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던 순간과 요정
1.
여름 오후 해운대의 풍경을 55층에서 내려다 보면서, 실장은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세상에 드물거라고 새삼 생각했다. 맑은 바닷물이 밀려 드는 완곡이 있고, 저편 언덕 시선이 닿는 끝까지 물가로는 하얗게 반사되는 모래가 펼쳐져 있었다. 모래 저 너머로는 언덕 끝까지 높이 올라가며 지붕을 친 집들 둘레로, 부유함이 가득한 고층 건물들이 번쩍거리며 치솟아 있었다.
그 사이에 48만명의, 주로 젊고 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바로 뒤이어 펼쳐진 도시에게 비웃어 보이듯이 오늘은 노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는 여유가 그 사람들에게는 있었고, 그러면서도 파도가 무심하게 바람에 한번 일렁일 때마다, 그 중의 몇 만 명이 동시에 기쁨을 이기지 못해 지르는 소리가 물 속에 가득한 사람들 사이에서 쉴새 없이 바쁘게 들려 왔다.
이 모든 것 위로 햇빛이 넘치고 있어서, 멀리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안개처럼 뿌옇게 빛이 바닷가와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은 나른하게 쳐지면서도 상기된 즐거움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실장은 55층 연구실 자기 자리에 서서 먼 아래쪽 바닷가를 계속 지켜 보았다. 실장은 48만명의 모습 하나하나를 다 훑어 보겠다는 것처럼 건너편 멀리 호텔 앞에서부터 건물 바로 아래 절벽 끝까지 시선을 옮겼다. 그는 알록달록한 덩어리처럼만 보이는 사람들의 무리와, 그 사이에 들어 왔다가 그대로 사라져 나가는 파도 사이를 쳐다 보았다.
이내 실장은 그 중에서 찾고 있던 중요한 것을 발견하고, 창가에 설치해 둔 망원경으로 다가갔다. 실장은 망원경을 조정해 그가 보려고 하던 방향을 보았다. 그는 망원경으로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사람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는 한 사람을 정해, 그녀의 몸과 얼굴을 지켜 본다.망원경의 조절나사를 움직여 가며, 자연스럽게 그녀가 움직이는 것을 따라 가며 그 모습을 보았다.
성능이 좋은 커다란 망원경은 그녀를 똑똑히 보여 주었다. 그는 그녀의 행동을 보며, 그녀의 성향과 성격을 읽으려고 한다. 뭘 하는 것을 좋아하며, 뭘 싫어하는 것 같은지, 어떤 행동은 자연스러우며, 어떤 모습은 어색한 지, 누구를 보고 얼마나 자주 이야기하는 지, 어떤 수영복을 입고 있고, 어떤 안경을 쓰고 있는 지, 그는 그런 것 하나하나를 따지고 보며, 머릿속에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상상해 꾸며 나간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누구와 같이 왔는 지, 일행이 몇 명인지 살펴 보고, 일행은 누구인지, 얼마나 친한 사이처럼 보이는 지도 가늠해 본다. 실장은 파도의 물보라가 튀길 때에 입을 벌리는 그녀의 입에서 어떤 목소리가 나오는 지도 알 것 같아 보인다.
실장은 그런 식으로 몇 사람을 살펴 본 끝에 마침내 한 사람을 고른다. 실장은 나를 보고 웃는다. 언제나처럼 그의 웃는 표정은 이유를 가늠할 수 없이 마음 좋아 보이기만 했다. 실장은 곧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몰고 발견한 그녀를 찾아 간다.
내 역할은 공식적으로는 이 연구실 건물의 연구원이었다. 비공식적으로는 이렇게 “발견”을 해낸 실장이 차를 몰고 가는 동안 같이 가며 망원경 영상을 보면서 그녀가 다른 곳으로 가지는 않는지 지켜 봐 주는 역할이었다. 바닷가에 도착한 실장이 발견한 그녀를 찾아 가서, 제안의 말을 건낼 동안 자동차가 주차 단속 당하지 않도록 적당히 자리를 지켜 주거나, 차를 몰고 근처를 빙빙 도는 것도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
실장의 역할은 공식적으로는 이 연구실을 차린 회사의 주인이었다. 그렇지만 실장은 애초부터 연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실장은 곧 시세가 오를 만한 부동산을 사들이기 위해, 집값이 오를 것 같은 이 고층 건물의 넓은 집 하나를 회사 돈으로 구입하는 것만이 목표였다. 그렇게 하면서, 세금을 줄이고 투자를 쉽게 얻어내기 위해서, 실장은 연구 개발 투자에는 세금을 줄여 주는 규정을 이용하기 위해서, 바닷가의 전망 좋은 곳 고급 주상복합 건물을 회사 연구실로 쓰겠다고 사들인 것이었다.
실장은 연구실로 건물을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유지하고자, 연구실에서 일할 연구원을 모집했다. 실장은 나처럼 마땅히 취직할 곳이 없이 학위만 갖고 놀고 있는 실업자를 구하려고 했다. 애초에 나는 자동차 제어 시스템을 연구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엔진 결함 문제에 대해 내 지도 교수가 논쟁을 하다가 우리나라의 자동차 회사와 원한을 맺은 것이 문제였다. 그 회사는 내 지도 교수의 제자는 고용하지를 않았고, 나는 내 지도 교수의 제자였고, 이 나라 안에서 자동차 제어 시스템을 연구할만한 자동차 회사라는 곳은 달리 또 찾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되고 나니 당장 달리 익히고 배운 것이 없던 나는 취직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실장은 나 같은 사람이 몇 달, 한 두 해 쯤 자리를 채워 주기를 원했다. 나는 그 긴시간 공부를 하고도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형편에서는 벗어 나고 싶었다. 실장과 나는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처지 였다. 월급은 최소한 밖에 주지 않지만, 대신에 해야 할 일도 아무것도 없었다. 실장은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끔 무슨 연구든 연구한 흔적만 조금씩 남겨 달라고 했다.
비공식적으로 실장의 역할은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놀면서 이 집의 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연구실 공간으로 남겨둔 곳을 제외하고 먹고 자고 놀 곳이 풍부한 이 건물을 마음껏 활용하면서 실장은 여러 가지로 시간을 보내며 놀 방법을 찾았다. 망원경으로 찾아낸 미녀를 찾아 가 말을 거는 것이 이번 여름 들어 그가 새롭게 개발해낸 놀이였다. 그리고 나는 그가 수당을 좀 더 집어 준다고 했기에, 수당에 영혼을 팔아 실장을 이런 식으로 돕고 있었다.
나는 자동차를 지키고 있어야 했기에, 실장이 뭐라고 말을 하면서 설득을 하는 지 한번도 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성공하는 확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오늘도 실장은 호기심과 기대가 가득한 표정의 아가씨와 함께 하얀 그의 차로 돌아 왔고, 나는 냉큼 두 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켜 주어야 했다.
나는 괜히 믿음직스러운 데가 있고 “안전해 보인다”고 할 수 있을만한 느낌이 드는 실장의 얼굴이 성공의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또는 언제나 걱정 없이 유쾌해 보이는 그의 표정이 먹히는 것 같기도 했고, 여러 쓸모가 많은 말재간에 묘수가 숨겨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그렇지만, 실장은 나에게 설명하기를, 가장 중요한 것은 애초에 바로 오늘 나에게 어울릴 만한 사람을 찾는 자기의 눈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해변에서 미녀를 발견했기 때문에 55층에서부터 달려 내려온 백만장자가 있다면 기꺼이 따라 나설만한 사람을 그는 알아 보는 눈이 있어서,바로 그런 사람을 찾아 간다는 것이다.
일단 동행을 하게 되면, 그의 이야기는 지루할 새는 없었다.
그는 젊은 나이였지만, 그의 재산은 부모가 물려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의 자수성가에 기가 막힌 묘수나 사람들을 홀릴 만한 도전 이야기가 숨어 있지도 않았다. 그의 부모는 거부는 아니었지만 가난한 편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가 처음 세상에 나와서 돈을 쓰려고 했을 때에도 그의 부모가 그에게 쥐어줄 밑천을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그의 그 밑천은 몇 건의 영리한 투자와 몇 번의 연속된 행운을 거쳤으며, 이후에도 그는 자만하지 않고 그 결과를 차곡차곡 모아 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소유로 되어 있는 것들의 다수는 대부분 그의 손을 거친 이후에 생겨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사연의 굽이굽이 마다, 어울리는 이야기들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는 연구실로 그녀와 함께 들어 와서,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나에게도 나눠 주고 같이 마셨다. 나는 그녀와 짧게 인사했고, 그녀는 예의 바르게 나에 대해 물어 보았다. 하지만 내가 대답하는 말에는 조금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상하던 바 이기도 했다.
얼마 후,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서, 정상적인 일자리의 취업 공고를 찾던 컴퓨터 화면 앞으로 갔다. 실장과 그녀는 커다란 문을 열고 바닷가 쪽 전망이 더욱 밝은 멀리 떨어진 방으로 갔다. 그 문은 곧 닫혔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문 안에서는 속삭이는 소리가 나기도 했고,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 지, 그녀가 큰 소리로 깔깔 웃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만난지 겨우 30분이 지난 사람과 단 둘이서 방 안에 있으면서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저렇게 크게 소리를 내서 웃게 할 수 있을 지, 나름대로 궁리를 해 보았다. 하지만, 매번 그럴 듯한 답을 얻는데는 실패 했다.
그런데 오후 4시가 채 되지 않아서 그 문은 다시 열렸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였다면, 해가 질 때쯤이 되어서야 저녁을 먹으러 갈 곳을 이야기하며 실장이 다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시간이 너무 빨랐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주황색 수영복 차림 그대로였다. 나는 겁을 먹고 눈치를 봤는데, 그녀의 얼굴은 그런대로 밝아 보였다. 하지만 내가 기대하던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그녀는 조금 아쉬워 하는 듯 했지만, 낙심한 기색은 아니었고, 그의 안내에 따라 다시 55층 아래로 내려가 48만명의 사람들 사이로 돌아 갔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실장의 표정이야 말로, 한 번도 본적이 없던 표정이었다. 그 얼굴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목소리를 낼 입술과 감정에 따라 움직일 눈은 겁을 잔뜩 먹은 것 같았다. 나는 실장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요정을 봤어요.”
2.
나는 그의 말을 바로 알아 듣지도 못했다.
“요정이요. 요정. 조그맣게 생겼고 날아다니는 거요.”
그는 손 한쪽을 펼쳐 요정의 크기를 설명했다.
나는 처음에는 실장이 알아 듣기 어려운 무슨 농담을 하는가 싶었다.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은 알 수 없고, 방금 이 문을 나선 그녀와 같은 여자를 크게 웃길 수 있는 신비스러운 이해하기 어려운 농담의 신비가 그의 말 속에 숨어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실장이 말하는 것은 진짜 요정이었다. 조그맣게 생겼고 날아다니는 요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실장은 방금 그 아름다운 여자의 눈을 보고, 그 여자가 행복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 주면서, 유리잔에 든 음료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를 기대에 가득 찬 눈길로 바라 보는 그녀의 눈동자 바로 옆의 공간 뒤편, 창밖 하늘에서 하늘을 날아 다니는 요정을 보았다는 것이다.
실장이 맨처음 그것을 본 순간에는,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 눈에 뜨였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 특별히 대단한 것을 보았다는 느낌은 없이 그것을 보았다. 심지어 그녀와 오늘 저녁에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녀가 다시 그 이야기로 한 번 입을 벌리고 크게 웃게 만들게까지 했다. 하지만 실장은 그러면서도 날아다니는 그 형체를 계속 쳐다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늘에 날려 온 휴지 조각이 깃털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은 모양이 그런 것처럼도 보였다. 그렇지만,그것은 바람을 타고 움직이면서도 또한 스스로 가끔씩 바람의 결을 옮겨 다니거나, 바람을 거스를 때도 있었다. 실장은 그것이 좀 커다란 나방이나 벌이라고 생각했다가, 다시 아주 작은 기이한 새라고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실장은 말을 이어가면서 그 날아다니는 것을 점점 더 자세히 보려고 했다. 실장은 지상으로부터 몇 백미터는 족히 떨어진 높은 창공에 그것이 올라 왔다는 점을 떠올리고 이상하다고 여겼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는 그 조그마한 것이 또렷한 형체를 갖추고 눈에 정확히 들어 왔다.
그 모습은 실장의 눈앞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것은 실장을 또렷하게 바라보며 쳐다 보았다. 실장은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그것의 형체는 사람과 같았다. 여섯개의 다리는 곤충의 것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첫 두 개의 다리는 짧게 목 주변을 감싸고 있어서 목에 걸어 놓은 장식처럼 보였다. 다음 두 다리는 길게 뻗어 있어 팔처럼 보였다. 그 끝트머리에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우아하게 하늘 거리는 모양은 이리저리 손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일 긴 뒷다리는 장화를 신은 다리와 같은 모양과 색깔로 뻗어 있었다. 머리부분에는 흰색과 파랑색이 섞인 털이 나 있었는데, 바람에 길게 흩날리고 있어서 머리를 손질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머리칼을 늘어 뜨린 모양과 같았다.
실장은 그리고 그것의 얼굴을 정확히 살펴 보았다. 눈은 곤충의 까맣고 둥근 형상이었지만 얼굴의 정면에 자리잡고 있어서 까맣게 반짝이는 사람의 눈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얼굴에는 입이 있을 자리에 나 있는 구멍과 작은 더듬이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은 곧 웃음을 터뜨리기 직전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장은 다시 돌이켜 보면, 울다가 억지로 울음을 참고 겨우 견디고 있는 표정 같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철골과 석회로 지은 탑 위에 기어 올라와서도 유리 뒤에야 몸을 숨기고 있는 실장을 놀리는 것처럼 자유롭게 그 높은 창공을 날 수 있는 날개를 달고 있었다. 마음대로 날아 다니며 움직일 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개를 움직이면서도 조금도 힘들어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은 높은 고도의 강풍을 타고 오를 때에는 그냥 그 바람에 걸터 앉아 치솟았고, 바람이 잠깐 흩어지면 까마득한 땅 아래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냥 햇빛과 함께 그대로 떨어졌다. 그러다가도 다시 날개짓을 하며 좌우로 춤을 추듯이 날았고, 유리 안 쪽의 사람들을 구경하며 떠다니는 것 같았다.
실장은 나에게 처음 요정을 보았다고 이야기하고 나서, 스스로 엉뚱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한동안 더 이상 그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 아무 말을 하지 않는 동안 자신이 본 그 요정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는 못했다. 그는 마치 인간이 보아서는 안되는 하늘 저편의 비밀을 몰래 본 것처럼, 두려워 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자기가 본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했고, 또 그 신기한 얼굴과 자유롭게 구름 저편까지 날아 오르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을 본 감격에 기뻐하기도 했다.
그는 그날 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고, 밤새 꺼지지 않는 해안의 불빛에 비쳐 다시 밤하늘에 반짝이는 요정이 나타나지는 않을 지 계속 유리창 바깥만 보았다.
이튿날 오후가 되어, 바닷가 쪽을 내려다 보지도 않고 망원경을 들여다 보지도 않는 실장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자, 그는 나에게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해 주었다. 실장은 자기가 혹시 날아 다니는 벌레를 잘못 보고 착각한 것은 아닌가 물었다. 나는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고, 실장은 고층빌딩 높은 곳까지 올라 올 수 있는 벌레 중에 그렇게 날아 다니는 사람 모양으로 착각할 수 있을 만한 모양인 것이 뭐가 있을지 좀 알아 봐 달라고 했다.
따지고 보자면 그것은 내가 이 회사에 연구원으로 입사해서 처음으로 회사 사장에게 지시 받은 연구 과제였다.
“날아 다닐 때 사람처럼 잘못 보일 수 있는 벌레 찾기”
멍청하게 들리는 과제였지만, 나는 신이 났다. 아무 하는 일 없이 근무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하다가 퇴근을 하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가끔 사장의 짝짓기 놀이에 배경 음악이나 틀어 주는 정도가 내 직업이었고, 그 일을 하는 것이 내 사회생활이었다. 이 사회에서 내가 구성원인 어른으로 하는 일이 그것이었고, 그렇다면 따지고보면 나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 그 동안 태어나서, 부모의 고생으로 양육 되어 긴긴 시간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교육을 받았던 셈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째 황당하게 내려 가는 김에 어디 한 번 바다 밑까지 내려가 보면 웃기기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동차 시스템을 전공한 연구원이면서 사람 닮은 벌레나 검색하고 있는 내 꼴을 어서 빨리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나는 몇몇 벌레들을 찾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렇지만 어느 것도 실장의 기억 속에 있는 요정을 닮은 것은 없었다. 실장은,
“정말 신기하게 생겼었거든요. 정말 아아아- 하는 소리가 하늘에서부터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신기하게 생겼었다니까요.”
라고 말했다.
그 여름 내내 실장과 나는 요정이나 요정과 비슷한 벌레에 대해 조사하고 이야기하며 세월을 보냈다. 우리는 요정에 대한 전설과 설화에 대해 자료를 찾아 보기도 했고, 요정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사기꾼들이 얽힌 사건의 기록을 찾아 보기도 했다. 우리는 옛날 신문 기사와 절판된 책을 찾아 도서관들을 찾아 돌았고, 곤충을 연구하는 진지한 학자들과 도시 건물들 사이에서 살아 가는 벌레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해충 구제 회사의 연구원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하나씩, 하나씩 자신이 본 것과 비슷한 것을 찾는 단서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본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는 없었고, 실장이 드디어 돌아 버렸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버린 것도 아니었지만, 그가 점점 더 구체적인 결론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찾아낸 것은 정부의 음모로 자신의 정신 속에 8차원으로 가는 문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만든 인터넷 웹사이트였고, 그 사람이 인용해 올린 한 학자의 주장이었다. 실장은 어떻게 글꼴과 색깔 만으로 이 정도의 광기를 표현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 쉽지 않다고 그 웹사이트를 평했다. 그런 만큼, 실장은 그 웹사이트의 내용은 아무 것도 가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 독특한 웹사이트의 운영자가 무슨 이유에서 인지 어딘가에서 읽고 타이핑 해 놓은 그 학자의 이야기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장은 바로 그 이야기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자신이 본 요정과 매우 비슷하다고 여겼다.
실장과 나는 그 이야기의 출처를 찾아 다시 여러 곳에 전화를 걸고, 전화만 걸어도 위험할 것 같은 곳에 직접 찾아 가기도 했다. 실장은 결국 그 이야기를 처음 써서 올린 학자를 찾아 냈고, 어느 저녁, 처음으로 요정을 보았던 그 유리창 앞 자리로 그 학자를 초대 했다.
학자는 비쩍 말랐고 가난하고 병들어 보이는 늙은이였다. 그렇지만, 세상에 아무도 못 본 것을 자신은 보았다는 자신감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는 억울함 때문에 항상 힘은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학자는 자신이 본 요정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학자는 이야기의 작은 세세한 부분부분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설명해 주었고, 실장도 그런 작은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지나치지 않고 싶어 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우리는, 밤이 깊고 몇 병의 차가운 맥주가 여름 바람에 냉기를 잃어버릴 때까지 이야기를 계속 했다.
학자는 자신이 젊었을 때는 비행기 조종사였다고 이야기했다. 학자는 제주도에서 부산을 오가는 비행편을 조종했는데, 급하게 전달해야 하는 속달 우편물이나, 환자 수술이나 사고 수습에 필요한 급한 물건을 제주도와 주고 받을 때가 있을 때를 위해 그가 조종하는 비행편이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폭풍우가 지나가고 날이 갠 직후의 여름밤에 야간 비행편을 조종할 때였다고 한다. 그는 그 무렵 야간 비행편을 조종하던 때의 기분에 대해 설명했는데, 아무것도 안보이는 깜깜한 밤하늘을 일정한 속도로 날아 가고 있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다. 수천 미터 높이를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움직이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는 검은 세상에 혼자 떠와서 그저 가만히 알 수 없는 세계를 잠깐 떠도는 것 같기만 하다. 변함 없이 한 높이로 울어 대는 엔진소리는 오히려 다른 세계로 건너 온 곳의 고요한 기류 소리처럼만 느껴지고, 덜컹이는 것도 흔들리는 것도 없이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행기 안의 모습이 영영 다른 시간으로 이어지는 일 없이,그대로 가만히 밤하늘 어둠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처럼만 여겨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그는 남해 한 가운데에서 계기 고장으로 길을 잃고, 엔진에 무리가 올 때까지 식은 땀을 흘리며 밤하늘을 헤멘 뒤였다. 폭풍우 속에서 격납고로 대피시킬 때에 무슨 실수가 있었는 지, 비행기에 작은 고장이 있었는데, 급하게 그날 저녁에 바로 야간 비행에 나서는 와중에 고장이 커진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 허둥거리고 있었고, 겁을 먹어 갑자기 아무것도 생각하기도 싫어 지는 와중에서도 한번만 더, 한번만 더, 하면서 부질도 없이 무전 주파수를 매만지고, 엉망으로 뱅뱅 돌아 가는 항법 장치를 이해하려고 쳐다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모든 것이 다 꼭 악몽 속의 허망한 꿈 같이 느껴지고, 이제 뭐든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귀찮으니 빨리 그냥 다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는 그 독특한 야간 비행의 적막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순간 비행기 날개 끝에서부터 달빛을 받아 반짝 거리며 날아 오는 요정을 보았다.
그가 본 요정은 빛나고 있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실장이 본 요정과 꼭 같다고 했다.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의 요정을 그도 그때 보았다. 그는 그 요정의 신기한 움직임과 이상한 표정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 그 요정이 비행기의 빠른 속도가 만들어 내는 기류를 그저 미끄럼틀을 타듯이 부드럽게 타고 따라 다니는 것을 보며 경의감에 빠져 들었다.
그는 요정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다가 마침내 창 바깥 하늘 위를 보았다. 그저 암흑 속에 영영 갇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야간 비행편의 공간이,사실은 달빛이 비치는 구름의 벌판 위를 날아 가고 있는 것이며, 그 위로는 우주 저편에서부터 내려 오는 별이 수없이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조종간을 힘주어 잡았고, 차분하게 안전한 고도와 해안선의 낯익은 모양을 향해 비행기를 움직였다.
그가 겨우 목숨을 구해, 김해 공항에 착륙했을 때에도 아직 새벽은 밝아 오지 않은 상태였다. 여전히 하늘은 깜깜했고, 날씨는 거센 비바람이 지나가고 모자란 것이 없이 맑게 젖은 구름이 공기를 쓸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여러 사람이 그의 곁에 다가와, 괜찮냐고, 어떻게 살아 났냐고 물었는데, 그는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했고 대답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나서부터 그는 그날밤 비행기 안에서 죽기 전에 본 것을 확인하려고 다니기 시작했다. 몇 년 간 그는 일정한 기준도 없고 방향도 없이 그저 닥치는 대로 요정을 다시 한 번 보려고만 했다. 그러다가 그는 비행기 조종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다시 곤충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자 했고, 그러기 위해, 바닥부터 차근차근히 다시 공부를 시작해 나갔다.
그는 더 많은 연구를 할 기회를 얻기 위해, 벌이나 나비에 관한 연구나 벼룩과 빈대에 관한 연구처럼 사람들이 관심이 많은 것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해서 조금씩 확보 되는 연구의 여유를 모아서, 그는 그가 그날 밤 보았던 것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 나갔다.
그는 자기가 본 것을 두고 “제주 한라 날거미”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직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자기가 본 것은 바람을 타고 날아갈 수 있는 거미의 일종이라고 짐작한 것이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그 요정이라고 생각한 절지동물은 파도를 타고 밀려 온 알에서 깨어나며, 애벌레 시절에는 땅속 어두운 곳으로 들어 가서,그 안에서 산다고 한다. 그리고 어른 벌레로 자라나서 번데기를 만들고 부화할 때까지, 계속해서 높은 곳을 향해 올라 가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극히 적은 숫자만 존재하는 이 벌레는 해안가에서 비탈을 따라 조금씩 조금씩 계속 기어 올라가며 자라 나는데, 십수년의 세월 동안 꾸준히 그저 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기어 올라 가기만 한다. 그러다가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 가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지게 되었을 때, 이 동물은 번데기를 만드는데 그 높이가 충분히 높을 경우에 번데기가 완성되는데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한라산 정상까지 올라 가는데 성공했을 경우에, 번데기에서 빠져 나온 동물은 작은 사람을 닮은 모양이 되는데, 누에 고치의 실이나 거미의 거미줄과 같은 실이 남아 있어 마치 옷을 입은 것과 같은 모습이 된다. 그리고 나서 이 동물은 높은 지대의 기류를 타고 하늘을 날기 시작하는데,힘이 다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될 때까지 남은 시간을 하늘에서만 살게 된다. 몇 십일에서 몇 달 정도를 살게 되는데, 그 동안 기류를 타고 올라 가게 되면 수백미터, 수천미터 높이까지 올라 가기도 하고, 그 높이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몇 십 킬로미터, 몇 백 킬로미터씩 이동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학자는 실장을 설득했다. 실장이 본 것은 학자가 보았고, 일생 동안 찾아 다녔던 바로 그 동물이 맞다고 했다. 기류가 강하게 치솟는 남동해안의 바닷가에 갑자기 초고층 건물들이 생겨 났고, 이것이 바로 바닷가의 기류가 강한 지형에서 높은 곳을 찾아 기어 올라 가기를 좋아하는 이 동물의 습성과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옛날 한라산의 땅속을 기어 오르며 자라나던 벌레는 이제 고층빌딩의 배수관이나 가스배관을 타고 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올라 간다는 이야기였다. 학자는 이 동물의 발생과 소멸에 대해 설명 했고, 말에는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나 진화 과정에 대한 이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진지한 이야기에는 나도 설득될 정도였다. 학자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옛날 이야기 중에 공주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콩알만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을 이용해서 마귀를 쫓는 것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바로 그 전설이 신라시대에 이 요정과 같은 동물을 잡아서 길렀던 사람의 이야기라고 설명 했다. 학자는 그 날개에 빛을 뿜는 물질이 있는데, 거기에 아주 강력한 진통효과를 내는 물질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요정의 가까이에 있거나, 요정을 잡아 먹는다면 고통이 없어 지고, 병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추측했다.
실장은 밤이 깊도록 학자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고, 그에게 여러가지 다른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물었다. 실장은 당장 날이 새면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대대적으로 빌딩 근처를 수색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벌레를 찾는 일을 조직적으로 시작할 것 같이 보였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지는 않는다.
다음날 오전 내내 한참 아무것도 안하고 있던 실장은, 오래간만에 다시 망원경 앞에 가서 먼 곳을 보았다. 이번에는 바닷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 저편 먼 곳과 바다 먼 곳의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물결을 쳐다 보기만 했다. 그리고 나서, 실장은 나에게 이 연구실을 정리해서 처분하고 이제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말했다.
실장은 낮은 목소리로 어떠한 멍청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착실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실장은 요정을 다시 찾아 내고 싶고, 다시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요정에 대해 확실하게 믿고 있고, 거기에 많은 자금을 댈 수 있을만한 사람이 세상에 자기 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는 스스로 사명감 같은 것을 느낀다고도 했고, 그 사명감의 느낌 때문에 더 요정을 찾고 싶어진다고도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많은 사람과 많은 돈을 동원해서 요정을 다시 찾아 낸다고 해도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요정이 발견된다면, 그 요정이 새로운 생명체라는 것을 증명하고 학술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밝혀낼 생물학자가 그 명예를 차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장은 사과를 심은 사람이나 사과를 떨어뜨린 사람 정도의 취급을 받을 뿐, 만유인력을 발견한 공로는 그 누군가가될 요정을 연구할 생물학자가 차지할 것이다. 그것도 아마 어제 만난 겨우 생계나 이어 가는 조무래기 학자 같은 사람 보다는, 이미 좋은 학교에서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거물 중에 하나가 달려 들어, 요정의 생명력과 신비로움을 밝혀 낸 공로를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요정을 발견한 것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요정이 사는 도시, 요정이 발견된 곳이라고 이 근처를 꾸미고 장식하는 일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 해변을 찾아 오는 사람은 세상에 걸쳐 더더욱 많아 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도시를 홍보한 구청장이나 시장의 공로가 될 뿐이다. 그 정치인들은 갑자기 경기가 좋아진 도시를 자기 작품처럼 떠벌이며 더 그럴듯한 자리를 노리고 다음 선거에 달려 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요정을 처음 발견한 사람에게 돌아 올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아마 요정 하나를 붙잡아다가 유리병 안에 담아 두고, 한 번 구경 시켜줄 때마다 돈을 받는다든가, 요정 몇을 잡아서 계속 기르고 키우면서 여럿으로 불려서 다른 사람들, 다른 나라에 팔아 먹는 사업을 한다면 혹시 큰 돈을 벌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흥행업이나 동물 사육업에 투자해서 도전하는 것은 너무나 새로운 일이었다. 성공할 지, 실패할 지, 투자한 금액 대비 수입은 얼마이고, 누구를 고용해서 어떤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더군다나 요정을 가둬 두고 돈을 받고 보여 준다는 식의 사업. 그것은 그 말을 한 번만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 봐도, 결코 그 끝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실장은 결국 남는 것은 한 가지 뿐이라고 했다.
“처음 요정 잡은 사람이라고 텔레비전 뉴스에서 신기한 구경거리라고 얼굴이나 몇 번 나오겠지.”
그 모든 것은 실장에게 결코 보람이 있는 결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에 비해서 이제 이 연구실, 부동산의 가격은 마침 팔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면 적당할 시세가 되었던 것이다.
실장이 이곳을 떠나고 나는 다시 실업자가 되기 전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만났다. 모든 것이 다를 바 없는 것 같은 창가에 우리는 서 있었다. 나는 아무 것도 없는 창 저편으로 실장이 보았다던 요정이 언뜻 보이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된다면 극적인 끝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렇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뜻 밖에도 실장은 마지막으로 나에게 두렵다고 말했다. 나는 뭐가 무섭냐고 물었다.
“그래도 내가 그걸 봤잖아요.”
그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났다.
- 2014년, 가양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