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편 학교의 살인자(13)

2014.06.28 14:2906.28

13

 

시험을 치른 날 추기경은 아주 기분이 나빴다. 답은 한 줄도 쓰지 않고 이름만 적어 낸 답안지가 절반 정도였고, 나머지 절반은 엎어져 자다 흘린 침 자국밖에 없었다. 이름 말고 다른 걸 써서 낸 답안지 중에서는 한 면을 채우지 못한 게 절반이 넘었고, 그 중의 절반은 애걸복걸하며 스승의 은혜를 찬양하는 사랑의 편지들이었다.

추기경은 편지지가 된 답안지들부터 찢어버린 다음 이름만 적힌 답안지를 다시 모아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세계사 과목에 관련된 내용이 한 글자라도 적힌 답안지가 있는지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는데, 세계사 과목에 관련된 내용을 쓴 답안지들은 대개 수업에 대한 코멘트였고, 개중 몇 개는 추기경이 침을 튀긴다는 불평이었다. 추기경은 학생 건의 엽서가 된 답안지들을 다시 다 찢어버린 다음, 그 중 단 한 장 - 그에게 잘 어울리는 양복과 넥타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조언을 늘어놓은 답안지 한 장을 접어 저고리 안주머니에 고이 간직해 두었다. 나중에 쇼핑할 때 참고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추기경은, 답안지 더미를 세계사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는 걸 그만두고 유럽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뒤져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작업을 시행하기 전에 추기경은, 설탕과 프림으로 범벅이 된 커피 한 잔으로 부족한 칼로리를 보충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추기경이 믹스커피를 만들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날 때 교무실은 이미 시험 감독을 마친 모든 선생들이 퇴근한 이후였고, 추기경만 홀로 남아 북북 종이를 찢는 소음으로 공간을 메우고 있었던 차였다. 추기경은 그 소리가 아주 마음에 들었고, 텅 빈 교무실을 그 소리로 채우는 자신의 행위 또한 마음에 아주 들던 차였다. 그랬기 때문에, 촤르락! 하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든 채 미닫이문을 힘차게 밀고 들어와 먼지를 일으키기 시작한 경화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추기경은 답안지 찢기 놀이에 심취하고 싶은 나머지 청소를 시작한 경화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경화가 청소한답시며 교무실을 돌아다니는 통에 답안지를 제대로 찢을 때 느껴지는 손맛의 느낌이 제대로 살지 않았다. 추기경은 ! ! ! 찌직!’ 등의 불쾌한 소음을 내며 답안지들을 찢었고, 경화는 지지 않고 챙강! 챙강! 꽈당!’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유리 재떨이들을 비우기 시작했다. 결국 경화가 이겼다. 추기경은 인내심을 상실하고 찢은 답안지를 모아 손으로 박박 구겨버렸다. 그는 손 안에서 종이가 구겨지는 느낌을 무척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경화는 추기경 쪽을 곁눈질하면서 슬슬 비질을 했다. 추기경이 울화통을 터뜨릴 정도로 자극하지는 않으면서 기분을 살살 긁어주는 게 목적이었다. 비질을 할 때마다 먼지들이 추기경의 커피잔으로 다이빙을 했다. 추기경에게는 안 보였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고 있는 경화에 눈에는 커피잔이 마치 먼지 안개 속에 싸인 것처럼 보였다.

결국 추기경은 화를 냈다.

조용히 좀 할 수 없냐?”

최대한 조용히 청소하고 있어요.”

시험 공부는 안 하러 가니?”

교무실 청소는 해 놓고 가야죠.”

경화는 곁눈질하면서 대답했다.

추기경은 그만뒀다.

대신 그는 살아남은 답안지들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스승의 은혜 편지, 패스. 온갖 이모티콘과 그림이 난무하는 버추얼 프리젠테이션 답안지, 뿍뿍...추기경의 처형 리스트에서 벗어난 답안지들은 열 장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추기경은 공정을 기하기 위해 이름을 가리는 절차 따윈 집어치웠다. 빨간 색연필부터 들었다.

중세 유럽...근대...부르주아. 일단 합격. 합격이라는 의미는 찢어버리지는 않겠다는 의미였다. 대신 빨간 색연필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다. 추기경은 보복이라도 하듯 답안지에 가로 세로로 빨간 줄을 그어가며 학생들이 답안지에 남긴 버추얼 프리젠테이션을 재현했다. 화살표와 직선, 상처주는 표현만 고른 메모가 난무했다. 난도질이 다 끝난 뒤 추기경은 이름 옆에 점수를 적었다. ‘35’.

경화는 먼지를 다 쓸어낸 뒤 마른 걸레를 들고 책상 사이를 돌아다니며 먼지를 닦기 시작했다. 바싹 마른 걸레는 먼지를 닦아내는 대신 공중으로 날려보냈다. 추기경은 다음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기침을 했다. 커피를 마시자 먼지들이 목구멍에 착 달라붙는 것 같았다.

추기경은 다음 답안지로 넘어갔다. 점수는 18’.이었다. 경화는 계속 눈치를 보면서 먼지를 일으켰다.

세 번째 채점이 끝나고 네 번째, 다섯 번째, 그리고 마지막 답안지 한 장이 남았다. 점수는 26’, ‘39’, ‘5였다. 그러나 점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마 답안지를 돌려받은 녀석들은 숫자와 상관없이 친구들에게 신처럼 추앙받을 것이었다.

추기경은 먼지 범벅이 된 남은 커피를 쫙 들이킨 다음 마지막 답안지를 펼쳤다. 답안지 오른쪽 위에는 ‘2학년, 이경화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몸을 들어 교무실 책상을 닦고 있는 경화를 보았다.

“2학년 이경화가 너냐?”

경화는 걸레를 든 채 몸을 폈다.

, 그런데요?”

그래?”

추기경은 다시 답안지 위로 고개를 숙였다. 경화는 말없이 걸레를 개어 제자리에 놓은 다음, 먼지털이를 들었다.

5분 뒤 추기경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2학년 이경화가 너냐?”

.”

경화는 대답했다. 추기경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경화의 얼굴을 보고는 들릴락말락하게 풍선에서 공기가 새는 듯한 한숨을 쉬었다. 그런 다음 빨간 색연필으로 경화의 이름 옆에 100이라고 적었다.

경화는 추기경의 손이 움직이는 모양을 보고 점수를 알았다. 그녀는 먼지털이로 책장의 먼지를 털면서 슬슬 추기경 가까이 다가갔다.

추기경은 경화가 다가오자 말했다.

네가 2학년 이경화냐?”

경화는 천천히 추기경에게 다가갔다. 추기경의 책상과 먼지를 터는 책장은 1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내려다보일 정도가 되자, 경화는 접근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추기경도 고개를 끄덕였다.

경화가 말했다.

물어 볼 게 있어요.”

추기경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경화는 심호흡을 하고, 내뱉었다.

김윤수가 이 학교에 다녔나요?”

그녀는 말을 꺼내자마자 공기가 폐를 압박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소리나지 않게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동시에 머리가 짜내는 듯 아프고 눈알으로 피가 몰렸다. 추기경이 대답을 할 때까지 걸리는 몇 초의 시간이 마치 영겁같았다.

다녔는데? ?”

그래요?”

경화는 자기도 모르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래서요?”

다녔다구.”

다녔다구요?”

그래.”

아무 일 없이요?”

아하...”

추기경은 고개를 갸웃했다.

퇴원했지. 얼마 전에.”

병원에 있었어요?”

그래. 원장이 내쫓는다기에 나랑 골초 놈이 데리고 왔었지.”

경화는 잠시 서 있다가 추기경의 책상 위에 놓인 빈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믹스커피 봉지를 뜯어 새 커피를 탔다. 등 뒤에 추기경이 연필이라도 던질 것 같았다.

그녀는 컵을 추기경 책상 위에 놓았다. 추기경은 컵을 들고 커피를 마셨다. 경화는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잠자코 서서 기다렸다.

정신병원이었나요?”

. 정신병원. 거기에 한 2년 있었나? 1년 반인가?”

추기경은 마지막 방울을 살짝 핥았다.

교장 때문에 갔었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우리도 그땐 팔짝팔짝 뛰었지. 교장은 우리가 무서워서 출근도 안 하고 숨어버리고, 애는 맛이 가서 헤롱거리고. 애들은 귀신을 봤네 어쩝네 하면서 공부도 안 하고. 교감이랑 학생주임이 매일같이 몽둥이 들고 온 학교를 싸돌아다녀야 했지. K담임도 그때 꽤 고생 많이 했지.”

그래요?”

경화의 입 밖으로 다시 말이 튀어나왔다.

교장이 실수했던거야. 그리고 지금 그놈도 실수하는 거고.”

추기경이 말했다.

무슨 실수요?”

망할 년아, 너도 알고 있잖아.”

경화는 조금 놀랐다. 추기경이 아무리 입이 거칠어도 그렇게 노골적인 욕설을 하는 건 처음 들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경화는 일단 거짓말을 했다.

모르긴 뭘 몰라. 둘이 만나는 거 다 알고 있다구. 수업만 끝나면 전교생 앞에서 둘이 교문 앞에서 사라지던데. 사라져서 무슨 장난을 치는지는 모르지만 선거만 끝나면 더 이상 재미도 없는 거야. 알았나?”

오랜만에 선생다운 말투인데. 경화는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 더 뻗대보기로 했다. 그러면 홧김에 뭘 더 털어놓을지도 모르지?

둘이 만나서 아무것도 뭐 한 거 없다구요. 선생님.”

,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둘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교장 선생님도 알고, 교감 선생님도 알고 심지어는 K담임도 알아. 눈가리고 아웅거려봤자 다 들여다보이니까 혹시 불장난치려거든 그만두라고. 알았어? 못생긴 주제에.”

화나게 하는 데에 성공한 것 같지만 정보를 더 얻어내는 데에는 실패한 것 같았다. 그래도 경화는 한 번 더 찔러보기로 했다.

전화 받는 남자가 교장 선생님 죽이려고 하는데 알고 계세요?”

말을 내뱉는 순간 경화는 갑자기 무슨 만화영화라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돌처럼 딱딱한 추기경의 입가가 손으로 잡아당기기라도 하듯이 양쪽으로 늘어나면서 이빨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두 눈알도 안경을 뚫고 나올 듯이 큼직해졌다. 얼굴 전체도 커지는 것 같았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경화는 엉겁결에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직접 들었는데요.”

윤수는 그냥 교장을 죽이려고 계획을 짜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몇 번 시도를 벌였었다. 그때마다 추기경과 담배 선생은 새벽이든 밤중이든 교장의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난닝구만 걸치고 뛰어나가야 했다. 시도는 집요해서, 한때 추기경은 교장을 자기 집에 가둬놓고 같이 살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교장이 아직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원인은 윤수가 제 병을 고치지 못한 덕분이었다. 칼을 들고 설치다가도 텔레비전 브라운관만 보면 덜컥 기절해버리는 바람에 여러 차례 교장은 목숨을 건졌다. 이에 착안한 담배 선생은 교장에게 미니 텔레비전을 몸에 부착하고 다닐 것을 권했다. 교장도 충고를 받아들여 텔레비전을 하나 사서 달았는데 무게 때문에 그만 허리를 다치고 말았다. 통증이 너무나 심한 나머지 교장은 텔레비전을 몸에서 떼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추기경은 교장에게 늘 텔레비전 옆에서 떨어지지 말 것을 권유했다. 어쨌거나 도망다니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 신체 건강한 젊은 놈을 피하려면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교장은 걱정했다.

이러다가 그놈이 병 고치면 나 죽는 거 아냐?”

추기경도 그게 걱정이었다. 경화가 말했다.

교장이 잘못한 거잖아요. 안 그래요?”

네가 뭘 알아.”

추기경이 으르렁댔지만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경화가 100이라고 쓰여진 답안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거 제 답안지죠?”

추기경은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전교에서 유일하게 100점을 받은 답지였다. 아니, 추기경의 교사 일생 전체에서 유일하게 100점을 받은 답안지였다. 그는 잠시 답안지를 내려다보면서 감동에 젖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이를 드러내고 악의에 찬 웃음을 짓는 경화를 쳐다보는 순간 감동은 싹 달아났다.

경화는 돌아섰다. 이제 추기경도 교장도 승표나 자신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실실 웃음이 나왔다. 추기경이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그 멍청한 책 끼고 다니는 놈이랑 놀아나는 게 재밌으면 더 뒹굴던가!”

그녀는 홱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송곳니를 드러내 보이면서 미소지은 다음 책가방을 집어들고 교무실 밖으로 도망쳤다. 제기랄, 저 노인네가 승표 얘기로 날 낚다니.

 

해 선 안 될 짓을 했다니까!”

경화의 목소리가 울려퍼졌지만 두 사내아이는 멍하니 그녀의 얼굴만 바라봤다. 얼굴에 뭐가 묻었나, 경화는 손바닥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문질렀다. 몽롱한 시선 두 개가 여전히 그녀 얼굴에 박혀 있었다. 경화는 그 얼굴들에 손바닥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난 농담인 줄 알았어. 정말로 교장을 죽일지도 몰라.”

승표가 말했다.

누가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승표는 과자 뺏긴 아이가 항의하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화 받는 남자 말이야. 못 들어봤어? 교장을 죽이려고 할 거야.”

교장이 죽으면 선거도 안 하는 거야?”

, 안 하게 될 거야.”

경화는 승표와 대화하길 포기하고 생각나는대로 대답했다. 얘랑 더 얘기하느니 전화 받는 남자를 한 번 더 만나봐야겠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1번 버튼을 길게 눌렀다. 전화는 아무 데로도 걸리지 않았다. 승표는 갖고 놀던 장난감을 뺏긴 강아지처럼 경화를 바라보다가 움츠럭대며 책상에 엎드려 버렸다. 경화는 계속 1번 버튼을 눌렀지만 지정된 번호가 없다는 메시지만 떴다. 그녀는 휴대폰을 책상에 던져버렸다. 용식은 의자를 문지르던 사포를 들고 슬그머니 의자 더미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승표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그냥 좀 놀아. 중간고사도 끝났잖아. 넌 만점도 받았고.”

그래. 난 만점을 받았지.”

경화는 그렇게 말하면서 기분이 좀 좋아졌다. 용식이 의자더미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놀려면 나랑 같이 의자나 만들어 볼래요? 니스칠도 하고. 난 니스 냄새가 정말 좋은데.”

미안하지만 니스칠은 우리 가고 나서 해 줘.”

알았어요.”

용식이 고개를 집어넣자 사포로 나무판을 박박 문지르는 소리가 났다. 나무와 니스 냄새가 뒤섞인 묘한 냄새가 퍼졌다. 경화는 의자 더미 뒤편을 바라보다가 문득 소리를 쳤다.

, 저기, 잠깐만, 저기제길, 뭐라고 부르지?”

용식이 형!”

승표가 대신 소리쳤다. 그러자 의자 뒤편에서 소리가 올라왔다.

!”

경화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고마워.”

승표는 생긋 웃었다. 경화는 손에 든 볼펜으로 책상을 탁탁 쳤다.

, 저기추기경 만나봤냐고 물어봐봐.”

용식이 형!”

!”

추기경 봤어요?!”

뭐라고!”

추기경 봤냐구요!”

의자 뒤편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와 나무 가루가 피어올랐다. 경화와 승표는 고개를 돌려 나무 가루를 피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윽고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찬조 연설 시킬 때 말곤 못 봤어.”

승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화는 갸웃거렸다. 찬조 연설 시킬 때 말고 못 봤다니, 그때가 벌써 한 달 전인데.

찬조 연설 시킬 때 별다르게 한 말 없냐고 물어봐봐.”

! 추기경이, 찬조 연설 시킬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요?”

선생님이?”

용식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무슨 말이에요?”

경화는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 추기경이, 연설 시킬 때 뭐, 달리 한 얘기 없는지 해서. 뭐 가령 예를 들면, 교장이 싫어할 거라든가…….”

교장 선생님이요? , 그런 적은 있어요. 제가 찬조 연설 하는 거 교장 선생님이 싫어할 거라고 했더니 선생님께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하셨던 거 같아요. 괜찮을 거라구요.”

경화는 몸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교장이 괜찮을 거라고 했다구?”

. 교장은 어차피 선거 보지도 못할 테니까 넌 걱정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그 망할 놈은 죽지 않으면 눈알이 삐져나올 때까지 두들겨맞으면서 하루에 국 한 그릇으로 연명할 거라고 하셨어요.”

경화는 몸을 뒤로 집어넣었다. 용식은 씩 웃더니 고개를 집어넣었다. 사포질 소리와 니스 냄새, 나무 가루가 피어올랐다. 승표가 물었다.

저게 무슨 말이야?”

교장이 죽는다는 뜻이야.”

승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럼 선거는?”

바보야, 못 들었어? 교장은 선거를 보지도 못할거라고 했잖아. 그럼 선거는 한단 뜻이야.”

, 그럼 괜찮아.”

승표는 말하면서 책상에 엎드린 뒤 깍지 낀 손등에 턱을 얹었다. 사포질 소리가 맹렬하게 들려왔다. 경화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오늘은 전화가 안 오려나 보다. 시험도 끝나서 한가한데.

턱을 괴고 있던 승표가 말했다.

교장이 죽는구나.”

.”

경화가 휴대폰을 만지면서 대답했다.

교장이 죽어도 선거는 할 거고.”

, 교장이 살아 있으면 선거는 못 하게 하겠지.”

경화가 대답했다. 너무 눌러대서 그런지 휴대폰 1번 버튼이 빠질 것 같았다. 서비스 받아야 하나. 전화 받는 남자가 고쳐주면 좋을텐데. 경화는 1번 버튼을 그 자리에 꼭 눌렀다. 아무 번호도 뜨지 않았다. 학생회장의 번호. 아무도 받지 않는다.

갑자기 경화는 휴대폰을 내던졌다.

승표, . 추기경이랑, 미리 얘기한 거 있지?”

승표는 턱을 괸 채로 씨익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책상 옆으로 몸을 굽혔다. 경화는 긴장했다. 그러나 승표는 여전히 웃는 채로 가방을 열더니 두 손가락으로 천천히 무언가 꺼냈다. 그 책이었다.서울대가 아니라 아이비 리그를 노려라. 승표는 그 책을 경화 앞에 툭 던졌다. 그러자 마치 대답하듯 경화의 휴대폰이 파란 빛을 발하면서 진동했다. 화면에는 단 하나의 숫자가 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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