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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조안 킹 선서

2020.08.23 19:5408.23

이방인이라고 하면 카뮈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겐 어제 죽은 엄마도 없고 방탕한 오늘도 없으며 내일의 장례식조차 없다. 총도 없고 총을 남에게서 빼앗을 생각도 없으니 누굴 죽일 일도 없다. 발사락 사이, 에 대한 번역 논란도 무시한다. 다시 말해 나는 그들의 표현대로 이방인이라기보다는 ‘관람객’에 가깝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을 보고, 체험하고, 손님 대접을 받으며 즐기는 게 관강객, 아니 관람객이 아니고-관관객과 관람객, 또는 이방인이나 손님, 이 중에 어느 게 맞는 지 잘 모르겠다-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곳은, 그래 이곳은 어딘가 이상하긴 하다. 느낌이 그렇다, 그 느낌이 지금 이 순간에까지 지속되는 걸 보면....... 꿈이 계속되면 현실과의 구분이 사라져 마침내 꿈에 혼을 빼앗겨 죽는다는 내 소설의 설정이 생각난다. 이것도 그런 게 아닐까, 의심해본다. 이건 꿈일까. 현실일까. 호접몽도 아니고, 시발.

나는 유서를 쓰라는 종이에 대고 무언가를 끼적이기만 할뿐이다. ‘독자’들이 칼을 갈고, 웃음을 터뜨리고, 쌀을 씻어 밥을 짓는 건 알 수 있다. 발소리가 들린다. 보폭이 짧고 슬리퍼처럼 바닥을 질질 끄는 소리다. 망치다, 망치를 쥔 손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챙겨갖고 온 망치다. 버스에 비상용으로 달려 있는 그 붉은 망치 말이다. 걸음이 멈춘다. 발소리 대신 쇠파이프를 두드리는 망치 소리가 들려온다. 심장이 움츠러들고 온몸의 살결이 버드나무 잎처럼 떨린다.

시대를 앞서간 작가, 세상을 바로 보지 않고 거꾸로 봄으로써 인식되는 21세기 인류.

첫 소설집 홍보문구로 쓰인 표현들이다. 두 번째 표현을 써준 후배 작가가 원망스럽다. 대체 세상을 왜 거꾸로 보며 그럼으로써 인식되는 21세기 인류란 무엇이란 말인가. 워낙에 후장사실주의나 에로티즘이나 모더니즘 따위들을 좋아하던 인간의 표현이라 하면 납득할 수 있기는 하다. 발목을 자르고, 종아리와 허벅지를 절단하면 내게 두 손과 두 눈만이 남는다. 나는 그 네 가지, 만 지켜달라고 애원해보려 하지만 그들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현실에 부닥친다.

망치다. 붉은 망치, 비상용 망치. 홧김에 버스 유리창을 깨버리고 다 죽여 버리려던 망치.

깡, 깡, 깡, 소리의 간격을 재며 내게 남은 삶의 시간을 가늠해본다.

비명은 한숨으로 흐트러지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같은 말에 접히고 펼쳐지기를 반복하는 내 혀부터 그들은 끊어낼 듯하다. 그들은 여기서 사람 대신 ‘독자’라고 불린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뜻, 맞다. 나는 입을 다문다. 살려주세요, 한 마디를 열 마디처럼 비명으로 내지르며.

 

여행기나 비슷한 에세이는 요새 인기가 많으니 몇 쇄는 찍지 않겠느냐고 나는 물었다. 첫 소설집이 대박나자마자 표절 사건에 휘말린 나였다. 이후 두 번째 소설집을 냈지만 평론가들은 자기복제에 불과하다며 혹평을 쏟아냈다. 독자들 역시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김성호 작가를 따라한 것 같다며, 자격지심에 절은 글 투성이라고 평했다. 김 작가는 엄연한 내 후배이다. 같은 대학 같은 과 같은 학생회였다. 스물네 살에 불과했고, 나는 당장 결혼해도 이상하지 않을 스물아홉 살에 등단했다.

후배의 행동 하나하나를 의식하며 무엇이든 캐물으려고 한 게 불쌍해보였는지, 어느 날 술을 사준다며 나를 불러내놓곤 선배한텐 에세이나 여행기? 같은 게 어울릴 것 같아요, 라는 말을 지껄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술잔을 내던졌고 다시는 학교 근처에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자퇴서를 제출하고 영원히 그 이름을 지워버렸다. 앞으로 출간될, 그리고 새로 찍을 쇄에 고향과 학력을 적어 넣지 않겠노라, 표절 해명 인터뷰 자리에서 선언했다. 그건 마치 고귀한 선서와 비슷했다. 일부 독자들은 그런 대담하고도 예술가의 진심이 묻어나는, 선서 같은 말이 마음에 든다며 돌아섰다. 평론가들은 글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표절 사건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 작가와의 인연도 거기서 끝나는 듯했고, 정말 끊어져버렸다. 김 작가는 TV에 몇 번이나 방영된 원시림을 찾아 여행을 갔다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자살이라고, 경찰은 발표했다.

일부 독자들은 농담 삼아 내가 죽인 게 아니냐고 물었다.

등단한 이후의 소망 중 하나였던 독자 사인회를 나는 첫 장편소설을 써냈을 때에야 가지게 되었다. 독자들은, 평론가들은 문체도 그렇거니와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며, 이제 한국문학계의 독보적인 위치에 자리한 작가라고 찬사에 찬사를 덧붙였다. 사인회는 성공적이었다. 애초에 100명으로 제한했던 인원을 200명까지, 나아가 300명까지 확장했다. 사인회가 끝나고 나서 나는 정형외과에 들러 늘어난 인대에 대한 설명을, 앞으로 주의할 점을 들었고 붕대를 감았다. 역사적인 전쟁에서 승리한 뒤 돌아온 미군 병사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슬럼프가 닥친 건 두 번의 사인회를 마친 뒤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글이 써지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특히 글쟁이들에겐 흔한 병 아닌 병 중의 하나지만, 꽤 길었다. 의욕이 썰물처럼 바닥을 드러냈고, 생각은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고인 물에서 맴을 돌기만 했다. 그 무엇도 와 닿지 않았고 책은 10페이지를 넘기기가 무섭게 덮어버렸다. 집중력도 그만큼 떨어졌단 소리다. 기껏해야 소설 플랫폼에서 판타지나 무협소설 따위를 읽는 게 전부였다. 그때마다 드는 죄책감과 혐오에 허덕이기를 되풀이했다. 그런 것들은 소설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비유하자면, 그래, 나 같은 일반 사람들이 동성애와 동성애자들을 보고 드러내는 혐오와 맥락을 같이 했다. 둘 다 더럽다는 점도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여행기를 써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한 건 편집장이었다. 나는 짐짓 놀랐다. 소설 다시 잘 팔리고, 여러 모로 순조로운데 여행...... 기, 라니? 여행기나 에세이는 글로 돈 벌어먹고 싶지만 글은 못쓰는, ‘유사 작가’들이나 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오던 나였다. 거부했으나 편집장은 끊임없이 설득했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겠느냐면서, 내가 슬럼프임을 눈치 채고 직설적으로 지적하면서. 과자를 훔치다 걸린 애처럼 나는 내심 놀랐지만, 표하지 않았다. 그럼, 어디 여행을 가면 좋을까요? 마지못한 대꾸에 그는 김 작가 얘기를 꺼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어쩌다 걔는 거기서 발견됐을까. 내가 알려준 여행지하곤 전혀 다른 곳인데.

불콰한 얼굴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 얘기를 꺼내는 편집장에 짜증이 솟았다.

죽은 애 얘기는 왜 꺼내요. 안 그래도 심란한데다가, 말하셨듯이 슬럼프인 사람한테.

마치 김 작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양 보였는지 그는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했다.

근데 거기가 진짜 알맹이가 크거든. 가본 사람도 적고, 유명한 마경도 있고.

그래도 이유도 없이 갑자기 사람 죽은 데 가기는 좀.......

야,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

편집장이 즐겨 쓰는 관용구에 질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평생 소설만 쓸 거야? 다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좀 대중적이고, 친근하게.

저는 작가예요. 소설을 쓰고, 시를 쓰고. 그 외 것들은 유사문학에 지나지 않는다고요.

자의식 과잉이야, 그거. 정신 차려, 박 작가님.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고, 결정 내리면 알려줘. 다 준비되어 있으니까.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말을 이어나간다.

 

여행을 가게 된 계기는 매우 보편적이고도 드문 논란 때문이었다. 재차 도마에 오른 표절에 ‘여성혐오’ 가 추가되었다. 일부 사람들이 첫 소설집에 심심풀이로 실은 소설들을 여성혐오 소설이라 하며 나를 여성혐오 작가라고 재단했다. 표절은 세 번째 소설집의 단편 두 편이 스티븐 킹을 베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둘 다 부인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전력’이 있는 작가인 이유로. 나와 같은 소설가인 어머니는 한 번 만나자 하더니, 즐겁게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고 점심, 저녁을 먹고 웃고 떠들더니 느닷없이, 나와 의절하겠다고 말했다.

의절이 뭔데요?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되물었다.

너와 인연 끊겠다는 얘기다.

인연을요? 왜요?

너 덮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내 이름 갖고, 글 갖고 낙서질 할 바엔 연 끊는 게 좋아.

낙서질이라니, 내 작품 말하는 거야?

본의 아니게 옛날 버릇대로 반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넌 모르겠지만 내가 여태까지 노망난 작가들하고 막 들어온 애들-신인 작가들-막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몰라? 근데 또 표절이고, 거기에 더해서 이젠 여성혐오 논란이라니. 난 널 그렇게 키운 적이 없는데 왜 너는 그렇게 키워졌니. 네가 꼴페미라고 욕하는 사람들의 선동자도, 시조도, 그런 작가들의 대표도 나인 거 알면서. 몰랐으면 지금 알고, 오늘 논 걸로 네 엄마 노릇은 다 한 것 같다. 작가 대 작가로 다시 만나자.

그리곤 쌩하니 사라져버렸다.

멍하니 식당에 남은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파악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때 불현듯 스친 생각이 여행기였다. 때를 놓치랴, 편집장은 논란이 거세지자 전화를 걸어와 이번에야말로 쉬고 논란도 잠재울 겸 갔다 오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 아닌 제안을 했다. 아무 할 말 없는 나로선 그러겠다고, 뒤늦은 침묵 끝에 대답했을 뿐이었다. 비참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저질렀기에 사람들이 내게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글 쓴 죄밖에 없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멍청한 판단이었고 한심한 작태였다.

출판사를 찾아가자 눈에 익은 편집자 몇이 괜찮으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렇다며, 웃음을 지어보이려 했지만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은 썩은 사과를 베어 문 듯 상해있었다. 편집장은 곧바로 비행기 표와 갈 곳의 정보가 담긴 책자 비슷한 것을 건넸다.

언제 떠나는데요?

나는 남일이라는 마냥 물었다.

이번 주 금요일.

 

비행기를 몇 차례 환승하고 심한 멀미와 복통을 앓은 끝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없었고, 그곳에 관한 어떠한 안내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편집장이 알려준 정보, A4 종이를 몇 번 접은 쪽지 같은 것 외엔. 작은 마을인지, 도시인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편집장이 편집장치곤 꽤 자세히 설명해놔서 무리 없이 나는 그곳을 향해 움직였다.

가는 길은 험난했다. 어떤 표현을 갖다 대도 어색한 길이었다. 아마존이었다.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무엇이 살고 있는지 모를 강, 밤이 되면 쫓기다 맹수에게 잡아먹힐 것 같은 우거진 숲, 인적이라곤 하나도 없는 무지의 공포, 무엇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스릴러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나 <허쉬> 같은 게 생각났다. 하지만 그건 영화이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그것도 자극적인 것만을 좇는 상업영화. 동시에 그런 영화들이라면 충분히 현실에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사람들은, 그것도 교양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보편적인 인간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현실에 갇혀 살 뿐이므로. 그보다 높은 층위의 사람들은 현실이 아니라 곧 현실에 닥칠 ‘미래’를 산다. 내가 한 말 아니다. 어느 예술문학잡지에서 읽은 말이다.

그 말을 쓴 작가는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한없이 걸었고, 그러다 그들을 만났다. ‘독자들’ 말이다. 그들은 가축을 도살해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누가 말한 것처럼, 어느 날 작은 도서관으로 정육점의 일부 공간을 빌려다 썼으며, 지금은 작은 건물들을 다리로 연결한, 하나의 도서관이 되었다고 했다. 리모델링을 해봤자 서툰 솜씨로 벽지를 붙이고 페인트를 칠하고 무너질 듯한 책장의 나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봤자 대학교 도서관 크기쯤 되려나. 도시인지 마을인지 하는 곳은 숲 깊숙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나는 도서관에서 맡을 수 없는 괴이한 냄새, 살이 썩어 들어가는 듯한 악취를 견뎠다.

그들은 그저 환영한다는 소리만 반복했다. 독자들은 많았다. 나는 피부색이 뒤죽박죽인 그들을 보고 얼룩말을 떠올렸다. 왜일까, 그들은 어느 원시부족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현대인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굳이 표현하자면, 백인과 황인의 혼혈? 이어 식인종을-얼룩말은 초식동물인데-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낯익었다. 정글의 법칙이나 아프리카의 눈물, 뭐 그런 대자연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만족’, 또는 ‘원시인’ 아니면 ‘원주민’을 떠올리면 안 된다. 우리네 누가 봐도 우리 편임을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지만 그러한 심증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환대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극진히 대했다. 영어를 하는 한 남자아이가 가이들를 자청했다. 도서관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끝없는 서가로 늘어져있었다. 각종 휴게실과 식당, 화장실, 커다란 스탠드 계단도 있었다. 이따금 공사가 덜 되었는지 철근이나 파이프관이 그대로 노출된 곳도 있었다. 정육점은 도서관 맨 끝에, 작게나마 남아있다는 설명이 그 애의 입에서 이어졌다.

우린 밥과 고기만 먹고 살아요. 조안 킹 작가님이 그러셨거든요.

술 한 잔에 고기 두 점을 곁들이는 걸 최고의 만찬으로 여기는 나로선 반가웠다.

곧 더워질 거예요. 얼른 시원한 곳으로 가고 싶지 않으세요?

라고 내 팔을 덥석 붙잡는 남자애 때문에 얼떨결에 걸음을 재촉했다.

전 한국, 남한, 음, 대한민국에서 온 독자예요. 소설가예요. 소, 설, 가.

남자애에게 재차 말을 건넸다.

나는 마지막으로 힘주어 노, 벨, 리스트, 라고 했다가 롸이터, 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남자애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반짝이는 그 두 눈이 나의 곳곳을 탐했다.

글을 쓰는 당신이에요?

갑작스런 한국말에 나는 놀랐다. 다시금 그 애를 살폈다. 키는 기껏해야 160에 채 못미쳤고, 잘생겼다. 왜 이제야 한국말을 하느냐는 내 물음에 그 애는 북한에서 온 사람인줄 알았다고 답했다. 당신이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린 남자가 그렇게 말했거든요. 북한은 다른 말을 쓸 줄 알았어요. 마안해요. 라는 의미의 영어를 나는 한참 동안이나 분석한 끝에 알아들었다. 괜찮다고, 나는 짧게 토막 난 영단어로 대답해주었다.

글을 쓰는 당신이에요?

다시 한 번 그 애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기대와 달리 우수에 찬 눈빛-진부한 표현이지만 지금의 상태로선 그런 표현밖에 생각나지 않는다-이나 웃거나, 환호하거나, 좋아하는 그런 감정은 볼 수 없었다. 단지 머리를 주억거리며 당신의 글을 보고 싶다고 말한 게 다였다. 괜한 오기에 나는 가방을 뒤져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내 두 번째 소설집을 건넨다. 근데 한국어라서, 읽을 수 있겠어요? 하는 말엔 너희들 정도의 수준으로 내 소설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저의가 다분했다, 내가 생각해도. 남자애는 한참을 고개를 갸웃거리다 땡큐, 한 마디를 한 후 사라졌다. 문득 이런 곳에서 죽게 되면, 죽을 위기에 처한다면 저 남자애가 날 구해줄 거라고 믿었다.

당시의 나는.

어리석고도 현명한 생각이었다.

 

볼 게 많았다. 그들의 옷차림, 문화, 언어, 관습 등 모든 게 막 펼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책 첫 페이지처럼 새로웠다. 굳이 말해보자면 그들은 크롭티와 핫팬츠를 즐겨 입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현대 도시인들을 생각하면 안 된다. 도시인과 원시인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나.

남녀 공유 화장실에서 땀을 씻어낸 뒤 스탠드에 기대앉았다.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꿈을 꾸었다. 나는 불에 타고 있었다. 무서웠던 건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나만이 아니었다. 불에 타는 김 작가가 시야 귀퉁이에 들어왔다. 그는 손가락이 잘려나간 손으로 박수를 쳤다. 나를 마주본 채로, 안녕하세요, 선배님, 이라고 중얼거리며. 비명을 지른 이유는 해체된 그의 얼굴 때문이었다. 살가죽이 사과 껍질 마냥 돌려 깎인 채, 채 돌려 깎지 못한 채였다. 드러난 붉은 속살과 흐르는 피는 일정한 모양의 글자들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내 이름이었다. 박윤식.

그리고 깨니 새벽이었다.

 

나는 점차 도서관의 생활에 익숙해져갔다. 남자애도 간간이 거리에서 마주쳤고, 안부를 물으며, 더해 쓸데없는 얘기를 이어나가며 시간을 보냈다. 독자들은 대개 무표정이었으나 내가 묻거나 다가가거나 인사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해맑은 웃음을 드러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내 논란이,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게 답답했지만 한편으론 남의 일인 것처럼 주변으로 미뤄둘 수 있어 편했다, 안정을 되찾았다. 곧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그러기엔 이왕 멀리 여행 온 거, 확실히 보고 배우고 즐기다 가고 싶었다. 그게 나의 패착임을 깨달은 건 지금 이 순간이다.

나도 모르게 내가 서점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1년 내내 지속되는 뙤약볕 아래, 길거리에서 뜯겨진 책 낱장을 발견한 때였다. 지난 번 남자애에게 여긴 서점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서점은 신성한 곳이에요. 남자애는 그렇게 말했다. 보통 외지인들은 못 들어가죠. 김-정육점의 전기 톱날 소리 때문에 이후의 단어를 듣지 못했다-작가님도 한 번엔 못 들어가셨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들어갈 수 있는데?

선서를 해야 해요.

선서? 무슨 선서?

남자애는 웃기만 했다.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조안 킹 선서요. 이곳의 독자가 되기 위해선, 그리고 작가가 되기 위해선 그 선서를 반드시 해야 해요. 물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누구의 추천을 받아서 심사를 거쳐서 선서식을 갖게 되고, 거기서 다시 살아남아야 하죠.

무한경쟁사회는 어딜 가나 비슷하구나. 복잡하네, 혼잣말을 했다. 우리나라처럼 등단을 해야 작가로 인정해주는 문화하고는 사뭇 달랐으나, 그것이 그들만의 ‘등단’인 거라고 생각하자 자조 섞인 웃음만 터져나왔다. 이미 등단을 했어도 나는 그곳에선 무명이자 아마추어 작가 지망생이었다.

그리고 그 종이, 함부로 버리지 마세요. 여기선 돈이에요, 돈.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오른손에 든 책 낱장을 내려다보았다.

어떤 소설인지, 어떤 작가인지, 어느 정도 양인지에 따라 값어치가 다르지만요.

그렇군. 여러 가지로 신기해서 좋네.

이미 책을 그 애에게 줘버려 남은 책이 없었다. 길을 가다가 또 새로운 광경을 목격한 건, 다름 아닌 동성애자들이었다. 으슥한 곳에서 키스를 하거나 서로의 몸을 애무하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다. 반사작용처럼 치미는 구역질에, 혐오감에 나는 몸부림쳤다. 이런 곳이라니. 이런 곳일 줄이야. 나는 편집장 새끼가 장난을 친 건 아닌지, 갑작스런 의문에 근거를 덧대고 덧댔다. 관련해서 남자애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버젓이 저런 행위를 하게 놔두느냐고.

저런 사람들이 뭔데요?

남자애가 반문했다.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이곳엔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양성애자든 뭐든, 똑같은 독자들이에요.

아니, 내 말은-

그런 편협하고 안이한 인식으론 여기에서 살아남지 못해요.

살아남다니. 표현을 무슨 그렇게 살벌하게 하니.

남자애는 다시 웃었고, 나는 마주 웃지 못했다.

어느 날, 내가 서점을 찾아주겠느냐고, 서가 책들에 숨어서라도 구경하고 싶다고 남자애에게 말했다. 그 애는 난처한 표정을 짓다 이내 알겠다는 듯 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서점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렇지만 외진 곳에 위치해있었다. 나는 무심코 들어가려다 멈칫, 뒤로 물러났다. 나는 남자애의 거창하고도 의문스런 설명에 어디 요새에라도 있나, 싶었는데 다른 익숙한 서점들과 하등 다를 게 없어보였다. 우습고 놀라웠던 건 쇼윈도에 비치된 책들이 죄다 해리포터에서부터 시작해서 김배영 SF작가의 영어 번역본에 이른다는 사실이었다. 온통 그런 책들밖에 없었다. 나는 들어가선 안된다는 남자애의 말을 잊었다.

무작정 서점 문을 열어젖혔다. 무색무취. 들어가자마자 떠오른 표현이었다. 책들은 헌책방처럼 새 것과 헌 것이 뒤섞여 곧 쓰러질 것처럼 쌓여있었다. 주인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뭐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남자애는 주인에게 타이르듯 말을 건넸다. 그러자 주인은 조금은 누그러진 상태로 내게 두 팔로 엑스 표시를 해보였다. 엄중한 경고였다. 그 와중에도 나는 무슨 책들이 있는지 살폈고, 이곳에서 내 책이 팔릴 일은 절대 없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저 따위 책들과 같이 있을 수는 없지.

나는 화를 내는 남자애를 뒤로 하고 서점을 나왔다.

알겠죠? 그러니까 함부로 들어가지 마라고요.

남자애가 통보하듯 말을 꺼냈다.

미안. 쏘리. 쏘리.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요.

남자애가 말을 덧붙인다.

해리포터 좋아하세요?

아니, 전혀. 쓸모없고 무가치하잖아. 그냥 어린애들 동화지, 뭐.

그 말에 남자애가 내 귀 가까이 입을 갖다 댔다. 속삭였다.

후회하실 지도 몰라요.

그 애는 웃으며 내 옆에서 떨어진다.

당신이 증오하는 책들도 당신을 증오해요.

남자애는 말을 남기곤 자취를 감춘다.

나는 가만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맨발로 목재 바닥을 찬다.

시발, 저런 애새끼한테 훈계를 내가 들어야 해? 내가?

발길질에 바닥의 틈이 벌어졌다. 묵은 먼지가 일었다.

 

그날, 예술/문학 서가에서 주운 책 낱장을 발견한 건 짐 정리를 하는 도중이었다. 어딘가에서 뜯겨져 나온 소설임이 분명했다. 이제 놀랍지도 않지만 놀라웠던 건 한국어로 쓰인 책이라는 거였다. 나는 앞뒤가 이어지지 않는 어느 삶의 일부분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수십 차례 읽었다. 거기에 적힌 거라곤 본문 글자들과 페이지 숫자, 그 옆에 붙은 소제목이 끝이었다. 기억해내려 애쓰지만 기억나지 않는 걸 보아 읽은 적 없는 소설이라고 결론 내렸다. 사흘 후면 떠날 예정이었다. 매일 밤마다, 또는 새벽에 그날의 일기를 적듯 단상과 단문을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해서 모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에세이를 쓰거나 여행기를 쓰거나, 그도 아니면 곧 들어올 청탁에-논란이 잦아들었다는 전제 아래-대충 내버릴 생각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 소화기로 문을 내리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 건. 화장실에서 복통을 앓는 채 앉아있던 나였다. 온 몸의 털이 일제히 가시처럼 곧추 섰다. 절로 머리, 특히 양 관자놀이를 누군가가 프레스로 누르는 듯한 통증이 나를 습격했다. 두 손은 옛날 버릇이 나온 것처럼 바르르 떨렸고 문을 두드리는-내리치는 소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감정을 극한으로 몰아붙였다. 누구냐고 물었다. 선생님, 작가님, 저예요.

남자애의 목소리였다.

나는 이 새벽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남자애는 곧 선서식이 시작된다고 했다. 나더러 함께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잠은 이미 모래 전에 달아났다. 내가 머릿속으로 갈까 말까, 치열하게 고민하는 중에 남자애는 몇 마디를 덧붙였다. 지금 가면 쓰시는 책 분량의 절반은 건질 수 있을 걸요. 뒤로 자잘한 웃음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나는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다. 네, 그 애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진한, 그러나 뭔지 모를 감정에 취해있었다. 마저 싸던 짐을 정리한 뒤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바다도 없는데 혹시나 해서 챙겨온 해수욕장 쿨가이 차림이었다. 문을 열었다. 그 애는 한껏 차려입은 모양새였다.

얼른 가요, 작가님.

우리는 선서식이 거행되는 강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언제나처럼 그 애가 조금 앞서 걸었다. 나보다 키도 작고 다리도 짧은 애가 180이 넘는 나보다 어떻게 저렇게 빠른지 의아한 부분이었다. 나는 최대한 곁에서 걸으려고 애를 쓰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해리포터에 대한 막말을 사과한 거였다.

여기 독자들 다 자기 기숙사 있고, 지팡이하고 빗자루도 있고 그래요.

......그런 걸 어디서 구한다는 거야? 이런 곳에서?

아마존(대형 판매 유통 사이트)이요. 아니면 주문을 외우죠. 아씨오, 얍.

나는 그들이 도서관 이외에 머무는 다른 터전이 있다는 걸 그 애에게서 알아냈다. 거기는 이곳 도서관보다도 더 깊숙이, 아마존 같은 곳을 지나서야 나타난다는 것 역시. 때가 되면 안내해드리죠. 거기엔 책이 단 한 권도, 아니 종이 쪼가리도 없어요. 우리는 엄격히 구분하거든요. 삶과, 책을. 우리 독자들은요.

독자, 라. 여전히 자신들을 독자라 칭하는 표현이 낯설고 못마땅했다. 뭔가 있어보이려고 온갖 단어를 붙이다 발견한, 굼벵이 같은 호칭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입을 다물고, 두리번거리며 강당으로 몰려드는 독자들의 수를 헤아렸다. 고등학교 강당을 두 세 개 연이어 붙인 것 같은 이 정도 크기라면, 못해도 이천 명에서 삼천 명은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내린다. 여전히 피 비린내와 쇠 비린내가 풍겼다. 과거의 정육점을 건물이 기억하는 듯.

캠프 파이어와 비슷했다. 장작 위로 솟구치는 거대한 불이 자꾸만 손길을 내밀었다. 나는 한순간에 뇌까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남자애, 그 애의 오른쪽 옆에 앉았다. 세계유네스코재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정육점 사장의 말에 나는 내심 기대 아닌 기대를 품고 있었다. 독자들은 모두 민음사에서 나온 카뮈의 <이방인>을 들고 있었다. 나는 여행을 오기 전에 좋아하는 책 세 권을 골라 챙겨왔는데-내 책을 제외하고-하필 <이방인>은 없고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 무도회>, 스티븐 킹의 <미저리>,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만 있었다. 세 작품 모두 이방인에 관한 내용이 아니던가.

독자들은 끊임없이 떠들었고, 어느 순간 10대로 보이는 남녀 아이들이 책들이 무수히 담긴 거대한 수레를 들고 등장했다. 삽시간에 주위는 고요로 일렁인다.

알지 못할 말들이 내 주위를 넘어 불길 가까이 배회했다.

나는 그 애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구석 자리에 앉은 정육점 사장을 발견한다. 그는 깔끔한 현대인의 옷차림으로 이방인, 책을 든 채 멍한 눈빛으로 사방을 휘젓는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책은 매우 좋은 물건이기도 하지만, 위험해요. 겉모양새부터 안의 내용까지. 글자는 누구나 배워서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책을 ‘소유’하는 건 자격을 갖춘 자만이 가능해요. 전 가진다면 김성호 작가님 책 갖고 싶어요.

찰나, 누군가가 시작, 이라고 영어로 외쳤다.

들리지 않는 총성이 울리자마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아이들이 책을 찢기 시작했다. 한 페이지씩, 찢은 흔적이 지저분하지 않도록 깔끔하게. 완전하게. 무엇보다 빠르게. 종이는 불길 속에서 제 몸을 태웠고 독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누가 더 빠르게 책을 깔끔히 온전하게 찢는가, 불길 속에서 얼마나 빨리 타들어가나, 그것이 중점이었고 독자들은 그것에 광분하며 이해하지 못할 말을 외쳤다.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소리를 지르고 환호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그 분위기를 닮고 싶었을까. 온전한 나만의 세계라 생각했고 나의 세상이었던 책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잠재되어있던 충동적인 살해 욕구, 그런 비슷한 게 발현 된 때문이 아닌지 싶었다.

나는 설핏 정신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독자들은 소리를 질렀다. 무표정으로, 또는 거의 분노에 가까운 소리를, 웃음을 지었다. 남자애는 쓰레기 같이 읽을 가치도 없는 책을 죽이는 화형식이며, 모두가 한권 씩 들고 있는 <이방인도> 결국 저 불 속에서 죽은 저자를 따라 죽을 거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더 신나게 책을 찢어댔다. 북북, 사아악, 가악, 낱장으로 뜯겨져 나가는 책을 보자니 꼭 도살당하는 소나 돼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엔 성대가 없다. 목이 없다. 소리가 없다. 내 귀에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보인다. 울붑짖으며 몸을 뒤틀다 지쳐 불길에 적응한 책들을.

언젠가 다가온 낯선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 책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없다고 말했고, 남자애는 진즉에 갖고 있지 않고 버렸다고 답했다. 여자는 잠시 놀란 눈으로 그 애를 바라보다 뭔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옮겼다.

책 찢기 대회는 끝났다. 제일 먼저 표지만 남긴 여자애가 승리했다. 나는 이기면 무슨 상을 주냐고 물었고, 남자애는 고개를 저었다. 상 같은 건 없다고, 다만 명예를 얻는다고, 책을 가질 수 있게 되죠. 높은 신분으로 올라가는 건가, 싶었다. 허나 이곳엔 계급제라고 할 뭔가가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해리포터 같은 거 사달라고 하려나. 수준이 어느 정돈지 모르겠네.

그만하세요. 그러다 진짜 죽어요.

지나가듯 무심하게 그 애는 말했다. 나는 말을 듣고서 한참 동안 불길을 바라보다 뒤늦게 서늘해진 목덜미를 매만졌다. 땀 한 줄기가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미안, 그런 거 말하지 말랬지,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사과를 하곤 입을 다물었다. 일순,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갈래갈래 찢어진다. 알 길 없는 불길의 춤사위로 책들이 찢겨져 흩날린다. 독자들은 뭐에 홀린 듯 책을 낱장씩 섬세하게 찢고 불 속으로 던지고 비명을 지르고 울음을 토해냈다. 뭔 지랄을 떠는 건가,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씁쓸함과, 출처 모를 두려움이 어깨를 건드렸다. 뒤돌아보니 정육점 사장이었다. 몸에서 풍기는 고기 냄새, 누린내, 비린내 등이 목구멍 저 깊은 곳, 뱃속에서부터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가까스로 마른 침을 되삼키며 그가 건네는 새 이방인 책을 받아든다. 당신도 함께 즐기라는 말과 함께, 나는 당신이 누군지 안다면서. 뭐라고 내가 되묻기도 전에 그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애도 일어서며 자연스레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손짓해보였다. 독자들 틈에 껴 불 앞에 선다.

이거, 은근 기분 좋아요. 1년 내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책을 찢는지, 그것만 연습하는 애들도 수두룩하고요.

왜 책을 찢는 거야? 불필요하게, 아깝잖아. 책 좋아한다면서.

아까 했던 질문을 되풀이했다.

아저씨는 책을 왜 읽어요?

그게 직업이니까.

언제든 다른 직업으로 갈아탈 수 있어요?

나는 닫힌 입술에 혀로 침을 적시며 대답하지 못했다.

똑같아요. 있잖아요. 우리는 책을 모신답니다. 이곳 밖의 사람들이 신을 모시듯이요.

그런데 책을 찢어?

서로 신에게 당도하는 법이 다를 뿐, 마음은 똑같아요. 작가님은 믿음이 부족하세요.

남자애가 연민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느낌에 불쾌해졌다.

이제 선서를 할 차례예요.

그 애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란이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독자들은 불에 장작을 더 던져 넣었고, 불길은 카루시파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받아먹었다. 이번엔 영어로 말하는 남자가 선언하듯 큰 소리로 소리쳤다. 신성한 선서식이 시작된다는 말이었다. 아무도 박수를 치거나 소리 지르지 않았다. 그들은 그림자에 자신을 숨기고, 또는 자신에 그림자를 숨기곤 선서식을 지켜보았다. 몇몇 독자들이 교수대 같이 마련된 단 위로 올라섰다. 얼룩말 같은 피부색은 여전했다. 나는 그 중 두 명이 지난날 본 동성애자임을 깨달았다. 나는 생각 없이 그들에 대한 험담을 하려다 줄곧 나를 지켜봤는지 내게 눈길을 두고 있던 남자애를 발견한다.

왜? 뭐 할 말 있어?

대답 대신 그 애는 씩 웃더니 두 손을 짚고 벌떡 일어섰다.

그때서야 그 애의 키가 175가 넘을 정도로 크고, 체격 또한 다부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동안 마치 나는 그의 환영을, 그림자를 보며 말을 걸고 함께 움직였던 것일지도 몰랐다.

단 위에 오르신 독자분들은, 작가가 되실 독자분들은 오늘 여기서, 표절, 대필, 모방 등의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조안 킹 작가님께 맹세해야 합니다. 왜, 20년 전에 돌아가신 작가 말입니다. 모두들 ‘조안 킹 선서’라고 아시지요? 바깥 사람들이 간호사가 되기 위해 하는 나이팅게일 선서 같은 것 말입니다. 작가로서 표절 및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 방관하지 않겠다는. 근데 조안 킹 작가님은 어기셨어요. 그에 맞는 조치가 내려졌고요. 보니 그 분도 여행기를 쓰러온 작가였더군요. 선서를 어기고....... 다행히 그대들은 아직까지 그런 짓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바로 선서를 하시고, 시인이나 소설가로 거듭나시길 바랍니다.

그 애는 가쁘게 숨을 쉬다 말을 이어간다.

선서하세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어떻게 도서관 스탠드까지 왔는지, 거기서 잠을 자고 있는지, 또 옆에서 풍기는 향긋한 고기 냄새는 또 무엇인지. 나는 놀라 재빨리 몸을 세운다. 몇 칸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독자들이 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소고기였다. 배가 고팠다. 나는 한 점 달라고 할까, 하다가 구차한 것 같아 관두었다. 마침 정육점이 눈에 들어온다. 사장은 열심히 가축을 도살하고 해체하고 정비했다. 그러나 모두 생고기 일색이었다. 구워먹는 곳도 없고, 그저 스탠드 위의 저들처럼 알아서 불을 피워 먹는 수밖에 없었다.

고기 구워서 드릴 테니 먹어보실라우?

정육점 사장은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돼지고기요, 소고기요?

나는 서툰 영어로 소고기, 라고 대꾸한다.

동시에 돈이 없다고, 무일푼이라고 설명한다.

됐소. 원래 이방인을 배불리 먹이는 건 조안 킹 작가님의 철칙이니까.

마치 설국열차의 윌 포드 같은 존재이시군요, 그 조앤 뭐시기 작가는.

사장은 그게 뭐냐는 듯 물어보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다, 만다.

그에게서 구워진 소고기를 받고 나는 허겁지겁 먹는다. 쌀도, 밥도 있다는 말에 나는 자존심을 한 번 더 굽히고 밥을 조금만 달라했다.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나는 다 먹은 후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는 곧 죽을 사람이, 비슷한 말을 중얼거리며 잘 가시오, 크게 소리친다. 기분 탓이지. 기분 탓이야. 나는 애써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인육은 아니겠지.

공포영화의 인물들이라면 능히 할법한 의심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소고기다. 여기는 <미드 소마>나 <그린 인페르노>에 나오는 식인종 마을도 아니다. 그냥,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서관일 뿐이다. 나는 스탠드 위의 짐을 마저 정리한다. 캐리어를 끌고 묵직한 가방을 두 개나 멘 채 도서관 복도를 가로지른다. 사실 말하자면

무서웠다.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그래서, 더.

나는 생전 조안 킹이라는 작가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조안 킹 선서와 마찬가지로.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바로 떠나야 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또 정상적인 곳이라 떠나지 못한 것이라고, 나는 지금에서나마 변명해본다. 남자애가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은 막 도서관 입구로 다다르는 지점에서였다. 그 애는 어딜 가느냐고 물었고, 나는 예정 여행 일정대로 이제 떠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작가님의 일정은 끝났을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일정은 끝나지 않았어요.

당황해 내가 할 말을 찾는 사이 그 애가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작가님도 선서식 하고 가세요. 하고 가셔야 합니다.

왜 이래, 나 일정 다 끝났다니까?

그러면 김성호 작가님이라도 뵙고 가세요.

나는 한동안 멍한 눈길로 그 애를 쳐다보았다.

누구? 누구라고 했어, 방금?

김성호 작가님이요.

그러더니 그 애는 깔깔대며 언제 끝날지 모를 웃음을 잇는다.

죽였구나.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니들이 죽인 거야. 니들이 죽였지? 아니라고 말해봐, 개새끼야.

그때였다. 몇 독자가 내게로 달려든 건. 머리에 곧바로 두건이 씌워지고 나는 향긋한 냄새에 시들어가듯 정신을 잃었다. 다시 깨어난 곳은 여전히 도서관이었고, 미친놈들, 속으로 되뇌며 나는 두 발과 두 손이 묶인 채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고개를 돌린 동시에 그 애와 눈길이 마주쳤다.

선서식은 하고 가셔야죠, 작가님.

뭔 선서? 나는 이곳 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인데다 편집장이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들이 알아서 다 찾아낼 거야. 국제 경찰 인터폴이라 하나, 그 작자들도.

편집장님이 보내신 건데. 모르셨어요?

그럴 리가. 나는 부정을 부정하면서도 그 애의 계속되는 설명에 편집장 씹새끼가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게 틀림없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믿는다. 그러고 보니 김성호 작가도 그 새끼가 보낸 게 분명했다. 떠올렸다. 어느 날엔가, 편집장의 주재로 수년 만에 그와 다시 만난 적이 있었다. 두 작가가 공동 집필을 해서 장편 한두 권 정도를 내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편집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당시 표절 논란에 휘말린 나로선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잘 나가는 후배 작가의 ‘표절 아니다’라는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새 소설을 발표할 기회가 생긴 것이므로. 우리 출판사와 김성호가 전속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도 소문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나는 선택권이 없었다. 하자면 하라는 대로, 특히나 김성호의 말에 따라야 했다.

제가 다음 주에 여행을 가거든요. 쉴 겸, 이번 글 쓸 겸 해서. 편집장님 말씀대로요.

그러냐? 좋겠다, 머리 식힐 시간도 있고.

근데 별로 꺼려져요. 찾아보니까 정보도 잘 안 나오고....... 뭐 그만큼 속세와 멀리 떨어져있다는 뜻이니까, 글은 잘 써지겠지요. 그런데요, 선배. 선배도 곧 계약 만료죠?

무슨 꿍꿍이인지 몰랐지만 나는 그렇다고 대꾸했다.

저랑 같이 출판사 옮기실래요?

어디로?

뭐, 제의가 많이 왔어요. 민음사든, 문학동네든, 문학과지성사든.

굳이 왜? 여기도 좋잖아.

편집장이 좀 이상해요.

그가 내 담배 연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내가 태우는 담배가 마지막 남은 하나였다.

원래 셋이서 이렇게, 인연이 있었잖아요. 그죠, 근데 자꾸 내보고 싶은 책이 있다면서 강요하는 거예요. 난 물론 거절했고요. 내가 다음 주에 여행가는 곳 말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전 가기 싫어요. 글 쓰는 직감이 말해주더라구요. 가면 안 된다고. 요즘 악몽도 여러 차례 꾸고. 가면 죽을 것 같아요. 으하하하.

팔자 좋은 소리 하긴. 두 말 않고 갔다 와. 작가가 어디 시간 내서 여행 가는 게 쉽냐.

그래서 선배하고 같이 가겠다고 했는데, 이미 예약을 완료해둬서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왜 끌어들여, 시팔놈이, 속으로 뇌까리며 나는 헛헛 안면을 쥐어짜듯 웃는다.

어쨌든, 다음 차례는 선배가 될 수도 있어요.

죽으러 가냐? 말 한 번 살벌하게 하네.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죽으면 절 찾을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유명하니까.

그는 깔깔거리며 농담이라고 거푸 말했다. 나는 억지로 미소 지어 보였다.

그 웃음이 잔상으로 눈앞에 떠다녔다. 나는 여전히 의자에 묶인 채 발악하다 제 풀에 지쳐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편집장이 나와 김성호에 대한 저작권을 다 차지할 욕심으로 이곳에 보낸 것이다. 인육으로 먹히리라고 기대했나. 편집장은 나를 보낼 때 죽은 김 작가 발견하면 돈 줄테니까 묘라도 제대로 세워달라고, 명복 좀 빌어주고 오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시발, 그걸 지키기는커녕 내가 죽게 생겼는데 다 무슨 소용이야.

조안 킹 선서를 하고 가셔야 해요. 그래야 다시 글을 쓰시죠.......

.......좋아. 그것만 하면 보내준다는 거지?

남자애는 고개를 흔들었다.

선서만 하시면요. 그리고 돌아가시면 이곳의 모든 일을 발설하지 않겠다고도.

그 애가 혀를 내밀어 희롱하듯 날름거렸다.

이걸, 싹둑!

그 애가 파하하 조소를 흘렸다.

우리는 독자예요. 독자.

독자들이, 그들이 다시 다가온다.

조안 킹님이 인정해주신 독자라고요. 우리는 작가를 지킬 의무가 있어요.

어둠은 예고 없이 나를 가두었다.

 

숨을 토해냈다. 연이어 기침을 했다. 사례가 들린 탓이었다. 두건이 벗겨지고 독자들이 보인다. 그들은 <헝거게임>이라도 보는 마냥 환호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아무튼, 온갖 수선을 다 떨었다. 내게 묶인 줄이 풀어지고 나는 계단을 떠밀려 올라간다. 원형경기장이었다. 콜로세움을 떠올리면 된다. 나는 사위를 살피기 바빴다. 김 작가가, 김성호가 눈에 들어온 것은 불과 1분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많이 상하고 살가죽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김성호는 김성호였다. 나는 네가 왜 거기 있느냐고, 죽은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할 기력도 없어보였다. 그러더니 나를 알아보곤 어? 눈을 뜬다. 선배. 그는 두꺼운 양장본을 오른손에 든 채 나를 향해 다가선다. 뭐야, 너. 너, 너, 왜 여기 있어?

그는 다짜고짜 책을 내게 휘둘렀다. 하드커버 모서리에 찍힌 뺨에서 피가 솟쳤다. 물을 새도 없이, 나는 내 손에 들린 책을 휘둘렀다.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족히 10명은 되어 보이는 독자들이 책을 든 채, 때론 책을 바꾸고 빼앗고 찢어버리며 서로를 죽일 듯 달려들었다. 나는 김성호에게 그만하라고 외쳤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 세게, 있는 힘껏 나를 죽이려 했다. 나도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독자들은 우리의 죽음에 열광했다. 작가들의 싸움은 주먹이 아니라 펜으로 행해진다는 말을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에게 세뇌 당하듯 들었다. 그러나 개소리였다. 싸움은 싸움이다. 작가들도 사람이다. 책으로 싸우는 게 뭔가 굉장히 작위적이고 웃기긴 하지만, 사람을 죽이려든다는 점에선 똑같은 사람임을.

선배. 선배가 나 이곳으로 보낸 거잖아요. 맞죠?

나는 그의 팔에 쇠가 박힌 책 모서리를 그었다. 그대로 살이 갈라지더니 피가 댐의 폭포 마냥 흘러내렸다. 이따금 다른 독자가 나를 공격하거나 김 작가를 공격하기도 했다. 나는 무슨 말이냐며, 여행을 보낸 것은 편집장이라고 답했다.

아뇨, 편집장님이 가라고 한 건 여기가 아니었어요. 중간에 선배가 가로채서 저한테 여행지가 바뀌었다고, 예약은 다행히 해놨으니 그곳으로 가면 된다고, 거기가 더 볼 게 많고 머리 식히는 데 도움 될 거라고 하셨잖아요. 난 선배 의심 안했어요. 질투에 눈이 멀어도.

책등에 맞은 뒤통수가 얼얼하다. 힘이 부쳤다. 나는 책에 실린 무게에 따라 휘청거리며 점차 뒤로 물러났다. 그 끝은 전 세계에서 유명한 마경 중 하나인 ‘템페레르’ 절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늘 핏빛 안개를 머금은 채 죽은 자들을 위한 노래를 향처럼 피워 올리는 곳. 이 새끼, 죽은 줄 알았는데. 나는 계속되는 그의 의문 세례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답해봤자 뭐하는가,

사실인걸.

근데 선배는 여기 왜 왔어요? 나 진짜 죽었나 확인하려고?

편집장이 보낸 거야. 다른 곳인줄 알았는데 여기더라고.

뭐야, 결국은 나랑 똑같네?

다리가 후들거린다. 나는 뒤로 쓰러지듯 주저앉는다. 허공을 가르는 그의 몸짓은 불에 타들어 죽어가는 나방의 마지막 날갯짓 같았다.

너에 대한 저작권도 다 양도받았으니 내 것도 탐난 거겠지.

그렇게 철저한 인간이, 선배가 여기가 어딘 지도 모르고 왔단 말이야?

김성호가 폭소하다 책을 떨어뜨린다. 템페레르 절벽 아래로 사라진다.

이곳이랑 달랐어. 모든 게. 근데도 길은 결국 다 여기로 향하더라.

나는 아무런 무기가 없는 김성호의 두 어깨를 손으로 털어주었다. 풀풀 먼지가 날렸다.

나라도 살아야지. 내가 기억해줄게. 우리 어머니, 알지? 어머니가 늘 하는 말씀도 알지? 어머니한테 배운 적도 있으니까 알 거 아냐. ‘작가들의 싸움은 펜으로 행해진다’. ‘지옥’에도 펜은 있겠지. 우리, 글 대 글로 싸우자. 이런 추잡한 놀이에 놀아나지 말고. 알겠지?

나는 발끝으로 그의 정강이를 찼고, 김성호는 절벽의 안개 너머로 사라졌다.

부부젤라 같은 소음이 일제히 모든 소리를 죽인다.

조안 킹 선서에 대한 경외심과 위대함을 증명해준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남자애의 목소리다. 나는 그 애를 찾지만 어디에도 없다. 목소리만 들려왔다.

그럼, 선서식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화장실을 찾는다. 자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흘 전, 이방인 책을 나눠주던 낯익은 여자와 아이들의 책 찢기 대회를 주최한 남자가 나를 가로막았다. 가실 필요 없어요. 우리가 해결해드릴게요. 그들이 속삭이듯 말했다. 남자애가 내 팔뚝을 건드린다. 언제 왔는지 모를 그 애는 내 손을 맞잡은 채로 힘껏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박윤식 작가입니다. 한국에서 여기까지 먼 길을 오셨지요.

독자들이 광기에 찬 웃음인지, 분노인지 모를 감정을 쏟아냈다.

조안 킹 선서를 하기 전에, 하나 물어볼 게 있습니다.

그 애가 나를 향해 돌아선다.

작가님, 작가님은 표절을 하신 적이 있지요?

그가 말하고 독자들은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몸이 점차 달아오름을 느꼈다. 표절. 부연 안개가 걷히고 또렷한 과거의 기억이 꼬리를 흔들며 기어 나온다, 머릿속에서. 어느 새 몰려든 독자들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든다. 나를 쳐다보는 남자애한테서 울음에 가까운 웃음이 튀어나온다.

난 표절 같은 거 한 적 없어.

나는 애써 미소를 유지한다.

그 애가 나를 바라다본다.

작가님은 오늘 여기서,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해요. 작가로서 표절 및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 방관하지 않겠다는. 근데 어기셨어요. 그러면 그에 맞는 조치에 응하셔야 합니다. 보니 외지인들은 하나 같이 선서를 어기고 그런 짓을 저질렀더군요....... 작가님은 아니길 바랐는데. <에세이 쓰기>라는 책, 잘 읽었거든요. 근데 그게 표절작이라니요. 한때 그 책으로 책 찢기 대회에 참가해 우승한 저로선 매우 슬픕니다, 작가님. 작가님. 어쨌거나, 조안 킹 작가님을 아시나요? 그 분을 모르시는 것 같기에 짧게 설명해 드릴게요. 그 분도 여길 오셨어요. 그리고 자살하셨죠. 딸의 표절 행위를 방관하였다는 죄책감으로, 죄로, 말입니다.

나는 어머니의 의절하자는 말을 떠올린다. 그래서였나.

숭고한 죽음이지요. 또한, 조안 킹 작가님을 기리기 위해 선서를 만든 게 우리랍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도 모르겠지만요. 그러니까, 우린 일종의 일루미나티나 프리메이슨 같은 작가 커뮤니티라 할 수 있지요. 한 명의 독자라도 만족시킬 수 없으면 펜을 놓을 뿐 아니라 할복까지 하겠다, 고 기사 인터뷰에서, 표절 부인하는 기사에서 말씀하셨잖아요. 안 그래요?

날 죽일 거야?

죽이지 않습니다. 조안 킹 선서를 하셔야 하니까요.

독자들이 내게서 떨어져나간다. 단이 마련되고, 마이크 세 개가 정렬한다.

그 애의 지시대로 난 위로 올라선다. 책 찢기 대회에서 우승한 여자아이가 더 높은 단 위에 올라선다. 여자애는 선언문을 바라본 채 왼손을 들어올린다. 오른손 아니던가, 하며 나는 오른손을 들었다. 귀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스러지는 여자애의 말들에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답한다. 선서가 끝났다. 나는 떨어진 책 한 권을 주웠다. 김성호의 첫 소설집 <네 소설은 싸가지가 없다>, 이었다.

시발, 조안 킹이 대체 누구야?

 

망치가 보인다. 저 붉은 망치, 버스에서 떼어낸 비상용 망치. 유리창을 깬 망치. 누군가가 나에게 박윤식 작가님이 맞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 사람은 고개를 돌려 옆사람과 함께 수군거렸다. 그러더니 큰소리로 전화를 하며 여기 표절한 작가 있네, 하면서 낄낄거렸다. 교복을 보니 예술고 교복이었고, 그 예술고엔 전국에 세 곳밖에 없는 문예창작과가 있다. 언젠가 강의를 했던 적도 있는 학교였다. 그 충동을, 참을 수 없었다. 참을 수 있었다면 애초에 김성호나 다른 작가들의 글을 베끼지 않았어야 한다. 나는 말을 건 여자애 옆에 달린 비상용 망치를 꺼내 유리창을 있는 대로 깨부수었다. 시발년들아, 지금 뭐라고 했냐? 표절 작가? 표절?

난동을 부린 끝에 나는 경찰에 인계되어 서까지 갔다 왔다.

다만 망치는, 그 붉은 망치는 모두가 잊었는지 누구 하나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그 망치는, 망치의 끝은 아직도 그 유리창을 기억할까. 나는 그 여자애들을 보고 망치를 빼들어 내리친 게 아니었다. 여자애들에게 휘두르려고 하는 찰나, 유리창에 비친 ‘나’가 그렇게도 혐오스러울 수가 없었다. 작가로서의 생명은 물론이고, 한 인간의 존엄성조차 잃은 폐인의 모습이었다. 방향을 틀어 유리창을 깬 건, 그래서였다. 그 망치가 지금 나를 찾아온다. 여전히 깡, 깡, 소릴 내며 느릿느릿. 나는 죽여줄 거면 제발 일찍 죽여주고, 살려줄 거면, 다시는 표절하지 않고 글도 쓰지 않을 테니 살려달라고 애쓴다.

영어로 말했다. 그들은 알아들었을까.

망치가 멈춘다. 정육점 남자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마주친다.

글을 안 쓴다고? 거짓말.

그가 망치를 든 손을 높이 든다.

유서 썼잖아.

이건 유서, 잖아요. 그리고 쓰라고 한 게 누군데.......

유서를 쓰랬지, 소설을 쓰라고 하진 않았어.

그러다 그가 묻는다.

근데 말이야, 너 조안 킹이 누군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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