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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자 인류는 다시금 프론티어 정신에 불타올랐다.
  현재 인류의 주 관심사 두 가지는 전쟁으로 인해 급격히 줄어들어 버린 노동인력의 빠른 회복과, 전쟁직전에 발견되었고 전쟁 발발(勃發)과 함께 잠시 잊혀져야 했던 인류 거주 가능한 행성 두 개의 개발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통합정부가 사라진 지금, 새 행성들은 주인 없는 땅이었다. 누가 먼저, 그리고 더 많이 차지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램(Lamb).
  램은 행성 '이시스' 의 이주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램들은 셰퍼드(Shepherd)라 불리는 전문 길 안내인의 인도를 따라 트레일러 카를 타고 몇 달이고 빈 땅을 찾아 달린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의 강인해 보이는 남자. 머리카락을 단단히 틀어 올리고 미소 짓는 여자.
  낮에는 더운 태양 아래를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달리고 밤에는 트레일러들 사이로 모닥불들이 빛난다.
  …솔직히 내가 램에 대해 아는 것은 방송에서 본 이주민 모집광고가 다였다.

  "이시스로 가서 램의 개척여행 같은 거라도 취재해오면 어떨까?"

  국장이 이런 제안을 한 이유는 분명 지난 호 내 기사에 대한 좌천 조치였을 것이다. 햇병아리 주제에 엉뚱한 추측기사를 써서 잡지사를 발칵 뒤집어놓고 국장을 여기저기 불려 다니게 만들었으니. 문젯거리가 된 애숭이 기자를 좀 숨겨주자는 배려도 있긴 하겠지만.
  모든 일이 직접 겪어보면 생각만큼 멋지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는 있지만, 이번 국장의 제안은 꽤 매력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간사한 생물일까.
  나는 이시스에 도착하자마자 국장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충고도 해주지 않은 동료 기자들에게도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이곳은 너무 더웠고, 공기는 습했다. 공항에서 길로 나오자마자 옷은 젖은 걸레 꼴이 되었다. 교통편은 하나같이 시간이 엉망이었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연착에 연착을 거듭했다. 게다가 먼지는 또 왜 그리 많은지!
  겨우 이주민 등록센터에 도착했을 때, 취재 여행에 동행할 셰퍼드와 만나기로 했던 약속은 이미 만 24시간 가까이나 지나있었다. 그 셰퍼드에 대해 내가 알고있는 거라고는 'C.웨인'이라는 이름뿐이었다.
  사무실의 데스크에 비딱하게 앉은 남자는 도저히 사무 일을 맡은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덩치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인상이 차라리 건달에 가까웠다. 조심스럽게 묻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내 등 뒤의 문을 가리켰다.
  문으로 나가자 그곳은 주차장인 모양으로 트레일러 카가 몇 개 세워져 있었다. 적재함 문이 열린 트레일러 옆에 짐 꾸러미들이 몇 개 어수선하게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으로 걸어가자 차 안에서 누군가가 내다보았다.

  "저…, 미스터 웨인을 찾는데요."

  "미스터가 아니라 미스 웨인이야."

  적재함 내부는 지구에서 본 이주민 모집 광고에서와 같은 형식의 생활공간으로 개조되어있었다. 차이라면 내가 실제로 보고있는 쪽이 더 지저분하다는 점이었다.
  안에 서있던 인물이 밖으로 내려왔다. 그을린 피부에 색이 다 바래버린 금발을 가진 여자였다. 이 사람이 웨인? 여자일거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다. 게다가 나보다 키가 큰 여자일 거라고는!

  "아, 저는 Green dawn의 론 해밀턴 입니다. 연락은 받으셨죠? 여자 분이신 줄은 전혀 몰랐군요."

  그녀는 나에게서 곧 눈길을 돌리고는 다음 짐 꾸러미를 차에 실었다. 목소리마저도 빛이 바랜 듯한 여자였다.

  "늦었잖아. 분명 만나기로 한 날은 어제였을 텐데?"

  "이시스는 교통사정이 안 좋더군요. 계속 연착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녀는 나를 아랫사람 대하는 듯한 말투로 대했다. 내가 동안(童顔)인 탓도 있겠지만 이건 너무하다.
  웨인은 마지막 짐을 차 안으로 밀어 넣고는 차에 기대어 담배를 피워 물었다.

  "흐음. 기자라고. 그래, 램에 대해 뭘 알지?"

  그녀의 말투는 약간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유전자 조작을 받은 이주민을 가리키는 말이죠. 유전자 조작으로 단기간에 급속 번식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떼를 지어서 개발이 안된 땅으로 이동하여 정착을 하고, 어느 정도 인구가 늘어나면 한 무리가 또 이동을 한다지요."

  "…그게 다인가?"

  "…네."

  나는 램에 대해 좀더 자세한 지식을 조사해왔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저 정도 대답은 고등학생도 하겠다.

  "그럼 그 쪽은 이런 여행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잘 모르고 있나 보군."

  "위험하다고요?"

  웨인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따라올 생각 말라고. 안일한 생각으로 따라와서는 곤란해."

  "안일하다니요! 저는 나름대로 각오도 하고있고, 이번 여행이 힘들 거라는 것도 알아요. 당신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웨인은 담배를 땅에 던져 버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하는 태도로 트레일러 안으로 다시 올라갔다. 이렇게 당할 수야 없지. 나도 만만한 녀석은 아니라고!

  "미스 웨인. 당신은 지금 계약 내용을 파기하겠다고 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위약금은 물론이고, 고소까지 불사할 겁니다. 우리 잡지에도 이번 일에 대해 크게 때릴 거구요."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지금 협박하는 거야?"

  "아뇨. 진심입니다."

  웨인은 픽 웃었다. 그다지 기분 좋아 보이는 웃음은 아니었지만.

  "보기 보단 배짱이 있네. 좋아, 짐을 실으라고. 15분 후에 출발한다."

  "…15분 후라고요!"

  "늦은 건 네 잘못이잖아? 그런 것까지 내가 책임을 져 줘야 하나?"

  그녀는 무언가 잔뜩 기입된 서류를 꺼내어 들고는 사무실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맙소사. 이 여행은 최소 한 달에서 그 이상으로 걸린다. 지구에서 준비해온 것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는데.




  웨인은 트레일러 카를 이주민 등록 센터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빈터에 세웠다. 그곳에는 웨인과 내가 탄 트레일러 카와 같은 차들이 잔뜩 정차해 있었다. 웨인은 이곳에서 최종 서류를 넘겨야 한다고 일러주고는 허술하게 세워진 건물로 걸어갔다.
  트레일러 카에서 내리자 저 멀리로 초원이 끝도 없이 이어진 것이 보였다. 이곳이 램들과 셰퍼드가 만나 출발을 하는 곳인 모양이었다. 많은 차들이 달려 생겨난 길이 이곳에서 초원으로 길게 나있었다.
  먼지와 뜨거운 태양은 여전했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자신들의 새 거주지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소란함과 기대감이 이곳에 가득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웨인이 두 사람과 함께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웨인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따라온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쪽은 론 해밀턴. 기자라는 군요."

  "저는 이번에 웨인씨가 인솔하는 램들의 대표입니다. 챈들러라고 합니다."

  챈들러 씨는 이주민 모집 광고에서나 나올 법한 건장하고 인상 좋은 중년 남자였다. 그와 악수를 하는 동안 비쩍 마른 체격의 다른 한 사람은 웨인과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챈들러 씨가 두 명과 함께 지도를 들여다보는 일로 돌아가자, 나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햇빛을 가리기 위해 큰 모자를 쓴 한 소녀가 커다란 가방에 앉아 초원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소형 카메라를 꺼내어 그녀의 모습을 한 장 찍었다. 셔터를 누르자 마자 그녀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미안해요, 허락 없이 사진을 찍어서."

  그녀는 밝게 웃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당신도 이번에 함께 가는 램인가요?"

  "아니, 난 기자입니다. 론 해밀턴이라고 하죠."

  "기자… 저는 홀리 챈들러. 저기 계신 분이 저희 아빠예요."

  그녀는 챈들러 씨를 가리켜 보였다.

  "그럼 당신은 첼시 웨인씨와 함께 가시는가 보군요? 아빠는 이번에 첼시 웨인 씨가 우리를 인솔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하세요. 그녀는 대단히 실력 있는 셰퍼드라면서요?"

  "네. 우리 잡지사의 국장도 그런 말을 하더군요."

  홀리 챈들러는 밝은 갈색 머리칼에 푸른 눈이 커다란 귀여운 아가씨였다. 그녀와 잠깐 이야기를 하고 나자 웨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출발이야, 해밀턴!"

  홀리는 챈들러 씨와 함께 그들의 트레일러로 돌아가며 나에게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웨인들과 함께 지도를 보고있던 비쩍 마른 남자는 시동을 거는 웨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중에 봐, 허스키."

  "잘 다녀 와. 행운을, 첼시."

  웨인의 트레일러가 앞서 출발하자 램들의 트레일러가 그 뒤를 따랐다. 30여대의 트레일러 카가 먼지를 피워 올리며 달리는 모습은 대단한 장관이었다.
  웨인은 운전대를 붙잡고 시선은 앞에 고정한 채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해밀턴. 너…."

  "론이라고 불러도 되요."

  "그래서, 론. 너 말이야. 우린 놀러 나가는 게 아니라고."

  "네?"

  "램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것이 좋아. 아까 그 아가씨도 포함해서 말이지."

  나는 아무 말 없이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아아… 어쩐지 잔소리로 가득한 여행길이 될 것 같다….




  며칠을 달리자 하늘과 초원, 그 사이에 간간이 나타나는 작은 숲 정도가 시야에 들어오는 전부였다. 램의 남자들은 밤이 되면 광고에서 보았던 것처럼 모닥불을 피워놓고 쉬면서 교대로 불침번을 섰다. 웨인은 그들과 늘 약간의 거리를 두고 트레일러를 세웠다.
  웨인은 처음부터 예상한대로 잔소리가 많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램들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내가 홀리와 가까워 진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듯 했다.
  어쨌거나 웨인과 내가 탄 트레일러는 램들의 트레일러와 거리를 두고 있는 탓에 대화 상대는 주로 웨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웨인은 가급적이면 운전석을 떠나지 않았다. 차를 자동조종으로 맞추어 놓을 때조차 말이다. 그래도 내가 묻는 말에는 그런대로 대답은 잘 해주는 편이었다.

  "이주민이라…. 대단해요.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이런 곳까지 와서 생활할 생각을 하다니."

  "달리 길이 없으니까."

  "길이 없다니요?"

  "램들은 대부분이 지구에서 적응을  못한 사람들이지. 돈도, 직장도… 아무 것도 손에 넣지 못한 자들이나 램이 되는 거야. 램이 되면 정부에서 이런저런 지원도 해주고 정착금도 나오고 하니까 말야. 그런 사람들이 아니면 누가 유전자 조작까지 받아가며 이 먼데까지 오려 하겠어?"

  "……."

  웨인은 무심한 얼굴에 무심한 어조로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곤 했다. 램에 대해 내가 알게된 것은 다 그런 그녀의 무심한 어조로부터 였다.




  이시스는 깜짝 놀랄 만큼 지구와 비슷한 환경의 행성이다. 차이라고는 지구에 비해 바다가 매우 작고 대지는 대부분 초원과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구의 것에 비해 두 배 이상 커다랗고 밝은 달이 뜬다는 것 정도뿐이었다.
  달은 거의 둥글어져 있었다. 오염으로 대기가 흐려진 지구에 비해 이곳의 하늘은 무서울 정도로 많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커다랗고 뚜렷한 빛을 내는 달이 조용히 내려다 본다.

  "램을 속어로 레밍이라고도 부르지. 하지만 속어라고 할 수만도 없는 게…, 유전자 조작을 받은 램은 레밍과 비슷한 면이 많거든. 단기간에 빠르게 번식을 하고, 어느 정도 머리수가 넘치면 한 무리가 그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다른 집단과 부딪치면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것이 레밍과 흡사하지."

  저 멀리로 램들의 모닥불이 보였다. 그들의 저녁식사 시간이 막 끝난 듯 여자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집단 히스테리?"

  "자신의 일행이 아닌 자들과 접촉한다는 것에 미쳐버리는 거야. 무차별 살육을 하게 되 버려. 지구의 이주민 모집 광고에 그런 이야기야 안 나오겠지만."

  "…그럼 셰퍼드는요, 웨인? 셰퍼드도 램과는 다른 사람으로 보일 거 아녜요?"

  "셰퍼드는 달라. 양들이 늑대나 염소는 배척해도 양치기는 배척하지 않듯이."

  "히스테리를 일으킨 후에는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셰퍼드의 자질에 따라 다르지. 램들에게 인정 받는 셰퍼드는 히스테리를 일으킨 후에도 어느 정도 통솔과 수습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한 셰퍼드는 끝장나는 거지."

  "흐음……."

  지구에서 본 이주민 모집 광고에는 물론 그런 이야기들은 한마디도 나와있지 않았다. 이건 의외로 흥미 있는 이야기다.
  모닥불이 약해지자 웨인이 긴 나뭇가지로 들쑤셨다. 불이 붙은 나뭇재가 흩날리며 작은 불꽃들이 무수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사이로 트레일러 그늘에서 누군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웨인이 나를 향해 턱짓을 했다.

  "가 봐."

  "네?"

  모닥불을 돌아 트레일러 쪽으로 다가가자 그늘 속의 사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홀리?"

  "안녕하세요. 에… 어머니가 이걸 두 분께 가져다 드리라고 해서…."

  홀리는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내게 내밀었다. 갓 구운 팬케익. 나는 웨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지 얼마 안되었지만 그 접시를 받아 들었다.

  "고마워요, 홀리. 잘 먹을께요."

  홀리는 대답 없이 내 셔츠를 보고 있었다. 나 역시 그녀의 눈길을 쫓다가 당황했다.
  이시스는 무더운 곳이라고 들은 나는 지구에서 짧은 셔츠만 잔뜩 가져 왔던 것이다. 하지만 출발한지 이틀도 못되어 짧은 소매의 셔츠는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밤이 되면 기온이 쑥 내려가는 데다 낮에도 모래바람과 먼지와 뜨거운 태양에 피부가 견디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내가 가진 긴 소매 셔츠라고는 며칠 간의 여행 중에 벌써 더러워졌고 낡게 색까지 바래버린 것 한 벌 뿐이었다.

  "아…이거, 세탁도 할 수가 없는데다가…, 지구에서 긴 셔츠를 들고 오질 않아서…."

  나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변명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홀리는 나를 향해 밝게 웃었다.

  "저기, 제가 셔츠 만들어 드릴까요?"

  "…만들어요?"

  "나, 이래뵈도 재봉은 꽤 잘해요. 지구에 있을 때 의상 디자인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녀의 커다란 푸른 눈동자 안에 이시스의 커다란 달이 들어있었다.
  홀리는 3,4일 정도면 새 셔츠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녀가 치수를 알기 위해 내 짧은 셔츠 한 벌을 받아 들고 돌아간 후에 나는 다시 웨인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아, 그러니까 홀리는 내가 긴 셔츠가 없어서 고생하는 것이 딱해서…."

  "변명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웨인은 내 말을 딱 잘랐다.

  "아무래도 그녀 역시 너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은데 말야."

  "설마, 웨인. 나와 그녀는 만난 지 일주일도 채 안되었다고요."

  "기간이 아니라 감정이 문제 아니겠어?"

  아무래도 남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는 것은 거북하다. 더구나 웨인과 내가 친한 것도 아닌데.

  "어때? 그녀- 좋아하지?"

  ……바로 이런 말이 나올 것 같아 불안했던 거다. 하지만 이래서야 대답을 피해갈수도 없겠다.

  "그래요. 좋아해요."

  "그리곤 취재가 끝나면 지구로 돌아가 버리고?"

  나는 웨인을 돌아보았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옆얼굴에는 희미한 비웃음이 떠올라있었다. 화가 치밀었다.

  "그건 내 문제예요. 그녀를 좋아하는 것도, 나중에 돌아가게 되는 것도 다 내 문제이고, 내가 결정할 문제잖아요!"

  "아, 난 그냥 말해본거 뿐이야."

  웨인은 짐짓 깜짝 놀랐다는 표정을 하고는 나를 보았다.

  "그래요. 난 홀리를 좋아합니다. 만난 지 얼마 안되었지만 그녀를 사랑해요. 그게 당신에게 문제가 되나요?!"

  내 말에 웨인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들어봐, 론. 램들은 그야말로 목숨을 내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에겐 감정 장난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감정 장난이라고요! 난 진심입니다. 홀리는 내게 너무 소중해요. 난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합니다. 난 그녀가 원한다면 이곳에 남을 수도 있다고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흐음. 그보다 소중한 게 분명히 있을 텐데."

  웨인은 비웃음이 묻어나는 얼굴로 내 말을 되풀이하며 빈정거렸다.

  "그야 그렇겠지! 당신같이 매력 없는 여자는 누군가를 사랑해 보지도 않았을 테니 그런 감정을 전혀 모르겠지!"

  결국은 폭발해 버렸다. 웨인은 나의 일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 그녀는 나의 일을 비웃을 권리도 없다. 나는 웨인에게 폭언을 퍼붓고는 트레일러 안으로 들어가 접이식 침대에 벌렁 누워 버렸다.
  얼마간 침대에서 뒤척거리고 나자, 화가 가라앉았다.
  어쩐지 웨인의 말장난에 넘어갔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홀리에 대한 말은 진심이었다. 돌발적으로 나온 말이지만 그녀를 사랑한다는 감정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웨인에게 함부로 말을 한 것은 분명 잘못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차 밖에서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모니카? 몸을 일으켜 살짝 내다보니 달은 거의 하늘 가운데로 올라와 있었다. 모닥불 옆에서 웨인이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 저 멀리의 램들의 트레일러 쪽은 조용했다. 이미 다들 잠이 들었겠지.
  초원은 고요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웨인의 하모니카와 가끔씩 모닥불이 튀는 타닥 하는 작은 소리 뿐. 하모니카 소리가 달빛과 함께 초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침이 되면 웨인에게 사과를 하자.




  출발한지 열흘을 넘기기 시작하면서 웨인은 지도를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침마다 출발 전에 트레일러 카 안의 컴퓨터를 켜, 지도와 대조하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그 시간에는 챈들러 씨도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꽤 많은 양의 사진을 찍었고, 그 중 절반이 넘는 분량을 웨인의 컴퓨터를 이용해서 지구의 사무실로 전송해두었다. 행성 이시스는 대지의 90%가 미개발지 인 주제에 인공위성은 이미 셋이나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통신망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램과 같은 특이한 방식으로 개발을 한다면 통신은 필수 요소이겠지.
  웨인은 내켜 하진 않았지만 어쨌건 내가 램들의 캠프에서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덕택에 그들의 인터뷰도 했고 사진도 찍었으며 많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램들은 나에게 꽤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이방인은 경계하고 배척한다더니 꼭 그렇지 만은 아닌 것인가, 아니면 웨인이 나와 함께 있어주었기 때문인가.
  웨인의 말대로 그들은 대부분 지구에서 떨려난 낙오자 같은 신세였다. 챈들러 씨 같은 경우는 그래도 모험을 동경하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챈들러 씨는 자신을 동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는 달이 커다랗게 뜬 하늘을 향해 양팔을 펼쳐 보였다.

  "두고 보라고. 이 별의 첫 마을, 첫 도시들은 모두 우리 램들이 세우게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홀리에게서 셔츠를 받은 것도 그 저녁의 캠프에서였다. 그녀가 마지막 매듭을 짓고 재봉가위로 실을 잘라내고 털어 내어 자랑스럽게 펼쳐 보이는 것을 내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된다면 또 한 벌을 만들어 드릴께요."

  챈들러 부인의 걱정스러운 시선까지 받았을 정도이니 내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다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웨인은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하모니카를 불어주었다. 램들은 하모니카 소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모니카를 부는 셰퍼드와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램들. 이건 마치 피리를 부는 양치기와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양 떼 같지 않은가. 멋진 장면이었다. 메모리 카드 한 장을 모두 그 장면에만 사용해 버리게 될 정도로.

  


  램들의 캠프에서 돌아온 그날 밤은 꽤 늦어졌다. 막 잠이 들자마자 뭔가 신경을 건드리는 경고음 같은 것이 들려왔다. 웨인이 일어나 위성 통신기 앞으로 갔다.

  "웨인이야. …허스키? 무슨 일?"

  <첼시. 그 쪽으로 셰퍼드 한 팀이 갔다.>

  "한 팀? 뭐야, 그건?"

  <왜 있잖아. 빨강머리 빌과 주먹코 마빈.>

  "그 실력 없고 말뿐인 멍청이 콤비 말인가. 그들이 왜 이쪽으로 와?"

  웨인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통신기에 나온 영상의 허스키는 출발직전에 본 비쩍 마른 남자였다.

  <몰라. 그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는 연락 이후, 통신이 끊기고 다시 연락도……>

  "하? 이봐, 허스키. 허스키!"

  잡음. 화면에 생긴 몇 줄의 노이즈. 허스키는 뭔가 몇 마디 더 하는 듯 했으나 잡음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웨인은 통신기를 꺼버렸다.

  "무슨 일이죠, 웨인?"

  웨인은 그제서야 내가 일어난 것을 알았다는 듯 돌아보았다.

  "별거 아냐. 멍청한 셰퍼드 팀이 웬일인지 이쪽으로 오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거지 뭐."

  "하지만 통신이 끊겼잖아요."

  "만월이라 그래. 이시스에서는 만월이 되면 통신 장애가 좀 생겨. …이유 같은 건 묻지마. 나도 잘 몰라."

  그녀는 대충 웃옷을 걸치고는 트레일러 카에서 내렸다. 나도 뭔가 안 좋은 상황이라는 생각에 따라 내렸다. 밖은 겁이 날 정도로 밝았다. 무수히 많은 별들과 커다랗고 지나치게 밝은 느낌의 달.

  "들어가 있어, 론. 잠시 둘러보고 올 거니까."

  웨인은 트레일러 카의 적재함에서 바이크를 꺼내었다. 켈피(Kelpie)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바이크다. 사막이나 초원에서 달리는데 유용하다던가. 이시스에서 많이 사용되는 운송 수단이다.

  "웨인. 뭔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그녀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 특유의 비웃음을 얼굴을 담고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어디 가지나 말아."

  "……."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져 버렸다. 저 여자의 비웃는 얼굴은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든다. 사람을 무시하는데도 정도가 있지 말야.




  웨인은 별 것 아니라고 했지만 그런 일을 듣고 나서 맘 편히 잠들 수 있을 리가 없다. 더구나 여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웨인이 옆에 없다.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트레일러 안에 있는 것도 갑갑한 생각이 들어, 결국 다시 밖으로 나왔다.
  오늘도 꽤 거리를 둔 램들의 트레일러들 쪽은 조용한 것 같다. 저들도 웨인의 말대로 다른 램들과 부딪치면 미쳐버리는 걸까. 챈들러 씨도, 홀리도…?
  뭔가 따뜻한 온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밤에 잠시 피웠다가 꺼둔 모닥불 자리로 가서 불을 피웠다.
  모닥불 앞에 앉아 있다가 깜빡 졸았던 모양이었다. 뭔가 시끄러운 웅성임에 눈을 떴을 때, 한 무리의 트레일러 카 들이 웨인의 램들이 자고있는 트레일러 캠프 한가운데로 마구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램들의 캠프 쪽에서 곧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뭐야…"

  달이 지나치게 밝았다. 램들의 캠프 쪽에서 일어나는 일이 꽤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똑똑히 눈에 보였다.
  듣던 대로의 램들의 폭주.
  집단 히스테리.
  맙소사. 웨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찾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집단의 광기.
  피와 살육.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이 얼마나 시선을 끄는 것인가 따위는 생각도 못했다. 파인더를 통해 몇몇 낯익은, 또 낯선 램들이 나에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제서야 나는 뒤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잡힐 듯한 공포에 뒤를 돌아보자 나를 쫓던 램이 그 뒤에 달려오던 램에게 무참하게 찢겨지는 것이 보였다.

  "……!"

  무언가에 발이 걸리어 공중제비라도 도는 듯 굉장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내 몸을 사로잡은 공포가 너무나 강렬하여 도망칠 수 없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최소한 나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얼굴을 보기 위해 도망쳤던 방향으로 몸을 돌렸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너무나도 낯익은 얼굴이었다.

  "…호…홀리."

  만월의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이리저리 핏자국이 묻어있고 상처투성이.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들어있지 않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넣은 인형의 눈동자처럼.
  그녀는 홀리의 얼굴을 한, 내가 모르는 존재였다.

  "…홀리. 나… 론이예요. 정신차려요."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도 낯익은 물건이었다. 그녀의 재봉가위.
  홀리는 내 셔츠의 마지막 매듭을 짓고, 재봉가위로 실을 잘라내고, 먼지와 실밥을 털어 내고…
  문득, 웨인이 나에게 던졌던 빈정거림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그보다 소중한 게 분명히 있을 텐데."

  …웨인이 옳았다. 가장 소중한 건 그녀가 아니었다.
   타아앙-!!
  눈앞에서 홀리의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 어쩐지 현실감 없게 들리는 총소리와 함께.




  "어이, 괜찮나?"

  빨강머리 빌과 주먹코 마빈. 실력 없고 말뿐인 멍청한 콤비.

  "아아. 이번 일도 이렇게 망쳐버렸으니 보수도 날아가고. 운수 정말 끝내주는구만."

  나는 홀리의 죽음을 보고 나서 쇼크상태에 빠진… 것 같다. 입이 잘 떨어지지 않고 생각도 단편적이 되어버렸다. 지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계속 거는 것은 마빈. 그리고 모닥불을 향해 침을 뱉어 가며 투덜대는 것은 빌.
  빌 일행은 계기고장을 일으켜 길을 잘못 들어섰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로 램들과 트러블이 생겼고, 화가 난 램 몇이 밤에 트레일러를 마구 몰아대자 다른 램들도 그 뒤를 따랐고,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웨인의 램들과 충돌하게 된 것이다… 라는 것이 마빈의 설명이었다.

  "하마터면 너도 램인 줄 알고 쏴 버릴 번 했어."

  빌은 못마땅한 듯 나에게 한마디 던진다.

  "셰퍼드도 아닌 것 같은데. 민간인이 왜 램들 틈에 섞여 있는 거야?"

  나는 론 해밀턴. 기자입니다. 이번 여행을 취재하러… 역시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론 해밀턴. 이번 여행 중에 홀리라는 소녀를 만났고……




  웨인은 유능한 셰퍼드였다.
  폭주한 램들은 어느 정도 숫자가 줄면 자연스럽게 진정이 된다던가. 그러나 그렇게 충돌한 두 팀의 램을 한 무리로 다시 만드는 것은 어지간한 셰퍼드로서도 힘든 일이라고 했다.
  웨인은 자신의 램과 빌 일행의 램들을 하나로 합쳐 원래의 캠프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이동시켜놓고 셰퍼드들의 휴대용 통신기를 이용해서 빌 일행을 찾아냈다. 그리고 빌 일행과 함께 있던 나까지도.
  그녀는 빌 일행에게 살아남은 램들을 자신이 인솔해가겠다고 통보했고, 빌은 입 속으로 뭐라 투덜거리는 듯 했지만 자신들의 잘못이고 하니 곧 포기했다.
  빌과 마빈이 자신들의 트레일러로 떠난 후에, 나를 돌아보는 웨인의 얼굴은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이봐, 론. 이제 램들에게 가까이 가선 안돼. 아직은 신경이 날카롭거든."

  그녀는 내가 진절머리 치는 그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웨인의 트레일러에서 꽤 떨어진 램들의 트레일러들 쪽을 보았다.

  "홀리가 죽었어요. 챈들러 씨는 어떻죠?"

  "대충 본 것으로는 챈들러 부부만 살아 남았던 모양이던데. 홀리의 동생들도 다 죽었어."

  뭔가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어째서 당신은 그렇게 무심하게 말하죠! 당신도, 저 빌이라는 작자도! 하룻밤 새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당신들은 누가 새 램들을 인솔할 것인가 나 따지고! 평판이나 보수 걱정이나 하고!"

  "그럼 어떻게 하지. 가엾다고 눈물이라도 쏟아줄까?"

  트레일러 카의 운전석 문에 기댄 웨인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잘못은 아닌데. 하지만 누군가에게라도 화를 내야 할 것만 같았다.

  "잘 들어, 론. 저들을 이시스로 몰아낸 것은 너희 지구의 사람들이야. 저것이 그들의 생활이다. 램들은 이런 일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 그러면서도 램이 되어 이리로 온 거야."

  "하지만…… 그들도 인간…이잖아요."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인데. 생각대로의 큰 목소리는 나와주지 않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식의 개발 따위 할 수 없어. 하지만 이런 거라도 해주지 않으면 그들은 대체 어디서 무얼 하며 살 수 있다는 거야."

  웨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눈물을 닦아내고 나자 그녀의 옆얼굴이 보였다. 초원에 불고 있는 바람이 웨인의 색이 바랜 머리칼을 휘날리게 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겨우 알았다. 웨인의 비웃는 표정과 무심한 말투는 그녀의 자의가 아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나와 램들을 걱정했던 것이다.




  '챈들러 부부는 빠르게 회복했다. 하룻밤 새 찾아온 세 아이의 죽음과 부서져버린 세간과 다친 챈들러 부인의 다리는 그들에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잃은 것은 다시 생각치 않는다. 현재를 더 중요하게 본다. 그것이 램들의 생활하는 방식인 것이다.'

  웨인의 새 램 무리들은 끔찍했던 그 밤 이후 일주일 만에 괜찮은 장소를 발견해서 정착하게 되었다. 챈들러 씨는 새 마을의 대표가 되었고 웨인과 나는 이주민 등록센터로 돌아왔다. 정착지에 도착하기까지 한 달이 조금 못되게 걸린 여행이었다. 신기한 일은 나 역시 램들의 빠른 회복에 동화된 것처럼 빠르게 충격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미리 연락을 한 탓에 잡지사에서는 지구로 돌아가는 셔틀을 미리 예약까지 해 두었다. 덕택에 이주민 센터에서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곧바로 지구로 돌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대단한 기자는 아니다. 보나마나 이번 여행의 기사도 흔하디 흔한 류의 탐방기 형식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 쓰는 솜씨는 여전해도 내 속에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셔틀 안에서 기사의 초안을 잡는 일은 생각 외로 눈을 피곤하게 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그렇게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있을 때의 두려움과는 달리 꿈속에 보인 것은 그날 밤의 일이 아니었다.
  밤하늘은 별이 가득했고 달이 커다랗게 빛나고 있었다.
  웨인이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
  램들이 모닥불 가에 모여 앉아 웨인의 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것은 홀리였다.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를 커다랗고 눈부시게 밝은 달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램. 이시스의 이주민을 가리키는 말.
  연인과 가족보다는 자기 자신만을 끔찍할 정도로 사랑해야 버텨 나갈 수 있는 사람들.
  달빛은 대낮처럼 초원을 비추고 초원의 마른풀들이 나직하게 서걱거린다.
  셰퍼드는 하모니카를 불고 램들은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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