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나는 한 번 죽었고 한 번 부활했다. 사람들이 천국이나 지옥이라 부르는 곳. 그곳에 와 있으며 신 혹은 악마적인 존재와 대면하고 있다. 

내 앞에 있는 한 존재. 그의 외형은 묘사할 길이 없다. 시시각각 변하고 있으니까. 어린이, 남자, 여자, 노인, 괴물, 행성, 광물, 천사 수백수천가지 모습으로 끝없이 변하며 내 앞에 있다. 한때는 너무 무서워서 도망도 쳐봤다. 하얀 백사장 같은 공간이 무한히 이어짐을 깨달았을 때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어느 곳으로 가든 내 앞에 나타났다. 아무런 말도 없었으며 그 어떤 위해도 끼치지 않았다. 나는 절규도 해보고 미친 듯이 웃어도 보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그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다. 나는 끝없이 백사장에 앉아있다. 다리가 저리다거나 배가 고프다거나 졸리지도 않다.

신이란 이런 기분일까? 나는 절대자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단지 한 인간에 지나지 않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이유도 모른 채 태어났으며 사람들 속에서 살았으며 종장에는 최후를 맞이했다.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해도 별 보잘것없는 삶이었으며 내세를 기대한 적도 없었다.

신은 내게 보상 혹은 저주를 내렸다. 영원이 바로 내 안에 있었다. 문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보아도 이곳으로 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어디로든 걸어가면 나와 똑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을 만나거나 아니면 왜 이 곳에 오게 되었는지 힌트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헛수고였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자 나는 주저앉았다. 하늘은 비나 천둥, 우박조차 내리지 않는 푸른빛이었다. 날씨는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조차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내게 영원이 내려온 것 외에 어떠한 편의나 변화하는 자연 현상도 제공되지 않았다.

영원 속에 방치된다는 느낌은 끔찍하다. 차라리 눈이 멀어버릴 때까지 컴퓨터나 핸드폰만 하는 형벌을 받고 싶었다. 아니 진짜 지옥에 가서 고문당하고 싶다. 나를 고문하며 기뻐하는 악마의 얼굴이 보고 싶고 나처럼 고통을 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싶다.

자극이 절실히 필요해졌다. 자살이라도 하려고 숨을 참아보다가 숨 쉴 필요조차 없음에 머리가 띵해졌다. 내 스스로 목을 졸라도 보고 주먹으로 자해, 이빨로 손목의 경동맥도 물어보았다.

하!!! 아프지도 않다. 손가락을 눈에 넣어봤는데 아무 느낌 없었다. 나는 내 앞에 앉은 신을 공격했다. 내가 휘두른 주먹이 신을 관통했고 그것은 홀로그래픽이나 다름없었다. 

"실체조차 없구나."

나는 주저앉았다. 나는 울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슬펐다. 

"죽여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나는 두 손을 마주잡으며 신에게 애원했다. 신은 응답하지 않는다.

"왜 하필 저입니까? 죽여주십시오. 저는 아무런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입니다. 저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주신다면 진실로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평온과 무한한 시간에 가두지 마세요. 삶을 헛되게 산 것을 참회합니다. 필시 뜻이 있는 삶이었을 텐데... 제가 다 망쳤습니다. 그것때문에 이 지옥에 온 거라 말해주십시오.  죽여달란 말입니다!

저는!!! 쓰레기에 정신병자입니다. 어머니를 욕되게 했고 아버지를 실망시켰습니다. 제가 대체 뭐란 말입니까? 저는 바퀴벌레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이런 제가 이런 호사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신이시여!!! 자비를! 자비를!!!

이렇게 간절히 비나이다. 하늘이시여, 우주이시여, 이런 저를 부디 벌하소서. 벌하여 사라지게 하소서. 제발!!!"

나는 내 감정의 모든 것을 짜내어 내 존재가 사라지길 원했다. 탈진했으며 수없이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허나 나의 육신은 멀쩡하며 영원하다. 썩지 않는 육신이란 이토록 고독하단 말인가? 나는 응답 없는 나만의 신을 바라본다. 그를 바라보는 것은 견디기 힘들다.

세상이 이런 존재들의 지휘 아래 생겨나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렵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 당신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대답해다오. 거기 있으면 대답해달란 말이다. 나와 이 자리를 바꿔 앉자. 부탁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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