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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샌드위치 맨

2020.09.29 19:5609.29

 이것은 아주, 아주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다.

 


 

동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강사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상호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상호뿐 아니라 200여 개의 좌석에 빼곡히 들어앉아 ‘이슈와 콘텐츠’라는 강의를 들으며 시간을 버리는 이들이 전부 다. 강의는 제대로 된 목차조차 없었다. 100만의 구독자를 보유했다는 유튜버 한 명이 나와서 한 시간 내내 자학을 가장한 자랑거리를 늘여놓는 식이었다. 그래도 대형 유튜버답게 소소한 재미는 있었다. 동현은 지루한 스탠딩 코미디를 보는 기분으로 티 내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지금은 상호에게 잘 보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강사를 맡은 유튜버는 강의가 끝나기 10분 전이 돼서야 비로소 강의의 주제인 이슈와 콘텐츠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스트리밍 업계에선 콘텐츠보단 이슈가 압도적으로 중요하거든요.”

 

그 한 문장으로 시작된 장황한 연설의 내용은 이와 같았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재주를 가진 스트리머는 이미 천지에 널렸다. 그러니 미디어에 얼마나 많이 자신을 노출할 수 있느냐에 성패가 갈린다. 과감한 전략 짜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성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이슈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하지만 성공한 후 스트리머가 구독자에게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는 매우 크다.

 

요약하자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오랜 격언에 불과했다. 그 낡은 조언이 100만 구독자라는 에토스를 등에 업으니 어딘가 대단해 보이는 효과를 내는 것도 사실이었다. 당장 동현의 옆자리에 앉은 새내기 학생만 해도 막 자신의 인생을 180도 바꿔줄 조언을 마주한 듯한 감격에 쌓여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동현에겐 그 말이 하찮은 기만이고 자기변명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한 유튜버는 초창기 인터넷 방송에서 대단히 막장스러운 언행들, 이를테면 패륜적인 욕설과 장난 전화, 일반인을 상대로 한 몰래카메라 등의 사건으로 자주 구설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구독자를 끌어들여 덩치를 키운 뒤에는 꾸준한 연탄 봉사와 기부를 통해 어느 정도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성공했다. 아마 기자가 그 유튜버의 과거를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한다면 ‘철없는 시절의 행동이었죠.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따위의 헤드라인이 붙을 것이다.

 

이런 이슈성 스트리머에 대한 조소는 동현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안개처럼 은은하게 깔려 있었다. 동현이 자주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만 해도 논란이 많은 유튜버의 소식이 올라오면 ‘천한 광대들’이란 댓글이 수십 개씩 달렸다. 동현은 그 반응을 보고 있으면 그래도 세상이 아직은 상식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이따금 ‘모 유튜버 월 추정수익’이란 제목으로 작성된 글도 커뮤니티 내에 인기글로 올라왔고, 거기에 말없이 달리는 공감 수를 볼 때는 사람들의 얄팍한 속내가 다 보이는 것 같아 머릿속이 착잡해졌다. 세상이 정말 끝장나버렸고, 타락해버렸다는 종말론자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만 가자.”

 

상호가 동현의 어깨 자락을 잡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느새 강의가 끝나 있었다. 동현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얘는 그냥 팔을 잡던지 목소리를 크게 낼 것이지, 왜 이렇게 옷깃을 잡아당길까. 동현은 상호가 다섯 살짜리 유치원생만큼이나 수줍은 성격이라는 걸 요새 자주 실감했다. 동기들은 술자리에서 상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조금씩 불편한 기색을 했다. 어딘가 음침하고 너무 소심하다고 했다. 말을 먼저 걸어도 다가오질 않는다고. 그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은 사회성 결여로 봐야 하는 거라고. 그러다가 술이 좀 더 들어가면 이런 말을 했다. 어떻게 그렇게 배만 살이 쪘지? 걸어 다닐 때 손동작도 부자연스러워. 눈 사이가 완전 멀잖아. 쳐다만 봐도 기분 나빠.

 

동현은 남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럴 땐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뒷담화를 멈추거나 상호를 두둔해줄 마음은 없었다. 그런 자리에 끼어 있는 건 중요했다. 무리에서 멀어지지 않으려면 남을 험담하는 내용을 잘 귀담아들어야 했다. 그건 주류 사회에서 배척당할만한 요소가 어떤 방향으로 갱신되고 있는지 확인할 기회였다. 권장할만한 미덕은 또 무엇인지도. 동현은 언젠가 교양으로 들었던 사회학 시간에 ‘뒷담화가 무리 형성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와 이론이 존재하는 것을 알고 상당히 놀랐다. 세상엔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몸소 체험하고 깨닫게 되는 진리가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동현은 지금 자신이 아주 위험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는 걸 알았다. 신체적인 위해가 아니라 무리에서 조금씩 고립되는 종류의 위험 말이다. 단둘이 캠퍼스를 걷고 있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해도 상호가 입고 있는 광고판 티셔츠에서 재생되는 광고 영상 때문에 어딜 가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걸 다음 주부터 자신이 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도저히 용기가 안 날 땐 캘리포니아의 비현실적인 경관과 그 예술적인 풍토, 거기가 어떻게 자신의 인생 터닝 포인트가 되었는지를 설명해주곤 했던 선배들을 떠올렸다. 동현은 어떻게 해서든 거기에 가야 했다. 기왕 포트폴리오에 담을 사진도 잔뜩 찍어 올 작정이었다. ‘라이드 런치 세트 5,900원’ 문구가 날아다니는 옷을 입고서라도.

 

“뭐 먹으면서 얘기할까.”

 

동현은 자연스럽게 본론을 꺼내기 위해 상호에게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생활비가 모자라 학식이나 먹을까 했는데 상호는 자꾸만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버거라이드’에 가자고 고집했다.

 

“나 거기서 하루에 2만 원까진 공짜로 먹을 수 있어.”

 

의외의 복지 혜택에 절로 동현의 눈썹이 올라갔다. 하루 2만 원이라니. 아침 점심 저녁을 다 거기서 해결하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물론 그렇게 했다간 햄버거 패티에서 나오는 기름 덩어리가 혈관 곳곳을 막아버리겠지만. 동현은 최근 감자와 미역으로 삶을 연명하는 중이라 그마저도 절박했다.

 

 

 

“자주 오시네요.”

 

매장에 들어서자 카운터의 직원이 상호를 보고 떨떠름하게 말했다. 알바생 입장에서 자주 오는 손님이 반갑진 않겠지만, 동현은 대놓고 저런 말을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상호는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동현에게 물었다. 뭐 먹을 거야? 동현은 점심값을 아끼게 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상호가 꽤 괜찮은 놈인데 모두가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스쳤다. 얻어먹는 주제에 비싼 걸 고를 순 없으니 상호의 티셔츠에서 광고 중인 5,900원짜리 런치 세트를 골랐다. 상호가 카운터로 가 메뉴를 주문했다. 직원이 혼자 포스기를 두드린 후 계산 없이 긴 영수증을 뽑아냈다. 그리고 어딘가 짜증이 서려 있는 동작으로 그걸 구겨서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그건 고작 10g도 나가지 않는 가벼운 물질임에도, 분명한 적의를 담고 던진 것이라 플라스틱 통의 내벽을 쳐가며 순식간에 긴장감을 생성해냈다. 동현은 지금 막 5,900원의 선의가 가져다준 친밀감 때문에 급속도로 상호와 가까워졌다고 느낀 참이었다. 자신이 이 소심한 친구 대신 나서서 항의를 해줘야 하나 고민을 할 정도였다. 상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뒤돌아섰다. 모욕에 대한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항상 그렇듯이 눈빛은 어딜 보고 있나 알 수 없게 흐릿흐릿했다. 동현이 정말 안 되겠다 싶어 대신 카운터로 나가려는 차에 상호가 동현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이게 뭔가, 나 지금 상처받았으니 손 좀 잡아달라는 뜻인가. 동현이 손바닥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상호를 빤히 쳐다보자 상호가 딱딱하게 말했다.

 

“5,900원. 버거 값.”

“아.”

 

동현은 멋쩍게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지갑을 벌려 그 안에 들어 있는 오천 원짜리 두 장과 식권을 보자마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내가 왜 돈을 줘야 하지? 상호가 사주겠다고 한 거 아니었나? 곰곰이 되짚어보면 상호가 햄버거를 사주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버거라이드에 오자고 고집한 건 상호였고, 자신이 2만 원까지는 공짜로 먹을 수 있다고 그랬고, 또 동현에게 무얼 먹을 거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결정적으로 상호는 포인트 비스무리한 혜택으로 결제를 대신했다. 근데 돈을 받겠다는 게 정상인가. 도의적으로 천 원이라도 좀 깎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상호를 곁눈질했지만, 엄정한 징수관처럼 빈 손바닥만 동현에게 들이밀고 있을 뿐이었다. 동현은 손을 떨어가며 상호에게 오천 원짜리 두 장을 내밀었다. 상호는 칼같이 4,100원을 거슬러서 동현의 계좌로 입금했다.

 

동현은 상호와 마주 앉아 햄버거를 먹는 동안 썰물처럼 빠져나간 5,900원의 선의를 같이 곱씹었다. 뭔가가 들어오고 그대로 나갔을 뿐인데 종전보다 더 큰 거리감이 느껴졌다. 동현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콜라 컵의 얼음을 입에 밀어 넣었다. 상호는 음식이 입에 물리는지 몇 입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대뜸 입을 열었다.

 

“넌 이 주일만 하면 돼.”

 

원래 삼 주가 계획된 이벤트성 알바였다고, 자신이 일주일을 하다 그만두게 되었으니 동현이 나머지를 하면 된다고 전했다. 그렇게 해서 받게 될 돈이 340만 원이었다. 어찌저찌 아껴 둔다면 샌디에이고로 한 달짜리 어학연수를 갈만한 경비가 나왔다. 방학 동안 돈을 좀 더 모은다면 6주나 8주를 다녀올 수도 있었다. 일은 출근도 없고, 퇴근도 없었다. 학업에 크게 지장이 가지도 않을 것이다. 적어도 상호는 그래 보였다. 처음 상호가 샌드위치 맨을 시작했을 땐 동현을 포함해서 상호를 알고 있는 모든 이가 놀랐다. 그렇게 소심한 애가 사람들의 시선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일을 할 줄은 몰랐다면서.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거나 자신은 못 할 일이라며 손사래 쳤다. 상호는 언제나 그랬듯이, 본인과 외부의 세계를 단절시키는 결계가 있는 것처럼 주변을 철저히 무시하고 다녔다. 매일 광고판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나왔다.

 

동현은 상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옷만 입고 다니면 되는 거냐고. 상호는 콜라를 쪽 빨다가 말고 할당량 같은 게 있기는 하다고 답했다. 동현은 하루에 몇 시간 정도를 밖에서 보내야 하냐고 다시 물었다. 상호가 고개를 저었다.

 

“시간 개념은 아니고.”

 

아니고. 동현은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상호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거기서 끝이었다. 보통 대화가 이런 식이었다. 출발하고 5분 만에 퍼지는 차량 같았다. 동현은 수십 번씩 시동을 걸어가며 목적지까지 화물을 운반하는 기사의 심정으로 또다시 물었다. 그럼 뭐 어디 가야 하는 곳이 있는 거야? 상호는 노골적으로 귀찮아하는 표정을 짓더니 핸드폰을 꺼내 동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누군가의 연락처였다. 같이 일하게 될 사람이니 자세한 건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그랬다. 저장된 이름은 ‘박 차장’이었다.

 


 

동현은 학교 내 게시판에서 샌디에이고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처음 발견했다. 여름 방학 기간 한정 특가라는 단어가 운명의 계시처럼 다가왔다. 이유는 동현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살면서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보지 못한 것. 졸업이 코앞인데 특출난 스펙이 없는 것. 몇 주 전 외국계 잡지사에 인턴십 과정을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만 것. 그런 게 이유일 수도 있었다. 특히 동현이 지원했던 그 회사는 트렌디한 이미지와 고액의 연봉, 학벌에 연연하지 않는 채용 때문에 인턴 모집 소식만 올라오면 사진‧미디어학을 전공한 학생들 사이에서 불티나게 언급되었다. 동현은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으므로 인턴십 지원을 마친 날 밤, 졸업한 선배들을 제치고 정직원으로 채용되는 상상을 하다 늦게 잠들었다. 일주일 뒤 날아온 통보는 서류 탈락이었다.

 

그즈음, 취업 시장에 뛰어든 것을 기점으로 동현은 세상으로부터 자주 소외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신입생 시절엔 그렇지 않았다. 동현은 잰 체하는 가짜들과 진짜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다. 대놓고 드러낸 적은 없지만 재능이 없어 아무도 이해 못 할 사진이나 찍어대고 시대를 앞서간 천재인 척하는 선배들은 신랄하게 비웃었다. 적어도 동현이 찍은 사진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많은 관심을 받았다. 동현은 웨딩 업체나 삼류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싶지도 않았다. 예술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열정이나 노력으로는 채울 수 없는 감각이 필요했다. 동현에게는 딱 그 정도의 감각만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느낄 수 있는 감각. 천재는 아니란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수준의 감각.

 

불합격 통보를 받아든 날, 동현은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자취방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누워서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렸다. 문득 고등학교 동창들은 무엇을 하고 사나 궁금했고, 얼마 전 경장으로 진급한 친구의 소식을 들어서 인스타그램으로 근황을 살폈다. 스물둘 순경 합격. 삼 년 반 만에 경장 진급. 사진에는 그런 짤막한 코멘트가 달려 있었다. 동현은 그 코멘트를 보고 이 말이 얼마나 ‘진짜’일지 가늠해보았다. 인스타라는 게 도통 진짜를 알 수 없는 허세로 가득한 판이었으니까. 예컨대, 협력업체에 입사해놓고 공장 출입증만 딸랑 올려서 대기업에 취직한 척한다던가, 계약직으로 받은 수료증 사진을 올려놓고 단어를 교묘하게 가려 정직원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든가.

 

하지만 순경과 경장이라는 공무원 계급에는 그 어떠한 속임수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듯했다. 동현은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다른 동창들의 근황도 알게 되었다. 어째 잘 나가는 것들끼리 축하를 주고받고 있었다. 왜냐하면, 또 인스타란 게 그랬다. 뭔가 자랑질하고 싶은 인간들끼리 건너건너 아는 데면데면한 사이에 축하 메시지를 던지고 내심 나 좀 봐줬으면 하는 공간이니까. 프로 야구단의 프런트에 입사한 동창이 있었고 365일 내내 부모 돈으로 여행을 다니다 아예 웹 매거진에 여행기를 연재하게 된 동창도 있었다. 동현은 몇 명의 프로필을 더 살피다가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다 나보다 공부 못 하지 않았나. 그 말을 내뱉고 나니 더 구차해졌다. 구차해진 상태로 생각했다. 사람 삶이란 건 결국, 이렇게 보잘것없이 텅 비어있고 엉망진창인 게 아닐까. 열정이나 노력, 용기는 극소수의 천재들에게나 필요하고 나머지 인생은 그냥 줄타기가 전부인 게 아닐까. ‘요즘 뜨는 직업’, ‘안정적인 직업’ 따위를 고르는 선택이 평범한 인간들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유일한 요인이 아닐까. 스물다섯은 이걸 깨닫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닌가.

 

그러므로 동현이 다음날 어학연수 광고지를 발견했을 때 그것은 일종의 구원으로 다가왔다. 자신에게 약간의 욕심을 부릴 정도의 재능은 있다고 믿고 싶었다. 어쩌면 포트폴리오의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 외국계 회사인데 영어 관련 스펙이 더 중요할 수도 있지. 해외 거주 경험이라든가. 그게 없으면 서류 전형도 통과 못 하는 거고. 내 포트폴리오는 개봉도 안 한 채 쓰레기통에 버렸을 수도 있지. 그렇지. 너무 안일했지.

 


 

박 차장은 한적한 토요일 오후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자신을 버거라이드 홍보부에서 근무하는 ‘박신홍 차장’이라 소개하고 정중하게 지금 연락해도 괜찮은지, 혹시 찾아간다면 만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동현은 어차피 약속이 없는 주말이었고 절대 놓칠 수 없는 일자리였으므로 ‘네, 네, 진짜 괜찮습니다.’의 기분을 열심히 어필했다. 그도 상호처럼 버거라이드에서 만나자고 할 줄 알았으나 집 근처의 스타벅스를 약속 장소로 정했다. 박 차장은 약속 시각이 5분 정도 지났을 때 은색 세단을 갓길에 대고 황급히 뛰어왔다. 얼굴이 놀라울 정도로 추신수 선수와 닮은 남자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데다 머리까지 짧게 깎아서 더 운동선수 같아 보였다.

 

“어, 미안해요. 좀 늦었죠?”

 

동현은 자신도 막 도착했다는 말로 그의 비위를 맞췄다. 박 차장은 동현을 카운터로 데리고 가 무얼 먹을 것인지 물었다. 동현은 별로 목이 마르지 않다고, 괜찮다고 답했다. 그러자 박 차장이 후회하지 말고 빨리 하나 고르라고 보챘다. 진짜 선수 출신인지 말투가 거침없었다. 동현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혹시 이 인간도 상호처럼 돈을 달라 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다. 박 차장은 이름도 못 외울 생소한 음료를 주문하고 동현에게 다시 단 거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동현은 뭐든 잘 먹는다고 답했다. 박 차장은 쇼케이스에서 두 개의 조각 케이크를 추가로 주문하고 지갑에서 달러 모양을 본뜬 카드를 꺼내 점원에게 건넸다. 동현은 직장인 특유의 그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가 윙크를 보냈다.

 

“어차피 내 돈 아니라서.”

 

자리에 앉자마자 박 차장은 동현에게 디저트를 모두 넘겨주며 먹어요, 먹어, 하고 말했다. 동현은 혼자 다 먹는 게 죄스러워 눈치를 봐가며 한 입씩 먹었는데 박 차장은 혼자 핸드폰의 스크롤이나 내려가며 30초에 한 번꼴로 싫어요? 난 괜찮으니까 다 먹어. 그런 소리를 했다. 동현은 쉴 틈 없이 포크를 잡고 케이크를 잘라 입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먹으면 입에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것 같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동현은 아주 오랜만에 먹어보는 부드럽고, 달고, 손이 많이 가는 그런 맛들을 충분히 느꼈다.

 

박 차장은 동현이 케이크를 다 먹을 때까지 다리를 꼰 채 핸드폰 화면만 살폈다. 무언가를 신중하게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동현은 그의 잘 빠진 양복과 갓길에 대놓은 은색 중형 세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순간 버거라이드 역시 세계적 위상을 가진 대기업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돌처럼 날아와 머리를 치고 갔다. 자신이 지금 먹고 있는 달고 향 나는 음식들은 모두 박 차장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동현은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성경의 한 구절처럼 응시했다. 그의 주위를 맴도는 부유(富有)한 물질의 공기와 완숙한 삶의 태도가 대단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동현은 고교 시절 자신을 사진의 세계로 이끌었던 로버트 카파의 작품을 떠올렸다. 이 회사원에게서 느낀 감정이 그와 비슷한 둘레로 자신의 안에서 팽창해버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박 차장이 몸을 기울여 동현에게 말을 걸었고 동현은 혼란을 애써 가라앉힐 수 있었다.

 

본인 계정 맞아요? 눈앞으로 불쑥 핸드폰 화면이 들어왔다. 동현은 그게 자신의 인스타그램이란 걸 알아봤다. 박 차장은 지금껏 동현의 인스타그램을 본 것이었다. 동현이 그렇다고 말했다. 잘 찍네. 친구도 많고. 박 차장은 감탄사를 내뱉고 빨대로 음료를 한 모금 빨아 마셨다. 그리곤 핸드폰을 내려놓고 코를 두 번 긁적였다. 뭔가 꺼내기 불편한 말을 시작할 눈치였다.

 

“내가, 처음에 사람을 좀 잘못 뽑았어.”

 

인사 실패에 대한 고백은 다소 뜬금없었다. 무슨 맥락에서 이런 말이 들어온 건지 동현은 잠시 그 의중을 가늠해보았다. 그러다가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렴풋이 알아챘다. 상호의 이야기였다. 박 차장은 사진학과 학생이 필요하다고 그랬다. 대학마다 한 명씩 샌드위치 맨을 배치해 3주간 실험적인 이벤트를 벌이는 게 홍보부의 계획이었고, 동현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선 사진학과생을 뽑을 예정이었다고. 공문에 의하면 ‘교우 관계가 매우 원만하고 활동성이 높으며 회사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학생’이 목표였다. 요즘 애들은 ‘인싸’라고 부르잖아. 동현은 상호가 그런 학생에서 가장 먼 이미지를 가진 존재일 거라 확신했다. 박 차장은 동현의 학교 외에도 근처 4개 대학의 홍보를 맡고 있었다. 그래서 일일이 지원자를 면접하는 대신 한 가지 요령을 부렸다. 각 학과에서 SNS 팔로워 수가 가장 많은 학생을 뽑아 썼다.

 

‘상호가?’

 

그 지점에서 동현은 물음표를 띄웠다. 상호와 친하진 않았지만, 애초에 학교에서 상호와 친한 사람은 없었지만 어쨌든 상호가 많은 팔로워를 지니고 있다는 소식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런 건 소문도 짐작도 없었다. 박 차장은 동현이 상호 다음으로 계정에 팔로워가 많은 학생이었다고 일러주었다. 인제 보니 상호가 일자리를 소개해준 것도 아니었다. 박 차장이 직접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상호가 그저 인수인계나 해주는 처지라는 걸 알았다면 동현은 그렇게 저자세로 굴지 않았을 것이다. 5,900원의 선의는 어느새 강탈의 형태로 바뀌어서 동현이 반드시 찾아와야 할, 일종의 부채로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있었지만 동현은 표정을 일그러트리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박 차장은 계약에 관련된 사항을 무성의하게 설명하고는 능청스럽게 계약서를 꺼내 내밀었다.

 

“생각이 없어 보이진 않는데.”

 


 

월요일 아침 퀵으로 광고판 티셔츠가 도착했다. 콘셉트는 ‘올데이 버거라이드’였다. 모닝 3,800원. 런치 5,900원, 디너 6,200원. 2만 원이면 전부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금액이었고 실제 동현은 그렇게 할 계획이었다. 포장 비닐에는 ‘임의 세탁 절대 금지’라는 문구가 다닥다닥 적혀 있었다. 양면에는 그래핀이라고 부르는 얇은 셀로판과 같은 소재가 붙어 있었는데 광고 영상은 그걸 디스플레이 삼아서 재생되었다. 빼먹지 않고 충전을 해줘야 한다는 특징을 빼면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다만 등굣길에 그런 일이 있었다. 승객이 가득한 만원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앞뒤로 사람이 빽빽이 붙자 핸드폰에 경고 문자가 날아왔다. ‘지금 광고가 노출되고 있지 않습니다.’ 옷에 빛을 감지해내는 미세한 센서가 있다고 박 차장이 귀띔했었다. 동현은 이 일을 하기 위해 박차장이 보내준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았다. 경고 문자를 받자마자 동현은 즉시 가까운 역에 내려 박 차장에게 연락했다. 자신은 지금 지하철이며, 절대 겉옷을 입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박 차장은 웃으면서 그 정도는 자신들도 다 파악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5분쯤 옷이 가려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지금 네가 지하철을 타고 있는 건 우리도 GPS를 통해 확인했다고. 동현은 안심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갑자기 확 기분이 찝찝해졌다.

 

옷을 가리는 건 금지였지만 얼굴을 가리는 것은 문제가 없어서 동현은 첫날 마스크를 쓰고 등교했다. 일주일 앞서 상호가 이 일을 해준 덕분인지 요란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마주치는 눈빛은 전보다 많았고, 동현은 자신이 타인의 시선을 꽤 의식하는 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과방에서 마주친 동기 기원은 동현을 보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뭐냐. 상호인 줄.”

 

원래 상호가 하던 일이었고, 또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착각할 만도 했다. 그러나 동현은 참을 수 없이 대단한 굴욕감을 느꼈다. 기원에게서 어떤 모욕을 건네받은 기분이었다. 기원은 호기심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그거 왜 네가 입고 있냐고. 동현은 답을 하기 전에 잠시 숨을 골랐다. 어학연수 갈 돈을 모으고 있다고 답하면 영 이해 못 할 짓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약간의 동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계산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동현이 준비해온 그 구구절절한 사연을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 목구멍 안쪽에서부터 피로한 무언가가 울컥 올라왔다. 빈속에 신물이 올라오듯이 그랬다. 동현은 그냥 한숨에 가까운 어조로 답했다.

 

“돈을 많이 줘.”

“얼마나?”

 

동현은 액수를 곧이곧대로 말해도 괜찮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곁에서 대화를 듣던 후배가 끼어들었다. 오빠 그거 정말 오백만 원 받아요? 기원이 펄쩍 뛰어올랐다. 오백만 원? 이걸로 오백만 원을 받는다고? 몰라요. 여대 다니는 내 친구가 그거 하는데 지 말로는 오백만 원 받는다던데. 두 사람은 동현에게 답을 요구하듯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동현은 이 주만 하게 되어서 오백까지는 아니지만, 대충 삼백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이실직고했다. 기원은 묘기라도 본 사람처럼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종전까지의 웃음기는 싹 거두고 동현의 티셔츠를 쳐다봤다.

 

“네가 요즘 상호한테 잘해준 이유가 있었구나.”

“아니, 그건 아니고.”

 

동현은 엄밀히 말해서 자신이 이 일을 얻은 것은 상호와는 연관이 없다고 즉시 반박했다. 그간 SNS 활동을 한 경력 덕분에 회사에서 자신을 컨택했고, 상호는 인수인계했을 뿐이라고. 말이 나온 김에 동현은 상호가 중간에서 어떻게 교묘하게 자신을 속여 먹었는지 전부 말했다. 자신이 하던 일을 해보지 않겠냐며 접근해서는 바보 같은 강의에 질질 끌고 다닌 일이나 버거라이드에서 5,900원을 뜯어낸 일에 관해서도. 진짜? 그 새끼가 그랬다고? 기원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완전 또라이 새끼네. 동현이 물꼬를 트자마자 후배들 사이에서도 상호가 평소에 했던 기행에 대한 험담이 하나둘 흘러나왔다. 사소하면서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일화들이었다. 동현은 전에 없이 그 대화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었다.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맞아. 걔가 원래 좀 그래,” 같은 추임새를 넣어가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상호에게 당한 일만 말할 생각이었는데, 어쩐지 그 대화에 깊게 관여할수록 무리에 점점 달라붙는 듯한 느낌이 들어 멈출 수가 없었다.

 

 

 

강의를 마친 동현은 정문을 나오면서 자신을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이들과 눈 마주쳤다. 동현을 찍은 학생들은 SNS 계정에 사진을 올리고 ‘#버거라이드’, ‘#샌드위치맨’ 같은 해시 태그를 달아 두었다. 버거라이드 매장에선 그 게시물을 인증하면 단품 버거를 세트로 업그레이드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어딜 가든 자신을 촬영하는 이들이 있어 동현은 항상 긴장 상태로 지냈다. 그들에게 초상권을 운운할 수 없다는 건 잘 알았다. 기원도 아침나절에 동현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려둔 참이었다. 기원의 해시 태그는 이랬다.

 

#발견#샌드위치맨#넌내꺼야

 

동현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계정에 자신의 얼굴이 올라가 있을지, 또 올라가게 될지 생각했다. 엄밀히 말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동현이 아니라 광고판 티셔츠겠지만, 목을 잘라서 게재하지 않는 한 동현의 모습은 웹 안에서 영원히 흔적을 남길 터였다. 그걸 고려하면 340만 원의 보수는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니었다. 돈 잘 버는 기업은 다 이유가 있다고, 동현은 취업 스터디에서 만난 동년배가 세상 가르치려는 듯 내뱉었던 말을 떠올렸다.

 

동현은 곧바로 집에 돌아가지 않고 7호선 전철에 탑승해 가까운 백화점으로 향했다. 무언가를 살 계획은 없었다. 다만 박 차장이 보내줬던 그 ‘업무용 어플’이 지시하는 동선이 거기로 나 있었다. 어플에 따르면 일일 광고 노출량을 달성하기 위해서 오늘 약 5km를 추가로 걸어야 했다. 백화점에서 출발해 한강공원을 한 바퀴 돈 후 다시 학교까지 돌아오는 동선이었다. 그것이 상호가 언급했던 할당량인 모양이었다. 동현은 예전에 전단지를 배포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마지막 백 장 정도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일당을 받아간 적이 있었다. 이 일은 다들 이렇게 한다는 친구의 말에 슬쩍 요령을 부렸다. 동현은 백화점으로 이동하며 이번 일에도 그런 요령이 통하진 않을까 궁리해봤지만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플은 모든 업무량을 정확한 수치로 보여주었고 해킹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숫자들을 속일 순 없었다. 박 차장은 시스템이 제시하는 동선은 단순한 도보 경로가 아니라 사람들의 운집량을 계산한 결괏값이라고 말했다. 주변에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나간다면 광고 노출 수치가 더 빠르게 채워진다고 팁을 전해주기도 했다. 거기서 동현은 광고판 티셔츠가 어떻게 사람이 많은지 적은지를 분간하느냐고 질문했다. 박 차장은 빙그레 미소 짓고는 그런 기술이 이미 다 나와 있다고, 네비게이션이 교통체증을 잡아내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답했다.

 

백화점 1층의 로비에 들어서자 북적이는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티셔츠를 흘긋 보고 지나가는 무수한 눈길이 있었다. 동현은 백화점을 통과하는 동안 최대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물건을 파는 가판대조차 촘촘히 붙어 있어 사방이 소란스러웠다. 박 차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동현이 사람이 가득 찬 커피숍을 지나치자 어플의 필요 이동 거리가 4.2km에서 4.12km까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광고판 티셔츠는 사람을 인식한 게 아니었다.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인식했다. 그것이 있는 위치는 곧 사람의 위치였다. 가시거리 내에 기지국과 연결된 스마트 기기가 들어온다면, 광고판 티셔츠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노출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계산했다. 배경, 그런 암시만으로도 만족했다.

 


 

광고판 티셔츠는 일주일 동안 총 일곱 종류의 광고를 스트리밍했고 56km의 거리 이동을 요구했다. 에타에는 동현의 위치를 묻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일요일 저녁 동현은 물리게 먹은 햄버거 세트 대신 6,000원어치의 치킨너깃과 라지사이즈 콜라 한 통을 포장해서 욱신거리는 발바닥과 함께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손에 기름을 묻혀가며 너깃을 집어 먹고 노트북을 열어서 어학연수 사이트를 뒤적거렸다. 샌디에이고도 좋지만 글래스고나 하와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각종 후기를 읽었다. 그러다가 박 차장으로부터 단체 발송이 분명해 보이는 장문의 문자를 수신했다.

 

-매일 발품을 아끼지 않으시는 여러분의 노고와 쉽지 않은 업무 환경 속에서도 맡은 바의 소임을 다 해주시는 성실함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원활한 급여 정산을 위해 남은 일주일, 이탈 없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소 생뚱맞은 감사 인사였다. 동현은 반복해서 문자 내용을 읽다가 예민한 생존 감각으로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발생했음을 감지해냈다. 문자는 아무리 봐도 격려를 가장한 경고처럼 읽혔기 때문이었다. 동현은 즉시 구글의 검색창을 열고 버거라이드를 검색했다. 단어를 다 완성하지도 않았는데 뒤에 ‘집단 식중독’, ‘고소’ 같은 단어가 연관 검색어로 딸려 나왔다. 그걸 클릭하자 페이지에 수십 개의 기사가 펼쳐졌다. 제주의 한 태권도장에서 원생들이 단체로 난치성 식중독 질병에 걸렸다는 소식이었다. 당일 원생들이 다 함께 먹은 음식은 버거라이드의 제품뿐이었기에 피해 가족이 버거라이드측에 책임을 묻고 있었다. 기사의 중간에는 투병 중인 아이들의 사진과 건강했던 시절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는데, 누가 봐도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했다. 기사의 말미에는 버거라이드가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로 소비자로부터 고소를 당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이 짤막하게 언급되었다. 댓글 중에는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중립을 유지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체로 버거라이드에 대한 비난과 피해 가족에 대한 위로, 그리고 자신의 아이도 얼마 전 버거라이드 햄버거를 먹어 너무 걱정된다는 내용의 글이 주로 달렸다. 동현은 저녁 내내 관련 기사와 댓글들을 읽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고 카카오톡으로 기원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야, 이거 어떻게 하냐. 단톡방에서도 그 이야기만 하던데.

-알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지.

-그치. 근데 눈치가 보이지.

-이런 일로 일 그만두면 실업자 수십만 명 생긴다.

 

수십만 명. 기원이 언급한 숫자를 보고 동현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신은 그 거대한 덩어리 안에 있었다. 오늘 들렀던 버거라이드 매장의 퉁명스러운 카운터 직원만 봐도 큰 죄책감 없이, 그냥 느슨하게 돈이나 벌러 왔다는 마음을 바깥으로 확확 발산하고 있지 않았던가. 동현은 자기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일은 그냥 일이고, 돈은 그냥 돈이고. 애당초 어학연수를 위해 시작한 짓이었다. 그러나 이틀 뒤, 광고판 티셔츠가 새로운 광고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을 땐, 동현은 애써 외면해낼 수가 없었다.

 


 

전면엔 그런 문구가 반복되었다. ‘버거라이드 패티는 고온에서 완전조리하므로 안심하고 드셔도 괜찮습니다.’ 뒷면에선 초원이 그려진 목장을 펼쳐놓고 100% 호주 청정우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햄버거병이나 고소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동현은 설명을 듣기 위해 박 차장에게 연락했다. 신호음은 몇십 초간 이어지다가 중간에 뚝 끊겼다. ‘회의 중이니 나중에 연락하겠습니다’. 그렇게 문자가 왔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다시 걸었을 땐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동현은 티셔츠를 붙잡고 생각했다. 만약 오늘 급히 관둔다고 전하면 지난 8일간의 임금은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계산해보면 194만 2천 하고도 뒤에 붙는 자질구레한 숫자들을. 어려울 것이다. ‘원활한 급여 정산’ 대신에 다른 셈법이 끼어들 여지가 있었다. 최악의 경우엔 최저임금을 계산 받을지도 몰랐다. 동현의 생각은 어느새 좀 더 가지를 뻗어 학교생활과 무리를 향해 확장되었다. 6일을 더 일해야 2주가 채워지는데 그간 자신의 평판이 얼마나 떨어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동현은 어학연수 비용을 마련할 만한 다른 뾰족한 수는 떠올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결국 질리고 질리는 아르바이트의 세계, 편의점과 물류창고, 모델하우스와 공장 등을 전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방학이 오면 단기 일자리는 구하기가 더 힘들었다. 재수가 없으면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한 학기를 휴학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 말은 곧 취업하지 못한 채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인스타그램으로 타인의 성공이나 염탐하는 삶이 더 유예된다는 뜻이었다. 그 취업의 유예는 동현에게 있어 집행유예 혹은 기소유예 같은 말과 소름 돋도록 똑같은 것이라 인생에 커다란 형벌을 선고당하는 기분이었다. 동현은 무언가에 떠밀리듯 티셔츠를 입었다.

 

안전과 안심이라는 단어가 있었지만 차라리 다이너마이트를 몸에 두르는 게 나을 듯싶었다. 학교에서 마주친 기원도 동현의 티셔츠를 보고 폭탄만큼이나 꺼림칙한 것을 본 표정을 지었다. 그건 학교에 안 입고 오는 게 좋겠다. 며칠 전의 다독임은 간데없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동현은 그럴 수 없노라고 말했다. 업무용 어플이 오전의 동선을 무조건 학교로 두어서 공강인 날에도 티셔츠를 입고 교내를 어슬렁거려야만 했다. 매일? 기원이 뜨악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적어도 일이 끝나는 일요일까지는.”

 

동현은 말을 마치고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주춤거리는 기원의 발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동현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러다가도 기원이 먼저 가보겠다는 말을 꺼낼까 봐 두려워 너 강의 있지 않아? 하고 선수를 쳤다. 기원이 반색하며 답했다.

 

“어, 나….”

 

말이 나오다 말고 끊어졌다. 짤막한 침묵과 어색함이 뒤따랐다. 기원은 뒤에 구체적인 핑계를 대려고 했지만 실패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화의 공백 사이에 어떤 탄로가 있었고, 동현도 기원도 그게 정확히 무언인지 파악할 수 없었으나 어쨌든 삶의 비루함을 반추시키기엔 충분했다. 친구라고 여겨온 관계가 겨우 두 음절로 인해 절단 날만큼 얄팍했다는 사실을 마주했으므로 그랬다. 기원은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하지 않고 재빠른 걸음으로 멀리 사라져버렸다. 동현은 기원이 사라진 자리를 음울하게 쳐다보다가 자신도 그만 발걸음을 옮겨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무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300번대와 900번대 책장 사이를 만보기를 찬 사람처럼 혼자서 걸었다. 핸드폰에선 경로를 이탈했다는 경고 메시지가 끝없이 울렸다. 그건 진동으로 바꿔둘 수는 있지만 완전히 끌 수는 없어서 일정한 시간마다 동현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독촉을 멈추기 위해서라면 아래로 내려가 지하철역 입구나 호수 근처를 돌아다녀야 하겠지만 오기로라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박 차장이 이 일을 문제 삼는다면 자신도 가만히 있지는 않고 따져봐야 할 말이 산더미처럼 있었다. 그러나 늦은 점심 무렵, 밥을 먹기 위해 구내식당에 내려와 업무용 어플을 확인한 순간 동현은 좌절했다. 오전 내내 걸어 다녔는데 필요 이동 거리가 400m밖에 줄어 있지 않았다. 그마저도 대개 등굣길에서 달성한 수치였다. 도서관에서 한참을 배회했던 걸음은 유령처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질 못했다.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난다면 수치가 빠르게 채워질 거라던 박 차장의 말이 저 아래 수면에서부터 올라왔다. 약관에서 불리한 사항은 희미한 단서로 남기고 마는, 시장의 교활한 생리를 논하자면 동현은 항복 선언을 한 지 오래였다.

 

 

 

동현은 학교를 나와 관짝 같은 자취방으로 돌아간 뒤 밤이 될 때까지 그저 기다렸다. 밤이 드리웠을 때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길거리로 나왔다. 차라리 남은 5일간 유령이 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유령도 아니고 아예 광고판을 매달고 있는 마네킹이나 드론이 된다면 더 좋을 것이었다. 동현은 번잡한 거리를 걷는 동안 자신이 자신이 아닌 양 행동했다. 가능한 한 생각도 목적도 없이 업무용 어플이 지정해둔 거리를 움직였다. 그러면 지나치는 사람들의 짤막한 눈짓에서 느껴지는 힐난도 아무렇지 않았다. 모든 것은 광고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고, 또 광고를 향한 감정일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옷을 벗는 순간에야 동현은 영혼과 생기를 되찾았다. 종일 돌아다니면서 찍은 풍경이나 사물들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이름도 정체도 모르는, 자신을 완벽히 모르는 타인이 보내주는 ‘좋아요’가 좋았다.

 


 

몇 날 며칠이 부피 없이 흘러갔다. 요일과 요일의 경계가 흐릿했고 어떤 경우엔 아예 실존하지 않았던 시간인 마냥 훅 빈 채로 남기도 했다. 그렇게 동현의 마지막 근무일이 다가왔다. 날은 둘째 주 일요일이었다. 이후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할 때 동현은 당일 오후 1시 30분경에 ‘학교 앞 버거라이드 매장에서 점심으로 먹을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고 간략히 서술한다. 그러나 실제론 그렇게 단순히 기다리고만 있진 않았고 외려 무언가를 맹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금요일 아침 익명의 누군가가 동현을 저격하여 에타 게시판에 써 놓은 글에 대해.

 

‘당신의 몸은 안녕하신가요.’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그 글은 대단히 유려했고 호소력이 짙은 글이었다. 피해 아동들은 평생 장애와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언급하고는 그 가해자가 ‘거대자본기업’인 버거라이드라고 못 박아 두었다. 당신 또한 그 가해에 가담하고 있다는 게 글의 요지였다. 공교롭게도 금요일 오후 겨우 연락이 닿은 박 차장의 설명은 달랐다. 동현이 정말 버거라이드의 제품이 무고한지를 묻자 박 차장은 이렇게 답했다.

 

“지금 검찰이 업무상 과실을 입증해내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아요.”

 

그 가운데서 동현은 객관적인 진실이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뼈대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덩치가 큰 무언가가 만들어지거나 사그라지는 데에 없어도 그만인 존재라는 것을 경험했다.

 

에타에 올라온 저격글에도 여러 댓글이 달려 있었다. 거기엔 한나 아렌트의 말까지 인용하며 악에 저항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는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악이라 쓴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솔직히 500만 원 받는 게 배 아프다고 말해라 거지새끼들아.’라고 정반대의 편에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후자의 댓글은 동현을 옹호하기 위해 달린 것 같지는 않았고, 그냥 익명으로 관심 끄는 걸 즐기는 트롤(Troll)인 듯했다. 그는 여러 사람과 언쟁을 주고받으면서 ‘한국 사회는 이성보다 감정이 우선되는 비정상 사회다.’, ‘가난하고 약하면 모두 착한 존재냐?’, ‘정작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다들 안달이면서.’ 같은 글을 써 사람들을 제대로 도발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동현은 내심 통쾌하기도 했지만. 누군가 ‘한ㄷㅎ씨 진짜 추하네요.’라고 대댓글을 달아놓은 탓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의도치 않은 오해를 샀으나 동현은 거기에 해명하지 않았다. 그 저열한 도발은 어떤 객관적 진실도 품고 있지 않았고, 정작 누구보다 감정적인 자세였으나 쉽게 부정할 수만은 없는 기분 나쁜 통찰이 있었다. 배달하는 라이더들의 오토바이에도 동현의 티셔츠와 똑같은 광고 문구가 있었고, 카운터의 직원이 트레이 밑에 깔아주는 종이에도 그 광고 문구가 있었다. 모든 게 오백만 원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고는, 동현은 생각할 수 없었다. 억지로 희생의 일 번 번호표를 뽑게 했다고 생각했다. 기다리는 동안 동현은 그것에 깊이 골몰했고 그 때문에 자신에게 접근하는 두 명의 남성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동현이 그들을 인지했을 땐 이미 그들이 동현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뒤였다. 한 명은 덩치가 컸고 터질 듯이 작은 반 팔을 입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손에 핸드폰을 들고 앞에 선 일행을 촬영 중이었다. 동현은 그들이 유튜버임을 직감했다. 앞에 선 덩치 큰 남자가 대뜸 동현에게 말을 걸었다. 어느어느 대학에 재학 중인 한동현씨가 맞냐고. 말씨는 정중하지 않았다. 어딘가 성나 있었고, 마치 항의하기 위해 동현을 찾아온 사람 같았다. 동현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누구세요. 찍지 마세요.”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정의구현 TV’를 운영 중인 사람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건 징벌취재를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발음에 꽤 신경 써서 말했기 때문에 동현은 모든 단어를 정확히 알아들었지만, 도무지 ‘뭐라고요?’ 하며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남자가 팔을 휘둘러 동현의 모자챙을 쳤고, 모자는 한 번에 벗겨져 볼품없이 멀리 날아가 버렸다. 동현이 당황해 얼어붙자 남자가 한 번의 심호흡을 하고 고함을 질렀다.

 

“너 한동현이. 이 양아치 새끼. 그렇게 돈 버니까 좋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렸다. 동현은 얼굴에 올라오는 열기를 느꼈다.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남자가 양팔을 세게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 통에 꼼짝할 수 없었다. 남자는 그 상태로 카메라를 향해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국민 여러분. 이놈이 바로. 준비해온 대사를 꺼냈는데 말이 꼬였는지 중간부터는 자꾸 국민 여러분만 반복했다. 다분히 과장되고 연극적이었다. 소리를 듣고 직원이 달려왔다. 만류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지만 남자의 덩치 때문에 쉽사리 나서질 못하고 멀찍이서 주춤거리기만 했다. 현실성 없는 소동 안에서 동현은 강제로 머그샷을 찍는 범죄자처럼 눈앞의 핸드폰 카메라를 응시해야만 했다. 남자가 팔을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나중에 손자국 모양으로 멍이 새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양팔의 통증에 관해서라면 동현은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동현이 감각했던 통증은 오직 미간과 콧대 사이의 지점, 비골에 집중되어 있었다.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쇠막대로 짓누르는 듯이 거기가 아팠다. 혹은 세 개의 카메라 렌즈에서 레이저가 발사되어 뼈를 태운 것처럼.

 

경찰은 1시 50분경에 들이닥쳤다. 늑장 대응이라 할 수 없는 속도였으나 정의구현 TV의 운영자들은 10분 길이의 영상을 찍고 이미 떠나버린 후였다. 동현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 홀로 조서를 작성하기 위해 경찰차에 탑승했다. 중력 없이 붕 떠 있었던 정신은 시간 차를 두고 점차 바닥에 발을 붙었다. 동현은 가는 동안 아주 서럽게 울었다. 자신은 죄를 지었고, 그래서 연행당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동현을 찍은 영상은 그날 밤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다. 18시간 동안 140만 회의 조회수를 달성한 후에 부적절한 영상으로 신고당해 삭제되었다.

 


 

동현은 꽤 긴 시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잠만 잤다. 동이 트는 것인지 지는 것인지도 모를 모호한 시각에 깨어나 천장의 무늬를 바라보다가 다시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배가 너무 고파 위가 쓰릴 적이면 삶아놓은 감자를 몇 덩이 씹고는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이따금 창밖에서는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차가운 기운이 들어왔다. 동현은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했다. 홍수와 열풍과 빙하기를 상상했다. 세상을 무너트리는 재난으로부터 몸을 피한 생존자처럼, 그렇게 방 안에서 웅크리고만 있었다.

 

냄비 안의 감자가 다 썩을 즈음에야, 그걸 버리기 위해 침대 밖으로 나왔다. 미뤄두었던 일을 시작했다.

 


 

이 주일 정도 시간이 지났을 무렵 동현은 경찰서로부터 다시 연락을 받았다. 두 번째로 서를 찾아간 날 동현은 그들과 재회했다. 피의자 신분으로 앉아 있는 두 남자는 인상이 매우 달라 낯설었다. 의기소침해 땅바닥에 시선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박 차장이 변호인과 함께 그들의 곁에 앉아 있다가 뒤늦게 동현을 알아보곤 인사를 건넸다. 이제는 광고판 티셔츠를 입지 않았지만, 동현은 여전히 마스크와 모자 없이는 바깥에 나오지 못했다. 동현은 형식적인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버거라이드에서 이 일에 사람을 보낸 것은 동현으로서는 의외의 일이었다.

 

담당 경찰관은 구속 수사가 진행될 거라고 말했다. 개인을 동의 없이 강제 촬영해서 그 영상을 공유한 일은 전례 없이 복잡한 혐의가 적용되겠지만, 일단 팔에 남은 멍 자국 때문에 폭행죄는 뚜렷하다고 그랬다. 동현은 그럼 형량이 얼마나 나오냐고 물었다. 경찰관은 답해줄 수 없는 문제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구형은 검사가 하고요. 합의가 중요하겠죠.”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피의자 쪽을 바라봤는데, 대화를 해보라는 신호 같았다. 동현과 피의자들 사이에는 버거라이드의 법무 변호인이 앉아 있어서 동현은 그를 무시한 채 피의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변호인은 차분한 목소리로 합의를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실형을 끌어낼 수 있고, 합의와는 별개로 민사상의 손배소를 통해 위자료를 청구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그 말을 들었는지 덩치 큰 남자가 볼멘소리로 외쳤다. 돈 없어요.

 

“돈도 없는 양반들이 왜 그러셨대.”

 

박 차장이 이 사이로 공기 빨아들이는 소리를 쓰읍, 쯥, 내면서 비아냥거렸다. 그 말의 일부는 동현이 묻고 싶었던 질문이기도 했다. 대체 무슨 판단으로 그런 무모한 행각을 벌였는지, 그게 범법 행위란 자각은 있었는지. 버젓이 자신들의 범죄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한 덕에 경찰은 증거 확보를 위한 어떤 수사도 일절 할 필요가 없었다. 아주 멍청한 짓이었다. 그 멍청한 행위 때문에 휴학까지 해버렸다는 걸 생각하면 동현은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동현은 왜 그랬냐고 물었다. 자신에게 무슨 원한이 있었냐고. 혹시 지인 중에 식중독 사건의 피해자가 있을지도 모르므로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물었다. 촬영을 한 남자가 우물쭈물하다가 한참 만에 대답했다.

 

“이슈가 필요해서 그랬어요.”

 

이슈가. 어이가 없었는지 누군가 바람 새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경찰관이 당신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자, 촬영을 한 남자는 우는 목소리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저는 벌금만 내고 끝날 줄 알았어요. 한 번만 선처해주세요. 아니, 합의는 내가 아니라 피해자랑 하는 거고요. 내가 아니고요. 모든 게 코미디였다. 그 광경을 보면서 언젠가, 동현은 비슷한 말을 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기억해냈다. 성공하기 위해선 이슈가, 재능도 노력도, 줄타기도 아니고 그저 이슈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사람이. 동현은 지난 한 시기 동안 자신이 겪어낸 것들이 하나의 종말이었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 먼 곳에서 온 메신저가 그 사실을 전해주고 방금 떠났다. 난처해진 경찰관이 동현을 불렀다. 동현은 대화를 할 정신이 아니었다.

 

“담배 한 대만 피고 오겠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밖으로 나와버렸다. 뒤에서 경찰관이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변호인이 제지한 것인지 동현을 붙잡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박 차장만이 안색을 살피기 위해 황급히 따라 나왔다. 동현은 주차장에 우두커니 서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박 차장도 전자담배를 꺼내 입에 물려다 말고 동현에게 자신도 그 담배 한 개비만 달라고 요청했다. 동현은 순순히 하나를 건네주고 불을 나눠 붙였다. 한 모금 연기를 내뱉고 나니 박 차장이 동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으냐고 물었다. 동현은 전화도 제대로 안 받던 사람이 왜 갑자기 다정하게 구는지 싶었다. 박 차장은 힘들면 오늘은 그만하고 다음에 다시 해도 괜찮다고, 뒷일은 자신과 법무팀 사람이 하겠다고 말했다. 담뱃값인지 택시값인지 지갑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주머니에 찔러줬다.

 

동현은 그 돈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쩐지 굴욕스럽기도 해서 한사코 거절하려 들었지만 박 차장의 완력을 이길 수 없었다. 박 차장은 돈을 넣어주고 나서도 할 말이 있는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동현은 또 뭔가 싶어 박 차장을 뚫어져라, 봤고 그러자 박 차장이 버릇처럼 코를 두어번 긁은 뒤 고개를 숙여 은밀히 속삭였다. 혹시 방송국에서 취재 요청이 오면, 좀 먼저 연락해줘요. 회사에서 위로금 명목으로 보상해줄 수도 있어. 하도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어서 동현은 고개를 끄덕여줄 수밖에 없었다. 동의한 게 아니라 일단 알겠다고 답한 것뿐이었는데 결과적으론 동의한 셈이 되고 말았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동현은 잠시 졸았다. 핸드폰 알람이 울려서 선잠을 깨웠는데, 확인해보니 인스타그램으로 온 DM이 있었다. ‘I`m on your side.’라는 메시지와 사진 한 장이었다. 사진 속엔 한 남자가 덩그러니 있었다. 클럽에서 찍었는지 주변이 어두컴컴해 남자 한 명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밝기였다. 남자는 얼굴에 종이봉투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봉투 겉면엔 ‘I`m not Sandwich Man Anymore’라 적어 놓았다. 샤이아 라보프가 베를린에서 했던 ‘I`m not Famous Anymore’ 퍼포먼스를 패러디한 것 같았다. 발신자의 계정은 게시물 하나도 올라와 있지 않은 유령 계정이었다. 동현은 참 경우 없는 인간이라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끄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렇게 어둠이 찾아오자 더 또렷하게, 기괴하고 난해한 남자의 사진이 허공에 그려지는 것이었다. 동현은 어쩐지 그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다시 화면을 열고 사진을 보자 이번엔 사진 속의 사람이 남자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계절에 맞지 않게 두껍고 큰 옷을 입고 있어서 가슴이나 울대가 잘 보이지 않았다. 한국인이 아니고 외국인일 수도 있었다. 메시지를 영문으로 써서 보냈으니까. 아무런 단서도 건네질 않고 오히려 보면 볼수록 더 많은 궁금증을 발생시키는 이 신비의 존재를 마주하면서 동현은 반드시 그 정체를 알아내야만 한다는 당혹스럽고도 열띤 당위에 휩싸였다. 왜냐하면, 그가 이전 세계에 종말을 가져온 사도이자 새로운 세계의 창조자, 이 모든 소동의 배후에 존재하는 설계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동현은 집요하게 사진을 바라보며 결코 해답을 찾을 수 없을 질문들을 던졌다. 이름이 뭘까. 나이는 몇 살일까. 가려진 얼굴의 표정은,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내게 이 메시지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조롱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응원하는 것일까.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무엇을 원하는 걸까. 대체 정체가 뭘까. 봉투를 뒤집어쓴, 저 화면 속의 인간은.

 

 

 

 

  1. 소설 속 등장하는 '버거라이드'는 여러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회사의 특징을 섞어 만든 가상의 기업이며, 특정 회사를 지칭하고 있지 않음을 밝힙니다.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또한 허구의 창작에 불과하며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고 있지 않습니다.
  2. 더불어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웨어러블 기술은 이종근·정재훈 공저 웨어러블 혁명 : 사물인터넷 세상의 핵심 모멘텀에서 착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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