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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 공주님

2004.03.07 16:1203.07

15 공주님

미친 듯이 웃어대는 저 소녀의 이름은 제라미아 란시드 알 하쟈드이다. 나와 똑같은 얼굴에 성까지 같은 걸로 봐서는 필경 그 꼰대가 늘 말을 하고는 했던 꼰대의 “내 딸” 임에 틀림없다.

마음에 안 든다. 미인에다가 현자라고 칭송이 자자한 공주님. 똑똑해서 잘난 딸 년 자랑에 아들 기를 죽이기에 바쁘셨던 아버지.

        “안녕하세요? 처음 뵙습니다. 아바마마. 어마마마의 전갈입니다.”

라고 하면서 자신의 왼쪽 눈알을 척 하니 빼서 보여주는 자신의 딸을 보는 꼰대의 얼굴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눈물 콧물은 물론이요- 사례까지 -. 꼴불견이 따로 없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리 지내게 하다니. 미안하다. 다 내 죄다. 내 죄가 커.”

그러면서 딸년을 꽉 껴안고서 울기까지 시작하는 꼰대를 노려보던 난 내 주위의 동료라는 녀석들 역시 숙연한 표정으로 훌쩍이기 시작하려는 것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우리들은 현재 황국과 자유 국가의 중심지인 오아시스에 와 있었다.

        “그날 니 에미를 조금만 빌어먹을 내 자존심을 죽이고서 잡았더라면-. 네가 이리 되지는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동생이라는 공주님께서는 그 말이 뭐가 그리 재미가 있는지 키득키득 거리는 웃음을 참지 못 하고 있었다. 초상화라던가, 영상에서라던가, 하여간-. 황실의 공식 행사 석상에서 볼 수 있었던 공주는 매우 조용하고 그야말로 그림 속의 공주였다. 하지만 지금 저 켈켈 거리는 면상을 보아하니 내 오장육부가 다 뒤집어 지는 듯 하다.

        “꼴깝들 그만 떠시죠? 어이 공주마마. 오라버니를 위해서 물 한 통 정도는 길어올 수 있겠지? 그 비싼 기계 팔 써 먹어야 할 거 아냐? 돈 하나는 더럽게 쳐 발랐겠군. 그 몸에 말야.”

이런 내 독한 말에도 저 공주마마께서는 눈 하나 깜짝 안 하신다. 그 뿐이던가? 오히려 환하게 웃으면서 냉큼 내 명에 따르니 말이다. 카사란 녀석은 아까부터 그런 그녀가 마음에 드는 지 정신이 그녀의 행동거지마다 쏠려 있었다. 저 녀석도 참 엄한 녀석일세.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요염한 란사 누님을 마다하고 저런 반 기계인 미친 공주한테 정신을 뺏기다니. 그리고 보니 카사란 녀석 정탐하고 온답시고 혼자서 나갔을 때부터 요상했어.

        “죽고 싶으냐. 몸도 성치 않은 아이한테 뭘 시키는 게냐! 이 ** 자식아!”

어이 영감. 아니 꼰대. 그냥 차라리 카사란 녀석처럼 묵묵히 물 길어오기 도와주러 가란 말이외다. 저러니 여편네 하나 못 잡고 저 난리를 치지. 대체 저 자의 여편네이자 내 어미라는 여자의 면상 좀 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끝내주는 각선미라도 지녔다던가, 아니면 미모라도 지녔다면 또 모를...

        “제임스? 제이미. 나의 아들. 네가 제임스 맞느냐?”

난 황홀하리만큼  푹신한 가슴 사이에 얼굴을 묻혀서 아니 안겨서 버둥거렸다. 죽여준.. 아니 그게 아니라! 물을 길어왔는 지 내 뒤에서 자지라지는 듯한 웃음 소리를 내면서 이젠 아예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하는 공주란 년을 노려보면서 난 끝내주는 미인 아니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서 매몰차게 소리쳤다.

        “제임스라는 이름을 지닌 자는 맞지만. 이봐요. 아주머니. 당신 아들은 아니외다. 무엇보다도 우리 꼰대가 당신 같이 미인을 아내로 맞이할 재주가 전혀 없으리라고 단언하고- . 왜 때려! 암살까지 시키면서 친 아들 부려먹더니 이제는 폭력이냐~! 제길! **! 진짜 C8 성질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이런 ** 같은 세상 그냥 ** 같이 망해 버리라지! 전쟁이 나던지 말던지 난 모를 일이야. 애시 당초 당신들 둘만 안 싸우고 잘 살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잖아. 왜 싸우고 나서 jiral 들이냐고!”

고요해진 회담 장소인 오아시스 안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소음소리라고는 아예 배를 부여잡고 헉헉거리는 숨소리를 내면서 웃어대고 있는 공주 마마의 옥음뿐이었다. 그냥 웃는것도 아니고 이젠 벽 까지 쾅쾅 치고받으면서 웃고 있다.

        “내 말이 틀렸소? 당신들만 어른스럽게 안 싸우고 버텼다면 이런 일 없잖아? 앙? * 도 안 되는 것들이 우리 자유 국이라던가 황성 이라던가 안 노리고 안 덤비잖아. 야! 너희들! 왜 조용히 있는 거야? 앙? 평소에 니들 잘 하던 말이잖아!”

물론 웬수들은 매정하게도 내 시선과 손가락질에 야멸차게 시선을 회피했고- 그 결과 내게 돌아온 것은 꼰대의 무지막지한 목 조르기였다.

        “군기가 빠졌군. 이 네놈! 감히 지 어미에게!”

        “그 손! 놓지 못하시겠습니까? 황국의 후계자입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요. 제임스 란시드! 아들이 뭘 배우고 자랐는지는 이로서 자명한 일. 제 딸과 아들을 다 데려가겠습니다. 이의는 없으시겠지요?”

        “부..부인!”

당황했다. 꼰대가. 오오 이런 세상이 뒤집힐 일이 있나. 난 입을 벌린 채 사색이 되어가는 아버지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내 목을 조르던 손아귀의 힘은 이미 풀어진 지 오래였고, 아버지는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다른 이도 아닌 저 인간 말종인 아버지가 말이다.

        “잘못했소이다. 지금은 저 아이의 건강에  힘을 쓸 때가 아니요? 우리 그 동안 못 해 주었던 것에 힘을 씁시다.”

입을 벌리고서 멍청이 있던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내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는 공주님의 손길에 의해서였다. 여전히 웃고 있던 공주님의 붉은 눈동자들 중 한 눈동자에는 엷은 물기가 어려 있었다.

        “이걸로 충분해. 오라버니. 이걸로 충분해. 납치해 줘서 고마워. 별로 훌륭한 유괴범이라던가, 암살자는 아니었지만.”

나와 닮은 그녀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또 떠올랐다. 제길. 닮은 얼굴로 그렇게 배시시 웃어 보이면-. 속이 울렁거리면서 올라온 다 말이다.

        “두 분 왜 헤어지신 거래냐?”

오아시스로 오기 전 비룡의 위에서 물어본 내 질문에 공주님은 잠시 웃다가 가공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주셔서.”

뭔 헛소리야? 이렇게 난 대답했던 것 같다. 남편이 부인의 머리를 빗겨주는 것이 무어가 어떻다고? 하지만 사막의 황궁의 공주님이신 나의 여동생 제라미아는 키득거리면서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우리 외갓집에서는 남자가 여자의 머리를 빗겨주는 행동은 큰 반역죄야. 내가 네 머리 위에서 논다. 그런 의미라나? 당연히 어머니께서는 노발대발 하시지. 모르나 본데. 오라버니. 어머니 역시도 공주님이시라고. 그런 의미에서 난 제법 잘 큰 것 같지 않아? 아, 기대가 되고 있어. 어머니께서 오라버니를 어찌 교육 시키실 지. 유모가 오라버니의 말을 들었을 때 어찌 말할 지. 그리고-.”

제라미아 란시드 알 하쟈드-. 황궁의 공주마마는 환한 미소를 보이면서 큰 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어마마마 아니 어머니의 후궁들 사이에서 낳은 이복 남동생님들의 환영 인사가 기대가 되고 있어.”

절대로! 그 따위 황궁에 갈까 보냐! 내 다신 공주라는 직함을 가진 인종과는 상종을 안 할 테닷! 이런 결의를 다지고 있을 때, 제라미아 란시드 알 하쟈드 공주마마께서는 상냥하게 주의를 거듭했다.

        “참고로- 오라버니. 내 이복 남동생님들의 떨거지들의 납치 솜씨에 비하면 형편없다고.”

나 제임스 주니어 란시드 알 하쟈드, 만일 왕위를 잇게 된다면 (...) 그 놈의 빗 관습과 후궁들부터 다 폐지해 버릴 테다!


알 하쟈드 성황국 력 23 AD
란시드 자유국가와의 오랜 다툼을 종결하고 두 나라는 한 나라로 합쳐졌다. 전설적인 쌍둥이 황제와 여제 오누이는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릇 지도자란 직함을 가진 이들이면 필히 알아두어야 할 지도자들이다.

                                        - 위대한 지도자, 그들을 만나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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