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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문학의 경지

2017.06.15 23:2806.15

무언가에 대해 「이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라고 하는 사람이 예전부터 싫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상대방을 업신여기며 「경험해보지 않은 당신과는 더 이상 논의를 이어갈 수 없다. 내가 이겼고 너는 졌으니 입을 다물어라.」라는 의미의 눈빛으로 상대를 쳐다보고는, 마음대로 논쟁을 중지하고 승리를 취해버립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은 '그것'을 겪어본 사람이라는 우위성도 과시해 보입니다.

그 행동은 비겁하고 비열합니다.

「이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이러한 말을 나는 16년 동안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들어왔습니다. 내가 얼마나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논의를 이어가도 상대는 일방적으로 나를 무시하며 논쟁 중에 도망가 버립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면전에서 이런 말을 들어도 나에게는 어떻게 반박할 방법이 없습니다. 답답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저도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면 되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열여섯 살인 저에게는 아직 세계가 너무 넓습니다.

일을 한다는 것의 괴로움도,

돈의 중요함도,

삶의 진리도,

어쩌면 저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어른들에게 무슨 말을 해도 항상 같은 말이 되돌아 올 뿐입니다.

아무도 제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경험보다 우위에 있는 근거는 없고, 경험 이외에는 모두 탁상공론입니다. 베이컨은 강하고 데카르트는 약합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청운의 꿈을 안고 문학동아리에 들어간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요?

「제가 쓰고 싶은 것은 소설이며, 소설이란 허구를 취급하는 것이기에 경험에 의존하지 않아도 좋다.」

처음 저는 제가 느끼고 있는 딜레마에 대한 도피처로 소설을 써왔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도 상상을 통해 종이 위에 써낼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마지막을 고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이연희'라고 하면, 교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선배입니다. 제가 들어와 있는 문학동아리의 부장으로, 현역 추리 소설가이기도 한지라 「계간 추리문학」이나 「미스테리아」에서 이름이 자주 보이는 사람입니다. 제가 문학동아리에 들어온 것도 그녀가 있었다는 게 큰 이유입니다. 그녀가 없었다면 집에서 혼자 글을 썼겠죠.

그녀는 모든 면에서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람이 불면 부드러운 흑발이 물결치듯 흔들리고, 연분홍빛 입술은 가만히 있을 때나 말할 때나 어느 순간이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자세가 바르고 달변가이며, 어디서나 사람들의 중심에 있습니다. 학교에 있는 모두가 그녀를 좋아합니다. 너무 먼 곳에 있는 듯한 사람이라, 저는 언제나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경험」이 세상의 진리인양 떠받들어지는 현실입니다만, 그녀만은 그런 현실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운 존재로 보였습니다. 「동경」했습니다. 아니요, 그녀에 대해 그 이상의 감정도 품어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만큼 저의 비탄은 큰 것이었습니다.

피드백을 받고 싶어 그녀에게 신작을 보여줬을 때의 일입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네 소설은 리얼리티가 없는 것 같아.

 

글을 다 읽은 그녀가 그렇게 평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시간이 한순간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따졌습니다. 어디가 문제입니까.

 

우선은 트릭이지. 화려함은 있지만, 아무래도 이미지로 떠올릴 수 없어.

삽화를 넣으면 되지 않습니까.

너무 복잡해.

연희 누나의 작품에도 기계장치를 쓰는 트릭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내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네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삽화를, 삽화를 넣으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 문제가 아냐.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기야.

동기요?

그래. 동기가 약해.

어느 부분이 그렇다는 겁니까.

미스터리에서 동기라고 하면 한 가지 밖에 없잖아.

썼습니다만.

범인만 이해하는 동기잖아? 거기서 플러스해서 뭔가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편이 좋아.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게.

자신이 이해할 수 없으면 현실적이지 않은 것입니까.

조금 전부터 너무 덤벼드는 거 아니야? ……그리고 살인범이 반하게 되는 히로인인데, 이것도 사랑에 빠지는 동기가 약해.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작중에서 한 마디 대화도 나눈 적이 없잖아.

그래도 그는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충분한 접점도 없는데?

그녀는 자신과 너무 동떨어져서,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나는 쥐어짜내듯이 목소리를 내어 반론했다. 선배는 작게 한숨을 쉬고, 나는 이해가 안 돼. 라고 말하고는,

너, 누군가 진심으로 좋아해본 적 없지?

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제가 쓴 소설의 전개대로 일을 진행시킨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트릭은 어느 정도 잘 작동해, 밀실 안에는, 제가 기대고 있는 문 건너편에는 선배의 시체가 있습니다. 세 군데의 동맥을 절단했습니다만, 트릭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핏자국도 범행의 흔적도 없을 것입니다.

소설 후반부에서 범인은 유일한 이해자였음이 분명한 히로인 소녀에게도 실망을 느끼고 죽여 버리고 맙니다. 지금이기에, 모든 것을 경험한 지금이기에 그 기분을 알 수 있습니다. 선배에게 상담하고 싶었던 것은 최후의 감정 표현이었습니다만, 지금이라면 쓸 수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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