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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립 머니게임

2015.09.30 23:0809.30

보스가 커다란 입으로 삼키려고 달려든다. 보스는 현실 세계의 돈으로 5만 원어치였다. 전사 제우스는 옆으로 물러서서 검으로 보스의 목을 내리쳤다. 비틀거리는 보스를 여자 궁수 애프터가 불화살로 쐈다. 보스는 던전이 쩌렁쩌렁 울리게 고함쳤다. 거대한 몸이 앞으로 엎어졌다. 제우스가 다가가 보스의 몸을 더블 클릭했다. 제우스의 파티 일원들이 다가와 제우스가 아이템을 분배해주길 기다렸다. 

- 자자. 모두들 수고했어. 노력한 만큼...
- 대장. 나 특수 화살 다 썼어. 내가 피니쉬 먹였잖아. 알지?

애프터가 채팅창에 제우스의 말이 다 차기도 전에 자신의 말을 올렸다. 실제 대화처럼 제우스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리얼리티를 지향한 게임 특성 때문에 제우스는 화가 났다. 

- 내가 언제 분배할 때 그런 거 신경 안 쓴 적 있어? 내 평판 몰라? 너도 은행 벽보에서 내 평판 읽고 날 찾아 온 것이잖아! 각자 사정에 맞게 공평하게 분배 할 테니까 나대지마!

애프터는 고개를 돌리고 무시하는 행동을 취했다. 원래 도발행동 메뉴지만 게이머들은 다양한 때에 사용했다. 제우스는 애프터 따위의 저렙은 순식간에 목을 따버릴 수 있었지만 게임내의 평판을 위해서 참았다.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린 게임은 현실세계에서처럼 돈이 가장 중요했다. 거칠게 나갔지만, 애프터의 욕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게임 내의 돈을 게임 회사의 모회사인 은행과의 환전을 통해 현실의 돈으로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환율이 낮아져 게임내의 돈을 아무리 모아봤자 이득이 남지 않았다. 이득을 취할 전통적인 방법은 레어 아이템 획득이었다.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서 현찰로 바꾸든 게임 내에서 팔든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때마침 레어 아이템들이 귀해져 아이템의 가치는 게임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높게 올라가고 있었다. 아이템 분배 때 신경전은 늘 있는 일이었다. 
제우스는 파티원들에게 아이템을 나눠주고 자신은 파티 지휘비로 조금 더 챙겼다. 애프터는 파티를 해산하는 순간까지 파티 지휘비에 대해 투덜댔지만 제우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저렙은 파티를 맺고 끊을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고렙의 책임감과 신중함을 이해 못했다. 

"네까짓게 뭘 알아. 너같이 이상한 놈 받아들이면 내가 그 놈까지 책임져야 한다 말이야."

정호는 로그아웃 하기 전 은행 벽보에 들려 파티 기능을 가진 고렙들만이 볼 수 있는 게시판에 애프터에 대한 험담을 썼다. 이 게임은 다른 게임과 달리 평판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운영진은 실제 사회에서 인맥이나 평판이 중요시 되는 것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제우스가 애프터 따위의 저렙을 그 자리에서 억누르지 않은 이유도 평판 때문이었다. 좋게 헤어져야 좋은 인상이 남았다. 안 좋은 소문이 지속적으로 나면 운영 GM들이 캐릭터의 카리스마를 깎았다. 카리스마가 낮으면 파티에 끼지 못하고 최악의 경우 몬스터와 같은 혐오 등급으로 떨어져 죽여도 pk가 성립되지 않았다. 
제우스는 인근 상점으로 가 보스에게서 얻은 모든 아이템들을 팔고 로그아웃 했다. 정호는 당장에 게임 사이트와 링크된 은행 사이트로 들어가 게임내의 돈을 현실 세계의 돈과 맞바꾸었다. 환율이 낮아서인지 40만원밖에 안됐다. 예전 같으면 6~70만원은 됐을 것이다. 정호는 핸드폰 요금 고지서를 들고 간만에 고시원 밖으로 나섰다. 
정호가 묶고 있는 고시원은 한 달에 50만원 받는 곳으로 에어컨과 냉장고,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정호의 고시원은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투숙이 목적인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대부분 게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공부가 목적인 곳에서 정호처럼 장시간 게임을 하면 옆방에서 마우스와 키보드 소리 때문에 당장 불만 접수가 들어왔다. 정호는 게임으로 번 돈으로 핸드폰 요금을 내려 은행에 들어갔다. 고시원과 은행이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늘 앉아서 생활하는 정호는 지쳐서 은행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쉬었다가 핸드폰 요금을 내고 은행을 나왔다.
정호는 은행의 커다란 유리창으로 자신의 꾀죄죄한 옷차림과 기름진 머리를 봤다. 마음속으로 꾸미지 않은 못난 자신을 탓했다. 하지만 탓해봐야 소용없는 게 정호는 좋은 옷을 입고 싶어도 옷이 없었다. 돈이 문제였다. 취업공부를 위해 서울로 상경해 집에서 보내주는 돈에 의지했다. 그 돈으로 게임을 허락하는 비싼 고시원에 머무르며, 오로지 게임에만 투자했다. 양심상 취업 준비 문제집과 참고서는 샀지만 보지 않았다.
게임에서 돈을 벌어도 다시 게임에 투자했기 때문에, 수중에 돈은 남아 남지 않았다. 고시원의 질 낮은 식사 때문에 영양 부족 상태였다. 게다가 취업 제한이 코앞인 나이였다. 그래도 정호는 생활 패턴을 바꾸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호가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 바보는 아니었다.


- 그러니까 말이야.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세상에서 살아야 돼. 너는 뭐하는 애니?
- 저는 휴학했고요. 지금은 아웃소싱으로 공장 들어가서 등록금 벌고 있어요.
- 그래? 형도 말이야. 대학 나왔지만 대학 나온다고 취직 될 것 같아? 어림없어.

제우스는 마을을 어슬렁대다가 지나가는 저렙 캐릭터를 잡아 대화를 나누었다.

- 너 어느 대 다녀? 형은 말이야. 인 서울 괜찮은 곳 나왔는데도 취직 못 했지만 전혀 걱정 안 해.

제우스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이 품고 있는 이상에 대해 말했다.

- 지금 경제난이 풀릴 것 같아?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이 될 거야. 취업은 더욱 힘들어지고 예전에는 보통 삶이었던 것이 지금은 이루기가 힘들어 질 거야. 가장 간단한 예가 결혼이야. 돈이 있어야 결혼을 하지. 경제난이 힘들어지면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거나 홀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 날거야. 그러면 싱글들은 생각할거야. 난 참 못났으니까 결혼을 못하구나. 천만의 말씀이야. 결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면 되지.
- 거기가 어딘데요? 
- 바로 여기게임. 여기게임에서는 얼마든지 결혼 가능하잖아.
- 여기서 하는 건 실제가 아니잖아요.
-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문제야. 좆나 빡빡하게 살기 힘든 현실에서 결혼도 못하고 쓸쓸히 살래? 아니면 널 인정해 주는 세상에서 잘 살래?

저렙 캐릭터는 채팅창에 금방 말을 올리지 못했다. 정호는 인정해 주는 세상 앞에 가상이라는 단어를 뺐다. 자신의 이론이 아직은 누군가를 설득하기에 급진적이라 생각했다. 저렙 캐릭터는 제우스가 예상한 지적을 했다.

- 영화 매트릭스처럼 게임의 밥이 진짜 밥은 아니잖아요. 게임에서 결혼한 상대와 손을 마주잡고 영화를 보고 서로와 눈을 마주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 그래 네 말이 맞다. 형이 좋은 사냥터 가르쳐 줄게. 저쪽으로 가면...

저렙 캐릭터는 고맙다며 허리 숙이는 동작을 취하고 제우스가 가르쳐 준 곳으로 향했다. 저렙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게임의 밥은 실제 밥이 아니고 여 캐릭터가 진짜 여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억한 심정으로 가장 위험한 사냥터로 안내했다.
하지만 밥과 여자가 충족 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바로 이 게임만의 특이한 시스템이 있었다. 게임의 돈을 현실의 돈으로 환전 시킬 수 있었다.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 의하면 직업은 자신의 자아발전을 위한 일을 택해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 아무리 굽히며, 일해 봤자 여기서 받는 대접의 절반도 못 받았다. 방금 전 저렙도 전혀 알지 못했는데도 제우스가 부르자 군말 없이 다가와 반말하는 것을 받아주었다. 어쩌면 정호보다 나이가 많을지 몰랐다. 하지만 고렙 제우스로 대해줬다. 비록 소득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예전과 다르더라도 이곳은 돈을 벌 수 있는 일터이며 정호의 자아가 존중 받는 곳이었다. 여기서 먹는 밥은 진짜 밥이 아니고 여자도 진짜가 아니더라도 게임으로 버는 돈으로 밥을 사먹을 수도 있고 성매매도 할 수 있었다. 
방금 전의 설명처럼 경제가 계속 어려워지고 결혼이 힘들어지면 자신처럼 소득 내에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차도 없고, 결혼도 못하고 자기 집도 없지만 불행하지는 않는 사람들. 일본에 알바만으로 살아간다는 프리타들을 본적이 없지만 이와 비슷할 거라 짐작했다. 정호는 자신이 선택이 빠를 뿐 곧 사람들이 자신의 뒤를 따를 것이라 여겼다. 
핸드폰이 진동하며 문자가 왔다고 신호했다. 문자는 대학 동기였다. 기억도 나지 않는 누군가가 결혼했다고 결혼식에 오라는 문자였다.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결혼하고 취직 할수록 정호는 불안했다.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남과 비교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제우스는 이 불안함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 커다란 도시로 이동했다. 도시 내 가장 번창한 주점으로 들어섰다. 제우스가 주점 내 들어서자 게임 캐릭터들의 시선이 제우스에게로 향했다. 주인 NPC는 상대하고 있던 저렙 유저를 내버려 두고 제우스에게로 뛰어왔다. 저렙 유저는 화가 난 동작을 취했지만 제우스를 알아보고 잠잠해졌다. 제우스가 주인에게 돈을 찔러주며 최근 소문을 묻자 주인은 최근 업데이트 때 던전이 하나 추가됐는데 엄청난 보물이 있다고 말했다. 
제우스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던전 하나 싹 털어봤자 현실의 돈으로 따지면 대략 2~300만 원 정도 될 거고 환율이 떨어졌으니 절반 정도로 예상하면 됐다. 게다가 끌고 갈 파티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엔 분의 일로 나누니 더 떨어질 것이다. 정호가 찾는 방법은 아니었다. 

- 어두운 전설의 탑 기억하세요? 우라 길드장이 그거 털고 아파트 한 채 세웠다 잖아요. 대충 그 정도 규모라던데.

처음 보는 전사가 주인과 제우스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제우스가 전사를 훑어보니 대충 중렙은 돼 보이고 귓속말 스킬로 대화를 엿들은 것 같았다.

- 그렇게 대단한 던전이면 벌써 털리지 않았나? 

제우스의 반말에도 전사는 싹싹한 태도로 대답했다.

- 업데이트 발표 때 일부러 알리지 않은 숨겨놓은 던전이래요. 개골 무덤 아시죠? 그 곳 같이요. 발견되지 아직 이틀밖에 되지 않았어요. 
- 게임 상으로 이틀?
- 예. 몇몇 파티가 도전했다는데 아직 정복됐다는 공지가 안 뜬 거 보니 실패했을 걸요. 돌아온 마법사에게서 물으니 던전 일층에 있는 아이템만 팔아도 중형차 한대는 살 거래요.

게임 상으로 이틀이면 여덟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제우스의 탐색 스킬이 전사 유저가 자신을 염탐하는 것을 알렸다. 아마도 능력치와 평판을 알기 위해서 일 것이었다. 정호는 제우스에게 자부심을 느꼈기에 전사 유저의 얄팍한 염탐을 못 본 척 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숨겨놓은 던전에 관한 소문이 사실일까? 라는 것이었다. 정호는 핸드폰이 부르르 떨자 건성으로 집어 귀에 갖다 댔다.

"누구세요?"
"엄마야. 너 어딨어?"
"나 지금 도서관에 있어. 공부 중이야. 끊어."
"너 효화 기업 공채 공모 났다는 소리 들었어? 원서 넣었어?"
"알았어. 알아보고 넣을게 공부 중이라니까."
"저번에는 이 시간에 걸었더니 학원에 있는다매?"
"아이씨. 학원 저녁시간으로 바꾸었어. 낮에는 도서관이야. 끊어."

전사 유저는 예상대로 자신을 파티에 끼어달라고 애교 부렸다. 정호는 당장에 대답하지 않고, 일부러 대답을 끌었다. 자신에게 아쉬워하는 상황을 좀 더 즐기고 싶었다. 멀리서 드워프 캐릭터가 여러 유저들을 모으고 소곤소곤 거리고 있었다. 

- 숨겨진 던전 얘기 들었지? 내가 레인저와 엘프들 하고 가봤는데 말이야. 엄청 빡세. 하지만 알잖아. 게임 한두 번 해봐 빡셀수록 쩐들이 많다는 거 다 알지? 

제우스는 귓속말 스킬을 켰다. 저 드워프 유저는 한때 제우스의 파티 일원이었다. 저속어를 하도 많이 써서 GM을 소환시킬 만큼 속물에다가 저질이었지만,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고 돈 문제에 관해서는 절대 허튼소리 하지 않았다. 
던전에 관한 소문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았다. 드워프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컴퓨터가 꺼졌다. 고시원 방의 전구도 꺼졌다. 누군가가 고시원 차단기를 내린 것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통화할 때 게임소리 다 들렸어."

단정 짓는 목소리와 함께 엄마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정호는 빨리 참고서를 잡고 공부하려는 시늉을 하려 했지만 참고서를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허둥대는 사이, 등 뒤에서 고시원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호씨. 내가 그러게 게임 좀 줄이라니까.."

주인의 진술에 현장을 잡은 엄마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당장 짐 싸! 집으로 내려가자!"


정호는 엄마와 한판 대차게 싸운 후 방안에서 홀로 술을 마셨다. 당장 내려가자 라는 말에 욱하며 동의했더니 고시원 주인이 이번 달 방세는 환불이 안 된다고 말하기에 이번 달까지만 있기로 결정했다. 아마 고시원 주인 경험상 이런 일은 흔해서 월말까지 버티면 엄마가 잊어버리거나 정호가 정신 차릴 거라서 환불 불가라 말한 것 같았다. 
정호는 포장마차에 가서 홀로 술을 마실 수도 있지만, 그런데서 술을 먹어본지가 오래 됐고, 어색했다. 고시원 앞 할인마트에 가서 소주와 육포를 사다 먹었다. 정호는 고시원에서 질긴 냉동 육포를 뜨는 상황이 구질구질하다 여겼다. 그런데 앞으로 올 미래는 더 구질구질했다.
고향으로 내려가면 방앗간 일을 돕게 될 것이다. 대학까지 나왔는데, 방앗간에서 쌀 포대 나르고 정미기계 돌리라니...정호가 보기에 이보다 심한 인재 낭비는 없어 보였다. 집 PC는 성능이 낮아서, 게임을 할 수 없었다. 업그레이드 하라고 돈을 대줄 것 같지 않았다.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아 PC방까지 버스타고 30분을 가야했다. 시골 PC방 성능은 집 PC와 큰 차이 없었다. 띠리링. 어디선가 게임 음악이 울렸다. 
정호는 자신도 모르게 PC를 바라봤다. 꺼져 있는 스피커에서 난 소리가 아니라, 정호 머릿속에서 울린 환청이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은 자신도 모르게 게임으로 향하고 있었다. 엄청난 던전이 발견됐다는데 지금 유저들은 어쩌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엄마가 도착하기 전 채팅한 내용이 떠올랐다. 

'고대 어두운 전설의 탑 기억하세요? 우라 길드장이 그거 털고 아파트 한채 세웠다잖아요. 대충 그 정도 규모라던데.'

정호는 바보가 아니었다. 평소에도 미래에 대한 고민을 했고 방법을 찾아 나섰다. 게임 속 주점에서 방법을 찾은 순간 위기(?)를 맞이한 탓에 잊어버린 것이었다. 
던전을 털어 번 돈으로 독립 하자! 
독립할 만큼 액수가 나오면 이번에는 정호가 동기들에게 문자를 돌릴 차례였다. 만약 던전에서 독립할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방앗간에서 시골 촌사람들에게 아저씨나 삼촌이라 불려야 했다. 정호는 서둘러 PC를 켰다. 

제우스는 주점, 용병 길드, 만남의 광장등 유저들이 모이는 곳에서 닥치는 대로 파티 원을 모집했다. 제우스의 명성과 평판 수치를 보고 많은 유저들이 몰려들었다. 제우스는 문제를 냈다. 쉬운 사냥터인 노루의 숲을 클리어 한 후 모든 전리품을 챙겨 오는 것이었다. 노루의 숲을 혼자 클리어 할 실력이면 파티 원으로 받아들일 만한 실력이었다. 제우스는 노루의 숲 총 전리품 액수와 아이템을 알기에 거짓으로 답하는 유저들을 탈락시켰다. 
다음은 심층 인터뷰였다. 자신처럼 언제든 장기간 접속할 수 있고 돈이 궁한 유저를 찾아야 했다. 수십 명을 거쳐 총 네 명의 유저를 뽑았다. 엘프 남자 궁수, 빠른 남자는 직업은 백수로 나이는 밝히지 않았다. 인간 여자 마법사 지영사랑은 학생이라 했지만 대학생 같지는 않고 전문학원생 같았다. 나이는 23세라고 했다. 드워프 남자 전사는 곤잘레스로 사업 구상 중이며 채팅을 통한 나이는 많게 느껴졌다. 본인이 확실히 밝히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정호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해 이 파티의 중요성을 같이 논의한 상대였다. 연륜이 느껴지는 채팅에 정호는 자신도 모르게 캐릭터 제우스는 겉으로는 강하고 멀쩡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마지막은 힐링을 걸어 유저들을 치료할 인간 성직자 제베베로 나이는 19세인데 학교는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재수생이냐고 물었더니 학교 안 다닌지 3년 됐다고 했다. 거부감에 탈락시키려 했지만 동거녀가 임신 중이어서 돈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채팅에 합류 시켰다. 
현실 시간으로 이틀이나 걸렸지만 던전이 함락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단지 엄청 어렵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정호는 던전으로 쳐들어가기 전 고시원 공동 식당으로 가 식빵에 잼을 발라 방으로 향했다. 오늘 하루 종일 이게 유일한 식사가 될 것이었다. 제우스는 던전 위치가 적힌 주소를 예전에 파티였던 드워프에게서 샀다. 
파티는 출발한 지 한 시간이나 걸려 던전 입구 근처 폐광촌에 도달했다. 가는 도중 빠른 남자는 성직자가 아닌데도 약초를 뜯으며 포션 대신 쓰자며 궁상을 피웠다. 지영사랑은 이동경로를 이탈한 후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돌아와 진행 상황을 물었다. 몇 번 경고를 주어도 건성으로 대답했다. 제베베는 클럽뮤직이니 홍대니 강남이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늘어놓으면 자신이 잘 논다는 것을 최대한 어필했지만 파티에게는 무의미했다. 
오로지 믿을만한 곤잘레스만이 제우스 편을 들어 파티를 지휘하도록 옆에서 거들어줬다. 파티가 폐광촌에 들어서자 몬스터들이 그림자와 폐광 속에서 기분 나쁜 효과음과 함께 나타났다. 제우스는 어느 정도 레벨인지 가늠하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그게 최초이자 최후의 공격이었다. 제우스와 파티는 1분을 넘기기도 전에 전부 전멸 당했다.

인근 작은 마을의 부활 터에서 깨어난 파티는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논의를 했지만 이유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제우스뿐이었다. 

"씨발. 매직템이나 특수템 아니면 데미지가 안 먹히잖아."

정호는 누가 듣는 것처럼 혼잣말로 중얼댔다. 폐광촌 몬스터들은 특수 몬스터로 마법이나 특수 무기가 아닌 이상 때릴 수 없었고 파티가 공격을 방어할 수도 없었다.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간단했다. 돈을 주고 레어 아이템을 사면 됐다. 

- 내가 보기에는 매직 무기가 아닌 이상 공격이 먹힐지 않을 것 같네만.

곤잘레스의 말에 파티의 채팅이 멈췄다. 정호는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심호흡을 하고 타이핑했다. 

- 매직이나 특수 계열 무기, 방어구가 필요해. 모두들 장비 맞출 수 있겠어?

빠른 부정의 채팅과 캐릭터 몸짓이 모니터에 떴다. 이럴 때 흔히 쓰는 방법이 있었다. 파티 대장이 아이템을 사서 주고 나중에 전리품 분배 때 차감하면 됐다. 하지만 저번에 보스 전을 마치고 아이템과 게임 돈들을 전부 환전시켜서 핸드폰 요금과 인터넷 서비스를 결제했더니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남은 돈도 지도를 살 때 드워프에게 전부 주었다. 엄마가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돈도 게임한 것이 발각되어 받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만난 몬스터들의 아이템과 돈들을 모두 모아도 매직 무기 하나 가격도 안 될 것이었다. 

"아 새끼들. 진짜...."

정호는 다음 수순으로 자신이 무슨 말을 할지 알았기에 괜히 파티 욕을 했다.

- 대장인 내가 무기와 방어구를 사줄게. 대신 나중에 전리품 분배 때 차감한다?
- 찬성. 대장 미안하네.

곤잘레스가 운을 떼자 파티 원들도 차례로 고맙다고 타이핑했다. 지영사랑이 가장 늦게 말을 꺼냈다. 정호는 지영사랑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았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돈에 더 민감하여 이런 문제에 예민하거나 머릿속 계산기를 더 두드렸다. 지영사랑에 대한 불쾌한 감정과 앞으로 할 행동 때문에 정호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이래서 파티에 여자끼면 안 되는데...씨발...아 거기 폰캐쉬론이죠?"

정호는 핸드폰 대출 업체에 연락해 200만원을 2분 이내로 대출 받았다. 잠시 alt + tab을 눌러 인터넷을 띄워 대출금으로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서 매직과 특수 계열 무기와 방어구를 샀다. 게임 돈으로 환전한 다음 살 수도 있지만 게임은 마을이나 도시마다 가격이 달라서 바가지 쓸 수도 있었다. 정호는 이 과정 중에 멀뚱히 서 있는 파티 원들을 보며 짧게 욕설을 중얼댔다.
파티 원들 모두 제우스가 뭐하는지 알기에 침묵하며 기다렸다. 빠른남자는 분위기를 돌리려 눈치 없이 농담을 했지만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지영사랑은 갑자기 왔다갔다 움직여 정호는 지영사랑이 파티를 이탈할까봐 불안했다. 제베베가 말했다.

- 매직이나 특수 계열은 항구 도시 쪽이 싸요.
- 대장이 지금 거기까지 가겠나? 우리 모두 한시가 급한 사람이지 않은가?
  
곤잘레스의 지적에 제베베는 클럽 음악의 엉터리 영어 발음을 채팅창에 올렸다. 노래하나 다 타이핑할 기세로 채팅창을 빼곡히 메워가던 중 제우스가 말했다.

- 조용히 하고. 모두 아이템 창 열어. 

모두 게임 한 짬이 있기에 어디서 갑자기 아이템이 나왔는지 알아 잠자코 따랐다. 곤잘레스가 말했다.

- 고마워. 대장. 이 신세는 반드시 갚지.

이번에도 곤잘레스가 먼저 말을 하자 파티 원들도 앵무새처럼 따라 고맙다고 했다. 정호는 입술을 삐죽였다.

"이것들은 곤잘레스 빼고 다 입이 없나?"                                    
                                                                       
- 대장은 돈 벌어서 어떻게 할 거예요?

빠른남자가 침묵 중인 제우스의 기분을 눈치 채고 분위기를 돌리려 말을 걸었다. 제우스의 말은 문자로 채팅에 올라갔지만 오르는 속도나 길이를 보면 퉁명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독립할거야.
- 그럼. 우리 동네 쪽으로 오면 되네. 2000만 원 정도면 오피스텔 세대 하나 전세로 계약할 수 있어요.
- 엥 무지 싸네? 그 동네 어디야?

곤잘레스가 물었다. 제우스도 기대도 안하고 건성으로 던진 말의 대답을 보고 놀랐다. 

- 여기 신개발 지구예요. 엄청 싸요. 왜냐하면 근방에 인프라 시설이 거의 없거든요. 전부 다 공사 중이거나 허허벌판이예요. 신개발 지구라서 아파트와 오피스텔은 엄청 지어났는데 사람들이 도시 인프라 시설이 없으니 잘 안 들어 와요. 심지어 역도 없어요. 대신 들어오면 건설사가 3개월까지는 모든 공과금 대신 내줘요.

2000만 원정도면 지금 정복하려는 던전이 아니더라도 중급 수준의 던전 여러 곳을 잠도 안 자고, 먹지 않고, 한 달 내내 꼬박 털면 벌 돈이었다. 단 그렇게까지 하면서 돈 벌 사연이 없어서 그동안 안했다. 이번에 2000만원 소식을 알고 월말까지의 시간제한이 없었다면 혼자서 마음 편하게 벌었을지도 몰랐다. 

- 우라 길드장이 우리가 정복하려 가는 정도의 던전 털고 아파트 한 채 세웠다는 소문 다들 아나? 

돈 얘기로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파티 원들이 곤잘레스의 말에 끄덕였다.
  
- 그 던전을 다 터니까 아이템, 게임머니 합쳐서 딱 1억 5천 나왔대. 전부 다 환전하려니까 운영진들이 10%로 더 붙여 줄 테니까 개월을 나누어 환전하라고 전화 걸어 사정했대.

정호는 곤잘레스의 말을 들으며 힘차게 타이핑했다.

- 자 돈 얘기는 가면서 할 수 있으니 빨리 가자!


폐광촌을 클리어하고 폐광촌 산맥에 숨겨진 던전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곳은 황금 왕 마이다스의 던전으로 총 3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던전 1층에 진입하자마자 던전 안내 메세지가 떴다. 파티는 메세지가 뜬 지 정확히 4시간 만에 1층을 클리어 했다. 모든 전리품과 돈을 모아서 현재 시세에 맞추어 대충 계산해 보니 750만원 정도였다. 던전 초급 레벨이 이렇게 전리품을 많이 주기는 경험 많은 제우스도 처음이었다. 파티 원들은 기쁨에 가득 차 제우스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체력과 MP를 보충하고 각자가 얻은 전리품들을 보고했다. 
대충 정리하고 올라가려 2층 입구에 다가갔지만 장소가 바뀌지 않았다. 정호가 버그 인줄 알고, GM을 소환하려는 찰나에 2층 입구에서 다른 파티가 나왔다.

- 우리가 들어가서 못 들어오시는 거예요. 오래 기다리셨나요?

정호는 다른 파티가 먼저 던전을 정복한 줄 알고 괴성을 지르며 키보드를 내리쳤다. 제우스는 침묵했다. 파티 원들은 정호처럼 추측했기에 너무 놀라 굳어졌다. 곤잘레스가 말했다.

- 댁들이 이 황금 왕 마이다스의 던전 정복한 거요?
- 아니요. 보스 전에서 포기했어요.

정호의 손가락이 충격에서 벗어나 바쁘게 움직였다.

- 보스전이 어떻길래? 
- 이 던전은 층에 다른 파티가 있으면 진입을 못해요. 혼자서도 못 들어오고요. 파티 퀘스트 용도 이예요. 그리고 무기들 더 좋은 걸로 바꾸세요. 지금 들고 있는 것들로는 어림도 없어요.
- 묻는 말은 그게 아니잖아. 보스가 어떠냐고? 

제우스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다른 파티는 텔레포트를 써서 사라졌다. 제우스는 파티 원들 앞에서 무시당한 것이 화가나 채팅창을 욕으로 도배했다. 곤잘레스가 욕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 대장. 지금 얻은 전리품으로 무기를 바꾸는 것이 어떨까?

정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750만원 나누기 5는 150만원, 일인당 150이면 무기와 방어구를 좋은 것으로 바꾸고도 어느 정도 남을 것이다. 200만원으로 아까 파티 원 네 명과 자신의 무기와 방어구 구입했다. 자신 몫을 빼고 파티 원 네 명에게 50만원씩 부담시켜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1층이 이 정도면 50만원을 금방 갚을 것이다. 걱정했던 핸드폰 대출 문제가 금방 해결 된 것 같아 정호는 마음을 놓았다.  

"어차피 난 8만 원짜리 칼만 샀어. 내가 애들만 아니었으면 게임 돈을 벌어서 샀겠지. 현금 주고 안 샀지. 대장이 이 정도 특혜는 있어야지."

제우스는 모든 전리품을 모아 인터넷으로 빠져나가 30분 걸려 모두 팔고 돈들을 파티 원들 계좌에 입금했다. 게임 회사와 연계된 은행 때문에 게임 아이디로 자동적으로 계좌가 개설돼 있었다. 파티 원들도 인터넷으로 빠져나가 각자 장비를 갖추고 오는데 30분 걸렸다. 정호는 파티 원들이 채팅창에 복귀를 알리자 바로 타이핑했다.

- 가자 2층으로!


2층에 들어서자마자 기둥에 붙어있던 괴물 거미가 침을 쏘았다. 제우스가 서둘러 방패를 들어 막았다. 

- 괴물 거미의 산성 침에 방패의 내구도가 5% 저하 됩니다.

정호는 던전의 메세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귀한 돈 주고 산 장비들을 지켜야 했다.

- 제베베, 얼른 보호막 주문을 써!

제우스가 제베베 앞으로 나서며 보호했다. 빠른남자와 지영사랑이 제베베의 주문 영창 시간을 벌어주려 앞으로 나섰다. 곤잘레스는 2층에 들어서자마자 상황을 파악하고는 멀리 떨어져 새총으로 무기를 바꾸었다. 2층을 공략하는 내내 제우스와 빠른남자가 제베베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으로 산성 공격을 막아야 했다. 지영사랑은 체력치가 낮아 방어보다 마법 공격으로 서둘러 산성 몬스터들을 해치웠다. 곤잘레스는 파티와 떨어져서 위력도 약한 새총으로 공격하며 다음 몬스터가 올 것을 예고했다. 파티는 3층 던전을 지키는 큰 거미가 나오자 이 거미가 2층의 마지막 몬스터라 짐작했다. 제베베가 말했다.

- MP가 떨어졌어요. 보호막 더는 유지 못해요. 

제우스는 말을 듣자마자 앞뒤 가리지 않고 큰 거미에게 달려들었다. 지영사랑, 빠른남자도 파티 대장을 따라 큰 거미에게로 육박했다. 큰 거미는 세 유저 사이에 끼어 위치를 이동하지 못했다. 제베베는 시간이 흘러 조금씩 MP가 차오르자 파티 원들 체력을 회복시키려 했다.

- 안 돼. 체력 회복보다 보호막을 써. 보호막 없이는 계속 데미지 입게 돼.

제우스의 외침에 제베베는 보호막을 펼쳤다. 지영사랑은 큰 거미 뒤에 바싹 붙어, 제우스와 빠른남자 앞으로 밀었다. 정호는 마우스 안에서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도록 클릭해댔다. 빠른남자는 궁수여서 멀리서 공격하는 게 더 데미지를 주었지만 그러면 큰 거미의 공격이 제우스로만 가기에 자신도 달라붙어 단검 공격을 했다. 큰 거미가 공격을 멈추고 크게 몸을 부풀어 올랐다가 줄이더니 폭발했다. 엄청난 산성 액이 사방에 튀어 파티의 모든 장비들이 녹는 메세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파티 원 중 멀쩡한 유저는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모든 장비가 산성 액에 맞아 녹아 버렸고, 캐릭터의 능력치도 깎여 나갔다. 
제우스의 경우에는 자신의 캐릭터를 항상 돋보이게 해주는 카리스마 수치가 깎여 나갔다. 지영사랑은 왔다갔다하며 자신의 속도를 재고 있었는데 분명히 민첩성이 낮아진 것 같았다.

- 제베베. 자네 도대체 레벨이 몇이길래. 보호막 하나 제대로 유지 못하나?

곤잘레스가 제베베에게 화를 냈다. 제베베는 저번처럼 클럽 뮤직으로 추정되는 노래 가사로 채팅창을 꽉 채울 뿐이었다. 빠른남자가 비웃어도 제베베는 타이핑 속도만 높여 채팅창을 더 채울 뿐 대꾸 하지 않았다. 제우스가 말했다. 

- 그만해. 제베베는 최선을 다했어. 

제우스가 보기에는 제베베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지금 파티 분위기가 감정적인 희생양을 찾고 있었다. 지영사랑이 말했다.

- 산성 몬스터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제베는 MP도 효율적으로 잘 분배해 썼어요.

원래 감정적인 희생양 찾기는 늘 여자들이 앞장을 썼고 어떤 논리 없이 막말 먼저 던졌다. 정호의 예상 밖의 행동이었다. 제우스는 파티 원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 우리 다시 장비 맞추어야 해. 일단 2층 전리품부터 챙기자. 

20분 걸려 2층 아이템과 게임 돈을 모았지만 얼마 되지 않았다. 제우스는 자신의 가방에 쌓인 2층 전리품들을 계산해보니 실제 돈으로 8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산성 몬스터들이 죽을 때 아이템과 돈을 녹여 버렸다. 

- 잘 들어. 모은 전리품으로 장비를 다시 맞추려 했는데 너무 부족해. 혹시 누구 돈 있는 사람 없나?

파티 원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파티와 거리를 두고 활동해서, 산성 데미지를 가장 적게 받고, 그나마 멀쩡한 곤잘레스가 말했다.

- 대장. 일단 전리품 분배하고 각자 알아서 해보라고 하지. 어린 애처럼 대장이 일일이 챙길게 뭐 있어. 대장만 힘들잖아.

이것은 정호가 그 동안 남의 파티원으로 졸졸 따라 다니며 배웠던 파티 대장 리더쉽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사정이 열악해서, 별 다른 수가 없었다. 30분간 걸려 파티 원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장비를 맞추었지만 많이 부족했다. 지영사랑이 말했다.

- 대장. 나 1층 남은 돈까지 다 털었는데 방어구를 맞출 수 없었어.
- 저는 엘프 기본 장비는 맞췄는데 다른 건 안돼요.

빠른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제베베가 말했다.

- 방어구와 MP증가 아이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뭘 하죠?

정호는 제베베의 말을 읽고 제베베가 아까 파티 원들의 질책을 마음에 두고 있다고 짐작했다. 제베베를 비롯한 모든 파티 원들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같은 핸드폰으로 두 번 대출 받을 수 없었다. 짜증이 솟구쳐 올라 감정 그대로 타이핑 했다.

- 젠장. 나도 돈이 없단 말이야. 나 아까 대출 받아서 너희에게 돌렸잖아. 이번에도 또 대출받아? 내가 돈 있으면 너희 끌고 여기로 오겠냐? 만약에 3층에 아무것도 없으면? 운 없으면 아파트 한 채가 아니라 초가집 한 채도 월세로 못 살 판이야.
- 내가 돈을 대지 대장.

정호는 내심 파티원 중 가장 믿고 있던 곤잘레스의 말에 너무 기뻐 감사의 말을 빠르게 타이핑했다. 엔터를 치기 전 곤잘레스가 말했다. 

- 대신 3층에서 얻는 모든 전리품의 일정 비율을 요구하네. 삼십 퍼센트야. 이 조건이 아니면 난 수락할 수 없네. 대장.

정호는 타이핑한 것을 모두 지웠다. 원래는 파티 대장이 파티에 돈을 대고 그만큼 최종 전리품 분배 때 가져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곤잘레스는 장비 금액이 아니라 비율을 요구했다. 1층에서 많이 건졌지만 2층은 산성 공격으로 그러지 못했다. 1층의 예를 볼 때, 3층은 기대해볼만 했다. 비율은 당연히 원래 장비 값보다 높을 것이다. 지금 이 요구를 수락하지 않으면 파티는 앞으로 전진 할 수 없었다. 
정호는 곤잘레스가 사업 구상 중인 사람이라는 걸 떠올렸다. 장사꾼. 2층 던전에서 파티 원들은 모두 몸으로 몬스터들을 막아냈지만 곤잘레스만이 거리를 두고, 싸우며 몸을 사렸다. 아까 제베베에게 처음 화를 냈던 사람도 곤잘레스 였다. 이제야 산성공격을 입은 다른 캐릭터에 비해 너무도 멀쩡한 곤잘레스의 외형이 눈에 들어왔다. 지영사랑이 반발했다.

- 아니죠. 어느 바닥이든 거기 기존 관행이 있잖아요. 그걸 무시하면 안돼죠. 비율이 아니라 장비 값으로 받아야 하죠. 
- 그럼 아가씨가 내던 가. 결정은 대장이 하는 거야.

곤잘레스가 지영사랑을 비꼬았다. 제우스가 말했다.

- 알았으니까. 곤잘레스. 돈이나 나누지. 

곤잘레스는 인터넷으로 빠져나가 정호의 계좌에 돈을 넣어줬다. 정호는 계좌의 돈을 확인하고 곤잘레스에게 따졌다.

- 이봐. 곤잘레스. 50만원으로 다섯 명의 장비를 무슨 수로 맞춰?
- 대장.님. 저는 돈을 대준다고는 했지만 얼마나 인지는 말 안했습니다. 50만원으로 딱 필요한 장비를 네 명이 하나씩만 사면됩니다. 저는 괜찮거든요.

제우스가 욕하기 전 제베베의 클럽음악 가사가 채팅창에 가득 찼다. 제우스는 제베베에게 화를 내려다가 클럽음악 가사들이, 곤잘레스의 핀잔을 끊는 것을 보고 내버려 뒀다. 곤잘레스는 몇 번이나 제베베에게 화를 내고 제우스를 가르치려 들었지만 제베베의 타이핑에 막혔다.
정호는 화를 내는 곤잘레스를 보며 자신의 화를 가라앉히고 채팅창을 초기화 시킨 다음 곤잘레스의 말대로 필요한 장비를 하나씩 고르라고 파티 원들에게 전했다. 파티 원들이 장비 이름을 말해주자 정호가 사서 제우스로 하여금 파티 원들에게 분배시켰다. 제베베에게 귓속말을 했다.

- 너만 두개야. MP와 보호구, 우리끼리 비밀이다. 

빠른남자가 제우스에게 귓속말을 했다.

- 저 인간 참 못 돼먹었네요. 

제우스는 성질 같아서는 파티를 깨버리고 싶었지만 파티 원들이 자신처럼 곤잘레스를 적대하는 분위기 때문에 참았다. 3층으로 올라가려 입구에 다가갔다. 입구에서 다른 파티가 내려왔다. 다른 파티의 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 착각하지 마세요. 아직 정복 안했어요. 아무도 정복 못 할 거지만..
- 3층에 뭐가 있는데? 보스는 어떤가?

제우스의 물음에 다른 파티 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웃는 이모티콘을 채팅창에 올렸다. 대장이 게임 돈 주머니를 제우스에게 건네줬다. 

- 필요할거요.

제우스가 열어보니, 게임 돈들이 들어 있었다. 많지는 않아도 이런 걸 덥석 주다니? 다른 파티 원들은 제우스를 지나 사라졌다. 곤잘레스가 말했다.

- 대장. 그건 3층 전리품에서 빼줄게. 파티 대장에게 부담을 줄 수 없지.

제우스는 곤잘레스의 말을 무시하고 외쳤다.

- 자. 뭐가 있는지 직접 확인하자!


3층에 올라온 지, 1시간 반 정도 흘렀지만 위협적인 몬스터는 등장하지 않았다. 문제는 전리품이었다. 돈과 아이템이 너무 조금 나왔다. 전리품 양에 파티 원들도 충격 받았다. 특히 곤잘레스는 동요가 심해 겉으로 들어났다. 이때부터 제우스의 전투 지시를 무시하며 단독행동 했다. 3층을 절반 정도 공략해도 전리품이 늘어날 기세를 안 보이자 빠른남자가 던전 구석구석을 뒤지며 동전 한 푼까지 집었다. 
곤잘레스가 빠른남자의 행동을 괜히 시비 걸며 화를 냈다. 제우스와 지영사랑이 빠른남자 편을 들어주었고 제베베는 클럽음악 타이핑을 시작했다. 곤잘레스는 자신이 미움 받는다는 것을 감지했다. 
이후 행동방식을 바꾸어 파티에 방해를 주기 시작했다. 일부러 몬스터를 유인해 파티를 공격하게 하고, 전투 중인 파티에게로 계속 몬스터를 몰았다. 제우스가 한두 차례 말을 걸었으나 곤잘레스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파티에게 거리를 두다가 몬스터가 죽을 때 아이템을 떨어뜨리면 주울 때만 근접했다. 파티는 몬스터의 아이템들이 하급이기에 곤잘레스를 내버려 두었다. 그렇다고 파티 원들이 그냥 당하는 호구들은 아니었다. 파티 원들은 곤잘레스가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넷 만의 팀워크를 쌓아갔다. 암묵적으로 곤잘레스는 파티의 권리를 박탈당했다. 
3층 끝까지 밀어붙여 거의 클리어 하기 직전에 도달했다. 곤잘레스가 파티 원들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 잠깐만! 모두 멈춰. 야 대장! 나 이런 식으로 못해. 여태까지 모은 전리품이 30만원은 되겠어?
- 야 대장이라니 내가 니 친구야?

제우스도 3층 던전의 전리품이 적어 우울했기에 화를 폭발시켰다.

- 댁만 돈이 적어 슬픈지 알아? 나도 미칠 지경이야. 이 던전에 모든 걸 걸었다고.
- 그래서? 내 돈 50만원은 어쩔 건데? 
- 너만 파티에게 돈 투자했어? 나도 처음에 대출 받아서 200만원 파티에게 뿌렸잖아. 
- 나 더는 못해. 최소한 내 50만원은 보장 받아야 할 거 아니야? 
- 비율로 받겠다는 사람은 당신이야! 잊었어?

지영사랑이 끼어들었다. 곤잘레스는 무시하는 몸짓을 보이고 말했다.

- 내가 아무리 말을 그렇게 했대도 투자를 하면 최소한 원금은 돌려받아야 하잖아? 어느 증권을 가도 원금은 보장해. 이거 파티 대장 능력 탓이야. 구성원이 이런 말을 해야 돼? 수입이 적으면 책임자 탓이지. 이거 소문나면 제우스 당신 어쩔래?

곤잘레스가 비열하게 명성을 걸고 넘어졌다. 제우스는 곤잘레스 따위는 당장에 죽일 수 있었지만, 명성이 문제였다. 비열함과 두뇌 회전을 볼 때 곤잘레스가 앙심을 품고 작정하고 소문내면 곤란했다. 평판이 조금 깎이는 게 두려운 게 아니었다. 정호는 제우스를 오점 하나 없는 캐릭터로 키우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지역을 다스릴 수 있는 영주가 될 수 있었다. 

- 알았어. 개자식아. 내가 니 빚 다 떠맡는다. 내가 처음 나눠준 돈 200만원 기억하지? 네가 부담할 몫은 50만원이거든? 그걸로 퉁치자. 
- 제우스 대.장.님. 말도 안 돼는 소리하지 마십쇼.
- 뭐가 말도 안 돼는 소리야. 파티 대장에게 장비 값 받았으면 되돌려 줘야지. 이거 법정에서 판결 난 적도 있잖아. 뉴스 못 봤어? 김두정씨?

정호는 자신의 계좌에 이체한 곤잘레스의 본명을 불렀다. 곤잘레스가 말했다.

- 씨발 나 안해. 파티에서 빼. 어린 새끼들하고 못해먹겠다.
- 파티가 너한테 빚진 돈은 없다. 여기 있는 모두가 증인이다. 꺼져.

제우스는 파티 메뉴로 들어가 곤잘레스를 뺐다. 곤잘레스가 반투명하게 변했다. 파티 퀘스트용 던전이어서 파티를 맺지 않은 개인은 행동이 제한돼, 채팅밖에 할 수 없었다. 

- 김두정씨. 혹시 주변에 헛소문 퍼뜨리고 다니면 내가 방금 캡쳐 한 장면들 신고 게시판에 올린다. 

곤잘레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제우스가 남아있는 파티를 이끌고 던전 안으로 전진했다. 곤잘레스가 기분 나쁘게 반투명한 모습으로 파티를 쫓아왔다. 파티가 아니면 던전에 들어올 수 없지만 중간에 해제되면 강제로 쫓겨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제우스와 파티가 갑작스레 솟아난 스켈레톤 무리와 맞서 싸우는 동안 곤잘레스는 아직은 미 발견 안개로 싸인 던전의 구석으로 사라졌다. 제베베가 턴언데드로 스켈레톤들을 쉽게 쓰러뜨렸다. 제우스가 제베베를 칭찬하고 던전의 구석으로 가려 했으나 빠른남자가 스켈레톤을 일일이 뒤져 전리품을 챙기는 바람에 늦어졌다. 
지영사랑이 독촉하자 빠른남자는 행동을 멈추고 이동했다. 미 발견 안개가 걷히자 커다란 항아리 세 개가 나타났다. 제우스 앞으로 곤잘레스가 항아리 뒤에서 쪼르르 다가왔다. 

- 대장님. 제가 아까는 너무 했던 것 같아요. 돈에 눈이 멀어 형제 같은 파티 원들에게 못할 짓을 했네요.
- 아는 사람이 왜 그랬어. 정 떨어졌으니 더는 말 걸지 마.
- 대장님. 넓게 생각해 보세요. 철없는 파티원이 잘못하면 파티대장이 감싸줘야 하지 않습니까?
- 누가 철없어? 당신 나이 많잖아!

곤잘레스는 방금 말에 자존심이 상한 듯 침묵했다. 제우스는 던전에 뜬금없이 놓인 커다란 항아리가 의심스러워 트랩체크 중인 지영사랑에게 다가갔다. 곤잘레스가 뒤를 따라 붙었다.

- 나이가 답니까? 온라인 게임에서는 짬이지 않습니까. 잘못했다니까요. 진짜 한번만 봐주세요. 대장님.

정호는 곤잘레스의 행동을 두고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자존심도 버리며 이리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영사랑이 마지막 항아리의 트랩을 체크했다. 곤잘레스가 다급하게 귓속말을 보냈다. 

- 저를 파티 원으로 다시 받아주면 제가 약간의 성의 표시를 할 수 있어요. 아까 그 계좌로 넣으면 되죠?

제우스는 곤잘레스의 귓속말을 잘랐다. 곤잘레스는 이익이 된다면 1 분 내로 화를 낼 수도 웃을 수도 있으며 없는 말도 지어낼 사람이다. 그런 곤잘레스가 이렇게 애걸복걸한다면? 지영사랑이 모든 항아리를 체크하고 말했다.

- 함정은 없어. 대장 연다.

지영사랑의 말이 끝나자마자 곤잘레스가 폰트를 키워 채팅창을 가득 채웠다.

- 야이 나쁜 새끼들아. 혼자만 잘 처먹어라!

지영사랑이 항아리에 손을 대자 항아리 3개가 동시에 터지며 엄청나게 많은 게임 돈들을 쏟아냈다. 웅장한 음악과 던전을 꽉 채우는 돈 때문에 pc에 랙이 생길 지경이었다. 정호는 PC안에서 냉각기가 부지런하게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빠른남자와 제베베가 채팅창 가득히 웃음을 채웠다. 항아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돈에 밀려간 지영사랑이 파티 곁으로 돌아와 기쁜 동작을 취했다. 
제우스는 왜 곤잘레스가 그토록 비굴하게 굴며 매달렸는지 이유를 알고 웃음의 이모티콘을 띄웠다. 곤잘레스가 채팅창을 욕설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파티는 그러거나 말거나 돈을 줍기 시작했다. 갑자기 NPC보따리상이 소환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보따리상은 정해진 메세지를 띄우며 아이템판매에 나섰지만 파티는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주은 돈을 제우스에게 모아주며 희희낙락했다. 곤잘레스가 말했다.

- 나 다 알고 있었어. 내가 속한 회원제 비밀 커뮤니티에 여기 던전 최종 보스 앞까지 공략이 올라와 있어. 나 니들이 파티에 잘랐을 때 인터넷으로 나가서 살펴봤어.

제우스는 곤잘레스를 무시하며 곤잘레스가 자신을 회유하려 한 얘기를 파티 원에게 들려주었다. 파티들은 야유하는 이모티콘을 채팅창에 띄웠다.

- 이렇게 돈을 많이 주우면 뭐해. 보스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초 레어 아이템으로 도배해야 한다고. 보스는 산성과 파이어, 아이스 데미지 다 줄 수 있고 지금 니네 무기로는 보스에게 털끝하나 상처 입힐 수 없어.

정호는 곤잘레스의 말을 무시하는 척 했지만 말에 일리가 있다 여겼다. 안 그러면 항아리에 돈이 가득 들어 있는 줄 미리 알 수 없었다. 파티 원들도 곤잘레스의 말을 의식하는 듯 했다. 제우스는 파티원들에게 던전을 샅샅이 살피며 모든 돈을 주우라고 지시했다. 파티원들은 제우스가 지시대로 모든 돈을 긁어 모았다. 
모은 총액은 게임 돈 쪽이 내려간 최근 환율을 적용해도 거의 3000만원이었다. 파티원들은 거액에 기분이 좋았지만 신중하게 보스 전을 위해 보따리상에게 다가갔다. 환율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다 환전하면 2배는 될 돈이었지만 보스 전을 위해 투자했다. 만약에 안 될 경우 구입한 레어 아이템을 팔아 다시 돈으로 만들면 될 것이었다. 
파티 4명 모두 최고의 레어 아이템으로 장비했다. 남은 돈은 대충 1000만 원정도 였다. 정호는 이 정도면 자신의 빚을 갚기에 충분했기에 이번에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보스 전 후 반드시 큰 한방이 있을 것이라 기대됐다. 지영사랑이 뭔가를 주어 제우스에게 가져왔다. 새총처럼 생긴 특이한 사출무기들이었다. 항아리가 게임 돈을 쏟아낼 때 같이 나온 것이었다. 정호는 장착해봤지만 무기로써 작동하지 않아 가방에 넣어뒀다. 제우스는 파티 원들을 모아 현재 남은 돈에 대해 말해주고 보스 전에 대비해 전술을 논의했다. 보따리상이 갑자기 포탈을 열었다. 

- 자. 용사님들. 이곳이 황금 왕 마이다스가 숨이 있는 곳 입니다. 

제우스가 말했다. 

- 자 가서 보스의 목을 베고 돈을 벌자!

파티가 사라진 후 곤잘레스는 3층 던전에 홀로 남았다. 곤잘레스는 자신이 본 공략이 맞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보따리상이 파티가 사라진 포탈로 따라 걸어갔다. 곤잘레스는 웃는 이모티콘을 띄웠다. 

보스의 방에 들어온 파티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왕의 옥좌 양 옆으로 커다란 기둥 두개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상자, 무덤, 항아리 같은 아이템을 담아두는 것들도 없었다. 전리품이 거의 없어 보여 정호의 실망은 엄청나게 컸다. 

"씨발. 보스 전에도 돈이 없으면, 던전을 대체 왜 만들어놔?!"

정호는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홀로 외쳤다. 연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화면이 흐릿해지더니 배가 불뚝 솟은 황금 왕 마이더스가 몸을 드러냈다. 그리스나 로마시대 토가를 온 몸에 두른 황금색 피부의 몬스터였다. 황금 동상 머리가 입을 크게 벌렸다.

- 어리석은 놈들. 부와 명예를 원하느냐? 그것들은 전부 내 뱃속 안에 있다.

정호는 만세를 외치고 파티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제우스와 지영사랑이 달려들고 빠른남자가 특수 데미지 활을 쐈다. 제베베는 파티에게 보호막을 쳤다. 마이다스는 굵직한 황금빛 팔을 휘둘렀다. 제우스는 피하려 했지만 팔에 맞아 데미지를 입었다. 정호는 급히 제우스를 살폈지만 산성이나 파이어, 아이스 데미지는 없었다. 단순 타격 데미지 만 입었다. 지영사랑이 마이다스의 발에 몇 번이나 걷어차였는데도 끄덕도 않고 달려들었다. 
제우스가 옆에서 보기에 특수 데미지를 입은 것 같지 않았다. 빠른남자의 활 공격에 마이다스는 신음 메세지를 띄우며 뒷걸음질 쳤다. 제우스는 뭔가 쉬운 것 같아 의심이 들면서도 거세게 달려들었다. 마이다스의 토가가 찢기면서 황금 피부가 벗겨져 나갔다. 제베베가 제우스 뒤로 바싹 붙어 속도 향상 주문을 걸었다. 지영사랑의 마법에 마이다스가 무릎을 꿇었다. 정호는 벌써 끝난 건가 하는 허무함에 마우스 클릭을 멈췄다. 

- 너희 부귀영화에 목숨 건 어리석은 모험가들. 내 저주를 받아라. 

마이다스의 메세지가 떠올랐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파티가 들어온 포탈로 보따리상이 따라 들어왔다. 

- 오 위대하신 마이다스의 왕이시여. 제가 이 어리석은 모험가들에게 물건을 팔아 최대한 돈을 뜯어냈습니다. 아무도 왕을 해할 수 없습니다.

보스 전에 대비한 상인 NPC가 아니라 보스전의 함정이었다. 그리고 공략을 봐서 알고 있는 곤잘레스도 거짓말로 보따리상을 도왔다. 

- 지금부터 마이다스는 무기나 마법으로 데미지를 입힐 수 없습니다. 오로지 돈으로만 공격이 가능하니 사출무기에 돈을 넣어 공격하셔야 합니다. 제한 시간은 10분이며 마이다스를 쓰러뜨리지 못할 경우 가지고 있는 돈은 전부 몰수되고 던전 밖으로 텔레포트 됩니다.            

제우스는 당장에 사출 무기를 꺼내 빠른남자와 지영에게 건넸다. 남은 게임 돈 1000만원어치를 세 등분하였다. 주저하는 파티에게 말했다. 

- 돈도 중요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제베베는 모두에게 속도 향상 주문을 걸었다. 파티원들은 사출무기로 빗발치듯 게임 돈을 날려 마이다스를 맞추었다. 얌전히 무릎 꿇은 채 맞던 마이더스가 일어서더니 빠르게 방안을 돌아다녔다. 발사된 돈들은 마이더스가 고함을 외치자 마이더스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빠른남자가 말했다.

- 돈이 바닥났어. 대장 우린 이길 수 없어. 지금 남은 것만이라도 챙기자.
- 말도 안 돼는 소리하지 마 겁쟁아. 떠나는 걸 결정하는 건 오직 대장뿐이야.

지영사랑의 대답을 무시하고 빠른남자는 포탈 쪽으로 도망쳤다.

- 내 남친이 마폭길드 행동 대장이야. 너 도망가면 끝까지 추격해서 아작 낸다!

지영사랑의 말에 빠른남자는 다시 공격 위치로 돌아왔다. 제우스도 돈이 떨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인감증명이라도 떼서 대부업체로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한테 문자가 와 있었다. 고시원 주인을 들들 볶아 환불 받았다고 당장 내려 올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빠른남자가 말했다.

- 대장 방법이 없잖아. 
- 그만 징징대. 대장은 여기까지 오느라 많은 희생을 했어. 이제 우리가 도울 차례야.

지영사랑의 말을 자르며 제베베가 말했다.

- 제 와이프 폰으로 50만원 대출 가능하대요. 빨리 게임 돈으로 환전 해 올게요. 대장 말이 옳아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어요. 
- 대장, 나도 소액 대출 받아서 바꿔 올게.

돈이 다 떨어진 제우스는 몸으로 부딪혀 마이더스를 구석으로 몰았다. 정호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이대로 캐릭터가 죽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신의 자아가 존중받는 세상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모두가 정호의 팬이며, 동료였다. 남은 시간이 1분밖에 없었다. 파티 원들이 환전을 마치고 돌아왔다. 

- 대장. 여기 총알가지고 왔어.

정호가 타이핑 했다.

- 그래. 너희가 최고다!  


마이다스는 아이템과 돈을 총 8000만원 어치를 토하고 죽었다. 정호는 처음 장비 부담금을 감하지 않고 공정하게 2000만원씩 나누었다. 파티 대장으로 얼마간의 보너스도 사양했다. 보스 전 마지막 1분은 천금을 주어도 맞바꿀 수 없었다. 2000만원으로 200만원의 대출금과 이자 10만원을 갚았다. 제우스 혼자 쉬운 던전을 몇 개 공략하면 오피스텔을 계약하는 게 가능할 것이었다. 독립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마이다스의 던전을 정복한 지 다음날, 운영진이 GM의 모습으로 제우스에게 찾아왔다. 

- 거 2000만원 다 환불 하시려는 생각 아니시죠? 그러면 저희가 운영하기가 곤란해요. 몇 개월씩 나눠서 하셨으면 하는데...
- 그러면 GM께서 얼마나 배려해줄 수 있으신가요?

우라 길드 때처럼 지시에 따르는 대신 몇 퍼센트 더 받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GM의 대답은 현실적이었다.

- 첫째, 200만 원 이상 환전은 전부 소득으로 신고 됩니다. 은행에서 세금을 부과할 것이고요. 둘째, 영주가 직접 던전 정복 세금을 받으러 올 거예요 마이다스의 던전은 영주령내 있잖아요. 셋째 갈퀴 길드가 제우스님을 노리고 있어요. 목돈을 쥐었으니 표적이 되는 건 당연하죠. 제가 해줄 수 있는 배려는 칼퀴 길드에게 주의를 주는 정도 이지만 세컨 캐릭으로 제우스님을 공격하면 별 수 없죠.
- 세금이요?
- 당연하죠. 이게 다 사업이니 우리도 걷어야 하죠. 게이머들이 착각하는 게 아무리 게임이 발달하고 진짜 같아도 게임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현실의 대안이 될 수 없어요. 무슨 소리인지 알만한 나이 아니예요? 
- 알아서 이번 던전에 목을 걸었죠. 목돈 좀 만들어 볼까.
- 우라 길드 때처럼 놔두면 저희가 운영하기에 곤란하죠. 

정호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마이더스의 던전으로 가는 동안 겪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배신과 신뢰, 믿음. 대장으로의 느낀 프라이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던 성취감.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모험. 그리고 꿈을 이루었다고...

- 관광지가면 정말 멋있고, 아름답잖아요. 거기서 공짜로 그걸 보고 좋은 추억 만드는 거 아니잖아요. 다 돈 내고 즐기지. 영원히 눌러 살 수도 없고 일상으로 돌아가야죠. 환전 개월이 길수록 세금이 줄어들도록 은행에 얘기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어떡하실래요?

세금을 내면 정호가 쥔 돈은 별로 되지 않았지만 계속 고시원에서 머무를 수 있었다. 하지만 운영이 이런 식으로라면 독립은 영영 이루기 힘들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고향에 내려가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지루하고 끔찍했다. 정호는 키보드와 핸드폰을 동시에 바라보며 망설이다가...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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