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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단편 나는 고양이다봉

2006.10.28 00:5310.28

readingfantasy.pe.kr  시작은 '고양이도 말을 하지 않을까?'라는 박군의 말에서부터였다. 그리 나른하지는 않은 오후. 비가 오고. 박군은 인터넷에서 뭔가 장문의 글을 읽는 듯했다. 나는 그것이 고양이의 구강구조학적 임상실험보고서가 아닐까 생각했으나 단순히 소설일 뿐이었다. 박군은 소설의 끝을 읽은 직후처럼 보였다.

  나른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한가하지도 않은 오후였다. 비가 오고. 나는 내 책상에서 워드프로세서를 통해 레포트를 쓰는 중이었지만 슬슬 지겨워지던 찰나였다. 인간성의 회복에 대해 관심은 있었지만 그것을 이론을 통해 분석하는 사회복지학에 대해선 나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벌써 수시간째 인터넷을 통해 잡다한 자료를 모은 나는 정신이 지쳐 있었다.

  내가 내뱉은 대답은 박군으로 하여금 현대 아마추어 환상소설의 흐름에 대해 억측과 비약을 근거로 한 장대한 보고서 - 그 보고서는 아마도 착한 박군만이 알아볼 수 있는 요술종이일 것이다 - 를 낭독하게 하는 수고를 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 다음으로 대꾸한 말은 박군으로 하여금 환상 소설과 판타지 소설의 장르적 특성의 차이와 상하위적 관계에 대한 짧은 보고서를 낭독하게 하는 수고를 하게 만들었다.

  "결론은 이 시대의 현대인들은 고양이가 말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지."

  박군은 자랑스럽게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것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가진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하지는 않았다. 박군 또한 그것의 오류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박군의 뻐기는 듯한 태도는 그가 농담을 할 때에 주로 취하는 것으로 스스로는 '오류를 무시하는 태도'라고 일컫는다. 나는 그와 함께 심오한 농담을 더 심화시켜 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어떤 언어를 사용할까?"

  "그야 프랑스어지!" 박군은 너무 자신있게 말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을 때 박군이 느낄 상실감에 대해 나는 걱정이 되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박군은 마침내 고양이의 구강구조학적 임상실험보고서에나 나올 법한 특강을 시작했다. 그는 고양이가 '야옹'이라고 말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토록 복잡한 발음을 써가며 울음소리의 발음을 적어야 하는 동물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발음을 가진 나라는 프랑스라는 근거를 들어가며, 박군은 자신의 얼굴을 익어가는 풋고추의 모습을 재현하는 실감나는 자료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나는 그 붉은 얼굴을 바라보며, 언어의 불완전함에 대해 설명하거나 '야옹'이라는 음성어가 한국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여 그의 얼굴을 풋고추로 만들지는 않았다.

  나는 그의 의견에 강하게 동감을 표했다. 우리는 벅찬 감동을 느꼈고, 동감 하나로 인해 우리의 우정을 보다 진하고 뜨겁게 변화시킨 나의 태도에 대해 우회적으로 칭찬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대화의 진짜 뜻에 주목하게 되었다.

  '고양이는 프랑스말을 한다.'

  그 때, 그러니까 우리가 실의에 빠지기 직전이였다.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 힘이 미약하여 창문에 빗줄기 부딪히는 소리로 오인할 수도 있었으나 나는 잠깐의 정적 속에 그 소리를 낚아채었다. 창문에는 고양이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고양이는 몸이 긴 걸로 봐선 나이를 조금 먹은 고양이 같았다. 갈색과 검정색과 흰색이 예쁜 얼룩무늬를 이루는 보통의 고양이였다. 그 고양이가 흰 발을 유리창에 쿵쿵- 부딪혀대고 있었다. 박군과 나는 창문으로 다가가 창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고양이가 내 품에 안겨져 왔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진리를 세상의 진리로 만들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고양이에게 물었다.

  "이봐, 고양이들은 모두 프랑스어를 쓰는가?"

  "いいえ(아니오)."

  박군은 사람들이 고양이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편견의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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