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최초의 인형

2020.04.08 11:1904.08

 나는 최초의 인형이다. 무슨 말인가 의아하겠지만 말 그대로다. 나는 모든 인형의 기원, 출발, 원형이며 지금 내 얘기를 듣고 있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오랜 시간 동안 세상의 변화를 지켜봤다.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본뜬 인형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의 아득한 옛날이다. 지금이야 인형이 어린아이들의 장난감 정도로 전락했지만 그건 일종의 위장이라고 볼 수 있다. 길들여진 들짐승이 먹이를 얻기 위해 인간에게 아양을 떨 듯, 인형들은 아이들의 품에 몸을 묻음으로써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지금의 인간들은 인형의 존재 이유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하지만 최초의 인간들은 궁금했다. 도대체 누가 자신들의 모습을 닮은 저 예사롭지 않은 물건을 창조했으며 도대체 왜 그랬는지, 그것이 가져다줄 것과 앗아갈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 경외심을 갖고 나를 지켜보고는 했다. 나는 인간에게 수많은 영감을 줬다. 인간은 바위 위에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 훨씬 이전에 나를 보며 또 다른 나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최초의 예술이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최초의 인간은 모두 주술사였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물론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력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할 정도로 고되고 지난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생을 바쳐 그 일을 했다. 인간이 그 주술을 사용한 대상이 바로 우리들, 인형이었다. 우리는 최초의 인간들에게 생명을 부여받을 권리를 갖고 태어난 유일한 존재였고 어느 날 인간과 대등해졌으며 좀 더 세월이 지난 후에는 인간의 생명력을 넘어섰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혜로운 최초의 인간들은 신이 자신들에게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무한한 생명을 창조한 것은 그러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최초의 인간들은 미래를 내다봤다. 오래지 않아 자신들 모두의 생명이 다할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그들은 더 많은 나를 만들었고 끊임없이 생명을 불어넣었다. 자신들이 사라진 뒤에도 우리는 살아남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줄 것을 바랐다. 그러고는 한파가 몰아쳤다. 지금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기술로는 계측할 수 없는 아주 낮은 기온이 수백 년 동안 계속됐다. 단일세포를 가진 몇몇의 미생물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가 사라졌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그 뒤로 아주 오랜 세월, 미생물이 진화를 거듭해 두 번째 인간이 출현할 때까지 이 세상은 우리 인형들의 것이었다. 나는 최초의 인형이다. 그 옛날 인형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였고 당신이 상상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니까 당신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이유는 충분하다.

 

2

 분명 오전인데 하늘은 해질녘처럼 어둑했다. 뉴스에서는 길었던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중부지방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소나기가 쏟아지고는 했다. 물러가기가 못내 아쉬운 장마전선이, 남은 빗물을 억지로 그러모아 왈칵왈칵 쏟아내는 듯 했다. 아침부터 비를 머금은 하늘이 음산하더니 급기야 천둥과 함께 장대비를 떨어뜨렸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직장인들이 광화문네거리 주변을 부산하게 뛰어다녔다. 오전 열한시가 갓 지났을 뿐이지만 이선주는 이미 불콰하게 취해있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바로 월요일 이른 아침에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화이트컬러들이 출근을 서두르고 주간회의에 몰두할 시간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주를 시작하는 것, 이선주는 그것이 마치 백수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인 것처럼 느껴졌다.

 거사를 함께 치를 상대로는 명수미가 낙점됐다. 남들은 백수라고 부르지만 스스로는 시인이라 칭하는, 주중이고 주말이고 딱히 시간을 정해 갈 곳 없는 명수미는 아침부터 함께 술판을 벌이기에 제격인 벗이었다. 이른 아침 전화를 받은 명수미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니는 참말로 미친년, 이라고 했지만 이선주의 예상대로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에 모자를 눌러쓰고는 선짓국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 미친년이 멀쩡히 다니던 회살 때려 치더니 아주 돌았구만. 불러줘서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아침 댓바람부터 쌍욕이냐. 그래 좆나 고맙다 이년아. 선지 좋네. 언니가 어제부터 생리가 터져서 피가 모자란 걸 어찌 알고. 말본새 좀 봐라. 이렇게 천박한 년이 시를 쓴다니 한국 문단이 불쌍하다. 지랄 말고, , 건배. 그렇게 시작된 이른 아침 술자리는 빈 소주병이 너덧 개로 늘어나고 이른 점심식사를 하려는 이들이 가게에 들어설 무렵까지 계속됐다.

 이선주와 명수미가 선짓국집을 나섰을 때 마침 빗줄기가 잦아들었다. 그 탓에 둘은 가게 안에 우산을 두고 나온 것도 잊은 채 비칠대며 거리를 걸었다. 욕지기를 느낀 명수진이 토사물을 쏟아낼 적당한 장소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함께 걷던 이선주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섰다. ? 니도 올라오나? 들었어? ? 사방을 둘러보던 이선주가 검지를 들어 골목 한쪽을 가리켰다. 둘의 눈길이 가 닿은 곳에는 인형 자판기가 놓여 있었다. 기계손을 움직여 상자 안에 든 인형을 집어 들고 꺼내는 흔한 것이었다. 저게 뭐? 대답 없이 인형 자판기 앞에 다가간 이선주가 상자 안을 한참 들여다봤다. 왜 이년아, 인형 뽑게? 얘가 날 불렀어. ? 저기 구석에 있는 인형, 쟤가 날 불렀다고. 나를 여기서 꺼내줘, 하면서. 명수미는 가까스로 구역질을 참으며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이선주를 쳐다봤다. 이년이 취해도 아주 더럽게 취했네. 명수미가 골목길 담벼락 아래 쌓인 쓰레기봉투 더미 위에 위액이 섞인 선지를 쏟아내고 있을 때, 이선주는 가지고 있던 천 원짜리 지폐와 동전을 탈탈 털어 인형을 꺼내려고 애를 썼다.

 

3

 그는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인간에 가장 가까운 인간이었다. 그가 태어난 것은 최초의 인간이 태어난 지 정확히 일천만년이 지나고 난 뒤였다. 인간은 인간의 출현을 오백만년 전쯤으로 추정하지만 그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다. 지금 인간들의 과학은 최초의 인간들의 그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이들 장난에 불과하다.

 그는 시골 마을의 보잘 것 없는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나는 한눈에 그의 재능을 알아봤다. 그건 최초의 인간을 경험한 최초의 인형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예상대로 그는 자라나면서 자연스레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잊혔던 주술은 그로 인해 다시 되살아났다.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고 따르기 시작했다. 무리는 점점 늘어갔다.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 역시 늘 그를 뒤따르면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성장해가는 것을 지켜봤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의 능력은 어느 선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재능은 충분했으나, 그는 그 힘을 다룰 줄 몰랐다. 나는 답답했다. 그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그라면 나와 더불어, 그 옛날 우리가 누렸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관심은 엉뚱한 곳에 가 있었다. 힘을 키우고, 세상을 다스려야할 그는 엉뚱하게도 가난뱅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데에만 시간과 능력을 허비했다. 그러는 사이 그는 서른 살이 됐다. 당시 인간은 수명은 지금에 비해 무척 짧았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루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그는 죽을 것이다. 그가 깨닫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그에게 말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당연히 그는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텅 비고 아득히 넓은 들판이었다. 가난뱅이들 뒤치다꺼리는 이제 그만 둬라. 그건 네가 할 일이 아니다. 정 마음에 걸린다면 그들에게 줄지 않는 빵을 주면 될 것 아닌가. 저기 돌들을 빵으로 바꿔서 나눠줘라. 지금의 너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지금 너는 지배자들에게 눈엣가시다. 이대로라면 너를 없애려 할지도 모른다. 더 큰 세력을 키우고 힘을 모아야 한다. 네 능력을 보여줘라. 첨탑에서 뛰어 내리는 건 어떤가. 내가 안전하게 받아 주겠다. 나는 세상을 네게 줄 수 있다. 나를 받아들이고 함께 인간을 다스리자. 그와의 대화는 사십일 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그는 끝내 내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자신이 믿는 신에게 심취해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실체도 없는 존재를 신앙하느라 눈앞의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내 예상대로 지배자들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반역죄로 체포됐다. 나는 형틀에 매달려 죽어가는 그를 하릴없이 지켜봐야 했다. 그를 따르던 무리가 오열했다. 하지만 내 슬픔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언제쯤 다시 그와 같은 인간을 만날 수 있을지, 아니, 어쩌면 영영 만날 수 없을지도 몰랐으니까. 그가 죽는 순간, 나는 회당 꼭대기부터 드리워진 휘장을 찢는 것으로 작은 조의를 표시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4

 인형은 동물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그 무엇처럼 보였다. 어떻게 보면 어릿광대 같기도 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색깔도 제멋대로였다. 팔은 초록색, 다리는 빨간색, 얼굴은 흰색, 몸통은 노란색이었다. 어린 시절 본 텔레비전 만화영화에 등장했던 캐릭터 같기도 했다. 새것으로 보였지만 어찌 보면 꽤 낡아 보이기도 했다. 명수미는 이선주가 꺼내 든 인형을 보고는 외계인 모양이라고 단언했다. 미친년의 페르소나로는 제격이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인형은 이선주의 침대 머리맡 선반 위에 놓였다. 하지만 처음 이선주를 불렀을 때처럼 다시 말을 걸어오는 일은 없었다. 당연하잖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숙취를 느끼며 이선주는 피식 웃고 말았다.

 며칠 후, 대낮부터 시장통에서 술판을 벌이고 돌아온 이선주는 초저녁부터 잠을 청했다. 그때, 그날 들었던 그 목소리가 생생하게 다시 들려왔다. 나를 꺼내줘. 이선주는 소스라치게 놀라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꿈결이라기엔 너무 생생했고 그게 아니라면 말이 안됐다. 고개를 돌려 인형을 찾았다. 선반 위에 놓여 있어야할 인형이 보이지 않았다. 목덜미께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황망히 방안을 둘러봤다. 인형은 화장대 근처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내가 집어 던졌나? 그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된 거지. 머릿속이 혼란했다. 방안 물건들의 위치가 바뀌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다. 술에 취한 다음날이면 더 그랬다. 이무 거나, 아무 곳에나, 아무렇게나 두고는 잠들곤 했다. 열쇠가 냉동실 안에 들어 있거나 리모컨이 화장대 서랍에 들어가는 일도 있었으니까, 이선주는 별일 아니라고, 그저 꿈을 꾼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어떤 날은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시선은 느껴지는 법이다. 곁에 선 남자가 위아래로 몸을 훑을 때면, 눈을 마주보지 않아도 더러운 기분이 드는 것처럼. 그럴 때마다 이선주의 시선은 인형으로 향했다. 인형은 선반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인형을 버리려고 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를 꺼내줘, 하는 인형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 그래도 애써 꺼내왔는데. 이선주는 다시 인형을 꺼내 선반위에 두고는 했다. 아주 가끔, 혼자 생활하는 것이 외롭다고 느껴질 때면 네가 진짜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며 말을 붙여 보기도 했다.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날이면, 인형에게 질문을 하고 남자 목소리를 흉내 내 인형이 대답하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가끔은, 인형이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5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간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최초의 인간과 두 번째 인간이 모두 사라지고, 일곱 번째인지 여덟 번째인지 알 수 없는 인간들이 태어나고, 땅덩어리가 쪼개져 제각각의 언어를 사용하게 된 뒤로 인간들은 인형의 언어를 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게 됐다. 존경받고 사랑받기를 갈망했던 인형들은 목이 터져라 외치며 스스로의 존재를 알리려 애썼으나 허사였다. 인간들은 사실 제 곁에 있는 인간의 목소리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니 인형의 목소리를 알아 챌 리 만무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인형들은 나약해졌다. 많은 인형들이 스스로 입을 다물었다. 인간의 존경과 사랑과 관심, 그것은 인형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존재의 이유가 없어진 인형들은 스스로 존재를 포기했다. 많은 인형들이 그렇게 사라져갔다. 하지만 나는 존재했다. 최초의 인형은 사라질 수 없는 존재다.

 다시 인형의 언어를 알아듣는 인간이 나타난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14세기 말엽, 여자들의 일부가 최초의 인간들이 가졌던 능력을 갖고 태어났다.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여자들이 태어나자마자 그들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나는 여자들을 찾아 나섰고, 한자리에 모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잘 알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들은 내게 의지했다. 나는 그들에게 최초의 인간들이 가졌던 비밀을 알려줬다. 온 힘을 다해 그들의 능력을 끌어냈다. 여자들은 오래지 않아 위대한 주술사가 됐다. 사람들은 여자들을 두려워했고 때로 신앙했다. 나는 그래서 희망을 품었다. 다시 오래전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여자들은 나를 잊기 시작했다. 그들의 능력을 이끌어내 준 나는 아랑곳없이 자신들 만의 세계를 만들고 다른 이들을 지배하는 것에 몰두했다. 내가 알려준 지식을 이용해 흉측한 괴물을 만들기도 했다. 그녀들이 그걸 인형이라고 불러서 나는 무척 불쾌해졌다.

 여자들에 대한 인간의 존경은 순수한 공포로 변했다. 공공연히 여자들을 죽이자는 인간들도 나타났다. 용맹한 인간 몇몇이 사냥이라 부르며 여자들을 공격했다. 그럴 때마다 여자들은 더욱 악랄하게 사람들을 괴롭혔고, 써서는 안 될 주술을 쓰고는 했다.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최초의 인간이 가졌던 힘은 이렇게 쓰여서는 안 될 것이었다. 나는 내 남은 모든 능력을 그러모아 여자들의 주술을 봉인했다. 능력이 사라진 여자들은 하릴없이 인간들에게 붙들려 불태워졌다. 나는 다시 외로워졌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후로 오랜 세월동안, 나는 다시 힘이 생기기를 기다리며 침묵했다. 외로웠으니 여자들을 추억하기도 했다. 다른 인간들에게 마녀라 불렸던 그 여자들을.

 

6

 이선주는 맥주잔에 소주를 절반쯤 채우고 나머지는 맥주로 가득 채웠다. 빨리 취하려면 이게 최고라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처음엔 소주의 쓴 맛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익숙해지면 소주나 맥주를 따로 마시는 것 보다 목 넘김이 훨씬 수월해진다. 주량은 마실수록 늘었다. 이런 식으로 섞어 소주 두병과 맥주 두 어병을 쉼 없이 마시고, 담배를 두어 개비쯤 피우고 나면 금세 취기가 올라왔다. 그러면 어김없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꿈을 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술에 너무 취해 헛것을 보고 들은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처음 선반위에서 인형이 입을 뗀 날, 이선주는 철썩,하는 소리가 문지방을 넘어설 정도로 제 뺨을 세게 때려봤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다. 술에 취하긴 했지만 머리는 맑았다. , 지금, 네가 말한 것 맞지? 이제야 알아듣는 군. 세상에. 뭐야, 처음 날 꺼낸 날도 내 목소리를 들었으면서. 이선주가 허둥지둥 휴대전화를 찾았다. 동영상 촬영 기능을 실행하려 했는데 아무리 조작해도 먹통이었다. 이게 왜 이러지? 그만둬. ? 촬영, 난 사진이나 영상을 남기지 않아. 이선주의 다리가 휘청댔다. 휴대전화 액정화면을 아무리 두드려도 화면은 변하지 않았다. 이거, 네가 한 거야? 일단 앉아. 우린 할 얘기가 많잖아.

 술 좀 작작 처먹어 이 미친년아. 명수미는 대뜸 욕부터 해댔다. 이선주가 술잔을 탁,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 내가 진짜 미친년 같으냐? 니가 지금 미친년 같은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하긴, 안 믿을 줄 알았다. 하아…… 그래서, 그 인형이 뭐라고 하드나? 아니지, 그거 집에 있냐? 나도 좀 들어보자. 진짜면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데 들고 나가야지. 그거 돈 좀 주나? 그게……. ? 나만 들을 수 있데. 이년이 진짜. 이번엔 명수미가 탁 소리가 나도록 술잔을 내려놨다. 주변에 앉은 손님들이 곁눈질로 둘을 흘깃거렸다. 그것도 술에 취했을 때만 들린데. 나는…… 뭐라더라…… 아무튼 뭐가 부족해서 그렇데. 어이구 시팔. 진짜야 이년아. 소주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켜는 이선주의 두 눈이 게슴츠레해 졌다. 이런 염병할, 가자 니 집에. 내가 그 인형 모가지를 확 비틀든가 해야겠다. 그러지 말아. 왜 이년아. 이년이 그래도 몇 남지도 않은 술친구라고……. ? 뭐래는 거야 이년이. 이선주가 한순간 맥없이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뭐야? 자냐? 하아…… 이년이 헛소리만 지껄이더니 또 자빠져 자네. 명수미가 잔에 남은 소주를 벌컥 들이켰다. 명수미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이선주의 핸드백 입구에 초록색 인형 팔이 비죽이 나와 있는 걸.

 

7

 16세기에 나는 바다를 누볐다. 인간은 바다에 대해 무지했다. 그들에게 바다는 미지의 세계였고, 동시에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나아가야할 유일한 길이었다. 물론 나는, 대륙이 하나였을 때부터 존재해온 나는, 그 대륙이 나뉘어 지금의 모양새를 갖추는 동안 살아온 나는 바닷길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는 그런 내게 의지해 이 별을 일주하는 항해를 계획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나는 그럼 점에서 그를 높이 샀다. 진짜 최초의 인간들에 견줄 바는 아니었으나, 그는 그런 대접을 받기에 충분했다.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 인간은 최초의 인간이 가졌던 지식을 가질 자격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세상의 수많은 비밀을 알려줬다. 당시의 인간으로선 상상할 수 없었던 이 항해 계획에, 거상과 왕-물론 인간들의 왕이다-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다섯 척의 거대한 선박과 승무원 269명을 이끌고 기나긴 항해를 시작했다.

 스페인 남부 연안에서 출발한 그의 선단은 험난한 해협을 지나 일 년 여에 걸친 항해 끝에 잔잔한 바다를 만났다. 사방이 망망대해인, 너른 바다였다. 그는 이곳을 태평양이라 불렀다. 내가 붙인 이름이었다. 나는 대신, 그간 지나온 해협에 그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허락했다. 그는 무척 기뻐했다. 인간들은 가끔 별것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지나치게 기뻐한다.

 동남아시아의 한 섬에 도착한 그가 쉽게 원주민을 굴복시킬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내 덕이었다. 사실 그건 나 또한 예상치 못한 일이었는데, 몇몇 부족의 우두머리가 인형의 말을, 그러니까 최초의 인형의 말을 알아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전했고, 원주민들은 수긍했다. 사실 원주민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원주민들은 신적 존재에 대한 맹목적 신앙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고대의 인형에게 경외감을 가졌다. 나는 나와 같은 형태의 인형을 여럿 만들어 주변 섬 각 부족의 우두머리에게 보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신앙하던 것들 -이를테면 돌덩이며 나무토막이며 동물의 뼈 따위-를 제단에서 끌어내리고 인형을 그 자리에 세웠다. 그러고는 그에게 차례차례 무릎꿇어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또 한 번 일어났다. 한 부족장이 내 분신을 깨뜨려 돌려보낸 것이었다. 처음엔 굴복하는 듯 보였던 부족장은, 인형이 쉽게 깨지는 것-나는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을 하고 무척 후회했다-을 보고는 병사를 이끌고 그에게 대적했다. 내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원주민을 얕잡아봤다. 인간은 하나같이, 내가 준 영광을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인 양 오해하고는 오만에 빠지곤 했다. 그도 그랬고, 그건 큰 실수였다. 원주민들은 잘 훈련된 병사였다. 마젤란은 갯벌 위에서 비참하게 살해됐다.

 

8

 낡은 오피스텔은 방음이 시원찮았다. 음악이라도 조금 크게 틀어놓았다가는 옆집에서 벽을 쿵쿵 때리며 항의하기 일쑤였다. 조용한 밤이면 윗집인지 아랫집인지 옆집인지는 몰라도 교성이 들려오고는 했다. 혼자 사는 삼십대 남자에게는 가혹한 일이었다. 남자는 그럴 때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섹스 동영상을 틀어 놓고 수음을 하고는 했다. 욕실 벽과 맞닿은 202호에서 나는 소리는 유난히 잘 들렸다. 욕조에 물을 채우고 몸을 담그고 있으면 202호 여자의 전화통화 내용까지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여자는 삼십대 중반쯤이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꽤 근사한 몸매를 갖고 있어서 남자는 오래전부터 호감을 갖고 있었다. 여자는 얼마 전부터 직장을 그만둔 것 같았다. 내내 집에 있다가 오후께 외출을 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고는 밤늦게, 혹은 이른 새벽에 술에 취해 돌아오고는 했다. 야식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에, 늦은 밤 머리를 식히러 나선 산책길에 남자는 종종 여자를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202호 초인종을 누르고 맥주나 한잔 같이하자고 말을 붙여볼까 상상하고는 했다. 일이 잘 풀리면, 술김에 몸을 섞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입맛을 다신 게 수차례였다.

 남자가 마감이 코앞에 닥친 삽화 작업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욕조에 몸을 담근 어느 날 밤이었다. 202호 여자의 목소리가 조곤조곤 들려왔다. 여자는 이미 취한 듯 했다. 살짝 혀가 꼬인 발음이었다. 남자는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니? 자질이 부족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해. 쉽진 않겠지만. 여자는 목소리를 바꿔가며 혼자 질문과 답을 하고 있었다. 일부러 굵은 목소리를 내 남자 흉내를 내는 것이 어색하고 우스워서 남자는 피식 웃음이 났다. 남자는 여자가 대본을 읽거나, 구연동화 같은 것을 연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가벗고 있는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어느새 성기가 단단해졌다. 한손으로 성기를 움켜쥐고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귀를 벽에 바짝 붙였다. 그러면 너는 나와 좀 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결과가 좋다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각오해야 할 거야. 네 생명력을 모조리 쏟아 부어야 하니까. 도대체 무슨 얘기일까? 남자는 무척 궁금했지만 여자의 목소리는 더 들려오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의 벗은 몸을 상상하며 사정을 했다.

 

9

 19세기에 나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 있었다. 나무를 깎아 의자며 촛대 등속을 만드는 노인과 함께였다. 노인이 말을 걸어왔을 때, 사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너무 오랜 세월동안 인형의 말을 알아듣는 인간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말을 늘어놓고 목 놓아 외칠 때는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더니만, 작은 목소리로 최초의 인간들을 추억하던 그 밤에 노인이 다가왔다. 노인이 곁에 앉을 때만 해도 나는 그가 내 말을 알아들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 목소리가 사라져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너무 오랜 세월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노인이 말했다. 그것 참 신비로운 이야기로구나. 나는 하마터면 노인을 붙잡고 엉엉 울어버릴 뻔 했다. 물론 나는 울 수 없는 존재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말하는 인형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그렇다. 말을 알아듣는 인간이 있더라도, 그에게 우리의 존재를 이해시키는 데에는 또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전에 소스라치게 놀라 우리를 집어 던지고 내빼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노인은 그렇지 않았다. 오랜 세월을, 물론 인간들의 기준에서지만, 살아온 인간은 지혜로웠다. 자신이 보고, 믿고 살아온 것이 전부가 아니란 진실을 알 만큼은 지혜로웠다. 나는 노인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말은 대부분 내가 했고, 노인은 주로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쪽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얼마 만에 나눠보는 대화며, 내게는 별처럼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었으니까.

 노인은 내 말의 대부분을 알아들었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이해의 차이 탓에 노인은 내가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고 오해했다. 노인은 나를 나무와 섞어, 인간과 비슷한 모습으로 깎았다. 나는 화가 났지만(그는 이 대목에서 정말로 화를 냈다.) 참아야했다. 어쨌든 그는 수백 년 만에 인형의 말을 알아들은 인간이니까. 게다가 나는 그 세월동안 힘을 잃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처지가 돼버린 후였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몸의 일부를 조금 늘이고 줄이는 정도였다. 노인이 내 말을 오해할 때마다 나는 내 코를, 정확하게는 코 모양의 나무토막을 길게 늘여 그가 틀렸다는 것을 일깨우려 했지만 노인은 그저 껄껄 웃을 뿐이었다. 그게 아니야 제페토, 나는 인간보다 훨씬 위대한 존재야. 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싶을 리가 없잖아.

 

10

 저는 인형과 대화를 나눠요. 아니, 그게 아니에요. 제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시는 군요. 아이들 놀이 얘기가 아니에요. 저는 정말 얘기를 해요. 인형이 말하는 걸 듣고, 제 얘기를 인형이 듣고 그렇게 대화를 한다고요. 그게…… 사실은,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거의 듣는 편이에요. 얘기는 거의 미토스 아, 미토스는 그 인형의 이름이에요.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아주아주 까마득한 옛날에 살았던 사람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해요. 좀 이상한 이름이긴 하죠. 저는 다른 예쁜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는데 싫다고 해요. 화를 내더라고요. 너는 네 이름을 놔두고 다른 이름을 붙이면 기분이 좋겠느냐, 뭐 이러면서요. 하긴 맞는 말이죠. ,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 맞다. 맞아요. 얘기는 거의 인형이 해요. 주로 옛날 얘기들이에요. 옛날 사람들의 얘기죠. 누구랑 어디에서 함께 살았고, 그 사람들과 무슨 일을 했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됐고 뭐 그런 내용이에요. 사실 별로 재미는 없어요. 정말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냥 지가 막 지어내서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건지 알게 뭐예요? 그냥 저는, 걔가 말을 하는 게 신기하니까, 그러니까 그냥 듣고 있는 거죠 뭐. ? , 맞아요. 안 그러면 들리질 않아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죠. , 방법이 있다고는 해요. 그게…… 좀 복잡하긴 한데, 아무튼 취하지 않고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있대요. 그래서 한번 해보려고요. ? 그럼요. 근데…… 보실 수는 있는데, 얘기를 들을 수는 없을 거예요. 아니오, 그게 아니라, 그게, 저 밖에 못 들어요. 걔가 그러는데 자기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요. 수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거래요. 재능은요 무슨.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걸요. 몇 번 다른 사람한테 이 얘기를 해봤는데 아무도 믿어주질 않았어요. 제일 친한 친구도 그랬어요. 당연한 일이죠 뭐. 인형이 말을 한다니 누가 믿겠어요? 저도 안 믿었는걸요. 미친년 소리 듣기 딱 좋죠. 그래도 선생님이 제 말을 믿어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마음 한 구석이 꽉 막힌 것 같았는데 그게 뻥 뚫렸다니까요.

 

11

 이층 원룸 오피스텔의 출입문은 쉽게 열렸다. 전혀 전문가로 보이지 않는 열쇠 수리공이 전혀 전문 장비처럼 보이지 않는 장비를 가져다대자 삐, 하는 전자음과 함께 디지털 잠금장치가 맥없이 돌아갔다. 이게 이렇게 쉽게 열려도 되는 건가. 명수미는 적잖이 놀랐다. 집 안은 엉망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수십 병에 달하는 소주병과 플라스틱 재질의 맥주병이 제멋대로 서 있거나 누워 있었다. 옷가지도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했고 오랫동안 아무도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무언가를 찾느라 마구 헤집어 놓은 것 같기도 했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엉망이었다. 이 미친년…… 집 안 꼬라지하고는…….

 김춘곤은 신발도 벗지 않고 집 안에 들어섰다. 연락이 안 된 게 언제부터라고 하셨죠? 방바닥에서 엄지와 검지로 집어든 연보라색 팬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김춘곤이 물었다. 그게…… 오늘까지 이십이일인가 이십삼일인가……. 명수미가 휴대전화의 달력 애플리케이션을 작동시켜 날짜를 헤아리는 동안 김춘곤은 침대 맡에 있던 잡동사니를 헤집어보고 있었다. 휴대전화는 여기 있네요. 밧데리가 다 돼 꺼졌나봅니다. , 이거. 화장실을 둘러보던 명수미가 짧은 비명을 뱉었다. 김춘곤이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흰색 욕조 배수구 주변으로 검붉은 얼룩이 보였다. 명수미는 피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김춘곤은 욕조 안에 들어가 쭈그리고 앉은 채 얼룩을 노려봤다. 손가락을 뻗어 얼룩을 문질러보기도 했다. 저기…… 그거 피 맞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건 뭐 과학수사대나…… 그런 분들이 오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 건 제가 알아서 합니다. 김춘곤이 심드렁한 말투로 대꾸했다.

 화장실에서 나온 김춘곤이 현관 바깥으로 나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이 미친년아 어딜 갔냐……. 명수미는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이 됐다. 김춘곤이 문간에 고개를 내 밀었다. 명수미씨, 그만 갑시다. 뭐라도 찾으면 연락드릴게요. 뭐 어디 틀어박혀서 며칠째 퍼붓고 있을지도 모르죠. 중독자들은 종종 그래요. ? 중독자라뇨? 명수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춘곤도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 몰랐어요? 이선주씨 알코올중독으로 치료 중이었어요. 회사도 그래서 그만뒀고. 그런 얘기는……. 일단 나갑시다. , . 김춘곤이 별안간 몸을 돌렸다. 이선주씨가 뭐 소설 같은 걸 썼나요? ? 아닌데요. 그래요? 저기다 뭘 잔뜩 써뒀더라고요. 난 소설인줄 알았는데. 인형이 어쩌고저쩌고. 김춘곤이 가리킨 손가락 끝으로 침대 머리맡에 놓인 공책 한권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인형이 안 보이네. ? 무슨 인형이요? …… 아니에요. 그때였다. 김춘곤과 명수미가 문을 나서려는 순간, 명수미의 귀에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수미는 소스라치게 놀라 제자리에 멈춰 섰다. 등줄기를 타고 오른 한기가 정수리께로 빠져나갔다. 오줌을 지린 것도 같았다. 왜 그래요? 지금 들었어요? ? 뭘요? 저 소리요. 안 들려요? 나를 꺼내줘. 목소리는 아무래도 벽장 안에서 들려오는 듯 했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134 단편 수태고지 감동란 2023.08.30 2
2133 단편 파라다이스를 찾아서 이비스 2023.08.27 0
2132 단편 마술사 이야기 반신 2023.08.26 0
2131 단편 사라지는 것들 리소나 2023.08.22 0
2130 단편 예언을 따라 박낙타 2023.08.21 0
2129 단편 덩굴3 감동란 2023.08.20 1
2128 단편 최종악마와 의인 니그라토 2023.08.15 0
2127 단편 채굴 라그린네 2023.08.13 1
2126 단편 스파라그모스 임윤재 2023.08.12 0
2125 단편 ㅈㅗㄱㅏㄱ난 기억: 호접몽 꿈꾸는작가 2023.08.07 0
2124 단편 릴리와 꽈리고추 담장 2023.08.03 1
2123 단편 혜령 hummchi 2023.08.03 0
2122 단편 스윙바이 온칼로 담장 2023.07.30 0
2121 단편 안녕, 디오라마! 담장 2023.07.30 0
2120 단편 세상에서 가장 파란 파랑 담장 2023.07.30 0
2119 단편 사육제 성훈 2023.07.29 0
2118 단편 사라진 시간 리소나 2023.07.29 0
2117 단편 정원, 수영, 시체 강경선 2023.07.25 0
2116 단편 흰 뼈와 베어링 scholasty 2023.07.12 3
2115 단편 리사이클 프로젝트:연어 파란 2023.07.11 0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