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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학교의 살인자(7)

2014.06.28 14:2506.28

7

 

교장은 아침에 눈을 떴다. 주방에서 도자기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교장은 금방 일어나는 대신 그대로 이부자리 속에 누워 눈꺼풀을 깜박였다. 창문으로 들어온 무르익은 오전의 햇볕이 방바닥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몇 분 후 교장은 일어나 앉았다. 녹아서 달라붙은 치즈처럼 교장의 몸이 늘어졌다. 그는 졸음을 쫓다가 일어서서 화장실로 갔다. 피곤이 이불처럼 온몸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는 하얀 변기 위에 앉아서 졸리고 피곤한 가운데서도 생각을 했다.

교장은 정말 학교가 싫었다. 자기 얼굴만 보면 비굴하게 울상을 짓는 K담임이 싫었다. 휴지로 대충 닦지 말고 꼭 물걸레로 닦으라고 말을 해도 책상과 상패에 덮힌 쥐색 먼지를 멀쩡하게 내버려두는 아이들도 싫었다. 매일 교무실 청소를 하러 오면서 교사들이 쓰레기통에 버린 서류 조각을 주워 샅샅이 읽고는 거기에 담긴 내용을 무적의 성배마냥 들이대는 못생긴 여자애도 싫었다. 거기에다 매일 아이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매년 첫학기마다 심장 약한 신입생들의 학부모들이 걸어 대는 전화로 교장실을 시끄럽게 하는 세계사 선생도 싫었다. 가장 싫은 것은 K선생 담당인 어느 정신나간 남학생이 좋아라 추진하는 회장선거가 벌써 다음주라는 것이었다.

학생들과 교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늦은 토요일 오후 교장은 교장실에 혼자 있었다. 교묘하게 시선이 가는 곳만 먼지가 닦여 있었다. 교장은 평소에 앉아 있는 가죽의자에 앉아 있지 않았다. 대신 창가에 서서 의자 등받이에 불안하게 한쪽 손을 얹고 다른 손을 둘 곳을 몰라 당황하던 참이었다. 당혹감이 멈추지 않자 순간 교장은 패닉상태에 빠지려던 직전, 소파에 앉아 있던 담배 선생이 말했다.

서 계시겠습니까?”

교장은 고개를 무의식적으로 주억거렸다. 담배 선생은 손님용으로 마련된 가죽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교장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안주머니에서 우아한 무늬의 은제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 그리고 케이스에서 담배 한 개비를 뽑아 희미한 얼룩이 진 유리 테이블 위에 살짝 놓고 케이스를 집어넣었다. 교장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담배 선생은 흘긋 교장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안주머니에서 아무 글씨도 씌어 있지 않은 검은 벨벳 성냥갑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 다시 은제 케이스를 꺼내 새 담배가치를 하나씩 꺼내 이제부터 모조리 피워버리겠다는 듯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 , 여섯,. 교장은 마디가 굵고 섬세한 담배 선생의 손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담배 선생이 가지런한 담배 개피들 옆에 검정 벨벳 성냥갑을 나란히 놓고 손을 떼자, 교장은 무의식적으로 떨면서 외쳤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무엇을 말입니까, 교장 선생님?”

선거 말이오. 모른 척 하지 마시오. 담배도 피우지 말고.”

담배 선생은 눈을 빛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첫 번째 담배를 집어 성냥을 긋고 불을 붙였다. 파란 연기가 허공에 복잡한 곡선을 그렸다.

교장은 한숨을 쉬었다. 담배 선생은 오늘 아주 젊어 보였다. 색깔이 옅은 갈색 눈동자는 평소처럼 푹 꺼져 있었지만 야윈 얼굴은 맑고 윤기가 났다. 오랜만에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 위 회색 포켓에 암녹색 실크 손수건이 꽂혀 있는 걸 보고 교장은 이를 갈았다.

담배 선생은 천천히 저타르 담배를 즐겼다.

선거가 어때서요? 새 학생회장이 말썽을 부리면 지난번처럼 하시면 되잖습니까. 선생님.”

아니, 안 돼오. 난 지난번에 그 녀석을 거의 죽일 뻔 했소.”

죽이다니요. 그 애는 지금 정신병원에 있습니다.”

교장은 계속 창가에 서 있었다. 의자의 거친 가죽 감촉은 무의식적으로 부드러운 벨벳 성냥갑을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순간적으로 교장은 성냥갑을 손에 쥐고, 만지고 피부에 비벼보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음탕한 생각은 주름진 이마에 진땀을 나게 했다. 교장은 의자 가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엉뚱한 생각을 떨궈내면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등을 기대어 되도록 권위 있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담배 선생이 벌떡 일어났다.

교장은 순간 놀라서 방어할 무기를 찾아 책상을 헤맸다. 그러나 책상 앞으로 바짝 다가온 담배 선생은 책상 위를 미친듯이 더듬는 교장의 손등에 담뱃불을 찍어누르지도, 팔을 길게 뻗어 교장의 목을 조르지도 않았다. 대신 미처 치우지 않은 종이컵을 집어 그 안에 재를 털었을 뿐이었다. 교장은 안도했다.

그러나 담배 선생이 소파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빗나갔다. 담배 선생은 소파에 몸을 파묻는 대신 자유분방한 젊은이처럼 교장실 책상 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았던 것이다. 교장은 올려다볼 수 밖에 없었다. 담배 선생이 부드럽고 약간 쉰 목소리로 물었다.

선거가 걱정되십니까?”

그런 것은 아니오.”

그렇다면 무엇을 두려워하시지요? 필요 이상의 두려움은 말 그대로 필요 없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을,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시지요.”

담배 선생은 새 담배에 불을 댕겼다. 섬세한 손 안에서 매끈하게 놀려지는 성냥갑. 저걸 주게? 교장은 생각했다. 그는 두려웠다.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부하 교사를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고, 애들 장난에 불과한 선거 나부랭이를 두려워하고, 닥쳐 오는 퇴임날을 두려워하는 자신이 미웠다. 퇴임날이 되어 권력이 교장의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오랫동안 불태워온 살의를 피할 수 없으리라. 무서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교장은 요즘 자꾸 무시당하는 것 같아 초조했다. 교장 앞을 지나쳐 다닐 때마다 성의없이 고개를 까닥거리면서 되바라진 태도를 숨기지 않는 아이들이 무서웠다. 교장은 거의 매일, 화가 난 듯 짐짓 결재 서류를 책상에 내동댕이치고 교장실로 당당히 발걸음을 옮기지만 돌아설 때마다 무언가에 뒤통수를 얻어맞을까봐 등 근육이 떨렸다. 그의 연약한 안구를 향할지도 모를 날을 세운 손톱과 손가락들도 두려웠다. 매일 아침 식탁에 놓인 싸구려 사기 그릇들과 그 안에 담긴 만든 지 오래된 음식들, 멸시에 찬 표정들, 무조건 그를 피해 종종걸음치는 발걸음들도 두려웠다. 그를 괴로운 욕망에 휩싸이게 하는 부드러운 물건 조각들과 생명들, 그리고 쪼그라든 그의 내면 속으로 파고드는 성스러운 푸른 연기도 그에게 신경질적인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는 동시에 욕망에 차 공포를 다시 원했다.

선거를 하지 않는 편이 좋겠소. 취소해야 하오.”

너무 늦었습니다. 후보는 한 명 뿐이지만 벌써 투표는 다음주입니다. 게다가 선거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미 아무도 없습니다.”

선생이 내게 선거를 하라고 지시했지 않소! 나는 선생이 너무 자신있어 하길래, 다른 대책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K선생에게 허락을 내린 거요. 하지만 이렇게 아무 조처도 없이 진행하다니.”

저는 선거를 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단지 허락을 요청했고 선생님께서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교장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를 떨구겠다는 것이오?”

담배 선생은 웃었다.

아닙니다. 선생님은 여기서 중요한 분입니다. 새 학생회장이 생겨도 선생님께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선거는 걱정 마시지요. 선생님.”

담배 선생은 테이블로 다가가 남은 담배를 손으로 주르르 쓸어모았다. 그 모습은 방금 담배를 늘어놓던 섬세한 모습과 무척 대조적이었다.

정작 선거보다 중요한 일은 따로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마음의 준비를 해두셔야 할겁니다.”

그건 또 뭐요?”

담배 선생은 케이스를 집어넣은 뒤 성냥갑을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김윤수 말입니다. 그 친구가 서서히 제정신이 돌아오고 있답니다.”

그게 누구요?”

맙소사, 선생님. 저거 말입니다, 저거.”

담배 선생은 시커먼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한 달 전부터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을 두고 관찰한 결과 일시적인 현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동일한 속도로 회복된다면 선생님이 떠나기 전에 학교로 돌아올 겁니다.”

뭐라고? 내가 떠나다니 무슨 소리요?”

다른 얘기가 아닙니다. 정년퇴임 말입니다, 선생님. 아무튼 그애가 회복되고 있고 완전히 건강해지면 아마 학교로 돌아오려고 할 겁니다.”

, 주여.”

교장은 부들부들 떨면서 책상을 짚고 일어섰다.

그건, 그건 최악의 소식이오. 차라리 매달 선거를 하는 게 좋겠소. 어떻게든 막아야 하오.”

선생님, 그 학생은 퇴학당한 게 아니라 휴학했습니다. 복교는 학생의 권리입니다. 막을 수는 없습니다.”

막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내가 학교를 떠나겠소.”

떠나시면 어디로 가실 참입니까?”

교장은 파르르 떨었다. 담배 선생은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선생님.”

어떻게 말이오?”

학생회장 임기를 단 하루로 두는 겁니다. 방학 전날 선거를 하고 개표한 다음 임명장을 주고 나면 학생회장 임기는 단 하루로 끝나겠지요. 그렇게 하면 학생회장이 학교 안에 돌아다니는 걸 단 하루만 견디면 되지 않습니까. 하루랄 것도 없지요. 몇 시간이면 됩니다.”

담배 선생은 미소지었다.

그렇게 해도 되겠소?”

선거 시기는 학칙에 안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 교장 선생님께서 하시겠다고 하면 못할 게 뭐가 있습니까.”

교장은 천천히 의자를 당겨 앉았다. 담배 선생은 허리를 굽히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교장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전 학생회장이 돌아오는 것에 비하면 선거는 아무것도 아니다. 3년 전 그는 위기를 가장 나쁜 방식으로 해결했고, 그 대가는 오늘 당하는 모욕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담배 선생이 전 학생회장, 김윤수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지 않았다면 교장실에서 담배는커녕 소파에 앉을 수도 없을 게다. 하지만 이런 수모의 대가도 고스란히 날아갈지도 모른다. 교장은 의자에 앉았다. 전 학생회장은 학교에 돌아와서는 안된다.

그날 밤 교장은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꿈 속에서 그는 선거운동 어깨 띠를 두르고 거리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내내 꿈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깨어났다.

일어난 교장은 가을바람이 식혀놓은 차가운 화장실에 앉아 혼란에 빠진 가운데서도 생각했다. 여기서 다 잃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했다. 문제는 누가 더 끈질기게 버티느냐일 것이다. 그런 거라면 자신이 있었다.

교장은 얼굴을 씻고 샤워도 했다. 출근을 위해 옷을 차려입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출근하는 아들 내외와 딸, 그리고 아침 밥상을 서두른 아내와 그리고 손자까지 한 명씩 안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넥타이를 즐겁게 골라 매고 거실로 나왔다. 다들 어디있느냐고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그는 한 사람분 음식만 달랑 차려진 밥상을 발견하고 동작을 멈췄다.

식탁에는 메모조차 없었다. 그제서야 교장은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우선 교장은 분노보다는 자신의 모습을 가족들이 아무도 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는 천천히 넥타이를 풀어 거실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식탁에 가서 혼자 앉았다. 의자에 앉고 나서야 교장은 아침에 들려온 은은한 그릇 소리는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식기세척기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식기 뚜껑을 열기 전 식탁을 바라보았다. 밥은 아직 미지근했지만 반찬은 차가웠고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교장이 앉은 자리를 제외한 의자들은 비어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실제로 같이 사는 가족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부지런히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교장은 천천히 뚜껑을 열고 수저를 집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흐릿하고 시커먼 그림자들이 하나씩 자리에 앉아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 음식을 열심히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교장은 그들을 가족처럼 느끼면서 식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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