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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삼년을 귀여워해줘!

 

“곰 인형인 척 하고 길거리 매대에 숨어 있는 걸 발견했어. 응. 응. 요즘 괴물들은 다 그러고 숨어 있어. 응. 위험하지는 않아. 사람을 먹는 애는 아니야. 추위를 먹어. 아무 것도 해줄 필요 없어. 동물로 치면 번데기 시기라. 이십삼년 동안만 소중히 해줄 수 있으면 돼. 잊지 않고, 버리지 않고, 가끔씩 쓰다듬어 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고. 응. 내가 갈게. 이십분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 아파트 현관 앞으로 나와줄 수 있어?”

세미는 오분 일찍 내려가서 오래된 아파트 현관의 정적 속에서 기다린다. 요즘 짓는 아파트들 같은 유리 문이 없어서 추위가 그대로 들어왔지만, 벽들은 이상한 온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 잠깐 사이에도 눈은 끊임없이 내린다. 쌓일 것 같은 눈이었다. 마치 한겨울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요정은 이것이 올 겨울 마지막 눈이고 다음 주부터는 따뜻해질 것이라고 했지만 잘 믿어지지 않았다.

요정은 약속보다 오분 늦게, 눈을 다 맞은 코트 차림으로 도착한다. 손에는 올리브영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철물점 것까지 쇼핑백을 잔뜩 들고 있다. 요정은 현관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눈 속에 서서 쇼핑백 하나를 세미에게 건넨다.

“갑자기 미안해. 이 눈이 그치면 온도가 오르고 우리는 한참 동안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게 되거든. 그런데 얘를 오늘 발견해서.. 전화로도 말했지만, 평범한 봉제 인형이라고 하고 좋은 집에 맡겨줄 수 있으면 좋겠어. 아주 중요한 애야. 이십삼년을 무사히 크기만 하면 세상을 구할 수 있어.”

요정들이 갑자기 전화로 이상한 부탁을 하거나 이상한 시간에 이상한 곳으로 나와달라고 하는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걸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정말로? 세상을 구할 수 있어?”

“아. 우리 세상은 아니고.. 우리 바로 옆 차원에 빙하기에 갇혀버린 세상이 있거든. 다 키워서 거기 갖다주려고 해. 얘는 다 크기 전에는 차원을 건너갈 수가 없거든.” 요정은 세미의 표정을 보고 변명하듯 덧붙인다. “물론 우리 세상을 구할 괴물도 찾고 있어. 열을 먹는 괴물, 플라스틱을 먹는 괴물. 그런데 괴물들은 수도 많이 줄었고, 요즘은 너무 잘 숨어서. 숲에 살 때보다 더 잘 숨어. 너희 사람들이 만드는 봉제 인형들이랑 정말 닮았거든. 얘를 찾은 것도 엄청난 행운이었어. 그렇지만 얘를 찾았다는 건 다른 괴물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숨어 있다는 뜻이니까 희망은 있을지도..”

그래서 희망이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이 세상은 괜찮을 거라는 건지 그렇지 않다는 건지 세미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요정들과 얘기하면 늘 그렇듯. 요정은 말을 잇는다.

“얘를 맡아줄 사람을 찾아줄 수 있겠어? 이십삼년만 임시로.”

세미는 조금 고심하다가 말한다.

“그건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 대부분의 사람은 뭔가를 그렇게 오래 귀여워하지 않으니까. 봉제 인형 같은 건 더더욱 그렇고.”

“어려운 일인 건 알아.” 요정은 대답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잖아. 대부분은 귀여운 것들 따위 잠깐 좋아하고 금방 잊어버린다지만, 또 이상한 걸 좋아하고, 이상한 걸 귀여워하고, 다시 없을 정도로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기도 하잖아. 그런 사람을 한 명만 찾아줄 수 있겠어?”

세미는 쇼핑백을 안고 계단을 걸어올라오면서 계단참마다 눈이 내리는 것을 본다. 낮은 지붕들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눈이 내릴 때 그렇듯 옅은 분홍색이다. 요정 말대로 세상은 이상한 소중한 사랑을 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녀 역시 그런 사람 하나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럴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세상 역시 요정들의 손으로 언젠가 반드시 구해질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방은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쇼핑백에서 꺼낸 괴물은 눈을 뚫고 와서 그런지 조금 차갑고, 정말 감쪽같이 봉제 인형 같다. 양 눈은 털에 가려 보이지 않고, 앉아 있는지 누워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디자인의 인형.. 아니 괴물이었다. 세울 수는 없다. 요정은 괴물이 곰 인형인 척 하고 있었다고 했지만, 귀가 짧은 토끼인지 표정이 없는 곰인지 조금 생기다 만 강아지인지 아리까리했다. 아무 것도 해줄 필요 없다지만 쇼핑백 안에 그대로 넣어두기는 좀 그래서, 세미는 고등학교 때 쓰던 무릎 담요를 꺼낸다. 그리고 괴물을 담요에 돌돌 말아 책장 한 켠에 작은 자리를 마련해준다.

 

요정의 말대로 날은 이십사시간도 지나지 않아 봄처럼 풀리고, 큰길에서 눈은 자취도 없다. 하지만 세미는 겨울 속에서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집 앞 오로라빈 카페의 구석 자리는 늘 그렇듯 세미에게 그럴 시간을 준다. 야외의 빛이 들지 않고 조명도 프랜차이즈 카페들처럼 밝지 않은 그곳 안쪽 깊숙한 곳에 있다보면 어쩐지 여전히 밖에 눈이 오고 있는 것 같았고, 빙하도 녹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문제는 봉제 인형을 이십삼년 동안 귀여워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누가 그런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는 데 있었다. 그건 어디 가서 자랑하고 다니거나, 중간 친한 사람들과 화제 거리로 삼는 종류의 사랑이 아니었으니까. 숨어 있는 종류의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수소문해서 그런 사람을 새로 알게 될 방법은 없고, 이미 그런 사람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수 밖에 없었다. 세미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러 가져 온 노트북은 펴지도 않고, 공책에 아주 천천히 소용돌이 무늬를 그리면서 생각한다. 아니면 그런 사람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는 수도 있었다..?

영훈은 문자를 보낸지 삼십 분도 되지 않아, 동네 사람이 동네 카페에 나올 때만 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영훈은 동네 사람의 눈으로 어렵지 않게 그녀가 있는 구석을 찾아낸다.

“.. 일이 그렇게 됐어. 그런 사람 분명 어디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

영훈은 핫초코티라떼를 한 손에 들고 그녀의 알아볼 수 없는 낙서들이 적힌 공책을 구경하면서 세미의 말을 듣는다.

“나 세 사람 정도 생각나는데.” 영훈은 오분 정도 생각하다가 말한다.

“세 사람이나?”

영훈은 생각지 못한 것들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을 때가 있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첫번째는 이 사람인데, 이름이 뭐더라.” 영훈은 휴대폰을 꺼내 페이스북 친구 하나를 보여주려다 말고 한참을 찾는다. “아, 여깄다. 연수 누나라고 우리 동아리 선배인데, 이런 사진을 자주 올리더라고.”

영훈이 보여준 것은 아주 깨끗하고 예쁜 방의 아주 깨끗하고 예쁜 서랍장과 아주 깨끗하고 예쁜 침대의 사진이다. 서랍장은 두 칸 정도가 인형으로 가득했고 침대에도 구석구석 인형이 장식되어 있었다. 세미는 영훈이 열어준 페이지들을 자세히 보고 확대해서도 보고 구석까지 살펴본다. 세미는 고심에 빠진다.

“이 사람, 마음에 든 인형은 엄청 예뻐해줄 것 같은데 취향이 너무 확실해. 예쁜 인형. 보면 다들 헬로키티거나 헬로키티 같이 생겼잖아. 이 말도 그렇고. 말인데도 눈이 크고 반짝반짝하고 엄청 예쁘게 앉아 있어.”

“너 건 안 예뻐?”

세미는 아침에 찍어둔 괴물의 사진을 보여준다. 세미의 책장에서 담요를 말고 잠들어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아주 편안해보이기는 했다).

“음.” 영훈은 납득한다. “도저히 안 되겠네.”

 

“다음 후보는, 내 사촌 동생인데,” 영훈은 저녁시간이 된 김에 같이 시킨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말한다. “일단 그냥 집에 인형이 많아.”

“잘해줘?”

세미는 공책에 뭔가를 받아적기라도 할 기세로, 펜을 굴리며 심각하게 묻는다.

“잘해준다라.”

봉제 인형에게 잘해준다는게 뭔지, 영훈은 생각하는 것 같다.

“한 번 좋아하면 이십삼년을 같이 있어줄 사람이야?” 세미는 말을 바꿔서 묻는다.

“일단 이번 구정에 큰아빠 집에 가니까 거기서 한 번 보고 올게.”

큰아빠 집은 서울인 모양이었다. 영훈은 삼일 만에 평소보다 한 줌 정도 한적한 동네 카페로 돌아온다. 세미는 구정 동안도 카페를 지킨다. 세미는 어느새 오로라빈 없는 동네를 생각할 수도 없게 되어 있었다. 항상 연말처럼 북적거리는 학교 앞 카페들도 좋았지만(세미는 특히 “12월의 코끼리” 카페를 좋아했다.) 세미 생각에 대학가 카페들은 항상 조금 외로웠고, 진짜 동네 카페들을 따라올 수 없었다. 동네 카페들의 문제가 있다면 물론 그 완전한 편안함 속에서는 일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동네에서 공부를 하려면 차라리 길 건너 2층 투썸플레이스에서 해야 했다. 그곳은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그렇듯 조금 춥고 밝고 분주해서 자꾸만 시간의 흐름을, 밤이 끝나가는 걸 생각하게 만들었으니까.

또 동네 사람처럼 모자에 지갑 하나만 가지고 나타난 영훈은 여전히 노트북을 절전 모드로 두고 있는 세미의 자리로 온다. 영훈은 핫초코티라떼를 가져오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간다.

“괴물은, 함부로 막 껴안고 휘두르고 물어뜯으면 안 되지?”

세미는 고심한다.

“잘 모르겠어. 괴물이라서 튼튼하니까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번데기 시기라니까 막 건드리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그 집에 가면 일단 무조건 그렇게 된다고 보면 돼.  그것 말고도.. 다영이 집에 오래된 인형들이 많긴 해. 그런데 내가 하나 그냥 가져와도 몰랐을 거야. 또 지금 개가 두 마리 있는데 한 마리 늘어날 예정이고, 다영이 동생 서영이라고 있는데 걔도 아주 어리고.”

“사랑받는 것들이 너무 많다.” 세미는 말한다.

영훈은 조금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부탁하면 맡아주긴 할 거야. 귀여워해줄지도 몰라. 지금 키우는 개도 임보하다가 주인을 못 찾아서 그대로 키우기로 한 거거든. 걔도 아주 잘 지내. 그런데 인형 하나를 이십삼년 귀여워해주지는 않을 거야.”

세미는 다영의 집이 어떤 종류의 집인지 알 것 같았다. 인형들도 개들도 아이들도 절대 가만두지 않는 곳. 다들 많이 상처받고 많이 사랑받는 곳. 그런 곳의 인형들은 전부 귀가 너덜너덜했고, 얼굴은 웃고 있었고, 아주 오래 귀여운 모습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사랑이 많은 곳임에는 분명했지만, 이십삼 년 동안 조용히 잠을 자야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생명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조금 더 조용하고 오래 가는 사랑이 있는 곳이 필요했다.


“마지막 후보는, 내 과외 학생인데.” 영훈은 조금 망설인다. “침대에 항상 같은 인형이 있거든. 이 정도로 크고(영훈은 팔을 벌려 보여준다.) 좀 낡은. 처음에는 곰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양이일 수도 있어. 그런데 겨울만 되면 목도리를 해. 그 인형이랑 같이 찍은 사진 액자가 책상 위에 있고.”

“인형은 그것 딱 하나야?”

“반 년 과외했는데 내가 본 건 그것 하나야. 이 인형 얘기를 따로 한 적은 없는데.”

“예쁜 인형이야?”

“.. 귀여운 쪽이야.”

“희망이 있는 것 같아.” 세미는 말한다.

“그런데 안한다고 할 수도 있어. 일단 내가 한 번 말해볼게.” 영훈은 쉽지 않은 일이 될 걸 예감한다는 듯이 말한다.

영훈의 다음 과외 날(돌아오는 금요일이었다.), 세미는 영혼의 문자를 받는다.

“맡아줄 생각도 있는 것 같은데 너한테 직접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대.”

은비도 그들 동네 사람이었으므로, 약속은 자연스럽게 다음날 오후 다섯 시 오로라빈으로 잡힌다.

“파리바게트 뒷골목에 있는 그 카페로 오라고 해줘.”

 

세미는 한 팔에 노트북을 끼고, 다른 손에는 담요로 둘 둘 말고 쇼핑백에 넣은 괴물을 든 채 집을 나서서, 세 시부터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 날도 인터넷 강의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괴물은 그녀의 발치에 얌전히 놓인 채이다.

다섯시 삼분 전에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엄격한 단발머리의 고등학생이다. 은비도 세미를 바로 알아보는 것 같다. 세미가 사주겠다고 말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녹차라떼를 계산하고 그녀 앞자리에 앉은 은비는 입을 연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봉제 인형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시는 거죠?”

자기를 아주 잘 알고, 자기가 아닌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은 고등학생만이 가질 수 있는 엄숙함이었다. 세미는 그 엄숙함에 조금 당황해서 버벅인다. 은비는 말을 잇는다.

“만약 그러신 거면 저는 적당한 사람이 아니에요. 곰이 때문에 영훈 선생님이 제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순수한 진심으로 곰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면 어떤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데?”

은비는 잠시 입술을 깨문다.

“살아있지 않은 걸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건 사실 무서운 일이잖아요. 살아있는 것도 마찬가지이겠지만요. 그래서 저는 사실 이렇게 많이 곰이를 좋아하고 싶지는 않아요.”

반쯤은 이해를 바라고 반쯤은 이해를 기대하지도 않는 얼굴로 은비는 눈길을 돌린다. 세미는 – 완전히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좋아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살아있지 않은 것들은 살아있는 것들과 닮아 있었으니까. 이를테면 겨울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밖에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손이 시려웠지만, 따뜻한 곳에만 있다 보면 다시 오지 않을 것을 흘려 보내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은비의 좋아함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얘기여서..

“너무 많이 좋아하지는 않고 이십삼년을 맡아달라고 하는 건 어려운 얘기겠지?” 세미는 묻는다.

“혹시 가져오신 거면 잠깐 보여주실 수 있어요?”

발 밑 쇼핑백에서 모습을 드러낸 괴물에게서 은비는 눈을 떼지 못한다. 괴물은 사실 빈말로도 그렇게 귀여운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은비는 벌써 괴물에게서 아주 소중한 무언가를 봐 버린 것 같았다.

“제가 안 맡겠다고 하면 얘는 어떻게 되는 거에요?” 그녀는 카페의 나무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는 것 같은 괴물의 앞발 끝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묻는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알아봐야겠지.”

은비는 자신보다 더 좋은 후보가 없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한숨을 쉰다.

“이십삼년 뒤에 말인데요, 진짜로 꼭 돌려줘야 하는 거에요?”

“응. 그건 진짜 좀 사정이 있어서.”

세상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세미가 설명했더라면 조금 달랐을까?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세미는 망설이다가 그렇게 하지 않고, 은비는 결정을 내린다.

“너무 많이 좋아하지 않고 이십삼년을 같이 있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그 정도로 좋아하게 될 거면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아니면 안 돼요. 그러니까, 저는 역시 안 될 것 같아요.”

 

영훈은 오랜만에 학교에 다녀왔는지 큰 가방을 들고 일곱시쯤 들어온다.

“어땠어?” 카페의 인구 구성은 삼삼오오 모여 앉은 주부들에서 혼자 앉은 학생들 위주로 바뀌어 있었다.

“맡아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밀어붙일 수가 없더라. 이게 진짜 어려운 것 같아.” 세미는 여전히 테이블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괴물의 머리를 간지럽히며 말한다. “얘가 행복하려면 사람이 조금 힘들어야 하고, 사람 마음이 편하려면 얘를 충분히 소중히 해 줄 수 없고.”

“음.” 영훈은 핫초코티라떼를 들고 카페 의자에 멀리 기대 앉아있다가 문득 말한다. “나는 어때?”

“너 인형 좋아해?” 그건 몰랐던 일이었다.

“정말 진심으로 괴로울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좋아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얘는 귀엽잖아.”

그는 손을 뻗어 괴물의 머리털을 흐트러트린다. 괴물의 겉모습에는 확실히 세미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면? 이십삼년 뒤에는 어떻게 해.”

“그건 그거대로 어쩔 수 없지.” 영훈은 조금 가볍게 말한다.

세미는 갑자기 정말로 그렇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니까, 이십삼년 뒤에 외롭게 되는 건, 외로운 저녁들이 오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삶은 길고, 동네 카페 같은 곳은 아주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지만 전혀 영원한 곳이 아니었으니까. 영원히 그 자리에 있어 세미의 저녁들의 어둠을 몰아내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건 동네 카페가 아니라 세상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좋은 일은 어둠이 닥쳐오지 않은 몇몇 저녁들에만 일어나는 것이라면..

“영훈아.” 세미는 거의 은비만큼 엄숙하게 말한다. “일단 그 말, 꼭 은비한테도 해줘.”

“.. 무슨 말?”

“무슨 말이냐면.. 아니야. 내가 직접 할게, 다음에. 다음 괴물은 꼭 그애한테 부탁할 거니까.” 기적적으로 열이나 플라스틱을 먹는 괴물이 발견될 날을 기약하며 세미는 말한다. “그리고 얘는, 여기.”

“지금 주는 거야?”

“응. 쇼핑백은 없어도 되지? 너도 집 요 앞이니까.”

영훈은 세미가 건넨 괴물을 생각보다 아주 소중하게 안아든다. 이십삼년이 지나고 그보다 더 긴 세월이 지난 후에도 세미는 가끔 그 저녁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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