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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학교의 살인자(11)

2014.06.28 14:2806.28

11

 

왜죠?”

윤수는 팅팅 부은 볼 안쪽을 이빨로 씹어삼키며 물었다. 그는 원장 말고는 아무도 들어가본 적이 없는 병원의 내밀한 심장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곳의 이름은 진찰실 였다. 원장에게는 두 개의 방이 있었다. 간호사나 비서가 진찰실 를 진찰실이라고 부르면 원장은 화를 내면서 난 진찰실이 아니라 진찰실 에 있어!”라고 소리쳤다. 원장은 자신이 진찰실 에 있을 때 비서나 간호사가 원장님은 진찰실에 계십니다라고 말하는 걸 제일 싫어했다.

윤수는 진정제 한 주걱을 맞고 3일 동안 널부러져 있다가 이제야 깨어난 직후였다. 깨어나자 배가 찢어지게 아파서, 윤수는 이 새끼들이 자는 동안 신장 적출이라도 해치운 게 아닌가 하고 퍽도 긴장했다. 그러자 머릿속에 얼굴이 황달기로 노래진 남자 간호사 몇몇의 얼굴이 떠올랐고 배가 미친 듯이 아파왔다. 윤수는 배를 부여잡고 벽을 두들기며 이 미친 놈들아! 이 미친 놈들아!”라고 괴성을 질렀다.

그러자 천정에서 길쭉한 무언가가 내려와 윤수의 머리를 때렸다. 그는 깜짝 놀란 나머지 덜덜 떨면서 베개를 집어 머리를 감쌌다. 천정에서 나온 길쭉한 그것은 점점 길어지더니 바닥으로 털썩 내려와 허연 덩어리가 되었다. 윤수는 벌벌 떨었다. 이제까지 병원에서 본 것 중에서 제일 무서웠다.

, 뭐라고 씨부렁거리는 거야?”

천정에서 내려온 물체는 이층침대에서 늘 만화책을 끄적거리던 같은 방 친구였다. 윤수는 베개를 얼굴에서 치우고, 상의를 걷어올리고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배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배에 뭔가 있어?”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윤수는 휴우, 하고 환자복을 내렸다.

내가 며칠이나 여기 있었어?”

두 시간.”

뭐라구? 아니, 그런 게 아니라...며칠이나 정신이 없었는지 말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 내가 네 눈에 보인 게 얼마만이지?”

“3.”

3일이로군. 윤수는 생각했다. 그럼 배가 아픈 게 당연하지. 배가 계속 고프고 고프면 아플 정도가 되니까. 아니었나?

먹을 거 있냐?”

, 약 찾어?”

윤수는 병원을 저주하면서 침대에서 내려섰다. 배가 고파 미치겠으니 간호사에게 먹을 걸 달라고 해야겠다. 안 주면 식당에 불을 질러서라도 먹을 걸 찾을테다. 배고픔과 증오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막 일어선 순간 그의 전신을 불태우던 분노는 눈깜박할 사이에 사라졌다. 남자 간호사 하나가 쟁반에 우유와 빵, 계란 후라이를 들고 들어온 것이었다. 물론 옆에는 약컵도 같이 있었다. 윤수는 다 먹어치운 뒤 간호사가 권하기도 전에 약컵을 입에 들고 들이부었다. 다 먹고 나자 간호사는 사라졌다.

윤수는 다시 잠에 빠졌다.

눈을 뜨자 저녁 시간이었다. 윤수는 이층 침대를 차지한 친구의 뒤를 따라 즐겁게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여전히 개미굴처럼 시끄러웠다. 식사는 하얀 밥과 미역국, 김치와 단무지였다. 윤수는 즐겁게 식판에 음식을 받았고 자리에 앉았다. 역시 우유보다도 미역국이 속을 더 따스하고 시원하게 감싸주었다. 환자복을 입은 소년들은 밥알 한 개에 한 마디씩 떠들었고 서로의 머리에 알밤을 주고받았다. 윤수는 조용하고 재빨랐지만 미각의 즐거움을 느끼며 식사를 마쳤다. 이 정도라면 병원에서 평생을 살라고 해도 살 것 같았다.

행복해진 기분의 윤수가 식판을 들고 일어서려는 순간 백곰 같은 덩치의 남자간호사 네 명이 윤수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의 두 팔과 다리과 목을 제압한 뒤 구속복을 입히고 팔에 진정제 주사를 꽂았다. 반항해 봤자 별 수 없었다. 윤수가 축 늘어지자 간호사들은 죽은 아더왕처럼 윤수를 어깨에 메고 식당을 나섰다. 다시 식당은 평화에 감싸였고, 그들이 떠난 뒤 정확히 25초 후 다시 카오스 직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간호사들은 진찰실로 향하다가 혹시나 이것들이 진찰실 가 아니라 그냥 진찰실로 가는 게 아닌가하고 뒤따라온 원장에 의해 진찰실 로 갔다. 원장은 간호사들을 내보낸 뒤 진찰실 의 문을 닫았다. 진정제로 맛이 간 윤수가 입을 벌리고 눈을 껌벅거리는 동안 원장은 마지막 남은 문어 초밥 하나를 씹었다. 그리고 윤수의 팔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심연 저편으로 떨어지려던 윤수의 정신이 다시 머릿속으로 튀어올랐다.

왜죠?”

주사는 각성제였던 모양이다. 남자 간호사들이 주사했던 진정제는 영 맹탕이었는지, 원장의 주사바늘이 들어오자마자 윤수는 벌떡 깼다. 그러자 일부러 돌리려고 한 것도 아닌데 그의눈은 원장의 초밥 도시락 상자로 떨어졌다. 상자는 - 빌어먹을 - 비어 있었다.

왜 나를 내보내기로 한 거죠?”

원장이 말했다.

누워라. 이놈.”

왜 나를 내보내기로 한 거죠? 저한테 식판으로 얻어터진 놈은 어떻게 됐나요?”

뇌수술을 했다.”

원장은 빈 도시락 상자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네 말대로 뇌출혈이 있더구나. 심하진 않았지만 조금만 늦게 수술했으면 위험할 뻔했어. 하마터면 병원에서 시체를 치울 뻔 했다. 네 덕분이다. 훌륭한 진단이었어.”

지금 어디 있는데요?”

잘 있다. 독방에. 원래 뇌환자는 독방에 있어야 하니까.”

맙소사, 오 안돼.”

윤수는 머리를 싸쥐었다.

머리가 망가진거죠? 저한테 맞아서, 뇌출혈이 나서 정신이 이상해진 거죠? 안 돼요. 오 안돼. 제가 걔를 바보로 만든 거죠?”

걱정 마라. 오히려 얻어맞기 전보다 훨씬 나아졌어. 얼마나 조용하고 사려깊은지 너한테 고마울 정도다. 덩달아 그 녀석 친구들도 조용해졌다. 앞으로 최소한 50년은 조용할거다.”

원장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윤수는 원장을 올려다보았지만 원장은 그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원장이 침대에 걸터앉은 이유는 의자가 없어서였다. 진찰실 에는 의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침대 두 개와 책상이 존재했다. 윤수는 눈을 비비고 진찰실 를 둘러보았다. 진찰실 같지 않은 진찰실 였다. 벽지는 청동색이었고 새빨간 꽃무늬 띠벽지로 장식되어 있었다. 짙은 원색으로 방이 무척 좁아 보였다. 윤수가 누운 침대는 보통 병원에서 쓰는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였다. 맞은편 침대는 보라색 시트를 씌우고 작은 담요와 비단 쿠션, 그리고 읽다 만 책이 엎어져 있었다. 표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침대 머리맡에는 갈색 원목 책상이 놓여 있었다. 책꽂이가 붙어 있는 오래된 책상이었다. 그러나 책은 한 권도 없었고 대신 초밥 부스러기만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진찰실 는 사실 진찰실이 아니라고 윤수는 결론을 내렸다.

원장은 비단 쿠션에 몸을 기댔다.

아까도 말했지만 뇌출혈이라고 생각한 건 훌륭한 진단이었다. 의대에 가볼 생각이 없니?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면, 다시 말해 병원에서 나가게 되면...”

그 녀석 많이 다쳤다면서요. 왜 퇴원하지 않죠?”

다친 녀석을 퇴원시키면 안 돼지.”

듣고 보니 그렇군. 윤수는 혀끝을 씹었다.

그런데 왜 나를 내보낸다는 거죠?”

그녀석 부모가 왔었다. 그녀석과 얘기를 하고 나서 그러더군. 너랑은 무서워서 병원에 못 있겠대. 그래서 널 내보내기로 했고 그녀석 부모도 만족했단다.”

왜 날 내보내야 한다는 거죠? 내가 그녀석을 때렸는데요.”

그러니까 나가야 한다는 거지. 그놈은 아프고, 너랑 같이 있을 수는 없고. 그러니까 네가 나가야 되지 않니.”

윤수는 말머리를 잠시 잃었다. 말이 되지 않았다. 실꾸러미 같은 것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안돼요. 선생님, 난 미쳤어요. 돈까스 조각에 눈이 뒤집혀서 친구 머리를 식판으로 쳤다구요. 그것도 세로로요. 난 그놈을 죽이려고 했어요. 난 위험한 놈이라구요. 날 내보내면 안돼요.”

맙소사.”

원장은 빙그레 웃었다.

넌 지극히 정상적이야. 물론 처음엔 미친 놈이었지만 지금은 건강해. 그동안 의심이 가긴 했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널 내보내도 괜찮겠다는 결심이 섰단다.”

뭐라구요?”

넌 정상이라구. 건강하단 말이다. 세상 어느 누가 그런 상황에서 식판으로 머리를 치지 않겠니? 1년 만에 처음 먹는 고기 조각을 빼앗아가는 놈의 머리를 치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 머리를 치란 말이냐? 안 그래?”

하지만 다들 가만히 있었다구요.”

그러니까 다들 미친 놈들이지. 여긴 정신병원이구. 그렇잖니? 그 식당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이었던 놈은 너 하나였다는 거지. 그놈 부모가 널 해코지하진 않을 거다. 오히려 아들이 어른스럽고 얌전해졌다고 더 좋아하던데.”

나가고 싶지 않아요. 난 미친놈이라구요. 사람 머리를 찍어서 뇌수술까지 받게 했어요.”

원장은 산타인형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게 바로 네가 제정신이라는 증거다.”

벨이 울렸다. 윤수는 깜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각성제가 필요 이상으로 그의 몸을 예민하게 만든 것 같았다. 원장은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원목 책상의 둥그런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전화기가 들어 있었다. 그러자 진찰실 의 문이 열리더니 초밥 상자를 든 비서가 들어와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원장은 책상 앞으로 가더니 침대와 책상 사이에 걸린 커텐을 촤르륵, 쳤다. 비서는 등을 돌려 문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네 명의 백곰 같은 남자간호사가 들어와 윤수의 두 팔과 다리와 목을 잡았다. 윤수는 귀찮아진 나머지 반항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먼저 구속복을 입힌 다음 영 맹탕인 진정제를 주사하고, 윤수를 번쩍 들어 죽은 아더왕의 아버지처럼 둘러멘 채 진찰실 를 나왔다. 문이 콰당 하고 닫혔다. 그제서야 원장은 침대 밑에 감추어진 의자를 꺼내 앉은 뒤 솜 집는 가위를 꺼내 초밥 도시락에 감긴 랩을 도려냈다. 간호사들은 윤수를 성배처럼 어깨 위로 들어올린 채 정신병원의 통로를 달렸다. 환자들이 모조리 나와 박수를 쳤다. 빡빡머리 소년과 이층침대 친구, 독방에 갇힌 돈까스 보이까지 창살에 매달린 채 박수갈채를 보냈다. 윤수는 간호사들 위에 올라누운 채 제발 여자병동엔 가지 않았으면, 하고 빌었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여지없이 여자 병동에 연결된 통로까지 달려갔고, 윤수는 눈을 꽉 감은 채 소녀들과 처녀들과 중년 여자들의 메추리알 부딪히는 듯한 명랑한 웃음소리와 박수소리를 들었다. 간호사들은 백곰이 조각난 빙하와 빙하를 뛰어넘듯 달렸다. 여자병동을 빠져나온 간호사들은 마침내 푸른 정원으로 빠져나오는 정문을 통과했고, 잔디밭과 호수와 소나무숲을 달려나갔다. 곳곳에 눕거나 벤치에 앉은 환자들은 윤수를 향해 환성과 박수 갈채를 보냈다. 파아란 하늘 위로 그들의 환호성이 행사 풍선처럼 올랐고 윤수는 더욱더 눈을 꼭 감았다. 간호사들은 그를 더욱더 힘차게 둘러멨다. 그들의 팔과 다리와 몸통은 아더왕을 보호하기 위해 모인 원탁의 기사들처럼 굵고 튼튼했으며 지반을 차고 힘차게 날았다. 이윽고 그들은 복잡한 문양으로 이루어진 검은 철문을 통과했고, 차 한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만한 간격의 오솔길을 달렸다. 오솔길 양 옆에서 그들을 따라 사슴과 오소리, 너구리 멧돼지가 함께 달렸다.

윤수가 눈을 뜨자 오솔길은 물론 청명한 초록 나무들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간호사들 앞에는 빗물에 젖어 시커매진 아스팔트가 놓여 있었다. 하늘은 잔뜩 찌푸린 상태였다. 간호사들은 윤수를 둘러멘 채 한동안 서 있었다. 윤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공포가 그를 감쌌다. 몇 분 동안 그들은 발에 뿌리를 내린 듯 서 있었고 윤수는 시체처럼 굳은 채 들어올려져 있었다. 간호사들은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윤수를 아스팔트 위로 - 바로 뒤에 흙바닥이 있는데도 - 내던졌다. 윤수는 비명도 지를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간호사들은 윤수를 내던지자마자 사냥꾼을 만난 사슴처럼 오솔길 속으로 날렵하게 몸을 감추었다. 그들의 백곰 같은 덩치도 순식간에 북극여우만큼 작아져 버린 것 같았다.

어쨌건 윤수가 구속복에 싸인 채 신음하는 동안 간호사들은 몇 초 만에 10킬로미터 바깥으로 내빼버렸고, 윤수는 유기된 채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떨어지는 순간 얼굴을 부딪친 모양인지 광대뼈가 깨질 듯 아팠다. 그가 숨을 헐떡이는 동안 검정색 사각 승용차 하나가 달려와 코앞에 연기를 내뿜으며 멈췄고, 누군가 내렸다.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진정제 때문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그의 얼굴을 짓밟을 듯 새까만 신사 구두가 가까이 얼굴 앞에 왔고, 이어서 미소짓고 있는 쭈글쭈글한 중년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퇴원을 축하한다, 학생회장.”

담배 선생과 추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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