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oodern
2003. 6/21
여전히 아름다운 손이었다. 어떻게 그것을 잊을 수 있을까..
저 손가락의 희미한 흔적, 그 반지 자국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가
얼마전까지도 나를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헛된
망상을 품기도 한다. 내가 그랬듯이.
그러나 그것은 단지 손일 뿐이다. 문제는 그것이다. 그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아침에 배달되어 온 소포에
들어있다는 것. 방부제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 창백한 손.
마치 엄청난 힘으로 그대로 쥐어 뜯긴 듯이, 손목 부위는 너덜너덜
했다. 그 손을 떨리는 내 손이 잡는다. 차갑고 축축한 느낌. 예전의
그 느낌 그대로이다. 회한의 감정이 먼저 나를 엄습했다. 그리고
곧 나는 내가 경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늦은 만큼 나의
비통함은 무시무시했다. 한참동안 나는 비명을 멈출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즉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그래, 헤어진지
벌써 몇 해가 지났는걸..번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잖아?
하지만 이 손은..내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어떻게 몰라 볼 수
있겠는가.
소포에는 아무런 주소도 쓰여있지 않았다. 심지어 배달회사의
이름도, 연락처도 없었다. 딱, 사람의 손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그것. 누가 직접 가져다 놓은 것일까?
며칠 뒤, 그녀의 발이 든 소포를 받았다.
며칠씩이고 문에 달린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며 누가 그 소포를
가져오는지 기다렸다. 그러나 잠깐 한눈을 팔면 어느새
소포는 문 앞에 놓여있었다. 나중에는 요강을 가져다 놓고
대소변을 처리하며 지켰다. 몇 개의 요강이 꽉 차고, 주변에
빵 봉지, 우유곽, 음료수 캔 등이 너저분하게 쌓여갈 때까지
기다려봤지만, 역시 잠은 나를 찾아오고, 잡아채고 목을 조르다,
간신히 거기서 벗어나면 어김없이 소포는 문 앞에 놓여있었다.
몰래 설치한 카메라에는 아무 것도 찍혀있지 않고 말이다.
그러나 경찰에는 알리지 않았다...
이미 소포가 너무 많이 왔기 때문이다...<웃음>
..솔직히 고백한다. 그녀의 조각들을 정성들여 닦고
조심스레 맞춰나가면서 내가 느낀 감정을..오로지 눈물만은
아니었음을. 더 자세히 말하면 나는 희열을 느끼기까지 했다.
< ......한 표정으로>
‘그녀가 내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얼굴뿐이다. 나는 내 침대위에 맞춰 놓은 그녀를
바라본다. 아니 그녀들을..어느 순간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신체들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수 없는 추억들이
그 조각들을 덕지덕지 꿰어 맞추고 있다는 걸. 저기에 누워
있는 것들은 정말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또한 저기에 누워 있는 사람은 내가 사랑해 본 적이 없는
어떤 누군가이다.
누구의 얼굴일까?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몇 몇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그와 함께 일어나는 감정들을 변별할 수
없다. 도무지 어떤 사랑이 더 진실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옛사랑이라는 것은 거짓의 지평으로 사라져 버린 무엇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 모든 것이 동일하게 강렬한 것이 아닌가.
피로에 대한 동경. 나는 그녀 옆에 누워 눈을 감는다.
그리고 공포와 기대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기다린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