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해저도시 타코야키

2021.01.20 19:5801.20

 

상체만한 크기의 자석 손잡이를 양손으로 단단하게 잡고 사방으로 열심히 움직였다. 그러면 벽 바깥에 있는 자석이 따라 움직이며 벽에 생긴 물때를 제거한다. 보이는 거라고는 어둠 위로 반사되는 내 모습뿐인데, 왜 이렇게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어두운 바다에서 시선을 뗄 수 없는 건지 모르겠다.

여기는 죽은 바닷속에 있는 해저도시 태양, 나는 돔 벽 청소부다.

 

 

해저도시가 만들어진 이유는 어떠한 과학적인 걸 뽐내고 싶어서라거나 우주에서 외계인이 침략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다. 인공자궁 속에서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게 있었다. 인간은 너무 많은 걸 욕심냈고, 그로 인해 지구가 죽기 직전이었으며, 인간들은 세대선이나 우주정거장 혹은 다른 행성을 테라포밍해 이주하려고 했으나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 깊은 바닷속에 온전한 해저도시를 만들었다고 했다. 온나라가 한마음 한뜻으로 해저도시를 만들고 누가 들어가냐 선별하기 위해 싸우고….

몇 개의 도시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는 모르겠다. 예전에는 가끔 진동을 보내 교류했다고는 하는데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그마저도 하지 않은지 오래라고 했다. 어쩌면 모든 해저도시가 다 죽고 이곳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다른 도시도 자신들이 마지막 해저도시라고 생각하며 생을 이어갈지도 모른다.

바닷속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바다를 피부로 느껴본 적은 없다. 바다를 느끼려면 돔이 깨져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돔은 깨지지 않고 바다와 도시를 완벽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그 누구도 나갈 수 없고 그 무엇도 들어올 수 없는 투명한 돔. 때때로 우리는 안전하게 밀폐된 돔 안에서 멸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보다 오래 살겠지.

청소부는 태어난 날부터 청소를 시작해 죽는 날까지 청소를 한다. 다른 청소부가 있는 걸 알고 있지만 각자 맡은 구역이 있기 때문에 아주 우연히, 그 날따라 각자 맡은 구역 끝자락을 청소하지 않는 이상 마주칠 일이 없다. 때때로 다른 청소부도 나처럼 이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고, 대화를 하고 싶지만 실행에 옮기는 건 어렵다.

최대 수명은 3년이고, 하는 일은 자석을 잡고 닦는 것뿐이라 일에 대해 말할 것도 없고, 음식을 나눠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생식기관이 있어서 섹스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청소부의 탄생목적은 오로지 청소뿐이다. 이럴 거면 로봇을 만드는 게 낫지 않나 싶지만, 해저도시에서는 당연히 전기가 매우 귀하다. 로봇을 충전시키는 전기보다 인간을 인공배양하는 게 훨씬 더 싸게 먹힌다. 식량도 조금만 먹고 사고도 일으키지 않고 평생 청소만 하다가 다시 다음 인공인간의 재료가 되기 위해 제 발로 공장으로 돌아가니 돔 중심부 인간은 얼마나 편할까.

다른 청소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청소부를 만들 때 필요한 세포는 죽은 청소부에게서 가져오는데, 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청소부들의 세포가 혼합되어 융합하고 성장하면서 본능처럼 알게 되는 게 많았다. 불합리, 불공정, 불평등, 시원한 바람, 태양, 꽃, 사랑, 대화, 체온, 책, 음악…. 그게 못내 괴로웠고 때때로 미칠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받아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내가 담당하는 구역, 돔 벽 바깥에 있는 게 물때가 아니라 어떠한 생명이라는 걸. 아주 희미한 빛을 띄고 있는 무언가는 점점 자라고 있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지만 너울지는 옷자락처럼 모양이 예뻐서, 어쩌면 이게 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도, 꽃은 지상에서 자라는 건데 이건 뭐지, 하고 어렴풋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청소부의 본능은 저걸 어서 치우라고, 무거운 자석으로 있는 힘껏 밀어버리라고 말하지만, 나는 손을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바라만 본다. 다른 청소부였다면 저게 뭔지도 모르고 바로 청소해버렸겠지. 저게 돔 벽을 무너뜨릴지도 몰라, 아니야 그저 붙어만 있는 것뿐이야, 아주 작고 가녀린 빛을 내면서. 생각과 생각이 싸우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나는…나는 왜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냥 이게 아름다워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빛나지 않았더라면 나도 이게 뭔지 몰라서 청소해버렸을 수도 있다. 이건 바다가 죽기 전에는 빛나지 않았지만, 죽은 바다에서 살기 위해 빛을 내뿜게 된 걸 수도 있다. 이게 진화라는 걸까? 마치 내가 청소본능 외의 것을 알게 된 것처럼?

돔 벽은 아주 두꺼워서 손을 대도 바깥의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본 적도 없는 돔 중심부보다는 훨씬 가깝다. 바다는 죽은 채로도 다정하며 바라보고만 있어도 비어있는 마음을 채워준다. 차라리 바다에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입으로 허밍을 하며 양팔을 위로 올리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흐물흐물 움직여본다. 팔을 양옆으로 벌려 위아래로 휘저어도 본다. 돔 벽 위로 비치는 내 모습이 마치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모양새 같아 웃음이 나왔다. 한들거리는 손가락 사이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 같아 움직임을 멈추고 돔 벽에 달라붙었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바깥을 살펴봐도 보이는 건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빛무리가 진 걸 잘못 본 걸까? 괜히 손가락을 들어 까닥여봤지만, 보이는 건 내 손가락밖에 없었다. 손을 든 김에 자라나고 있는 무언가를 쓰다듬는 흉내를 냈다. 나는 허공을 만지지만, 내 모습은 아주 애틋하고 섬세하게 생명을 쓰다듬었다. 이파리 하나하나 주름 하나하나 매만지고 쓸어보고 잘 자라고 토닥인다. 그러면 만져지지 않는 게 손가락에 스친 듯 선명하고 예리하며 덧없는 느낌이 난다.

“너나 나나 시한부지만, 죽기 전까지 열심히 살아보자.”

생명 주변의 물때가 물때인지 씨앗인지 알 수 없어서 청소를 하지 않았더니 점점 더러워지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주변은 평소보다 더 깨끗이 닦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청소하고 싶다는 본능을 억누르며 자석을 온 힘을 다해 밀어 바닥에 내려놨다.

 

집을 향해 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처음 맡는 냄새가 났다. 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냄새였다. 나도 모르게 냄새의 근원을 찾아갔다.

옛날에는 사람이 많았는지, 아니면 미리 건물을 만들어둔 건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얼마 없는 외곽에도 건물은 많았다. 이리저리 골목을 돌고 돌자 딸랑딸랑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경쾌한 방울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골목 하나를 돌아나간 순간 마침내 마주쳤다. 태양, 이건 태양이 분명했다.

해저도시는 에너지를 아껴야 하기 때문에 어두컴컴했다. 물론 돔 중심부, 돔 안의 돔 쪽 상황은 모르지만, 돔 안에 빛은 없었다. 청소부는 어둠 속에서도 시야확보를 할 수 있게 개량되어서 청소하는데 아무 이상 없었지만.

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빛에 너무 눈이 부셔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눈이 타들어갈 것 같은데도 온몸으로 느껴지는 빛으로 인해 자리를 떠날 수가 없어 가만히 서 있었다.

“어서오세요! 가까이 와서 구경해도 괜찮아요. 아, 너무 밝아서 그렇군요.”

빛이 점점 사라지더니 돔 벽에 붙은 생명처럼 희미한 빛만 남았다.

“에너지를 낭비하면 안 돼요. 바다가 더 뜨거워지지 않도록 아껴야 해요.”

빛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지만 걱정되었다. 지구가, 바다가 죽어가고 있어서 바다로 도망쳐 왔으면서 사람들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바다를 데우고 있었다. 돔 벽때문에 수온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을 터였다. 빛나는 식물이 열기로 죽어버리면 어쩌지, 초조하기까지 했다.

“…맞아요. 보통 밝은 빛을 보면 아주 많이 좋아해서, 바다에 나쁜 일인 줄 몰랐어요. 미안해요.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반성하는 말을 듣고나서야 안심을 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누군가가 트럭 위에서 앉아있었다. 동그란 반원이 가지런히 파진 까만색 틀이 두 개 있었고, 그 옆 틀에는 자글자글 익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노릇노릇하고 익어가는 동그라미. 막대기를 휘두를 때마다 튀어나가지도 않고 그 안에서 데구르르 구르고 있었다. 트럭도, 눈앞에 있는 것도 다 처음 보는 것들이지만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타코야키.”

“제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타코야키를 아는 분은 손님이 처음이에요. 타코야키 드실래요?”

여기서 살면서 저렇게 밝고 환하게 웃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웃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몸이 간질간질한 느낌이었다.

“전 드릴 게 없는데요….”

자석은 돔 벽 바닥에 잘 붙어 있고, 에너지바는 집에 있고, 설사 지금 가지고 있더라도 이걸 에너지바로 사려면 몇 개나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필품을 받고 일하는 것도 아니라서 정말 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돈 받고 파는 게 아니니까 괜찮아요. 조금 있으면 완성이니까 기다려주세요!”

사장님은 웃으면서 부지런히 막대기를 돌려 타코야키를 뒤집었다. 동글동글. 이렇게 완벽한 타코야키는 처음 보는 것 같다고, 내 몸을 이루는 세포가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걸 먹을 수 있을까? 청소부의 몸은 에너지바만 먹고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다른 걸 먹으면 괜찮지 않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집으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데굴데굴 판 안에서 돌아가는 타코야키를, 가볍고 경쾌하게 손목을 흔드는 사람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딸랑딸랑, 작은 방울소리가 텅 빈 건물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타코야키를 어디서 본 적 있나요?”

“아니요. 처음 봐요.”

“이 돔 사람들은 보통 뭘 먹어요?”

“저는 청소부라서 다른 사람들이 뭘 먹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청소부?”

목소리에는 의아함이 담겨있었다. 청소부를 모르는 건가? 돔 안의 돔 사람은 청소부에 대해 모르나? 무엇을 위해 태어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지만, 나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돔 벽 청소만을 위해 개량한 인간이요. 대소변도 보지 않고 땀도 흘리지 않는 편리한 인간. 아, 침은 나와요. 침은 도로 삼켜서 체내수분량을 맞추니까 물을 마실 필요도 없어요. 일종의 순환구조죠. 시간이 지나면서 체내수분량이 서서히 줄어들어 죽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요.”

“그게 무슨…….”

“돔에서는 뭐든지 부족하잖아요. 이 돔이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을 바닷속에서 어떻게 구하겠어요. 돔이 만들어질 때 챙긴 물품들을 계속 소모해야 하는데, 소모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저 같은 개량 인간이 필요했던 거겠죠. 돔 안의 돔은 어때요? 정말 음식을 만들어 먹나요? 인간이 인간을 뱃속에 품었다가 낳아요? 다 건강하게 태어나나요? 몇 년까지 살 수 있어요?”

아기가 태어나서 자랄 때까지 드는 에너지와 노인이 죽지 않고 사는 에너지 중에 뭐가 더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약도 없을 테니 태어나서도 많이 죽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청소부도 탄생 전에 녹아내리기도 하고, 태어났는데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다시 재료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죽으면 어떻게 처리할까. 청소부의 재료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남아도는 공간은 많고 사람은 적으니 빈 건물에 처리할 수도 있겠지.

외곽 공장에서 태어나 늘 외곽에서 떠돌며 혼자 상상하고 무너뜨리고 추론하고 고개를 흔들거나 그럴듯하다고 감탄했지만, 모든 건 내가 혼자 생각한 것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내가 명확하게 아는 건 두 가지였다.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남은 시간도 열심히 청소를 해야 한다는 것.

돔 안의 돔에 사는 인간을 만난 기념으로 궁금했던 걸 해결하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말이 없었다.

“그럼 당신은 뭘 먹고 살아요?”

“에너지바요. 아무 맛도 안 나요. 공장에서 나올 때 150개를 받아와서, 자고 일어나서 야금야금 먹어요. 남은 에너지바는 공장으로 돌아갈 때 들고 가요.”

일주일에 한 개씩이라는데 자고 일어나면 잠깐 잔 건지 하루가 간 건지 알 수 없어서 눈 뜰때마다 조금씩 먹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청소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긴, 많이 살아도 3년밖에 살지 못하는 청소부에게 맛이란 사치일 터였다.

“사장님은 뭘 먹어요?”

“내가 먹는 것도…별로 맛없어요. 통조림이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열어보니 대부분 상했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만들고 있어요.”

돔 안의 돔에 산다고 다 좋은 것만 먹는 건 아닌가 보다. 사장님은 일정한 박자를 유지한 채 타코야키를 뒤집었다. 사장님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딸랑, 딸랑 규칙적인 소리가 났다. 나도 모르게 일정하게 울리는 방울 소리에 맞춰 허밍을 불렀다. 라라라. 가사는 없지만 그건 노래였다. 빙그르르 돌고, 손을 위아래로 둥글게 말고,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포대자루에 머리와 팔을 뺄 수 있는 구멍만 낸 옷이라 움직임에 제약이 있었지만 날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박자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사장님은 타코야키를 굽는 것도 멈춘 채 내 움직임에 맞춰 방울을 흔들고 있었다. 타코야키가 까맣게 타서 연기가 나고 있는데 그게 마치 나를 위한 특수효과처럼 느껴져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웃음을 따라 낮게 깔리는 웃음소리가 섞이자 그것 또한 하나의 음악 같았다. 연기에 눈이 매워 자꾸 침이 나왔다.

사장님은 눈이 맵지도 않은지 춤을 추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연기 속에서 사장님의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눈빛이 마치 빛나는 식물을 떠올리게 했다. 연기와 조명과 눈이 매워서 보이는 착각이 어우러져 사장님이 신비한 존재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시선을 받는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아,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리고 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럴 리 없는 게 분명한데도.

 

“와…, 정말, 정말 아름다워요…. 이렇게 움직이는 건 처음 봤어요.”

“나도, 나도 이렇게 노래하고 춤을 춘 건 처음이에요….”

“움직이느라 힘들었을 텐데 이것 좀 먹어…아 다 탔지. 기다려봐요. 금방 만들어줄게요.”

그러더니 틀에 네모난 걸 문질렀다. 달궈진 구멍마다 액체가 고였다. 고소한 냄새로 벌써부터 침이 고였다. 그 위에 바로 주전자로 반죽을 붓자 치이익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방울 소리와는 또 다른 자극이었다. 서서히 익어가는지 반죽이 올록볼록했다. 사장님은 원 하나하나에 뭔가를 넣고 뿌렸다. 그 후 반죽을 틀이 다 덮일 정도로 부었다.

“이게 뭔지 알아요? 이건 톳이에요. 먹을 때 톡톡 씹히는 게 재밌을 거예요. 나는 파보다 이게 더 맛있더라고요.”

파니 톳이니, 무언가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먹을 걸 만들어주니까 좋기는 하다.

타코야키가 노릇노릇 골고루 익을 수 있도록 막대기로 굴리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넋 놓고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사장이 말을 걸었다.

“이름은 있어요?”

“문-AT0914. 그게 내 코드번호예요.”

“문? 신기하다. 이름이 있는 청소부는 처음 봐요. 문이라고 불러도 돼요?”

“네.”

“내 이름은 루나예요. 그거 알아요? 문과 루나는 다 달을 뜻해요. 그러니까 손님이랑 내 이름의 본질은 같다는 거죠.”

사장님 덕분에 내 이름이 달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하늘 위에 떠 있는 달. 해저도시 태양에서 어둠 속에 외곽을 빙글빙글 돌며 청소하는 문. 딸랑딸랑 소리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타코야키. 여기서 달을 만난 건 운명인 걸 아닐까?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신기하죠? 저도 신기해요.”

“A는 A형 체형에 T는 할당된 구획명. 숫자는 그동안 만들어진 청소부 숫자. 문은, 문어에서 따온 문이래요. 달님이 생각한 것처럼 그런 신기한 거 아니에요.”

“문어요?”

잘 보일 수 있도록 희미한 빛 아래 팔을 내밀었다. 의식적으로 조절하자 피부의 색이 변하며 빨판이 다닥다닥 올라왔다.

“문어. 도구 없이 위로 올라가 청소할 수 있어요.”

루나가 내 팔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지만, 재빨리 팔을 내리고 빨판을 없앴다. 미련이 남았는지 계속 내 팔만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거 없었는데.”

“문어 세포를 융합했어도 이렇게 되는 건 드문 일이니까요. 아가미로 호흡하거나 피부로 호흡하는 청소부도 있다는데, 여긴 물속이 아니니까 소용없죠. 아, 타코야키. 문어. 난 나를 먹는 건가요?”

“…괜찮아요. 문어는 문어를 잡아먹기도 해요. 배고프면 자기 다리를 먹기도 하고.”

“그럼 안 죽어요?”

“시간이 흐르면 재생되거든요.”

“신기하네. 루나를 만나지 못해 배고플 때, 내 몸을 먹으면 재생이 될까요?”

“음…. 문은 온전한 문어가 아니니까 안 그러는 게 좋겠어요. 배고프지 않게 내가 타코야키 많이 만들어줄게요.”

“혹시 청소부가 에너지바 대신 음식을 먹었을 때 어떻게 되는지 실험하는 거예요?”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문이 맛있는 음식을 따뜻할 때 먹으면 좋겠어서 그래요.”

루나는 웃는 얼굴로 다정한 말을 하고 있었다. 웃는 얼굴도 다정한 말도 다 좋아서 혹시 이게 꿈이라는 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나는 꿈을 꿀 수 있게 설계된 게 아닌데도. 공장에서 태어나 정보를 입력할 때 말고는 이렇게 말을 많이 한 것도 처음이었다.

“다 됐다.”

루나는 커다란 접시에 타코야키를 착착 담더니 소스를 뿌리고 가쓰오부시를 넉넉하게 올려 내게 건네주었다. 접시를 내려다보니 가쓰오부시가 타코야키의 열기로 인해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었다.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자 웃음소리가 들렸다.

“신기해요?”

“네.”

“먹어도 돼요.”

“혹시 내가 죽거든….”

“죽지 않아요. 나는 문을 죽게 하지 않을 거예요.”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근거 없는 말인데도 믿고 싶었다. 살아서 또 노래하고 춤을 추고 싶었다. 빛나는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돔 너머의 바다를 상상하고 싶었다.

손으로 집자 뜨거웠다. 그래도 참을 수 있는 온도라 그대로 입에 넣었다. 한 번 씹자 뜨거운 반죽이 입안으로 흘러넘쳤다. 본능적으로 호호 공기를 불어 입안에 있는 열기를 식혔다. 태어나서 처음 먹는 따뜻한 음식이었다. 안에 있는 문어가 쫄깃했다. 씹으면 씹는 대로 부서지지 않는 게 신기했다. 달콤하고 따뜻하고 고소하고…. 눈물이 나올 것처럼 코끝이 찡하고 목이 메였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는 건 수분을 낭비하는 일이다. 눈물처럼 새어 나온 침과 함께 타코야키를 삼켰다.

처음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은 너무 맛있어서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이런 맛을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먹어본 건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에너지바는 매우 딱딱하고 씹으면 버석거리며 침하고 잘 섞여서 입안에서 걸죽하게 만들어야 먹을 수 있었다. 삼키고 나면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불쾌한 향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내가 이걸 한 개 더 먹고 나면, 앞으로 에너지바를 먹을 수 있을까? 내가 하나만 먹고 가만히 내려다 보고만 있자 사장님이 말을 걸었다.

“맛없어요?”

“맛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또 먹고 싶을 만큼….”

“또 먹으면 되죠.”

“한 개 더 먹으면 에너지바를 먹지 못할 것 같아요.”

“걱정 마요. 내가 많이 만들어준다고 했잖아요. 따뜻할 때 먹어요.”

연약한 불빛 아래에서 웃고 있는 사장님을 바라봤다. 아주 다정한 눈빛이라 나도 모르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수상하고 이상한 사람인데, 싫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했다.

하나 또 하나…. 나는 천천히 접시 위에 있는 타코야키를 씹고 목구멍으로 넘겼다. 삼킬 때마다 따끈한 무언가가 몸 가운데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가득 차서 무거웠다. 이게 배가 부르다는 거구나. 텅 빈 접시를 내려다보다가 접시에 묻은 소스를 혀로 핥았다. 침이 너무 많이 나와 입 밖으로 흐를 것 같았다.

“잘 먹어서 다행이에요.”

“보답하고 싶은데, 줄 수 있는 게 옷뿐이에요. 이거라도 벗어드릴까요?”

“옷을 주면 손님은 뭘 입고요?”

“알몸으로 다니면 되죠. 괜찮아요. 근처에 아무도 없어요.”

사장님은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있었고, 이런 자루 같은 옷이 필요 없겠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고, 방울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고, 따뜻하고 맛있는 타코야키를 배부르게 먹었다. 이건 돔 벽에서 빛나는 식물을 발견했을 때처럼 기쁘고 행복한 일이었다. 나는 보답을 하고 싶었다.

“괜찮아요. 맛있게 먹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래도….”

“아름다운 노래와 아름다운 춤을 볼 수 있어서 기뻤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건…바다가 이 모양이 되고 처음이에요.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요. 계속 맛있는 걸 먹게 해주겠다고.”

“정말요?”

“손님은 제가 수상하지 않아요?”

“뭐가요?”

“해저도시에서 어떻게 이런 걸 타고, 이런 걸 만들 수 있는지. 이상하지 않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야 이걸 처음 보긴 했지만 뭔지 알고 있어서 먹었지만, 다른 청소부들은 먹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에너지바만 먹고 살겠지.

“돔 안의 돔 사람이잖아요. 돔 안이 궁금해서 나온 거 아니에요?”

“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왔어요. 더 만들어주고 싶은데, 지금은 재료가 없네요. 내일은 더 많이 만들어줄게요. 내일 봐요!”

사장은 빠르게 움직여 정리를 하고는 운전석으로 이동해 시동을 걸었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싱그럽게 웃고는 이내 사라졌다.

“내일…내일이 언제인지 모르는데…….”

 

오늘도 어제와 다를 게 없는 하루다. 눈을 떴는데 일어날지 더 잘지 고민했다. 늦잠을 잔다고 해서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전에는 청소를 제대로 하는지 점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불시점검으로 바뀌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점검한 적은 없지만.

오늘은 오늘일까, 내일일까. 내가 얼마나 잤는지 알 수가 없으니 오늘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르겠다. 타코야키, 맛있었는데. 배가 터질 것처럼 먹었지만 배는 터지지 않고 죽지도 않았다. 몸에 흡수되지 않아 타코야키가 뱃속에 계속 들어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지만, 배를 만져보니 평소처럼 쏙 들어가 있었다. 배출기관도 없는데 다 어디로 간 걸까. 얼굴을 주무르고 팔도 만져봤지만 이상한 부위는 없었다. 몸이 멀쩡하니까 또 먹고 싶었다. 바닥에 누워서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은 빛나는 식물을 보러 가자. 에너지바를 꺼내 오늘치 분량을 깨물었다. 마르고 퍽퍽한 에너지바를 씹자 입에서 침이 흘러나오며 질척해졌다. 이제 목구멍으로 넘기기만 하면 되는데 역했다. 타코야키를 먹은 후 든 생각이 맞았다. 나는 이제 이 에너지바를 먹을 수가 없었다.

고민하다가 집 밖으로 나가서 입안에 든 걸 뱉었다. 타코야키 사장님을 만나지 못하고, 무언가를 먹어야 할 때 이게 필요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더 일찍 죽을지언정 에너지바를 먹고 싶지 않았다. 그 길로 일을 하러 걸었다. 어제 타코야키 트럭을 봤던 곳을 지나쳐왔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직 내일이 아닌가. 일하고 오는 길에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몇 번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루나를 만나지 못했다. 나도 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부지런히 움직였다. 확실히 내가 공장에서 나와 처음 일할 때보다 물때가 더 많이 생긴다. 돔은 넓고 청소부는 점점 줄여나가는 추세라서 내가 맡은 구역이 많아 매일매일 청소하지 못해서 그런 건지 몰라도, 자석을 움직이면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 물속을 둥실둥실 떠도는 게 보였다.

돔 벽에 달라붙을 생각을 하자 다리와 팔 피부 위로 빨판이 생겼다. 손으로는 자석을 잡고 다리와 팔을 돔 벽에 붙인 채 위로 올라갔다. 자석의 힘이 강했지만, 벽에 붙어 있는 힘이 더 강해서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뒤를 돌아보자 돔 중심부가 보였지만 투명하게 만든 돔 벽과는 달리 안이 보이지 않았다.

돔 안의 돔은 어떤지 상상하려고 해도 사소한 힌트도 없으니 매번 상상이 바뀐다. 저긴 환한 빛이 있어서 책을 읽을 수 있을 거야, 따뜻한 음식을 먹고 살 거야, 옛날부터 살던 사람이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을지도 몰라, 나중에 돔이 깨진다면 안의 돔만 둥실둥실 떠서 살아날 수도 있겠지. 무슨 상상을 해도 다 좋은 것뿐이다.

돔은 아주 넓어서 높은 곳에 있어도 돔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가운데 있는 돔을 중심으로 높고 낮은 건물들이 계획도시처럼 깔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전기가 귀해 엘리베이터는 아예 만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가운데에 가까워질수록 건물 층수가 낮아졌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외곽으로 빠지고 높은 곳에 살았다. 지금은 빈집이 하도 많아 어디든 살 수 있겠지만. 귀하고 중요한 게 있거나 방해받고 싶지 않으면 높은 곳에 있는 집에 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아주 가끔 높은 건물 창문에서는 희미한 빛이 흘러나왔다. 책을 보고 있는 걸까? 그저 빛을 바라보고 있나? 옷이나 음식을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몰라. 홀린 듯이 그걸 보고 있으면 거기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욕을 하고 어떤 사람은 무생물 보듯 무시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조금 괴로웠다. 이런 생각이니, 사색이니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빛이 나는 창문이 없었다. 천천히 내려오는데 외곽 쪽에서 희미한 빛이 나고 있었다. 조용한 어둠을 타고 딸랑거리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타코야키! 나는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재빠르게 내려와 빛을 향해 뛰었다. 은은한 조명 덕분에 눈부심 없이 트럭 앞에 도착했다.

“문, 오늘은 같이 트럭을 타고 돌아다녀 볼래요? 앞에서 문이 먹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호기심에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청소부들도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아요? 내 것도 있어요?”

“당연하죠. 문이 먹을 건 많아요.”

사장님이 미리 만들어 둔 타코야키를 건넸다. 나는 그걸 소중히 든 채 트럭에 올라탔다. 루나도 운전석에 탔다. 희미한 조명이 트럭 앞을 비추고, 우리는 거침없이 달렸다. 나는 창문을 연 채로 타코야키의 냄새가 멀리멀리 퍼지길 바랐다. 실은 타코야키를 먹고 나서 죽어버린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청소부들이 다 죽는다면 새로운 청소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과연 누가 청소할까.

태어났을 때 백지가 아니라는 건 꽤 곤란한 일이었다. 초장기의 청소부들은 육체 능력이 개량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두꺼운 돔 벽 너머의 자석으로 청소를 하는 게 매우 힘들었다. 허리 어깨 무릎 목 남아나는 곳이 없어서 3년 정도가 되면 쓸모없어져 처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의 수명이 3년인 게 그때 혹사당한 세포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간혹 반항하는 청소부, 다른 이들과 힘을 합쳐 시위하는 청소부도 있다고 했지만 그 끝은 새로운 청소부의 재료였다. 도망갈 곳도 없으니까 잡히는 족족 공장에 들어가 새로운 청소부가 되고, 다시 모든 게 0인 상태에서 시작해 청소를 하고…. 나도 그랬으면 편했을까?

외곽 쪽으로 돌자 벽에 붙어 청소하고 있는 청소부가 보였다. 루나는 트럭을 세우고 재빨리 타코야키를 만들고 나는 그 앞에서 타코야키를 먹었다. 청소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청소만 하고 있었다.

“이게 뭔지 궁금하지 않아?”

“난 청소 해야 해. 넌 청소 안 하고 뭐 해?”

“타코야키라는 건데, 따뜻하고 맛있어.”

“그러면 안 돼. 우리는 에너지바만 먹어야 해. 안 그러면 고장 날 수도 있어.”

“…내가 계속 먹었는데 괜찮았어. 청소도 했는걸.”

“나중에 이상할 수도 있잖아.”

청소부는 고집스럽게 대답했다. 저게 맞는 반응이긴 했다. 청소부를 만드는 게 로봇을 만들고 관리하는 것보다는 훨씬 편하지만, 그렇다고 고장나거나 죽으면 곤란하긴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저렇게 만들어졌으니까, 내가 이상한 거겠지.

나는 청소부를 잡고 알맞게 식은 타코야키를 입에 억지로 넣어주었다. 청소부는 뱉으려고 했지만, 입안 가득 퍼지는 따뜻함과 달콤짭짤한 맛에 침을 흥건하게 흘리며 입을 오물거렸다.

“침은 삼켜야지, 나중에 힘들어져.”

“이상, 이상해….”

“이상한 게 아니라 맛있다고 하는 거야.”

이처럼 먹지 않는 청소부들 한 명 한 명에게 타코야키를 입에 넣어주며 외곽을 모두 돌았다. 돌고나니 이 넓은 돔 벽을 청소하는 청소부 수가 많지 않았다. 이 시간에 모두 깨어있는 게 아니니까 더 있겠지.

 

우리는 꾸준히 외벽을 돌고 또 돌았다. 내가 깨어있는 시간과 루나가 타코야키를 만드는 시간이 맞지 않아 못 만나는 때도 있었다.

루나는 이제 내가 없어도 타코야키를 만들어 다른 청소부들에게 먹인다. 타코야키가 익어가는 냄새, 방울이 딸랑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근처에 있던 청소부들이 찾아온다. 틀도 세 개 다 사용한다. 청소부들은 에너지바만 먹고 살았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이 먹어서, 이제 루나는 한 사람당 다섯 개씩 주고 있었다. 모여있는 사람들이 순서대로 다 먹으면 더 먹을 수 있어서, 청소부들은 타코야키를 먹었어도 돌아가지 않고 줄을 섰다. 타코야키 트럭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외벽 청소나 할 일도 뒤로 한 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루나가 나에게만 타코야키를 먹고 싶은 만큼 줘서 많이 먹기도 했고, 타코야키보다 빛나는 식물이 우선이라서 그걸 보러 외벽으로 간 김에 청소를 했다. 외벽을 따라 걷다 보면 투명했던 벽이 지저분해진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본능에 따라 자석을 들고 열심히 청소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빛나는 식물에게 달려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루나는 외곽에서 중심부로 점점 이동하고 있었다. 트럭을 정지하고 만들기 시작하는 포인트가 일정해지자 청소부들은 외곽과 중간부 어중간한 구역을 떠돌며 타코야키의 냄새와 방울소리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냄새를 맡거나 방울 소리가 들리면 근원을 찾아 헐레벌떡 모여들었다. 청소부들이 모여서 뭔가를 먹고 있으니 중간부 사람들도 점차 몰려들어 타코야키를 먹기 시작했다. 청소부들이야 단순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중간부 사람들도 해저도시에서 타코야키를 만드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아니면 이상한 걸 알아도 모른 척 할 만큼 굶주려 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청소부도 중간부 사람들도 체형이 거의 비슷한데, 키는 대체로 중간부 사람이 더 컸다. 3년 이상 살면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한곳에 있는 걸 보니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모두 다 뜨거운 타코야키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신은 무슨 일은 하나요? 나는 청소를 해요.”

“…청소부가 호기심이라니. 불량인가?”

“안녕하세요, 이게 뭔지 알아요?”

“아뜨뜨―! 몰라, 너무 맛있어, 더 먹고 싶어!”

내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욕을 듣지 않으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건물 노후를 관리한다거나, 중심부 돔 외벽을 청소한다는 답을 겨우 들었을 뿐이다. 그게 외벽 청소하는 일보다 더 대단한 일인가 보지, 생각했지만 뭔가 서러웠다.

“표정이 왜 그래요?”

“모르겠어요.”

“타코야키 더 줄까요?”

“아니요. 내가 루나한테만 보여줄 게 있는데 같이 갈래요?”

내 말을 들은 루나는 타코야키를 더 만들지 않고 바로 트럭을 정리했다. 정리하는 걸 도우려고 했지만, 루나가 차 안에 있으라고 해서 앉아 있었다. 청소부들은 얌전히 입맛만 다시며 공터 주위로 퍼져있었지만, 중간부 사람들은 아니었다. 대부분 몸에서 열을 내뿜으며 화를 내고 있었다.

“이봐, 기다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그냥 가겠다고?”

“저런 청소부 말 신경 쓰지 말고, 재료가 다 떨어진 것도 아닌데 더 만들지?”

“돔 안의 돔에서 재료를 훔쳐와서 좋은 일 하는 거 맞죠? 그렇다면 조금만 더 베풀어줘요. 난 아직 못 먹었어요!”

사람들을 말려야 하는지, 루나에게 다음에 가자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차에서 내리려고 안전벨트를 푸는 찰나에 뭔가 아주 환한 빛이 번쩍인 것 같았다. 고개를 처들고 밖을 보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생활하던 본능이 그건 빛이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잘 풀리지 않는 안전벨트를 잡고 낑낑거리고 있는데 루나가 차에 탔다.

“무슨 일이에요? 아까 빛이 반짝였던 거 맞죠? 조명을 밝힌 거예요? 그냥 가도 괜찮아요?”

“그럼요. 내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걸요. 게다가 못 먹었다니, 저기 있는 이들은 모두 타코야키를 먹었어요. 빛나지 않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자, 그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줘요.”

루나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루나가 괜찮다고 했고 사람들도 조용해서 길을 안내했다. 창문 밖으로 보니 모두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자리를 비우지 않은 채 다시 트럭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말이 되지 않는 가사를 지어 부르며 돔 벽으로 향했다. 내 집 근처를 지나고 돔 벽을 옆으로 낀 채 천천히 나아갔다. 이 일대는 내 청소구역이라서 깨끗했다. 돔 벽 위로 비치는 내 모습에 손을 흔들었다.

“여기는 깨끗하네요.”

“내 구역이거든요. 눈 뜨면 청소하고 있어요.”

“보여줄 게 이거예요? 깨끗한 돔 벽?”

차 안은 어두웠지만 루나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루나는 웃으면서 날카로운 말투로 말을 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몸을 찌르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니요. 내려서 걸어가요.”

시동을 끄고 내려서 걸었다. 가는 중간중간 물때가 보였지만 자석이 근처에 없어 청소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루나가 청소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빨리 보여주고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루나는 성큼성큼 잘 따라왔다. 생각해보니 루나가 트럭 밖에 있는 걸 보는 게 처음이었다. 키는 나보다 컸고 머리카락도 길었다. 나풀거리는 머리카락에 정신이 팔려 손을 내젓다가 루나의 팔에 스치고 말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에 괜히 움츠러들었는데, 루나는 아무렇지 않게 내 손을 잡았다. 마음 어딘가가 간질간질했다.

“문은 청소부로 사는 거 어때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왜요?”

“다른 삶이 어떤지 알지 못하니까요.”

“돔 안의 돔을 궁금해했잖아요. 같이 가볼래요?”

“괜찮아요. 거기 가면 이걸 보지 못할 거예요.”

나는 돔 벽 너머를 가리켰다. 빛나는 식물은 어느새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자랐다. 그 옆에는 더 작은 크기의 식물이 가족처럼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이건…….”

루나는 천천히 걸어 돔 벽 앞에 서서 얼굴을 바깥으로 고정하고 있었다.

“신기하죠? 예전에는 손톱만한 크기였는데, 벌써 이만큼 자랐어요.”

“왜 청소 안 했어요? 문은 청소부잖아요.”

루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감격스러운 건지, 화가 난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난 물때를 제거하는 청소부지 생명을 없애는 청소부가 아니에요.”

“이런 걸 없애려고 청소부가 있는 거 아니에요? 이거 때문에 돔 벽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거죠? 이 안에 사는 사람들이 다 죽으면요?”

이제 알겠다. 루나는 화를 내고 있었다. 루나는 좋아할 줄 알았다. 값을 매기지 못할 귀한 식량을 대가를 받지 않은 채 많은 사람에게 주는 행동을 보며 뭔가 다를 거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을까.

“하지만 이런 게 생긴 건 처음이란 말이에요…. 바다가 살아나고 있는 건지도 모르잖아요…….”

루나는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주 무섭고 거대하고 강한 무언가가 내 앞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떨렸지만 두 주먹을 꽉 쥐고 루나를 바라봤다. 루나의 눈이 기묘하게 휘어지는 듯 하더니 돔 벽 바깥에서 자라는 식물을 힐끗 보고 순식간에 가버렸다. 트럭도 두고 간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눈물이 찔끔 나올 것처럼 눈가가 아려왔지만 침만 줄줄 나왔다. 침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삼키며 벽 너머에서 식물을 계속 쓰다가 노래를 불렀다. 나도 모르게 풀썩 쓰러져 잠이 들 때까지 계속.

 

타코야키 트럭은 계속 내 청소구역 안에 서 있었다. 청소부와 중간부 사람들은 타코야키를 찾아 돔 외곽을 어슬렁거렸으나 아무것도 없는 트럭만 발견하고 실망하거나 화를 냈다. 빛나는 식물이 걸릴까 조마조마했으나 트럭에 모든 관심이 쏠린 덕분에 들키는 일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이 넓고 갇힌 공간에 따뜻하고 맛있는 타코야키가 있다는 게 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중심부 사람들은 루나가 자신들의 식량을 훔쳐 만드는 게 아닌지 조사하려고 했다. 루나가 어딨는지 찾으면서 돔 안에 남은 식량을 확인했다. 중간부 건물에도 식량을 보관했는지 나와서 개수를 하나하나 세고, 중심부로 옮길 예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많이 있으면 나눠 먹지….

돔 안의 돔에서 그렇게 다양한 사람이 사는지 처음 알았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사람, 내 허리를 겨우 넘기는 사람, 가슴이 큰 사람, 어깨가 넓은 사람…. 저렇게 다양한 생김새, 다양한 체형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 틀을 얼마나 제작해야 하는 걸까. 인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아기가 태어난다는 게 사실인 것 같았다.

돔 안의 돔, 중심부 사람들은 구역을 정해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조사하는 것 같았다. 청소부들은 일찍 폐기처분당할까 부랴부랴 청소하고 있었지만, 물때는 어느새 두껍게 쌓여 제대로 제거되지 않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청소를 잘 했기 때문에 돔 벽은 걱정 없었으나 문제는 빛나는 식물이었다. 물때는 많이 생긴다고 해서 돔 벽에 어떠한 충격을 주는 건 아니었으나, 식물은 달랐다. 어쩌면 돔 벽에 뿌리를 내리고 자랄수록 금이 가게 할지도 몰랐다. 걸리기 전에 자석으로 밀어버리면 되는데,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루나가 사라진 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내 몸은 서서히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들켜봤자 아주 조금 더 빨리 사라질 뿐이었다.

이제 곧 내가 맡은 구역으로 올 예정이었다.

 

중심부 사람들이 루나를 잡으러 오는 줄 알았는데, 들리는 말로는 타코야키를 더 먹고 싶어서 찾는 거라고 했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동안 중심부에서 타코야키를 만들고 있는 줄은 몰랐다. 트럭은 여기 있는데, 어떻게 돌아다닌 걸까? 돔 안의 돔은 좁으니까 이동하지 않아도 됐던 걸까? 중심부 사람들의 입맛까지 사로잡다니, 루나는 대단했다. 해저도시 태양에서 존재하지 않는 달이 된 것 같았다. 루나는 이곳에서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 나 같은 건 생각나지도 않겠지.

뜬눈으로 바닥에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먹지 못한 에너지바를 관리소에 반납할까 하다가 한쪽에 잘 보관해두었다. 돔 벽을 거울삼아 손에 침을 발라 머리를 정돈했다. 돔 벽에 비치는 내 모습이 창백해 보였다. 금방이라도 흐물흐물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었다.

걸어가는 대신 벽에 붙어 가기로 했다. 빨판을 만들어 위에 붙은 채 이동하는 동안 돔 안의 돔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게 보였다. 이상했다. 다들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마치 돔 벽에서 자라고 있는 빛나는 식물 같았다. 모두 빛이 나니까 이상한 걸 못 느끼는 건가? 눈을 비비고 봐도 보이는 건 똑같았다. 내 몸을 봤지만, 나는 그대로였다. 나만…나만 이상한 건가? 원래 다 빛이 났는데 나는 이제 곧 죽으니까 빛이 나지 않는 걸까?

빛나는 사람들은 중간부 건물에 있던 식량을 옮기는지 무언가를 끌고 와서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빛나는 사람들은 그걸 보고 있기만 했다. 도우려고 해도 감독하는 사람이 화를 내는지 뒷걸음질 쳤다. 몇몇 사람들은 내 구역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오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빛나는 식물을 보려면 서둘러야 했다. 벽에 붙어 가는 것보다 달려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재빨리 내려와 뛰었다.

거의 다 왔는데 불이 들어온 트럭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시동을 켜려고 해도 안 됐던 건데 누가 성공한 건가? 벌써 여기까지 온 중심부 사람이 있던 걸까? 들키지 않기 위해 골목으로 돌아가려는데, 방울 소리와 함께 익숙한 냄새가 났다.

“루나!”

“문, 왔어요?”

트럭 위에서 루나가 날 반갑게 맞아주었다. 루나도 빛이 나지 않았다. 저번에는 아주 무서웠는데, 지금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눈가가 아리면서 침이 고였다. 내가 침을 꿀꺽꿀꺽 삼키자 배가 고파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지, 조금만 기다리라며 열심히 타코야키를 뒤집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잘…잘 못 지냈어요. 나한테 화난 건 풀렸어요?”

“화 안 났어요.”

“그냥 가버렸잖아요. 표정도 무섭게 하고….”

“그때 그렇게 가버려서 미안해요. 문이랑 문이 소중히 지켜온 걸 보니까, 빨리 일을 끝마쳐야 할 것 같아서 그동안 못 온 거예요.”

“그럼 해야 할 일은 다 했어요?”

“네. 문 덕분에 다 했어요. 타코야키도 다 됐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요.”

타코야키를 받자마자 호호 불어 식히고 입에 넣었다. 왠지 문어가 예전보다 더 탱글거리고 반죽이 더 맛있는 느낌이었다. 침이 입안 가득 고이다 못해 입가로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침을 닦았는데도 계속 침이 나왔다.

“돔 안의 돔 사람들이 루나를 찾고 있는 건 알아요?”

“알아요. 그 사람들은 계속 거기 머물면서 만들어주기를 바라더라고요. 내가 싫다고 했더니 날 가두려고 했어요. 날 가둘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루나가 만든 게 너무 맛있어서 그랬나 봐요. 그럼 이 해저도시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먹은 거예요?”

“네.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먹었어요. 그동안 못 온 만큼 문한테만 많이 만들어줄게요.”

“마음만 받을게요.”

“왜요?”

“난 오늘이 끝이에요. 이제 죽어서 새로운 청소부의 재료가 될 거예요. 오늘 죽지 않더라도 돔 벽을 제대로 청소하지 않은 날 보면 폐기처분하려 할 거예요. 루나 미안해요. 나는 마지막까지 빛나는 식물을 청소하지 못하겠어요. 내가 죽으면 루나가 나 대신 청소해줄래요?”

“시간이 이렇게 흐른 줄 몰랐어요. 벌써 그렇군요…. 괜찮아요. 이제 다 먹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어느새 빈 접시였다. 해저도시에 사는 사람이 다 먹어서 괜찮다는 걸까, 내가 이걸 다 먹어서 괜찮다는 걸까. 예전에는 스무 개를 먹어도 부족했는데, 지금은 아홉 개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죽을 때가 되니까 배가 금방 차는 것 같았다.

무언가가 희미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빛나는 식물이 어느새 더 자라있었다. 돔 벽 바깥에서만 자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두꺼운 돔 벽 가운데에서 점점 번지고 있었다.

“자, 이리 와요.”

루나는 내 손을 잡고 트럭으로 이끌었다. 옆자리에 날 태우고 운전석에 앉은 후 빠르게 출발했다.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열고 뒤를 돌아보자 돔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 빛나는 식물 이파리를 타고 똑똑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어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물줄기가 되고, 작은 틈이 돔 전체로 퍼지는 금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트럭을 타고 가운데로 가는 동안 여러 사람과 마주쳤다. 청소부와 중간부 사람, 중심부 사람은 트럭을 보자마자 뒤쫓아 달려왔다.

“타코야키!”

“맛있는 거!”

“거기 서!”

그러나 트럭은 빨랐고 사람들은 트럭을 따라잡을 수 없었으며, 파도는 트럭보다는 느렸지만, 사람들보다는 빨랐다. 물에 휩싸인 사람들은 처음 맞는 상황에 당황에 팔다리를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늘 무기력하게 아무 말 없이 청소하고 타코야키를 먹던 청소부는 물속에서 아가미 활용법을 깨우쳤는지, 생전 처음 보는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난 빨판밖에 없는데….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돔 중심부? 진짜 돔 안의 돔은 안전지대예요? 거기만 똑 떼서 다른 곳으로 가요?”

“살고 싶어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돔 곳곳에서 울러 펴졌다. 악을 쓰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욕설, 웃음소리…. 갖가지 소리는 파도치는 소리에 묻혀 허무하게 사라졌다. 나 때문에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죄책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아니요. 전 죽을 거예요.”

“혼자 죽는 게 억울해서 그걸 내버려 둔 거예요?”

“그런 거 아니에요. 루나한테는 미안하지만…정말 바다가 돌아오는 것 같아서 그랬어요. 돔 밖에는 생명이 하나도 없는데 인간만 살아서 뭐해요? 난 멍청한 청소부라 자세한 건 알지 못하지만, 바다는 계속 뜨거워지고 있대요. 지구가 아파서 깊은 바다로 도망쳐왔으면서, 여전히 해저도시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고 그 열기를 바다에 보내고 있다고 했어요. 이곳에서 제대로 된 자급자족은 불가능하고 인구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죠. 한정된 자원을 아끼려면 인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어요. 인간은 서서히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데 그럴 바에야…바다가 다시 살아나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 하지만 생각해보니까 내가 수명이 길었더라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럼 내게 짧은 생만 허락한 도시 인간들을 탓할래요. 이런 내가 원망스러워요?”

“아니요. 너무, 너무 멋있어요.”

“중심에 살 방법이 있으면, 얼른 가요. 나는 늦었지만 루나는 살아야죠.”

“그래서 가는 거 아니에요.”

“그럼요?”

“다 부수려고 가는 거예요.”

 

외곽 쪽에서는 물살이 너무 빠르고 많이 흘러와서 사람들이 허우적거렸는데,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물이 적었다. 중심부 사람들은 돔 안의 돔으로 들어가기 위해 서로를 떠밀고 잡아당기고 넘어뜨리고 있었다. 태양의 형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비상 탈출용 잠수함 같은 거였나보다. 중심부 사람들은 저런 것도 있었구나. 그런데 저걸 타고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다른 돔? 다른 돔에 들어갈 방법이 있나? 우리는 구멍 하나 없이 철저하게 만들어진 돔 안에서 살고 있었는데. 저런 걸 타고 도망가봤자 더 작은 돔 안에서 갇혀 살다가 죽을 뿐 아닌가?

자기를 닮은 작은 아이도 내팽개치고, 쭈글쭈글한 인간도 넘어뜨리고, 자신만 살겠다고 달려가는 인간을 보니까 내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트럭에서 내려 손을 잡고 걸었다. 무릎 아래 찰박거리는 물의 느낌이 신기했다. 서늘하고 따뜻하고 무섭고 경쾌했다. 그래도 마지막에 루나랑 있어서 다행이었다.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는데 뭔가 이상했다. 미끈거리고 축축했다. 손이 물에 닿은 적은 없는데 왜 이러지? 의아함에 옆을 돌아봤더니, 루나가…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루나의 상체는 그대로였는데, 다리가 아주 크고 길어졌다. 미끈거리고 축축해보이는 다리였다. 개수도 많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더 많아야 할 것 같은데 다섯 개밖에 없었다. 루나의 다리는 매우 크고 통통해서 돔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배를 채울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다리가 얼마나 큰지 내 몸을 휘어 감고도 남아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물살에 휩쓸린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무언가를 잡고 버티려고 했으나, 한 번 꿈틀거리면 제대로 잡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나를 휘어 감은 다리에는 빨판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피부 위로 빨판을 만들었다. 내 것과 비교하니 엄청 크고 아름다웠다. 나를 감고는 있었지만 옥죄지는 않아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손을 뻗어 다리를 매만지자 간지러움을 타는 것처럼 빨판이 수축하고 이완했다.

루나는 천천히 움직여서 나를 자신의 코앞으로 데려왔다. 루나의 눈동자가 까맣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돔 벽 너머로 보는 바다보다 더 까매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너무 예뻐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두 팔을 하늘로 뻗어 하늘하늘 움직였다. 사장님의 눈동자에 춤을 추고 있는 내가 비추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루나가 웃었다.

“이렇게 됐는데도 후회 안 해요?”

“네….”

두 눈을 감자 입술이 맞닿았다. 입안으로 들어오는 혀도 서늘하고 미끌거렸다. 무언가 목 안으로 넘어가는 것 같았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루나의 목을 끌어안았다. 내 팔이 점점 길어지는 게 느껴졌다. 우리의 팔 혹은 다리가 서로 얽히고설켜 한 몸인 것처럼 달라붙었다.

부서진 돔 벽 너머로 갖가지 물고기들이 들어와 헤엄쳤다. 물결 따라 씨앗도 들어왔는지 산호와 해초도 서서히 자랐다. 우주에서 반짝이는 별이 만들어지고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는 것처럼, 어두운 바닷속에서 빛과 함께 인간들이 인간의 몸을 벗어던지고 물고기, 산호, 말미잘로 변하고 있었다. 물이 점점 들어와 목 끝까지 차올랐다. 곧 얼굴 위로 물이 차오르겠지.

돔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다른 돔도 부수어 인간으로 인해 죽은 바다를 인간을 통해 되살릴 것이다. 루나의 다리가 새로 자라나는 동안 내 다리를 써도 되겠지.

온 세상이 바다로 가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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