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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종 동자신과의 대결

2022.12.01 00:0012.01

동자신과의 대결

박희종
 

이세돌이라는 천재 바둑기사가 알파고라는 바둑 프로그램을 이겼다. 단 1승이었지만, 사람들은 컴퓨터를 이긴 인간의 승리라고 기뻐했고, 이세돌은 은퇴했다. 

“내가 배운 바둑은 예술이었습니다. 하지만 홀로 모니터와 싸우면서 바둑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천재 바둑기사가 은퇴하고도,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 프로그램과의 대결을 멈추지 않았다. 두뇌를 써야 하는 체스나 장기, 오셀로 같은 보드게임부터, 본능이나 감이 중요시되는 포커나 블랙잭 같은 도박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우습게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과 끊임없이 경쟁하고 싶어 했고, 그 경쟁에서 인간이 이기면 아직은 인간이 더 우월하다며 우쭐댔으며, 프로그램이 이기면 그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도 결국 사람이라며 으스댔다. 하지만 그 아무 의미 없는 경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에게 프로그램이 이기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고, 조금 지나자 더 이상 인간과 컴퓨터 프로그램과의 대결은 흥미롭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나고 더 이상 인간과 프로그램 간의 경쟁이 사라진 어느 날, 다시 흥미로운 광고가 세상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었다. 

[미래 예측 프로그램 VS 이제 막 신내림 받은 동자신 무당]

이제 더 이상 인간이 프로그램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 여전히 프로그램이 정복하진 못한 분야를 찾아낸 것이다. 바로 영적인 부분이었다. 신기하게도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세상은 더없이 안정되고 평화로워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삶에 불안해했으며, 미래를 알고 싶어 했다. 다양한 채널에서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 일기예보처럼 흘러나오고 있었고, 실제로 개개인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비서프로그램들은 각자의 자산관리부터 건강관리, 심지어 발생가능한 사고나 리스크, 불규칙하게 발생하는 천재지변까지 예측하고 예방하고 있었다. 그런 완벽한 예측에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점집을 찾아다니며 미래를 묻곤 했던 것이다. 

“도대체가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사람들이 점을 보러 다니는 거야?”

 “재미있잖아요.”

“재미있어? 그게? 0.0001%도 과학적인 분석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그 행동이? 차라리 그 돈과 시간으로 낭비라도 하라고 해. 그럼 스트레스라도 풀리잖아. 그게 뭐 하는 짓이야.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들을 하고 있냐고! ”

“왜 이렇게 흥분하고 그래요? 누가 간대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지난주에 다미 엄마가 다녀왔는데, 그래도 뭔가 위안이 된다고 하던 데요. 뭐..”

“뭐가 위안이 된데?”

“다미가 불안불안하잖아요. 입학 예측을 돌려도 자꾸 아슬아슬하게 나오니까…”

“나 참. 그럼 교육프로그램에 컴플레인을 걸던가. 더 높은 레벨의 프로그램으로 갈아타던가! 그 점쟁이가 다미 습득률을 높여준 데? 아니면 학업 집중도를 높여준 데? 나는 다미 엄마처럼 비과학적인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아. 정신이 나간 것 같다니까. 그러니까 당신도 하릴없이 다미 엄마랑 싸돌아다니고 그러지 좀 마! ”

수호는 지금 필요 이상으로 아내에게 흥분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바로 그 점집에 예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명분은 확실했다.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인류 예측 프로그램의 홍보를 위해 점쟁이들과의 대결을 기획한 것이 바로 수호였기 때문이다. 수호는 자신의 프로그램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정확한지를 임팩트 있게 알리기 위해서, 가장 잘 맞춘다는 점쟁이와의 미래 예측 대결을 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수호는 자신의 프로그램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장 신기가 좋은 무당을 찾아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지구에서 유명하다는 무당들은 모두 만나고 다녔다. 하지만 역시 그 바닥은 사기꾼들의 천국이었다. 대부분의 점쟁이들은 자신이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표정과 행동들을 분석해서 비슷한 피드백만 했다. 

“막혔네. 지금 꽉 막혔어. 지금쯤 뭔가를 시원하게 펑 뚫어주지 않으면 속부터 먼저 썩겠어.”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고,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업이 안 풀려서 방법을 찾으러 왔다는 것을 그들의 경험을 통해 짚어냈고, 그에 따른 솔루션으로 부적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미션들(집안에 팥을 두라는 둥, 사무실에서 그릇을 깨라는 둥,)로 제시했다. 심지어 일종의 샤머니즘 페스티벌을 열라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히 어마어마한 비용을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수호가 방문하는 점집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수호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고, 결국에는 이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으로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작은 광고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같은 시대에 길거리에 종이가 붙어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관심을 끌 만한 일이었지만. 그곳에 쓰여 있는 문구가 그를 그 앞에 더 붙잡아 두었다. 

[이제 막 신내림 받은 동자신 무당]

수호는 이 광고지에 쓰여 있는 모든 말이 공감되지 않았다. 그의 상식으로는 왜 이제 막 신내림을 받은 것이 광고의 소재로 쓰이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누군가의 미래를 보겠다는 것은 아주 야심 찬 도전이다. 그런데 그런 도전을 하겠다는 자신감의 근거는 당연히 데이터여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예측했고, 적중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경력이나 능력치가 얼마나 높은 신뢰도를 만들고 있는지. 이런 것들이 홍보되고 광고 소재로 쓰여야 하는데, 저 문구에서는 자신이 경력이 없는 얼마 안 된 신인 무당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그렇게 받은 신의 종류도 동자신이라고 한다. 정확한 뜻은 몰랐지만, 검색한 결과 동자는 어린아이를 뜻한다. 그렇다면 결국 저 무당은 아주 어릴 때 죽은 영혼을 이제 막 받아드린 초짜 무당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말로 버젓하게 광고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호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것도 일종의 반발심을 자극한 광고기술인가? 갑자기 궁금해지네?”

수호는 마치 무엇인가에 홀려서 이끌려가듯이 그렇게 광고지가 안내하는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간 곳에서 시작부터 엄청난 이야기를 듣는다. 

“기다리고 있었어. 왜 이렇게 헤매고 다닌 거야?”

모듈 상가 사이로 좁은 길을 따라 30m쯤 들어가자 [점]이라는 한 글자만 딱 쓰여 있는 작은 문이 나왔다. 그리고 그 작은 문을 밀고 들어가자. 조그만 마당 같은 것이 나왔는데, 언젠가 고전 영화에서 봤던 것 같은 빨간 색등들과 다양한 색의 깃발들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세발자전거나 각종 공들도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동자신이여서 그런지 아이들의 장난감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그 공간을 지나갔더니 왼쪽으로 또 하나의 문이 보였다. 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노크도 하지 않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랬거니 마치 수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의 한 젊은 여성이 화려한 한복을 입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기다리고 있었어. 왜 이렇게 헤매고 다닌 거야?”

“예?”

“나 찾으러 다닌 거 아니야? 두 달 동안?”

수호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 언제인지, 그리고 무당들을 찾으러 다닌 것은 또 언제부터였는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오늘이 딱 2달째 되는 날이었다. 

“어때? 그동안 순 껍데기들만 만나고 다녔는데, 나는 좀 달라 보여?”

이제 겨우 20대 중반이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다짜고짜 자신에게 반말로 말을 걸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만 본다면 수호는 지금 당장 화를 내고 나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로 대답하는 자신이 스스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예…”

“일머리가 좋아. 성실하고, 지금까지 쌓아 온 것이 슬슬 성과를 만들어 갈 시기야. 그래서 아마도 나한테 온 거겠지. 오면서도 참 발걸음이 무겁다 무겁다 했을 텐데. 용케도 여기까지 왔네. 이렇게 네가 날 찾아 왔다는 것 자체가, 네가 그렇게도 부정하고 있는 운명이라는 것이 아닐까?”

수호는 눈앞에 있는 어린 여자에게 기가 눌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자기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지만, 한쪽으로는 찾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정도 포스는 가지고,이 정도 신통함이 있어야 사람들도 기대할 것이고, 사람들의 기대가 커야 자신의 프로그램도 홍보가 될 테니까 말이다.

“멀리 찾아왔으니 선물을 하나 준다네. 우리 동자가. 이따가 회사에 들어가면 옆방 놈이 수작을 하나 부릴 거래. 아마 지난달에 네가 돈 쓴 걸로 의심을 사게 만들려고 하는 건대. 어차피 그놈 목적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한테 네 평판을 깎아 먹게 하는 거니까. 차분하게 대처하래, 가는 길에 그 큰 돈 쓴 데 가서 영수증이랑 영상이랑 미리 받아 가고, 그놈이 어제 거기서 한 짓거리도 받아서 가라네? 도움이 된다고.”

그 여자는 허공을 보며 수호에게 말을 했는데, 말을 하는 모습은 마치 영상을 보며 설명하듯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갑자기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한 수호는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모르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스스로는 그녀가 하는 말을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어차피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좀 검증해야 한다는 얇은 핑계와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녀가 말한 지난달에 회식했던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그곳은 수호가 자주 가는 곳이었기에 이미 매니저와 친분이 있었고, 그녀가 말한 것을 얻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수호가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정말 1본부의 선철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오늘 2본부 출근 날이구나. 근데 본부장이 이제야 오는 거야? 뭐 그래..?”

“신경 끄고 너희 사무실에나 가.”

“에이… 내가 괜히 왔을까? 다 할 말이 있으니까 왔지.”

수호는 선철의 저 자신만만하고 음흉한 표정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따르면 분명히 또 못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 확실한데, 그런 사실을 알고 보니 더 꼴 보기가 싫었다. 그때, 선철의 핸드폰으로 대표의 영상전화가 왔다. 선철은 대표의 영상전화를 커다란 벽에다 띄웠다. 
“무슨 일이야? 바쁜데…”

“아니. 대표님. 제가 어제 회사 앞 레스토랑에 갔는데, 거기서 좀 이상한 말을 들어서요. 글쎄 수호 본부장이 지난달에 거기서 2본부 회식했는데, 비용이 아주 과하게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우리 회사에서 거래한 금액 중에 역대급으로요. 이게 아무리 봐도 그렇게까지 나올만한 곳이 아닌데, 혹시 뭐가 있나 싶어서요. 그날 회식했던 사람들 다 있는 데서 말을 좀 해보려고요.”

수호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저 비열한 새끼. 만약 수호가 이 상황을 몰랐다면 그는 분명히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면 있는 사실도 더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려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당황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당황하는 모습이 대표에게 그리고 조직원들에게 의심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선철을 그 모습을 기대했겠지. 내가 대표 앞에서 회식비를 가지고 아등바둥하는 모습을. 이 모든 상황을 미리 알고 말을 해준 그녀의 행동이 무척 찝찝했지만, 그래도 수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선철의 말을 받아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요. 그날 보니까. 저희가 고기를 120인분을 주문했더라고요. 꼴랑 20명이서 말이에요.”

“그러니까요. 보십시오. 대표님. 이런 곳에서부터 돈이 새는 겁니다. 2본부가 찝찝한 게 한둘이 아니라니까요. 이런 식으로요.”

수호는 선철이 말하는 동안 자신이 받아온 자료를 벽으로 보냈다. 그곳에는 결제 영수증 파일과 회식을 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대표님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저희가 이번 프로그램 개발로 인해 4달 동안 회식을 하지 못하고 모두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회식은 커녕 각자 자기 끼니도 못 챙겨 먹은 사람이 대부분이고요. 그나마 다행히도 지난달에 최종 테스트까지 마치고 정말 기쁜 마음에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진짜 맘잡고 먹어보자 했는데,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사람이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본부장 재량으로 4개월 동안 함께 고생한 직원들의 가족들도 함께 먹으라고 포장을 해서 보내줬습니다. 저 영상에서 보시듯이 모 맛있게 먹고, 양손 가득 고기를 들고 가고 있거든요. 제 맘대로 그렇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

순간, 사무실의 공기는 서늘해졌다.  선철은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잘 준비하고 대처한 수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대표의 무표정한 모습과 지금의 이 가라앉은 분위기가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 얇은 웃음을 짓는 순간, 대표가 입을 열었다.

“2본부. 여러분.”

“예”

“맛있었나요?”

“예.”

“가족들도 좋아하던가요?”

“예. 아주 좋아했습니다. 가족들까지 함께 먹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신나서 춤을 추시더라고요.”

“좋은 회사 다닌다고 칭찬받았습니다.”

대표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처음에는 모두 당황했지만, 질문의 의도를 파악되자, 직원들은 웃으며 밝게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됐네요. 2본부장 잘했어요. 앞으로도 2본부는 꼭 포장까지 해주세요. 매달 회식하더라도.”

“예 감사합니다.”

사무실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기 시작했고, 앞으로도 포장해가라는 대표의 허락에 분위기는 더 들뜨기 시작했다. 심지어 일부 조직원들은 대표의 말에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선철은 얼굴이 점점 구겨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직원 중에 누군가가 벽의 영상을 보며 말했다. 

“어? 저거…”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그 벽으로 향했고, 벽에서 플레이되고 있는 영상에는 선철이 그 식당의 카운터에서 한 여성과 서로 끌어안고 진한 스킨쉽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놀라운 그 장면에 말을 잃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고, 잠시 후 그 선철의 뒤통수에 가려져 잘 안 보이던 그 여성의 얼굴이 나오자 사람들은 정말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 여성은 바로 대표의 비서였기 때문이다. 

“저게 언제 영상이지?”

“어제 영상입니다.”

“1본부장은 지금 바로 올라오시죠.”

선철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호는 자기 동기이자, 지금까지 자기일에 계속해서 시비를 걸어오던 경쟁자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을 수도 있었지만, 막상 이 상황이 자신이 혐오하던 영적인 일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지금 당장 이 모든 상황을 대표에게 말하고 싶기도 했지만,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알리는 데에 너무나도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도 증명이 된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수호는 이 모든 상황에 더 짜증이 난 것이다. 

수호는 바로 광고지에 있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시 방문할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직원들과 회의해서 그 무당과의 대결을 구체화했다. 수호는 이 대결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신념이 점점 더 강화되는 것을 느꼈는데, 그건 아마 자신이 경험한 그 신비한 일들 때문일 것이다. 수호는 그 강렬한 경험이, 자신의 마음이 조금만 약해져도 금세 그 무당을 신봉하고 맹신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점점 더 강한 벽을 만들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꼭 이 대결을 이겨야만 했다. 

“대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저희가 고객데이터 분석을 통해, 현재 가장 불안한 심리를 가지고 있는 20대 후반의 남자 두 명을 선정했습니다. 그들의 상황은 좋은 학습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다양한 조건의 스펙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2년째 모든 취업 활동 및 사회 활동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로 인해 집에서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 예측 프로그램을 통해 둘 중에 한 남자의 삶을 분석해서 앞으로 6개월간의 미래를 예측할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예측하는 것뿐만 아니라, 4가지 정도의 실현가능한 미래를 제공함으로써 그가 직접 선택하여 그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조언하고 서포트할 예정입니다. 선생님께서도 동일하게 한 명의 미래를 예측하고 조언을 통해서 그의 미래를 안내해주시면 됩니다. 평소에 하시던 것처럼 말입니다.”

“재미있겠네.”

“동의만 해주신다면 6개월의 모든 과정은 라이브 방송할 예정이고요. 두 명의 대상자 중에서 각자가 누구를 선택할지는 현장에서 랜덤으로 선발할 겁입니다. 그리고 선생님께는 대상자가 정해지는 순간 그 남자의 사주 및 이름에 대한 자료도 모두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드디어 프로그램이 시작하는 날이 되었다. 수호의 팀에서는 2명의 남자를 설득해서 스튜디오로 나오게 했고, 회사에서는 2명의 데이터를 모두 분석해 놓았다. 무당과는 다르게 기본적인 데이터가 중요하기 때문에 수호의 본부에서는 누가 선정되어도 빠르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 놓은 것이다.

 프로그램 시작 두 시간 전에 아이처럼 커다란 막대사탕을 먹으며 여자 무당이 도착했다. 여자 무당은 잔뜩 긴장하고 있는 수호와는 다르게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스튜디오를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녔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직원은 그녀의 행동을 통제하고 싶었지만, 수호는 그냥 두라고 했다. 그는 자신들이 대상자들의 데이터를 미리 분석해 놓은 것처럼, 그녀의 행동에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 것이 그녀에게 꼭 필요한 조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준비되셨나요?”

“어.”

“드디어 펼쳐지는 인류 최고의 대결. 그 역사의 순간을 박수로 함께 열어보겠습니다.” 

AI MC의 맨트에 따라 프로그램은 시작되었다. 잠시 후, 수호의 회사에서 개발된 인류 예측 프로그램이 소개되었다. 5분 정도 이어지는 프로그램의 소개는 어떻게 인류의 정보들을 수집하고 분석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분석된 자료들을 어떻게 해석해서 미래를 예측하고 관리하는지에 대한 설명들로 이어졌다. 잠시 후 여자 무당도 소개가 되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여자의 소개는 할 것이 따로 없어서 30초도 다 쓰지 못하고 끝이 났다. 그리고 이어서 대결의 룰이 안내가 된 후에 대상자들이 스튜디오로 걸어 나왔다. MC가 어두운 표정으로 스튜디오에 등장한 두  남자들의 스펙을 소개하자, 그 두남자의 표정은 뭔가 더 어두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진행자의 진행에 따라 프로그램과 무당이 담당할 남자들이 선정되었다. 공정한 선정을 위해 현장에서 바로 만든 제비뽑기를 통해 각자의 대상자들이 결정했다. 수호의 회사는 남자2가 선정되었고, 그 무당은 남자1이 선정되었다. 수호의 회사는 남자2가 선정되자마자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4가지 미래를 그에게 보여주었고, 하나하나 그에게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게 그가 해야 할 노력들에 대한 조언들도 그들이 준비한 자료에 가득 담겨 있었다. 남자2는 자신에게 제공된 4가지 종류의 미래에 아주 만족해하는 것 같았지만, 회사가 제시한 조언들에는 조금 당황하는 모습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수호의 회사직원들은 그런 모습도 예측했다는 표정으로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데이터 분석 능력과 미래 예측력에 대한 부분들로 남자2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그녀는 가만히 구경하고 있었다. 아마도 스튜디오에서 아주 빠르게 진행되는 이 상황이 꽤 재미있어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그녀와 짝이 된 남자1은 자신이 선정되었음에도 자신에게는 관심도 두지 않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서 그대로 가만히 있었고, 자신도 모르게 분주해 보이는 남자2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던 그녀는 자신과 함께 남자2쪽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1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첫마디를 했다.

“왜? 부러워?”

“네? 아니요.. 그런데 우린 뭐 안 해요?”

“왜?”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왜?”

남자1은 계속되는 그녀의 질문에 점점 당황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고 있잖아요.”

“걱정하지 마. 나는 보여.”

“뭐가요?”

“잘 풀릴 네 인생.”

“예. 뭐라고요?”

“들었잖아. 뭘 또 물어. 너 잘 될 거라고.”

순간 남자1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가만히 그대로 있었다. 그녀는 그런 남자1의 눈을 보고 다시 말했다. 

“난 아직 네 이름도 사주도 몰라. 근데 확실해. 넌 잘될 거야.”

남자1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속눈썹에 맺혀 있던 눈물방울이 점점 더 굵어져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왜 그런 줄 알아?”

남자1을 어깨를 들썩이며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남자1의 얼굴을 빤히 보다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몰라. 그냥 네 옆에 할머니가 그렇데. 네 머리를 요렇게 쓰다듬으면서 잘 될 거다 잘될 거다 하시네”

순간 남자1은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남자2의 플랜들을 보며 분주하던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고요해졌다. 그 순간 스튜디오는 시간이 멈춘 듯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고,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소리의 공백 속에서 수호는 문득 그녀의 조건이 떠올랐다. 

“누가 되든 아무런 정보도 주지 마. 난 그냥 근거 없는 믿음을 주고 싶으니까.”

대결은 이제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았다. 이 대결은 이미 끝났다는 것을. 그리고 중요한 건 누구도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대결을 통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뒤에서 자신 머리를 쓰다듬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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