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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벤트용-Grow Up Story

2004.02.09 20:4202.09

<<이벤트용-Grow Up Story>>
0. ……Start.

「진정한 팀워크는 서로에 대한 신뢰감에서 비롯된다. …(중략)…보통 팀을 새로 짠다면 서로 모르는 상태이기가 쉬운데, 이런 경우에는…」
똑똑. 철컥.
"…도련님. 출판사 분들이 오셨습니다."
집사 노인의 말에,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던 소년은 의아하다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래요? 이상하네…마감일은 아직 며칠 남았는데. 알겠어요. 나갈게요. …아참, 어디 출판사 분이신데요?"
"……저, 그것이……"

"'그레이 울프(Gray Wolf)'?"
소년은 출판사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건넨 명함에 적힌 출판사의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벌서 몇 년 째 책을 내고 있는 유명 작가인 소년이지만, 그레이 울프라는 출판사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하면 실례가 될까 하여 말은 못 하고 있었다. 출판사에서 왔다는 두 사람 중 네모난 안경에 회색의 긴 코트를 입은 사내는 그런 소년을 조용히 관찰했다. 옅은 갈색의 금발, 진 초록색의 눈동자, 약간은 왜소하다 싶은 체구. 정말 '그'일까-라는 의심은 오른손 중지의 굳은살을 보자마자 풀렸다. 오른손잡이가 펜을 자주 그리고 오래 잡으면 당연히 오른손 중지와 펜이 닿는 곳엔 굳은살이 박히기 마련이다. 그는 싱긋 웃으며 소년에게 말했다.
"처음 들어보셨나요?"
"…아! 저, 그게……"
"아아, 괜찮습니다. 못 들어보신 게 당연해요. 저희 출판사의 새 이름이 그레이 울프거든요. 전에는 '에데나(Edena)'라고 불렸었죠. 지금의 출자자 분들을 만나 이름을 바꿨답니다."
에데나 출판사였구나.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이 원고를 보낸 적은 없었지만, 폐사 위기에 처해있던 출판사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새로운 출자자를 찾았나 보군. 다행이야-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실례지만, 애버릿.W.크렌디아즈(Aeverit.W.Crendiaz)씨 본인이십니까?"
"아니에요. 전 그 분의 조카 이베린.Z.크렌디아즈(Iverin.Z.Crendiaz)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제 이름은 윌카스트 미렌다(Willcast Mirenda)이고 여기 이 친구는 가시스 웰터(Gasis Wellter)라고 합니다. 애버릿(Aeverit)씨는 지금 출타 중이십니까?"
"아니요. …모르세요?"
애버릿.W.크렌디아즈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에겐 심각한 대인 공포증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원고를 출판사에 건네주거나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맺을 때에도 그의 대리인이 출판사 측과 만나 그의 전언을 전하고 출판사 측의 요구 사항을 들었으며 출판 계약서에도 대리인이 서명을 했다. 그리고 그의 대리인이 그의 유일한 혈육이자 조카인 이베린.Z.크렌디아즈, 즉 소년이었다.
"…하하. 실은 말이죠, 전 역사 소설 담당인데 오늘 이 쪽 담당이 결근을 해서 말입니다. 아, 그리고 이 친구는- 신입이고요. 또…사실, 저희 출판사가 그 동안 이 것 저 것 힘들었잖습니까."
"아, 네. 그러셨군요. 그런데, 그레이 울프에서 어쩐 일로 숙부님을 찾으시는 지요?"
안경을 쓴 사내가 말 할 듯 말 듯 우물쭈물하자 소년은 드디어 집사가 따라 준 차에 생각이 미쳤다. 식기 전에 마시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 소년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내려놓았다. 맛을 음미하던 소년은 속으로 매우 놀랐다. 1에펜(Epen)-즉 금화 한 개에 찻잎 30g밖에 안 되는, 비싼 차였기 때문이었다.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3년 전 사고 나서 처음 달여 마신 후로는 꺼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차를 집사가 내왔다는 사실에 소년은 그가 왜 이런 일을 한 건지 궁금해졌다. 아, 그러고 보니-이 차는 이름부터가 굉장히 고급스러웠던 것 같은데…뭐더라?
"…저기 집사님, 이 차 이름이……"
말을 다 마치지도 못했는데, 소년은 그대로 쓰러졌다. 2인용 소파에 늘어져 기댄 소년을 보며 집사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어느 새 출판사에서 왔다는 두 사람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집사는 다시 눈을 감았다.

1. Introduction.
"……으음…."
"정신이 드니?"
소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맨 처음 시야에 들어온 건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와 담갈색의 거친 천이었다. 소년은 애써 일어나려고 했으나 갑자기 바닥에 진동이 오는 바람에 다시 눕게 되었다. 다행히도 머리 밑에는 두툼한 천이 있어 바닥과 머리가 직접 닿는 것을 막아 주고 있었다. 바닥을 더듬으니 나무의 결이 느껴졌다. 둥근 금속 뼈대 위에 딱 붙어 펼쳐진 담갈색의 천, 계속 이어지는 진동, 그리고 나무로 된 바닥-설마, 여기는.
"윌(Will)! 좀 잘 못 몰아? 애 깼잖아! 시스(Sis)! 물통 이리 내!"
"세즈(Sez) 누님! 누님은 마차 모는 게,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아십니까아-!"
"여기 있수 누님."
소년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마차를 몰고 있는 사람은 윌카스트 미렌다였고 검은머리의 여자에게 물통을 던지는 사람은 가시스 웰터였다. 둘 다 출판사 직원이 아니었던 건가? 그리고 마차가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어디론가 이동 중이라는 건데 왜 자신까지 이동해야 하는 건지-이런 생각을 하며 기억을 더듬던 소년은 차를 마신 후 기억이 끊겼다는 걸 기억해 냈다. 마침 '세즈 누님'이라 불린 사람이 소년의 상체를 일으켜 입에 물통을 가져다 대어 주었다. 소년은 물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기고 그녀에게 물었다.
"저, 왜 제가 여기 있는지 혹시 아세요?"
그녀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소년을 마차 벽에 기대어 앉힌 뒤 입을 열었다.
"그레이 울프라고 들어 봤니?"
"네. 출판사잖아요."
"엥?"
소년의 대답에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윌카스트(Willcast)와 가시스(Gasis)는 크게 웃었다. 한참을 웃던 가시스는 그러나 그녀의 어서 설명해 보라는, 반 협박이 담긴 눈빛을 받고 찔끔해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말이우 누님, 우리가 그 댁에 들어가기 위해 출판사에서 나온 사람인 것처럼 연극을 했었다우. 그런데 출판사 이름을 마땅히 지을 게 없고, 또 윌 저 녀석 장난기가 발동하고 그래서 명함에 그레이 울프라고 인쇄해서 내밀었었수."
"호오? 용케 안 들켰군 그래? 아마 말하는 건 윌이 다 했겠지? 넌 말하다 보면 사투리가 튀어나오잖아. …아, 그래 얘야, 너를 잊으면 안 되지. 그레이 울프는 출판사 따위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의 이름이란다. 우린 여행자 파티를 이루고 있어. 저기 마차 몰고 있는 녀석은 윌카스트 미렌다. 그냥 윌이라고 부르렴. 올해로 29세- 노총각 다 되어 가는 녀석이고, 저기 저 녀석은 가시스 웰터. 시스라고 해도 돼. 윌 녀석이랑 동갑이지. 난 세즈루 아카네(Sezru Acane)야. 숙녀의 나이는 비밀이란 거, 알지? 너는?"
"아, 네. 전 이베린.Z.크렌디아즈에요. 올해로 열 아홉 살이고요. 저기 그런데요, 왜 제가 여기 있는 거에요?"
그러나 소년은 자신의 질문이 혹시 예의에 어긋났거나 아니면 물어서는 안 되는 걸 물은 건지 고민해야 했다. 소년의 말을 들은 세 사람 중 마차 안의 두 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소년을 똑바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낯선 환경과 어디론가 이동 중이라는 불안감이 소년의 심리 상태를 불안정하게 하고 있던 차에 그들의 그런 행동은 애써 미소지으며 태연한 모습을 보이던 소년을 무너뜨렸다.
"너!"
갑자기 그녀- 세즈루(Sezru)가 소년의 양어깨를 꼭 붙잡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소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자 소년은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눈도 감고 고개도 돌리고 싶었지만 두려움에 굳어 버린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세즈루는 그런 소년의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움직였다.
"정말 열 아홉이야?"
"에?"
"나이 안 높여도 돼. 솔직히 말해 보렴. 열 넷? 열 다섯? 혹시 너무 적니? 열…일곱?"
"아, 아니요…열 아홉 살 맞는데요. 으앗!"
세즈루는 소년의 볼에 자신의 볼을 부비며 '귀여워!'를 연발했다. 이런 애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소년이었지만 적어도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약간은 경직된 상태가 남아 있던 소년을 발견한 세즈루는 다시 싱긋 미소지으며 소년의 가느다란 금발을 쓰다듬었다.
"…우린 너의 집사 할아버지에게 의뢰를 받았어."
"의…뢰요?"
"그래. 네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여행 좀 시켜 달라고 하시더구나. 분명 자신이 말하면 듣지 않을 거라고. 마침 여행 경비도 바닥난 판이어서 우린 그 의뢰를 받아들였어. 뭐, 개인적인 흥미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야. 우리도 애버릿(Aeverit)씨의 책을 한 권 가지고 있거든. <<팀워크의 중요성>>이었던가? 집사 할아버지께선 애버릿씨의 이름으로 나온 모든 책이 실은 네가 쓴 것이라고 했어. 학교나 다닌 나이에 그런 책들을 써내다니-정말 대단하구나."
소년은 자신을 생각해 주는 집사의 행동에 고마워하면서도 두려웠다. 이번엔 또 어떤 상처를 안고 돌아가게 될지- 생각할수록 아팠다. 어린 아이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려 할 때 생기는 설레임과 호기심 따위는 소년에게선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다만 익숙하지 못한 검을 다룬 후 남는 자상처럼 흉터 남은 상처만이 자리할 뿐-너무 깊게 베여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이따금씩 아파 오는…그 상처.
"……어, 어어…"
"세즈 누님, 왜 애를 울리고 그러시우."
"아, 아냐! 얘, 얘, 괜찮니? 응? 갑자기 왜 그래?"
쉽게 낫지 못하는 상처처럼, 쉽게 그치지 않는 눈물.

2. Be -ing.
"베르(Ver), 뭐 하나만 물어 봐도 돼?"
마차 안에서 점심 식사로 건네진 빵을 조금씩 씹어 먹고 있던 소년은 자신에게 물어 오는 세즈루를 보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같이 여행한 지 열흘하고도 닷새-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나 조금은 더듬대던 말은 사라지고 애칭까지 허락할 정도로 많이 나아진 상태였지만 아직 멀었다고 세즈루는 생각했다. 여전히 소년은 먼저 말을 걸지도 마차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겠다고 세즈루는 다짐했다. 이번 여행은 약 1년이 걸릴 긴 여행이고, 무어든 서두르고 억지로 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안 되는 법이니 천천히 조금씩 나아가도 괜찮을 거라고 그녀는 판단했다.
"……아, 미안. 널 기다리게 했구나. 음, 베르, 저번에 학교를 조금 일찍이 졸업했다고 했잖니. 그럼 학교에서의 경험과 책에서 읽은 거, 그리고 네 생각만 가지고 책을 쓰고 있는 거야?"
끄덕.
"흐음. 그런데 용케 탁상공론이 되지 않았네? 굉장하구나 너. …그런데, 베르. 넌 우리랑 약 1년을 같이 생활해야 한다는 거, 알지?"
끄덕.
"그럼 조금씩이라도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 주길 바래.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네가 우리와 친해지지 않으려 한다는 건 알아. 물론- 소설 속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게 거부하는데 쉽게 열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야. 하지만 기다릴게. 언젠가는 너에 대해 얘기해 줄 거지? 그 날이 오면, 기브 앤 테이크로써 우리 얘기도 털어놓을 걸 약속할 게. 알겠지? 그거 말해 주려고 들어 왔어. 이 참! 내일 낮쯤엔 도시에 들어가서 하루 쉬고 다시 길을 떠날 거니까 가방 미리 챙겨 놔. 그럼!"
그녀가 나가자 소년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다시 빵을 먹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소식을 해 온 소년이었기에 어른의 한 뼘보다 조금 더 큰 빵은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는 세즈루도 부담스러웠다. 조금은 서먹하게 대해 주는 윌카스트와 가시스가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친절함은-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의 것이다. 더 이상 무언가를 뺏기기만 하고 배신감으로 얼룩진 상처만을 얻고 싶지는 않았다. 절대로-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다시는-."
소년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매우 작았다. 하지만 단호했다. 그 것은 단순한 중얼거림이 아닌 결의였다. 마차 밖에서 조용히 서 있던 세즈루는 그 목소리를, 그 말을 머리 속 깊은 곳에 숨겨 두었다.

아츠렌 미트호크(Acren Mithocc)는 한 마차에서 내리는 소년을 보고 퍼뜩 어디선가 본 적이 있던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연하늘색 바탕에 가느다란 흰색 세로줄 무늬의 반팔 와이셔츠, 무릎을 덮는 회색 반바지, 빨간 가로줄이 하나 그려진 흰 양말, 그리고 청회색의 넥타이와 검정 구두.
-진정한 팀워크는, 우리가 서로를 믿을 때부터 시작돼.
가느다란 옅은 갈색의 금발, 눈물마저 초록빛으로 비출 것 같은 진초록색 눈동자.
-…왜, 왜 그래-! 그러지 마-! 아츠(Ach)-!!
아하. 그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비열한 미소를 입가에 슬쩍 걸었다. 그 왜소해 보이는 소년이 누군지 기억해 낸 것이다. 그의 손에서 처절하게 울부짖던 작은 새-그 새를 손에 꼭 쥐었을 때의 느낌을 그는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아츠렌(Achren)은 뒤따르던 무리에게 눈짓을 한 번 주고 그들과 같이 소년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그들을 본 사람들은 서둘러 주변으로 흩어졌다. 그들의 악명은 그 마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흩어진 사람들은 그들의 이번 타겟인 듯한 순진하게 생긴 어린 소년에게 진심으로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여어-, 이게 누구 신가?"
마차를 주차장에 세워 두려 잠시 헤어진 일행을 기다리던 소년은 익숙한 목소리에 놀랐다. 그 목소리만으로도 소년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크게 뜨여진 진초록색의 눈에는 이미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조그맣게 열린 입에서는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아, 아츠…?"
"호오, 이 몸의 이름을 기억해 주다니, 참으로 기쁘군 그래. 오랜만이야- 이베린(Iverin)군. 하핫!"
그는 정말 기쁜 듯 그렇게 웃어 제겼다. 그 웃음소리마저도 소년의 기억 속에 있는 그대로였다. 결국 소년은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자 아츠렌은 그를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천천히 걸어왔다. 저벅저벅하는 소리는 소년을 더욱 두렵게 했다. 그가 소년에게 거의 다 다가왔을 때였다.
"어머, 베르! 어디 아프니? 이 땀 좀 봐!"
마침 나온 세즈루는 주저앉은 소년을 가시스에게 업히고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그의 무리들은 벙찐 표정을 하고 있거나 마구 소리를 지르며 각자의 무기를 빼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아이의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여름의 햇살은 무심하게 빛났다.

3. Conspracy.
"…누님. 아까 그 자식들 말입니다, 뭔가 있어 보이지 않던가요?"
"……기다리기로 했잖니."
세즈루가 소년의 땀을 닦아주며 조용히 말했다. 아픈 기색은 전혀 없었는데-불량배의 리더인 듯한 사람을 만나자 마자 이런 상태다. 소년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알 수 있을 정도지만 그녀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년의 입을 통해 나오기 전엔 '아직'이다. 기다리겠다고 말한 지 겨우 하루였다. 기다림은 익숙했다. 괜히 30년 넘게 살아온 것이 아니다. 하지만-지금의 환경은 별로 좋지 않았다. 세즈루는 깊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시스, 방 빼. 윌, 마차 꺼내 와. 여길 뜬다."
"예엣."
같이 여행한지 십 여 년. 그녀의 예감은 이제 놀라운 경지로까지 발전해 가고 있었다. 둘은 신속히 나갔고, 그녀는 땀에 절은 소년의 옷을 갈아 입혔다. 목욕시킬 시간이 없기에 젖은 수건으로 몸을 한 번 닦아주기만 해야 했다. 곧이어 가시스가 올라와 소년을 업고 내려갔다. 세즈루는 짐을 모두 들고 빠른 속도로 그러나 조용히 내려갔다. 하지만 불은 그냥 커 두고 커튼도 그냥 쳐 둔 채 내려갔다. 대신 램프에 담긴 기름의 대부분을 기름통에 따라 두었는데, 약 5분 여 뒷면 꺼질 정도의 기름만이 램프에 남아 사그라들고 있었다.
마차는 처음엔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나 일행이 묵던, 이미 불이 꺼진 방의 커튼이 학 젖혀지는 것을 확인한 세즈루가 윌카스트에게 신호를 보내자마자 마차는 숲에 난 소로를 따라 미친 듯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가시스는 셋의 무기를 점검했다.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숲을 빠져나오니 평원이 나왔다. 초원이 아닌 메마른 황야였는데, 누군가가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게 분명한 굵고 큰 통나무가 마차가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거리는 꽤 떨어져 있었지만 속도가 너무 붙은 상태라 방향을 바꾸면 말과 마차가 분리될 위험이 있었다. 결국 윌카스트는 마차를 세워야 했다.
"…뭐야 윌! 무슨 일이야?"
"……세즈 누님, 장애물입니다. 시스! 무기 줘!"
윌카스트의 손에 무기가 쥐여지자마자, 그의 목에는 새하얀 검신이 대어졌다. 어느 새 마차를 둘러싼 무리들은 모두 각양각색의 무기들을 손에 들고 있었다. 분위기를 파악한 윌카스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무기를 마차 지붕 위로 던져 올렸다. 검을 들고 있던 자는 조금 놀랐지만, 어쨌든 무기가 그의 손에 없음을 확인했으므로 안심했다.
"…원하는 건?"
"알면 넘겨주겠나?"
통나무 위에 서 있던 아츠렌이 특유의 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윌카스트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들어 보고. 원하는 건?"
"작은 새. 내 장난감. 그 녀석을 줘. 곱게 넘긴다면-너희의 몸에는 손대지 않겠다."
"…미안하지만, 우린 새는 키우지 않는데다가 장난감에서는 손 뗀지 몇 십 년인데?"
"호오, 이런 고도의 수사법을 이해하지 못하다니-정말 여행자들은 무식해. 그럼 이 몸이 친절히 설명해 주지. ……내 작은 새는 말이지, 머리카락은 갈색의 금발이고 눈은 진초록색이야. 나이에 안 맞게 굉장히 작지. 그리고 이름은- 이베린이라고 해. 참고로, 쓸데없는 말을 주절거리…곤했지만 나에게 된통 혼난 뒤부턴 그 주절거리는 버릇을 고쳤지. 아마 요즘은 안 그럴 걸? 자, 이제 누군지 알겠지?"
"으음. 그래, 누군지 알 것 같군. 그래서 말인데…,"
갑자기 윌카스트의 목을 검으로 위협하고 있던 사내가 쓰러졌다. 윌카스트는 손을 한 번 털며 말했다.
"안 되겠는걸?"
"쳐랏!"
마차를 둘러싸고 있던 무리들은 아츠렌의 외침과 함께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느 새 마차 위로 가볍게 올라간 윌카스트는 마차 지붕 위에 엎드려 총을 쏴 댔다. 다행히도 금속 뼈대는 단단했다. 가시스와 세즈루는 마차의 앞뒤에서 윌카스트를 보조했다. 소년은 두꺼운 이불에 돌돌 말린 채 가시스의 뒤쪽에 고요히 누워 있었고 마차를 끌던 말은 이런 일에 이미 익숙한 지 조심스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런 대치 상태는 달이 서쪽으로 거의 사라져 가던 때까지 계속 되었다. 새로운 무리가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어느 새 두 무리를 완전히 감싸고 있었는데, 검은 모자에 제복 차림이었고 모두 말을 타고 있었다. 그들 중 유일하게 흰 모자를 쓴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황야 제 2 경비대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순순히 우리 지시를 따르라!"
"이런…쳇, 얘들아! 철수한다! 길 뚫어엇!"
다시 난전이 벌어졌지만 일부만 빠져나갔고 일부는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후자 중에는 아츠렌도 끼어 있었다. 흰 모자의 사내는 마구 욕을 중얼대는 그를 향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군 아츠렌."
"쳇! 이 몸을 아는 자가 경비대에 있다니, 기분 최악이군. 누구냐 넌."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마차 안에서 누군가가 일어났다. 그는 다른 경비 대원들에게 자신이 살피겠다는 손짓을 해 보인 뒤 마차로 다가갔다. 세 명 모두 무기를 마차 안에 둔 상태였지만 여행자 파티의 문장을 마차에 달고 있는 데다가 상처가 많아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반항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인 상태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마차 안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주변에 뿌려진 피를 보며 몸을 가늘게 떠는 그 사람을 본 순간, 그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세상에. 이베린!"
소년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아츠렌과는 다른 이유로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기에. 그리고 그가 모자를 젖혀 자신의 얼굴을 보이자 소년은 미소와 눈물을 동시에 보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헤, 헤라즈(Heraz)? 정말 너야? 나 꿈꾸는 거 아니지?"
헤라즈라고 불린 그는 자신보다 훨씬 작은 소년을 말을 탄 채 번쩍 들어 덥석 안았다. 소년은 그에게 안겨 '미안해'를 연신 중얼대었다. 아츠렌은 그 이름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호오, 그래, 너 그 때 그 녀석이구만? 나에게 죽도록 얻어맞고 다음 날 사라진, 겁쟁이 헤라즈! 하핫!"
아크렌의 광소를 들던 헤라즈가 한 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도망가지 않았어. 내가 그 날 말한 걸 잊을 건가? 이베린의 친구인 것을 후회하는 일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내가 분명 얘기했을 텐데? …흐음, 어쨌거나 사건의 정황을 대출 알겠군 그래. 에츠미(Echmi), 죄인들을 압송하고 달아난 자들을 잡아와라. 난 오랜 지인과 지인의 일행들과 이야기나 조금 나누다 돌아가겠다. 늦을 지도 모르겠다. 이상!"
"옛!"
빠르게 수습된 무리를 바라보며, 그레이 울프는 어찌된 일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헤라즈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멍해진 그들의 상처의 치료를 도왔다. 그리고 정신 없는 그들을 대신해 자신의 말까지 연결한 마차를 몰아 제 2 황야 경비대의 지부가 있는 도시로 향했다.

4.Solution.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이베린."
도시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아침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헤라즈는 꽤 큰 여관에 마차를 주차했다. 여행자 파티 그레이 울프의 세 사람은 돈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헤라즈가 여관 주인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기에 많이 싼 가격으로 여관을 이용할 수 있었다. 여관 안에 들어선 다섯 사람은 조금은 이른 아침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응?"
"너 왜 이렇게- 안 변했어? 열 네 살 때의 모습과 거의 변한 게 없잖아. …음, 이 분들 앞에서 우리 이런 이야기  해도 되는 거냐?"
갓 구운 애플 파이를 오물오물 씹던 소년은 피식 웃었다.
"벌써 했잖아 헤라즈. 그리고…음…믿어 보려구."
부끄러움이 가득 스며든 소년의 말에 세 사람은 기분 좋게 웃었다. 드디어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소년은 다시 입을 열었다. 놀랍게도 밝은 미소가 얼굴에 가득했다.
"일단 서로 자기 소개부터 할까?"
"헤에. '서로 처음 만나면 자기 소개를 해야 해. 그게……'"
"'팀워크의 시작이지. 믿음을 주려면, 서로에 대해 조금씩은 알아야 하니까.'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 벌써 5년 전 얘긴데."
"아아- 내가 신입들한테 항상 해 주는 이야기거든. 하하, 난 기억력 좋은 거 빼면 시체인 애였잖아. 물론, 지금은 조금 종목이 추가되긴 했지만. 하하핫!"
소년은 세즈루를 향해 방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카네(Acane)씨, 제 이야기 듣고 싶어하셨지요? 해 드릴 게요. 헤라즈, 나 좀 도와 줄래? '옛날 이야기' 할거야."
그 말을 들은 헤라즈의 얼굴은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사람답지 않게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가 소년에게 물었다.
"이베린-괜찮겠어?"
"응…상처를, 안고만 살수는 없다는 생각을 요 며칠 계속 했어.  이러면 영원히 낫지 않을 거야. 아, 자기 소개! 아카네 씨부터 하세요."
"응? 으응, 그래. 난 세즈루 아카네야. '아카네 씨'가 아닌, '세즈 누님'이라고 불리는 걸 더 좋아한단다. 기억해 두렴!"
"윌카스트 미렌다. 29세. 마차 모는 걸 좋아하지. 아, 상석이라고 생각하고 경칭 안 붙이겠다. 이의는 없겠지?"
"가시스 웰터다. 윌 녀석과 동갑. 보통은 시스라고들 해."
"아, 전 헤라즈 엔티스(Heraz Entis)입니다. 제 2 황야 경비대의 대장이고- 올해 열 아홉 살이죠."
"마지막이네? 이베린.Z.크렌디아즈 열 아홉 살이에요."
간단한 자기 소개를 끝내자, 소년은 애플 파이를 더 시켰다. 후식인 애플 파이는 처음 나오는 다섯 개의 값을 치른 후에는 몇 개를 더 먹든 공짜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애플 파이를 하나씩 들고 먹고 있을 때, 소년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사실- 나와 헤라즈, 그리고 아츠렌은 같은 학교 출신이에요."
"뭐, 뭐라고?"
"난 그때도 또래보다 작은 아이였고- 게다가 항상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아이라는 말을 듣고 다녔죠. 그런데 어느 날, 나와 아츠렌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겼어요…."
"뭐, 뭐라고?"
"뭐 의견 충돌이라고 보단, 아츠렌 그 자식이 이베린에게 먼저 시비를 건 거죠. 그 녀석 봤죠? 얼굴은 그럭저럭 생긴 녀석이 입가엔 삐딱한 미소에 덩치는 이-따만 해서는 부하 끌고 다니며 행패부리는 거, 그거 학교 시절부터 그랬던 거에요."
헤라즈는 애플 파이를 두 입만에 다 먹고는 하나를 더 들며 덧붙였다. 소년은 악간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 다음 날부터 문제가 생겼죠. 아츠렌과 그 친구들이 저를 괴롭히기 시작한 거에요. 저는 그냥 견뎠지요. 저 하나만 견디어 내면, 아무 일 없는 거니까. 그런데 저로 만족을 못했는지 몇 안 되던 제 친구들까지 괴롭히더라구요. 결국 제게는 헤라즈 말고는 친구가 없게 되어 버렸죠."
"와아- 용감했구나 헤라즈?"
"아이구…세즈 누님, 황야 경비대 아닙니까 경비대! 어렸을 적부터 싹이 보였어야 그런 걸 하지요."
"경비대가 아니더라도 말이지, 진정한 사나이라면 약한 사람을 지키고 친구를 보호해야 하는 거유. 그렇지 헤라즈 군?"
역시 그들은 여행자였다. 여행자로서의 십 여 년 경험은 쉽사리 날아가지 않는 법이다. 바로 몇 분전까지만 해도 '모르던 사이'였던 것을 그들은 금새 '아는 사이'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의 칭찬을 연속으로 받은 헤라즈도 아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전 이 녀석이 좋았거든요. 엄마랑 단 둘이 살면서도 그런 내색 전혀 안 보이고, 체구도 작은데 당당하고 어른스럽고, 아츠렌 자식들이 괴롭히고 때리고 그래도 보복 안 하고- 아, 물론, 처음엔 보복 안 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죠. 그런데 이 녀석이 그러는 거에요. '보복하면, 아츠랑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야.' 라고 말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그 말 때문에 떠나간 녀석도 있었지만 전 그 말이 정말 마음에 와 닿았어요."
"……하지만, 아츠는 단 하나 남은 제 친구도 괴롭혔어요. 오히려- 더 심하게 괴롭혔죠.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만났던 마지막 날, 아츠는 저를 붙잡아 놓고 제 눈 앞에서…헤라즈를……."
소년은 다시 눈물을 떨구었다. 헤라즈는 그런 소년의 머리를 끌어안으면서 소년이 맺지 못한 말을 이었다.
"그 날, 아츠렌은 자기의 부하들로 하여금 우리를 둘러싸게 하고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녀석들 몇을 골라냈습니다. 그 중 세 명은 이베린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고, 우리를 둘러싸지 않은 나머지는 저를 마구 패기 시작했지요. 이베린은…고개를 돌리지도 귀를 막지도 못한 채 제가 맞는 모습을, 아츠렌의 웃음소리를 들어야 했어요…. 그리고 그 날 밤, 저는 갑작스럽게 날아온 친척의 부고를 듣고 황급히 마을을 떠나야 했지만, 아마 그 자식들은 제가 도망간 거라고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을 겁니다. 이베린, 내 말 맞지?"
조금 진정된 소년은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잘 몰라. 난 네가 그렇게 된 뒤 어머니를 묻고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졸업 시험을 치르고 떠났어. 내가 없으면, 아츠가 널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나는 숙부님 댁으로 갔고- 심각한 대인 공포증에 이미 실종된 지 3년여가 지난 숙부님의 이름으로 책을 내서 그걸로 먹고살았어. 내 이름으로 책을 내면, 나이 때문에 얕보일 수도 있잖아. 그 후로는 한 번도 마을에 돌아가지 않았고 숙부님 댁에서 나온 것도…이번이 처음이야."
소년은 눈물을 닦고 약간은 붉어진 얼굴을 들어 세 사람에게 미소를 보였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고마워요. 여러분이 절 끌어내 준 덕에 저는 저 자신과 제가 쓴 글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진짜 팀워크를 경험해 보지 못한 제가 팀워크에 대한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어불성설이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렇게- 과거의 상처와 만나고 오랜 지인을 다시 찾아내니까, 적어도 제 글이 잘못된 글은 아닌, 그러나 발전이 필요한 글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제 상처는 쉽게 나을 그런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게 열어 줄 거에요. 전 언제나처럼 또 팀워크에 대한 글을 쓰겠죠."
"…팀워크라."
"여행자 파티인 여러분은 이미 오랜 시간 같이 여행해 오셨겠지요. 그러니 전 여러분을 보고 글을 쓰겠어요. 세상의 모든 것은 통하는 것이고, 여러분의 모습 또한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요. 그건, 곧 세계가 팀워크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는 거에요. 이 세계야말로- 가장 큰 조직이니까."
어떤 조직이든 구성된 후에는 훌륭한 팀워크를 통해 운영되고 발전한다. 그리고 가장 소규모의 조직은 가족이며, 가장 대규모의 조직은 세계다. 세계를 구성하는 건 어려 크기의 조직들과 그 조직을 이루는 생명들- 그 생명들은 거대한 기계의 작은 나사와 같아, 하나만 없어도 어딘가 불안하고 불완전하게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런 오작동을 막기 위해 팀워크가 필요한 것이고, 팀워크는 팀원들의 진솔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바탕에 깔고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체는 각자의 언어를 가진다.

5. Continuation…
「발전된 팀워크는 인간의 선한 감성, 즉 사랑, 신뢰, 관용…등을 발산한다. 발산된 그 감정들은 그 조직을 더욱 굳건히 하며…」
똑똑.
"…이런 시간에, 누구지?"
유명 작가 애버릿.W.크렌디아즈의 집사는 노인이었다. 집사 노인은 여느 때처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며 자신의 어린 주인이 쓴 책을 읽고 있다가 때 이른 노크 소리를 들었다. 본디 아침에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일이기에, 그는 급한 손님인가, 라고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키가 큰 청년이 등에 매는 조금 작다 싶은 크기의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누구신지요? 주인께서는 안 계십니다만."
"집사님, 저에요. 잊으셨어요?"
왠지 귀에 익은 목소리에 집사 노인은 청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옅은 갈색의 금발은 묶었음에도 어깨를 넘는 길이였다. 진 초록색 눈동자는 굉장히 깊어 보였고 조금은 밝은 색의 피부는 보드라워 보였다.
"……도, 도련님? 이베린 도련님?"
"네. 저에요. 들어가도 되지요?"
집사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안으로 들여보낸 뒤 문을 닫고 따뜻한 차를 내왔다. 그리고 그를 다시금 살폈다. 마른 듯한 체형이라는 느낌은 여전했지만 왠지 총명하고 촉망받는 젊은이처럼 보였다.
"여행은 즐거우셨습니까? 많이 자라셨어요."
"하하, 역시 내가 그동안 크지 못한 건 심리적 요인 때문이었나 봐요. 여행을 하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면서 쑥쑥 커 버렸어요. 저 굉장히 건강해 보이지 않아요?"
"예. 정말 훌륭한 청년이 되셨습니다. 자, 이럴 게 아니라, 우선 씻고 옷을 갈아입으시지요. 아, 옷은- 제가 지금 사 오겠습니다. 그리고 차를 한 잔 더 하시면서, 여행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집사님, 사실은 말이죠…,"
"예, 도련님."
"제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아직도 부족한 게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걸요. 좀 더 많은 이들을 만나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진정한 팀워크는 경험에서 나온다'…라는 거지요? 예,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그분들께 드린 총알들이 도련님을 지키는 데 쓰여 다행이군요. 허헛."
"집사님은 언제나 집사님의 역할을 다 해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에요. 자아- 그럼 저도 제 역할을 해야죠?"
"…도련님의- 역할이요?"
"글 쓰는 거 말이에요. 후후후."
소년- 아니 이젠 스무 살의 청년이 된 이베린은 싱긋 웃으며 차 향기를 맡았다. 비싼 값을 하는 알레시오(Alesio)의 향이 온 집안에 퍼졌다. 이베린은 다시 미소지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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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안녕하세요. 리디라고 합니다.

일단 무턱대고 신청해서 턱하니 받아 놓기는 했지만, 이미지만으로 글을 쓰면서 그 안에 이미지를 담는다는 게 쉽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아. 제 통산 여덟 번째 단편이지만...역시 글쓰기란 힘드네요. 하하.

으음, 굳이 잡담을 적고자 하는 것은, 제 글에 제가 자신이 없다는 한 표현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제 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이렇게 긴 잡담을 달게 되었습니다.

제가 뽑은 카드는 <Eight of Wands>, 팀워크, 팀원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나타낸다는 카드였습니다. 저는 이 글에 깨진 팀워크, 그리고 그 회복의 대안으로 제시한 의사소통을 하고자 하는 의지에 대해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진정한 팀워크를 발휘하기란 쉽지 않고 또 깨진 팀워크를 회복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그러나 세즈 양에겐 미안하게도 <<성장 이야기>>는 '소설 속 이야기'가 되어 버렸답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은 베린 군의 '상처'와 같은 효과를 제게 보여 줄거라고 믿고 있습니다아.

...정말 긴 잡담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앞뒤 문맥 안 맞는 글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운명의 수레바퀴에 스친 바람에 기대어, 리디.
댓글 1
  • No Profile
    unica 04.02.25 22:12 댓글 수정 삭제
    이거 다음편 있다면 읽고 싶어요. 글 쓰는 소년이라니. 글 쓰는 소녀만을 썼던 저로서는-. 매우 매력적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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