찾았다.

권한대행이라는 단어는 없습니까?”

교감은 권한대행에 점심시간을 할애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교감은 다시 추기경을 찾았다. 추기경은 턱을 쓰다듬었다. 교감은 기다렸지만 다시 한 번 턱을 쓰다듬는 것 외엔 별다른 대답은 없었다.

어쨌든 교사들은 이제 결재서류를 놓을 자리가 없어서 본의 아니게 수거함 위에 9층탑을 만들고 있었다. 교장이 없는 학교는 평소보다 조용했다. 평소에 특별히 시끄러운 것도 아닌데 교감을 제외한 학생들과 교사들은 평화를 느꼈다. 중간고사가 끝났고, 교감을 제외하고 모두들 가을이 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운동장에는 낙엽이 나뒹굴었고 은행알이 냄새를 풍기며 터졌다. 초여름에 태어난 새끼고양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각자 돌아다니며 학교 안에 자기 구역을 만들거나, 전쟁을 벌이거나 아니면 두세 마리씩 짝을 지어 같이 살았다. 목공실도 조용했다. 용식은 의자를 만드는 대신 찬조 연설문을 썼고, 승표는 공부를 하는 대신 출마 연설을 준비했고, 경화는 이제 둘을 귀찮게 괴롭히는 것도 지쳐서 그냥 공부를 했다. 전체적으로 온도가 내려가면서 K담임은 선거일을 방학식으로 잡은 교장의 묘안을 새삼 천재적이라고 느꼈다. 만약 학기 중에 선거를 했다면 지금 같은 평화는 맛볼 수 없었을 것이었다.

퇴근 후, K담임은 장난삼아 결재서류들을 지그재그로 쌓은 뒤 집에 갔다.

다음날 교감은 결재서류더미를 보고 경기가 나버렸다. 그는 서류더미를 바라보면서 혹시 교장이 와서 서류를 만진 게 아닐까하고 고민했다. 교감은 결국 다시 규정집을 펼친 채 필사적으로 교감이라는 단어를 찾기로 했다. 의외로 많았다. 문제는 교감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교장의라는 단어와 항상 같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교감은 교장의 지시를...해야한다라거나 교감은 교장의 지시를 교사들에게....해야한다등이었다. 결과적으로 교감은 교장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교감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교감은 교장보다 감정을 보다 잘 표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가령 부들부들 떨거나,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거나 아니면 얼굴이 취한 듯 시뻘겋게 변하거나, 목소리가 너무 높아져서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은 기본적인 것에 해당했다. 대개 재직한 지 얼마 안 된 교사들은 표정이나 목소리를 듣고 눈치를 보는 정도지만, 추기경과 담배 선생 같은 노인네들은 결재서류에 서명한 글씨체만 봐도 기분이 상한 이유까지 알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교사들은 교감이 기분이 안 좋아졌다는 사실을 알면 대개 각자 개발해낸 방법을 사용했다. K담임은 무조건 도망쳤다. 칠판에 자습이라고 써 놓은 다음 목공실에서 용식이 의자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체육관 뒤에서 고양이떼와 놀았다. 퇴근 시간 이후에만 들어가면 교감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경화는 자습 감독 노릇은 물론 물론 교무실에 갈 때마다 K담임의 행방을 둘러대느라 진땀을 뺐다. K담임이 잘 얘기해놓지 않으면 고3 내내 새벽잠을 설치게 해 주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었다.

추기경도 정면대결보다 피해다니는 것을 선호했다. 매일 아침 추기경은 수업에 들어가서 온갖 질문을 퍼부으며 아이들을 괴롭혔다. 질문에 대답을 못 하면 돌대가리라느니, 쓰레기라느니, 먹고 똥밖에 만들 줄 모르는 유기체라느니 하며 온갖 모욕을 가한 뒤 교실 뒤편으로 몰아냈다. 처음에는 무차별로 퍼부어지는 문학적인 욕설에 울거나 주먹을 들거나, 심지어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2학기가 되자 아이들은 또 저 인간이 지랄하려니, 하고 귓등으로 흘려넘길 수 있을 정도로 욕 맷집이 단단해져버렸다.

하루는 수업에 들어온 추기경이 한 이름을 부르자 불린 아이는 그대로 일어서서 의자를 들고 뒷문으로 향했다.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결과가 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추기경이 소리쳤다.

! 어디가?”

목공실이요.”

누가 목공실 가래? 나와서 칠판 지워!”

수업을 마친 뒤 교무실로 돌아온 추기경은 꼼꼼하게 결재서류를 작성했다. 교장이 있든 없든 결재서류는 만들어져야 했다. 왜냐하면 결재를 받아야 하는 사항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일이 닥칠 때마다, 가령 학교에 새 일꾼을 채용한다든가,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 학칙을 조금만 유연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든가, 아니면 학칙을 잠깐만 재워달라고 한다든가, (실제로 이런 표현을 쓰는 학부모가 있다는 사실에 더 이상 추기경은 놀라지 않았다.) 기타 등등 잡무에 관련된 모든 사항들은 최고위직의 결재를 필요로 했다. 교감은 그 모든 것에 모두 교장의 사인이 필요한 것이냐고 반문했지만 그럴 때마다 추기경은 규정을 언급했다. 추기경은 그 두꺼운 규정집을 통째로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교감은 그때마다 규정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학칙을 찾다가 지쳐서 이제는 추기경이 말하는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러면 추기경은 만족한 표정으로 그날 작성한 결재서류를 수거함 위에 올려놓은 뒤 사라졌다.

담배 선생은 교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교감은 매번 담배 선생에게 교장의 행방을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독한 연기의 장막에 기가 눌려 다가가지도 못했다. 담배 선생은 수업이 없으면 교무실에 붙박고 앉아 줄담배를 피웠고, 당번들은 그 연기 속을 헤치며 청소를 하다보면 지금 청소를 하는 건지 화생방 훈련을 하는 건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담배 선생 주위에 푸른 연기가 병풍처럼 두껍게 둘러쳐져 있었고, 교감은 되도록 멀리 떨어져 앉은 채 눈치를 살피고 있었으며, 청소 당번들은 연기 속을 헤치고 책상 사이를 헤집으며 바닥에 쌓인 쓰레기들만 겨우 채집하다시피 치우는 풍경인 셈이었다. 오직 경화만이 당당하게 담배 선생이 쳐놓은 잿더미를 헤치고 들어와 재떨이를 빼앗아갈 수 있었다. 교무실 안에서 경화의 권한은 점점 막강해져서 이제 그녀가 없으면 교무실 자체가 안 돌아갈 정도였다. 교감마저 담배 선생에게 뭔가 전달할 때마다 가끔 경화에게 부탁할 정도였다.

그런 담배 선생조차도, 추기경이 슬며시 쳐다보면서 선생님, 담배 좀 꺼주시죠.”라고 말하면 담배 선생은 피우던 장미 담배를 재떨이에 내려놓았다. 그런 추기경조차도, 경화가 캑캑 기침을 하면서 노려보면 슬며시 담배 선생에게 선생님, 담배 좀 꺼주시죠.”라고 말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여는 용감한 사람은 언제나 경화였다. 서슬 당당하게 교무실을 채웠던 연기는 스멀스멀 옷자락을 끌면서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사실 교감은 담배 연기가 걱정이 아니었다. 교장이 나오지 않은 지 한 달이 넘었다. 결재서류 더미가 쌓이다 못해 수거함을 아예 뒤덮어버린 지 오래였다. 교감은 결단을 내렸다. 교무실이 빈 틈을 타서 서류들을 모아 교장실로 옮기기로 결심한 것이다. 서류의 양이 엄청났지만 교감은 되도록 한꺼번에 교장실로 옮기고 싶었다. 물리학적으로 궁리를 거듭한 결과 그는 가슴과 배 근육 그리고 턱을 이용하여 서류를 두 손 위에 모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교무실과 교장실은 약 10미터 떨어져 있었다.

교감은 일단 교장실까지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좋아! 그러나 운반하는 길에 서류 몇 개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교감은 서류더미를 턱으로 꽉 누른 다음, 무릎을 살며시 굽히면서 서류철을 하나씩 주워 턱 밑에 끼워넣었다. 아직 다리 근육은 쓸만했다. 교감은 모든 서류를 주은 다음 살며시 교장실로 들어갔다.

교감 선생님, 안에서 뭐 하십니까?”

안을 들여다본 교감은 뒤집어질 정도로 놀랐다. 담배 선생이 의자에 앉아 있었고, 추기경은 책상에 걸터앉아 있었던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추기경 손에도 담배 가치가 들려 있었다는 것이었다. 두 줄기 파란 연기가 스멀거리며 천정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규정에는 없지만 교무실이 너무 어지러워서 서류를 옮긴 겁니다.”

두 사람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교감은 침묵에 숨이 막혔다. 마악 질식하려는 순간 담배 선생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교감은 손에 들린 결재서류가 불에 단 쇠처럼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하지만 서류를 옮겨야 했다. 교감은 담배 선생과 추기경 사이에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고, 다시 물러서서 소파에 앉았다. 담배 선생은 고개를 돌렸다. 추기경은 교감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낮이었다. 청소 당번이 빼먹지 않고 청소한 결과 교장실은 깨끗했다. 쓸고 닦은 바닥은 물론, 상패와 책장 구석에 고인 먼지도 깨끗이 닦여 있었다. 창밖에는 체육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구령대 계단에 옹기종기 모여 몸을 맞대고 앉은 모습이 보였다. 쓸쓸할 정도로 고요한 교정이었지만 교감은 자기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 방울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담배 선생이 불쑥 말했다.

어제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서요?”

교감 선생님에게 온 전화였습니다. 선생님께서 대신 받으셨지요.”

추기경이 고개를 옆으로 끄덕 해보였다.

부재중이라고 했다면 오늘 전화가 다시 왔었을텐데요?”

아니요, 교감 선생님이라고 하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추기경이 다시 고개를 끄덕했다. 교감은 입을 벌렸지만 미처 혀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럼, 그럼 뭐가 어떻게 된 거지요?”

교장 선생님을 찾는 전화였습니다.”

, 그렇군요! 어디가 편찮으셨답니까? 언제쯤 학교에 나오시지요? 서류가 저렇게 쌓였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병원에 계시다면, 규정에는 없지만, 내가 직접 서류를 가지고 갈 수도 있습니다. 이왕 규정을 어겼으니 할 수 없잖아요?”

교장 선생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추기경이 세 번째로 끄덕였다. 교감은 입을 벌리고 있다가 얼굴이 서서히 핏기를 잃었다. 담배 선생은 입술에 담배를 가져다 물면서 교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얘진 얼굴이 다시 본래 색을 되찾는 데에는 약 5분 가량 걸렸다.

돌아가셨다는 걸 알려주려고 경찰이 전화를 했군요.”

아닙니다.”

아니라구요?”

범인을 찾으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범인이요? 범인이라구 했습니까? 그러면 살인...살해당한 겁니까!”

교감은 소파 위에서 펄쩍 뛰었다가 다시 파묻혔다. 쿠션이 너무 푹신했기 때문에 한동안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해 방석 위에서 버둥거려야 했다.

범인이라니, 살인이라니! 그렇다면 지금...나는, 학교는, 어떻게 되는 거지요? 경찰이 전화를 했다면...선생님에게...아니, 나에게 전화를 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요?”

쿠션은 여전히 공기 풍선처럼 부푼 채 교감의 몸을 이리저리 밀어냈고, 교감은 일렁이는 물결을 타는 오리처럼 흔들거렸다.

말도 안 됩니다. 교장 선생님이 죽다니, 아니 살해당하다니? 그런데 경찰은 왜 내게 전화를 했지요? 나한테 전화를...무언가 물어보고 싶은가 보지요?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것뿐이겠지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교장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학교에 나오지 않은 뒤로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왜, 경찰은 저를 만나려고 하지요? 저를 잡아가려고 하나요? 그래서 선생님은, 선생님은 전화에다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오늘 와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오고 있습니다.”

뭐라구요!”

교감은 소파에서 거의 미끄러질 뻔했다.

아이들이 보려면 어떡하려구 학교로 온단 말입니까?”

괜찮을 겁니다.”

안 괜찮을 겁니다. 학교로 경찰이 오다니, 내가 가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걸어 말씀해 주세요. 부탁입니다.”

담배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추기경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걸터앉아 있던 책상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교감이 웃긴 짓을 한다고 생각한 순간 책상 위에 쌓여있던 결재서류더미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산산히 쏟아져 내렸다. 단단한 플라스틱이 깨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담배 선생도 일어서서 재떨이에 꽁초를 눌러 껐다. 교감은 계속 버둥대면서 푹신한 소파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다리를 뻗고 버둥댄 결과 발끝이 바닥에 닿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번번히 상체가 뒤로 젖혀지는 바람에 다시 소파에 푹 파묻히기 일쑤였다. 교감은 다시 힘을 내어 그네를 타듯, 상체를 앞뒤로 흔들었다. 상체에 열심히 스윙을 준 결과 드디어 발바닥 전체가 바닥에 착지했고, 교감은 마지막으로 머리를 앞으로 던지다시피 하여 간신히 소파로부터 벗어났지만 대신 이마와 콧등이 테이블에 부딪치면서 쾅!하는 소리가 났다. 교감은 옆으로 쓰러지면서 그 소리가 서류가 쏟아지는 소리보다도 더 크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콧대가 부러졌을까? 왠지 콧속이 따스하고 촉촉하다고 느껴졌다. 피가 나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머리가 너무 아파 움직일 수 없었다. 예전의 누군가와 참 비슷한 상태에 놓여 있군, 하고 생각했다. 뒤이어 낯선 발자국 소리가 불안한 리듬을 치며 들려왔다. 교감의 몸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가볍게 들어올려졌다.

담배 선생이 말했다.

제때 오셨군요.”

병원에서 온 남자 간호사가 말했다.

진찰실로 데려갈까요?”

추기경이 대답했다.

아니, 진찰실 . 거기로 가면 원장이 직접 봐 줄거야.”

교감은 자신의 몸 아래 철로 만든 바퀴들이 굴러가는 것을 느꼈다. 그뿐만 아니라 코 밑에 댄 손가락으로 따스하고 표면장력이 강한 액체가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도 느꼈다. 차갑지만 섬세한 손이 그것을 닦아내더니, 발끝부터 머리까지 희고 풀먹인 시트가 덮어씌워졌다. 그 위로 가죽 벨트 세 개가 연달아 묶였다. 낯익은 목소리가 침대를 계속 이끌었고 결국 사이렌도 울리지 않는 차 안으로 밀어넣어졌다. 교감은 그제서야 발버둥쳤지만 차에 시동이 걸렸다. 다시 코피가 나고 시트에 빨간 물방울 무늬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팔이 벨트에 묶여 있었다. 차문이 거칠게 닫혔다. 앞자리에 앉은 흰색 옷을 입은 남자간호사들이 말을 주고받았다.

어디로? 진찰실로?”

아니, 진찰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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