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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원경 신사의 밤

2022.06.01 00:0006.01

신사神社의 밤

 

- 이 글은 일본어로 쓴 것을 한국어로 다시 번역한 것입니다. 

 

갈원경

 


지금도 가끔 떠올리곤 한다. 그날 밤 신사의 벚꽃 나무 아래를. 그 기억은 눈을 감으면 더욱더 선명하게 떠올라,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를 그날 밤으로 다시 데려가는 것이다. 캐논의 멜로디를 무표정한 얼굴로 듣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있고, 그 옆에서 뭘 하면 좋을지 모른 채 단지 별이 넘쳐나는 여름의 밤하늘만 보고 있는 내가 있다. 그날 밤, 내 안에서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그날 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라는, 그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 신사의 밤은.

 

2년 전, 나는 4년간 사귀었던 연인과 헤어졌다. 대학 신입생 때부터 사귀었던 A는 고등학교 후배였다. 그는 내가 남동생 취급을 하는 걸 싫어했던 모양으로, 언제나 발뒷굼치를 세우고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A는 종종 전화를 하거나,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거나 했다. 대학 입학식날 밤, A에게 고백을 받고 우리는 사귀게 됐다. 어째서 줄곧 동생같이 여겼던 그와 사귀기로 결심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직 고등학생인데도 의젓했던, 어른스러운 얼굴로 나만을 보고 있던 A라면 언제까지라도 내 아군이 되어줄 것이라고, 조금은 계산적인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고3이 되어서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내 입장에서 생각해 주었다. 함께 거리를 걸어가다가 새로 나온 소설의 포스터가 서점에 붙어 있는 걸 보고 재미있어보이네, 라고 말하면 며칠 후에 그 책이 우편으로 도착했다. 언제나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언제나 나만을 보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영화를 몇 편이나 같이 보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책을 읽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해도, 졸업하더라도, 우리는 절대 헤어지거나 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그가 나와 다른 대학에 입학해도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대학에는 나와 그가 졸업한 고등학교 출신도 많았고, 그중에는 고등학교 때 그와 같은 동아리에 있던 여자아이도 있었다. 나는 그걸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나만 보고 있는 사람이니까, 고백할 때 그가 보여줬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오직 나만의 것이라고 과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원했던 회사 중에 한 군데에도 합격하지 못한 채 졸업하고 반 년이 지났을 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입대했던 그가 막 제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나, 오늘부터 B랑 사귀기로 했어.”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B는 고등학교 후배로, 그와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나이보다도 어려 보이는 얼굴에, 22살인데도 여전히 고등학생으로 오해를 받곤 하는. 응석을 부리곤 하는 모습이 밉지 않아서 고등학교 때부터 선배들 모두가 여동생처럼 귀여워하곤 했던 기억이 났다. 그렇지만 나는 처음부터 그 아이가 편하지 않았다. 여성스러운 제스츄어도, 즐겨 입는 귀여운 옷차림도, 나와는 정반대 타입이어서였는지도.

“뭐야, 그거, 무슨 말이야.”

처음 나온 말은 그런 바보 같은 말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입에서 B의 이야기를 들은 적조차 없었기 때문에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어떻게 하면 좋은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나 군대 있을 때, B, 종종 만나러 와 줬었어. 나는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어. 그랬는데도 B, 계속 날 기다리고 있었다고 울었어. 내가 좋아서 어쩔 수가 없다고. 그러니까, 헤어지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자기랑 함께 있어달라고.”

“나도 갔었잖아. 나도, 몇 번이나, 나도…!”

“하지만 B는, 내가 필요해. 나 때문에 울 정도로 좋아한다고. 그러니까, 미안.”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마 나는 그 뒤로 계속 울면서, 그가 변명하는 말을 듣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라고 말하는 건 그때의 일이 아무리 생각해도 확실히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인데도 기억 깊은 곳에 꼭꼭 닫아둔 것은 기억나지 않기도 한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그와 헤어진 뒤로 견딜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취직 준비를 한다고 말하면서 매일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어디에 가든 거리에는 그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밖에 없었다. 함께 밥을 먹던, 해물탕이 맛있던 가게. 커피 위에 크림을 올려주던 커피점, 함께 올려다보던 하늘. 이명처럼 갑자기 그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발걸음을 멈추는 일도 몇 번이나 있었다. 영화를 보러 가면 지루한 영화를 보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아서 이제 두 번 다시 원래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분명,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거다.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주변은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바뀌어 버렸다. 매일 울면서 그를 원망하거나, 그 커플이 헤어져 버리길 빌었다. 두 사람에 대한 원망이 계속될수록 내 마음도 점점 황폐해져갔다.

그래서 나는 또 대학생이 되었다. 다시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내가 놀랄 정도로 간단하게 수긍했다. 갑자기 내가 일본문학을 전공하려고 한다고 해도, 아 그래, 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취직을 못 해서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함께 살던 부모님은 당신들의 딸이 갑자기 이상해진 것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부모님은 언제나 나한테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랫동안 일본영화와 소설을 좋아했다. 좋아한다고 해도 소설은 번역서를 읽은 것 뿐이고 영화도 자막이 붙어 있는 것 뿐이었지만. 입학 전에 일본어 학원에 2개월간 초급반 수업을 받긴 했지만 당연히 그것만으로는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차서, 첫 학기에는 늘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그때의 내겐 딱 좋았다. 다른 걸 생각하지 않고 공부 생각만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3학년이 되었을 때, 일본 교환유학생 모집 공고를 봤다. 그 무렵에는 어느 정도 일본어에도 익숙해졌고 같은 학년 학생들과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4년의 차이는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는 거였나보다. 언니라고 부르면서 친하게 지내는 동기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가거나 놀러가거나 하며 보통 대학생들처럼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 공고를 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두둥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이대로 지내도 될까, 이대로 언젠가 졸업을 하고 어딘가에 취직을 하고, 누군가와 결혼하거나 하는 것일까. 그때도 나는 가끔 A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다녔던 거리를 피해 다녔다. 고등학교 때에 알고 지내던 사람과 만나지 않은지도 오래 됐다. 그를 떠올리는 모든 것을 피하며, 마음 안에는 아직 원망 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남자가 조금이라도 내게 가까이 오는 것 같으면 깜짝 놀라며 거리를 두거나 도망치며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왔던 그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나는 도망치듯 일본으로 왔다.

대학 기숙사는 학교에서 꽤 떨어져 있었다. 혼자 쓰는 방에는 작은 부엌도 욕조가 딸린 작은 욕실도 있었다. 침대와 책상, 서랍, 책장, 옷장. 혼자 지내기에는 나쁘지 않은 시설. 기숙사비는 한달에 만 오천엔이었다. 짐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는데 하루가 다 갔다. 가지고 온 책을 전부 넣자 책장은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옷장은 옷을 전부 넣었더니 거의 다 차 버렸다. 100엔샵에서 접시며 밥그릇, 냄비 같은 것을 사 왔더니 어떻게든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 되었다.

이웃 방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살고 있었다. 첫 환영 파티 때 근처 방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곧 친구가 됐다. 서로 고국의 이름을 부르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이름의 뜻이나 이름자를 따서 일본어로 부르기 쉬운 별명을 붙이기로 했다. 중국에서 온 레이, 인도네시아에서 온 히카리, 스페인에서 온 리타, 그리고 한국인인 유나.

유나는 국적은 한국이었지만 일본어는 우리들 중에 제일 유창했다. 자신을 ‘하프 한국인’이라고 소개했는데, 어떻게 봐도 왜 ‘하프’라고 부르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외모도 한국인의 외모 그대로였고 일본어 발음을 보아도 보통 한국인들처럼, 한국어의 버릇이 섞여 있는 일본어 발음으로 말했는데.

신학기에 정신없이 휩쓸려다니다 보니 어느새 봄이 지나갔다. 시험과 레포트의 날을 견디고 겨우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학기 중에도 때때로 그들과 함께 밥을 먹기는 했지만 여름방학이 되자 꽤 자주 서로의 방에서 요리를 만들게 됐다. 인도네시아 음식이 그렇게 매운줄 처음 알았다. 스페인식 샐러드는 맛있었다. 중국의 레이는 중국냄비까지 들고 와서 본격적인 중국요리를 먹게 해 줬다. 나도 종종 간단한 지짐 같은 것을 만들었다. 하지만 유나는 달랐다. 그 아이만은 아무 것도 만들지 않았다. 유나는 늘 과일이나 케익, 과자 같은 것을 들고 나타났다.

유나는 조금은 이상한 애였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 애처럼 표정이 없는 20대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때로 함께 수다를 떨다가 누군가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해도 유나만은 웃지 않았다. 모두가 웃음바다가 되어도 유나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고, 물어보면 ‘재미있네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슬픈 영화를 함께 보아도, 극장의 모든 관객이 울고 있어도 유나는 울지 않았고 평온한 얼굴로 극장을 나왔다. 화를 내거나 억울해 하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유나는 기숙사 근처에서 가끔 눈에 띄는 삼색 고양이를 ‘밋치’라고 부르며 먹이를 주곤 했는데, 그럴 때조차도 유나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일 정도였다.

우연이지만 나와 같은 수업이 많아서 나는 기숙사 안에서 누구보다도 유나를 볼 기회가 많았다. 유나는 수업 중에 발표를 할 때나 수업을 듣고 있을 때면 외국인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본인 같은 느낌이 있었다. 한국인이 어려워하는 발음을 능숙하게 피하고 있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일본어를 잘 하게 되었어도, 일본인과 함께 하는 수업도 많았는데도, 유나에겐 일본인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으로 이야기는 나누더라도 친구라고 말할 정도까지는 절대로 친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건 물론 유나의 무표정한 얼굴 탓이었다. 왜 그 애는 언제나 웃지도 않고, 화내지도, 울지도 않고 늘 표정없는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걸 바꾸지 않는 한 친구가 생길 리가 없었다.

어느날, 상점가의 슈퍼에서 유나를 만났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기숙사 옆의 커피숍에 들어갔다. 가게 안은 조용하고 커피도 맛있었다. 아이스 카페라테를 시킨 유나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 무표정을 견디지 못하고 내가 말을 걸었다.

“하프라고 했잖아, 부모님 중에 한 쪽이 외국인이신 거야?”

내 이야기를 했다면 유나는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날 보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을 테니까, 그것보다는 유나의 이야기를 듣는 게 낫다는, 그 정도의 생각이었다.

“아빠가, 일본인이에요.”

그렇게 그날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유나의 조금 특이한 가족사의 이야기가.

“아아, 그래서 일본어 잘 했구나.”

“아뇨, 그다지. 아빠랑 이야기 할 때는 아직 어렸었고,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일본어는 단어 몇 개 정도밖에 할 줄 몰랐어요. 듣는 건 어떻게든 됐는데, 말하는 건 또 전혀 달라서.”

“미안, 아버지…… 돌아가셨구나.”

“5년 전에요. 유산을 꽤 남겨 주셨죠, 기대도 한 적 없는데. 덕분에 지금 이렇게 유학도 올 수 있게 됐고요.”

“그렇구나. 그러니까 아빠의 나라의 언어를 배워서, 아빠의 나라에 공부하러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거네.”

“그거 좋네요. 하지만…, 음, 그냥, 고치고 싶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여기 오지 않으면 안 됐으니까요.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유산을 쓸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참았던 거죠.”

그날,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그 신사의 밤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을 것이다.

“기대한 적 없다고, 왜? 아빠 유산인데?”

다른 사람의 가족 이야기를 묻는 게 아니다, 그건 일본에 오기 전에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호기심이, 이겼다.

“엄마는 아빠 부인이 아니에요. 아빠의 통역 담당이었던, 한국 지사 직원이었어요. 불륜이라는 거죠. 원래는 일본 본사에서 일했대요. 그런데 불륜이 시작되면서 엄마가 한국에 돌아왔고, 아빠가 한국에 올 때만 만날 수 있는, 그런 관계였던 거죠.”

“미안, 말하기 싫은 거 이야기하게 만들었네.”

유나가 나를 봤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갈색 눈동자가 나를 봤다.

“괜찮아요. 뭐, 한국 지인들은 다 아는 이야기인 걸요. 저 애 아빠 따로 부인이 있대. 저 애 엄마는 가정이 있는 남자랑 불륜으로 애까지 낳았대. 그게 저 애래.”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유나가 말했다.

“그래서, 마리 상, 이 이야기 아무 한테도 말 안 하실 거죠.”

“당연하지. 아무 한테도 말 안 해. 약속할게.”

유나의 어머니는 원래는 유복한 가정의 외동딸이었다고 한다. 애지중지 자라서 특별히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아무에게도 혼나지 않으면서 스무살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성적도 별로 좋지 않았으므로 괜찮은 대학에도 가기 어려울 거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결국 지망대학에 전부 떨어지고 나서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부모님에게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라 일본에 왔다고 한다. 일본어라곤 한 마디도 하지 못했으면서 전에 교토 여행을 갔을 때 즐거웠으니 교토가 좋겠다는 그런 제멋대로의 마음으로. 매달 부모님이 송금을 받은 돈으로 히라가나부터 배우기 시작하면서.

1년 후, 유나의 어머니의 생활은 한순간에 변하고 말았다. 아버지 회사가 도산해서, 밀려든 빚을 감당하지 못했던 유나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함께 죽음을 택했다. 외동딸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올 돈도 없었다. 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때까지 자신의 손으로 돈을 벌어본 경험이라고는 없었던 유나의 어머니는 처음으로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장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성격도 변하기 시작했다. 일본어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녀는 어쩐지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을 것 같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가냘픈 미인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한 달 후부터 부장과 사귀기 시작했다. 전문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같은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졸업한 뒤에는 정사원이 됐다. 부장의 힘이었다. 아내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는지, 고국을 떠나 살던 그녀를 위해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유나를 임신하고부터는 유나의 어머니는 한국지사로 이동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두 사람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아빠가 출장으로 한국에 올 때마다 두 사람은 한 집에서 생활했다. 유나가 태어난 후에도 매달, 혹은 두 세달 만에, 세 사람은 조금 특이한 가족생활을 계속했다.

유나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무렵부터 유나는 자기 집이 보통과는 다르다는 걸 이해했다. 하지만 아빠는 다정했고 집은 행복했다. 어떤 집이든 하나쯤은 문제가 있는 법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부모님은 둘 다 유나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때때로 두사람이 일본어만으로 이야기 할 때가 있었으므로 그래서 유나에게는 가르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아버지를 위해서 어머니는 늘 통역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아빠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확실하니까, 그걸로 좋았다.

거기까지 들었을 때, 가게 점원이 말을 건넸다.

“손님, 죄송하지만, 곧 폐점 시간이어서요.”

유나가 그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네, 곧 나갈게요.”

그렇게 조금은 차갑게 말하고는 유나가 내게 말했다.

“오늘 감사했어요. 마리 씨에게 말했더니 개운해졌네요. 또 이야기 나눠요.”

하지만 나는 또 이야기를 들을 일이 생기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끈적끈적한 과거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 나가는 유나를, 나는 담담한 마음으로 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완전히 깜깜해진 거리를 걸어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유나와 이야기 할 일 없이 1주일이 지났다. 계좌에 들어왔어야 할 이달치 생활비가 들어와 있지 않아서, 로비의 공중전화로 한국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저편에서 아버지가, 동생이 사법시험을 보기 위해서 대학을 휴학하고 서울에 갈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방세도 필요하고, 시험공부 준비로 꽤 돈이 들어간다는 이야기였다. 지방대를 나와서는 대기업에 들어가기 어려우니까, 젊을 때 다른 길에 도전해 보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 동생은 쭈볏거리며 말했다. 만약 내가 A와의 일로 헤매거나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나이에 유학을 왔다고 집에서 돈을 받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게 절감했다.

“미안해 누나.”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도움도 못 되고. 결심한 일이니까 열심히 해.”

전화를 끊으니 한숨이 나왔다. 문득 유나가 생각났다. 그 애라면 이런 고민 같은 건 하지 않겠지. 아빠에게 유산을 받아 유학 온 그 애라면, 생활비 고민 같은 건 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나는 기숙사의 로비를 나와, 보고 말았다. 길 한 가운데 유나가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있는 유나가 가슴에 무엇인가를 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심결에 다가갔더니 일어서는 유나가 안고 있는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삼색고양이, 유나가 가까이 있어도 싫어하지 않았던 유일한 존재, ‘밋치’였다.

“유나?”

내가 유나를 불렀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이 나를 보았다.

“밋치가, 죽었어요.”

너무나 평온한 말투였다. 누군가가, 그 고양이를 유나가 죽였다고 말했다면 믿었을지도 모를 만큼.

“…왜?”

“차에 치였어요.”

유나의 손은 피투성이였다. 나는 기숙사의 사무실로 가서 관리인에게 이야기한 뒤, 기숙사 정원의 한쪽 구석에 구멍을 파고 밋치를 묻었다. 작은 무덤 앞에 비석 대신 무덤보다 작은 돌을 세웠다. 그 모든 일을 유나와 함께 했다. 유나는 눈물도 보이지 않고 묵묵히 밋치의 무덤을 만들었다.

“울지 않는구나.”

밋치의 무덤 앞에서 내가 말했다.

“…네.”

유나가 말을 이었다.

“이상하게 보이시죠 이런 때도, 울지 않다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부정도 하지 않았다.

“역시, 되돌리고 싶어요. 서둘러야겠어요.”

유나가 말했다.

“…뭘?”

여름방학, 뜨거운 땡볕 아래였다.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투성이가 됐다. 유나가 나를 봤다.

“부탁이 있어요. 저랑, 교토에 가지 않으시겠어요?”

“교토? 갑자기?”

“비용은 전부 제가 댈게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어요. 저 혼자서는 안 돼서. 부탁할게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이번 달의 생활비도 아슬아슬했다. 공짜로 교토에 갈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그래, 좋아. 언제 갈 건데?”

“내일. 괜찮으세요?”

그렇게 말하는 유나를 향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우리는 교토행 신칸센에 올랐다. 처음 타 보는 특실이었다. 여행가방을 위에 올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열차가 출발했다.

“되돌리고 싶다는 건 뭐야?”

“그 전에, 그 이야기, 기억하세요? 우리 집.”

“기억하지. 아무 한테도 말 안 했고.”

“네, 믿고 있어요. 마리 씨, 다정한 사람이니까.”

다정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그 뒤 이야기부터 할까요.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제가 중학교에 입학한 해의 여름이었어요.”

모든 이야기의 시작. 그 말에는 어쩐지 쓸쓸한 울림이 있었다.

“중학생이 됐을 때, 아빠한테 부탁헀었어요. 아빠 나라에 가 보고 싶다고. 어째선지 아빠는 굉장히 곤란한 얼굴을 했죠. 하지만 제가 뭔가 아빠한테 부탁한 게 처음이었으니까, 결국 여름방학 때 아빠 회사의 창립기념일도 있어서 교토에 가게 됐어요.”

교토의 여름에 가장 유명한 것은 기온마츠리다. 유나와 유나의 엄마는 기온마츠리 중의 창립기념식 파티에 소개됐다. 유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는 외부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았으므로 유나의 엄마는 싱글맘으로 통했다. 유나의 엄마는 유나에게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일본어도 할 줄 모르니까 특별히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실제로 유나는 그때 일상생활의 말은 대개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부모님이 일본어를 가르쳐 줄 것 같지 않았으므로 알아듣지 못하는 척을 했을 뿐이었다.

파티에는 유나 아버지의 진짜 가족도 참가했다. 스무살을 넘은 것처럼 보이는 장남과 18세의 장녀, 그리고 쌍둥이인 차남과 차녀. 모두 6명은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가족이었다. 아빠의 부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옅은 녹색의 기모노에 흰 오비를 두른 고상한 느낌의 미인이었다.

“남편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네가 유나구나. 어머나, 정말 귀여운 아가씨네.”

아빠가 왔다. 유나는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난 것처럼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숙박하실 곳은 정하셨나요?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 묵으시는 게 어떠세요?”

“감사한 말씀이지만, 호텔 예약을 해 두었어요.”

“남편이 전부터 여러 가지 신세를 졌다고 들었어요. 부디 사양하지 마시고.”

“아빠, 나도 부탁할게요. 유나짱, 응, 괜찮지?”

쌍둥이의 여자애가 말했다.

결국 유나는 엄마와 함께 아빠의 집에 묵게 되었다. 아빠의 본가는 시대극에 나올 것 같은 거창한 저택이었다. 일본식으로 단아하게 꾸며진 정원에는 연못에 금붕어가 놀고 있었다. 연못의 위를 다리로 건너면 현관 바로 앞이 되는, 전체적으로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는 것 같은 일본 전통의 집이었다.

유나는 다다미방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이 엄마에게 기모노를 입어보지 않겠냐고 말을 꺼내서, 기모노방으로 데리고 갔기 때문이었다. 지루해서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유나는 족자의 아래에 놓은 상자에 시선이 멈췄다. 전체는 푸른 자기로 되어 있고 흰 색 돌로 된 정교한 장식이 달려 있었다. 유나는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캐논의 음율이 흘러나왔다. 뚜껑 안쪽에 ‘Y’라고 각인이 되어 있는 것이 마치 자신의 이니셜을 각인한 것처럼 느껴져서, 유나는 그대로 캐논을 듣고 있었다.

“그 오르골, 마음에 들었니.”

아빠의 목소리였다. 어느새 방 안에 들어와서 유나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죠-아? 오-루-고-루>

서툰 한국어로 아빠가 말했다. 유나는 고개를 그덕였다. 아빠는 미소지으며 유나의 여행가방 깊숙이 오르골을 넣었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약속.”

아빠가 검지손가락을 입에 댔다. 유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빠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날이 밝을 무렵 엄마와 유나는 기온마츠리를 보러 가게 되었다. 유나는 아버지에게 받은 오르골을 보자기에 싸서 가져왔다. 혹시 누가 오르골을 볼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장실 가는 척하며 엄마와 떨어졌다.축제 손님으로 번화한 거리를 지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신사로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조용한 신사였다. 유나는 튼튼해 보이는 가지를 주워 신사 뒤뜰이 있는 벚나무 밑을 파낸 뒤, 보자기로 싼 오르골을 묻고 신사 우물에서 손을 씻었다.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빠가 함께 있었다. 유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빠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빠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유나와 엄마 둘이서만 아빠의 저택으로 돌아왔더니 부인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변해 있었다. 분노를 억누르는 것 같은 얼굴로 두 사람을 보며, 부인이 말했다.

“오르골, 보지 못하셨을까요?”

유나는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척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남편에게 받은 물건입니다. 날 위해서 특별히 주문해서, 안에는 내 이니셜을 새겼습니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오르골입니다. 그 방에 놓여 있었을 겁니다만.”

“오르골이라니, 본 적도 없어요. 정말로.”

부인이 차가운 눈으로 유나와 엄마를 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엄마는 아빠와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유나가 혼자서 방 안에 있는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방에 들어왔다. 유나는 누군가를 부르려고 했지만 세 사람은 그대로 유나를 끌어내 정원의 연못으로 던지듯 빠뜨렸다.

“죽어, 이 도둑, 죽어!”

누군가가 말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18세의 장녀인지 쌍둥이의 여자앤지 유나는 알 수 없었다. 연못 물이 입 안에 계속 흘러들어와 점점 의식이 흐려지는데 유나의 엄마가 지르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연못에 가라앉는 유나의 손을 누군가가 붙잡았다. 유나는 의식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는 벌써 다음 날이었다. 아침 햇살이 방 안에 따뜻한 빛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불의 감촉이 부드러워서 지난 밤에 있었던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곧 옆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철없는 어린아이들이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니까,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겠지요.”

부인의 목소리였다. 여자아이가 둘, 남자애가 하나, 거기 없었던 건 장남이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하고, 저도 이 이상 일을 키우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한가지, 저희들, 오르골은 정말로,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그것만은 제발 믿어 주셨으면 해요.”

화가 난 쪽은 부인이었고, 엄마는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오늘 귀국하신다면서요.”

그렇게만 말한 채 부인은 한동안 침묵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유나가 슬슬 일어날까 생각했을 때, 부인이 말했다.

“저는, 그 오르골을 가져간 사람만은,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힘든 때가 있었는지. 그 때마다 저는 그 오르골의 소리를 들으면서 평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남편을 믿는다, 그 마음을 믿는다. 그런 믿음을 그 오르골이 주었던 겁니다. 그런 소중한 오르골을 가져간 사람은, 그 죄에 걸맞는 벌을 반드시 받게 될 터.”

그리고, 부인이 선언하듯 말했다.

“그런 사람에게 감정을 느낄 자격은 없습니다. 기쁨이나 슬픔이나 일절 느끼지 못하고, 사람이지만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옳습니다. 결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 이게, 나의 저주입니다.”

“누군인지 모르지만, 저도, 제 딸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네, 아무 문제도 없겠지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유나는 또다시 고열이 오르며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저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돌연, 표정을 잃어버렸어요.”

유나가 말했다.

“아빠는 아무 말도 안 했어? 자기가 줬다고 했으면 되잖아.”

“글쎄요. 아빠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겠죠. 부인이 그 오르골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아빠는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쉽게 나에게 줘 버렸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생각도 못 했던 거죠. 원래 기가 약하다고 할까, 심약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한국에 돌안 뒤로 곧 엄마는 회사를 그만뒀고, 아빠와도 헤어졌어요. 그 뒤로 저는 두 번 다시 아빠를 만날 수 없었죠.”

딸을 지키기 위해 유나의 엄마는 그렇게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식어버렸을지도.

“조금, 신경이 쓰였어요. 아빠랑 엄마가 헤어진 것도 어쩌면 그 저주 탓이 아닐까. 오르골을 부인에게서 뺴앗은 아빠도,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게 돼서, 그래서 엄마랑도 헤어진 게 아닐까. 종종 그렇게 생각했어요. 한 번쯤은 만나러 갔어도 좋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장례식 때도 결국 가지 않았지만.”

“장례식 정도는 가지 그랬어. 그렇게 귀여워해 주셨다면서. 유산을 남겨 준 거 준 걸 보면 유나를 줄곧 딸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뜻일텐데.”

유나가 나를 봤다.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부인에게, 내 얼굴을. 무서웠어요. 표정이 사라진 나를 보고, 아, 역시 네가 범인이구나, 그렇게 말할 것 같았거든요.”

신칸센이 교토역에 도착했다. 교토역은 무척이나 현대적인 건물이어서 나는 조금 놀랐다. 교토는 외국인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도쿄에서도 이정도의 외국인 행렬을 본 기억은 없다. 대학 유학생도 거의 절반 정도는 중국인과 한국인이었는데 이 거리에는 서양 사람, 남미나 유럽, 미국인이 넘쳐났다. 일본에서 가장 일본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거리를 외국인들이 걷고 있는 것이, 전통 일본 건물이 가득한 거리에 서 있는 현대적인 교토역의 모습과 닮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호텔에 샤워를 하더니 바로 침대에서 푹 잠들었던 유나는 저녁 무렵이 되자 일어났다. 호텔을 나와 가로등 불로 밝은 번화한 마을을 지나, 마츠리가 한창인 기온의 거리를 둘이서 걸었다. 여름의 교토. 습한 공기 안에 경단을 굽는 냄새며 녹차향이 물결치며 흘러다녔다.

유나는 동네 구석 어느 계단 앞에 멈춰 섰다. 낡은 토리이가 세워진 신사 앞이었다. 유나가 아무 말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20단쯤 올라가자 인적도 보이지 않는 작은 신사가 눈에 들어왔다. 축제의 흥청거림과는 무관한 듯 한적한 곳이었다. 유나는 뒷마당의 벚나무 밑에 섰다.

“조금 바뀌긴 헀지만 여기예요.”

“오르골… 그 신사?”

유나가 몸을 숙이더니 나무 아래를 파기 시작했다.

“어쩌려고? 그 오르골, 도로 파 내서.”

“돌려주려고요. 부인에게. 원래 있어야 하는 곳에.”

누군가 오지 않을까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는 유나와 함께 땅을 파기 시작했다. 유나의 감정을 되찾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의 나를 되찾고 싶었다. 계속 도망만 다니고 계속 A에게 뺴앗긴 채 되찾지 못한 나를 바꾸고 싶었다. 한번의 실수로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 있다면, 유나의 감정을 되찾을 수 있다면 내 삶에도 어떤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땀투성이가 되었을 무렵, 흙투성이의 보자기가 나왔다. 흙을 털어내고 보자기를 풀어 보았더니 파란 상자가 있었다. 유나가 뚜껑을 열었다. 캐논의 선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르골은 아름다운 소리도 그 모습도 변함없이 계속 여기에 있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떨어질 것 같은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에 있었다. 줄곧 몇 년 동안 이 별들이 묻힌 오르골을 지켜본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물로 시야가 어른어른해졌다. 교토에 오길 잘했다, 이 오르골을 유나가 다시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날 나는 유나가 인터넷에서 알아본 지도를 손에 들고 한 저택으로 갔다. 4층 이상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 주택가 안쪽에 눈에 띄게 큰 일본식 저택이 있었다. 근처 건물에 비해서도 단연 눈에 띄었지만,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그 집의 분위기였다. 이곳만 무거운 하늘을 짊어지고 있는 듯한 기묘한 공기가 그 저택에 있었다. 문 앞에서 벨을 울렸다. 저택 사람의 대답이 들라저 벨 건너편 사람에게 말했다.

“OO씨의 유품을 가지고 왔는데, OO요시에 님, 계십니까?”

곧 문이 열리고 나는 안으로 안내됐다. 유나가 말했던 다리가 있는 연못을 건너 다실에서 차를 받고 앉아 있는데 한 부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녹차색 기모노 차림이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부인은 윤아와 마찬가지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언젠가 수업에서 배웠던 일본 속담이 생각났다. 人を呪わば穴二つ。타인을 저주하면 구멍이 둘. 누군가를 저주한다는 것은 자신을 저주하는 것이라고, 저주는 언제나 양쪽에 주어지는 법이라고. 대가 없는 소원이란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이라고.

“OO 요시에 님. 이것을, 요시에 님께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나는 오르골을 가방에서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요시에 씨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오르골을 받아 뚜껑을 열었다. 캐논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누구한테서 받으신 거죠?”

“말씀드릴 수 없어요, 약속을 했기 때문에.”

“…혹시, 이거 한국에서 가져온 건가요?”

“아니오, 계속 여기 교토에 있었어요. 저는 이걸 어제 건네받았고요. 한 번도 일본을 떠난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요시에 씨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인형처럼 굳었던 얼굴에 감정이 돌아왔고, 표정이 생겨났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전언을 주셨습니다.”

유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했다. 요시에 씨에게 한 말만은 아니었다. 줄곧 마음으로 묶여서 벗어나지 못했던 전 남자친구, A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배신감을 느낀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었던 시간에 행복했던 기억까지 나는 묶어두었다. 그 좋은 기억을 모두 증오로 어둡게 물들이는 건 바보같다. 오래전에 나는 내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행복에 저주와 원망은 필요하지 않은 법이니까.

나는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실을 나왔다. 한 사람이 가까이 와서 문까지 안내해 주었다. 스물 다섯 살쯤 된 것 같은 키가 큰 청년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안했다, 고 전해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미소지으며 내가 말했다. 청년도 조금 미소지었다.

 

내가 그의 말을 유나에게 전하자 유나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우리가 교토에서 도쿄로 돌아오자마자 유나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갑자기 유나의 방이 빈 방이 된 것을 보고 나는 비로소 유나의 귀국을 알았다. 대학도 그만두고 돌아간, 영구 귀국이었다.

나는 1년간의 교환학생 기간을 마치고 귀국했다. 동생은 1차 시험에 합격하여 2차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졸업 후 나는 작은 출판사에서 번역일을 시작했다.

전 남자친구가 연인과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회사 첫 출근날이었다. 내가 일본에서 돌아왔을 무렵이었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에게 연락해서 관계를 회복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둘이 헤어져서 다행이다, 같은 기분도 아니었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의 여운이었다. 만약 그 둘이 결혼했다면 식에 나가서 축하한다고 해도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것도 정말 아무래도 좋은 얘기였다. 그가 다른 지역에 있는 회사에 입사했기 때문에 그 후 그와 만난 적도 없다. 그냥 가끔 또 언젠가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웃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한국에 돌아온 두 번째 여름, 나는 우연히 유나를 만났다. 직장에서 멀지 않은 해변 백사장에서였다. 멀리서 걸어오는 세 사람 가운데 유나가 보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유나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세 사람이 다가오면서 그 목소리도 점점 높아졌다. 맑은 종소리 같은 예쁜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반백의 중년 남성, 그리고 미인에다 왠지 내버려둘 수 없을 것 같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가녀린 중년 여성, 그 둘 사이에 유나가 있었다. 유나가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나는 곧 그녀가 유나의 엄마라는 것을 알았다. 마치 그림 같은 행복한 가족이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 세 사람이 나를 지나갈 때 유나가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말없이 나도 미소 지었다. 마치 다른 사람 같은 밝은 표정의 유나가 즐거운 듯 말했다.

“아빠, 어떻게 생각해요? 엄마, 치사하지 않아?”

“그래도 유나야, 나한테 말해도 소용없어. 난 항상 엄마 편이니까.”

“네에네에, 아무 데도 내 편은 없지? 너무하다 아빠.”

유나의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언젠가, 다시 일본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1년을 보낸 그 동네에 가고 싶기도 하지만 그 뿐만은 아니다. 또 신칸센을 타고 교토에 가고 싶다. 그리고 그 저택에 가 보고 싶다. 조용한 교토의 마을 안, 그 어느 곳보다도 어둡고 무거운 하늘을 짊어지고 있던 그 저택. 거기서 무거운 하늘이 사라지고 안에 행복한 목소리가 넘쳐나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그 신사의 밤에 내 안에서 일어난 변화처럼 내가 준 것이 그 사람들도 변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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