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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1.
망원경으로 처음 “바오스”를 발견 했을 때, 우리는 그게 혜성인 줄 알았다. 눈에 보이는 보통 혜성 만큼 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커 보이는 덩어리였고, 혜성과 비슷한 속도로 태양계를 가로지르며 우주에서 날아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보통 다른 혜성들과 달라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바오스라고 이름을 붙이지도 않았다. KO10426이던가 하는 일련 번호만 붙어 있었다.

바오스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붙게 된 까닭은 그게 중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왜 중요해 보였냐면, 그게 지구를 향해 오고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혜성이 지구랑 부딪히면 어떡하나. 지구 박살나는 거 아니야?”

마침 그 때는 요란한 이야기를 퍼뜨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았고, 자기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놀라거나 관심을 가지면 속으로 들떠 기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뜸,

“올 여름, 혜성이 충돌해서 지구가 부서지면 세상은 멸망하고 우리는 모두 다 죽는다!”

하고 떠벌리는 사람들이 자꾸 생겨났고, 그런 사람들이 바랐던 대로 놀라고 겁먹은 사람들도 많아 졌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사람들을 안심 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공무원들은 혜성을 연구하는 연구소의 책임자인 허진혁 연구소장을 불렀다.

“이런 건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넓은 범위로 구해 보아야 하는 일입니다.”

허 소장은 원래 혜성 연구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혜성이야 그냥 밤하늘에 흰 줄이나 그리고 지나가는 장난 아닌가. 소장이 관심이 있었던 것은  감시용 인공위성이나 자외선 화장품과 관련된 태양 연구였다. 그런게 돈이 되는 연구였다. 그렇지만 공무원들 앞에서 “저는 사실 혜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요.”라고 말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여러 학자들을 불러 다가 정말 그 혜성이 지구랑 충돌할 것인지 차근차근 조사해 봐야 한다고 둘러 댔던 것이다.

허 소장은 연구소로 돌아와 혜성 연구하는 학자들을 여기저기서 끌어 모아서 혜성이 충돌하는지 안하는지 물어 보았다. 그런데 학자들은 그러자 비싼 돈을 내고 음식을 주문했는데 양이 너무 적을 때 짓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조사해 봐서는 정확하게 잘 모릅니다.”
“왜 그런데요?”
“혜성이 너무 멀리 있어서 정확한 속도와 방향도 아직 잘 모르고, 혜성의 재질과 무게도 모릅니다. 그걸 모르면 언제 어디로 혜성이 갈 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대충이라도 예상해 봐요.”
“너무 대충 예상하는 것이라서 맞는지 틀리는지 자신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뭐라도 어떻게 될 거라고 얘기 좀 해줘 봐요.”

소장은 물러섬 없이 학자들을 다그쳤다. 하는 수 없이 여섯 명의 학자들이 각자 나름대로 적당히 내키는대로 혜성이 언제 어디로 갈 거라는 예상을 발표 했다. 세 명의 학자들은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거나, 지구에 큰 재난을 몰고 올 거라고 예상했고, 다른 세 명의 학자들은 혜성은 지구를 빗겨 가서 별 영향이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렇지만 모두들 부족한 근거로 대충 예상한 겁니다. 어떤게 맞고 어떤게 틀릴 지 알수 없어요.”

소장의 비서가 말했다. 소장은 괜찮다고 했다.

“사람들을 안심시켜야 하니까, 제일 지구에 영향 없을거라고 예상한 학자의 의견을 발표하는 걸로 하지, 뭐.”
“왜 하필 그 사람 의견을 골랐냐고 누가 물으면 뭐라고 할까요?”
“그 학자라는 사람 나이가 몇 살이지?”
“스물 아홉 살로, 학자 여섯 명 중에서 제일 어립니다.”
“그러면, 이런 중대한 연구에는 가장 활발히 연구하고 있고 요즘 최신 기술에 가장 친숙한 젊은 학자의 말을 따라야 된다고 하면서, 그래서 그 가장 젊은 학자 의견을 택했다고 설명하라고.”

소장이 그렇게 지시했고, 그 덕택에 그 학자의 의견 대로,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확률은 0.01% 보다도 작다”라고 발표 했다. 그리고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들을 텔레비전에 내 보내서 설명하도록 시켰다. 훌륭하게 생긴 배우들과 목소리가 믿음직스러운 아나운서들이 여러 번 나와서, “혜성, 안심하고 밤하늘을 즐기세요!”라고 웃으며 외치게 했다. 그러자 다행히 불안해 하던 사람들 중에 많은 숫자가 그걸 보고 이제 안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젊은 학자가 갑자기 자기가 계산하고 조사한 것에 실수가 있었다면서, 예상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착각을 해서 루프에서 i,j를 바꾸는 실수를 했습니다. 다시 바로 고쳐서 계산해 보니까,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확률은 90%가 넘습니다.”

학자의 새로운 발표를 보고 소장과 그 부하들은 깜짝 놀랐다.

“아이제를 바꾸는 실수가 뭐지?”
“지금 걔가 뭔 실수를 했느냐가 뭐가 중요하냐? 큰일 났네. 다른 사람 말 믿지 말고 쟤 말 믿어야 된다고 그렇게 떠들었는데, 이제 쟤가 혜성이 지구에 충돌한다고 하고 있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두번째로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확률이 낮다고 한 학자의 의견을 소개할 걸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이가 너무 많은 학자라서, 좀 안좋았을까요?”
“안좋기는. 그 사람을 골랐으면 그 사람 나름대로 이유는 갖다대면 되지. 그냥 이렇게 심각한 문제에는 경험이 많고 신중한 나이 든 학자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 사람 뽑았으면 됐을 텐데.”
“아휴, 왜 그 젊은 애는 갑자기 저렇게 말을 바꿔 가지고.”

소장과 부하들은 속이 탔다. 소장의 부하 중에 하나는 정말로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잠깐 했지만, 지금 소장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그런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소장과 그 부하들은 학자에게 연락해서 제발 실수가 아니었다고 말을 바꿀 수 없냐고 한 번 사정해 보라고 했다. 그렇지만 학자는 실수를 두 번이나 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소장은 모든 학자들의 연구가 지금은 정확하지 않은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면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정확한 결과를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리 질문을 알려 준 기자가 그렇게 묻자, 소장은 대답했다.

“정확한 결과를 알아 내는 연구하려면, 우주선을 혜성 가까이에 보내서 혜성에 대해서 좀 더 찬찬히 살펴 보는 수 밖에 없겠지요.”

그렇게 해서 소장은 우주선을 발사 기술이 뛰어난 나라들에 사람들을  보내, 혜성에 우주선을 발사할 계획이 없냐고 묻고 다니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혜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며 겁을 내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 났고, 그러자 대통령의 인기도 같이 떨어 졌다.

“지지율이 또 떨어졌잖아. 이거 어떻게 할거야? 당신이 시작한 일이니까, 당신이 책임지라고.”

대통령이 소장을 불러다가 성을 냈다. 소장은 대통령 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았는데, 그 때문에 소장은 대통령이 반말을 할 때 마다 나이도 어린 것이 반말을 한다고 매우 기분 나빠 했다. 만약 두 사람의 나이가 동갑이기만 했어도 소장은 조금 덜 기분이 나빴을 것이고, 그러면 이 뒤의 모든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를 타이핑하고 있는 나 역시 세상을 움직이는 알 수 없는 이치에 대해 몹시 경건한 마음이 된다.

소장은 너무나 기분이 나빠서 무슨 수로든 혜성 문제를 빨리 끝장 보겠다고 결심했다. 소장의 부서는 정부를 온통 휘젓고 다니면서 예산을 털었다. 소장은 거침 없이 대통령 지시 사항이라고 이름을 팔았다. 그 결과 정부는 이웃 나라의 우주선을 돈 주고 빌리고, 이웃 나라의 우주선 조종사도 돈 주고 빌려오고, 우주선에 우주 관측 기계들도 이웃 나라에 돈을 주고 빌려 와서, 급하게 혜성을 향해 우주선을 보내게 되었다.

“혜성의 내부에 발생학적인 구조가 있고 내부 에너지 변화와 같이 일어나는 혜성의 운동량 변화가 있다고 합니다!”

혜성 근처에 도착한 우주선의 조사 결과를 보고 놀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소장과 부하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소장은 화를 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쓸데 없는 말 하지 말고. 중요한 게 뭐야. 그래서 지구에 부딛힌다는 거야, 안 부딛힌다는 거야.”

소장에게 대답하는 우주선 탐사대장은 소장 보다 나이가 세 살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너무나 놀라고 감격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소장이 반말을 하는 것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우주선 탐사대장이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혜성이라고 생각한 게 혜성이 아니고 사실은 아주아주 커다란 살아 있는 생물 같다는 이야기 입니다. 저 혜성은 우주를 떠돌아 다니는 돌덩이 별이 아니라 스스로 우주를 날아 다닐 수 있는 아주 큰 동물 같은 것입니다.”

탐사대장의 설명을 듣고, 소장과 부하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아직 놀라지 않은 사람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다수는 놀랐다. 드디어 우리가 외계 생물과 만나다니! 그것도 외계 생물이 저렇게 크고 이상하게 생긴 것이었다니! 세상에 차갑고 텅빈 느낌만 드는 망망한 우주 공간을 떠돌아 다니며 사는 생물이 있다니! 아무것도 없는 우주에서 뭘 먹고 어떻게 사는 생물일까나! 소식을 듣는 사람들 마다 놀랐고, 여러 다른 나라에서도 혜성에 우주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소장은 놀라지 않은 무리에 속했다. 소장은 상당히 오랫동안 화를 낼 뿐이었다.

“아니, 그게 생물인지 아닌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래서 그게 지구에 충돌한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그걸 말해야지. 진짜 답답한 양반이네.”

많은 소장의 부하들이 소장을 진정시키고, 이제 혜성에 관한 일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며 겨우겨우 납득을 시키는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소장은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다.

소장은 학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 보기 시작했다. 처음 그게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마침 구내식당에 틀어 놓은 텔레비전에서 라마에 대한 동물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학자들은 그 동물을 라마, 내지는 우주라마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 외계 생물의 정식 이름은 소장님께서 붙이십시오.”
“그래. 뭔가 첨단 과학 기술 느낌 나게 하려면 아무래도 영어 이름이 좋겠지?”

소장은 외계 생물의 이름을 붙이려고 4분 동안 생각을 했다. 소장은 영어로 이름을 짓되, 몇 개의 영어 단어로 이름을 만들고 그 머릿 글자를 따서 만든 말도 발음할 수 있게 하면 무진장 멋지고 똑똑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소장은 “우주의 큰 동물”이라는 뜻으로 “Big Animal of Space”라는 말을 생각하고, 단어마다 앞 글자를 따서 BAOS라고 한 뒤, “바오스”라고 부르면 다들 감탄할 거라고 했다.

“바오스!”
“바오스...”
“바오스.”

소장은 자기가 지은 바오스라는 이름을 퍼뜨리려고 노력 했다. 대통령이 슬쩍 살펴 보니, 다른 나라에서도 이 외계 생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 하는 것 같았다. 대통령은 소장에게 예산을 좀 더 주고 더 많이 선전하고 다녀 보라고 했다. 기분이 상쾌할 때는 소장 대신에 대통령이 나서서 이 “바오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바오스라는 이름이 퍼지기도 했고, 바오스에 대해 성실하게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아 졌다. 바오스의 크기는 대략 서울의 강남3구를 합친 정도의 크기 였고, 모양은 납작하고 평평한 편이었다. 말하자면 우주를 헤엄쳐 다니는 넙치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가까이에 가서 보면, 어떻게 보면 산호 같고 어떻게 보면 나무 같아 보이는 모양이 여러 가지 무늬를 이루며 겉면을 뒤덮고 있었다. 그 중에 어떤 것은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했고, 어떤 것들은 다채롭게 빛을 내며 흔들리기도 했다.

“나무 사이로 색색깔 벌레들이 날아 다니는 정글 비슷한 모습 같기도 하고.”

학자들은 바오스가 내는 빛들과 바오스의 움직임을 면밀히 조사 했다. 그리고 그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을 듣고, 소장은 이제 드디어 대통령에게 복수를 할 때가 왔다고 생각 했다. 소장은 대통령에게 그 결과는 복잡하기만 하고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지루한 이야기니까 제가 발표하겠습니다.”

소장은 그렇게 말해 놓고, 텔레비전에 나가서 이렇게 말했다.

“바오스의 움직임은 말하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신호 입니다. 그러니까, 바오스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지능이 있는 생각하는 동물입니다. 바오스는 어지간한 섬 만한 크기로 우주를 날아다니는 아주 커다란 외계인인 것입니다.”


2.
대통령은 그런 멋진 소식을 자기 대신 소장이 발표한 것이 화가 났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에는 무심하게 있었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소식은 대통령이 발표하는 것을 보고 소장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기 생각 했다. 대통령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는 자기가 화가 나는지 어떤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소장은 그런 대통령의 성격 때문에 자기가 쫓겨 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은 처음에 화가 나서 소장을 당장 자리에서 쫓아 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러면 사람들이 대통령이 질투심이 많다고 놀릴까봐 참았다. 그 대신 대통령은 이제 다음부터는 자기가 훨씬 더 놀라운 일을 저지르고 훨씬 더 놀라운 소식만 전하겠다고 결심했다.

대통령은 다리를 짓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무기를 사고, 도둑을 잡을 돈을 몽땅 다 빼내서 오직 우주선을 바오스로 보내는 일만 하겠다고 나섰다. 맨정신이라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쩐지 다들 혜성 충돌이 어쩌고, 외계인이 어쩌고, 하는 사이에 잔뜩 들떠 있어서 멍한 상태였다. 대통령을 말릴 만큼 제정신인 사람의 숫자가 충분하지 못했다.

그런 덕분에 어떤 사람은 직접 바오스 근처에 가서 꽤 위험하게 우주선을 움직이면서 아주 가까이서 바오스를 보기도 했고, 아예 바오스에 착륙해서 바오스의 피부와 털에 해당하는 것이 어떤 성분인지 알아 내려는 사람도 있었다.

“이거, 꿈틀꿈틀하는 거 같은데.”
“위험해, 위험해.”
“그래도 어떻게든 가까이 붙어 있어 보라고 해. 아주 조금이라도, 한 두 스푼 정도라도 바오스의 몸을 떼올 수 없을까. 그래봤자 바오스처럼 저렇게 덩치가 커다란 외계인이면 사람 몸에서 머리카락 하나 뽑는 것 보다도 훨씬 더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지 않겠어.”

대통령은 위험해도 바오스를 자꾸 건드려 보라고 다그쳤다. 그렇지만, 바오스에서는 곧 강한 빛과 치솟는 바람이 나왔다. 바오스는 가까이 온 우주선을 그대로 똑 떨어 뜨려 버렸다.

죽을 고생을 하며 바오스 근처에서 헤메고 있는 우주선을 두고 대통령이 말했다.

“안전한 임무이기 때문에 우리가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임무이기 때문에 우리는 도전하는 것입니다!”

어디서 비슷하게 베껴 온 말이 었지만, 감격에 찬 목소리였다.

그러나 대통령에게는 안타깝게도 바오스 탐사는 생각했던 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다. 바오스 탐사야 말로 우주의 신비에 대한 놀라운 과학적 발견과, 인류의 존재 의미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과, 미지에 도전하는 인간의 감개무량한 휴머니즘의 결정체라고 떠들었는데, 마침 그때 자기 남편이 있던 야당 총재가 멋있는 미남 배우와 바람이 났다는 소식이 나왔던 것이다.

“사람들이 외계인 이야기 보다 야당 총재가 바람난 소식에 더 관심이 많다고?”
“바람난 그 배우가 워낙에 미남이고 인기가 많았지 않습니까. 별별 다른 미녀 배우랑 사귄다는 뜬소문만 파다 했다가 다 거짓으로 밝혀졌는데, 사실 진짜 애인이 야당 총재라니, 이렇게 신기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비서의 말을 듣고 대통령은 답답해서 가슴을 쳤다. 대통령은 바오스가 있는 우주 저 편 밤하늘을 가리켰다.

“어디 있냐니. 저기 외계인이 있잖아.”
“저희 당에서도 이 소식을 부추기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야당 총재가 바람난 사건이니까, 사람들이 이 이야기 많이 할 수록 야당이 안 좋아 보이잖습니까. 우리한테는 좋은 공격할 건수 입니다.”
“그래도 외계인인데. 외계인 이야기는 하지 말고, 바람난 이야기만 하라고?”
“외계인 이야기는 많이 해 봤자 너무 외계인 탐사에 돈 많이 썼다고 욕 먹기만 쉽습니다.”

그 말을 듣자, 대통령은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잠시 동안 하늘 저편에서 지구를 향해 오고 있는 작은 도시 만한 크기의 외계인 이야기는 관심을 잃었다.

외계인 이야기가 다시 관심을 더 많이 얻기 시작한 것은 대통령이 바뀐 후였다. 새 대통령은 다름 아닌 바로 그 배우랑 바람 났던 사람이었다.

바람난 일로 욕을 어마어마하게 먹었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다들 이 사람 이야기만 떠들다 보니 이 사람은 얼떨결에 매우 친근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이 배우와 헤어지려고 했다가, 이혼하려고 했다가, 다시 배우를 만났다가, 다시 눈물을 머금고 배우와 헤어지고 또 재결합을 하려고 했다가, 결국 이혼하는 이야기에 다들 푹 빠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괜히 “저 사람도 무슨 좋은 점도 있고 매력적인 면도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저 사람은 바람 피운 사람이긴 하지만 능력은 좋은 사람이다”라는 인상까지 얼렁뚱땅 퍼져 나가 버렸다.

새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자, 자기가 역사에 “바람난 덕분에 대통령된 사람”으로 기록될 거라는 것을 고민으로 여기게 되었다. 잘한 일이 거의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전 대통령은 “외계인 바오스를 발견한 시대의 대통령”으로 벌써 불리우고 있었다. 전 대통령은 아직도 바오스를 처음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았던 때의 기분이라든가, 자기가 얼마나 멋있는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과감하게 바오스 연구에 돈을 써 없애 버리라고 지시를 했겠는가 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떠들고 다니고 있었다.

“바오스 연구하던 사람들 좀 다 불러봐.”

새 대통령이 지시 했다. 그 덕분에 한동안 별볼 일 없이 있던 외계인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통령 앞에 불려 왔다. 그 사람들 중에는 갑자기 바오스 연구에 쓰는 예산이 줄어 들면서,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많았다.

“저 해고되면 갈 데가 없습니다. 어디서 뭘해서 먹고 삽니까?”
“아니, 이 풍요로운 나라에서 능력만 있으면 왜 일자리를 못 구해요?”
“제가 할 줄 아는 건 외계인 연구인데, 외계인 연구하는 사람 뽑는 회사가 어디 있겠어요?”
“최대한 비슷한 쪽으로 알아 보세요. 그럴 때 위기에 적응하는 것도 다 능력이에요.”

그런 말을 듣고 직장을 나와야 했던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저런 임시직을 전전해야 했다. 그나마 잘 자리 잡은 사람들로는 수학이나 과학 과목을 가르치는 학원 강사가 된 경우 정도였다. 새 대통령의 질투심 때문에 다시 바오스 연구 사업에 돈을 쓰기로 결정해서 그 사람들이 다시 원래 직장으로 돌아 갔을 때, 그 변두리 학원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은 놀랐다. 졸리는 설명으로 돈값도 잘 못하는 것 같던 자기 학원 강사가 원래는 외계인을 만나고 온 우주선 조종사였다니.

대통령이 다시 사업을 시작하자, 가장 좋아한 사람은 허진혁이었다. 허진혁은 지난 번 대통령이 싫어하게 되었기 때문에, 결국 소장 자리에서도 쫓겨 났다. 쫓겨난 후에는 마땅히 할 일도 없이 놀고 있었다. 그러다가 젊은 정치인들이 괜히 굵직한 연구 사업에 관심 있어 보이려고 허진혁을 찾아 오면 비싼 음식점에서 점심 식사, 저녁 식사를 화려하게 사는 삶을 살다가 돈을 너무 많이 써 버린 상황이었다. 집을 팔까, 빚을 낼까, 아슬아슬했는데, 때마침 새 대통령이 허진혁을 찾은 것이다.

허진혁은 전 대통령의 적이 되어 쫓겨난 사람이었으므로, 전 대통령의 적인 새 대통령은 자연히 허진혁을 같은 편으로 느끼는 마음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게다가 허진혁이야 말로, 바오스가 외계인이라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말한 장본인 아니었나. 대통령은 허진혁이야말로 다시 바오스를 파헤치는 일을 맡길 적임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은 다시 또 허진혁을 소장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허진혁은 학자들을 찾아 다니며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달라고 했다. 바오스 연구하는 일에 그 동안 돈이 들어 가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바오스로 더 이상 우주선이 날아 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해고 되지 않고 일자리에 붙어 있던 학자들은 주로 조사해 온 갖가지 자료를 이렇게 들여다 보고 저렇게 계산해 보면서, 갖가지 방법으로 그 의미를 캐내는 일만 했다.

“그렇게 계속 파헤치다 보니까, 사실 좀 어마어마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게 뭔데요?”

그때껏 다시 소장이 되었다는 생각에 들떠 있던 그는 기쁜 마음으로 반말을 쓰지 않고 물었다.

“그게 뭐냐면, 저...”
“더듬거리지 말고 말해 보세요.”
“바오스가 지구에 오는 게 맞습니다.”
“뭐요? 그럼 우리 다 죽는 거 아녜요?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아직까지 말 안하고 있었어요?”
“저희가 작년 연구보고회 때 보고 드리기는 했는데요. 요즘 바오스 연구는 다 망해 가는 거 알고 있으니까, 별로 신경 써서 듣는 분들이 안 계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소장은 놀랐다. 그렇지만 곧 그는 침착하게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갔다.

“그러면, 텔레비전에 나가서, 우리가 몇 월 며칠이 되면 바오스가 땅에 부딛히기 때문에 다 죽는다고 내가 발표하면 되는거요?”

소장은 곧 어떻게 말할 지 가까운 부하들과 따로 모여서 같이 의논해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담담하게 말하는 게 좋겠소? 아니면 약간 떨면서 말하는 게 좋겠소? 배경음악을 까는 게 좋을까. 그렇지만 학자들의 대답은 달랐다.

“그게 좀 마땅치 않은게, 바오스가 지구에 오기는 올 건데, 땅에 부딛혀서 다 박살낼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학자들의 이야기는 바오스가 살아 있는 생물이고, 지능이 있어서 다른 세계를 탐구하려는 외계인이기 때문에, 다른 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는 듯 보이고 지능이 있는 동물이 사는 것 같은 지구에 오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오스는 단순히 그냥 우주를 둥둥 떠다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구를 향해서 계속 날아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단 지구까지 날아 오면, 우리에게 말을 걸 것 같습니다.”
“바오스가 사람들한테 말을 건다고요? 대표로 대통령에게 말을 걸까?”

소장은 흥분했다. 말로는 바오스가 대통령에게 말을 거는 것을 상상했지만, 속으로는 아무래도 이것은 바오스와 얽힌 일인 만큼 소장인 자기가 직접 바오스와 대화를 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 했다.

그렇지만 학자들의 대답은 소장에게는 실망스러웠다.

“바오스는 한 사람을 골라서 말을 걸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면? 덩치가 워낙 크니까 하늘에서 땅 가까이로 내려 와서 시민들 모두에게 크게 소리라도 지르는 건가?”

그러자 한 학자가 한숨을 푹 쉬면서 중얼거렸다.

“소리라는 건 공기가 있어야 전달이 되는 건데, 공기가 없는 우주에서 사는 바오스가 소리를 지르고 살 리가 있나.”

그 학자의 말은 소장을 한심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자 다른 학자가 소장이 그 말을 알아 듣기 전에 재빨리 그를 가리고 나서서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일단 소장님 말씀하신대로 바오스가 덩치가 너무 크다는 게 확실히 중요한 점이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학자는 바오스에 여러 대의 우주선이 날아 가서 연구하던 시절 있었던 일, 한 가지를 알려 주었다.

그 때 바오스는 한 명이 한 대의 우주선이 날아 오는 것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 대, 세 대 이상의 우주선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으면 그 움직이는 모양에 약간은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우주선 사고가 나고 가까스로 도망쳐야 했던 일도 많았다.

그 사건의 의미는 시일이 흐른 뒤에야 밝혀졌다. 바오스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져서 바오스 연구하던 연구원들이 닥치는대로 해고되던 시기가 되었다. 원래 제자리에서 일을 잘 하던 연구원들은 실업자가 되었고, 일손은 부족해졌다. 남아 있는 연구원들이 다른 사람의 일을 맡아서 해야 했다. 처음에는 순항궤도를 계산하던 연구원들이 발사궤도도 같이 하는 정도로 일을 겹쳐 맡게 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연구원들이 해고 되자, 우주선의 제어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사람이 통신 소프트웨어도 만드는 일이나, 우주선의 재질을 연구하던 사람이 안전 관리도 맡는 일도 생겼다.

그렇게 일이 돌아 가다 보니, 예전에 바퀴벌레 살충제를 연구했던 연구원도 바오스의 온갖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일까지 생겨 버렸다. 그때 그 바퀴벌레 살충제 연구원이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바오스는 사람 한 명을 세포 하나라고 보고 있는 거 아닐까요?”

그는 바오스에 대한 정치인들이 관심이 많아 세금이 이쪽으로 많이 흘러들 때 고용된 사람이었다. 그때는 닥치는 대로 연구원들을 뽑아서 늘렸기 때문에 바퀴벌레 살충제를 연구하던 그도 바오스 연구팀에 들어 갔던 것이다. 그는 바퀴벌레 살충제를 만들기 위해서, 바퀴벌레의 습성과 움직임을 조종하는 그 뇌와 신경을 조사하던 사람이었다. 바오스 예산이 줄어든 후에는 이 일 저 일 잔심부름이라도 하면서 해고를 피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그는 바퀴벌레의 뇌에 대해서 연구했던 것이 바오스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 했다.

“뇌세포 하나 하나는 간단한 동작을 하는 작은 세포 하나 입니다. 그런데 그게 여러 개 모여서 서로 연결되어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세포 하나 하나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그게 한 덩어리로 기억도 하고 판단도 하고 생각도 하게 되는 거 거든요.”
“사람 뇌도 그렇게 생겼지. 뇌는 뇌세포 천억개인가 모여 있는 거라고 하잖아.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우리가 처음 바오스를 봤을 때는, 그렇게 큰 게 하나의 덩어리라고 생각을 못하고 커다란 혜성 덩어리에 나무, 산호, 벌레 같은 게 수백만 개 씩 붙어 있는 거라고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게 다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큰 동물이었어요. 그런데 바오스는 반대로 우리 같은 사람 한 명 같은 아주 작은 동물이 있다는 생각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대신에 바오스는 사람들이 여러 명 모여 있으면 그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고 의논하고 같이 움직이는 그 단체, 덩어리를 통째로 하나의 동물이라고 생각하나 봐요.”

그 바퀴벌레 뇌를 연구하던 학자는 그리고 바오스의 뇌 구조를 하나하나 연구해서 파헤쳤고, 여러 우주선의 움직임을 바오스가 어떻게 보고 이해하는 지 추측하는 연구도 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소장이 물었다.

“그래서 바오스는 지구에는 사람들이 우글우글 많이 모여서 서로 같이 어울려 사니까, 그걸 보고 여러 세포가 연결되어 있는 한 덩어리의 동물이라고 생각하고 지구에 찾아 온다, 그런 이야기에요?”
“맞습니다. 바오스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한 군데에 모여서 살면서 같이 활동하며 돌아 가는 사람들의 도시 하나를 한 마리의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오스는 한 명의 사람과 이야기하려고 하는 대신에 하나의 도시와 이야기를 하려고 할 겁니다.”
“그러면 바오스가 어느 도시로 날아 오는데요?”
“지금까지 조사한 걸로 추정해 보면, 서울에 찾아 올 것 같습니다.”
“왜 하필 서울인데요?”
“우리 쪽에서 바오스에 워낙 우주선을 많이 보내서 이것저것 이상한 짓을 많이 하다보니까, 관심을 많이 끌어서 그런 것 아닌가 싶기는 한데,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바오스가 몇 달 뒤면 서울 하늘 위에 오는 거에요?”
“예. 바오스는 천천히 공중에서 서울로 내려 올겁니다. 그러면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를 합한 넓이 정도가 바오스의 그림자에 다 뒤덮힐 겁니다.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 보면 바오스를 볼 수 있을 거고요. 아주 천천히 오지만 그래도 워낙 큰 게 우주에서 내려오는 거라서,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오고 번개도 치고 그럴 거 같습니다.”

소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서울 상공에 몇 십 킬로미터 짜리 외계인이 나타나서 온 하늘을 뒤덮는다는 이야기를 자기가 전해 줄 생각을 하니, 이거야 말로 끝내 준다고 생각 했다.

“좋았어. 좋았어. 뭐 조심할 건 없고?”
“너무 커다랗고 아는 게 부족한 외계인이 찾아 오는 거기 때문에 고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떡해요? 서울 시민들을 다 대피시켜야 되나?”
“그런데 또 그것도 고민스러운 게 이 커다란 외계인 바오스가 서울시와 대화를 하려고 했는데, 서울시의 움직임이 바오스에게 욕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든가, 바오스를 해롭게 할 것처럼 보인다면, 바오스가 화가 나서 대한민국을 다 부수어 버린다든가 할 수도 있겠죠.”

잠시 심각한 고민을 하는 듯이 말이 없었다. 다른 연구원 하나가 말했다.

“이건 아무래도 대통령께도 이야기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자 소장은 아까웠다. 그렇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바오스가 대한민국을 박살 낼지도 모른다고 대통령에게 겁을 주면, 대통령이 자기에게 더 매달릴 것 같기도 해서, 괜찮게 들렸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나?”

바오스가 서울에 오고 그게 나라를 파괴할 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대통령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바로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장도 같이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저희 연구소에서 바오스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알아 냈습니다. 저희는 바오스들이 쓰는 말로 바오스에게 인사를 하면서 반갑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커다란 스피커로 하늘에 있는 바오스를 향해서 막 큰소리로 인삿말을 틀면되나?”

소장은 속으로 ‘소리라는 건 공기가 있어야 전달이 되는 건데, 공기가 없는 우주에서 사는 바오스가 소리를 지르고 살 리가 있나’라고 생각하며, 대통령이 무식하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소장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귀가 안들리는 사람은 소리 대신에 손동작으로 말을 하면서 수화를 쓰듯이, 바오스는 다른 방법으로 말을 합니다. 바오스는 온 몸에 있는 빛의 깜빡임과 작은 움직임들로 대화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 비슷하게 해야 되겠네요.”
“맞습니다. 서울 시내의 전기 불빛들과 사람들의 움직임, 자동차들의 움직임을 정해 놓은 모양대로 차례대로 동시에 움직이면 그게 바오스에게는 인삿말처럼 보일 겁니다.”

그리하여, 대통령은 바오스가 오는 날에 맞추어 서울 곳곳을 일제히 동시에 조종해서 커다란 바오스를 향해 신호를 보내도록 지시 했다. 수만명의 군인과 경찰들이 이 일을 위해 나서야 했다. 바오스가 지구에 가까이 온다고 미리부터 이야기하면 다들 놀랠까봐, 왜 그런 일을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고, 그저 시민 안전 훈련을 한다는 정도로만 이야기하고 일을 진행했다.

그렇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정해 놓은 대로 움직이도록 연습을 시키는 것이 도무지 쉽지가 않았다. 최소한 백만 명 이상의 사람이 동시에 움직여야 했다. 몇 천 명쯤을 모아 놓고 차려 열중쉬어를 가르치는 정도의 방식으로는 꽤 복잡한 동작들을 치밀한 차례대로 백만명에게 시키기란 어려웠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한 대기업 연구소 출신의 연구원이었다가 바오스 연구하는 학자가 된 사람이 말했다.

“그런데, 이거 이러면, 매스 게임이랑 비슷하지 않나요?”

그는 전 직장인 대기업에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 직원으로서 충성심과 소속감과 단결력과 그 밖의 쓸데 없는 무의미한 것들을 길러야 한다면서, 모든 직원들이 서로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며 몸동작을 맞춰서 “앞서 가는 우리 회사”, “연구팀 사랑해요” 같은 글자를 만드는 것을 강제로 시켰던 것을 기억했다.

그 아이디어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정부에서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행사를 꾸몄던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그런 행사의 개막식이나 폐막식에서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해서 멀리서 보면 멋진 모양이 나오게 했던 행사를 짜고 연습시켰던 방식을 적용하면 될것이다. 그 사람들의 방식을 따른다면, 백만명의 서울 시민을 동시에 원하는 모양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다.

어느 정도는 생각했던 대로 되었다. 올림픽 개막식 연출과 훈련을 맡았던 사람들이 바오스에게 인사하는 일을 맡게 되자, 확실히 예전 보다는 훨씬 더 움직임이 부드럽고 정확해졌다. 그렇지만 그래도 바오스에게 자연스럽게 보일만한 수준에는 많이 못 미쳤다.

“이런 거 훨씬 더 잘하는 사람들 어디 없겠습니까?”
“은퇴한 사람들, 외국에 있는 사람들도 다 뒤져서 이런거 제일 잘 하는 사람 데려 와 보라고 해요.”

대통령은 안달이 났다. 빨리 훈련을 완성해야 했다. 이 이상한 훈련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핑계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다. 엉뚱한 추측으로 헛소문이 나기도 했다.

장관, 차관들이 한 쪽에서 여러 곳에 전화를 하고, 또 따로 대통령의 비서들도 거기에 전화를 하면서, 이틀 밤낮을 들볶아 댄 끝에, 사람들은 수십년 동안 은퇴해 있던 한국 매스 게임 훈련의 가장 위대한 고수를 찾아 냈다.

“대통령께서 직접 이렇게 다시 찾아 주시니,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그 고수는 이미 거동도 힘든 노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을 만나자 매우 감동했다.

“뭐 하던 양반이래?”

소장이 물었다. 소장은 바오스를 만나는 행사에서 자기는 점점 눈길을 못 받고, 이 노인 고수에게 관심이 많이 가는 것이 싫었다. 소장의 부하 하나가 대답해 주었다.

“옛날에 70년대에 학생들 운동장에 줄 세우고 뛰어다니게 해서, 대통령 얼굴 모양으로 줄 세우고  했었잖아? 그때 말 안 듣는 꼬마 애들도 기막히게 잘 훈련시키는 걸로 제일 유명했던 사람이야.”

고수 노인의 훈련 방식은 확실히 더 쉽고 더 체계적이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는 하늘에서 내려올 바오스에게 인사를 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정말 바오스가 친근하게 느낄만큼 깔끔한 수준은 못 되어 보였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는 말로 따지면 인사말을 하기는 했는데, 아주 짜증내는 목소리나 화내는 목소리로 들린다든가 할 수도 있는 거니까. 이거 보다는 조금 더 잘해야 할 건데.”

소장은 고수 노인이 미워서 그런 말을 많이 하고 다녔다. 사실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고수 노인의 훈련 이상으로 잘 해내기는 어려워 보였다.

“안돼. 안돼. 이걸로는 부족해. 더 잘해내야 돼.”

소장은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통령은 불안해 하며 소장을 쳐다 보았다. 소장은 기분이 좋았다.

결국 한 정보국 요원이 탈북자 출신으로 이북에서 매스 게임 훈련을 시키던 사람을 찾아 냈다. 그는 그의 제자가 연출한 매스 게임에서 딱 한 사람의 실수로 매스 게임에 나온 지도자의 얼굴이 못생기게 변해 버렸다는 죄를 받았다. 너무 많이 못생기게 변했기 때문에 처벌이 클 것 같아서, 그는 그의 제자와 같이 달아 났고, 이 나라 저 나라로 도망 다니다가 대한민국에까지 온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대한민국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고민했다고 했다. 그러나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에서 단체 체조를 좋아 하는 것을 알아서, 그런 곳에 가르침을 주는 것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 차원 높은 단계의 단체 체조를 위해서는 참가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로 그 체조로 좋은 것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먼저 심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정신의 뿌리에 우리가 원하는 마음을 먼저 깊이 심어 놓는 것이야말로 바로 새로운 경지로 완벽한 단체 체조를 하게 만드는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생각은 맞았다. 정부는 바오스가 서울에 찾아 오고, 바오스와 대화하기 위해서 백만 명의 시민이 신호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은 흥분했고, 그는 그 흥분을 단체 체조에 대한 열정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성공적으로 바오스에게 인삿말을 건네기 위한 동작을 훈련시켰다.

마침내 바오스가 서울 하늘에 나타난 날, 그 모습은 과연 어마어마 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서울에 찾아 와 그 모습을 가까이서 보려고 하는 바람에, 다같이 맞춰 움직여야 하는 서울 시민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관광객들을 막아내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바오스가 다가 오자, 구름과 안개가 눈이 내리는 것처럼 덩어리져서 땅으로 떨어졌고, 아주 가늘고 작은 번개가 온갖 건물, 가로등, 나무 등등 뾰족한 것 마다 떨어졌다. 꽤 강한 바람이 불어서 거리의 사람들은 온통 머리칼과 옷자락이 휘날렸다.

그리고 바오스가 나타났다. 서울 중심에 그림자가 졌고, 그 지역은 태양이 가리워져 마치 저녁처럼 어두워졌다. 시커먼 바오스의 밑바닥에는 붉고 푸른 빛을 내뿜는 작은 것들이 수백만 개가 있어서 그 불덩이 같은 것이 하늘을 뒤덮은 새 떼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서울 시민들은 연습했던 대로 일제히 움직였다. 수 없이 많은 자동차들 그 많은 건물과 창문 마다 켜져 있는 불빛들, 가로등과 신호등들이 정해 놓은 대로 박자를 맞춰 가며 움직였다. 건물에 들어 가고 나오는 사람들, 달리 거나 걷는 사람들, 눕거나 앉아야 하는 사람들도 같이 움직였다. 대통령과 소장도 각자 한 사람 역할을 하면서 같이 움직였다. 백만명이 움직이는 그 모습을 보고, 고수 노인은 “평생에 이런 경지를 볼 수 있을 지는 몰랐다”고 감격의 눈물도 흘렸다.

이렇게 해서, 백만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하늘에 나타난 외계인에게 전하는 인삿말이 전해 졌다.

“안녕하세요?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 합니다. 한국 음식에 대해 아시나요?”

다행히 바오스는 그 뜻을 자연스럽게 알아 들은 것 같았다. 바오스는 뭐라고 대답을 하고, 다시 천천히 하늘로 날아 올라 또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우주의 다른 편을 향해 날아 갔다.

“바오스가 뭐라고 대답한거야?”
“이거 약간 곤란한데요.”

소장의 질문에 부하는 난감해 했다. 부하의 대답을 같이 들은 대통령 역시 난감해 했다. 그렇지만, 소장은 괜찮아 보였다.

“뭐 별로 문제될 것도 없네.”

그런 이유로, 바오스가 오고 간 결과에 대해서는 소장이 발표를 하게 되었고,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바오스는 아주 오랜 옛날 부터 우주 곳곳을 여행하던 생물 입니다. 몇 억 년도 넘는 긴긴 시간을 살면서, 우리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먼먼 곳의 전혀 다른 온갖 세상을 보며 돌아 다녔고,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또 바오스의 뇌는 용량도 아주 클 것입니다. 이번에 서울에서 바오스와 의사 소통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백만명 정도였습니다만, 그런데 바오스에서는 심어 놓은 나무처럼 생긴 것은, 그 숫자가 2조 이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바오스가 우리 인간의 수준 보다 까마득히 높은 꿈도 꾸기 어려운 지혜를 갖고 있고, 만약 우리가 그 지혜의 일부라도 얻게 된다면 온 인류가 어마어마한 깨달음을 얻을 거라고 짐작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이 열성적으로 이번 훈련에 참석하신 중에는 아마 그런 생각을 하신 분도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종교 단체에서는 바오스가 하늘에 나타나는 것이야 말로, 오랜 옛날 예언 되었던 모두 섬겨야 할 위대한 자가 세상에 내려 오는 재림의 순간이 실현되는 거라고 부산을 떨기도 했습니다.

바오스가 우리에게 보인 반응을 분석해 본 결과, 바오스 스스로도 이런 인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는 성향이 측정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소장이 말 하는 것을 보고, 역시 소장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 했다. 대통령이 받은 자료에는 외계인은 우리가 말한 것을 듣고 “너무 멍청하네.”라고 말하고 다시 떠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걸 저렇게 꾸며서 말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 2015년, 광화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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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No Profile
    Megabrand 15.10.09 08:51 댓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그간 단편에 나왔던 정부중에 가장 암걸릴것 같은 정부였습니다....으으....관료주의...

  • Megabrand님께
    No Profile
    곽재식 15.10.10 20:17 댓글

    잘 봐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쓰다보니 이런 식으로 정부 사람들이 어리광부리는 이야기도 이제는 제 이야기 속에서 약간 유형화된 것 같아서 앞으로는 또 점점 더 바꿔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마침 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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