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2.

 

죽어있는 고양이의 수는 정확히 여섯 마리였다.



엄궁동 시내의 허름한 내 하숙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수영역에 내려 서민 거주지의 꼬불꼬불한 아파트 단지를 지나쳐 오는 동안 나는 여섯 마리의 죽은 고양이를 본 것이었다.

사후경직이 심하게 이뤄져서 흰자위가 눈동자 전체를 다 덮은 고양이도 있었는가 하면, 죽어가는 고양이도 있었다. 방금 차에 치인 것인지 눈구멍, 콧구멍, 입구멍, 귓구멍등 구멍이란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며 휘어진 척추를 곧게 뻗으려는 것 마냥, 발버둥 치며 귀로는 들을 수 없는 비명이란 모든 비명을 다 질러대며, 도로가를 개구리처럼 펄쩍펄쩍 뛰어 가는 놈도 있었다. 그 녀석은 결국 다른 승용차에 치여 두개골이 박살나면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나보다 먼저 요트 경기장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시계 설치미술품이 조각되어 있는 그 광장에 그녀는 서 있었다. 저녁 여섯시 이십일 분, 어둠이 짙게 깔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만나면서 가벼운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다.



죽은 고양이의 수가 정확히 몇 마리이던가요?” 대뜸 이런 질문부터 하는 것이었다.

........ 죽어가는 고양이의 수까지 합하면 정확히 여섯 마리였어요.”

평소에도 그렇게 죽은 고양이를 많이 본적 있으세요?”

아니요. 하지만 평범한 날에는 죽은 고양이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다니진 않죠.”

앞으로는 꼭 고양이를 죽은 고양이를 세면서 다니세요. 그게 당신을 안전하게 해줄 거에요.”

무슨 소리이신지? 고양이들이 병원균이라도 옳긴 다는 말인가요?”

저도 잘 몰라요. 그저 불길한 예감 같은 것을 느낄 뿐이죠.”

눈이 왔잖아요. 추워서 동사한 것일 뿐이겠죠. 죽어가는 고양이들에게 크게 신경 쓰기에는 우리들에겐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녀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항만가의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석양은 이미 수평선 너머의 바다에 잠겨버려 띠 모양의 붉은 흔적을 남겨 놓고 있을 뿐이었다. 세계는 이미 별들의 바다로 변해가고 있었다. 자줏빛과 청록의 채색들이 서로에게 스며들면서 밤의 한 지점에서 회오리바람 같은 파문을 조그마하게 일으키고 있었다. 그 소용돌이의 중앙부에서 서서히 둥근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어제와 같이 고요하고 창백한 침묵의 만월이었다.



그래 맞아요. 우리는 고양이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고양이의 죽음보다 우리의 생명이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확신하세요?”

나는 정말 알 수 없는 아가씨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으나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건 모르는 일이죠. 그저 고양이의 몇 마리의 죽음이 저하고는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일 뿐입니다. 제가 그 고양이들을 직접 죽인 것도 아니고요. 그 녀석들의 죽음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할 이유도 없잖아요.”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죠.” 나는 그녀가 고개를 들면서 그 크고 검은 눈으로 둥근달을 깊이 응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책임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언젠가 이 지구상에 인간보다 고양이들이 더 많아 지는 날에는 고양이의 생명이 인간보다 더 값어치가 있게 되겠죠.”

나는 그녀가 손을 잡고 있는 철제 난간 근처에까지 걸어가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섰다.

어째서 고양이의 생명이 인간보다 더 가치 있게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는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에요. 근본적으로 우리들의 생명의 가치와 고양이들의 그것과는 구별이 불가능한 동일한 의미가 있다는 뜻이에요. 결국에는 등가적이라는 것이죠.”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저 자신도 잘 몰라요. 때로 제가 하는 말들은 저 자신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말을 그저 대언해주는 것일 뿐이거든요.”

그들이라뇨?”

내가 아니라 그들이 내 속에서 나의 말을 조종해요. 저도 그들의 존재를 확실히는 몰라요. 하지만 그들이 이 세상을 점점 오염시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요. 그들이 먼저 고양이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고요. 선생님은 제가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되시겠죠? 맞아요. 저는 미쳐가고 있어요. 저도 인정해요. 하지만 그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어요. 선생님도 곧 그들을 보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먼저 저녁을 한 끼 사주 세요. 너무 배가 고프네요. 식사는 하셨어요?”

좋아요. 하지만 제 형편상 고급 식사를 대접하기는 어려워요. 평범한 식사라도 괜찮으시겠어요?”




생각보다 저 그렇게 까다로운 여자는 아니에요.” 그녀의 입가엔 생각보다 온화한 미소가 띠어져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석양의 바닷가를 바라보면서 해운대 중앙 광장까지 함께 거닐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며 검은 바다가 태양을 완전히 삼켜버리게 되자, 오직 은색의 달이 우리의 뒤를 따르게 되었고, 은빛의 어둠이 우리의 뒤를 쫓고 있었다.

우리는 해운대 광장으로 곧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직진 대로에서 조금 우회하는 샛길로 접어들어 상가 밀집지역에서 해물 부대찌개로 저녁 식사를 했다. 내게는 누군가와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이 너무 오랜만의 일이라 좀처럼 실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성(異性)이라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게는 친구조차 이제는 몇 남지 않은 것이다. 그 문제를 아무리 깊이 생각해 보아도 나의 까다로운 성격이나 음주 기피증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근본적으로 내가 독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창 시절 동기들 중에서 마지막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 남자로써 유일하게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식사 예절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나로서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다만 술은 마시지 않느냐고 질문을 할 뿐이었다.

위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거든요. 성격이 예민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술을 마시고 나면 꼭 다음 날에는 탈이 납니다. 물론 소주 한 병 정도는 괜찮죠.”

그럼 마셔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 아버님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맨 정신에는 힘든 일이 될지도 모르거든요.”

그렇게나 끔찍합니까?”

이 세상의 것들이 아니에요.”

전 거의 스너프 필름에 가까운 고어 무비도 본적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이 세상에는 진짜 스너프 필름도 돌아다니고 있어요. 그저 미술품이나 조각품을 봤다고 해서 제가 공포를 느끼거나 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장담할 수 있어요. 분명히 두려움을 느끼게 되실 거에요. 그냥 그림이나 조각들이 아니에요. 살아있어요.”

그래서 나는 그녀가 권유한 대로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그녀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이미 자신은 그것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술이 전해줄 수 있는 위안 같은 것은 전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이나 그런 괴물같은 존재들과 함께 살고 계신 겁니까?”

오년쯤 된 것 같아요. 제 어머니가 불치병으로 돌아가신 이후부터이지요. 아버님은 그 후부터 불사의 학문에 대해서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열정으로 시작한 것이 점점 광기로 치달아 가게 되더니, 결국 그 존재들을 불러내게 된 거에요.”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고 곁에 두게 되었다면, 어느 정도는 친근감도 생기게 될 때가 온 것 아닌가요? 아무리 미운 사람도 오래 두고 보면 정이 들게 되는 것이 사람 심리인데, 특히 우리 같은 한국 사람들은 더 그렇다고 하잖아요.”

전혀요.”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있다고 한다면 오로직 악의적인 관심일 뿐이지요.”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어떻게 저를 찾아오게 된 것이죠? 그저 우연의 일치인가요? 정말 거리를 지나다가 어떤 영감에 이끌려서 오게 된 것이에요?”

일단은 그렇다고 대답해 드릴 수밖에 없어요. 저에겐 그저 영감일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진짜 대답은 저희 아버님이 해줄 거예요. 궁극적인 해답은 그들이 가르쳐 주는 것일 테지만요.”

대체 그들이나 그것들이란 어떤 존재들입니까? 뱀파이어나 좀비 같은 것인가요?”

제가 아는 건 단지 이 세상의 존재들이 아니란 것 밖에는 없어요.”





저녁 식사를 끝낸 후 나는 그녀를 내 중고 소형차에 태웠다. 그녀의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별장이 있다는 달맞이 고개로 가는 도로에서 나는 달빛이 우리의 뒤를 쫓고 있다는 환상적인 느낌에 계속 시달려야만 했다. 달빛은 우리의 뒤를 쫓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심란하고 기묘한 빛의 새하얀 물결을 내 머리 속의 어느 공간에 자리 잡은 항아리 속으로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달빛이 소용돌이 물결을 이루며 나의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내가 가고 있는 곳이 어쩌면 이 세상의 지도에 속한 곳이 아니라 차원 너머의 곳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당신도 이런 느낌을 겪어본 적이 있나요?” 그녀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황홀하였으며, 이 세상에서 건네는 질문이 아닌 듯하였다.

무슨 말씀이시죠?”

저렇게 요란한 달무리를 보신 적 있냐고요.”

솔직히 말해 처음입니다. 달을 무척 좋아하기는 하지만 저런 달은 본적이 없어요.”

앞으론 자주 보게 될 거에요. 달을 향하여 곧바로 가세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달을 향하여 가라니요?”

굳이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은 그저 달의 요청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에요. 잠시만 나를 보세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보았고, 그 창백한 얼굴 한 가운데 떠오른 두 개의 검은 눈동자가, 새하얀 암흑 속에서 두 개의 검은 산호섬을 이루며 떠올라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두 눈이 만나는 하나의 지점에서 달이 물결을 치며 흐르고 있었다. 출렁이는 달무리의 중앙부에서 그녀의 도톰한 검은 입술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검은 구멍에서 나는 보통 사람의 것보다 더 뾰족한 송곳니를 볼 수 있었으며, 그 검은 아가리에서 흘러나오는 주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주문을 내게 외웠다



부 비치 크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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