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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타나의 꿈

– 로케야 세카왓 호세인 –

『인디언 레이디스 매거진The Indian Ladies’ Magazine』, 1905년
이형진 옮김

어느 날 저녁, 나는 침실 안락의자에 앉아 인도의 여성 문제를 느긋이 생각하고 있었다. 깜빡 졸았는지 아닌지 확실치는 않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나는 완전히 깨어 있었다. 달빛 하늘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같은 별들 수천 개가 뚜렷이 보였다.

 갑자기 내 앞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친구인 사라 자매로 생각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사라 자매가 인사했다.

 아침이 아니라 별이 반짝이는 밤이라는 것을 알았던 나는 속으로 미소 지었지만 인사를 받았다. “잘 지내시나요?”

 “덕분에 잘 지내요. 나가서 정원을 둘러볼까요?”

 나는 열린 창문으로 다시 한 번 달을 보고는 지금쯤이면 나가도 별일 없겠다고 생각했다. 바깥의 남자 하인들이 푹 곯아떨어졌을 시간이니 사라 자매와 산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르질링에 있었을 때 사라 자매와 나는 곧잘 산책했다. 손을 맞잡고 명랑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물원을 수없이 거닐었다. 나는 사라 자매가 아마 그런 정원으로 나를 데려가려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곧 그 제안을 받아들여 함께 밖으로 나갔다.

 걷다 보니 놀랍게도 화창한 아침이었다. 마을은 완전히 잠에서 깨어, 거리에는 사람들이 활기차게 북적거렸다. 벌건 대낮에 거리를 걷고 있으려니 무척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남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게 농담을 건넸다.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농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뭐라고 하나요?”

 “당신이 무척 남성스럽게 보인다는군요.”

 “남성스럽게요? 그게 무슨 뜻이죠?”

 “남자들처럼 수줍고 소심하다는 말이에요.”

 “남자들처럼 수줍고 소심하다고요?” 정말 우스운 농담이었다. 내 동행이 사라 자매가 아니라 낯선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무척 불안해졌다. 아, 이 여자를 오랜 친구 사라 자매로 착각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지.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기 때문에 그녀는 떨리는 내 손가락을 알아차렸다.

 “왜 그러세요?” 그녀가 다정하게 물었다.

 “왠지 불편하네요. 퍼르다(*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거나 남성들과 격리된 생활을 하는 것)를 지키는 여자로서 베일을 두르지 않고 걷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요.” 나는 약간 변명하는 말투로 대답했다.

 “여기선 남자를 만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요. 여기는 죄악과 해악이 없는 레이디랜드예요. 선함 그 자체가 군림하는 곳이죠.”

 나는 곧 경치를 즐기게 되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풀밭을 벨벳 쿠션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마치 부드러운 카펫 위를 걷는 기분이라 내려다보니 길이 이끼와 꽃으로 덮여 있었다.

 “정말 멋지네요.”

 “마음에 드나요?” 사라 자매가 물었다(나는 그녀를 계속 ‘사라 자매’라고 불렀고 그녀는 나를 이름으로 불렀다).

 “네, 무척이나요. 하지만 섬세하고 고운 꽃을 밟고 싶진 않아요.”

 “괜찮아요, 술타나. 들꽃이라 밟아도 상하지 않아요.”

 “이곳 전체가 정원 같아요. 식물 하나하나를 정말 솜씨 있게 배열했네요.” 나는 감탄했다.

 “술타나가 사는 캘커타도 남자 동포들이 원하기만 하면 이보다 멋진 정원이 될 거예요.”

 “남자들은 원예에 관심을 두는 게 쓸모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할 일이 엄청 많다면서요.”

 “좋은 변명거리가 없어서 그래요.” 그녀가 미소로 답했다.

 나는 남자들이 어디 있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산책 도중에 여자를 100명 넘게 만났지만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

 “남자들은 어디에 있나요?”

 “걸맞은 곳, 있어야 할 곳에 있어요.”

 “‘걸맞은 곳’이라니 무슨 뜻인가요?”

 “아, 제 실수네요. 여기 온 적이 없으니 우리 관습을 알 리가 없겠죠. 우린 남자들을 나다니지 못하게 해요.”

 “우리가 제나나(*규방)에 갇혀 있는 것처럼요?”

 “그렇죠.”

 “우습네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사라 자매도 웃었다.

 “하지만 술타나, 무해한 여성들을 가둬 두고 남자들을 풀어 두다니 얼마나 불공평한가요.”

 “왜요? 우리는 원래 약하니까 제나나 밖에선 안전하지 않잖아요.”

 “네, 남자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한 안전하지 않죠. 시장에 들짐승이 뛰어들었을 때처럼 말이에요.”

 “그렇군요.”

 “가령 어떤 미치광이들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해 사람이며 말이며 다른 동물들에게 나쁜 짓을 한다면 당신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잡아서 다시 병원에 가두려고 하겠죠.”

 “그거예요! 그럼 멀쩡한 사람들을 병원에 가두고 미친 사람들을 풀어 주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아니죠!” 나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당신 나라에서는 바로 그렇게 하고 있어요! 끝없이 나쁜 짓을 하거나 할 수 있는 남자들을 놔두고 순진한 여자들을 제나나에 가두다니! 미숙한 남자들을 어떻게 믿고 바깥출입을 허락할 수 있죠?”

 “우리에겐 사회에 참여할 수단이나 목소리가 없어요. 인도에선 남자가 주인이고 법이라서 온갖 권력과 특권을 독차지하고는 여자들을 제나나에 가둬 두죠.”

 “왜 갇히고도 가만히 있나요?”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힘이 세니 어쩔 수 없어요.”

 “사자는 사람보다 강하지만 사자가 인류를 지배할 수는 없어요. 자기 권리를 못 본 체한 당신들은 스스로 당연한 의무를 내팽개치고 자연권을 잃어버린 거예요.”

 “하지만 사라 자매님, 모든 일을 우리끼리 한다면, 남자들은 무슨 일을 하나요?”

 “실례지만 남자들은 아무 일도 해선 안 돼요. 아무 쓰잘머리가 없죠. 잡아서 제나나에 가둬 둘 뿐이에요.”

 “하지만 남자들을 잡아 바깥출입을 금하는 게 과연 쉬울까요? 게다가 그렇게 하더라도 남자들의 일도 — 정치며 상업이며 — 같이 제나나로 따라가 버리진 않을까요?”

 사라 자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상냥하게 웃을 뿐이었다.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와 입씨름해 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때 우리는 사라 자매의 집에 도착했다. 집은 아름다운 하트 모양 정원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골진 철판 지붕이 덮인 방갈로였다. 우리 인도의 그 어떤 고급 저택들보다 시원하고 근사했다. 어찌나 깔끔하고 가구가 훌륭하고 장식이 고상한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응접실로 자수를 가지고 나와 새로운 무늬를 수놓기 시작했다.

 “뜨개질과 바느질은 아시나요?”

 “네. 제나나에서는 달리 할 일이 없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제나나에 자수를 믿고 맡기지 않아요! 남자에게는 바늘구멍에 실을 꿸 인내심조차 없으니까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전부 직접 수놓으신 건가요?” 다양한 자수 식탁보들을 가리키며 내가 물었다.

 “네.”

 “이걸 다 하실 시간이 있나요? 사무도 보셔야 하잖아요?”

 “그럼요. 전 하루 종일 일에 매달리지 않아요. 두 시간이면 일이 끝난답니다.”

 “두 시간이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우리 나라에서 관리들은 — 가령 치안판사들은 — 하루에 일곱 시간을 일해요.”

 “저도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본 적 있어요. 남자들이 일곱 시간 내내 일한다고 생각하세요?”

 “당연히 그렇겠죠!”

 “아니에요, 술타나. 그들은 담배를 피우며 꾸물거린답니다. 업무 시간에 여송연을 두세 개비 피우는 남자들도 있어요. 일을 말로만 하고 실제로는 거의 안 하죠. 여송연 한 개비 피우는 데 30분이 걸리고 하루에 여송연을 열두 개비씩 피운다고 해 봐요. 그럼 그 사람은 담배 피우는 데 하루 여섯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에요.”

 우리는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들이 어떤 유행병에 걸리거나 모기에 물리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드물게 일어나는 사고를 제외하면 레이디랜드에서는 어릴 적에 죽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척 놀랐다.

 “우리 주방을 한번 보실래요?” 그녀가 물었다.

 “좋아요.” 우리는 주방을 보러 갔다. 내가 갔을 때는 당연히 남자들을 물리도록 했다. 주방은 아름다운 채소밭에 자리하고 있었다. 모든 덩굴식물, 모든 토마토가 장식품이나 다름없었다. 주방은 연기도 굴뚝도 보이지 않았고, 깨끗하고 밝았다. 창문들은 꽃으로 꾸며져 있었다. 석탄이나 불을 쓰는 흔적은 없었다.

 “요리는 어떻게 하나요?” 내가 물었다.

 “태양열을 써요.” 사라 자매는 집중된 햇빛과 열이 통과하는 관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요리를 하나 하며 과정을 알려 주었다.

 “태양의 열을 어떻게 모으고 저장하나요?” 감탄하며 물었다.

 “우리 역사를 조금 말해 줄게요. 30년 전, 지금 여왕님께서는 열세 살에 왕좌를 물려받으셨죠. 여왕이란 지위는 이름뿐이었고 실제로는 수상이 나라를 다스렸어요.

 훌륭하신 우리 여왕님께서는 과학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여왕님은 나라의 모든 여성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칙명을 내리셨어요. 그에 따라 정부는 많은 여학교를 설립하고 지원하게 됐어요. 여성들에게 교육이 널리 퍼졌죠. 그리고 조혼도 금지됐어요. 여자는 21세가 될 때까지 결혼할 수 없게 된 거예요. 분명히 말하지만, 이렇게 변하기 전에는 우리도 엄격히 퍼르다를 지켜야 했어요.”

 “전세가 역전되었군요.” 나는 웃으며 끼어들었다.

 “격리 정책은 변함없지만요. 어쨌든 몇 년 안에 남자들은 입학할 수 없는 독립된 대학교가 여럿 생겼어요.

 여왕님이 기거하시는 수도에는 대학이 두 개 있어요. 그 중 한 곳에서 놀라운 기구氣球를 발명했는데 여기에는 배관이 많이 붙어 있어요. 구름 위에 떠 있는 이 계류기구 덕분에 대기에서 원하는 대로 물을 끌어올 수 있었죠. 대학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물을 뽑으니 구름이 모이지 않았고, 그렇게 해서 이 기발한 여총장은 비와 태풍을 예방할 수 있었던 거예요.”

 “정말요! 이제 왜 진흙이 없는지 알겠어요!” 그러나 어떻게 관에 물을 모을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그녀가 원리를 설명해 줬지만 나는 과학 지식이 무척 얕아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설명을 계속했다. “다른 대학교에서 이를 알고 엄청나게 샘이 나 훨씬 더 대단한 일을 해내려고 애썼죠. 그들은 원하는 대로 태양열을 모을 수 있는 기계를 발명했어요. 그리고 그 열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게 저장했고요.

 여자들이 과학 연구에 매진하는 동안 이 나라 남자들은 군사력을 증강하느라 바빴죠. 남자들은 여성 대학들이 대기에서 물을 뽑고 태양에서 열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대학들을 비웃으며 그 모든 성취를 ‘감상적인 악몽’이라고 깔보기만 했어요!”

 “정말 놀라운 업적이에요! 하지만 남자들을 어떻게 제나나에 넣을 수 있었는지 궁금해요. 우선 함정에 빠뜨렸나요?”

 “아니에요.”

 “남자들이 자유로운 생활을 스스로 포기하고 제나나에 들어갈 것 같진 않은데요! 제압했어야 했을 거예요.”

 “맞아요!”

 “누가요? 여전사들인가요?”

 “아뇨. 무력이 아니었어요.”

 “네, 그럴 수 없을 거예요.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힘이 세니까요. 그러면요?”

 “머리로요.”

 “머리도 남자가 여자보다 크고 무겁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그래요. 하지만 그래서요? 코끼리도 사람보다 두뇌가 크고 무거워요. 하지만 사람은 코끼리를 속박하고 뜻대로 부릴 수 있어요.”

 “맞는 말씀이에요. 하지만 정말 어떻게 된 일인지 제발 말해 주세요. 알고 싶어 죽겠어요!”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머리가 빨리 돌아가죠. 10년 전, 군 장교들이 우리 과학적 발견을 ‘감상적인 악몽’이라고 얕봤을 때, 그런 발언들에 항변하려던 여성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두 여총장은 그들을 말리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고 했죠. 기회를 잡으면 말이에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를 잡았죠.”

 “정말 놀라워요!” 나는 절로 손뼉을 쳤다. “그래서 이젠 오만한 신사들이 감상적인 꿈을 꾸고 있군요.”

 “얼마 뒤 이웃나라에서 피난민들이 넘어왔어요. 그들은 정치범으로 몰려 곤란을 겪고 있었죠. 좋은 통치보다는 권력에 취해 있던 그 나라 왕이 자상한 우리 여왕님께 그들을 넘기라고 요청했어요. 여왕님은 망명자들을 쫓아내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켜 요청을 거절했고요. 이에 그 왕은 우리 나라에 전쟁을 선포했어요.

 우리 군 장교들은 당장 달려가 적을 맞았어요. 그렇지만 적은 너무 강했죠. 군인들은 틀림없이 용감히 싸웠어요. 그러나 그들의 용맹함에도 적군은 점차 우리 나라로 진격했어요.

 거의 모든 남자들이 전장에 나갔어요. 열여섯 소년도 예외는 아니었죠. 우리 군사들은 대부분 전사하고 나머지는 후퇴했고, 적은 수도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밀려왔어요.

 여왕님의 궁전에서는 여러 현명한 여인들이 모여 나라를 지키려면 어째야 할지 의논했어요. 어떤 이들은 군인처럼 싸우자는 의견을 냈어요. 어떤 이들은 반대하며 여자들이 검과 총으로 싸우는 훈련을 받지 않았고 그 어떤 무기로든 싸움에 익숙하지도 않다고 말했어요. 또 어떤 이들은 형편없이 약한 육체를 안타까워했어요.

 여왕님께서 말씀하셨죠. ‘체력이 없어 나라를 구할 수 없다면 지력으로 구해 봅시다.’

 잠시 정적이 흘렀어요. 전하는 다시 말씀하셨어요. ‘이 나라와 제 명예를 잃는다면 전 목숨을 끊을 거예요.’

 그러자 회의 내내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두 번째 대학의 여총장이(태양열을 모았던 사람이죠) 우리는 패하기 일보 직전이고 희망도 거의 스러졌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시도해 보고 싶은 계획이 하나 있는데 그건 처음이자 마지막 몸부림이 될 거라고 했죠. 그 계획이 실패한다면 자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엄숙히 맹세했어요.

 여왕님은 그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며 여총장에게 계획을 시도해 보라고 했어요. 여총장은 일어나 말했어요. ‘우리가 나가기 전에 남자들은 제나나에 들어가야 합니다. 퍼르다에 따라 탄원드립니다.’

 ‘그래요, 물론이죠.’ 전하께서 대답하셨어요.

 다음날 여왕님은 모든 남자들에게 명예와 자유를 위해 제나나로 퇴각하라고 전했어요. 다치고 지친 남자들은 그 명령을 고맙게 받아들였죠! 그들은 머리를 숙이며 두말없이 제나나로 들어갔어요. 이 나라에 한 가닥 희망도 없다고 확신했던 거예요.

 그러자 여총장은 학생 2,000명과 함께 전장으로 행진해, 집중한 햇빛과 열을 적에게 돌렸어요.

 그 열과 빛은 견디기 어려웠죠. 적군은 이글거리는 열에 대응할 방법을 모른 채 당황하여 허둥지둥 달아났어요. 달아나며 남긴 무기며 탄약은 태양열에 녹아 버렸죠. 그 뒤로는 누구도 우리 나라를 침략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전쟁이 끝나고 남자들이 한 번도 제나나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나요?”

 “아니긴요, 남자들은 자유를 원했죠. 몇몇 경찰청장들과 치안판사들은, 패배한 군 장교들은 분명 감금되어 마땅하지만 자신들은 직무에 충실했으니 벌을 받아서는 안 되며 각자의 집무실로 복귀할 수 있기를 탄원한다는 취지로 여왕님께 전언을 올렸어요.

 전하는 도움이 필요하면 부를 테니 그동안은 가만히 있으라고 알리는 회문을 돌렸어요. 남자들이 이 퍼르다 체제에 익숙해져서 격리 생활에 불만도 없는 지금은 이 체제를 ‘제나나’ 대신 ‘마르다나’라고 불러요.”

 “하지만 경찰이나 치안판사가 없다면 도난이나 살인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죠?”

 “‘마르다나’ 체제가 확립된 이후로는 범죄나 과실이 없어졌어요. 그러니 범인을 찾는 경찰이나 형사사건을 심리하는 판사가 필요하지 않아요.”

 “정말 좋은 일이네요. 만일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있더라도 쉽게 혼내 줄 수 있을 거예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결정적인 승리를 얻었으니 별 어려움 없이 범죄와 범죄자도 몰아낼 수 있었겠죠!”

 “자, 술타나, 여기 앉을까요, 응접실로 갈까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명랑히 대답했다. “이 주방은 여왕의 내실에 전혀 뒤지지 않아요! 하지만 이제 가야겠네요. 저 때문에 한참 동안 주방에서 할 일을 못 하고 있다며 신사들이 욕할 테니까요.” 우리는 둘 다 실컷 웃었다.

 “이곳 레이디랜드에서는 여자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온갖 사회 문제를 도맡는 한편 남자들이 마르다나에 갇혀 아기를 돌보고 요리를 하고 집안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게다가 요리가 무척 쉬워서 즐거운 일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면 제 고향 친구들은 무척 즐거워하고 놀라워할 거예요!”

 “네, 친구들께 여기서 본 것들을 모두 이야기해 주세요.”

 “알려주세요. 농사는 어떻게 짓고, 경작과 다른 힘든 육체노동은 어떻게 하나요?”

 “밭을 갈 때는 전기를 이용하는데, 전기는 다른 중노동과 공중 운송에도 써요. 여기는 철길이나 포장도로가 없답니다.”

 “그러니 교통사고가 없군요. 가뭄으로 곤란한 적은 없나요?”

 “‘급수 기구氣球’가 생긴 뒤로는 없어요. 저기 큰 기구와 거기 달린 관들이 보일 거예요. 그 덕분에 필요한 만큼 빗물을 끌어 쓸 수 있어요. 홍수나 태풍으로 피해를 입지도 않죠. 우리는 자연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모두 애쓰고 있답니다. 한가롭게 앉아 있지를 않으니 서로 다툴 시간도 없어요. 우리 고귀한 여왕님께서는 식물학을 굉장히 사랑하세요. 나라 전체를 하나의 웅장한 정원으로 바꾸겠다는 포부를 품고 계시죠.”

 “훌륭한 생각이에요. 주식은 뭔가요?”

 “과일이에요.”

 “더운 날씨에 더위는 어떻게 쫓죠? 우리는 여름비를 하늘의 축복으로 여기는데 말이에요.”

 “더위를 참을 수 없게 되면 인공 샘에서 물을 충분히 뽑아 땅에 뿌려요. 추운 날씨에는 태양열로 방을 데우고요.”

 그녀는 지붕을 치울 수 있는 욕실을 보여주었다. 쉽게 지붕(상자 뚜껑처럼 생겼다)을 열어 샤워 배수관 수도꼭지를 돌리면 언제든 샤워를 즐길 수 있었다.

 “당신들은 운이 좋군요! 부족한 게 없네요. 종교가 뭔지 물어도 괜찮을까요?”

 “우리 종교는 사랑과 진실을 바탕으로 삼아요. 서로 사랑하고 완전히 진실하게 대하는 게 종교적 의무죠. 거짓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형에 처하나요?”

 “아뇨, 사형은 아니에요. 우리는 신의 피조물, 특히 인간을 죽임으로써 즐거움을 얻지 않아요. 거짓말쟁이는 이 나라를 영원히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하죠.”

 “범죄자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나요?”

 “진심으로 뉘우치면 용서받아요.”

 “친척이 아니면 남자를 볼 수 없어요?”

 “순결한 관계만 예외죠.”

 “우리의 순결한 관계는 범위가 무척 좁아요. 사촌도 순결한 관계가 아니죠.”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무척 넓어요. 먼 사촌도 형제처럼 순결하죠.”

 “다행이네요. 이 나라를 지배하는 건 순수성 그 자체인 것 같아요. 뛰어난 지혜와 혜안으로 이런 규칙들을 만든 훌륭하신 여왕님을 뵙고 싶네요.”

 “좋아요.”

 그녀는 정사각형 판자에 의자 두 개를 고정했다. 판자에는 매끄럽고 윤이 나는 공이 두 개 달려 있었다. 그 공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수소가 들어 있어 중력을 극복하는 데 쓴다고 했다. 들려는 무게에 따라 용량이 다른 공을 사용한다고 했다. 그 뒤 전기로 작동한다는 날개 같은 날을 비행차에 두 개 달았다. 자리에 편안히 앉은 뒤 그녀가 손잡이를 만지자 회전 날이 돌기 시작하며 점점 더 빨리 움직였다. 비행차는 처음에 2미터쯤 떠올랐다가 곧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전에 우리는 여왕의 정원에 도착했다.

 아래로 여왕이 어린 딸(네 살이었다)과 시녀들과 정원을 거니는 모습이 보였다.

 내 친구는 기계를 반대로 조작하여 비행차를 낮추었고, 비행차가 착륙하여 작동이 멈춘 뒤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여기에요! 오셨군요!” 여왕이 사라 자매를 불렀다. 나는 여왕에게 소개된 뒤 격식 없이 다정하게 환영받았다.

 나는 여왕을 알게 되어 무척이나 기뻤다. 대화 중에 여왕은 내게 국민들이 다른 나라와 교역하는 데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성들이 제나나에 갇혀 우리와 교역할 수 없는 나라들과는 교역하기란 불가능해요. 남자들은 품성이 별로 좋지 않아 상대하고 싶지 않거든요. 우린 다른 나라를 탐내지 않고, 코이누르보다 1,000배는 밝다 한들 다이아몬드 조각을 두고 다투지도 않고, 공작 옥좌를 시샘하지도 않아요. 지식의 바다에 깊이 잠수해 자연이 비축한 소중한 보석들을 찾으려고 애쓰죠. 자연의 선물을 한껏 누린답니다.”

 여왕과 헤어진 나는 유명한 대학들을 방문하고 공장, 연구실, 관측소 여러 곳을 구경했다.

 흥미로운 곳들을 들른 뒤 우리는 비행차에 다시 올랐지만, 비행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웬일인지 자리에서 미끄러졌다. 떨어지며 놀라 눈을 뜬 나는 여전히 침실 안락의자에 몸을 뉘인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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