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단편] 쌍둥이

2004.03.07 11:1503.07

23. 쌍둥이

        “시끄러우니까 아가리 닥쳐!”

꽤나 거친 소리로 빽- 하니 지르는 것을 보아하나 상당히 역정이 난 모양이다. 어쩐지 고소한 생각이 들어서 나지막하게 훗- 하고 웃어버렸다. 물론 그와 동시에 상당한 수준의 욕을 들어 먹어야 했지만 말이다.

        “저거 미친 거 아냐? 지금 상황이 어떤 줄 알긴 하는 건가? 제길. 어쩌다가 미친 년 죽이라는 명을 들어서는. 쳇. 젠장.”

그리고 계속되는 욕지거리. 매우 신선한 충격이다. 점잔빼는 그런 단어들만 듣다가 처음으로 듣는 저속한 삿된 말들. 유모가 지금 이 말을 들었다면 두 번 죽었을 일이다.

하지만 재미있지 않는가!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암살자라니-. 이 나라에는 확실히 쌍둥이는 길조라고 여겨져서 절대로 내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버리면 저주받는다는 그런 관습이 있으면 있었지. 똑같은 얼굴이라-. 난 궁의 어마마마께서 얼마나 기함을 하시고 계실지 상상이 가서 또 한번 배를 부여잡고 웃어대었다. 어쩐지 암살자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더라니. 진짜 하늘을 보면서 윗분께 여쭙고 싶다. 내 인생의 사소한 문제들도 전부 다 싸잡아서.

        “이..입 닥쳐! 저 년 단단히 돌아도 한참 돌았어. 미친 거 아냐? 지금 넌 납치당해서 가는 중이라고.”

        “하지만 웃긴 걸. 켈켈켈.”

그러면서 난 또 켈켈켈 거리면서 웃어대기 시작했고, 내 얼굴을 한 암살자 소년과 그의 동료로 추정되는 다른 청년들 두 명은 정말이지 오만가지 정이 떨어진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서 날 바라보았다.

        “왜 이 년 암살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 나라도 이런 년이 공주이자 왕위 후계자라고 있다면 돌아버릴 듯 해. 총 내놔. 지금 당장 없애버리겠어. 전쟁은 막겠다고 나 혼자서 이 지랄 떨어가면서 저 년 납치해서 중이거늘.”

내 얼굴을 한 암살자 소년 아니, 내 쌍둥이 오라버니라고 짐작이 되는 소년 그러니까 분명히 출생 카드에서 본 이름으로는-. 난 웃음을 여전히 입 끝에 물고서 질문했다.

        “이봐요-. 내 얼굴을 보고서도 내가 왜 웃는지 모르겠어요?”

질문에 되돌아 온 것은 오히려 악에 받친 듯한 소년 씨의 악다구니. 아니 그러니까 이름이-.

        “지랄 떨지 말고 아가리 닥쳐! 이 미친 년아! 너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쁘고 속이 메슥거려! 젠장. 우라질. 어쩐지 미갈 녀석 히죽거리는 것이 내 재수 없다고 생각은 했었지. 니들도 웃지 마! 입 닥치라고 했다!”

마지막의 입 닥치라는 경고는 서늘한 총의 감촉과 함께 내 입술 위에 와 닿았다. 똑같은 자색의 눈동자. 똑같은 이목구비. 다른 것이라고는 성별. 난 소리는 내지 않고서 그저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민했던 과제가 한꺼번에 해결이 되는데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여, 난 웃음을 멈추고서 이젠 조용하게,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방아쇠를 철컥 하니 당기던 소년은 내 이어지는 말에 잠시 동안 조용했다.

        “아바마마는 잘 계시지요? 태어나서 한번도 뵙지 못 했지만. 어마마마의 전갈입니다. 제이미 오라버니 아니, 제임스 주니어 란시드 알 하쟈드 오라버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던 비룡 위의 비행 수정안은 조용하지만 무시무시한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위를 메운 내 말에 대한 경청의 모범적인 자세에 난 더 나위 할 바 없이 만족스럽고 기쁜 마음에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그래도 날 죽이러 와 주신 분이 오라버니라서 기뻐요. 이제 전 아바마마를 뵐 수 있고, 제이미 오라버니께 정당한 왕위 계승권을 물려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딸년 노릇은 이만하면 충실하게 다 한 듯 합니다.”

창백하게 질린 그 얼굴은 아마도 놀라움 보다는 노여움에서 비롯된 것이겠지. 우리나라-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막의 황녀인 우리 어마마마와 자유 국가의 최고 사령부의 지도자인 제임스 미갈 란시드 장군과의 (그 당시는 소령이었었다.) 로맨스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리고 사소한 문제로 인해서 헤어진 두 사람의 팔 안에는 각각 아이가 한명씩 안겨져 있었다는 거 빼고는 다 알려진 이야기. 두 사람을 반반씩 닮은 아이를 키우면서 어마마마는 내가 당신을 닮기 보다는 //그 남자//를 닮았다는 것에 한탄에 한탄을 거듭했었다. 무어 이쯤 되면 대략 지긋지긋해 지기 시작할 것이다. 공주라던가, 후계자라던가, 지긋지긋하니까. 거기다가 덧붙여 말하자면 우리 어마마마 굉장한 미인이시다. 청혼이며 잠자리 습격 즉 보쌈은 사소하고도 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며-. 내 납치라던가 유괴는 식후에 나오는 망고 쥬스만큼 흔한 일이었으니까. 어마마마께서는 번번하게 무심한 어조로 말하고는 했었다.

        “그 남자를 쏙 빼닮은 성격인 주제에 운동 신경 하나는 왜 저리 굼뜰꼬.”

무어 왕궁 내의 내 위치는 상당히 높았다. 어머니의 후궁(...)들 사이에서 낳은 잘나 빠진 남동생님들의 함정이라던가, 암살 시도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으사, 지금까지도 태평하게 잘 살아온 공주님이니 말이다. 어마마마께서는 항상 //그 남자// 옆에 있을 당신을 닮았을 아들을 그리워 하셨다. 문득 문득 드는 생각이지만 만일 내가 아들이었더라면 조금은 나아졌을까. 그리고 내 몸의 반이 인간의 그것이었더라면- 윙- 하는 기계음이 감도는 그것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의 그것처럼 보이고 느껴지는 그것-.

        “날 죽여도 달라지는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마마마께서는 오라버니 당신을 줄곧 그리워 하셨으니까요. 왕국도- 물론 반 불수인 공주보다는 멀쩡한 왕자를 더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난 이리 말하면서 또 한번 짧지만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내 기계 안구를 빼어서 어마마마의 얼굴이 나타난 화면을 보는 오라버니의 얼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자유로워 질 수 있겠지. 물론 알고 있다. 왕궁의 호사스러움에 길들여진 주제에 나가서 제대로 살 수 없는 것을. 어마마마 성정에 왕궁을 나간다면-. 그야말로 그대로 끝. 내 반쪽 몸뚱아리의 유지비는 만만치 않으니까. 이런 주제에 아버지를 뵙는 것 또한 민폐이겠지. 아, 어마마마라면 좋아하실 지도 모르겠군. //그 남자//의 예산을 갉아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렸을 적부터 깨달은 것은. 내 반쪽 몸에 손상이 가면 그때야 말로 내 목숨이 끊어지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필사적이었다. 매일 매일 달리고 단련하고 도망치는 것과 상처 입지 않게 피하면서 공격하는 아니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서.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반쪽의 내 몸뚱아리는 상당히 날 똑똑하고 영민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현자이신 공주님이라는 엉터리 칭호가 붙긴 했지만.

        "그러니까- 돌아가시지요. 안 돌아가시고 지금 이대로 목적지로 가신다 하더라도. 어마마마께서 놓치실 줄 아십니까? 거기다가-.”

난 목에서 치솟아 오르는 뜨거운 덩어리를 간신히 삼키고 적색의 안구를 도로 박아 넣으면서 말을 이었다. 웃는 표정을 고수하면서 말이다.

        “아바마마와 상봉이라도 시켜드릴 생각은 없으시겠지요. 전쟁을 막기 위해서 가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당신 대신 십 칠년간 고생해 왔으니 이제 슬슬 돌려받아도 되지 않을까 싶거든. 오라버니? 난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흐흐흐 거리면서 웃어대기 시작했다. 애시 당초 잡힐 때 얌전히 잡혀서 몸에는 그다지 생채기가 많이 나지 않았다. 지금 돌아간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제...라미야? 그럼 네가?”

붉은 루비와도 같은 눈동자가 크게 뜨여진다. 확실히 적안은 황가의 상징이지만 불행히도 오라버니의 머리는 그다지 좋지 않은 듯 하다.

        “네. 그러니까 되돌아가요. 아바마마께도 연락을 드려서 황성과 자유 국가의 중간지점인 오아시스 정도가 나을 듯해요. 저 아바마마 얼굴을 한번도 뵙지 못해서 말이지요. 아무리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는 하나-. 너무 길어지면 그것 역시 좋지 않으니까요.”

그리 말하면서 난 마지막 한 마디를 더 날렸다. 그리고 내 말이 나오자마자 비룡의 날아가던 방향은 다시 날아오던 방향으로 되돌려 졌다.

        “거기다가 저 몸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말이지요. 아시겠지만-. 부부 싸움 하시고 나오시던 날에-, 사소한 추격전 때문에 제 몸의 반이 그때 다쳐서-. 저 몸의 반은 인간의 그것이 아니거든요. 이거 유지비 꽤나 비싸거든요. 그것 때문에, 아바마마의 자유국가에 대한 원조가 끊긴 거랍니다. 태어나서부터 불효를 했으니 아프면 더 크나큰 불효이겠지요.”

명석한 두뇌를 가지게 된 것은 좋았지만 그와 비례하게 너무나도 쉽게 내 몸에 들어간 비용에 대한 산출이라던가, 추리를 이것저것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조금 슬프다면 슬프다고 해야 할라나. 성질 나쁜 듯한 오라버니께서는 내 말에 발끈하다가도 주변 동료들에 의해서 저지를 당해서 한층 더 기분이 저조한 듯 했지만.

        “죄송해요. 제 웃음소리가 거슬렸다면-. 오라버니. 그게 말이지요. 기계와 인간의 몸이 조화를 이루려면 감정의 조절이 상당히 많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가끔 이렇게 발작을 하기도 한답니다. 물론 사소한 자극이 있어야 겠지만요.”

        “쳇- 재수가 없으려니 별 게 다. 뭘 야리고 지랄이야? 돌리면 될 거 아냐! 이미 되돌려서 가고 있는 주제에 왜 날 노려보는 거냐고! 젠장! 망할 영감탱이. 여자하고 아이는 보호가 우선 어쩌고 평소에는 망발을 하더니 진작 젊은 날에는 노망이라도 났나 보지. 망할 꼰대 같으니-.”

저 짜릿한 말투를 어마마마와 유모가 들어야 하는 건데-. 그녀들이 학수고대하던 훌륭한 왕자님 그리고 아드님이 이런 인물이라는 거 알면 어떨까. 난 그 생각에 다시 한번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다소 쉰 목소리이긴 했지만-. 무어 어떠랴-. 십 칠년만에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다. 그러니 되었지 않는가. 그걸로 족하다. 지금으로는 말이다.  
unica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317 단편 실제가 환상이 되는 때 루나 2006.10.18 0
316 단편 『도깨비 검사』 K.kun 2006.10.16 0
315 단편 『죽어야 하는가, 언제, 사람은』 K.kun 2006.10.16 0
314 단편 단순한 요청1 異衆燐 2006.10.13 0
313 단편 예언 이야기 wj 2006.10.07 0
312 단편 [엽편]작은 문학도의 이야기 - 꿈2 미소짓는독사 2006.10.01 0
311 단편 시간 정지자(Time Stopper ) Enigma 2006.09.22 0
310 단편 반역자(The Traitor) 나길글길 2006.09.18 0
309 단편 버추얼 월드(Virtual world) 나길글길 2006.09.05 0
308 단편 그것이 돌아왔다3 감상칼자 2006.08.27 0
307 단편 왕국의 방패, 민초의 검. 그리고 고약한 무장6 JustJun 2006.08.23 0
306 단편 아르실의 마녀 포가튼엘프 2006.08.17 0
305 단편 B급 망상극장 : 무뢰도 - 아미파 최후의 날8 異衆燐 2006.08.16 0
304 단편 영웅의 꿈.1 2006.08.13 0
303 단편 내가 그대를 부르고 있어요. 뤼세르 2006.07.25 0
302 단편 그녀가 원했던 것1 감상칼자 2006.07.22 0
301 단편 뱀파이어 앤솔러지 2차 수록작 발표 mirror 2006.05.17 0
300 단편 뱀파이어 앤솔러지 수록작 발표 mirror 2006.04.15 0
299 단편 아네트 異衆燐 2006.07.20 0
298 단편 어느 겨울 밤에 찾아온 손님 異衆燐 2006.07.20 0
Prev 1 ...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 1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