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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환 변신!

2005.11.25 22:4611.25

     1.
     2xxx년, 정형 및 성형 수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
     발전된 기술로 가장 먼저 광범위하게 행해진 수술은 소아 화상 환자처럼 성형 수술이 가장 급하게 필요한 사람을 위한 시술이 아니었다. 그랬으면야 좋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건 성형 수술이었다. 성형 수술의 열풍은 북극에서 남극에 이르기까지 불어 닥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 열풍 속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아무도 사람은 없었다. 아니, 사실 몇 사람이 학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긴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의견에 귀를 기울인 이유도 그 학자들이 멋진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사실을 깨달은 과학자들은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으나 채 분석을 시작하기도 전에 열풍은 이미 온갖 복잡한 방향으로 진화해나가며 양상을 바꾸고 있었다.
     학자들은 결국 보고서를 마치지 못했다.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3.
     제일 처음 성형 수술을 시작한 사람들이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스타들이었다. 아름다운 영화배우들, 텔레비전 스타들, 가수들, 모델들이 성형수술의 기준이 되었다. 보고서에는 권상우처럼 성형수술 하는 남자들과 김희선처럼 성형수술을 하는 여자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들은 권상우와 똑같이, 김희선과 똑같이 성형수술을 했으며 사이버스페이스에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모여들어 하나의 사이버 공동체를 이뤘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가끔씩 모임을 갖고 누가 더 권상우와 김희선에 가깝게 수술했는지를 비교했고, 어떻게 해야 더 비슷해질 수 있을지를 서로에게 조언을 구하곤 했다. 이 두 그룹은 조인트 모임을 갖기도 했는데, 이들은 모임에서 ‘슬픈연가’를 패러디하거나, 가장 닮은 두 커플을 뽑아 상을 주거나, 혹은 송승헌처럼 성형 수술한 남자를 섭외해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권상우와 김희선의 팬미팅에 단체로 참석해 당사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이 모임에 참석한 열 두 명의 권상우와 세른 네 명의 김희선에 대한 인터뷰도 남아있다. ‘똑같이 생겼다면 그 아름다움에 무슨 가치가 있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들은 ‘꼭 유일한 것만이 아름다운 건 아니다’고 대답했다. ‘다른 사람과 같아진다면 개성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외모가 인간을 구별한다는 편견은 곧 없어질 것’이라 답했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4.
     성형수술의 열풍 뒤에 숨은, 작지만 놀라운 움직임이 있었다. 이들의 극단적인 행태는 곧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때문에 보고서의 연구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신체를 절단했다. 그건 정형 때문도 아니고 성형 때문도 아니었다. 이들은 신체의 일부분이 자신의 몸이 아니며 그래서 필요가 없으므로 절단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절단하려 하는 부분은 손가락에서부터 두개의 다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처음 이들은 심각한 정신질환자로 여겨졌으며 정부에 의해 시술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필요 없다고 생각는 부분을 잘라낸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질환자로 취급된다면 자신의 성기를 잘라내어 다른 성이 되고 싶어 하는 트렌스젠더들 역시 정신질환자로 취급돼야 한다는 논리에 이런 판단은 힘을 잃었다. 의사와 과학자들은 이들을 면밀히 관찰했으나 이들은 매저키스트도 아니었고 사지절단에 흥분하는 변태성욕자도 아니었다. 이들은 트랜스젠더처럼 정신이 갇혀있는 몸을 정신에 맞게 바꾸고 싶어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이들의 시술을 허락했다.
     “처음 휠체어를 타던 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두 다리를 잘라낸 ○○씨(가명, 29세)는 수술 후 기분이 어땠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여섯 살 때부터 제 다리는 제 몸이 아닌 너무나 거북한 혹이었습니다. 이제 잘라냈으니 속이 다 후련해요. 3년 전에 사뒀지만 쓰지 못했던 휠체어를 마침내 쓰게 돼서 너무 좋아요.”
     잘라낸 다리를 어쨌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보고서에 있다.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겠죠.”
     ‘남자는 마치 필요 없는 가구를 내다버린 사람처럼 이야기했다’고 보고서엔 적혀있다.



     5.
     이 일을 계기로 신체 개조에 대한 법적 제한의 벽이 낮아지면서, 개조는 정신적인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도 이뤄지기 시작했다. ○○씨(가명, 29세)는 왼쪽 팔 밑에 새로운 팔을 하나 더 붙이는 수술을 받았다. 인간의 신체에 다른 기관을 덧붙이는 것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기 위한 의사의 연구를 위한 실험이었다. 단순히 피수술자에게 주어지는 사례금을 생활비로 쓰기 위해 지원한 ○○씨에게, 이 수술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새로 달린 팔이 자유롭게 기능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가리봉의 어느 공장에 취직했으며 두개의 팔을 가진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많은 일을 해내 다른 직원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았다. 보고서에는 그가 새로운 팔 때문에 새로운 인생을 얻었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무척 행복해했다고 전해진다. 보고서에는 그가 세 개의 팔로 자신의 세 아이를 한꺼번에 안고 있는 사진도 첨부되어있다.



     6.
     그 후, 이렇게 정신적인 이유가 아닌 경제적이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이유의 신체 개조가 더 빨리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3D 직종의 생산라인에서 더 능률적으로 일하기 위해 한  두개의 팔을 더 붙이는 것에서 출발한 이 개조는, 곧 팔을 두개 덧붙여 한꺼번에 여러 개의 칵테일을 만들 수 있는 바텐더가 되거나, 서빙할 그릇을 한꺼번에 여러 개 나를 수 있는 웨이터, 혹은 등 뒤에 감춘 세 번째 팔을 이용해 색다른 마술을 선보이는 마술사 등,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번져갔다.



     7.
     그러므로 스포츠 선수들이 신체를 개조하기 시작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팔이나 다리를 더 붙이거나, 혹은 더 늘리거나, 더 짧게 하거나, 근육을 이식하거나 제거해 더 놀라운 운동능력을 갖는 일이 생겼다. 국제 스포츠 연맹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이런 수술을 받지 못하도록 정했으나, 상업적 성공의 가능성을 포착한 프로에서는 이를 재빨리 받아들였다. 다리가 셋인 선수들이 벌이는 축구, 팔이 넷인 선수들이 벌이는 야구와 배구와 농구와 미식축구 등등의 스포츠가 새로 생겨났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가면서 이런 현상은 더 가속화되었다.



     8.
     성형수술 기술과 함께, 의약품과 인공 신체 제조 기술이 같이 발달한 것도 이런 열풍이 변칙적으로 동요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는 잘라낸 신체의 일부를 보존하기 위해선 냉동 밖에 방법이 없었으나, 의약품의 용액에 넣어 잘 관리하기만 하면 반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체에 전혀 무해하며 아무 거부반응이 없는 인공 피부와 뼈, 근육등도 속속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의약품과 인공 신체 제조 기술이 발달한 건 신의 뜻이라면 신의 뜻이었고 성형수술 중독자들의 뜻이라면 그들의 뜻이었다. ○○씨(가명, 29세)는 이런 기술을 가장 창의적으로 응용한 사람이었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그는 인조 피부로 여러 개의 얼굴을 만들어 놓고, 짧게는 한달 길게는 일년 동안 주기적으로 얼굴을 교체했다. 그는 죽기 전까지 스무 개가 넘는 얼굴을 바꿔가며 살았다. 정부는 신원 확인이 불가능해진다는 이유를 들어 처음에는 이런 시술을 허락하지 않았으나, 성형수술로 얼굴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면 자신의 얼굴을 선택하여 사용하는 것 역시 허락해야 한다는 ○○씨의 주장을 반박할 만한 논리를 내세우지 못해 결국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서에는, 왜 그렇게 얼굴을 바꿔가며 사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변덕이 심한 성격이어서 항상 다른 얼굴을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는 직설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의 장례식에는 스무 개의 얼굴로 찍은 스무 개의 영정사진이 모두 진열되었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9.
     ○○씨 이후, 이렇게 신체의 일부를 원할 때마다 바꾸는 일은 이후 흔해졌다. 여러 색의 안구를 집에 놓고 기분 내킬 때마다 바꿔 끼는 유행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10.
     외모가 아닌 더 복합적인 문제에 집착한 사람도 있었다. 보고서는 극단적이면서도 이후 극단적이지 않게 된 사례 하나를 전한다. ○○씨는 여성(가명, 29세)의 염색체와 신체를 갖고 태어났으나 자신의 성(sex)을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그래서 성인이 되자마자 유방을 몸에서 제거하고 자궁 역시 제거했으며 남성의 가슴과 성기를 만들어 몸에 이식했다. 하지만 나머지 인생을 남자로 산 것 역시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원할 때는 남성의 가슴과 성기를 제거하고, 여성의 유방과 자궁을 이식했다. 그리고 다시 내킬 때 마다 남성의 가슴과 성기를 달았다. 혹은 여성의 가슴과 남성의 성기를 달기도 했고, 남성의 가슴과 자궁을 달기도 했다. 그는 남성의 몸을 하고 있을 때 다른 남성과 결혼했으며, 결혼 생활 중에는 자궁을 재이식해서 남성의 몸으로 아이를 임신해 낳기도 했다. ○○씨는 이 모든 행동을 ‘사회적으로 정해진 성에 얽매이는 것이 싫어서’ 라고 설명했다. 그는 누구도 정의 내릴 수 없는 제 3의 성이며, 남성도 여성도 아닌 자신이 선택한 성으로 살고 싶어 이런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고 보고서는 평가한다. 누구도 그를 남성/여성/중성/양성으로 규정지을 수 없었다. 그는 성을 선택해서 살아간 최초의 인간이었다.



     11.
     그 후로 여성이 자궁을 몸 밖에 적출해 놓았다가 아이를 임신할 때만 몸에 돌려놓는 일이 흔해졌다. 또한 남성이 여성의 자궁을 이식해 아이를 갖거나 여성이 남성의 성기를 만들어 다른 여성/남성을 임신시키는 일도 흔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성을 선택하게 됐으며 그런 선택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2.
     신체 개조가 분리를 선호하는 방향으로만 이뤄진 건 아니다. 융합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이뤄진 첫 사례로, 보고서는 이런 경우를 말하고 있다. 연인 관계의 두 남녀 ○○씨(가명, 29세)와 ○○씨(가명, 29세)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 고통스러워한 나머지 두 사람의 신체를 연결했다. 인공적인 샴쌍둥이가 되기를 원한 것이다. 그들은 플라톤의 책 ‘향연’에 등장하는 오시리스 신화에서 이를 착안해냈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두 사람은 남성이 왼쪽 여성이 오른쪽에 나란히 선 상태로 몸을 접합했다. 그들은 머리와 어깨와 허리와 엉덩이와 허벅지의 일부분을 붙였고, 뇌의 15%와 간의 21%와 위의 28% 연결했고, 혈액의 42%퍼센트를 공유했다. 척추에서 신경도 분리해내 연결했기 때문에 고통도 같이 느꼈다. 한쪽이 아프면 다른 쪽도 아프고 한쪽이 건강하면 다른 쪽도 건강했고 한쪽이 기쁘면 다른 쪽도 기뻤고 한쪽이 슬프면 다른 한쪽도 슬퍼했다. 소화기관을 공유했기 때문에 배고픔과 포만감 또한 같이 느꼈다.
     신체가 연결되어있으므로 한쪽이 죽으면 다른 쪽도 죽지 않냐는 질문에, ‘그것을 원했기 때문에 이런 수술을 감행했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실제로 25년 후 ○○씨가 폐암으로 사망하자 다른 한쪽은 분리 수술을 거부했으며, 결국 ○○씨가 죽은 지 2시간 후 ○○씨도 사망했다. 두 사람은 두개의 몸으로 태어나 한 개의 몸으로 죽었다.



     13.
     낭만적인 사례의 신체 융합만이 있었던 것 역시 아니다. ○○정부는 죄수의 탈옥을 막기 위해, 복역 중인 죄수들을 적게는 셋에서 많게는 여덟까지 다른 죄수들의 신체와 연결해놓는 법률을 고안해냈다. 이는 신체 융합의 윤리적인 판단에 대한 거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이런 아이디어는 의학 기술이 더 발달하는 결과도 낳았다. ○○정부는 범죄자의 인체를 다른 범죄자의 인체와 연결하는 아이디어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자, 인체를 다른 것에 연결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래서 ○○정부 인체와 연결해도 안전한 금속이나 플라스틱을 발명하는 기술 개발을 비밀리에 지원했다. 의사와 과학자는 인체에 적합한 금속과 플라스틱을 이용해 쇠사슬과 수갑 족쇄 등을 만들어냈다. 정부는 이 결과물을 감옥에 응용했다. 죄수의 몸에 쇠사슬이나 수갑을 아예 이식한 다음 감옥에 고정했던 것이다.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연결해 놓는 일에 대한 윤리적 비난을 막기 위해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감옥에 갇히는 것이 아닌, 감옥에 연결되는 시대가 오기에 이르렀다. 이 일은 인간과 기계를 연결하는 행위에 대한 또 다른 윤리적 논란을 낳았다.



     14.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논란은 인간과 기계와의 융합을 재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인간과 기계와의 융합 기술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들은 기계와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기 시작했다. 수백만 가지의 사례 중, 보고서는 로봇을 신체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사람들은 인간과 비슷한 (혹은 전혀 비슷하지 않은) 로봇을 만들고 그 로봇에 신체의 전부, 혹은 두뇌를 포함한 신체의 일부분을 이식했다. 그렇게 로봇 신체를 가지는 사람이 늘어갔다. 평소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씨(가명, 29세)는, ‘에반게리온’을 모사한 로봇 신체를 만들어 그곳에 뇌를 이식했다. 그래서 그는 ‘에반게리온’이 되었으며 그 후 많은 사람이 ‘건담’이나 ‘마빈’, 혹은 ‘벤더’가 되었다. 바비 인형처럼 아름다운 여성을 동경했던 많은 여성들은 바비 인형의 몸에 두뇌를 이식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기계, 컴퓨터와의 융합을 즐기게 되었다.



     15.
     어떤 사람들은 두뇌를 컴퓨터에 이식해 컴퓨터로 삶을 살아가기도 했다.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자동차에 두뇌를 이식한 사람도 있었고, 오랫동안 살아온 집에 양전자 두뇌를 이식해 집이 되는 사람도 있었다. 보일러에 두뇌를 이식해 보일러로 살아간 사람도 있다. ‘○○ 보일러’의 사장 ○○씨(가명, 29세)가 그렇다. 그는 더 인간과 친숙한 보일러를 개발하기 위해 보일러의 입장이 돼보기로 노력했고 두뇌를 이식해 몇 개월 동안 보일러로 살았다. 그렇게 개발된 보일러가 판매에 성공을 거뒀는지는 보고서에 기록되어있지 않다.



     16.
     로봇과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면 동물과의 경계도 못 무너뜨릴 것이 없었다. 이런 변화에 많은 설명이 필요할까? 고양이를 사랑한 한 남성은 고양이의 몸에 두뇌를 이식했다. 말을 동경했던 한 여성은 말의 몸에 자신의 두뇌를 이식했다. 그래서 남자는 고양이가 여자는 말이 되었다. 사자나 호랑이가 된 사람은 흔했고 거미나 악어가 된 사람도 간간히 있었다. 며칠 동안 두뇌를 새의 몸에 이식해 하늘을 날거나 돌고래의 몸에 이식해 자유롭게 바다를 헤엄치는 두뇌이식 상품이 개발되어 인기리에 판매되기도 했다.




     17.
     신체 개조, 분리, 융합, 기계와의 결합 등 인간이 모든 편견을 넘어 자유롭게 신체를 바꿔가게 되자 보고서는 더 이상 생활양식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인간의 변화를 관찰하기를 포기했고 보고서도 완성되지 못했다. 보고서의 마지막에는 이런 사례가 남아있다.



     18.
     어떤 사람들은 뇌마저도 새로운 형태로 분해했다. 액체 상태로 자유롭게 모양을 변화할 수 있으면서도 원래 두뇌의 기능은 잃지 않도록 두뇌를 변형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그들은 절대로 찢어지지 않을 만큼 질기고, 마치 세포벽처럼 외부의 물질을 선택해 안으로 흡입하고 생성된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분자구조를 가진 플라스틱 비닐을 발명했다. 그리고 플라스틱 봉지 안에 뇌를 담아, 마치 비닐 주머니에 담긴 단세포 생물처럼 생긴 모습으로 살아갔다. 이들은 두뇌에 필요한 영양이 담긴 영양 액이 가득한 풀장에 비닐 주머니 몸을 넣고, 다른 플라스틱 비닐주머니들과 함께 헤엄치면서 살았다. 그들은 두뇌에서 나오는 전자파로 다른 비닐 주머니들과 감정을 공유했으며 그런 방법으로 끝없이 사랑을 나눴다. 그들이 원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끝없는 오르가즘.
     보고서는 이들이 헤엄치며 사랑을 나누는 풀을 관리하는 관리자 ○○씨(가명, 29세)와의 인터뷰가 남아있다.

     인터뷰어 : 일이 힘들진 않습니까?
     ○○씨 : 시간에 맞춰 영양액을 주기적으로 넣고 온도 조절장치가 항상 지켜보는 일이 까다롭긴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않아요.
     인터뷰어 : 저렇게 비닐 주머니로 변신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씨 : 아무 생각 없는데요.
     인터뷰어: ○○씨는 신체를 전혀 개조하지 않았는데요, 그것에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요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체를 취향에 맞게 바꾸잖아요.
     ○○씨 : 그냥 이렇게 있고 싶어서요.



     19.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과, 유명 스타를 닮은 사람, 신체를 개조한 사람, 신체를 선택한 사람, 신체를 분리한 사람, 다른 이의 신체와 융합한 사람, 기계로 바꾼 사람, 다른 종족으로 개조한 사람,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으로 변태한 사람 등 수많은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렇게 세상에는 평범한 인간이 사라졌으며, 평범하지 않은 인간 또한 사라졌다.



     20.
     학자들이 마치기를 포기한 보고서는 이렇게 끝난다.
     ‘그리하여 인간은 변신을 배우게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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