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3.

깨어나 보니 내 앞에는 커다란 거울이 놓여 있었고, 그 속에 초췌한 나의 육신이 놓여 있었다. 나는 크고 기다란 의자에 반쯤 누운 자세로 앉아 있었다. 몸이 욱신거렸고 무겁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누군가 내 팔과 다리를 묶어 놓은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였지만 다행히 일어설 수는 있었다.



나는 천천히 내가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눈에 익히려고 애를 썼다. 촛불이 넘실거리는 방이었다. 거울이 거울 속에서 거울을 비추며 거울을 바라보는 방이었다. 거울에 비친 내가 대칭적인 곳에 있는 거울 안에서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바라보면서 나를 향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울은 나의 수를 무한으로 증가시키는 듯이 보였지만, 거울의 개수는 정확히 여섯 개였다. 그것의 대칭적인 배열이 단지 나를 혼란속으로 밀어놓고 있을 뿐이었다.



촛불이 넘실대는 거울의 방 중앙에서 어떤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거울은 즉시 그 남자의 수를 여섯 개로 증가시켰다. 여섯 명의 남자가 여섯 개의 입을 가지고, - 자신감에 가득 담긴 단호한 음성으로 - 나에게 단 한마디의 질문을 건넸다.



어떻습니까? 저의 작업실이 마음에 드십니까?”



그 남자의 눈은 딸의 눈과 완전히 흡사했다. 어디인지 늘상 꿈속에 빠져있는 듯한 몽상가적인 분위기속에, 이상한 총기가 전기가 흐르는 듯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움푹 들어간 눈두덩과 높은 콧대, 아무렇게나 헝클어뜨린 머리칼 사이에 드러난 넓은 이마, 길쭉하고 유려한 턱선이 전해주는 인상이 매우 이국적이었으나, 사악함이 감도는 검은 눈동자가 자신이 동양의 혈통임을 애써 강조하고 있는 듯하였다.



이 세계는 곧 멸망해 버릴 것입니다. 저는 알 수 있죠.”


그는 그을음이 잔뜩 묻은 하얀 헝겊으로 무언가를 닦고 있었다. 그는 어떤 것을 조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차츰 나는 방안의 전경을 시선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었다. 커다한 흰 커튼이 미완성의 조각 여럿을 덮어놓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 긴 방의 중앙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볼수 있었다. 살아있는 악마들을 조각한 전시품들이 그 주변에 있었다. 그는 아직 미완성 상태에 있는 조각품들을 중앙축에, 완성된 전시품들을 좌우의 외곽축에 각각 진열해 놓고 있었는데, 그것들의 배열 방법에는 그만의 특정한 체계가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아직 티페레트에 배열될만한 조각품들을 완성짓지 못했습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석회 덩어리를 자신의 책상위에 놓아두고 나를 향해 돌아보면서 말을 했다. 나는 그의 귀기어린 눈빛을 다시 보아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그는 나의 기분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신에게 저의 전시품을 모두 다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 못내 아쉽군요. 나는 나의 조각품들을 정신분석학 이론에 근거해서 배치해 두고 있죠.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작품들은 의식계에 속해 있는 전시품들에 불과합니다. 전의식계와 의식계, 그리고 무의식계라는 삼중 구조로 배치해 두고 있는데, 보기에 따라 전의식계와 의식계는 완전히 한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카발라의 중앙축에 해당하는 티페레트와 에소드, 말쿠트에 해당되는 우주의 상징들을 저는 한곳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카발라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테지만, 저는 굳이 그리 큰 것을 대중들에게 요구하고 있지는 않아요. 그리고 당신에게는 매우 애석하지만 상당수는 이미 시중에 팔려나간 상태입니다. 완성품을 이루기전에 팔려나간 작품들이 아쉽기는 하지만 저는 개수에는 크게 집착을 하고 있는 편은 아닙니다. 그들 또한 숫자에 대한 미련한 집착을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보시는 바와 같이 아직은 미완성 상태에 있는 저 중앙의 일곱 조각품이 제가 기획하는 전시 작품의 최종적인 결론입니다.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배열 공간에 속한 진열품들은 각각 게부라와 헤세드, 네파와 호드를 상징하고 있지요. 중요한 것은 공간의 배열이죠. 이 작다면 작은 작업실에서 우주의 지도와 인간의 정신계의 지도를 모두 담아내는 것이 저의 야망이거든요. 저는 그들을 이곳에 불러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믿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곧 믿게 되실 겁니다마는........” 그리고 그는 사악하고 끔직한 조소를 터뜨리며, 자신의 창조물들을 향하요 고개를 돌렸다


.

나는 죽음에 대한 매혹을 품고 있는 그곳의 끔찍한 돌덩어리들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거울의 대칭적인 배열은 카발라의 대칭적인 배열과 완벽한 일치를 이루고 있었다. 호드의 거울은 네파트의 상징물을 비추고 있었고, 네파트의 거울 속에는 게바라의 상징물들이 떠올라 있었으며, 게바라의 거울은 헤세드의 상징물들을 자기 안에 담고 있었다. 각각의 원들 속에 배치된 조각품들의 수는 일정하지 않았으나 - 대부분 하나의 원 안에 둘 혹은 세 개의 조각품들이 배열되어 있었다, - 거울은 그것들의 수를 무한으로 번식시키고 있었다. 가고일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촛불이 메두사의 눈 속에 비쳐 섬뜩한 광기를 내뿜으며, 그 사악한 섬광들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증가시키고 있었다.




신성에 대한 모독, 죽음에 대한 찬미. 그것은 인간의 피와 살에 대한 탐욕으로 충만해 있는 순수한 괴물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돌덩어리 속에 갇힌 영혼들은 자신들이 인류의 역사보다 더 길고 오래된 영겁의 저주를 대표하는 존재들이며, 그들조차 자신들에게 부여된 저주의 거대한 중압에 짓눌려 있음을, 그래서 감내하기 힘든 끔직한 고통에 구속되어 있음을, 그 혐오스런 자태와 공격적인 몸짓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듯하였다. 해방, 해방, 해방. 그것이 그들의 위험한 몸짓으로 말해주고 있는 단어였다.



당신은 악마를 숭배하는 미켈란젤로와 같은 사람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의 얼굴이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 광기어린 시선이 나의 눈을 꿰뚫고자 하는 듯해서 나는 똑바로 그의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딸아이가 말하길 선생님은 작가라고 하시더군요.”

책 한권도 내본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저 쓰레기를 방출하고 있을 뿐이죠.”

당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줄 아십니까? 당신은 본질을 볼 줄 몰라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그저 러브크래프트나 스티븐 케인같은 환상 소설 작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간접적인 경험만 하기 때문에 아류조차도 제대로 되지 못하고 계신 겁니다. 모방조차 제대로 못하고 계신 것이지요.”

꼭 제가 쓴 글을 열 번은 넘게 읽어보신 듯이 말하시는 군요. 하지만 당신의 지적에는 정곡을 찌르는 구석이 있군요. 그래요 동의합니다. 동의할 수밖에 없군요.”

초자연적 현상이나 오컬트적 경험에 관한 서술은 결코 간접 경험만으로는 정확하게 이뤄낼 수가 없는 것이죠. 그것에는 실제적인 경험이 필요합니다. 제가 당신께 바로 그런 경험을 제공해 드리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그럼 이 괴물들이 실존하는 생물이라도 된다는 거요?!”



그는 씽긋이 웃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소적이고 야비한 웃음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당신과 똑같았어요. 믿지 못했었죠. 하지만 그들은 실존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육체를 갖고 있지 못했을 뿐이었어요. 비록 그들이 죽은 제 아내를 돌려주진 못했지만, 저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었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죽은 제 아내 또한 살아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것을 보여드리지요.”



그리고 그는 무대의 중앙부로 걸어가서는 그 커다란 하얀 천막을 걷어냈다. 나는 거의 비명을 지를 뻔한 압도적인 공포에 엄습 당하였다. 공포가 심장을 때려왔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헤아릴 수 없는 검은 촉수를 가진 기이한 생명체가 새하얀 여인의 몸을 음탕하게더듬고 있는 조각이었다. 촉수의 끝 마디에는 주사바늘처럼 뾰족한 가시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 뒤로 지옥의 심연 같은 검은 구멍이 그 여인을 집어삼키려는 것 마냥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심해바다에 서식하는 것처럼 소름끼치게 생긴 괴물이었다. 입술에는 상어의 것보다 뾰족한 이빨이 수십여 개나 박혀 있었다. 괴물의 눈은 아무런 감정도 담고 있지 않은 순수한 공허의 허연 심연이었다.



조각상의 여인은 겁에 질려 있었다. 비명조차 새어나오지 못하는 악몽의 사슬에 매여 있어서, 누군가의 구원의 손길이 닿기만을 기다리는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공포와 함께 체념의 감정이 기묘하게 섞여 있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그에게 질문을 꺼냈다.

이게 무엇입니까? 도대체.”

저 심연 너머의 존재들이 저에게 돌려준 아내의 생명이지요. 비록 지금은 돌안에 갇혀 저들과 함께 있지만요.”

당신이 되살려 내고 싶은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전처입니까? 아니면 저 소름끼치고 흉악한 괴물들인가요?”

그런 질문은 지금의 저에게는 중요치가 않습니다.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거든요.”




그는 나를 자신의 서재로 인도했다. 한동안 우리는 일곱 금촛대가 밝혀주는 어둡고 긴 통로같은 복도를 지나야 했다. 내게는 그 시간이 우주보다 더 오래되고 긴 영원의 시간으로 가는 미로가 아니였을까 생각된다. 그의 서재는 아찔한 곳이었다. 고전 그리스 풍의 그의 서재에는 수천 년의 세월동안 금기아래 억눌려 있는 금지된 장서들이 빼곡히 진열된 책장들이 줄지어져 있었다. 그 목록들을 여기에서 모두 다 말해주기는 힘들다. 선반의 좌측에는 주로 신학서와 고전문서들이 가득 꽂혀 있었고, 우측 선반에는 연금술과 신비술 학자들의 서재들이 아득히 진열되어 있었다. 파라켈수스 알베르투스와 마그누스 트리테미우스,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의 저작들과 그리고 남미의 미친 신지학자 호르헤 보르헤스. 그 외에도 도무지 인간의 언어로 쓰여진 것인지 알 수가 없는 문자들이 박혀진 오래되고 낡고 잡다한 문헌들. 그 시간의 영겁을 뒤집어쓴 헤묵은 책장들 한 가운데서 나는 인간의 언어로 씌어져 있으나 인간의 영혼을 전혀 담고 있지 않은 책 세 권이 나란히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헤르만 에이본의 에이본의 서그리고 아랍의 미친 신학자 압둘 알하즈레드의 저작 네크로노미콘”.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광인 호르헤 보르헤스가 그 책에 대한 방대한 주석을 편찬한 해제집인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에 대한 탐험기.” 나는 이 신성을 모독하는 거룩하지 않은 불경스런 서적들을 외경을 가득담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이 내 어깨에 닿는 것을 느낀 순간, 나는 극심한 혼란에서 깨어나 전혀 다른 종류의 새로운 혼란으로 전이 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장서들이 가져다주는 지성적인 공포에서 나를 벗어나게 했고, 보다 더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두려움을 나의 마음속에서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그가 나의 뒤에 있었고, 이제는(내가 뒤로 돌아섰기 때문에) 나의 앞에 있었다. 거울이 그 사람의 수를 무한으로 증식시키는 것처럼, 나의 공포감과 경외감 또한 무한으로 커져가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 네크로노미콘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미친 소리를 하고 계시군요. 저는 아랍어와 프랑스어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저 자신에게 물어볼 때, 저는 한국어를 잘하는 지조차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저의 환상들을 조각할 때 그러했던 것처럼요. 그들이 도와줄 것입니다. 당신이 하는 일은 그저 당신의 의지력을 저들의 정신력과 함께 감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글은 저절로 써지게 됩니다. 그것은 그들의 명령이니까요.”



지금 저를 보고 이 따위 사기극에 동참하라고 요구하시는 겁니까? 이 책들이 진짜인지 제가 어떻게 확신합니까? 아무 이름도 없는 문고본 출판사에서 바다 건너의 나라들에 있는 신비학에 미친 얼간이들의 책이란 책을 제목만 배껴와서는 철모르는 사춘기 어린애들한테나 팔아먹으려고 벌이는 장난짓꺼리에 불과한 일이 아닌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보다 더 근본적으로 이 따위 짓이 돈벌이가 되기라도 하는 겁니까?"




돈벌이가 되다마다요.” 그는 뒷걸음질을 하면서 나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이 거대한 저택을 제가 무슨 돈이 있어서 구입했겠습니까? 그들이 저에게 보여준 환상이 아니었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겠어요? 저도 처음에는 당신과 똑같았습니다. 하루하루 벌어먹기에도 급급한 변두리 인생이었어요.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저에게 주었죠. 부와 명성과 그리고 세상을 바꿀 궁극적인 힘까지 말이에요.”




뒤에서 누군가 걸어 다니는 듯하였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서 있었다. 몽상적이고 공허한, 그러나 깊은 슬픔과 말없는 공포가 뒤섞인 눈길로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지연아. 이분께 와인이라도 한잔 드려야 하지 않겠니?”



그녀는 서랍장이 있는 쪽으로 가더니 아주 오래된 적포도주병들 중에 하나를 꺼내서 와인잔에 따르고는 나에게 건넸다. 나는 선뜻 그것을 받을 수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안심하세요. 독 같은 건 들어있지 않아요.”

나는 그녀에게서 포도주를 받아서 마셨다. 맛이 좋았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다른 어느 것도 아닌 사악함이 그녀의 얼굴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대체 당신이 원하는 게 정확히 뭡니까?”

나는 그들이 이 세상에 다시 재림하길 원합니다. 그 먼 옛날 우주 저편에서 일어났던 거대한 전쟁이 이 세상에서 다시 재현되길 원합니다. 당신이 저를 도와줘야만 겠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형체를 부여하고, 당신은 그들에게 영혼을 부여하는 것이죠.”

왜 하필 제가 그 일을 해야 하는 거죠? 당신과 제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요?”




당신의 오컬트적 취향이 선택한 책들 중에서 저와 동일한 책들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당신이 선택된 사람이란 것을 뜻하는 것이죠.”

나는 잠시 방안의 전경을 둘러보았다. 방은 음침하고 가구들은 아주 오래된 것들이었으나, 결코 빈민가의 가난뱅이들이 거주할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거울처럼 대칭적으로 양측으로 배열된 장서장의 한 가운데에는 고풍스런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노트북 컴퓨터가 하나 올려져 있었고, 수십 여장의 필사본 같은 원고 더미들이 함께 놓여 있었다. 그 뒤편으로 아주 커다란 참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문은 수십여 개의 나무 빗장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그 뒤에 상상할 수도 없는 어떤 것을 가둬놓기나 한 것처럼.



지연이란 이름의 그녀가 아주 살며시 책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더니, 의자를 뒤로 조금 빼내었다. 그리고 다시 나를 향해 웃어보였다. 제 아비의 그것만큼이나 사악하고 오싹한 한기가 서린 웃음. 하지만 결코 징그럽지 않은, 지독한 유혹이 담긴 그런 웃음이었다.



나는 얼이 빠진 멍한 상태가 되어 그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머릿속 어느 곳에서는 아직도 나를 이성의 끈과 연결시켜 주는 의혹의 한 매듭이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 남자가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다는 듯 내 등 뒤에 서서는 나의 양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조용히 말을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수는 두둑히 챙겨 드리리다. 하지만 그들의 세상이 오면 돈 따위는 필요 없을 거요. 당신은 대제사장이 될테니까.”




그리고 그는 나의 옆에 네크로노미콘을 내려놓았다. 그 책의 첫 장을 펼쳐보니 그것은 자신이 1931년에 초판 인쇄되었으며, 참조본은 일본 근대 문학의 위대한 개척자중 한 사람이자, 서양 신지학을 최초로 일본에 소개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비공개 저작물 중 어느 한권의 책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혹은 말하고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근대 한국어와 일본어가 마구 뒤섞여 있는 조잡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편역본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나는 그 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힘을 가진 책이란 사실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미친 조각가의 흉악한 형상들은 모두 이 책에 그려진 삽화를 본 뜻 것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의 사악함은 인간이 상상력으로 생각해 낼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소름 끼치는 것이었고, - 사드조차도 만약 그 책을 보았다면 자신이 상상해낼 수 있는 사악함의 도를 넘어선 것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 그것의 흉악함은 인간이 역사를 통해 저지를 수 있는 어떤 행위의 정도도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일본군의 난징 점령후의 만행, 칭기즈칸의 대학살, 그런 것은 그저 인간사의 전설일 뿐이다. 네크로노미콘은 인간사를 넘어선 책이다.




그것의 사악한 위대함이 아이러닉하게도 인간사에 속해 있음 또한, 이미 여러 사람들이 수차례나 저술해 놓았기 때문에, 나는 그 내용의 방대한 기록을 여기에 구체적으로 서술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또한 인간사를 지키기 위한 나의 힘없는 저항임을 의심없이 믿어주기를 바란다. 네크로노미콘이 어느 나라의 언어로든 완전히 번역되는 날, 인간사는 하루아침에 전설로조차 희구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인간의 영혼과 정신력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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