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Les yeux>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매끄럽고 단단한 바닥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그의 발. 시야 끝, 저편에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보였다.

‘언덕…….’

하얀 언덕. 그는 문득, 집에서 나서기 직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 어제 빠른 발자국이 언덕 아래에서 죽었대.

빠른 발자국은 같은 집에서 살던 동료였다. 얼굴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지만, 걷는 속도가 빠르고 걸음걸이에 힘이 있는 그를 두고, 같은 집에서 사는 동료들은 빠른 발자국이라고 불렀다. 더듬이가 길어서 ‘긴 더듬이’라고 불리던 그 역시, 빠른 발자국의 타고난 걸음걸이를 부러워했다. 남들보다 많은 양의 먹이를 물고도, 그는 언제나 특유의 걸음걸이로 저만치기어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빠른 발자국이 저 하얀 언덕 아래에서 죽었다. 긴 더듬이 자신이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빠른 발자국이 무언가 무거운 것에 눌려졌는지, 잔혹하게 짓이겨진 몰골로 하얀 언덕 아래에서 뒹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그 섬뜩함에 가느다란 허리가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쩔 수 없어. 오늘은 내가 먹을 것을 구해야 해.’

그는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고, 그의 발끝은 곧 딱딱한 지면에 닿았다. 하얀 언덕. 반들반들한 나무 언덕을 오르는 그의 뒤꿈치가 저릿하게 당겨왔다.

‘빠른 발자국의 시체를 보게 되면 어쩌지?’

무언지 알 수 없는 육중한 것에 눌려 짓이겨진 채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을 시체를 상상하자, 가늘가늘한 그의 다리는 바들바들 떨려왔다
언덕의 경사는 어느 순간부터 인가, 많이 완만해져 있었다.

‘이대로만 주욱 가면…….’

그는 이 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경사가 급한 내리막이 나온다는 사실 역시, 수차례에 걸친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괜스레 뒷목이 뻣뻣했다. 마치 누군가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양.

‘그 이야기 때문이야.’

속으로 짜증스럽게 내뱉은 후, 그는 우뚝 멈추어 섰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늘을 향해 걸어 올라가다 그 소망이 꺾여진 듯, 굽어진 내리막길과, 그 가파른 내리막을 두 번 지나야 비로소 발이 달을 수 있는 평지가 죽 이어져 있었다. 그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스르르 미끄러지듯, 그의 몸은 아래로 내려왔고, 이내 평평한 구릉에 닿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아까와 같은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하나 더 나올 터였다.

긴 더듬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숨이 차서일까? 그의 가슴 언저리가 숨쉴 때 마다 깔깔 했지만, 그런 속을 천천히 쓸어내리기라도 하듯이 숨을 고르자. 이내 부드러워졌다.  

사방은 고요했다.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는 침묵의 벽으로 둘러싸이기라도 한 듯, 아니면 모든 소리를 죄다 집어 삼키는 무언가가 있기라도 한 듯, 사위는 침묵을 지킨 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볍게 스치는 듯한 소리가 침묵의 벽을 깨뜨린 듯, 고요한 공기 속에 작은 파물을 일으켰다. 그는 우뚝 멈추어 섰다. 등 쪽이 시큰거릴 만큼 강렬한 시선. 그는 홱 돌아섰다.

‘이상한데?’

누군가가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의 주위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 어제 빠른 발자국이 언덕 아래에서 죽었대.

몸 안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를 떠나지 않는 두려운 마음에 반응이라도 하기 위해서 인지, 그의 맥박은 세차게 뛰고 있었다. 다리가 떨려왔다.

‘너무 신경 써서 그런 거야. 괜찮아. 빠른 발자국은, 그저 운이 없어서 그런 사고를 당했을 뿐이야. 괜찮아. 괜찮아.’

파르르, 힘없이 떨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불어 넣으며 발길을 떼었다. 곧 구릉의 끝이 보였다. 먼저의 것만큼이나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 평지는 저 아래에나 위치하고 있을 터였다. 그의 기억이 틀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제까지의 하얀 언덕과는 달리, 싯누런 대지가 뿌윰한 광택을 머금고 저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그는 내리막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힘을 주어 다리를 재빠르게 움직였지만, 그는 이내 미끄러졌고,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떨어져 내린 거의 몸은 곧 노란 평지의 끝자락에 닿았다. 미끈한 바닥.

—— 어제 빠른 발자국이 언덕 아래에서 죽었대.

그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빠른 발자국이 죽었던 곳 역시 이곳이 아닌가!

짓이겨진 모습으로 언덕 아래를 굴러다녔을 빠른 발자국의 시체를 떠올리자, 다시금 다리가 떨려왔다. 그는 고개를 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밤사이 다른 동료들이 치웠는지, 다행스럽게도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매끄러운 바닥 위를 미끄러지듯 걸었다. 어디선가부터 실려와 미미하게 그의 코를 자극하는 기분 좋은 내음.

‘달콤해’

달콤한 냄새. 그를 비롯한 동료들 모두가 좋아하는 그런 향.

여기 가지 걸어오느라 지친 다리는 무거웠지만, 그는 열심히 그의 다리를 움직였다. 그의 시선 끝에 보이는 하얀 덩어리.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어.’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위험한 곳을 무사히 지나는 자신에 대해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며, 그는 열심히 매끄러운 노란 바닥을 가로질러 하얀 덩어리를 향해 다가갔다.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그의 눈에는 덩어리가 조금씩 불어나는 것처럼 비쳤다.

‘이제 조금만 더…….’

그 때였다. 갑자기 그의 눈앞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거대한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뭐, 뭐지?’

그는 불안한 마음에 두 눈을 굴렸다.

‘어?’

하얀 덩어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 달콤한 하얀 덩어리가. 하지만 그 내음은 가까운 곳에서 계속해서 풍겨오고 있었고, 그 사실 만으로도 덩어리가 아직 이 근처에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어, 어디 있지?’

드는 하얀 덩어리를 찾아 주위를 맴돌며 불안한 듯, 커다란 두 눈을 굴렸다.

‘아, 저기 있다.’

달콤한 하얀 덩어리는 , 그의 오른쪽 옆으로 옮겨져 있었다. 어서 물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그 쪽으로 달려갔다.

‘아……!’

또다시 그의 얼굴 위로 드리워지는 검은 그림자. 두려움을 느낀 그는, 고개를 돌렸다.

‘이럴 수가……!’

눈을 뜬 그는 눈앞에 펼쳐진, 믿기지 않는 광경에 다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쿵쿵 울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그는 다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흰 덩어리는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내가 이상해 진 걸까?’

아무래도 그 거대한 무언가가 흰 덩어리를 혼자 차지하기 위해 빼앗으려는 듯싶었다. 그것이 다시 나타나기 전에 달콤한 그것을 먼저 얻어야 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그것이 필요했다. 긴 더듬이는 다시 덩어리를 향해 다가갔다. 커다란 눈을 굴리며 혹시나 그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았는지를 살폈다. 그 그림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그 덩어리의 앞에 도달했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달콤한 내음. 그는 그것을 물어서 앞다리로 단단하게 안아 올렸다.

무거웠다. 바닥이 강한 흡인력으로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끊임없이 그의 발꿈치를 잡아당기고 있는 듯, 하얀 덩어리를 안아 올린 그의 걸음은 무거운 템포로 그림자와 마주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다리가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그의 마음만은 푼푼했다. 달콤한 향기가 기분 좋게 코끝을 간질였다. 얼마나 그렇게 부지런히 걸었던 걸까, 그의 커다란 두 눈에는 저 멀리에 하얀 언덕이 보였다. 무거워 보이는, 하지만 언제나 아무런 감정도 머금지 않고서 그를 보고 있는 하얀 언덕의 무표정한 얼굴.

—— 어제 빠른 발자국이 언덕 아래에서 죽었대.

다시금 떠오른 그의 죽음 소식에, 긴 더듬이의 다리가 힘을 잃고 비틀거렸지만, 그는 그 가느다란 다리에 다시금 힘을 불어 넣으며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괜찮아. 이제 다 왔는걸. 이걸 갖고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스멀스멀. 괜스레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그 이야기 때문이야! 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얘기해야지!’

꺼림칙한 기분을 애써 떨쳐내기 위해, 그는 도리질 하듯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나 그 이상한 느낌은 도무지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그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 커다란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하얀 언덕을 항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위협적인 무언가가 그의 앞에 나타나지는 않을까, 경계하면서.

새하얀 언덕으로 가까이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다리는 저릿해오고 발걸음은 무겁게 끌렸다. 이제 하얀 언덕은 그의 눈동자 가득, 그 거대한 몸뚱이를 채워 넣고 있었다. 그는 무거운 다리를 열심히 놀리며, 언덕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갔다.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전방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거대하고 긴 무언가. 그는 질겁하여 옆으로 몸을 굴렸다. 다행이도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고, 흰 덩어리도 그의 품에 있었다. 긴 더듬이는 놀란 심장을 누르며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려 주위를 살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 것도.

머리가 심장과 함께 헐떡이는 듯, 눈앞이 저릿저릿 했다. 놀란 탓이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여기만 지나가며 집이잖아. 다시는 안 나오면 돼. 다시는…….’

그는 공포로 얼룩진 공기를 폐에서 끄집어내고 새것으로 채워 넣었다.
이제 하얀 언덕은 눈앞에 있었다.

드르륵……! 미미한 진동이 그의 뒤쪽에서부터 전해져왔고,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길쭉하고 그 끝이 뾰족한 무언가가 그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 전에도 그를 스쳤던 그것이었다. 그 길쭉한 괴물은 방향을 바꿔, 다시 그에게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드르르륵……! 긴 더듬이는 다가오는 괴물에게서 달아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후욱. 그것이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그 살기에 좇기는 심장은 또다시 헐떡이기 시작했고, 다리는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괴물은 방향을 돌려 다시금 그를 향해 돌진했다. 집요한 추격. 그는 공포에 질려 달렸다. 머릿속은 쿵쿵 울렸고 시야는 어지럽게 뒤엉켰다.

드르륵. 바닥에서 쌔근거리는 진동. 그는 또다시 몸을 돌렸고, 다음 순간 바닥을 구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리…….’

다리가 아팠다. 그는 주뼛주뼛 고개를 돌려 그의 다리를 향했다.

‘하아……!’

짧고 격한 호흡으로 토해진 무성의 절규. 그는 자신의 다리를 보는 순간, 전신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다리는 비정상적인 각도로 구부러져 있었다.

‘이러다 정말 죽을지도 몰라. 어서. 어서. 빠져나가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는 몸을 일으켰다. 하얗고 달콤한 덩어리는 저쪽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죽는다!’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소름. 달짝지근한 덩어리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칫하다 그 자신이 죽어버릴 지도 몰랐다.

그는 매끄러운 노란 대지를 절뚝이며 달렸다. 내달리는 격통 탓에 꺾여져 너덜거리는 다리에는 감각이 없었지만, 어서 언덕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곳만이 안전한 곳이 될 터였다.

스멀스멀. 이번에는 허리 뒤쪽이 가려웠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갑자기 그의 눈앞이 어두워졌다. 그는 그 커다란 눈을 들어 정면을 향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하얀 언덕.

‘뒤다!’

그는 몸을 돌렸다. 거대한 무언가가 그의 뒤를 가로막듯이 서 있었다.

‘날 죽이려고 해.’

머리 속의 뇌가 빙글빙글 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절뚝이는 걸음 탓에, 발끝이 그대로 바닥 위를 미끄러질 듯, 위태로웠다. 그 기다란 괴물이 몸을 뒤척이는 듯 하더니…….

‘아……!’

그의 의식은 불에 데인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한 순간에 그것은 뾰족한 끝으로 그의 허리 위를 가로질렀다.

그는 언덕을 향해 달렸다. 뒤틀린 허리와 고통에 절여진 몸은 그 세포하나하나가 제각각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뒷다리는 허리와 함께 비틀어져 헛발질을 해댔다.

긴 더듬이는 거의 구르다시피 하여 언덕에 도달했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기 위해 여섯 개의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수차례 떨어지기를 반복한 끝에, 그는 가파른 두개의 오르막을 지날 수 있었고, 완만한 경사를 타고 데굴데굴, 내리막을 굴러 내려갈 수 있었다.

허리가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마침내 언덕을 지나왔다는 안도감에, 놀란 가슴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가파른 호흡을 천천히 고르며, 그는 그렇게 잠시 허 있었다. 심장은 세차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고, 긴장이 풀린 탓인지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언덕 아래 하얀 바닥에 엎드렸고, 그의 그림자는 그와 배를 맞대고 함께 누웠다.

‘다행이야. 이렇게 살아서.’

안도감에 취해, 두려움은 희뿌옇게 바래가기 시작했다. 머리가 깨어질 것만 같던 극심한 두통도, 세찬 심장의 고동도. 그 때였다. 어둠이 드리워지고, 곧이어 그의 몸 양쪽에서 압력이 지그시 가해져왔다.

‘아, 안돼……!’

다시금 찾아온 공포로 흐려진 탁한 신음을 흘리며, 그는 힘이 빠진 무릎에 다시금 힘을 밀어 넣으려 했다.

‘달려야 해.’

그의 몸을 눌러대는 것으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고, 그의 본능이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억지로 몸을 빼나고자 바둥거릴 때마다, 허리가 끊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몸이 하얀 바닥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이어지는 현기증. 머리는 그대로 있었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뇌가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서서히 점멸 되어 가는 시선 저 편에는, 그가 조금 전 지나 온 하얀 언덕이 무덤덤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흔들리는 시야. 터져나갈 듯이 헐떡대는 심장. 그는 절규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 그가 발견한 것은, 떨어지고 있는 자신과, 전신에 부딪히는 딱딱한 바닥이었다.

노란 대지. 다시금 그의 온 몸을 훑고 지나가는 소름. 묵직한 무언가에 가슴을 두들겨 맞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수축, 그리고 이완. 심장은 더욱 크게 줄어들었다, 부풀어올랐다를 반복했다. 가늘고 뾰족한 무언가가 그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또다시 눈앞을 스치는 가늘고 뾰족한 무언가. 그는 그것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빙글빙글. 그것은 천천히 그의 주위에서 원을 그리듯 돌고 있었다. 빙글빙글. 경계하듯 눈을 떼지 않고 그것을 따라 제자리에서 맴돌던 그는 문득, 어지러움을 느꼈다. 주춤. 그것은 어느 새 빠른 속고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따라 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천천히 원을 좁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 어제 빠른 발자국이 언덕 아래에서 죽었대.

어제 빠른 발자국이 언덕 아래에서 죽었대. 어제 빠른 발자국이 언덕 아래에서 죽었대. 어제 빠른 발자국이 언덕 아래에서 죽었대. 어제 빠른발자국이 언덕아래에서 죽었대. 어제빠른발자국이 언덕아래에서 죽었대. 어제빠른발자국이 언덕아래에서죽었대. 어제빠른발자국이 언덕아래에서죽었대.

‘아악!’

다시 한번 허리에서 끔찍한 아픔이 느껴졌고, 온 몸으로 연결된 신경을 타고 번져갔다. 고통에 겨워 몸부림치는 순간, 비싯비싯. 무언가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이 그의 가느다란 허리 속으로 그 예리한 끝을 정확히 박아 넣었다. 그의 부위를 빙빙 돌던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비싯비싯. 이물질이 그의 허리를 관통해 들어오자, 섬뜩한 통증이 온 몸을 뒤틀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혈관. 세찬 혈류.

고통 속에서 그는 허우적허우적 기어갔다. 허리 위로 타들어가는 극심한 통증 탓인지, 다른 부위에서는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땅을 딛고 있을 뒷다리에서 조차. 그저 무거울 뿐이었다.

뜻대로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지만, 그는 정신없이 이리저리 몸을 굴렸다. 그것이 또다시 덮쳐오기 전에, 어서 몸을 숨길 곳을 찾아야 했다.

복잡하게 뒤엉킨 시야의 끝에 검붉은 시체 조각이 보였다. 허리 부분부터 무참히 뜯겨진. 아직도 신경만이 살아서 파들파들, 다리를 떨고 있는 다리 한 쪽은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여 있었다.

그제야 그는 아무런 감각 없이 무겁게만 느껴졌던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두려움에 젖어 그만 초점을 잃어버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리고 그의 의식은 서서히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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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자정을 넘겨 버렸습니다.
아무리 비키라고 해도
하루 종일 컴퓨터를 차지하고 있던 오라버니께서
10분만, 10분만 하면서 안 비키다가
처음 비키라고 한지 2시간 조금 넘은 "방금 전"에야 비켰거든요.(오빠미워!!!)
자동으로 이벤트에서 탈락되어도 어쩔 수 없죠 뭐.(훌쩍)

five of pentacles이랍니다.
"어려운 길을 통과하는 인내" 인데,
글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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