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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영 효용가치

2014.04.30 23:0704.30

효용가치


3년 만에 만난 친구 정섭은 공돌이였다. 지금은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 보안기술 설계자로 대기업 산하 프로젝트 직원으로 근무하며 생활이 없는 각박한 삶을 살았다. 지방과 서울이란 거리의 차를 더해 얼굴 보기가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프로젝트 종료 기념으로 휴가를 어렵게 얻어 내려온 친구에게 미희는 숙소와 식사를 제공해주기로 했다. 정섭은 처음엔 한사코 사양했다. 미희가 소문난 게으름뱅이에 집을 어떤 꼴로 하고 사는지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희가 가정부 안드로이드를 들였단 말에 반신반의하며 찾아왔고, 사는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안심했다.
두 사람은 가정부 안드로이드(이름,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술을 나누며 수다를 떨었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정섭이 젠체하며 말했다.

“야, 조만간 꿈이 이뤄지니 기대해라.”
“무슨 소리야?”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 이야기야. 조만간 착수하거든. 너 <더블하트>랑 <토비츠> 알아?”
“와, 이 자식 날 무시하네. 내가 그걸 모를까 봐.”

<더블하트>는 고전 명작이라 불리는 일본산 성인용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 남자 주인공이 되어 다양한 여자 캐릭터를 꾀어 야한 그림을 수집하고, 공략한 여자 캐릭터와 행복한 엔딩을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게임이 한국에 수입되었을 때 수많은 청년이 영혼을 팔았다.
<토비츠> 역시 일본에서 히트 쳤던 고전만화로, 평범한 청년 주인공이 아름다운 안드로이드를 쓰레기장에서 주워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렸다. 안드로이드 세상이 활성화되기 전 소개되어 마찬가지로 수많은 청년의 마음에 불을 지른 명작이었다. 미희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역시 아는군. 거기에…… <더블하트>에 나오는 코어쨩이랑 <토비츠>의 시이쨩을 드디어 현실 구현하기로 했다.”
“미친 오타쿠야! 농담하지 마.”
“이게 자기도 상 오타쿠면서 누굴 더러 오타쿠라고 까? 진짜거든? 이미 캐릭터 상품 제작 권리도 얻었거든?”

미희는 어안이 벙벙해 할 말을 잃었다. 코어와 시이. 미소녀 캐릭터로는 당시 정점을 찍은 안드로이드. 실수투성이에 귀엽다 외에는 장점이 없는 코어와 백치에 가정부지만 가정부 기능은 없다고 봐도 무관한, 스펙만 고성능인 시이. 남자의 판타지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기계라는 속성으로 얼마나 큰 인기몰이를 했던가. 그들 존재로 공돌이의 길로 진로를 바꾼 이가 어디 정섭뿐이었는가.
생각해보면, 안드로이드 시대에 이 같은 일은 언제고 올 일이었다. 미희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진지하게 물었다.

“상품화하는 거지?”
“당연하지. 오타쿠들의 자본력과 구매력을 믿어. 대단하지 않냐? 꿈에서나 그리던 모니터 너머, 종이 속의 그녀가 현실의 내게! 모두가 바라마지 않았을 거라고. 너도 한 대 사라. 싸게 해줄게.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안 사.”
“단호하네. 왜?”
“우리 엄마 터져.”
“뭐래.”
“그런 줄 알아. 그리고 내 예상인데, 그 프로젝트 망할 걸.”

딱 부러지는 미희의 말에 정섭이 화를 냈다.

“다짜고짜 이상한 말 할래?”
“망할 만하니까 망한다 하지!”
“근거가 뭐야? 아, 아니. 됐다. 들어도 이해 못해. 안 해.”
“그럴 거 같으니 입 아프게 말 안 하련다. 너 많이 마셨어. 가서 자.”

정섭은 입이 튀어나와 한참 투덜거리다 자러 갔다. 미희는 그날 이후 코어와 시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섭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간 뒤에 분위기를 살피던 엄마가 물었다.

“왜 망한다고 생각했습니까? 제가 터진다는 말은 어떤 이유입니까?”

미희는 물어볼 줄 알았다며 서가를 뒤져 <더블하트> 캐릭터 대사집과 <토비츠> 만화책 전질을 엄마에게 주고 읽게 했다. 의아하던 엄마가 반나절 동안 자료를 습득하고선 미희의 말을 이해했다.

“절대로 사지 마십시오. 당신 감당하는 일 만으로도 힘듭니다.”
“안 산다니까 그러네……”

미희는 한숨으로 현실을 돌아보고 꿈과 작별했다.

코어와 시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이듬해 나왔다. 정섭이 말 한 대로 코어와 시이를 추억하며 좋아하던 청년 계층의 열광적인 지지에 힘입어 초기 물량이 동나는 쾌거를 이루었다. 정섭은 미희의 예상이 틀렸다며 희희낙락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매출은 수직 낙하했고 반품과 폐기 물량이 압도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결국, 손익분기점을 채우지 못하고 프로젝트는 실패했으며, 이후 예정되어 있던 연관 프로젝트도 줄줄이 폐기됐다. 반품과 폐기 사유는 이러했다.

[ 처음에는 좋았는데요, 얘들이 할 줄 아는 게 도대체 뭡니까…… 회사 갔다 오면 집은 엉망진창이 돼 있고, 가뜩이나 피곤해 죽겠는데 얘들이 일을 더 만들어요. 도무지 못 버티겠습니다. ]

[ 진짜 <더블하트>랑 <토비츠> 주인공은 보살 수준을 넘어 부처 새끼들이다. 미친 어떻게 이런 것들을 데리고 살 생각을 했냐? 무슨 안드로이드라면서 하는 건 쥐뿔도 없고 시발. 돈이 한두 푼도 아닌데 이 개xx같은 년들은 빙신처럼 쳐 웃는 거 밖에 할 줄 모르는 듯. 존나 섹스라도 할 수 있음 말도 안 해. 그건 또 위법이래매? 이년들은 진짜 가치가 없다. ]

[ 꿈은 꿈이라서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사랑하던 코어쨩과 시이쨩이 아니에요. ]

[ 대형피규어라고생각하고전시해놓아도되겠지만이거사는사람이그거생각하고사겠음?아진짜돌겠네위약금이랑폐기비용이더들어서그냥쓰기로했음대신다른프로그램을깔거임그냥코어모양가정부로쓸래 ]

[ 윗님…… 그럴 거면 그냥 가정부 안드로이드를 코어 타입으로 커스텀하는 게 더 싸게 먹혔을 겁니다. 신체 기능이 가정부 타입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서 바디에 무리가 간다더라고요. 전 그냥 반품함. ]

[ 시이를 데려오고 세 달, 여자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았습니다. ]

미희는 다시 찾아 술을 퍼마시며 좌절하는 정섭을 진심으로 위로했다.

“코어와 시이가 아름다운 건 <더블하트>와 <토비츠>의 주인공을 만났기 때문이야. 그리고 우리는 그 주인공이 아니지. 그래도 너무 좌절하진 마. 세상에 누군가는 그 둘을 주인공처럼 아껴주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들을 위해서 좋은 일 했다고 쳐.”

정섭은 그게 무슨 위로냐며 화를 냈지만, 미희의 말은 몇 년 뒤 현실이 되었다.
세계 최초로 안드로이드와 결혼식을 올린 남자의 배우자가 바로 코어였던 것이다.

- 20140429

안드로이드 연작, 여섯 번째 이야기
mirror
댓글 1
  • No Profile
    하속 14.10.09 19:46 댓글

    더블하트..토비츠ㅎㅎ 재밌게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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