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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2006.06.03 01:3506.03


SF

  배명훈






  “그건 사실 ‘세상’이라는 뜻이 아니야. 모라는 건 그러니까, 세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 행성, 그 중에서도 실험 행성이라는 의미야. 정확하게 말하면 ‘모’ 계열 개척 행성이라고 불러야 할까. 요즘은 그런 어원 같은 것까지 따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냥 모라고 부르면 될 거야. 하지만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 의미는 아니야.
  아까 너희 조상 중 누군가가 땅 끝까지 갔었다고 그랬던가? 거짓말이야. 새빨간 거짓말. 아무리 가도 땅 끝까지는 못 가봤습니다 하고 말하면 내가 한번 믿어 줄 수 있었겠지만, 끝을 보고 왔다니 어디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모라는 건 말이야, 끝이 없어. 하지만 정말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끝과 끝이 서로 이어져 있어서 끝까지 가 보면 처음 출발했던 데로 돌아오게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나 참. 이건 행성이라고. 둥글다니까.”
  L은 발로 땅을 툭툭 치면서 말을 이었다.
  “모르겠지. 넘어가자. 모라는 건 실험 행성이라는 뜻인데, 무엇을 실험하는 행성이냐 하면, 인간을 실험하는 거야. 거대한 인류학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지. 어떤 조건 하에 인간을 집어넣어 두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를 지켜보는 거야. 이 경우에는 인간을 집어넣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인류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인간들을 집어넣었다는 점이 좀 달라. 이 인간들을 집어넣어 둔 조건도 굉장히 뭐랄까, 까다롭게 조성된 조건이랄까. 원시적이지. 자연 그대로. 야만의 환경에 야만의 인류를 집어넣으면 말이야, 문명이나 역사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발생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되지 않겠어?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실험실 속에 넣어 놓고 관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말씀이야. 왜 그런 짓을 하냐고? 글쎄. 처음 재미 붙이기까지는 나도 그 대목을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대충 알 것 같아. 이제.”
  그는 뻔뻔스럽게 그런 이야기들을 다 폭로하고 있었으나, 야만인들은, 그러니까 피실험자 집단은 당연히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야만인들은 그를 그야말로 신처럼 떠받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L을 지상에 내려온 신 자신으로 대해야 할지 신께서 보내신 대리인으로 대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신의 대리인이라면 사람이 먹을 것을 대접해야 하고 신 자신이라면 사람을 바쳐야 할 텐데 이들에게는 그것을 판단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제 겨우 대략 400여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들로 의사소통을 하는 정도인 그들로서는 저렇게 유창하게 말을 해 대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야만어와 문명어의 차이를 떠나서 일단 다른 언어였으므로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더라도, 말이라는 게 저렇게 안 끊어지고 길게도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야만인들은 위압당하고 말았다.
  그냥 위축된 정도가 아니라 죽으라면 곧 죽을 수도 있을 정도의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 엄청난 충격은 그들의 세계관 자체를 흔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먼 조상들만이 보고 왔다는 세상의 끝과 다름없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곳이 세상의 물리적인 끝은 아니라고 해도 좋지만, 존재론적으로 그곳은 더 갈 데 없는 끝이었다. 그들은 그가 세상의 기원과 끝에 대한, 그리고 우주와 자신들의 세계 사이에 가로놓인 경계선에 대한 참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물론 그 믿음은 사실이었다. 그는 정말로 이 실험 행성의 진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은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그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를 제대로 짚었고, 그는 실제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의 메시지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좁은 이 세계의 구속에서 벗어나서 좀 더 넓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아라! 사실 그가 하고 있는 말도 정확하게 그것이었다. 그러면 된 걸까? 그러면 신의 진리가 세상에 전해진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그가 신이 되었다고 해야 할지 안 됐다고 해야 할지를 몰라서 아직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야만인들과 똑같은 입장에 처해 있었다. 실제로도 나는 그가 눈치 채지 못하게 야만인들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야만인들 사이에 엎드려서 이따금 우워우워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들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 어폐가 있다. 거의 입은 게 없었으니까.
  그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가 거만하게 세상의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순간 그의 발아래 엎드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수백 명의 지저분한 피실험자 사이에 그를 죽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절대로 몰랐을 것이다.

  물론 나는 재판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저 현장 연구자일 뿐이다. 물론 현장 연구자이기 때문에 그를 죽여 버리고 싶은 생각이 가장 간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벌써 10년째였다. 나는 벌써 10년 동안이나 야만인들 속에서 살고 있었다. 참여관찰 연구자가 되는 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무리 속에 섞여서 살다 보면 죽을 고비라는 것은 수도 없이 넘긴다. 이 생활에서 뭐가 가장 위험한지를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럴 것도 없이, 평균 수명이 25년도 되지 않는 집단이었다는 점만 말해도 아마 충분할 것이다.1) 그 죽을 고생을 하면서 지내 온 10년이 한순간 수포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 그로 인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개념의 유포. 그것은 이런 실험 행성에서는 거의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오염’이었다. 신이 지배하는 종교의 자연발생을 관찰하는 것이 목적인 내 연구에서도 그것은 결정적인 오류 요인이었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피실험자들에게 종교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줘 버리다니. 그러면 연구자는 실험 결과를 얻어낼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이 피실험 집단에서 종교가 발생하게 되더라도 그렇게 결정적인 외부 요인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로 개입해 있는 한 실험 보고서는 10년 동안 만들어낸 쓰레기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고 만다.
  (일반 독자는 그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것 아니냐고 쉽게 말하곤 한다. 어차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으니까 세월이 가면 그냥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어서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말 것이라고. 하지만 스켈미르 모 곳곳에서 야만인들이 노래를 흥얼거릴 때 삐딱하게 서서 한쪽 발을 까딱까딱하는 풍습이 발견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그것은 44세대 전에 살았던 어떤 참여 연구자가 무심코 했던 행동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로부터 27세대 만에 그 행동이 거의 스켈미르 모 북반구의 가장 조그만 대륙 전역에 퍼졌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모 계열 행성에 피실험 집단을 공급하는 ‘페페’ 계열 행성에서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인간 퇴화 과정을 진행시킨다. 특히 스켈미르 모에서 필요한 것처럼 언어 능력은 조금 가지고 있지만 진보나 국가, 체계적인 조직에 대한 개념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집단을 만들려면 적어도 12세대 정도에 이르는 문명 퇴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피실험 집단을 이 행성에 이식해서 자신들이 이식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에서 지우는 데까지만 7세대가 걸렸다. 그러고 나서 정상적인 관찰 보고서가 작성되기 시작한 것이 974세대.2) 놀라운 것은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문명 퇴화가 진행되었는데도 그들이 우주선을 타고 이 행성에 이식되었던 기억은 신화화되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까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신화화.’ 학계는 딱 거기까지만 인정했다. 그보다 더 구체적인 ‘기억’에 가까운 것이 이들 집단에 유포되어 있다면 피실험 집단은 오염된 것으로 간주되고 연구 결과는 파기되었다.
  그러니 L이 하고 있는 짓은 우리 같은 연구자에게는 어마어마한 범죄가 아닐 수 없었다. 피실험 집단 전체가 오염되었다고 간주되면, 학계는 그 집단을 버린다. 버린다는 것은 꽤 심각한 문제다. 그것은 불건전한 개념이 전파된 영역 전체를 절멸시킨다는 의미였다. 그 부분 절멸을 돕기 위해서 행성 주위에는 77개의 위성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연구자들로서도 ‘기억’이 없다. 하지만 이 행성 피실험 집단 전체에 걸쳐 파멸의 ‘신화’가 남아 있고 이 행성 연구자 집단 전체에 걸쳐 사업 재개의 ‘역사’와 ‘사료’가 남아 있다.
  나는 그 상황만큼은 절대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야만인 집단 전체에 대한 애착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그러기에는 너무 냉정한 관찰자였다. 내 연구 자체가 무로 돌아가기 때문도 아니었다. 사업이 중단된다고 해도 연구 계획이 절반이 넘은 상황에서 내 경력은 연구를 완료한 것과 똑같이 취급된다. 몇 년 일찍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이었다. 나를 붙잡아두고 있는 것은 그런 직업적 양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여자 때문이었다.
  그녀. 그녀를 그녀라고 부르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드. 그러나 대부분의 야만인들은 동족인 그녀의 이름을 ‘잇’에 가깝게 부른다. 다른 이름들처럼 모음이 명확하지 않으며 자음 역시 여리게 발음되는, 감탄사에 가까운 이름으로. 그러니까 야만인들은 아무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천연의 아름다운 별 하나. 내 원래 관찰 대상은 원래 이 집단이 아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그녀의 모습. 그녀를 보자마자 나는 집단을 이탈해서 여기에 들어왔다.
  그녀는 분명 스켈미르 모에서 내가 본 지적 생명체 중 가장 경이로운 생명체였다. 그 대상에 내가 이 행성에서 본 문명인 여자들까지 모두 포함해도 마찬가지였다. 야만인들은 그를 예언자라고 불렀다. 마법사나 무당과 비슷하지만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이한 개념이었다. 나는 그녀가 ‘예언’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사실 예언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작명’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을에 습격한 거대한 코끼리 같은 짐승을 마을 사람들이 잡았을 때 그들은 그것이 세상 저편에서 온 사자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생물은 그 지대에 있어서는 안 되는, 그들로서는 처음 보는 생명체였기 때문이었다. 그 괴물을 잡는 데 그녀가 어떤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괴물이 잡히고 난 뒤에 그녀가 나타나서 그 괴물을 “코타”라고 불렀다. 문명인이 보기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그 “코타”라는 이름 속에 ‘괴물’의 출현으로부터 발생한 혼란과 공포, 절망이 마치 봉인되듯 묻혔다. 부족은 이제 동요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그날의 사냥을 “슈아”라고 명명했다는 데 있었다. 문명의 언어로 그것은 ‘정벌’에 가까운 말이었는데, 괴물에 이름을 부여해서 봉인하고 괴물을 제압한 행위를 정벌로 명명함으로써 그녀는 단지 단어 두 개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이 인간 집단의 세상에 대한 지배를 개념화했다. 그것은 말할 수 없이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 그녀 역시 이 집단의 오염이 밝혀지면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L을 지금 제거해야 한다. 지금 정도라면 그의 출현은 곧 신화화될 것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재판권이 없다. 그러나 연구자가 저런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을 때 그 처분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연구자밖에 없었다. 우리는 현지 참여 관찰 중이었으므로 훈련된 연구자 이외의 어느 누구도 피실험 집단의 무리에 접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되도록 빨리 그를 제거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 밤 L은 야만인들이 특별히 마련해 준 제단, 나뭇잎을 두텁게 깐 투박한 돌 침대 위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에 야만인들은 머리에 돌을 맞아 죽어 있는 신의 시체를 발견했다. 물론 그 사건을 내가 ‘그 사건’이라고 지칭한다는 것은 내가 한 짓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야만인들과 나는 또다시 똑같은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가 그를 죽였을까?
  나에게 그 사건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느 야만인이 신을 돌로 쳐 죽일 수 있다는 관념을 가지고 살아간단 말인가. 야만인들의 고민도 그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불경한 인간이 신을 죽여서 옛날이야기에 전해 내려오는 대 재앙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키려 한단 말인가. 신이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그들은 경악했다. 어떤 자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어떤 자들은 연거푸 땅에 머리를 받으면서 울부짖었다. 그저 대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생긴 혼란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야만인들을 너무 야만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일 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존재론적인 의미에서 세상의 끝인 존재가 직접 사람의 몸을 하고 땅에 나타났다가 사람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도 역시 어마어마한 상실감을 가져다주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훌륭한 참여관찰자답게 그들과 똑같이 나무 위에 올라가서 우워우워 소리를 지르다 보면 곧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이 정도의 슬픔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동물적인 두려움 이상의 무엇인가를 느껴야만 한다. 어느 문명의 인간이나 다 그렇듯 야만인들은 그들의 무능력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 무기력함을 벗어나 세상의 경계선을 넘어서서 진정한 자아를 달성할 날을 진정으로 갈망하는 듯했다. 그들의 상실감은 그런 갈망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나는 나무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하는 대략 스무 명 가량의 피실험 집단 동족들을 보면서 그들이 느끼는 집단적 상실감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느꼈다. 그리고 울부짖었다. 우워우워. 그러다 보면 나 역시 실로 어마어마한 상실감을 어느새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격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나는 하늘을 보고 울부짖는 동시에 냉철한 이성을 유지해야만 했다. 도대체 이런 야만인들이 어떻게 신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 신을 죽인 자는 야만인이 아닌 것이다. 범인은 연구자인 것이다. 살해 동기는 나와 똑같다. 단지 그가 빨랐을 뿐이다. 그 말은, 나무 위에 매달려서 우워우워하고 야만스럽게 외쳐대고 있는 사람들 중에 나 말고도 다른 연구자가 더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이 연구 현장에 파견되기 직전의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바로 그 부담감이었다. 진짜 피실험자의 일부인 것처럼 행동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실험자 집단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 다른 숨겨진 연구자에게 발각되면 죽을지도 모른다! 막상 연구에 투입되고 난 뒤에는 그것 말고도 이런 곳에서 죽어버릴 이유는 수백 가지가 넘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다른 연구자의 존재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생존하는 방법을 몸에 익힌 지금은 타살의 위협만이 두렵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더 실감나게 야생의 몸짓을 해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무 밑에서 그녀가, 이드가 걱정스럽게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그 연구자를 내 쪽에서 먼저 찾아내서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유심히 무리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의 한 계절이 지나도록 나는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흔적 하나도 발견해 내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내 감시의 눈초리는 무디어져 갔다. 문득문득 아무 생각 없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내 스스로를 볼 때마다 나는 흠칫 놀라곤 했다. 모든 것은 의외로 평화로워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 평화 속에서 문득문득 느껴지는 긴장감 그리고 살기를 눈치 채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그 긴장감은 심해져 갔다. 그리고 결국은 하루도 편히 잠이 들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점점 메말라 갔다.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고 있었던 것은 야만인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그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눈치였으나 도저히 답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보통은 시신에 깃들여 있는 혼(spirit)이 귀신으로 살아나는 것이 두려워서 곧 매장을 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 학설로나 실제 연구 결과로나 정상적인 행동 양상이었다. 그러나 신의 시신인 경우에는 부활할 수 있다는 이 믿음 때문에 오히려 매장을 망설이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려 한 계절이나 지나고 나서야 부활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매장을 결정했던 것이었다.
  아직 족장이라고 부르기는 좀 이른 단계인 무리의 우두머리가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이것은 꽤 흥미진진한 대목이었다. 야만인들은 어떤 식으로 장례 의식을 구성할까? 나는 긴장 속에서도 이 대목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다른 야만인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나는 우두머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우두머리 자신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닌 듯한 눈치였다. 신이 죽었으니 뭔가를 하기는 해야 할 텐데 대충 할 수는 없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신의 노여움을 풀 수 있는 방법이 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드 역시 아무런 충고를 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의식 자체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는 일단 이상한 춤을 췄다. 그리고 나머지 야만인들에게 따라하라고 강요했다. 그는 쭈뼛쭈뼛 망설이면서 이런저런 동작을 취하고 짤막짤막한 그들의 언어로 아직 기도라고 부르기에는 우스운 구절들을 낭송하곤 했다.
  나는 이번에도 역시 우워우워 하면서 그들의 춤을 열심히 따라 추고 있었다. 거의 황홀경에 빠지다시피 신나게 춤을 추다가 나는 문득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격렬한 춤 동작을 갑자기 멈출 만큼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우두머리의 제사 방식은 어디서 많이 본 것이었다. <참여연구자 일반 행동 지침>. 그것은 참여연구의 결정적인 실수를 보완하기 위한 지침이었다. 이질적인 관찰자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찰의 오류를 범하게 되는 여러 가지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서 연구자는 피실험 집단의 일부로 완벽하게 동화되는 훈련을 받는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야만인들의 매장 의례’ 이런 게 적혀 있는 <일반 행동 지침>이라는 책을 달달 외우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바짝 긴장했다. 족장이 연구자라니. 보이지 않던 적의 정체를 드디어 밝혀낸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당혹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족장이 연구자였다니. 그렇다면 이 집단은 도대체 관찰할 가치라는 게 남아 있기나 한 집단일까? 족장은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정체를 노출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엉거주춤하게 제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연구 자체야 어떻게 되든 일단 목숨은 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례 중인 그 상황의 광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나는 느긋하게 그 광란의 춤 다음에 이어질 집단 성교를 상상했다. 그리고 그녀가 있는 곳을 눈으로 살폈다. 물론 그 다음에는 손에 피를 묻혀야겠지만, 나는 그녀를 안을 수 있다면 영원히 진짜 야만인으로 살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우워우워. 그렇게 열심히 춤을 추고 있다가 나는 문득 또 다른 깨달음에 이르렀다. 족장이 왜 저렇게 긴장하고 있을까? 저것은 연구자가 당연히 하게 되어 있는 일반 행동 지침인데, 그는 이 집단 안에 다른 연구자가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만약 족장이 신을 살해한 범인 자신이었다면 그는 그 사실을, 즉 다른 연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라야 한다. 족장 역시 신을 살해하려고 마음먹었다가 나처럼 다른 사람에게 선수를 빼앗긴 경우일 때만 다른 연구자가 정체를 숨기고 무리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처럼. 나는 또다시 동작을 멈추고 머리를 굴렸다.
  ‘피는 나중에 봐야겠군.’
  우오오 소리를 지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3의 연구자가 멍청하다면 그가 먼저 족장을 죽일 것이다. 그리고는 나의 존재를 모른 채 안심할 것이다. 그가 멍청하지 않다면 족장은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고, 사태는 더 복잡해진다. 하지만 그들을 제거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부족을 안정시켜야 한다. 오염이 알려지면 이 낙원도 저렇게 아름답게 춤추고 있는 그녀의 가느다란 발목도 끝장이었다.
  ‘일단은 축제나 즐기자. 문명을 가진 자들의 집단에서는 절대 즐길 수 없는 광란의 축제를!’
  나는 정신없이 춤을 췄다. 어렸을 적, 남들과 어울려서 즐겁게 몸을 흔들며 놀 줄 몰랐던 수줍은 연구자였던 나는, 스켈미르 모의 광란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발견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없이 자유로운 자아였다. 어느 날은 그렇게 신나게 춤을 추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가 내 곁을 맴돌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이 행성 피실험자 집단의 춤에 대해서 정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춤이 의식적인 유혹에 해당할 수 있는지 어떤지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문명인 남자가 여자를 유혹할 때 하는 은근한 눈빛, 낯은 목소리 같은 세련된 기술들을 아주 일부나마 사용한 쪽은 내가 먼저였다. 그것은 발각되면 죽을 각오를 하고 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기나긴 노력이 드디어 제대로 먹혀드는 것인지 아닌지조차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10년이나 섞여 살았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춤을 추고 있는 그녀가 숨이 막히도록 매혹적이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 후로 그녀는 춤이 무르익으면 늘 내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때도 그랬다.
  왜 그랬을까? 이드는 왜 나를 선택했을까? 꼭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드도 혼자 늙어 죽지는 않을 것이고 누군가 하나를 택하기는 하지 않았을까. 다만, 내가 연구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그녀에게 눈이 멀어 문명인의 세련된 느낌을 그녀에게 흘리고 말았을 가능성은 있었다. 이드의 통찰력이라면 그런 나를 통해서 이 실험 행성의 아슬아슬한 균열을 알아보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 황홀경 속에서 끝을 모르고 달려 나가는 내 영혼(soul)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나는 확신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무엇인가가 내 영혼과 그 격정적인 춤 모두를 멈추고 말았다. 그것은 놀랍게도 이드가 아니었다. 족장이었다.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은 족장은 절망 속에서 이렇게 외쳤다.
  “들켰군. 그만 합시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연구자가 숨어 있다는 거 알고 있어요. 지금쯤 내 목숨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으로 되어 있는 것도 다 알고 있고. 하지만 그쪽도 이제 이 짓이 의미 없다는 건 알 게 아니오. 보라고. 내가 족장이었다고. 얘들 연구해 봐야 당신들이 얻어갈 건 하나도 없소.”
  나는 흠칫 놀랐다. 흥겹게 들리던 타악기 소리도 뚝 멈췄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족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하마터면 정체를 드러낼 뻔 할 정도로 놀랐다. 족장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아픈 데를 찌르는 소리였다.
  그러나 나는 그 정적을 깨고 몇몇 야만인들이 족장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 그들은 족장의 말을 듣고 신을 보았을 때와 똑같은 놀라움에 빠져 있는 것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똑같이 우워우워 하는 것처럼 들리는 짧은 문장들밖에 말할 줄 몰랐던 그들의 우두머리가 신께 바치는 제사를 드리는 동안 신과 똑같이 빠르게 긴 문장을 말하는 능력을 얻은 것을 보고 그들은 신의 영혼(spirit)이 그들 족장에게 내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물론 그 깨달음은 잘못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단 그들과 똑같이 우워우워 하면서 족장 가까이로 달려가 무릎을 꿇고 넙죽 엎드렸다. 족장을 신의 대리인으로 만들어주는 대신에 내 정체를 안전하게 숨기자는 것이었다. 내가 달려들 무렵 다른 야만인들도 모조리 우르르 달려와서 엎드렸다. 타악기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까의 소리와는 다른 의미의 환호였다.
  족장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다가, 손짓으로 타악기 소리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만 합시다. 나도 이미 당신들 중 몇 명은 알고 있다고. 당신들도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서 될 일이 아니란 말이오. 내가 없어진다고 칩시다. 그런다고 당신들끼리 싸우는 게 끝날 것 같소? 내가, 이 무리에 25년을 살았소.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아. 다른 사람들 눈은 속여도 내 눈은 절대 못 속여. 지금 여기에 연구자가 몇 명이나 더 있는지 아시오? 내가 없어지면 당신들끼리 얼마나 골치가 아파질지 알아? 그렇게 자기들끼리 벌벌 떨면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 것 같소. 그만 하고 이 사업 정리합시다. 그리고 살아서 집으로 돌아갑시다. 내가 보기에 당신들 중에는 재능 있는 연구자들도 꽤 있으니까 창창한 미래를 생각해서 어서 나와요. 다 정리합시다.”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정말로 그렇게 많은 연구자들이 더 숨어있다면 족장 말대로 이쯤에서 그만 두는 게 좋았다. 하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이쪽에서 먼저 정체를 드러내게 만드는 속임수일 수도 있었다. 나는 족장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우워우워 소리를 질러대는 야만인들의 격정적인 몸짓을 보고는 그보다 훨씬 더 격정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오오오오오!
  그런데 그때 족장이 내 쪽을 보고 비웃듯이 한 번 웃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 말이야.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그만 됐어.”
  나는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눈으로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족장의 말을 그렇게 쉽게 시인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궁지에 몰린 족장이 절박한 심정으로 한번 넘겨짚은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흥분과 감격에 가득 찬 소리를 질렀다. 오오오오오. 마치 신의 대리인이 나를 지목해서 뭐라고 진리를 말해준 데 대한 희열 같은 것을 담고 있는 듯한 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스스로 우스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족장은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문명인의 웃음을 호탕하게 웃으면서 다시 한 번 나에게 말했다.
  “하하하하하. 그래그래. 재롱은 재미있지만 이제 그만 됐어.”
  나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감격의 소리를 질러 댔다. 우워우워우워! 그러자 족장은 나를 무시하고는 다른 사람을 열 명쯤 더 집어냈다. 그러면서 말했다.
  “어때? 더 지목해 볼까? 어른이 174명인 집단에 연구자가 내가 아는 것만 서른 세 명이야. 이제 그만 하시지.”
  그러자 수십 명의 연구자를 포함한 수백 명의 야만인들이 우워워 하고 일제히 지목된 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드디어 신의 대리인인 그들의 위대한 족장의 지목을 받은 자들이 머쓱한 표정을 하고 마지못해 일어나서 족장과 똑같이 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거의 기절할 듯이 놀랐다. 이드는 어쩌면 그 순간을 표현할 기가 막힌 단어를 생각해 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군요. 적어도 네 명이 넘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그럼 요 전에 그 연구자를 죽인 것은 당신입니까?”
  이런 소리를 하면서 유창한 언어를 구사하는 신의 사도들을 보면서 야만인들은 다시 한 번 세상의 경계를 체험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일어선 자들은 하나같이 가장 열심히 나무에 매달려서 우워워하고 소리를 질러 대던 자들이었고, 가장 열심히 광란의 춤을 즐기던 자들이었던 것도 같았다. 나는 그제야 머리를 긁적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 이 짓도 이제 못 해 먹겠네요.”
  그녀가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스르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신이 선택한 부족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그 일대에 퍼진 모양이었다. 소문이 퍼지면 퍼질수록 그 오염을 지우기 위해 절멸시켜야 할 지역도 늘어난다는 사실을 야만인들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야만인들이 그 놀라운 복음을 만방에 전하고 있을 무렵 우리는 회의를 하고 있었다. 족장까지 포함해서 딱 서른일곱 명의 연구자였다. 족장이 족장답게 여기에서도 먼저 입을 열었다.
  “어쩌다가 여기에 이렇게 많이 모이게 된 거요? 다른 곳에도 다 연구자가 이렇게 많은 거요?”
  누군가가 대답했다.
  “제가 떠나온 게 5년 전인데 그때도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연구소들도 다 1000세대 넘어가면서 워낙 체계가 없어져서 확인은 안 되지만 아마 스켈미르 전체 인구 10분의 1은 될 거라는 추산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들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했죠.”
  족장이 다시 말했다.
  “그럼 다른 마을에도 한 대여섯씩은 들어가 있겠구만. 그런데 이건 심하지 않소. 우리 때도 연구자 과잉 이야기는 있었지만 이 마을은 서른일곱이 뭐요? 학계는 완전히 통제력을 잃어버린 거요? 이렇게 많이 중복시키다니.”
  “사실상 무의미하게 됐죠. 학계 시스템이라는 게. 연구자들도 워낙 문명 퇴화가 심하게 되다 보니 그 기계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안 남았을걸요. 사실 이 중에서 우리가 연구한 걸 학계 시스템에 팔면 자원이 제공된다는 것 말고 그 연구를 받아서 누가 어떻게 써먹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누가 있소? 어디 학계 시스템 제어 기술이 아직 남아 있는 데가 있기는 있소? 사실 우리도 이제 다 카스트지 뭐요. 워낙 연구 팔아서 얻는 자원이 막대하니 대대로 이 짓만 하고 있고.”
  야만인일 때 누루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자가 말했다.
  “소문인데요. 스켈미르 모 연구자를 연구하는 참여 연구자가 있다고 하던데요. 그 정도면 할 말 다 한 거 아닐까요.”
  연구자 카스트화는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완전히 갖추어진 문명이 단지 연구 목적으로 만든 기능적 행성에 불과했지만, 이제 그 문명 중심과는 단절되어 버리고 그 특화된 연구 기능을 위해 고대의 첨단 문명이 마련해 놓은 학계 시스템이 너무나 압도적인 자원 공급처인 나머지 우리는 잘 다루지도 못하는 학계 시스템을 위해서 대대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류 문명의 중심이 이미 이 행성에서는 절대로 닿지 못할 어느 곳으로 옮겨가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우리는 뒤쳐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야만인이고 더 위대한 문명의 연구자가 우리 사이에 섞여서 우리를 연구한다. 그가 입을 여는 순간 우리는 세상의 끝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입을 헤 벌리고 놀라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가 이 부족에 연구자가 이렇게나 많이 모여들게 한 바로 그 이유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어쩔 거죠? 저 여자는? 내가 알기로 저 여자는 절대로 연구자가 아닌데.”
  그녀. 나를 이 부족으로 오게 한 그녀. 그리고 나 말고도 대략 서른 명 정도를 원래 계획을 변경해 가면서 이 부족에 머물게 만든 아름다운 이드가 거기에 앉아 있었다.
  신의 제삿날 그녀가 우리를 따라 일어섰을 때, 처음에는 나도 그녀가 연구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녀는 우리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고 있었다. 그녀는 동족들에 비해서 과도하게 똑똑하기는 했지만 신은 아니었다. 그녀는 뭔가 눈치를 챘던 것이다. 이드는 살아남으려면 그때 우리를 따라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그 탁월한 예지력으로 깨달았던 것이거나 아니면, 내가 상상하는 게 맞는다면, 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거의 영문도 모르고 나를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아마도 그녀에게 나는 세상의 아슬아슬한 균열 그 자체였으니까.
  “어쩌죠?”
  내가 물었다. 그러자 족장이 대답했다.
  “어쩌긴. 돌려보내야지. 데려갈 건가?”
  “하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뜻 주위를 둘러보자 다른 사람들도 다들 아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내가 야만인들 사이에서 우웍우웍거린 것처럼, 우리 사이에서 다소곳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문명인의 미소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애쓰고 있지만, 우리는 그녀를 돌려보내야 한다. 돌아간 곳에서 그녀는 지워져야 한다. 침묵을 깨기가 두려웠지만 나는 이렇게 말해야 했다.
  “데려가겠어요.”
  그러자 족장이 대답했다.
  “어디로? 이 여자가 얼마나 많은 전염병을 옮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검역은 어떻게 통과할래?”
  “전염병은 옮기지 않아요.”
  “검역소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연구자라고 하죠 뭐.”
  그러자 족장은 한숨을 내쉬며 차근차근 말했다.
  “자네 마음은 알아. 다들 그런 마음이야. 저 아이, 이대로 돌려보내고 싶지는 않겠지. 하지만 여기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해도 그 아이는 감당할 수 없는 문명의 껍데기에 갇히게 될 거야. 자네만 해도 스켈미르를 떠나서, 여기에서 제일 가까운 시시타 도심 한복판에 데려다 놓으면 적응할 수 있겠나? 그 문명인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면 열심히 우워우워 하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겠어? 이 아이도 그래. 그건 이 아이한테 더 괴로운 일일 뿐이야. 못 데려가. 이 아이는 야만인이야.”
  다시 침묵이 흘렀다. 다른 사람들도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드는 야만인이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족장이 한 말쯤은 다 알고 있었다. 이렇게 떠나보내야 하나. 10년을 바라봤는데, 정말 이렇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나. 다만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그녀만이 영리하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우리를 돌아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이틀 후에 우리는 마을을 나서서 세 그룹으로 나뉘어 각자의 연구소로 떠났다. 그 세 그룹 어디에도 이드는 끼어 있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나는 스무 번쯤 뒤를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는 서른 번쯤 더 뒤를 돌아보면서 마을을 떠났다.
  떠나기 전날 나는 침울한 목소리로 이드에게 말했다.
  “우리가 떠나고 40일쯤 지나면 족장의 연구소에서 조사자들을 보낼 거야. 그 사람들이 와서 혹시 남아 있는 연구자들이 없는지 확인하고 갈 거야. 그들이 떠나고 나면 곧 하늘에서 거대한 불덩이가 떨어져서 새도 나무도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거야.”
  나는 그 이야기를 야만인의 언어로는 더 쉽게 말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답답하게 생각하면서도 반짝이는 눈으로 내 이야기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집중해도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던 이드는 마지막 부분만 반복해서 되물었다.
  “새도? 나무도? 없어?”
  “응. 새도. 나무도.”
  나는 울먹이는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이드는 슬픈 눈으로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한참을 더 생각하더니 이렇게 되물었다.
  “사람도? 땅도?”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응. 사람도. 하지만 땅은 남아.”
  이드는 근심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 때문에 나는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에게 해 주려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낯선 사람들은 신이 아니야. 그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이드가 신이 돼야 해.”
  “이드? 신?”
  “그래. 신. 나처럼. 나처럼 해. 나를 봐. 나처럼 해야 해.”
  “너? 너처럼?”
  “그래. 나처럼.”
  다시 이드가 애절한 눈빛을 하고는 나에게 물었다.
  “너는 떠나? 언제 없어?”
  언제 떠나느냐는 말이었다.
  “내일. 떠나. 내일부터 못 봐.”
  “이드 오늘 너처럼. 낯선 사람들 오면 너처럼. 오늘 너를 봐. 너는 떠나. 그때 너처럼.”
  “그래. 알아. 니가 나를 볼 수 있는 날은 오늘밖에 없어. 오늘 나를 잘 보고 그때 낯선 사람들이 올 때까지 잘 기억했다가 나처럼 해. 그러면 낯선 사람들이 이드를 신으로 생각하고 데려갈 거야.”
  나는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계획이 어린아이를 떼어 놓을 때 하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이드 데려가?”
  “응.”
  “이드 데려가. 너 있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거짓말을 해야 했다.
  “그래. 그 사람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이드를 데려와. 거기에 내가 없으면 낯선 사람들에게 내 이름 말해. 나한테 데려다 달라고 해.”
  “이름? 너? 와타카.”
  “아니. 와타카 아니. 앤리카.”
  “앤리카?”
  “그래. 앤리카.”
  그날 하루 종일 나는 이드와 함께 있었다. 그날이 내가 그녀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문명인처럼 음식을 뜯어 먹는 법과, 문명인처럼 중병에 걸린 척 하는 법과, 문명인처럼 긴 말 시키지 말라고 거절하는 법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 꼭 이것까지 가르쳐야 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문명인처럼 안아주는 법과 문명인처럼 귀에 대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법과 문명인처럼 입을 맞추는 법과, 마치 문명인이 평생 자신이 만나 본 사람 중에서 가장 경이로운 사람과의 마지막 날을 보낼 때처럼 최대한 의연해하면서도 슬픔을 보이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마을을 떠나기 전에 오십 번을 뒤돌아본 후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는 백 이십 번쯤 뒤를 돌아보며 연구소에 도착했다. 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스켈미르 모를 떠나 우주선으로 3년 거리에 있는 우 계열 정착 행성에 정착했다.
  내가 스켈미르를 떠난 것은 그 소식을 듣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그러나 5년이 지난 뒤에 결국 나는 그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L의 강림 사건도 그렇고 신이 축복한 마을에 대한 개념이 지나치게 유포된 것도 그렇고 스켈미르의 오염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심각해서 우리가 떠나고 1년이 지난 뒤에 모 표면의 거의 절반가량을 파멸시켰다고.
  그 소식을 들은 날 나는 거의 신을 잃은 것과 같은 상실감을 느끼면서 울었다. 우워우워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는 형편은 좋지 않았다. 스켈미르에 있었으면 더 잘 먹고 살기는 했겠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척박함이 마음 편했다. 나무라도 있었으면 기어 올라가서 울었을 텐데 나무를 본지도 오래다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싱거운 미소가 얼굴에 그려지는 것을 느꼈다.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면서 나는 이드가 만든 단어들을 발음해 보았다.
  “마드.”
  친구가 되다.
  “맛드.”
  영원히 친구가 되다.
  “마맛드.”
  영원한 세월이 지나도 다시 만나는 친구가 되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이드가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

* 주

1) 이들의 평균 수명이 생각보다 길다고 느끼는 독자들은 다음의 사실을 주지하기 바란다. 스켈미르 모의 공전 주기는 지구의 공전 주기보다 현저하게 짧아서 약 11개월 정도이다.

2) 세대를 세는 기준은 스켈미르 북부 대륙 동쪽의 유력 씨족인 호타호타 씨족 장자 기준이다. 현재 씨족 자체는 문명 퇴화되어 신화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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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 No Profile
    yunn 06.06.04 09:36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중반에 많이 웃었네요 :)
  • No Profile
    배명훈 06.06.04 15:30 댓글 수정 삭제
    늘 웃음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No Profile
    ida 06.06.05 20:24 댓글 수정 삭제
    저도 중반에 많이 웃었습니다. (혹시 전부일까봐 걱정했습니다...) 정말 멋진 이야기네요.
  • No Profile
    배명훈 06.06.06 17:38 댓글 수정 삭제
    웃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SF가 아니면 다룰 수 없는 시공간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 No Profile
    jxk160 06.06.06 22:21 댓글 수정 삭제
    저는 업데하기 전에 이미 읽은지라... 답글을 달까 말까 망설였습니다만, 매우 즐겁게 읽었습니다 >.
  • No Profile
    배명훈 06.06.07 09:37 댓글 수정 삭제
    업데이트되기 전에 읽어도 즐거운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ㅋㅋ
  • No Profile
    06.06.07 14:30 댓글 수정 삭제
    저는 연구자를 연구하는 연구자가 등장하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습니다. 허허 =ㅅ=
  • No Profile
    배명훈 06.06.07 22:14 댓글 수정 삭제
    사실 그 이야기는 다른 데다 썼습니다. 연구자가 아니라 절대자로 등장시켰죠. 여담입니다.
  • No Profile
    스머프 06.07.08 16:56 댓글 수정 삭제
    결말이 맘에 들어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No Profile
    depeche 06.07.11 08:36 댓글 수정 삭제
    '처음에는 완전히 갖추어진 문명이 .....학계 시스템을 위해서 대대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꽤 긴 이 문장은 통사적으로 정확히 이해가 안 됩니다. 저만 그런건가요? 문장을 끊어주시거나 좀 고쳐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근데 해피엔딩인건가요?
  • No Profile
    배명훈 06.07.12 08:36 댓글 수정 삭제
    그렇네요. 제보 감사.
    해피엔딩인지 아닌지는 예, 아니오로 대답해야 하나요? 그렇게 대답할 수 있게 쓰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 No Profile
    배명훈 07.03.20 10:39 댓글 수정 삭제
    특집호에 그 질문들 따라가다보면 나중에 만나게 되는 장르 중에서 SF 부분을 맡아서 쓴 글입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SF스럽게 써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인데요, 중간 부분은 아주 우연히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아주 우연히 재미있게 써져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재미있게 쓸 의도는 아니었다고나 할까.
    처음에 의도했던 마지막 부분은, "만남"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이걸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건 이른바 오독할 권리를 가진 독자의 오독이 아닐까 싶고. 얘들이 왜 이렇게 꼭 만나야 하는가를 지적하신 분들이 있었지만 저는 왜 이유가 있어야 하는가 하고 답하곤 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단일한 공간에 존재하지만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아주 여러겹으로 중첩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만남인데요,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이 자기가 속해 있는 인식론적인 한계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모두가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니죠. 중첩되어 있는 다른 세계를 꿰뚫는 눈을 가지고 있고 결국 그 세계의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인간! 그런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렇게 힘겹게 껍질을 깨고 난 다음에나 오는 만남이 주는 안도감,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느낌. 그게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안도감이니, 무슨 느낌이니 하는 건 전혀 안 썼습니다만, 딱 한 문장으로 끝나는 결말 뒤에는 그런 말들이 들어있었겠죠.
    그래서 해피엔딩인지 아닌지는 대답할 수 없답니다.
  • No Profile
    볼티 08.03.11 16:22 댓글 수정 삭제
    비유적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아무튼 하루만에 익히다니. (덜덜덜) 이드는 먼치킨. O_O
  • No Profile
    배명훈 08.03.14 06:01 댓글 수정 삭제
    이드는 인간을 둘러싼 문명의 껍데기 이면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초인이죠.
  • No Profile
    이형 08.04.07 22:24 댓글 수정 삭제
    우워우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
    누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우워우워와, 아무도 안 시켰는데 혼자 하고 있는 우워우워에 대해서. 그래서 중반부가 저는 좀 고통스러웠는데 (ㅎㅎ) 결론이 따뜻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 No Profile
    배명훈 08.04.08 10:14 댓글 수정 삭제
    중반부가 왜 고통스러우셨을까 궁금했는데, 생각해 보니 알 것 같아요. 우워우워. 힘내세요.
    인도영화 <옴 샨띠 옴>에 나오는 "고통의 디스코"라는 노래를 적극 권해드리고 싶어요. 샤룩칸이 괜히 물뿌리면서 춤추던 그 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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