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면담기록 xxxx

2020.06.30 19:4006.30

「처음 지구에 왔을 때 첫 번째로 느낀 것은 적의였어요. 타라와 지구가 서로의 첫번째이자 유일한 개항행성인데도 그랬어요. 이 커다란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우리들 말고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중요한 일이어서 타라는 기쁜마음으로 지구를 맞이했지만, 지구는 우리의 모습을 꺼려 했죠. 이유는 별거 없었어요. 우리의 이마에 원뿔의 돌기가 있어서 그게 도깨빈지 악마인지를 연상시킨다고 그랬어요. 우리와 지구인은 정말 비슷하게 생겼는데도 아주 작은 차이 하나를 가지고 헐뜯었죠. 맞아요. 이건 선생님도 아시는 이야기에요. 하지만, 선생님은 지구인이시니까… 차별을 받는 입장에선 그게 얼마나 부당한지 다시 한번 얘기해 드리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제가 길만 걸어다녀도 너네 별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루에 몇 번이나 들었거든요. 어떤 지구인들은 하필 처음 만난 지적생명체가 타라인이라서 싫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기도 했구요. 외교적으로 지구는 타라를 환영하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해요. 아시겠지만 지구에선 지구인과 타라인의 결혼을 법적으로 허락하지 않아요. 사회적으로 그 결혼을 받아들이기엔 어렵다고 얘기하면서 말에요. 우습죠. 사랑은 재단할 수 없는 거잖아요. 잠시만요, 선생님. 이야기를 그렇게 끌고 가려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물론 선생님은 제가 이 시술을 받는 걸 반대하신다는 거 알지만, 타라인한테 위험성이 높은 것 뿐이지 백퍼센트 실패하는 시술도 아니잖아요. 네네, 알아요. 제가 그 시술을 받고 다시 일어날 확률이 소숫점이라는 거 안다고요. 하지만 선생님. 그럼 말씀해 보세요. 유주가 언제쯤 깨어날 수 있을지 말에요.

 

 

대답하실 수 없으시죠. 그래서 제가 선생님을 찾아 온 거에요. 저는 이미 각오가 되어 있어요.

 

 

*

 

 

제가 지구에 도착한게 마치 엊그제 같아요. 지구와 타라 사이에 교류가 생긴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전까지 저는 지구에 와 본 적이 없었어요. 둘 사이에 여행은 가능했지만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오갔을 때였거든요. 하지만 지구에 대해선 많이 알고 있었죠. 어릴 때 지구의 영화라는 걸 보고 완전히 반해버렸거든요. 타라에서도 영상이 있지만 그건 모두 기술을 위한 거에요. 영상으로 통화도 하고, 치료인도 만나고 회의도 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 쓰지는 않는단 얘기죠. 그래서 처음 ‘영화’를 봤을 땐 너무 신기했어요. 움직이는 이미지들은 진짜 세상보다 더 진짜같았죠. 거기에 아름다운 음악과 섬세한 영화적 장치들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꼭 지구에 가서 영화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운이 좋았는지 제가 성인이 될 무렵 지구와 타라 사이에 유학제도가 생겼어요. 저는 지구어 성적이 좋았고 영화를 배우고 싶다는 목표가 확실해서 타라의 장학생으로 지구에 올 수 있었죠. 그땐 정말 꿈만 같았어요. 태양계를 뚫고 지구 상공으로 들어썼을 때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답니다.

 

아무튼 지구에 와서 학교에 들어갔을 때까진 좋았어요. 몇몇 학생들이 뒤에서 제 뿔을 욕하거나 저를 따돌렸지만 상관 없었죠. 타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몇몇 애들이랑은 친해졌어요. 하지만 사적으로 교류를 갖는 친구들은 없었어요. 저는 돈이 없었거든요. 가난한 유학생이니 어쩔 수 없었죠. 돈이 없으니 시간이 없었어요. 아르바이트를 해야했으니까요. 타라는 작은 별이라 행성장학생이라고 해도 지원을 많이 받지는 못했죠. 학비와 기숙사비는 지원 받았지만 생활비는 벌어야 했어요. 맨 처음 아르바이트를 한 곳은 작은 카페였는데 사장님이 좋은 분이었어요. 타라인을 받아주는 가게는 거의 없었는데 시급도 많이 주시고 남는 음식도 챙겨주셨죠. 타라인에게 알러지를 일으키거나 독이 되는 재료는 다 빼주셨고요. 네. 신경을 아주 많이 써주셨죠. 그리고 그 가게에서 유주를 만났어요. 유주는 소설가였는데 집에서 작업을 잘 못하는 성격이어서 늘 그 카페에 나와 일을 했어요. 처음엔 별로 눈길이 가는 사람은 아니었죠. 그래도 매일 오니까 한두마디 나눌 수 있게 되었어요. 사장님은 유주가 발이 넓은 사람이라고 했어요. 이 타운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했죠. 그건 유주가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여서가 아니라 걔 성격이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기 때문이었어요. 그건 맞는 얘기였던것 같아요. 유주랑 이 거리를 걷다보면 온 사람들이 유주에게 인사를 하거든요. 걔는 좀 신기한 매력이 있었죠. 덕분에 어느새 저희도 어색함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어요. 하지만 그때까지도 유주는 제게 친절하고 성격 좋은 손님일 뿐이었어요. 타라인인 저를 차별하지 않고 무례하게 굴지 않는 그런 손님 말에요. 사실 그 카페에 놀러오던 손님들은 대부분 그랬어요. 제게 무례한 손님이 있다면 사장님이 쫓아내셨죠.

 

그러던 어느 비가 많이 내리는 주말 저녁이었어요. 사장님은 남편분 기일이라 묘지에 가야하셔서 가게문 닫는 일을 제게 부탁하셨어요. 원래는 버튼을 누르면 셔터가 자동으로 내려가는데 하필 그날은 고장이 나서 직접 내려야했죠. 근데, 타라인은 지구인보다 평균신장이 좀 작잖아요? 저는 평균쯤 되는데도 셔터를 내리기가 조금 버거웠어요. 까치발을 들고 어찌저찌 내리기까진 했는데 그만 다리를 접질렀지 뭐에요. 잘못 삔 건지 너무 아파서 소리도 못지르고 그대로 다리를 쥐고 주저앉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 일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에요. 빗줄기는 심해지고 주변은 온통 깜깜한데 다리는 아프니까 집에는 어떻게 가지, 병원은 또 어떻게 가지, 비자가 있지만 지구인이 아니니까 보험도 안될테고 병원비 많이 나오겠지… 하고 온갖 걱정이 다 들었죠. 그때 누가 제 어깨를 툭툭 치더라고요. 돌아보니까 거기에 유주가 있었어요. 유주는 울고 있던 저를 일으켜 세우고 무슨일인지 침착하게 물어봤어요. 거기엔 무슨 동정도, 연민도 없었어요. 그냥 걱정뿐이었죠. 유주는 제 다리를 보더니 부었다면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어요. 저는 병원 갈 돈이 없다고 솔직히 말했죠. 그냥 약국에서 약을 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더니 유주는 자기가 아는 의사가 있다면서 간단히 봐주는 건 부탁하면 해줄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다행히 크게 다친건 아니어서 치료를 받았더니 금방 나아졌죠. 제가 치료를 받는동안 유주가 보이지 않아 의아했는데 차를 가지고 왔더라고요. 네, 저를 집에 데려다주려고요. 처음엔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유주에게 어떤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 고맙다고 하고 차를 얻어탔어요. 차에 탔을 때 마침 제가 좋아하는 영화 ost가 나왔어요. 사랑하는 나날들이라는 곡이었죠. 네. <투게더 바이 미>에 나오는 그 노래요. 제가 음악에 관심을 가지자 유주는 자기도 좋아하는 곡이라면서 미소를 지었어요. 생각해보니 그 미소를 본 순간부터 걔를 좋아하게 된 것 같네요. 당시엔 몰랐지만요. 어쨌든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집으로 가는 내내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그러다 유주 역시 저처럼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유주는 고전 영화도 좋아하느냐고 물었고 저는 본 적 없다고 말했어요. 타라에 들어왔던 영화들은 지구에서 가장 잘나가는 최신 작품 몇개 뿐이었거든요. 그런 제 대답을 듣고 유주는 타운에 있는 몇몇 영화관에서 그런 영화들을 주기적으로 상영한다고 알려줬어요. 저는 예약을 해야하는지 물었고, 유주는 괜찮다면 같이 보자고 했죠. 자기가 정기표를 가지고 있다면서 말에요. 그게 있으면 동반 1인까지는 한달에 네 번 어떤 영화든 볼 수 있었거든요. 저는 고맙다고 말했죠. 좋아하는 노래와 내리는 비. 발목을 다칠 때까지만 해도 절망적으로 느껴졌던 궂은 날씨가 단숨에 낭만적으로 바뀌었어요.

 

그 날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우리는 영화를 봤어요. 제가 이제껏 보지 못한 이야기들이었죠. 아주 재밌었고, 흥미로웠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히치콕의 영화들이었어요. 지금 영화들과 비교해봐도 손색없는 이야기들 이었어요. 몇몇 애니메이션도 보았는데 유주는 영화보단 애니메이션이 더 좋다고 했어요. 원래는 자기도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림에는 영 재능이 없었다고 했죠. 그래서 소설가가 되었다고 했는데 저는 유주가 만든 애니메이션도 언젠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애의 이야기들은 모두 재밌으니까요. 영화를 보고나서 우린 늘 저녁을 먹었는데, 영화를 보여주는 게 고마워서 늘 제가 저녁값을 냈어요. 돈이 부족해서 비싼 걸 사진 못했지만 유주는 늘 고맙다고 하면서 맛있게 먹어주었죠. 가끔은 저희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만들어 주기도 했어요. 집이 좁은데다가 식탁에 의자가 하나뿐이어서 다른 한명은 침대를 의자로 써야 했어요. 어느 날 부터인가 유주는 타운의 다른 영화관들도 소개시켜주었어요. 그동안 봤던 고전 영화들과는 또 다른 결의 영화 들이었죠. 우리는  만나는 날이 점점 늘었어요. 유주를 따라 다니면 타운 안에 다양한 곳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모두 제겐 신기한 것 뿐이었어요. 타라는 사막과 빙산이 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서 거주구역이 아주 좁아요. 나라도 몇 개 없는 작은 행성이라 지구는 제게 너무 신기했죠. 하지만 타인으로 온 지구에서 저는 지구를 자세히 구경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유주와 타운을 쏘다니면서 처음으로 제 세계가 넓어졌다고 할 수 있죠. 유주가 제게 고백을 했던 밤도 그런 날들과 다를 바 없던 어떤 날이었어요. 그 날 봤던 영화는 유주가 각본으로 참여했던 짧은 작품이었는데, 주인공이 지구에서 어떤 먼 별로 여행을 간다는 내용이었어요. 주인공은 힘든 일도 많이 겪지만 좋은 친구를 만나 결국 즐겁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요. 저는 그 주인공이 저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어요. 허락도 안 받고 저를 주인공 삼은 게 싫진 않았냐고요? 아뇨. 오히려… 기뻤어요. 주인공이 행복해지는 이야기잖아요. 마치 ‘너도 지구에서 행복해지면 좋겠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아무튼 그런 영화를 봐서 기분이 좋은채로 산책하듯 유주랑 둘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유주가 그냥 툭 말하는 거에요. 제가 좋다고요. 같이 있으면 즐겁다고요. 저도 그렇다고 했어요. 그때까진 유주가 고백하려고 눈치를 보는 중이란 걸 몰랐죠. 한동안은 저희 사이에 대화가 없었어요. 저는 하늘 위에 뜬 동그랗고 샛노란 보름달을 보고 있었죠. 언젠가 타라로 돌아가면 달에도 한번 들려야겠다고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저보다 앞서 걷던 유주가 갑자기 몸을 휙 돌려 저를 보더라고요. 그때 그 애의 눈을 보고 저는 어떤 직감을 느꼈어요. 아, 얘가 날 좋아하는구나. 친구 이상으로 날 좋아해. 그걸 깨닫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제 예상대로 고백을 받았을 때, 저는 제가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짓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 날 이후로 몇달은 꿈같은 날이었어요. 매일 같이 걸었던 길이었는데 관계가 달라졌다는 것만으로 새로웠죠. 그리고 나서 또 몇 달은 안정감이 제 마음 가득 차 있었어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 사람을 깊숙히 아는 것이 즐겁다는 사실을 유주를 통해 배우게 되었죠. 그 시기에 저는 유주가 생각보다 외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유주에 대한 기사나 인터뷰를 읽어보신 적이 있다면 아시겠지만 그 애는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죠. 유주는 그걸 소설에서 ‘유대의 상실’이라고 했어요. 맞아요. 그 애 소설은 아름답지만 미묘한 상실이 있죠. 그게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애 이야기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누구나 외로운 순간이 있는데 유주는 그걸 잘 집어내죠. 그 외로운 마음이 상처 받지 않도록 다정하게요. 그래서 그런걸까요? 사람들은 성공한 소설가인 유주가 행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에    둘러쌓인 유주가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완벽히 마음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몰랐어요. 놀랍게도 제가 유주의 마음에 첫번째로 머무른 사람이었다고 했죠. 아니, 어쩌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몰라요. 저도 그렇거든요. 유주가 제 첫사랑이었어요. 타라에 있을 때도 누굴 그렇게까지 좋아해본적이 없었죠. 그래서 저는 이 행복이 오래도록 지속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믿음은 1년을 조금 지나 깨지고 말아요.

 

다시 한 번 언급하자면 유주는 유명한 소설가에요. 그런 유주가 저랑 사귄다는 건 온 지구에서 관심을 갖을 법한 이슈였어요. 타라인과의 열애. 그게 그 애와 제 기사에 반복적으로 달리는 주요 문구였어요. 기사속에서 저는 타라에서 온 외계인이었죠. 제 스스로도 절 그렇게 자각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어요. 지구에 왔기 때문에 저는 인간이 아니라 타라인이 된 거잖아요. 무슨 말이냐면… 음, 그러니까… 타라에 있었을 땐 저는 저였어요. 그러다 지구에 와서 저는 이마에 뿔이 달린 이상한 외계인이 되어 버린 거죠. 특정지어진 거에요. 저는 그게 무척 불편했어요. 다행히 적어도 유주와의 관계에선 그러지 않았아요. 둘이 손을 마주잡고 있을 때면 유주는 유주였고, 저는 저였어요. 서로가 상대를 그렇게 보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관계에 외부인들이 이름을 붙인 거에요. 외계인을 사랑한 예술가라고요. 몇몇은 이 사랑이 아름답다고 했어요. 역경을 이겨내는 거랬어요. 저희의 사랑이 인정받는다는 기분은 솔직히 별로 였어요. 사랑을 타인이 인정해줄 수 있나요? 이건 한쪽에서 행하는 폭력이 아니에요. 우리 둘이 감정을 나누고 함께하길 결정한 거였다고요. 그걸 다른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 건 고통스러웠어요.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나은 축이었죠. 타라인들의 뿔을 부정적으로 보는 몇몇 강성한 단체들은 유주가 악마에게 홀린 거라는 얘기를 해댔어요. 유주는 단호하고 강력하게 그들을 고소하며 상황을 정리해 나갔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힘들었죠. 너무 힘들었어요. 살면서 그렇게 미움을 받아 본 적 없었는걸요. 게다가 제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었잖아요. 저는 그냥 실체가 없는 공격을 온 몸으로 받아야만 했어요. 유주는 고소라도 할 수 있었지만 저는 지구인이 아니었고, 지구는 타라인에게 어떤 권한을 별로 주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신고를 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었죠. 유주는 타인들이 만들어내는 루머와 소음에도 씩씩했지만 저는 지쳐갔어요. 그리고 어느순간 저는 저를 지치게 하는게 그들 때문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유주의 올곧음이 절 지치게 하기도 했던 거에요. 저는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지만 유주는 맞부딪혀 싸웠거든요.

 

그 즈음에 또다른 문제가 생겼어요. 졸업이었죠. 저는 타라에서 지원을 받아 지구에 온 유학생이었고, 비자가 끝나면 돌아가야 했어요. 졸업을 하면 비자가 끝났고요. 방법이 있다면 대학원으로 진학하거나 취업을 하는 거였어요. 그건 거의 불가능했죠. 외계에서 온 사람을 취업시켜 주는 곳은 없었고, 대학원에 가려면 또 돈이 들텐데 타라에선 더 이상 지원을 해주지 못했거든요. 저하나만 지원해 주는 게 아니니까요. 부모님이나 가족이요? 하하, 타라인은 부모님이 없어요. 결혼이라는 개념은 있지만 아이를 낳으면 모두 학교로 들어가죠. 공동 육아를 하는거에요. 거주지역이 작다고 말씀드렸죠? 그 작은 구역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진화 방식이었어요. 가족은 있죠. 모든 타라인이 가족… 이라고 할 수는 없고요. 결혼이요. 결혼을 한 상대. 자신이 결정한 상대가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거에요. 물론 지구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족이 있다면 오직 결혼한 상대를 말해요. 아무튼 저는 타라에서 결혼을 한 적도 없었고, 도와줄 가족이라는 걸 갖지도 않았죠. 그러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건 타라로 돌아가는 것 뿐이었어요. 그리고 더 최악인 건 그 사실을 제 입으로 유주에게 말해야 한다는 거였죠.

 

상황을 정리해 볼게요. 저랑 유주는 사귀고 있었고, 그건 가십이 되어 쉽게 소비되었어요. 그 와중에 저는 비자가 끝나 집에 돌아가야 했죠. 그리고 그걸 유주에게 직접 말해야 했고요. 그때 받았던 스트레스는… 절 작은 일에도 신경질 나게 만들기에 충분했어요.

 

그 날도 유주와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머리 한 쪽엔 그 스트레스들을 몽땅 밀어넣고 지금에 집중하려고 했죠.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릴 보더니 유주에게 악마랑 사귀는 악마숭배자라며 작은 소리로 낄낄거리는 거에요. 저는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유주는 그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사과를 요구했죠. 다행히 다툼은 없었어요. 왜 어떤 사람들은 잘못을 지적받으면 대충 인정하고 사과 하며서 상황을 잘 빠져나가잖아요? 그 사람들이 그랬죠. 진심으로 사과하는 기색은 없었어요. 하지만 유주는 그냥 그들을 보내줬죠. 그리고 제게 손을 내밀었어요. 저는 그 손을 잡지 않았어요. 화가 났거든요. 왜 화가 난 건지 스스로도 설명 할 수는 없었지만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참을 수가 없겠는 거에요. 지금와서 생각해 보자면 저는 그들을 피하고 싶었는데 유주가 일을 키웠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거기다가 제대로 된 사과도 못 받은 거니 짜증이 터져 버린 거죠. 저는 유주가 그런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차라리 제 감정을 살펴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사실 중요한 건 대화였는데… 그때까지 제 생각을 유주에게 제대로 말한 적이 없었으니 제 잘못도 있었죠.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유주에게 소리 지르고 집으로 왔죠. 솔직히 붙잡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저를 붙잡는 손길은 없었어요. 메세지도 없고, 전화도 없고… 집에 돌아오고 나니 화났던 마음이 가라앉아 모든 상황이 선명해졌어요. 제가 잘못한 거에요. 물론 저희 뒤로 욕을 했던 그 사람들을 제외하면요. 그때부터는 불안뿐이었어요. 이대로 헤어지게 되는 걸까? 나는 타라에 가야하는데… 아직 그 사실을 유주에게 전하지도 못했는데… 누가 제 가슴에 못을 박아 놓은 것 같았죠. 저는 유주의 얼굴을 떠올렸어요. 유주가 짓는 표정들, 목소리. 그 모든 게 생생하게 맴돌다가 순식간에 깨졌어요. 선생님. 겨우 한명이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거 아세요? 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저를 무너뜨려요. 저를 미워하는 사람도, 비웃는 사람도 그럴 수 없는데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단 사람이 저를 무너뜨린다는 것은 기쁘고 무서운 일이죠. 유주가 제 곁을 떠날거라고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떠나는 건 저인데도 유주가 떠날 거라는 생각이 머리 가득 차 있었죠. 저는 어느새 밤거리를 달리고 있었어요. 비도 오지 않았는데 다리를 삐었던 그날 밤이 떠올랐어요. 유주가 도와주기 전, 그냥 아픈 다리를 붙잡고 울기만 했어야 했던 그 순간말에요. 저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유주의 집으로 향했어요. 하지만 유주를 만날 수는 없었죠. 유주의 아파트에 유주는 없었거든요. 저는 모든 게 끝나 버린 것 같아 그 자리에서 주저 않아 울었어요. 이제와서 말하자면 거기서 운건 조금 창피한 일이었죠. 울 필요가 없었거든요. 유주가 집에 없었던 이유는 차를 타고 저희 집에 왔기 때문이었어요. 그래도 재밌는 건 유주 역시 빈 집에 도착했고 제가 타라로 가버린 줄 알고 엉엉 울었다는 거에요. 타라로 가버린 줄 알고…

 

네. 선생님. 유주는 제가 곧 타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알 수 밖에 없었죠. 저는 숨긴다고 숨겼지만 조금만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는 문제였어요. 비자가 만료되면 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취업을 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방법으로 조금 더 기간을 늘일 수는 있지만 그건 영원하지 않다는 것 모두요. 그 밤,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유주는 제 머리를 만져주며 말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요. 방법이 있을 거라고. 하지만 저는 불안했어요. 당장이라도 지구에서 쫓겨날 것 같았거든요.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저를 욕하던 지구인들이 있었으니까요. 유주와 제게 친절한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제가 타라로 돌아가길 바라고 있다고 느꼈죠. 저는 그런 것들을 유주에게 말했어요. 우리는 그 긴 밤 내내 아주 오랫동안 대화했어요. 언제나처럼 두 손을 맞잡고서 이제까지 서로를 위한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까지 전부 털어 놓았죠. 저는 유주에게 차별적인 상황들을 제가 마주 보고 싸울 힘이 생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아직까진 회피라고 불러도 좋으니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싶다고요. 유주는 알겠다고 말하며 미안하다고 했어요. 하하, 유주의 사과를 듣자마다 또 눈물이 터져서 혼났지 뭐에요. 제 울음이 멎었을 때 저는 유주의 불안도 듣게 되었어요. 그 애도 제가 떠나는 것이 두렵다고 했어요. 겨우 마음을 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났는데 그걸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다고 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유주의 얼굴에서 저는 다시 한 번 그 애의 외로움을 보았어요. 어떤 위태로움도요. 저는 유주 곁에 있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을 거라는 것도 알았죠. 제가 작게 한숨을 쉬었을 때 유주는 저를 똑바로 보았어요. 저는 또다시 어떤 직감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고백받았을 때처럼요. 유주가 지금부터 하게 될 말이 저를 놀랍게 만들거라는 걸 알았요. 좋은 쪽으로요. 저는 그애의 말을 막았어요. 그리고 제가 대신 말했죠.

 

나랑 결혼해 달라고. 내 곁에 머물러 달라고.

 

타라에서는 가족의 형태가 오직 결혼 뿐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타라에서는 결혼이 무척 신중한 의미로 받아들여져요. 지구도 그렇다고요? 아뇨. 그 이상이에요. 타라에서는 한 번 결혼한 사람과는 헤어지지 않아요. 이혼이 없냐고요? 있죠. 있지만 하는 사람은 극히 적어요. 배우자와 사별하면 크게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도 많고요. 왜, 지구의 어떤 동물들은 한 번 짝을 정하면 평생을 그 짝과만 보낸다면서요? 그것과 같아요. 그만큼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거에요. 결혼 전에 수 많은 문답을 하고 수많은 검증을 하죠. 그래서 연인으로 지내는 사람은 많지만 결혼까지 가는 경우가 많진 않아요. 또, 타라에서는 결혼을 법으로 정해두지 않아요. 두 사람이 부부라고 이야기하면 그 둘은 부부인거에요. 그걸 의심하는 사람은 없어요. 많은 지구인들이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럼 법적으로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타라인들에겐 그런 생각이 오히려 신기해요. 가족을 법으로 인정해 준다는 그 사실이 말에요. 그리고 유주는 그 모든 걸 알고 있었죠. 그 날 밤, 우리는 문답과 검증대신 수많은 질문을 나누었어요. 서로가 정말로 서로의 배우자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결국 답은 그럴 수 있다는 거였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라고 결론 내렸죠. 그래요, 지구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세상에 그런 관계는 없다고 했던 적도 있어요. 관계가 그렇게 극단적이어선 안된다고요. 그러나 타라에선 그런 “극단적인” 관계에서만 결혼을 해요. 다만 그 극단이 서로를 상처주지 않는다는 확신과 함께 했을때 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날 우리는 결혼하기로 결정했어요. 유주에게는 아주 오랜만에, 또 저에겐 처음으로 가족이 생겼죠. 지구에서는 타라인과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아요. 법적으로 부부가 될 수도 없고요. 하지만 그건 제게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저는 그저 유주의 답을 원했을 뿐 있거든요. 그리고 질문의 끝에서 제가 정말 내 곁에 영원히 머무는 가족이 되어주겠느냐고 물었을 때, 유주가 고개를 끄덕이고 제 손가락에 입을 맞추어 주었어요. 그 순간 저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어요.

 

저희는 시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를 쓰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가까운 분들을 불러 작은 파티를 열었죠. 그 파티는 지구인들이 말하는 결혼식이었고, 타라인에겐 서약식이었어요. 지구의 결혼식과 타라의 서약식엔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부부가 된 사람들이 죽음이 갈라 놓을 때까지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선언하는 거요. 그러니까 약속은 지켜져야해요, 선생님. 네. 그렇게 말씀하셔도 소용없어요. 지구의 법이 저희를 부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희는 이미…

좋아요. 이야기를 계속할게요.

 

파티를 끝마치고 저희는 제가 어떻게든 지구에 오래 남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학원은 학비를 유주가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제가 거절했어요. 물론 영화를 더 공부하고 싶긴 했지만 유주의 도움없이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싶었거든요. 진학을 제외하면 취업이었는데 처음엔 방법이 없었죠. 지구의 영화판은 편견이 심한 곳이었어요. 외계에서 온 제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는 하는 수 없이 다른 분야의 일자리를 찾았어요. 어렵진 않았어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 카페 사장님께서 저를 정직원으로 고용해 주셨거든요. 정말 감사한 분이에요. 나중에 일이 이렇게 되었을 때도 절 가장 많이 도와주신 분이시죠. 제가 선생님께 오기까지 가장 힘을 많이 써주신 분이시고요. 어쨌든 사장님 덕분에 저는 지구에 더 남아 있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카레나 음식점 같은 요식 서비스업은 비자 기간이 2년 밖에 나오지 않아요. 그래도 저랑 유주는 만족했어요. 유주는 이제 매일 카페에 찾아와 글을 썼고, 모든 게 잘 되어갔어요. 삶이 안정 되자 영화를 찍고 싶다는 제 꿈은 점점 더 커져갔는데 유주가 좋은 제안을 했어요. 걔가 쓴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들자고 했죠. 영화를 찍어 영화제에 출품하고 잘 되면 영화사에 고용될 수도 있고 그럼 더 오래 있을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저는 그러겠다고 말했어요. 그날부터 유주와 저는 머리를 맞대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소설을 시나리오로 바꾸는 건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즐거웠어요. 한 줄 한 줄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뿌듯 했죠. 하지만 영화는 나오지 못해요.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마지막으로 검토하기로 한 날 저는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죠. 그리고 곧 이유를 알았어요. 유주가 부엌 바닥에 쓰러져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때의 기억은 명확하지 않아요. 쓰러진 유주를 붙잡고 숨을 쉬는 지 확인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나서 구급차를 불렀는지, 사장님께 전화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제 정신을 차렸을 무렵 유주는 응급실에 들어가 있었어요. 숨이 잘 쉬어 지지 않았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판단하기 어려웠죠. 나중에 보호자 면담에 들어갔는데 가족이 아닌 동거인은 임시 보호자로 분류 되어 면담을 받을 수 없을 뻔 했어요. 다행히 곁에 있던 사장님께서 저희가 부부라고 말씀해주셨고, 의사분께서도 따로 가족관계증명서같은 서류를 요구하지 않기로 하셔서 면담이 가능했죠. 유주는 맥박과 호흡이 불안정하고 열이 높았어요. 특히 폐가 급격히 손상 된 상태라고 했어요. 당시에는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독감이나 폐렴이 의심된다고 했는데 그것들과는 조금 다른 증상이었어요. 그리고 며칠 뒤 저희는 유주가 ‘파게’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 희귀병에 걸린 사람은 전 지구적으로 아주 적은 숫자여서 치료 연구가 아직 진행 중이라고 했어요. 바꿔 말하면 이 희귀병의 치료제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어요. 걸리는 사람도 적고,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도 적으니 사용되는 양도 적죠. 돈이 되지 않으면 연구는 늦어져요. 그리고 어떤 연구는… 병의 진행 속도보다 느리게 진행되죠. 선생님도 의사시니까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죠. 그러니까, 유주의 병이 그 애가 죽을 때까지 치료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선고였어요. 유주는 아직 깨어나기 전이었죠. 저는 병실에 누워있는 유주의 얼굴을 보았어요. 새하얀 얼굴이 당장이라도 죽어 사라질 것 처럼 투명했어요. 누워서 천장을 향해 감은 유주의 눈 위로 그애와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가 그림자처럼 걸렸어요. 불행한 일은 예고 없이 나타나요. 그걸 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죠. 그 전 주만해도 우리는 영화를 만들 생각에 행복했는데 단 한 순간만에 모든 게 바뀌어 버렸어요. 저는 유주의 차가운 손을 붙잡고 말했어요.

 

내 곁에 있어주기로 했잖아. 떠나면 안돼.

 

그러나 한동안 유주의 눈이 열리는 날은 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선생님. 비극은요, 그게 아니였어요. 비극은 선택지에 문항이 단 하나일 때 일어나요. 그 끝이 절벽인데 걸어가야 할 때 일어난다고요. 또다시 먹구름에 비만 내리는 것 같은 날들이 지나고 유주가 눈을 떴을 때, 저는 하고 싶지 않은 선택을 해야 했어요.

 

유주에겐 수많은 팬들이 있었죠. 그들은 유주의 안녕을 바랐어요. 촉망받는 젊은 소설가가 희귀병에 걸려 생사를 헤메인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어요. 그러자 몇 연구소와 제약회사들이 파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이 병을 호전시킬 수 있는 치료법이나 약이 개발 된다면, 그래서 이 많은 팬을 거느린 예술가를 치료할 수 있다면… 그건 돈이 돼요. 아예 0부터 시작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파게는 오래된 병이니까 적은 인원이여도 쌓인 데이터라는 게 있었어요. 치료 방법을 연구해 오기도 했고요. 하지만 완전히 연구에 몰두하기엔 세간의 관심이 더 필요했어요. 투자자들을 어떻게든 끌어올 만한 관심이요. 제가 그 관심이었죠. 생각해보세요. 희귀병에 걸린 비운의 소설가에게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법적으로 인정이 되지 않는 외계에서 온 연인뿐이라니. 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겠냐고 시나리오를 짜는 거예요. 그 이야기에서 저희는 완전히 동정 받는 가여운 인물들이 되죠. 연구소 직원들은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우월감을 심어준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제게 불쌍한 사람이 되라고 했죠. 저는 선택권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들의 시나리오에 맞춰 여러 매스컴에 나서고 눈물로 호소했어요. 눈물은 가짜가 아니었어요. 저는 절박했고, 유주가 떠날 것을 상상하면 두려움에 사로 잡혔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제 눈물이 가짜라고 했어요. 애초에 저같은 이상한 외계인을 곁에 두어서 그런 병에 걸린 거라고도 했죠. 하지만 저는 참을 수 있었어요. 참아야 했어요.

 

그리고, 유주가 다시 눈을 떴어요. 유난히 파란달이 뜬 밤이었어요. 그 애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저를 보고 지어주는 미소는 여전히 다정했어요. 저는 유주의 얼굴을 쓸어주면서 좋은 꿈을 꿨는지 물었고 유주는 고개를 끄덕였죠.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나누었어요. 그날밤은 오랜만에 평화롭게 잠들었어요. 다음날부터는 유주도 메스컴을 탔어요. 수척해진 유주의 얼굴이 온갖 방송과 동영상 사이트를 돌아다녔죠.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보내줬어요. 하지만 유주의 병은 정신을 차린날부터 더욱 악화되었어요. 연구팀에서는 치료제가 완성되려면 몇년 더 걸릴것 같다고 했어요. 유주가 견딜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죠. 그래서 우리는 선택해야했어요. 아마… 다시 돌아가도 그 선택을 하게 되겠죠.

 

인공동면시술. 통상 냉동인간기술이라고 부르는 이 기술은 단순해요. 인간의 신체를 냉동하고 일정기간 잠재웠다가 다시 깨우죠. 목적은 다양한데 의료의 경우, 유주처럼 치료제가 만들어지는 것보다 병의 악화가 더 빨리 진행될때 대부분 권해져요. 죽음이 유주의 발목까지 다가왔을 때 우리는 선택을 해야했죠. 유주가 깨어나고 두 달 뒤, 유주는 다시 오랜 잠에 들었어요. 동면에서 깨어날 기간은 치료제가 개발되는 순간으로 정했죠. 그전에 깨어나는 것은 상정해두지 않았어요. 그만큼 위험했던 거에요. 유주가 깨어나면 병이 더욱 악화되니까요. 연구팀은 그 기간이 최대 2년정도라고 했어요. 그 시간이 지나면 저는 쫓겨날 지도 몰랐죠. 하지만 그러겠다고했어요. 만약 내가 타라로 돌아가면 유주가 건강해져서 타라로 오면 된다고 시술전에 우리 둘이 손가락 걸고 약속했거든요. 사실 그럴 필요는 더 이상 없었죠. 법이 바뀌어서 요식  서비스업에 일하는 타라인들도 고용주들이 재계약만 해주면 2년 이상 지구에 머물 수 있게 되었거든요. 걱정을 하나 덜었어요. 그 법안이 통과된 날 저는 재밌는 생각을 했어요. 유주가 깨어나기 전에 약속했던 영화를 완성해야 겠다고요. 유주가 제게 보여주었던 영화처럼 저도 유주를 위한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죠. 시나리오는 나왔으니 콘티를 그리고 배우를 구해야했어요. 곰곰히 고민하다가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했어요. 유주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는 게 떠올랐거든요. 저는 영화를 찍을 때 주로 프리프로덕션에 많이 참가 해서 촬영이나 편집보다는 시나리오를 쓰거나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일을 많이 맡았어요. 덕분에 그림 실력이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간단히 그릴 수는 있었죠. 지구의 프로그램들 중엔 그 정도의 그림으로도 조잡하지만 나쁘지 않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것들이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몇 가지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어요. 마침내 애니메이션이 완성되었을 때 저는 계획했던 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했어요. 그때부터 기적같은 게 일어났죠. 네, 맞아요. 그 작품이 20nn년에 선샤스 국제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받은 <섬>이에요. 그 작품 덕분에 지구에 남을 수 있었죠. 물론 욕도 엄청 먹었지만요. 왜냐구요? 뭐, 배우자 잘 만나서 좋은 원작으로 작품 만들고 상받았다는 이유였죠. 상관없었어요. 그때는 더이상 남이 하는 얘기에 스트레스 받지 않았거든요. 제 관심은 모두 유주에게만 쏟았어요. 다행히 유주는 문제없이 잠들어 있었죠. 하지만 곧 나쁜 소식이 들려왔어요. 파게의 연구를 하던 연구소와 제약회사가 파산했거든요. 그 연구를 받아서 하려는 곳들이 몇군데 있었는데 잘 안되었어요. 유주는 대중에게 잊혀져가고 있었거든요. 더 이상 제 호소는 통하지 않았어요. 다들 이제 지겹다고 얘기했죠. 그렇게 한 해 두 해 시간이 흘러갔어요. 유주가 깨어나기로 예정되었던 시간도 지났어요. 어느새 지구에 머무는 타라 유학생들이 네자리수로 늘어나고, 타라로 여행을 가는 지구인들도 많아졌어요. 제가 처음 지구에 왔을 때 느꼈던 적의도 많이 사라졌고요. 저는 영화를 계속 찍었고, 찍는 영화마다 성공했어요. 돈이 생겼고, 시간이 생겼고,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어요. 그 사이 법이 바뀌어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몇가지 시험을 보면 지구에서 장기 거주할 수 있는 거주권을 딸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어요. 여전히 타라인과 지구인의 결혼은 법적으로 인정이 되지 않아요. 타라인의 외형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죠. 타라인이 지구 영주권을 가질 수는 없어요. 유주도 계속 깨어나지 못하고 있죠.

 

제가 거주권을 갖게 되었을 때, 저는 유주를 이대로 계속 방치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다시 깨워 상황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치료법은 언제 다시 개발 될지 알 수 없어요. 그렇다면 계속 치료법을 기다릴지, 아니면 치료를 포기할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했죠. 유주를 잃는 것은 정말 무서웠지만, 제가 이기적으로 걜 계속 붙잡아둘 수는 없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먼 미래에 유주가 눈을 뜨게 되었을 때 제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어요. 타라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제가 더 이상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거에요. 그럼 유주는 어떻게 하죠. 걔가 혼자 남겨지는 것은 유주가 절 떠나가는 것 보다 더 두려웠어요. 그래서 그러기 전에 다시 한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유주가 발목을 삔 절 도와줬던 그 날처럼, 크게 싸우고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된 그 날처럼요. 또, 유주가 쓰러진 뒤에 다시 깨어났던 그 밤처럼 말에요. 다시 한번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미소를 지어주고, 우리가 즐겨봤던 오래된 영화들과 제가 찍었던 우리의 영화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건 거부되었죠. 인공동면시술을 진행하는 것은 국가 기관이에요. 거기 공무원들은… 네, 규정에 까다롭죠. 환자를 다시 깨우는 건 오직 가족만 가능해요. 법적가족만요. 그러니까, 저는 아니죠. 전 유주의 배우자이지만, 법으로는 남이에요. 그래서 저는 유주를 깨울 수가 없대요. 유주가 처음 시술을 받을 때 약이 개발되는 시점을 해동시점으로 잡았기 때문에 약이 만들어 지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어요. 그런데 애초에 그 치료제를 연구하던 팀이 사라져 버렸잖아요. 그건, 유주가 다시 깨어날 수 없다는 의미에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화가 났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따졌지만 그들에게 저는… 그냥 타라에서 온 타인이었을 뿐이었죠. 저는 소송을 걸 수도 없었어요. 저희의 상황을 알 게 된 많은 지구인들이 도움을 줬지만 국가는 완고했어요. 만일 깨어났을 때 본인이 원한 게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런 문제를 떠안을 수는 없다고 했어요. 또다시 시간이 흘렀고, 또다시 관심은 사라졌고, 저는 무력함 앞에서 죽은 듯이 살았어요. 아무런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러다 방법이 떠오른 거예요. 유주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이요. 저도 이 시술을 받는 거에요. 깨어나는 시점은 유주가 깨어날 때로 맞추는 거죠.

 

네. 알아요. 위험하죠. 그런데 다른 방법은 없잖아요. 이 기술이 지구인의 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도 알지만, 저는 이 시술을 받아야 해요. 이성적인 생각이 아니면 뭐 어때요?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는 얘기를 제가 몇 번이나 들었는지 아세요? 저도 계속 그 다른 방법이라는 걸 찾아다녔어요. 쉬지 않고요. 그 사이 유주가 인공동면에 들어간 지 13년이 흘렀어요! 그 세월동안 제가 배운게 있다면, 세상에 어떤 일은 가장 비이성적인 방법밖에 남지 않은 것도 있다는 거에요. 저는 겁이 나요. 만약 제가 죽을 때까지 유주가 깨어나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그 생각만 하면 죽을 것 같아요. 유주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언젠가는 깨어날 거에요. 하지만 그때에 제가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어요. 저는 유주를 또다시 외로움 속에 방치시킬 수 없어요. 그러니까 저는 시술 받을래요. 받게 해주세요. 의사의 소견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거짓말을 하자는 건 아니에요. 선생님 말고 다른 의사들도 타라인이 인공동면시술을 받으면 위험하다는 얘기를 했어요. 하지만 다들 깨어날 가능성이 아주 작게나마 있긴하다고도 했죠. 그러니 선생님, 부탁이에요. 선생님의 소견서가 제 유일한 희망이에요.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냐고요? 아뇨, 저는 반드시 깨어날 거에요. 들어보세요. 여전히 누군가는 우리의 사랑이 인정받을 수 없다고 해요. 다른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죠. 하지만 선생님, 다른이의 인정은 저희에게 중요치 않아요. 중요한 것은 유주가 저를 사랑하고 저 역시 유주를 사랑한다는 그 사실이에요. 그러니 저는 다시 유주와 눈을 맞추고 손을 마주잡을 날까지 그 애곁에 함께 잠들어 있을 거에요. 전 저랑 유주 모두 꼭 깨어날거라고 믿어요. 저희는 서로가 이 지구 위에서 얼마나 외로워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

 

 

[서류1] 면담기록_xxxx

 

[서류2] 시술기록부_20xx.xx.xx

바이탈 체크, 올클리어



 

내가 타라인에게 인공동면시술을 허가한 첫 번째이자 유일한 의사라는 것을 알고 많은 매체에서 연락이 왔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던질 질문을 이미 알고 있다. 시술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분명 내게 책임이 올 텐데 걱정되지 않느냐는 물음들일 것이다. 물론 걱정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시술을 허가한 것은 내가 아직 의대생이던 시절 보았던 한 애니메이션 영화 때문이었다.  바로 선샤스 영화제에서  본 <섬>이었다. 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이 내 앞에 있었을 때 나는 그들을 도와야만 했다. 의사가 이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나는 이들을 도운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과거를 회상한다.  <섬>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감독이 잠든 연인을 위해 그 영화의 결말을 조금 바꾸었다는 데에서 감동을 받았다. 영화는 치료를 받기 위해 도시에 남아 있던 연인을 두고, 주인공이 연인과 둘이서 함께 살기로 한 섬으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지만 결국 끝까지 오지 않는다는 결말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연인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원래는 그 믿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강조하기 위해 이런 결말을 기획했다고 했다. 원작소설에서는 확실히 이런 지점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감독은 주인공에게 사랑하는 이의 손편지가 오는 것으로 결말을 바꿨다. 감독 자신과 자신의 연인을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에 이입했을 때 감독의 바람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그 편지를 읽는 연인의 목소리와 파도가 치는 바다가 오버랩 되는 부분인데, 편지의 내용이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장 유명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나는 여기에 살아있을 힘을 얻어.

 

오늘 다시 그 영화의 문장이 떠오르는 것은 그 타라인이 시술을 받고 동면에 완전히 들어섰을 때 그의 연인이라던 소설가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보였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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