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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레시

2019.08.22 12:3008.22

 

 

빗방울이 가둬두는 거야, 자신의 몸 안에.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죽여서는 안 돼.”

 

두 시간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승혜가 처음으로 낸 의견이었다. 엇갈리는 의견에 언성이 점점 높아지던 대원들의 소리가 단번에 사그라졌다. 네 명의 시선이 승혜에게 몰렸다.

 

“기껏 생명을 살리자고 이곳까지 왔으면서 죽이면 무슨 소용이 있어. 생명의 정체를 알 수가 없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던 게 관찰 아니던가? 적어도 그 생명체도 우리한테 자신의 정체를 직접 설명할 기회를 줘야지.”

 

승혜의 말에 동감하며 손을 든 것은 우주비행사 호연과 생태학자 주연이었다. 다섯 명 중 세 명이 ‘그 생명체’를 살리는 것에 동의했다. 다수의 의견이 결정되었으므로 나머지 두 사람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 엔지니어인 테레즈가 승혜의 의견에 조건을 붙였다. 테레즈가 입을 열자 이주에 심은 번역기 칩이 곧바로 테레즈의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했다.

 

“조금의 공격성이라도 보인다면 그때 가차 없이 그 생명체를 박제시켜 지구에 데려간다고 약속해. 그 정도의 차후는 보장받아야지.”

 

테레즈의 조건에 장의의도 동의함을 뜻하는 행동으로 가만히 승혜의 대답을 기다렸다. 승혜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생명체에 대한 두 시간의 회의는 거기서 마무리되었다. 이곳의 바다에서 생명체를 발견한 지 여섯 시간 만에 난 결론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았다. 쟁반 같은 창 너머로 빛나는 것은 얼음 위성이다. 40km의 두꺼운 얼음을 뚫고 내려가 그 밑에 존재하는 바다가 해양생물의 유일한 희망이다. 적어도 현재로써는. 얼음산의 협곡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상공에서 시추작업을 통해 뚫어놓은 구멍이 위성 표면에 순차적으로 보였다.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의 중력에 묶인 우주선 ‘나비’는 이름과 달리 소금쟁이 같은 형상으로 가운데 조종석이 있는 몸체로부터 기다린 다리 네 개가 뻗은 형태였다. 마치 부력으로 우주를 떠다니는 듯한 우아하고도 매끄러운 몸짓이었다.

 

위성의 표면이 얼음이어서 달보다 밝게 빛났다. 커튼을 쳐놓지 않으면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의 빛이었다. 승혜가 암막 커튼을 치고는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여전히 눈은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쏟아지는 빛으로 향했다. 의사는 수면제를 다량으로 처방해주면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승혜가 의사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안심은 ‘우주까지 나가서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죽겠느냐’하는 것뿐이었다. 우주에서 죽을 거라면 적어도 그보다는 멋진 최후를 맞이할 거라는 뒷말은 생략했고, 그렇게 세 달치의 수면제를 처방 받았다. 하지만 의사의 걱정과 달리 승혜는 나비로 온 이후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았다. 오늘 밤도 걱정 없이 잠들 수 있으리라.

 

나비에는 두 달 전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중국 창정에서 연락이 온 것은 일 년 전이었다. 빌어먹게 만원 전철에서 또 다시 구토를 느끼고 있었을 때 말이다.

 

한강을 덮은 서울 야경의 불빛은 우주의 별보다 빛의 숫자가 많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쾌속 전철이 아파트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며 승혜는 구토를 참아냈다. 재킷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식은땀이 흐른 이마를 닦아낸 후 입과 코를 막았다. 역과 역 사이는 고작 30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승혜가 전철 안내화면을 노려봤다. 합정역에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고, 머지않아 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을 헤치고 전철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통을 붙잡고 속을 게워내려고 시도했지만 숨 이외에 어떤 것도 쏟아지지 않았다. 30초 간격으로 도착한 열차도 마지막 횡단열차인 것처럼 어딘가로 피난 가는 듯한 사람들을 가득 채운 만원 전철이었다.

 

밀고 들어가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승혜는 의자에 앉으며 전철을 보냈다. 두 손을 맞붙잡고는 고개를 숙였다.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었다. 땅이 여전히 흔들렸다. 스프링시트 위를 걷는 울렁거림이 지속됐다. 4년 째 지속되는 울렁증에는 이름도, 발병체도, 그렇게 치료방법도 없었다. 재킷 주머니에서 울리는 휴대폰의 알람도 무시하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뱉었다. 늘 끝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연구보조의 전화거나 과학출판사 편집자의 안부전화일 것이다. 두 번 받지 않으면 둘 다 승혜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겠지. 하지만 두 번째 전화가 끊기고 세 번째 전화가 왔다. 승혜가 눈살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꺼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발신이 중국이었다.

 

바다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카운트다운은 실패로 끝났다. 흑해에서 미생물이 모두 죽었음을 확인하고 승혜는 이 지구의 모든 바다가 사해死海가 됐음을 선언했다. 돌고래나 해파리의 집단 죽음을 시작으로 청어, 산호초를 건너 바다 미생물까지. 지구의 5대양이 전부 사해死海가 되기까지 그로부터 딱 1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바다의 모든 생명체가 다 사라지기까지는 그보다도 적게 걸릴 것이라는 게 모든 학자의 예언이었다. 지구는 바다가 보낸 마지막 신호를 제대로 듣지 못한 죄로 바다를 잃었다. 원인은 파지 바이러스의 변종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균을 공격하는 살균바이러스였던 파지가 공격의 대상을 미생물로 바꾼 것이다. 바이러스가 갑자기 변화하는 원인은 여전히 규명할 수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변종된 바이러스의 피해가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늦었다. 인간과 함께 진화하는 바이러스는 언제나 인간보다 강하고 뛰어났으므로.

 

승혜가 그 모든 일말의 멸망을 모두 목격하고 다시 중국 창정으로 이년 만에 돌아와 마주본 것은 나사 직원과 10년 전 잠시 호흡을 맞췄던 생태학자 주연이었다. 승혜는 대답대신 잠시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고 물었다. 빌어먹게 먼 흡연구역까지 걸어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부재중 전화를 세통이나 남긴 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부 망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학인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친구였다. 예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왜 불렀대?’하고 물었다. 승혜가 담배를 한 번 더 빠는 여유를 부리고는 입을 열었다.

 

‘나보고 우주로 나가래. 위성에서 바다를 살리고 오래. 미친 거 아니냐?’

 

만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전철에서 또 다시 구토를 느끼지 않았다면 승혜는 우주선에 탑승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어지럼증을 없앨 방법이 없다. 승혜의 균형은 바다와 함께 사멸했다. 땅에서는 언제나 괴로울 것이다. 의사의 진단이었다.

 

 

 

착륙선이 본체에 도착했다. 주연이 젖은 우주복을 벗으며 샘플 통을 승혜에게 넘겼다. 위성에 기지를 세우는 방안은 막강한 추위와 얼음 지반으로 무산되었고 대신 나비가 엔셀라두스의 중력궤도 안에 간격을 유지하며 떠있었다. 잠수함 모양을 한 착륙선은 하루에 한 번씩 위성으로 내려가 시추해 놓은 빙판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장의의가 두꺼운 담요를 주연에게 둘렀다. 주연이 난로 앞에 앉으며 파랗게 질린 입술을 열었다.

 

“어제랑 같은 상태야. 형태도 자세도.”

 

“사진은?”

 

주연이 카메라를 넘겼다. 승혜가 샘플과 카메라를 들고 자리를 떴다.

 

현미경으로 움직이는 미생물들을 지켜보았다. 엔셀라두스의 바다에 녹조류를 풀어 얼어있던 미생물을 깨우는 계획은 성공이었다. 바다는 조금씩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갔다. 요람을 준비하는 부모처럼 곧 이 위성에서 살게 될 해양생물을 위해 아름다운 모빌을 엮고 있었다. 지구에서 살았던 바다 생명체의 종을 전부 이주하지는 못하더라도, 손톱만큼의 작은 치어라도 품에 안고 우주로 방생해야 한다. 이 바다에서 미생물이 죽지 않는다면 역으로 돌연변이 파지의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승혜의 임무는 남극장보고과학기지에서 하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미생물을 관찰하고 바이러스를 연구한다는 것도, 그때 느꼈던 추위까지도 전부 똑같다는 것도.

 

사진을 확대해 살펴보던 주연도 승혜의 의견에 동감했다.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에 웅크린 태아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류나 조류라기에는 그 생명체의 형태가 머리와 몸으로 정확히 나뉘어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포유류처럼 혈관이나 뼈가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양서류 같은 점액질의 피부. 한 발자국 물러서서 그것을 바라보던 테레즈는 결국 사족을 덧붙이지 않고 자리를 떴다. 나비를 몰고 엔셀라두스에 왔던 테레즈는 2군으로 이곳에 온 다른 대원들보다 2년을 더 이곳에 있었다. 잠잠했던 바다에 불쑥 출현한 정체불명의 생명체에게 적대심을 가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바다에서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일임을, 그리고 그 생명체가 지구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위성임을 납득하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전날 그 생명체를 발견한 사람은 호연이었다. 착륙선을 끌고 바다에 들어갔던 호연은 엔셀라두스의 남극지점인 남위 90°00′의 P6지점에서 이전에는 없던 반투명 생명체의 존재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이 바다에 녹조류를 푼 지 일 년하고 삼 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호연은 곧장 영상을 나비에 송출했다. 처음 발견 했을 때는 주먹만큼 작은 크기였다. 머리와 몸이 구분되지 않은 야구공 같은 크기였지만 발견 여섯 시간 만에 야구공은 축구공의 크기만큼 자랐다. 그 탓에 어제의 회의는 두려움을 밑바닥에 깐 흥분으로 어지러웠다. 어찌됐던 결론은 관찰이었다. 이제는 농구공만큼 커져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고 눈의 위치까지도 짐작할 수 있는 이 생명체는 다행히도 육식동물이나 괴수의 태아일 가능성은 현재까지 없어 보였다. 그날 오후 주연이 관제센터에 미생물체에 대해 보고했고, 상부에서는 지속적인 미생물체에 대한 관찰보고를 요구했다. 지구인이 처음으로 만나는 외계인일지도 모르는 낯선 손님에게 등 뒤에 창을 감추고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기를 바라면서.

 

테레즈는 먹던 빵을 내려놓고 비장하고 단호하게 “레시.”라고 말했다. 장의의가 그 이름을 따라 읊다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지금까지 나왔던 각종 연예인과 좋아하는 음식 이름보다는 입에 잘 붙었으니 일단은 모두가 그 뜻을 들어보자는 눈치였다. 테레즈는 뜻이 기억나지 않는지 인상을 쓰며 생각을 끄집어내다 승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설마 그 뜻이야?”테레즈가 고개를 끄덕이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뜻을 알지 못하는 다른 대원들의 원성이 자자해졌다. 대답하지 않으려고 술로 입을 다물던 승혜가 마지못해 손을 들었다. “감기.”우습게도 감기였다. “최초로 발견된 감기 바이러스에 붙은 이름이야. 근데 이걸 어디서 알아냈어?”

 

“책 가져가서 읽어도 된다며. 그나마 그림 많은 걸로 가져간 거야.”

 

테레즈가 가져간 책이 어떤 책인지 짐작하고는 납득했다. 얇고 사진이 많은 책이었다. 그 책의 초반부분에 최초로 발견된 바이러스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레시. 초록색 색연필로 오래전에 동그랗게 그린 자국도 남아있을 것이다. 그 책에 대한 흔적은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원치 않아도 멋대로 선명하게 박히는 기억들이 있었다.

 

“그런데 책 사이에 이상한 게 말라 있던데.”테레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표정에는 약간의 께름칙함이 남아 있었다.

 

“바퀴벌레 말려놓은 거야 그거.”

 

대원들이 먹던 음식을 내려놓고 적잖은 야유를 쏟아냈다. 승혜가 숨겼던 고약한 취미에 대해 다들 한 마디씩 얹었고 승혜는 말들이 잠잠해진 후에야 변명 같은 이유를 덧붙였다.

 

“빙하에 얼어있던 놈이야. 적어도 공룡이랑 살을 부비고 살았던 놈이라고.”

 

그 책의 주인은 늙은 바퀴벌레가 세상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다. 단풍잎 같은 작은 여섯 손가락으로 얼음 속에서 바퀴벌레를 캐내 납작하게 말렸다. 책이 주인을 잃은 지금은 바퀴벌레가 책의 터줏대감이었다. 대원들의 이야기는 금세 지구에서 만났던 믿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벌레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지만 승혜는 대화에 따라가지 못했다. 삶의 구석구석에 박힌 기억들이 발바닥에 찔리면 어쩔 수 없이 모든 걸 멈춰야 했다.

 

외계인과의 초유 만남일지도 모른다는 적잖은 흥분감에 찼던 저녁식사가 마무리되고 방으로 돌아 온 승혜는 가로로 누워 쌓여있는 책들 중에서 아까 그 책을 찾아냈다. 침대에 반쯤 누워 베개를 끌어안고 책을 펼쳤다. 책 곳곳에는 실수로 찍은 펜 자국이 가득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이마저도 희미해지는 것만 같다. 승혜는 그것이 자신만의 착각이길 간절히 빌었고 그래서 책도 제대로 펼쳐보지 않았다. 흔적은 흔적을 지운다. 영원히 간직하려면 가두어야 하는데 지구에는 영원히 가둘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우주의 엔트로피로부터 지켜줄 방공호가 필요했다. 적어도 인류의 타임캡슐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승혜가 책을 덮었다. 책에는 미약하게 빙하의 시린 냄새가 남아 있는 듯했다. 책을 끌어안고 잠으로써 책에 남은 차가운 냉기가 천천히 심장을 얼어 붙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타깝게도 후각은 촉감으로 전이되지 못했다. 대신 귓바퀴에 옮겨 붙을 정도의 남극의 바람소리가 들렸다.

 

돌연 두꺼운 외벽을 내리치는 바람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기 시작한 시점은 남극에서 돌아온 지 6년이 지나던 때였다. 승혜는 창문을 열고 바람이 불지 않는 적막한 밤하늘을 열한 번 확인한 후에야 바람이 밖이 아닌 안에서 불어온다는 걸 알아차렸다. 의사는 PTSD로 충분한 휴식을 권고했지만 승혜는 귀에서 쉼 없이 부는 바람을 들으면서는 도저히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없었으므로 꽤 오랫동안 환청을 달고 살았다. 그렇게 두 달을 버텼다. 그리고 환청이 귀에서 떨어질 무렵에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지하철역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어지러운 감각에 에스컬레이터 옆에 주저앉았다. 바닥을 짚었고 누군가의 신고로 의료인이 찾아오기 전까지 승혜는 구석에 웅크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의사는 똑같은 말을 할 것이다. 그 사고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입니다, 충분한 안정을 취하세요. 슬픔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노력하세요.

 

주연은 우주복 후면을 잠가주며 괜찮겠느냐고 또 물었다. 이로써 승혜가 우주복을 입는 동안 여섯 번째 질문이었다. 승혜는 주연이 알면 얼마만큼 안다고 이런 오지랖을 부리는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누구라도 짐작 가능한 크기의 트라우마라는 점을 상기했다. 자신의 고통이 특수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 다가오는 위로가 있다. 주연은 보편적인 형태의 슬픔 정도로 승혜를 걱정하는 것이다. 승혜의 경추 뼈 바로 아래에 새겨진 손가락 여섯 개의 손바닥 문신을 보며 차마 모르는 척 할 수 없었을 지도. 주연이 우주복 후면을 끝까지 채웠다. 승혜가 주연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 위대한 만남에서 나만 제외되면 섭섭하지.”

 

카메라와 샘플 통을 챙기고는 헬멧을 마저 썼다. 착륙선에 탑승해 장비를 조종했다. 화면에 호연과 테레즈의 모습이 잡혔다. “하나에 레버를 당겨.” 호연의 목소리가 착륙선에 퍼졌다. 사방이 투명한 착륙선에 앉아 발밑의 아찔한 얼음산을 바라보았다. 나비에서 착륙선을 방출시키는 압력을 맞춰야 파놓은 구멍으로 기류에 흔들리지 않고 정확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장갑 속으로 땀이 찼다. 레버를 잡았다. 셋, 둘…… 호연의 숫자에 맞춰 레버를 당겼다. 착륙선이 대기를 가로지르며 빠르게 하강했다. 컴컴한 어둠속으로 들어가 그렇게 또 다른 무중력에 빠졌다.

 

양수 속에 웅크려 있던 아이는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 엄지와 대칭인 자리였다. 선명한 화면으로 아이의 손가락을 계속 확대하던 의사는 상심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승혜에게는 물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아이의 모습만 보였다. 살아가는데 문제가 있을까요? 승혜가 덤덤하게 물었다. 아뇨,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절단 수술도 할 수 있고요. 승혜는 의사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살아가는데 별 문제가 없다면 별로 상관없는 오점이었다. 휴대폰을 편하게 쥐기 위해 진화한 거 아닐까요? 모니터를 보며 그런 농담을 던질 정도로.

 

외면했던 아이의 모습을 제대로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아이의 소식을 알았을 때는 기나긴 싸움 끝에 남편과 오래 되지 않은 결혼생활을 끝내자고 합의했을 시기였다. 오래 품고 있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이를 보낼 때를 놓쳤다. 딸이에요, 코를 보니 엄마를 많이 닮았네요. 뱃속에 있는 아이를 보고서 그렇게 말하는 의사가 우스울 법하면서도 승혜는 그 말에 공감했다. 엄마의 스트레스를 알았던 것처럼 아이는 몸에서 아빠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태어났다. 아이에게 ‘기주’라는 이름이 생긴 이후에도 승혜는 오래도록 이름조차 없던 아이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압도적인 존재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은밀하게 살아가기 위해 투쟁하는 것들이었다. 또 그런 몸짓. 승혜는 제 몸이 흔들릴 정도로 세차게 뛰는 심장과 그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쥔 주먹, 여섯 개의 손가락, 자신이 말을 할 때마다 움직이던 그 모든 태동을 잊을 수 없었기에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낯선 생명체의 태동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어제 주연이 가지고 온 사진보다 더 진화한 생명체의, 낙엽 같은 여섯 개의 손가락.

 

나비로 돌아 온 후 승혜는 자신을 지탱하는 손이 누구의 손길인지 구분하지도 못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10년 전 기주와 함께 남극장보고과학기지에 간다는 승혜를 이해하는 사람은 예나뿐이었다. 사실 그마저도 온전한 이해는 아니었고 어쩔 수 없이 네 뜻을 존중해주겠다는 연민에 가까웠다. 아이를 위험한 곳에 데려가는 것이 학대라고 손가락질하는 자도 있었지만 승혜는 도끼눈을 뜨고 바득바득 울부짖었다. 승혜가 남극에 가있는 동안 아이를 봐주겠다던 전남편은 집에 아이를 방치했고 아이는 삼일을 굶다, 승혜의 회사로 찾아가 엄마와 통화를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승혜는 곧바로 한국으로 날아왔다. 어떤 비난이 날아오든 자신을 끌어안은 아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끌어안고 비행기에 도로 탑승했다. 다행히도 남극의 대원들은 친절하게 기주를 맞이했다. 기주가 먹을 만한 간식을 창고에 가득 쌓은 채 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기주는 밤마다 들리는 빙하의 괴성도 무서워하지 않았고 남극의 급격한 삼사면에서 공기가 얼어 해안가로 급하게 하강하는 바람인 카타바틱 윈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기주는 이곳이 고향이었던 수호신처럼 남극의 기후와 날씨를, 그리고 쉽게 허락되지 않던 오로라까지도 불러들이는 아이였다.

 

무섭지 않아, 왜냐면 얼음은 사실 따뜻한 거야. 열 살이란 무릇 세상 이치에 거스르는 말을 많이 하는 법이라고, 아이를 대학까지 보내놓았던 대장의 말이 떠올랐지만 승혜는 언제나 세상이 그릇되었고 기주의 말이 전부 옳다고 생각했다. 장갑이 찢기며 손에 치명적인 동상이 걸렸을 때 기주가 여섯 손가락으로 감싸 잡으며 ‘엄청 뜨거운 거에 조금 뜨거운 게 닿으니까 식는 거야.’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이 사실인 것처럼 고통이 멎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기주가 엄마 치료해주는 거야? 하고 물으면

 

응, 그러니까 손바닥을 줘 봐.

 

승혜가 내민 손바닥 위로 손가락을 가지런히 올리고는 천천히 손바닥에 원을 그렸다.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우리 엄마 아프게 하는 거 다 사라져라.

 

승혜가 눈을 떴다. 장의의는 수중에 압력 차이를 갑자기 느껴 잠시 쇼크가 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승혜에게 물에 가루와 건더기를 풀어 만든 따뜻한 미역국을 건넸다. 승혜가 갈라진 입술사이로 미역국을 몇 숟가락 떠 넣었다.

 

“네가 이번에 찍은 사진 말이야.”장의의가 먹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도 좋다고 말했다. “그 생명체, 그러니까 레시의 눈동자가 너를 향하고 있었어. 인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야. 자라는 속도도 빠르고 마냥 관찰만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게 우리 의견이었어.”

 

승혜가 마지막 미역국 국물까지 말끔히 삼켰다. 휴지로 입 주변을 닦았다. 승혜가 외투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장의의가 급하게 승혜를 막았다.

 

“아직 체온이 낮아.”

 

“그러니까 움직여야 체온이 좀 올라가지. 나도 사진을 확인하고 싶어.”

 

승혜는 대원들이 모여 있는 관측실로 들어섰다. 장의의의 말대로 동공과 홍채가 인간과 거의 흡사한 눈동자는 승혜를 향해 있었다.

 

관제센터에서 레시를 생포 후 지구에 데려올 수 있도록 추가인력을 보낸다는 답변을 받았다. 토성의 또 다른 위성인 타이탄을 돌고 있는 우주선 ‘솔새’로, 나비 도착까지 일주일이 소요됐다. 그 사이 레시의 성장속도가 빨라 혹여 인간을 해칠 거라는 확신이 생긴다면 샘플 확보 후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아주 확증적인 경우에만 말이다. 관제센터의 대응에 반기를 드는 대원은 없었다. 지구의 안전이 가장 중요했다. 레시가 지구의 멸망을 가져 올 생명체라면 주저 없이 나비와 함께 이 위성에 영원히 잠들어야 했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원들은 불행한 결말을 염두에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자칫 모든 일들이 그 결말의 확증과정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찌됐던 레시의 발견이 놀라운 일임은 확실했으므로 과학교과서에 한 줄씩 적힐 서로의 이름을 유쾌하게 호명하며 가득 차린 저녁상 앞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국 며느리는 식탁을 엎어야 한다는 말이 있어. 대체로 뭘 못하게 하거든. 그러니까 그냥 식탁을 엎어버리고 나와야한다는 말이야.”

 

호연이 좌식의 둥근 탁자를 손으로 허공에 그리며 설명했다. 테레즈와 장의의는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고작 식탁을 엎는 게? 라는 반응이었다.

 

“한국인은 밥심이거든. 밥이 중요해서 무슨 문제가 있든 밥만 잘 챙겨먹고 다니면 돼. 오죽하면 며느리가 아파도 아들 밥은 챙겨주라고 말하겠어. 염병 밥 못 먹으면 알아서 굶어 죽든가.”

 

“너도 식탁을 엎고 왔어?”테레즈가 호연에게 물었다. 호연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시어머니는 나한테 능력 있을 때 하라고 했거든. 문제는 남편이 나한테 자기 밥은 누가 차려 주냐고 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시어머님이 식탁을 엎었어. 아들새끼를 잘못 키웠다면서.”

 

대원들이 까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승혜도 섞여 웃으며 두 다리를 의자 위로 웅크렸다. 식탁에 있던 가공 육포를 가져가 뜯으니 그제야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느꼈다. 이야기의 순서가 돌아왔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승혜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할 말 없어. 이혼도 일찍 했고 남편한테 시부모님도 없었거든.”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피해가려했던 승혜의 계획은 떨어지지 않는 시선들에 물거품이 됐다. 나비에 2군이 도착한 두 달 동안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없었으므로 대원들은 승혜를 이 대화에서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승혜가 결국 육포를 찢으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

 

“남자보는 눈이 없었어. 그런 걸 말해 줄 사람도 없었고. 유일하게 하나 있던 친구가 결혼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주기는 했었는데 나는 그때 그 사람이 절박했거든. 그 사람도 나도 혼자였으니까 서로에게 든든한 동지가 될 줄 알았어. 같이 있으면 세상에서 잠시 멀어지게 해주는 그 비현실적인 감각이 그 사람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까놓고 보니 정말 현실은 하나도 모르는 인간이었던 거야.”

 

승혜는 잠시 말을 멈췄다. 기껏 다 찢어놓은 육포는 그대로 그릇에 올려두었다.

 

“엄마도 나와 비슷한 절차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와 이혼했다는데 피는 못 속이는 거지. 남자보는 눈이 엄마를 빼닮았나봐. 그 여자도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았어. 집에 혼자 있던 기억이 가득한 걸 봐서는. 그러다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지만 나름 즐겼던 인생이었을 거라 확신해. 영정사진에서 그렇게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확신할 수 있겠더라고.”

 

길었던 저녁 식사는 그즈음에서 끝났다. 씻고 나온 승혜는 방으로 가지 않고 관측실로 향했다. 캄캄한 관측실에 홀로 켜져 있는 스크린에는 레시의 초음파 같은 사진이 떠 있었다. 승혜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쓸었다. 힘차게 뛰고 있는 심장의 박동을 상상했다. 기억이 되살아나는 개연성이 이토록 가볍고 습관적이었다. 승혜가 어그러진 여섯 손가락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덮었다.

 

남극에 비가 내렸다. 이따금씩 중심부에 비가 내리는 일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최난월의 경우였고 연강수량도 300mm 안팎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최한월로 들어서는 시기였다. 빗소리는 지구의 절망처럼 창문을 두드렸다. 따뜻한 물로 목욕을 마친 기주는 노곤하게 품에 안겨 제 엄마의 손을 만지고 있었다.

 

남극에 비가 오면 새끼펭귄들이 죽어. 털이 묻은 비가 체온을 뺏어가서 얼어 죽는다고 그랬어.

 

그건 또 어디서 알아냈어?

 

대장님이 말해줬어. 아까 죽은 펭귄을 묻어줬거든. 근데 왜 비가 펭귄의 체온을 뺏어가는 거야?

 

승혜가 기주의 귓가에 쉬잇, 하고 입을 다물었다. 기주가 승혜를 따라 합! 하고 입술을 맞물렸다. 창틀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넘어 눈밭에 떨어지는 물방울, 저 멀리 얼음산에 부딪치는 비와 바다에 몸을 내던지는 빗방울까지 소리가 점점 증폭되어 들려왔다. 기주가 조금씩 웃었다. 엄마, 엄마, 아주 멀리 있는 빗소리도 들려.

 

빗방울이 가둬두는 거야, 자신의 몸 안에.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모든 걸 다?

 

모든 걸 다. 소리도, 체온도. 전부 가져가는 거야.

 

왜? 비는 물이잖아. 물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아니야, 기주의 팔에 찍힌 점을 봐봐. 이 점보다 백억 분의 일로 작은 바이러스가 물속에 살고 있는데 걔네가 다 가져가는 거야.

 

엄마한테서도 뭘 가져갔어? 그래서 바이러스를 지켜보는 거야?

 

빗소리에 깼지만 우주선임을 자각하자마자 승혜가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 나갔다. 소리의 발생지는 수도관이었다. 샤워를 위해 필요한 담수화기가 터진 것이다. 테레즈가 물을 맞으며 합판으로 파손된 부분을 막고 있었다. 멀뚱히 서있는 승혜에게 소리쳐 합판을 대신 잡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승혜가 테레즈 대신 합판을 붙잡았다. 속옷까지 전부 축축하게 젖은 후에야 임시공사가 끝났다.

 

샤워실의 물기를 전부 닦을 때쯤 착륙선을 타고 내려갔던 장의의가 돌아왔다. 장의의는 헬멧을 손에 쥐고 젖은 수건에서 물기를 짜내던 대원들을 바라보며 황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레시, 레시가 없어.”

 

어제까지 한 자리에 머물러 있던 레시가 돌연 바다에서 자취를 감췄다.

 

 

 

*

 

 

 

“지원군을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싶은데.”

 

호연이 말했다.

 

“앞으로 나흘은 더 있어야 도착하는 걸. 살펴만 보고 오는 거야. 위치만 확인하게.”

 

승혜가 우주복을 갖춰 입으며 대답했다. 승혜 외에도 엔셀라두스의 바다로 들어가는 대원은 주연과 테레즈였다. 서로 흩어져 한 시간 동안 레시를 찾기로 했다. 대원들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발열기를 챙겼다. 물속에서도 고온의 빛을 내 닿는 것의 표면을 녹여버리는 무기였다. 하지만 승혜는 최대한 레시에 아무런 타격도 주지 않아야 한다고 몇 번씩 당부했다.

 

몇 천 년을 얼어있던 빙하가 녹기 시작하며 나타난 바다의 질병이었다. 그 시작점이 남극이었으므로 바다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발병지에서 원인을 알아내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변종 파지에 의한 미생물 파괴라는 것과 그 파지가 수억 년 동안 빙하 속에 잠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파지를 막으려면 그에 맞서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필요했지만 바다가 죽어가는 속도를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었다. 엔셀라두스는 지구의 바다와 성분이 비슷했으며 위성을 감싼 얼음 속에 미생물과 바이러스가 잠들어 있었다. 인간이 위성의 주인들을 깨웠으므로 생명체가 생겨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레시가 이 바다의 주인이었다. 레시가 인간을 공격하다면 응당 인간이 떠나가는 것이 맞았다. 승혜가 캄캄한 바다에 빛을 켰다. 승혜의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장의의는 압력차이라고 말했지만 승혜는 그 이유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빛이 비추는 방향으로 깊이 내려갈수록 속이 울렁거렸고 귀에서 이명이 들려왔다. 정신을 놓지 않게 눈을 부릅떴다. 버터야 한다. 한때는 스쿠버다이버의 옷차림으로 깊숙이, 아주 깊숙이 유유히 수영해 내려갔던 적도 있었다. 바다를 특히 사랑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바이러스가 있는 곳은 몸을 아끼지 않고 들어갔으며 그중 바다에는 아직도 알지 못하는 바이러스가 수두룩했기 때문이었다. 바다가 결국 바이러스 덩어리라고 생각하면 무섭지 않았다. 그렇게 지구의 모든 것이 바이러스의 숙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주가 그렇게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바다를 헤엄치면서도 우주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구의 생명체가 바이러스 숙주의 삶이 아닌 개인의 역사와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걸 온전히 깨달았을 때, 그리고 그걸 느끼게 해준 존재가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느꼈을 때 승혜는 바다에 들어가지 못했다. 땅을 밟고 있는 것에도 멀미를 느꼈다. 적어도 지구는 승혜가 살아갈 수 있는 위성이 아니었다. 바이러스처럼 기생하던 숙주가 사라졌으므로.

 

컴컴해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헬멧 화면에도 생명체 감지 신호는 없었다. 승혜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지만 노력이 무상하게 정신이 점점 희미해졌다. 그때 화면에 호연의 사진이 뜨며 목소리가 들렸다. 우주선에서 승혜의 상태에 경고음을 울렸을 것이다.

 

「승혜, 빨리 올라와. 당장!」

 

승혜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붙잡았다. 호연의 말을 따라 나비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승혜가 화들짝 놀라며 팔을 뒤로 저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승혜의 숨소리가 불규칙했다. 당장 멈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떨림이었다. 호연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도 승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레시때문이었다.

 

해파리처럼 수분으로 이루어진 부드러운 몸체였지만 외관은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얇은 표피 속으로 혈관과 비슷하게 생긴 붉은 실 하나가 온 몸에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심장이라거나 다른 장기들은 보이지 않았고 아가미나 입, 생식기관도 육안으로 구분되지 않았다. 승혜를 마주하고 있는 레시는 까만 눈으로 승혜의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호연의 비명도 잦아들었다. 헬멧의 카메라를 통해 승혜와 똑같이 숨죽인 채 이 신비로운 바다의 주인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신장은 160~170cm 언저리였다. 레시의 목안에서 노란 빛이 잠시 발광하다 사라졌다. 그 행동이 몇 번 반복된 후에야 승혜는 레시가 자신의 언어로 말을 걸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승혜가 레시를 향해 손을 내밀려고 하자, 호연이 조용한 목소리로 최대한 레시를 자극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승혜가 주춤거리다 다시 천천히 손을 뻗었다. 레시가 승혜의 손을 골몰히 바라보았다. 레시가 자신을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얻었다. 사람의 직감은 인류 데이터의 총 집합이었으므로 지금은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의 직감이 맞을 것이다. 레시는 승혜의 손이 자신의 뺨에 닿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두꺼운 장갑을 비집고 손바닥에 느껴지는 감각이란 단지 해파리의 표면처럼 실리콘을 만지는 듯한 말캉거림뿐이었다. 승혜의 숨이 차분해지고 심장박동이 정상수치로 돌아왔다. 호연이 정상궤도로 돌아 온 승혜의 수치를 우주선에서 지켜보았다.

 

레시가 승혜의 손을 감쌌다. 자신의 뺨을 더 만져달라고 애원하듯이 눈을 감았고, 승혜는 그 모습을 똑똑히 기억했다. 캄캄한 바다와 자신의 손을 감싼 레시의 손, 여섯 개의 손가락.

 

나비로 돌아 온 승혜가 헬멧을 벗을 때까지 네 명의 대원들이 승혜의 주위를 빙 둘러쌌다. 최초의 접촉이었고 승혜의 소감은 평이했다.

 

“살아있었어.”

 

“그게 무슨…….”

 

“그냥 이 위성에 살고 있는 녀석이야. 우리가 지구에 그냥 살고 있듯이.”승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단호한 말투였다. “지구로 데려가서는 안 돼. 여기서 살아가게 내버려둬야 돼.”

 

그날 승혜와 대원들은 관제센터에 낯선 생명체를 지구로 후송할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관제센터의 답변은 ‘불허’였다. 엔셀라두스의 테라포밍 계획은 인류의 희망이자 천문학적 비용이 든 일이었다. 안일한 태도로 임무를 실패해서는, 더 나아가 지구에 위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승혜는 관제센터의 명령을 곧이곧대로 따를 생각이 없었다. 지원군 솔새호가 오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버둥은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원들은 묵묵히 승혜의 말을 듣기만 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한 건 테레즈였다.

 

“우리가 뭘 하면 되는데?”

 

“이곳에 온 이유를 해야지. 분석하고 관찰하고 생명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

 

레시를 나비로 데려오지 못하더라도 레시 자체를 알기 위해서는 그 몸속의 한 방울이면 됐다. 레시의 유전성분을 분석하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이 생명체가 인간을 주식으로 하지 않음을, 포악한 생명의 유전체가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날 밤 주연은 따뜻한 밀크티 두 잔을 들고 승혜를 찾아왔다. 둘은 벽에 등을 기대고 침대에 나란히 앉았다. 티브이를 보듯 유리창 너머의 우주를 바라보고 있는 적막한 시간이 한동안 계속됐다.

 

주연과는 10년 전 남극장보고기지에서 잠시 만났다. 승혜가 남극의 바이러스를 조사하기 위해 왔다면 주연은 남극의 무너진 생태에 대한 실체를 밝히기 위해 잠시 들린 것이다. 주연은 그곳에서 기주를 만났다. 승혜가 주연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었지만 아마 카더라를 통해 주연도 알음알음 알고 있을 터였다. 어째서 그토록 아끼던 기주를 두고 이 먼 위성까지 오게 되었는지. 왜 이곳 대원들에게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는지 따위에 대해서.

 

“아까 레시가 뭐라고 말했을 거 같아?”

 

주연이 물었다. 침묵을 깨기 좋은 적당한 물음이라 생각했다.

 

“모르겠어.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이럴 줄 알았으면 언어학자도 같이 와야 했어. 우주에서 언어학자가 필요할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바이러스 따위를 훔쳐보는 사람이 필요할거라는 것도 몰랐을 걸. 진작 알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했을 테고 그럼 나보다는 유능한 학자가 왔을 텐데. 여러모로 지구의 오판이야. 어쨌든 우리와 비슷한 말을 하지 않을까.”

 

승혜가 컵을 감싸 쥐었다. 따뜻했던 밀크티는 이제 적당한 온도로 변해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정말로 레시가 그렇게 말했어?”

 

주연이 물었지만 승혜는 별다른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레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레시가 했던 말이 아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기주가 문을 열어주며 건넨 인사였다. 기주가 기분 좋게 한 인사는 아니었다. 언제나 자신을 오래 기다렸음을 돌려 말한 아이였다. 낯선 방문자를 환영하듯이. 만나서 반가워요, 엄마를 기다렸거든요.

 

“바이러스가 숙주의 유전자를 복제해서 다른 생명체에게 퍼트렸을 수도 있다는 학설이 있어.”

 

승혜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바이러스를 통해 그 유전체를 따라가면 우리는 궁극적인 정체성을 알 수 있을 거야. 실제로 아직까지 그런 사례는 없었지만 그건 아직 모른다는 거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거든. 바이러스가 얼마나 교묘하고 재빠르게 몸을 바꾸고 인간을 속이는지, 해마다 얼마나 많은 바이러스가 새로 생겨나고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지 사람들은 잘 몰라. 생명의 유전자가 바이러스를 통해 유전체에 들어온 거라면, 그래서 결국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뒤섞여 있는 거라면 사실 아주 멀리서 바라보면 지구 역시도 하나의 바이러스에 불과할지도. 더 웃긴 건 도대체 이 바이러스가 언제부터, 어디에서 왜 생겨났는지 모른다는 거야. 그래서 어떤 이는 바이러스가 살고 있는 차원이 우리와 다를 거라는 이야기를 해. 우리보다 더 높은 거지. 그러면 바이러스는 우주를 알고 있는 진정한 우주의 주인일지도 모르지.”

 

승혜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던 주연이 다시 물었다.

 

“바이러스가 유전체를 복사해가는 게 이론상으로도 가능해?”

 

“피닉스라는 바이러스가 있어. 현생 인류에 있는 돌연변이 판본들로부터 원래의 DNA 서열을 파악하고, 그 서열에 맞게 DNA를 합성해 배양 접시에서 키우는 사람 세포에 주입한 실험이야. 그러자 일부 세포에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만들어졌고 그 바이러스는 그 DNA 서열을 그대로 가져가 다른 세포를 감염시켰어.”

 

“…….”

 

“피닉스의 이름은 ‘불사조’란 뜻이야.”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왜 지금까지 지구에 있는 수천 년 동안 유전자를 복제해 파생시키지 않았을까? 그 학설이 진짜라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자체로 완벽하고 강해. 굳이 자신들이 먹고 사는 숙주를 복제해 살아갈 필요가 없지. 단지 그들의 유전서열을 파악해 한 생명을 멸종시킬 수는 있었겠지.”

 

“그러면 레시에 대한 필사적인 관찰은 유전체를 완전히 복제했을지도 모르는 바이러스를 먼저 발견하고 싶은 학자의 마음정도로 생각해도 되지?”

 

딱히 그런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이유가 생각난 건 아니었으므로 승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연은 승혜가 밀크티를 단 한 입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머뭇거리는 승혜의 손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주에는 어쩐 일로 왔어?”

 

일을 묻는 거라면 승혜가 이 임무의 어떤 필요에 의해 왔는지 주연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연의 질문은 ‘왜 지구를 도망쳐 나왔느냐’라고 해석하는 게 더 옳았다. 승혜는 잠시 어느 선까지 솔직함을 내보여야 할지 망설였다. 하지만 고민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승혜는 모든 걸 털어 놓듯 입을 열었다.

 

“지구가 너무 어지러워서.”

 

기주를 잃은 후에는 줄곧 막을 덮은 바다 위를 걷는 것처럼 흔들렸다. 길을 걷다가도 한 순간 발이 바닥 밑으로 빨려 들어가면 그대로 주저앉았다. 가끔은 그 땅을 평소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괴물처럼 보였다. 어쩌면 자신만 도태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방을 나가던 주연이 다시금 승혜를 돌아봤다.

 

“근데 네 말 들으면서 갑자기 생각난 건데 이제 지구가 살아가기 좋은 위성이 아닌 걸 안 바이러스가 모든 걸 죽이고 이주할 준비를 하는 걸까?”

 

개미들이 집을 옮기고 있어. 엄마, 이 땅이 오염돼서 개미들이 단체로 집을 옮기고 있는 거야. 근데 사실 이것도 바이러스가 개미를 이용해서 땅을 옮기고 있는 거 아닐까?

 

승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과학경시대회에서 최고득점을 맞은 한국 아이들과 비슷한 관례로 뽑힌 중국 아이들을 합해 남극으로 이주 간 떠난 탐험이었다. 지구 기후변화 실태 보고에 대한 캠프였고 중국과 한국이 공동으로 진행되어 막대한 지원금을 받은 장학프로그램이었다. 기주는 한국에서 우승한 아이였으므로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아이들 중 대표로 기자들에게 건강히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때가 4년 전이었으므로 기주가 열여섯이 된 해였다. 기주는 공항에서 급하게 약을 챙겨주는 승혜에게 본인 건강이나 잘 챙기시라는 잔소리를 얹었다. 승혜는 남극의 빙하가 예고 없이 무너지니 절대로 빙하가 있는 해수면 가까이에는 가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하게 기주를 잡았어야했다. 예전에 엄마와 함께 갔던 곳이라고 웃으며 떠다는 기주를 붙잡았어야 했다. 사고는 예기치 못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사고는 예상 가능했다. 단지 막을 방도가 없었을 뿐이다.

 

레시의 몸에서 직접 채취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으나 이 경우는 너무 많은 위험이 따랐다. 심지어 자신의 몸에 해를 가하려는 인간의 행동에 레시가 난폭해진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사실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모든 생명체의 공통적인 본능이었다. 대원들이 선택한 방법은 레시의 주변을 살피며 부유물을 수집하는 것이다. 그게 레시의 대소변이어도 말이다.

 

승혜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대원들은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승혜도 고집을 부려 대원들을 피곤하게 할 마음이 없었으므로 나비에 홀로 남았다. 이틀 후면 솔새가 이곳에 도착했다. 그전에 이 공허한 위성에서 레시의 흔적을 찾아야했다. 승혜를 제외하고 대원 네 명이 모두 엔셀라두스의 찬 바다로 뛰어들었다. 승혜가 모니터를 통해 바다를 지켜보았다.

 

화면에서 들리는 소리에 생각에 잠겼던 승혜가 바다에서 빠져나왔다. 네 개로 분할된 화면 중 테레즈의 화면으로 레시가 보였다. 승혜가 화면을 확대했다. 레시는 두 다리를 움직이며 바다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인어라기에는 몸짓이 투박하고 속도가 느렸다. 레시는 두 발을 각각 위아래로 세 번씩 발길질을 하다 한 번씩 발바닥을 맞붙이며 크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이 마치 한 세트처럼 움직이는 그 특이한 수영법을 승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보던 승혜의 정신을 깨운 것은 주연의 목소리였다. 테레즈의 위치를 알려달라는 말에 승혜는 급하게 테레즈의 위치를 확인해 대원들의 해저지형도로 위치를 전송했다.

 

“해령부근이야. 물살이 셀 테니까 다들 조심해.”

 

레시가 하강하여 지반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몸을 웅크려 낮잠을 자듯이 다리를 몸통으로 끌어올리고 팔을 베개 삼아 누웠다.

 

“다가가지 말고 기다려.”

 

테레즈의 렌즈를 통해 레시의 모습을 확대했다. 호흡의 증후는 보이지 않았다. 해파리처럼 피부로 호흡하고 있을 가능성이 유력했다. 승혜가 모니터 가까이 다가갔다. 때때로 말도 안 되는 직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테면 네가 죽지 않고 끊임없이 해수면 밑으로 떨어지고 있을 거라는 예감. 그러다 돌연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는 불가능의 확신. 우리의 이별이 지구에서만 일어난 일일 거라는, 그래서 딱 지구만큼만 슬플 거라는 스스로를 향한 같잖은 위안까지도.

 

테레즈는 레시의 피부에서 떨어진 진액을 채취해왔다.

 

할머니와는 어떻게 인사하고 헤어졌어? 남극의 빗소리를 듣던 밤 기주가 물었다. 인사를 못했어, 갑자기 헤어져서. 기주는 아쉽겠다, 하고 말했다. 그날도 이렇게 비가 왔어, 기주야. 할머니가 밤늦게 나가는 걸 사실은 말리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말이 나오지 않았어. 꼭 물을 입에 가득 머금고 있는 것처럼. 엄마는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할머니를 기다렸어. 근데 그날따라 유독 빗소리가 크게 들리는 거야. 아파트 옥상에 떨어져 부서지는 빗방울의 소리까지도 전부 듣다가 그렇게 비가 모든 걸 가져갔어. 괜찮아, 그래도 엄마한테는 기주가 왔잖아. 그때 내린 빗물을 전부 합쳐도 그보다 더 큰 기주가 있잖아.

 

엄마, 엄마. 슬플 때는 기주처럼 해봐. 침대에 누워서 애벌레처럼 몸을 이렇게 말고 팔을 베는 거야. 그러면 몸이 동그랗게 말려서 편안해.

 

남극의 바다로 들어가 아이들을 수색하려는 일말의 노력에도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다.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안타깝지만 수색대도 누군가의 자식입니다, 어머니. 승혜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떨어트렸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생각하지 않아야하는데 몸은 이미 남극 바다의 살갗을 찢는 듯한 차가움에 뒤덮였다. 주체 없이 떨리는 몸을 스스로 끌어안았다. 그럼 나를 말리지 마세요. 어머니, 어머니, 이러지 마세요. 당신네들이야 말로 나한테 이러지마. 고막을 찌르는 자신의 목소리가 속안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의사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조금씩 길게 내뱉었다. 남극의 깊은 바다로 내려갈수록 생살이 찢겨나가는 감각을 느꼈으나 유별나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이곳에 오기까지 계속 느꼈던 고통이었으므로. 남극의 해저에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을 기주를 상상했다. 아이의 시체를 품에 안아보지 못했으므로 그렇게 기주는 살지도, 죽지도 않은 존재가 되었다.

 

pAFM(초고해상도 가시영역 광활성 원자간력 현미경)의 렌즈 안으로 푸른색의 박테리오파지의 형체를 보고 있다. 머리와 목, 꼬리집, 미섬유와 핀으로 구성된 모습은 승혜가 알고 있는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바이러스를 복제해 양을 늘린 다음 DNA를 추출해 이 바이러스가 가져간 숙주세포의 정체를 밝혀내야 한다. 그래서 레시가 인간에게 위험이 되는 존재가 아님을, 이곳에서 살아가야 할 주인임을 알려야 했다. 승혜가 적막한 연구실에서 숨도 멈춘 채 현미경을 바라봤다.

 

솔새호의 도착이 여섯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주연이 연구실에 켜져 있는 불빛을 보고 다가왔을 때 연구실에는 방금 사람이 빠져 나간 듯한 흔적만 남아 있었다.

 

승혜는 주연이 오기 몇 분 전 연구실을 홀로 빠져나갔다. 그렇게 우주복을 입고 착륙선에 탑승했다. 나비의 조종실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승혜는 개의치 않고 착륙선의 레버를 당겼다. 함께 밀어내는 힘없이 착륙선이 엔셀라두스로 낙하했다. 힘이 부족한 착륙선이 대기권을 지나며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레버를 있는 힘껏 당겼지만 곧 착륙선을 강타하는 강한 충격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남극 빙하시추 터널 밑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죽어 있었다. 문어와 흡사한 모습이었지만 모두들 그것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연구실에 보고하기 위해 죽은 생명체를 실내에 옮겨두었고 고작 전화 한통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 생명체는 흙으로 부서져 사라진 후였다. 그 잔해만이라도 분석을 위해 넘겨졌으나 돌아 온 대답은 그저 흙이라는 말뿐이었다. 생명체의 흔적이 아예 남아있지 않은.

 

엄마, 그럼 그때 그건 뭐였어?

 

글쎄. 우리가 잘못 본 게 아니었을까.

 

그 애 외계인 아니었을까? 우주에서 어쩌다 지구에 온 거야. 그런데 지구가 너무 살기 힘들어서 돌아간 거야. 자기 위성으로.

 

승혜가 눈을 떴을 땐 엔셀라두스의 차가운 얼음표면이었다. 다행히 기절해있던 시간이 길지 않았다. 승혜가 금간 착륙선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헬멧에서 주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조하러 갈 테니 그곳에서 기다리라는 말이었지만 승혜는 스피커를 껐다. 기어가듯 땅을 짚으며 일어섰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로 통하는 P6의 지점이 보였다. 승혜가 그곳을 향해 달렸다. 어머니, 어머니! 어디선가 튀어나온 소리가 승혜를 붙잡았지만 잡힌 살점을 도려내고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기주를 처음 만났을 때도 승혜는 저 아이가 자신의 삶에 커다랗게 자리 잡을 거라는 걸 짐작했다. 단순히 육체적 집합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우리가 서로 지리멸렬한 세상에서도 손을 꼭 붙잡고 나아갈 서로의 조력자가 되리라는 것을. 너로 하여금 무기력하고 불분명했던 모든 것들에 의욕이 생기고 선명해지리라는 것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게 되는 그 어떤 일들처럼. 승혜가 밑으로, 밑으로 끊임없이 흘러내려갔다. 어느새 생겨나기 시작한 아주 작고 투명한 치어들이 승혜가 손을 뻗을 때마다 흩어졌다. 해파리처럼 둥글고 작은 몸체에 촉수같이 가느다란 섬유가 붙은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도망가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승혜에게 길을 안내해주듯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승혜는 그것들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끝에는 땅에 애벌레처럼 몸을 말고 누워있는 레시가 있었다.

 

하지만 승혜는 이곳까지 찾아오고 나서야 자신이 알고 싶었던 진실을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레시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시간이 더 있다면 차분히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을. 레시가 다가와 승혜를 마주봤다. 또 다시 목이 노랗게 빛났다. 레시가 말을 걸고 있다. 신호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신호……. 그때마침 불현 듯 승혜의 머릿속으로 장면이 떠올라, 승혜는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니까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비참하고 서글픈 몸짓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레시에게 장갑 낀 손의 손바닥을 내밀었다. 비웃음을 살 것이다. 스스로에게. 나비로 돌아가면 방금 자신이 했던 행동을 떠올리며 웃다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 것이다. 조금이라도 벗어난 줄 알았으나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잔인하게 확인하고 무너질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승혜의 상상이 비약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온다면 이곳에서 돌아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레시를 끌어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었다.

 

승혜는 주저 없이 헬맷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장갑과 옷을 모두 벗고는 속옷 하나 걸친 몸으로 레시를 끌어안았다. 레시가 승혜의 손바닥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둥글게 원을 그리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따뜻할 수가 없는 생명을 끌어안고도 따뜻하다고 느끼면서 승혜는 자신을 포근하게 끌어안은 품에 파묻혔다. 투명한 몸으로 레시를 끌어안은 자신의 팔이 비췄다. 몸이 천천히 땅에 닿았다. 남극의 바다를 헤엄치는 기주의 특이한 수영방식이 떠올랐다. 어지럼증이 찾아옴과 동시에 소멸했던 기주의 기억들이 수면으로 떠오르는 기포방울처럼 기억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았다. 기주와 공항에서 헤어졌던 마지막이 시작이 되어 모든 추억들이 아주 느린 기차를 타고 바라보는 풍경 같은 속도로 거슬러 올라갔다. 뚜렷하게 사진으로 남은 기억들을 제외하고 떠오르는 것은 기주와 승혜가 아니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사사롭고 은밀한 추억들이었다. 승혜가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기억들이 선명한 선의 세계로 들어왔다.

 

레시가 승혜의 겨드랑이 밑으로 두 팔을 넣어 등을 감쌌다. 승혜의 몸을 꽉 끌어안고 어깨에 볼을 묻었다. 그리고 빗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거슬러 올라가던 기억이 남극에서 비를 바라보던 때에 도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빗소리가 들리고, 기주의 키가 작아지고 작아져 네 발로 걸었다가 작은 요람으로, 둥근 물속으로 들어가 승혜와 처음 만났던 상태로 돌아갔다. 기주가 떠 있는 곳이 양수인지 바다인지 우주인지 구분가지 않을 만큼 컴컴했다. 인간의 형태를 조금씩 벗어나며 태아 이전의 모습으로 작아진 기주가 점처럼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그곳에는 비가 내리는 컴컴한 배경만이 남았다. 반듯한 실선이 그어졌다. 그러다 수직으로 한 번 꺾이고, 또 한 번 꺾이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꺾여 비는 그 안에 갇혔다. 비가 내리는 밤과 그 창을 졸린 눈으로 바라보던 것은 자신이다.

 

엄마 다녀올게, 비 오니까 창문 잠그고.

 

구두를 신는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려왔다. 승혜가 현관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발장에 선 엄마가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돈하고, 신발장에서 장우산 하나를 꺼냈다.

 

승혜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직 잠 덜 깼구나.

 

가면 안 돼. 당신 오늘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요. 빗길에 미끄러진 차량이 들이박아서 지금 들고 있는 우산은 날아가고 나와 인사도 할 시간 없이 헤어져요.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입을 열면 기포방울이 올라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하루가 지나도 오지 않는 당신을 소파에 앉아 기다렸는지 아느냐고 소리치지 못했다. 하지 못했던 것들은 끝내 어떤 방식으로도 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이 그 날을 떠올리며 단 한 번만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으면서, 그럼 마치 당신이 놓친 인생을 전부 돌려줄 것처럼 다짐했으면서 이토록 나약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다.

 

몸은 더 깊어질 곳이 없음에도 더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이 위성의 핵까지 닿아 따뜻한 기운이 온 몸에 퍼지는 느낌이었다. 승혜는 자신의 속에 꽉 찼던 어지럼증이 전부 기포로 빠져나감을 느꼈다. 이런 편안함은 그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마치 기주를 안고 거실에서 낮잠을 자는 듯한…….

 

눈을 떴을 때는 나비였다. 대원들은 레시가 착륙선을 타고 내려 온 주연에게 승혜를 데리고 왔다고 했으며 승혜는 대원들에게 레시의 바이러스 속 유전자 서열이 현존 인류와 100% 일치한다고 말했다.

 

승혜는 지구로 레시의 포획을 철회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역시나 돌아온 대답은 ‘불허’였다. 하지만 승혜는 그전처럼 돌아서지 않고 마이크를 쥐었다. 마이크의 빨간불이 선명하게 켜졌다. 걸치고 있던 담요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몸에서는 여전히 나무의 진액처럼 물이 떨어졌으나 승혜는 떨지 않았다. 추위를 느껴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목에 핏대가 섰다. 승혜가 악에 바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정중했다.

 

“솔새호의 지원요청 명령을 철회하여 주십시오. 레시는 공격적이지 않습니다. 레시는 생명이 위급한 저를 체온으로 끌어안고 다른 대원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다시 한 번 요청 드립니다. 레시를 지구로 이송하기 위한 솔새호의 지원요청을 철회해 주십시오. 레시는 이 바다의 생명입니다. 이곳에 살고, 이곳에서 살아가야 할 이 생태계의 주인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레시를 지구로 옮길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발 더는 인간이 위성의 주인을 내쫓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주십시오. 지구로 간다면 살지 못할 것입니다.”

 

호연이 담요를 주워 승혜의 몸에 둘렀다. 승혜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우주선의 창 너머로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솔새호가 보였다.

 

잠시 후 솔새호가 멈춰 섰다. 솔새호의 불빛이 나비호를 노르듯 바라보고 있었지만 곧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나비에게서 멀어졌다.

 

―명령을 철회한다. 다시 한 번 반복한다. 명령을 철회한다. 나비호의 대원들은 ‘레시’를 그곳에서 관찰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 인력을 요청 바란다. 우리에게는 그곳을 지킬 아주 유능한 인재가 많이 남아있다. 다시 한 번 반복한다. 레시와 그곳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요청 바란다.

 

 

 

*

 

 

 

지구의 변종 파지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백신 바이러스 개발에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간은 차츰차츰 잃었던 바다를 되찾기 위해 전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승혜가 관제센터에서 온 연락을 전부 듣고 자리를 떴다. 여전히 발아래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엔셀라두스의 얼음표면이 있었다. 레시는 점점 자라 입과 아가미, 그리고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지느러미가 생겼다. 바다에 서식하는 작은 치어들을 먹고 살았으며 레시가 흘리는 부유물에서는 산호초가 자라났다. 승혜는 아직도 날마다 얼음 틈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레시는 부르지 않고도 승혜를 향해 헤엄쳐왔다. 아주 멀리에서부터.

 

 

 

*

 

 

 

언어학자가 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6개월간 레시의 언어를 분석하여 오늘에야 드디어 레시의 언어를 해석했다는 소식이었다. 승혜가 언어학자를 바라봤다. 언어학자가 승혜와 대원들을 보고는 레시의 첫 마디를 꺼냈다.

 

만나서 반가워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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