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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시티 이번 이월의 이별

2023.02.01 00:0002.01

이번 이월의 이별

노말시티

 

이별을 고하는 건 2월이 어울린다. 1월은 너무 빠르고 3월은 너무 늦다. 그러니 2월. 이왕이면 밸런타인데이가 좋다. 직접 만든 달콤한 초콜릿에 작은 메모를 동봉하여 이별을 고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소복하게 눈이 쌓여 있으면 좋겠다. 너에게 이별을 고하러 가는 길에 사각사각 발자국이 남았으면 좋겠다. 예쁘게 포장된 붉은 상자를 너에게 주고, 돌아오는 나의 발자국이 하얀 눈으로 다시 채워졌으면 좋겠다.

나는 너에게 이별을 고한다. 너와의 이별을 선언한다. 너와 함께 살아갈 수 없어서 나는 이별하기로 했다. 너와 이별하지 못해서 나의 1월은 없었다. 그래도 1월은 너무 빠르고 3월은 너무 늦다. 나는 너에게 2월에 이별을 고한다.

우리는 서로 맞지 않았다. 너의 시작과 나의 시작도 맞지 않았고 너의 끝과 나의 끝도 맞지 않았다. 우리의 끈이 서로 겹친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우리는 함께였다. 영원한 사랑이란 없다며 너와 나는 웃었다. 그것만큼은 우리의 의견이 맞았다. 그렇게 웃을 때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했다.

우리가 사랑하기로 선언한 날을 기억한다. 나는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을 골라 너를 사랑하겠다고 선언했다. 내 딴에는 그게 멋있을 줄 알았다. 그 말을 듣고 너는 울었다. 네가 우는 모습을 보고 나는 하루라도 먼저 너를 사랑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너에게 이별을 고하며 나는 너에게 사랑을 선언하지 않고 흘려보냈던 어리석은 시간을 다시 한번 후회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에도 너는 많이 울었다. 웃다가 울기도 하고 그냥 펑펑 울기도 했다. 너는 내가 울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너와 사랑할 때도 울지 않았고 너에게 이별을 고하면서도 울지 않는다. 너와의 추억으로 1월을 뒹굴면서도 나는 울지 않았다.

네가 날 떠나던 날. 나는 처음으로 울었다.

그때 너무 조금 울어서 나는 이제야 네게 이별을 고한다. 달콤한 초콜릿을 녹여 하트 모양의 틀에 눈물 대신 부어 넣는다. 너에게 할 말이 너무 많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메모지를 고른다. 너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나는 적지 않는다. 그때 흘리지 않았던 눈물도 꾹 눌러 간직한다. 대신 나는 작은 메모지에 두 글자를 적는다. 안녕.

너에게 작은 상자를 건네주며 나는 작년 2월에 건네주었던 상자를 돌려받는다. 올해 밸런타인데이에는 눈이 오지 않았다. 내가 너에게 이별을 고한 밸런타인데이에 눈이 온 적은 한 번도 없다. 너에게 사랑을 선언할 때 쏟아졌던 눈이 이별을 선언할 때는 오지 않아서 나는 슬프면서도 기쁘다.

작년 2월에 내가 묶었던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연다. 녹았다가 다시 굳은 초콜릿을 한 조각 떼어 입에 넣는다. 그리고 작은 메모지에 적힌 글을 읽는다. 안녕? 안녕! 적혀 있지 않은 물음표와 느낌표를 나는 애써 상상한다.

너 없는 3월을 살아가기 위해 나는 2월에 이별을 고한다. 1월에 떠난 너는 매년 나에게 다시 돌아와 인사한다. 안녕! 나는 너에게 딱 한 달밖에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로 선언했다. 네가 엉엉 울어도 나는 2월에 이별을 고한다.

안녕. 안녕. 매년 2월에 나는 너에게 이별을 고한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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