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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우주의 인디언

2003.09.26 19:1709.26

이것은 내가 아나우드슬라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
그것이 언제 어느 때였는지는 참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나는 그 때
우주의 인디언이었다. 내 모습은 머리칼을 비롯하여 눈과 온 몸에
이르기까지 순수한 황금빛을 내뿜었으며, 내겐 내 키의 두 배는
족히 됨 직한 날개 한 쌍이 달려 있어 그 날개를 휘저으며 우주의
바람을 타고 이 행성에서 저 행성으로 날아다녔다. 그 날개 역시
금빛으로 찬란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끝없이 머무르지 않고
우주를 여행하던 나에겐 한 명의 동반자가 있었는데 그는 언제나
소리없이 내 뒤를 따라다녔고 나와는 대조적으로 어둡고 또 어두
운 검은 베일 속에 자신의 얼굴과 몸을 감추고 있었다. 우리는
생김생김은 너무나 달랐으나 그와 상관없이 나는 그를 너무나
사랑하였고 그도 나를 사랑하였다. 그러나 사실 그의 나에 대한
사랑은 그리 명확한 것이 못되었다.  그는 항상 나와 함께 있었으
므로, 이 우주 어딘가에는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누군가가 존
재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를 사랑하였으나 그것
은 나만을 향한 사랑은 아니었다. 그것이 나에겐 유일한 슬픔이었
다. 나는 내가 그를 사랑하듯 그도 나를 사랑하길 바랬고 그것이
유일한 나의 아픔이었다.

우리는 너무나 자유로웠다. 우주는 우리의 놀이터와 같았고 이
행성에서 다른 행성으로 떠도는 우리의 길목을 막아설 자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우리의 자유로움 속에서
어떤 한계를 느꼈던 것이다. 먼저 그것을 느낀 것은 나였기에
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이런 삶을 그만두자. 이 삶은 모든 게 좋지만 뭔가 아쉽다.
이 삶은 최고의 무엇이 아닌 어중간한 무엇이 분명하다. 나는 이
삶을 그만두고 새로운 형태의 삶을 택하고 싶다. 그리고 너도 함
께 가자."

그러나 소리없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삶에 불만이 없다. 나의 소원은 이 우주가 멸망하는 그
날까지 그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볼 수 있는 것. 그러자면
지금과 같은 삶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죽음이 존재
하지 않지 않는가?"

나는 그의 말에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때 너무나 화가나 영원을 함께 하고자 했던 그를 떠나
홀로 '한정된 생명을 가진 자'가 되길 선택했다. 그것은 '죽음이
예정된 자'가 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
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무엇을 원했다.

그리고 또 말할 수 없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것은 시간이 흘렀
다라는 표현이 부정확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그런 '흐름'이었다.

나는 어느 행성에서 수많은 생을 되풀이 하였다. 나는 때론 무사
였고 때론 농부였고 때론 여자였고 때론 남자였다. 그리고 그 많
은 생을 되풀이하는 동안 나는 과거에 내가 황금의 날개를 가졌
던 시절의 기억은 까맣게, 아주 까맣게 잊어버렸다. 어쩌면 그것
은 영원히 잊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번 생에 드디어
내가 찾던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드디어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면 말이다.


  내가 그, 아니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어느 작은 출판사에서였다.
내가 쓴 글이 우연히 그 출판사 사장을 거쳐 그녀의 손에 들어갔고
그녀는 그 글을 읽은 순간 부터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 글을 쓴 사람을 너무나 만나보고 싶어했고 그리
하여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났을 때, 우리들이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사랑에 빠졌
고 그녀는 나의 스승이 되었다. 그녀는 어쩐 일인지 나보다 먼저
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있었고 그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고백컨데 나는,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서 그것을 깨달아야
만 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서야 우리가 함께 우주를 떠돌던 시절부
터 느꼈던 불만족의 실체를 알았고, 나는 드디어 내가 우주 그 자체
였음을, 아니 우주를 한 눈에 둘 수 있는 무엇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우주, 아니 신이라 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았을 때 그녀
는 자기가 안 것을 나에게 고백했다.

"나는 이제야 내가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뿐임을
알았어요."

나는 그 말을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생'이라 불리우는 사건은 우리에겐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있는 유일한 이유가 되어
이렇게 남아 있다. 우리는 이 생을 끝으로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우리는 드디어 진정 자유가 되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그대에게 들려주는 이유를 아는가? 그것은
그대 역시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생을 시작한 이래
로 끊임없는 생을 거듭하며 찾아온 그것을 그대 또한 이번 생에서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번에 그대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대를 영원토록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이
바로 그 때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내 말을 알아들을지 못 알아들
을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는 이것으로 그대에게 나의 뜻을 전한다..

***

아나우드슬라는 이후론 내가 아무리 듣길 원해도 결코 자신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말을 반신반의
하면서도 '반쪽의 믿음'을 움켜 잡으며 수행에 정진하려 애쓰
고 있다.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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