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한거정은 정원에서 벗어나 저택 중앙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자오랑이 문간에서 한거정을 기다리고 있다.

[有什么收获]

(뭐 얻은 거라도 있나?)

한거정이 자오랑에게로 다가가 물었다.

[听说 一个叫阳子的安卓昨晚去了他的房间]

(듣자하니, 그 요코라는 안드로이드가 어젯밤에 그의 방으로 갔다는군요.)

[?]

(?)

[次子]

(차남말입니다.)

하녀들이 둘에게 가까이로 붙어 이야기를 엿듣고 있다. 한거정은 자오랑에게 손을 저으며 방안으로 불렀다. 문을 닫고 짧은 잎담배를 피운다.

[別的呢]

(다른 사실은?)

[我听说还有其他的安卓系统]

(그녀와 동행한 다른 안드로이드가 있다는 군요.)

정원으로 이상한 질문을 하였던 안드로이드 하나. 한거정은 고개를 기울이며 숨을 뿜었다. 이상하다.

[在院子里遇到了安卓]

(정원에서 안드로이드를 만났어.)

[她说了奇怪的话]

(이상한 말을 하더군.)

[那很奇怪啊]

(그것 참 별나군요.)

자오랑이 방안으로 날리는 연기들을 흩어놓으며 함께 벽에 기대었다.

[和他一起的安卓也是庭院用安卓]

(요코와 함께 갔다던 안드로이드도)

(정원용 안드로이드라던데요.)

[谁看见了?]

(누가 보았다고?)

자오랑이 눈으로 문 너머를 가리킨다. 역시나 이상하다. 한거정도 문을 보며 말하였다.

[女佣说了吗]

(그 하녀가 증언했나?)

[]

(그렇습니다.)

[看到安卓进入我主人的房间了吗]

(제 주인의 방으로 안드로이드가 들어가는 걸 목격했다는 건가.)

[有什么问题吗]

(문제라도 있습니까?)

이상하다. 짐작은 간다. 하지만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한거정은 확인해야할 것이 있었다. 그는 자오랑을 지나쳐 저택의 모든 안드로이드들을 찾으러 다닐 요량으로 부지런하게 발을 움직였다.

 

 

 

 

 

허 훈은 초조하게 발을 굴렸다. 전화를 붙잡고 수십 분을 씨름하던 그는 전화를 내려놓고서 더욱 발을 굴렸다. 입술을 뜯고 피가 방울방울 맺힌다. 하녀 안드로이드가 휴지를 건넨다. 허 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술만을 잘근 뜯었다.

띵동-!

또 다른 하녀가 분주하게 복도 위를 거닌다. 허 훈이 그녀를 붙잡는다.

[누가 왔지?]

하녀 안드로이드가 곧은 자세로 한 영애의 가문이 방문했음을 알렸다.

[나노하 가문의 두 주인 분들께서 방문하셨습니다.]

허 훈은 혼자 홀과 홀 사이를 가파르게 내달렸다. 접대용 응접실의 붉은 융단이 부드럽게 밟힌다. 허 씨 집안의 어른과 동생, 허 백이 각자의 안락의자에 앉아 그를 맞았다. 허 백이 그를 곁눈질로 보았고 허 훈은 입고 있던 재킷을 빳빳이 피며 백의 뒤편으로 바로 섰다. 가픈 숨을 쉬던 그에게로 허 씨 집안의 어른이 일어나 두 손님을 반긴다. 나노하 가문의 아가씨, 요코의 부모이자 그녀의 DNA를 이어받은 제품의 본 주인들.

[んでさってご苦労さまでした]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나노하 가문의 당주는 인색해 보이는 인상에 날렵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옛 시절의 단정한 양복은 화려한 장식이나 가문의 명패하나 걸쳐져있지 않았다. 반면 부인은 깃털 모자와 하얀 모피 코트를 벗으며 감색 드레스가 온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나이든 몸으로 광이 난다. 당주가 자신의 사람을 부른다. 그가 귀로 대어 속삭인다. 고개를 끄덕이던 통역사가 허리를 피며 말을 전한다.

[이번 일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당주가 다시 속삭인다. 통역사의 또박또박한 말투가 응접실 가득 허 씨 집안의 남자들에게로 쏟아진다.

[요코 아가씨는 어디 있습니까?]

노인이 우물쭈물하며 얼버무린다.

[요코 아가씨께선 우리 저택을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제 아들 녀석과 담화도 잘 나누었지요.]

통역가가 들은 말을 그대로 당주의 귀에 전하였다. 노인의 말들이 범람하였고 지저분하게 흘러 넘쳤다. 나노하 가문의 인색한 얼굴로 낯빛 하나 흔들리는 것이 없다.

[저희 저택은 요코 아가씨를 위해 최선을....]

크흠!

기침소리. 늙은 당주가 집안의 어른에게로 눈을 마주한다. 일본어가 튀어나온다.

[あなたたちが々にアプローチしてくる理由があります]

(당신네 집안이 우리 가문에게로 접근하는 이유가 있지요.)

[百瀚企業社長]

(백한기업의 사장 씨.)

통역가가 통역을 위해 입을 여나 늙은 당주가 그를 막았다.

[もうめないでください]

(그만 띄우셔도 됩니다.)

[あなたたちはたちの土地必要です]

(당신네들은 우리 땅이 필요한 것이고)

[そして, その土地企業再建役立つことは皆知っています]

(그 땅이 기업의 재건에 도움이 된다는 건 모든 이들이 아는 사실입니다.)

늙은 당주의 허리가 옆으로 기울어진다. 등을 바짝 기댄 그는 아래로 시선을 낮추었다. 그에겐 더 이상 할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どもでさえっています]

(어린 아이들조차도 아는 사실이죠.)

부인이 당주의 말을 받는다.

[陽子はそちらの息子さんが大好きでした]

(요코는 그 쪽 아드님을 정말 좋아했어요.)

부인의 검은 스타킹이 곱게 꼬아진다. 부인이 허 백을 바라본다. 통역사가 그녀의 뒤로 허리를 숙인다.

[うちの一緒にいてくれ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우리 애와 함께 해주어서 고마웠어요.)

통역사가 한국어로 바꾸어 전한다. 허 백의 눈이 올라간다.

[あなたほどたちもあのしいです]

(당신만큼 우리도 그 애가 그리웁답니다.)

백이 눈을 돌린다. 부인이 지그시 백의 눈을 마주하려 한다.

[陽子です]

(요코는 우리 아이예요.)

감색 드레스의 딱 달라붙은 몸으로 자상한 말투가 나와 허 훈은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하였다. 괜시리 죄책감이 든다. 허 훈의 밑, 안락의자에 앉아 부인과 마주한 백은 줄곧 따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허 백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だからそのしてほしいんです]

(그래서 그 애를 돌려주었으면 해요.)

통역사의 통역. 부인의 말. 문장 하나와 줄곧 거슬렸던 단어 하나. 허 백은 부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말 그딴 게 요코라고 생각하십니까?]

통역사가 당황한 얼굴로 버벅댄다. 부인이 통역사를 올려다보고 노인은 엄한 얼굴을 들어 허 백을 노려보았다.

[요코는 죽었습니다.]

[그 따위 깡통이 그녀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녀가 어디 있는지 묻고 싶으신 거라면, 죄송하군요.]

허 백의 말투가 딱딱하고 건조하게 불어 응접실 안을 차게 식혔다.

[전 관심도 없습니다.]

[허 백, 당장 사과 하거라!]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알기는 하는 것이냐!]

노인의 호통. 허 씨 집안 차남의 빈정거림. 말을 버벅대며 문장을 고치는 통역사와 낯이 어두워지는 부인. 일련의 군상들 사이로 허 훈은 가슴을 졸였다. 연극이 한창 진행되던 중이었는데. 소란의 가운데로 어눌하지만 분명한 어투의 한국어가 사람들 앞으로 나타난다.

[자네는 그녀를, 그 안드로이드를 믿지 않는가?]

늙은 당주의 어리숙한 한국어로 허 백이 답한다. 짧고 간결한 대답.

[그녀는 요코가 아닙니다.]

늙은 당주가 일어나 문으로 간다. 부인도 의자에서 일어나 곧바로 밖으로 나가버린다. 늙은 당주가 허 씨 집안의 남정네들에게로 돌아선다.

[もううことはありませんね]

(이제 만날 일은 더 없겠군요.)

늙은 당주는 그 말을 남기고 저택을 빠져 나갔다. 통역사 역시 그를 따라 허둥지둥 방을 나섰다. 노인은 제 얼굴을 쓸며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장남은 가업보다 글과 무대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차남은 잡초나 돌보며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노인은 두 손자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다행히도 요코 아가씨와 허 백은 사랑을 나눌 정도로 친하였고 Well Life 사에게 부탁해 요코 아가씨의 의식을 복제한 안드로이드를 얻을 수 있었다. 안드로이드로 환생한 요코 아가씨가 허 백과 사랑을 나눈다. 둘의 서약식이 진행되고 허 씨 집안의 기업과 나노하 가문의 땅이 새로운 역사를 세운다. 자신이 쌓아왔던 가업이 다시 재건된다.

[가서 사과하고 오거라.]

[제가 뭣하러 갑니까?]

[무릎이라도 꿇고 싹싹 빌기라도 해.]

[일없습니다.]

[너희 둘은 결혼해야 해.]

허 백이 노인의 말을 받아친다.

[그리고 아버지도 다시 살리셔야죠.]

[꼭두각시가 없으니 활동이 예전만 못하나보죠?]

허 백의 머리를 스쳐 응접실 벽으로 장식품이 박살난다. 허 백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노인의 핏대가 선 눈이 허 백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허 백의 눈은 엉뚱한 곳으로 지루하게 잠기어가고 있다. 노인이 응접실을 박차고 나가 백이 좋아하던 그 정원으로 거칠게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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