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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단편 요한의 여자친구

2006.08.31 00:5408.31

readingfantasy.pe.kr  밤 11시의 그 카페에는 요한의 친구들이 있다.
  카페의 자리 한구석에는 요한과 그의 여자친구가 앉아있었다. 요한이 커피를 시켜 가지고 온 사이에, 그의 친구A, B, C 가 나타난다.
  요한은 최근에 사귀게 된 여자친구를 친구들에게 소개 시켜줄 참이었다. 여자자체를 좋아하는 것에 비해, 딱히 그 존재자체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요한으로서는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의 친구들로는 그녀를 소개 시켜달라고 아우성쳤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요한의 여자친구역시 친구들에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나도 만나보고 싶어. 요한 오빠의 친구들이란 사람들을 말야."
  그래서 결국 요한은 여자친구와 친구A,B,C를 카페로 초대했다.

  "요한오빠는 어떤 사람이에요?" 하고 요한의 여자친구가 대뜸 물어왔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후, 서로에 익숙해졌을 때의 일이었다.
  "어떤 사람이냐니, 그냥 좋은 녀석이지. 여자친구라면서 그런 질문을 물어오면 이쪽이 곤란하군." 하고 친구A가 대답했다.
  "솔직히 요한 오빠는 여간해서는 자기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니까." 하고 그녀가 변명하듯이 대답했다. 요한은 이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뭐든지 좋아요. 옛 여자 관계라던가, 뭔가 엽기스러운 버릇이라던가." 그렇게 말하고는 요한을 향해 그녀는 쿡쿡 웃었다. "걱정 말아요, 어떤 과거가 나오던 간에 이해해줄 수 있으니까. 과거는 과거일 뿐이잖아요, 안 그래요?"
  "맞는 말이야." 하고 요한도 미소 지었다.
  그녀의 질문에 친구들은 난처해졌다. 하나, 둘, 요한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어떤 대답을 하던 간에 요한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을 이야기 같은데?" 하고 농담식으로 화제를 끝맺으려 했다.
  "상관없어." 하고 요한이 덤덤히 대답했다. "그다지 켕기는 과거따윈 없으니까."
  "정말이야?" 하고 요한의 여자친구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요한도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정말로 알고 싶다면,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캐내는 게 가능하겠지."

  그것을 오케이 사인으로, 요한의 친구들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한은" 하고 이야기는 시작됐다. "그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지. 대학은 다른 곳에 다니지만, 가까운 곳이라 종종 만나곤 하지. 사실 그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말이 없군. 아가씨도 알 겠듯이 평소에 그는 조용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 그러한 주제에 날카롭지." 대부분 나쁜 이야기는 없었다. 오히려 좋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기대 밖의 너무 평범한 이야기에 요한의 여자친구는 따분한 표정을 지었고, 친구는 그 쯤에서 이야기를 적당히 끝마쳤다.
  "그걸로 끝이에요?" 하고 여자친구가 시시하다는 듯이 물어왔다.
  "그럼 옛 여자이야기라도 해줄까?"
  그에 여자친구는 굉장한 호기심을 보였다. 친구A가 요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겠지?"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까지 요한이 사귄 여자친구의 수는 대략 6명 정도가 되지."
  "와, 많기도 해라. 제법 바람둥이였는데?" 하면서 여자친구가 찌릿 요한을 노려보았다. 요한은 무안해진 듯 미소 지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게 6명 정도지, 실제로는 두 배 정도 더 있을 거야. 저 녀석은 친구들에게 여자친구 자랑하기를 좋아하지 않거든." 친구B가 말했다. 나머지 친구들이 "그래그래" 하고 동의했다. "아무도 모르게 여자를 사귀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여기고 있지."
  "하지만 아가씨가 알아줬으면 하는 것은, 그는 결코 동시에 여러 여자를 만나거나, 하는 바람둥이적인 행동은 하지않아. 여자아이를 사귈 때는 언제나 진심이지. 열정적으로 그녀를 구애하지. 다만 끝낼 때는 화끈하게 끝내버릴 뿐이야."
  "헤어질 때는 미련 없이, 깨끗하게?"
  "그런 거지." 친구B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그러자 여자친구는,
  '오빠, 제법 쿨 한데?' 하고 놀리듯이 속삭였다. 요한은 그저 웃기만 했
다.

  그때쯤에 친구A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한의 여자친구는 정말 가지각색이었어. 사실 그는 여자친구를 별로 자랑하지 않아서 많이 본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여자 친구들은 제법 가지각색이었지. 사실 그에게는 정해진 취향이라는 것이 없거든.
  한 여자는, 굉장히 섹시한 여자였지. 섹시한 여자는 다리가 굉장히 길고, 가슴이 유난히 풍부했어. 얼굴도 굉장히 예뻤지. 그녀의 말로는 코 수술을 했다고 하던데, 나는 성형수술을 굳이 하지않았더라 해도 그녀는 선천적으로 그런 섹시함을 지니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마치 코가 뭉툭한 흑인여자가 섹시해 보이듯이 말야. 그녀는 섹시하고 도도했지만, 마음이 착했어. 늘 짧은 스커트에 브래지어 끈이 노출되는 옷을 즐겨 입었지만, 실제로는 성에 대해서는 굉장히 담백한 편이었어. 그녀는 처녀성을 지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었거든. 그 육체는 성을 자극할 만큼 굉장히 섹시하면서 말이야. 뭔가 아이러니 하지않아? 다행스럽게도, 요한 역시 섹스, 그 자체에는 흥미가 없었지. 그런 그녀가 지금도 여전히 그런 가치관을 지니고 있을지는 알 수 없어. 두 사람은 재작년에 헤어졌으니까."
  이야기가 끝나자, 이번에는 친구B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여자아이는 굉장히 귀여운 아이였지. 섹시한 것과는 전혀 다른 타입의 귀여운 아이였어. 키도 굉장히 작고, 피부도 중학생처럼 희고 부드러웠지. 사회적인 시각으로는 벌써 성인일 나이에도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말투를 지니고 있었지. 액세서리 같은 것도 늘 '키티'나 '푸우' 같은 것만 착용했어. 미인이라면, 미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굉장히 호감 있는 여자아이였지. 물론 그 나름대로의 성숙한 면도 적지는 않았지만, 그녀 역시 자신에게서 풍기는 그 나이에 맞지않는 귀여움을 일종의 무기로서 이용하는 아이였어. 요한은 그녀를 꽤나 좋아했던 거 같아. 아저씨들에게도 제법 인기가 있는 아이였지."
  이야기가 끝나자, 이번에는 친구C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요한이라 할지라도 늘 미인인데다가, 그저 예쁘고, 기분 좋은 향수냄새만 풍기는 여자아이를 사귀는 건 아니었어. 이미 언급했듯이, 그의 취향은 정말 가지각색이었거든. 한번은 굉장히 못생긴 여자아이와도 사귄 적이 있다니까. 정말 구제불능 인 아이였어. 현대과학에 의존해도 구제할 수가 없는 아이였지. 그 아이도 그런 것을 의식한 듯, 그다지 남자를 유혹하는데 열성적이지도 않았지. 하지만, 착한 아이였지. 사람을 배려해줄 줄 알았지. 그녀는 요한을 사랑했지."
  친구들의 이야기에 요한의 여자친구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정말, 오빠는 다양한 여자친구를 사귀었군요."
  "요한은 그다지 여자아이를 외모로 평가하는 남자가 아니었거든."
  "진정한 의미로의 바람둥이였군!" 하고 요한의 여자친구가 농담식으로 말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 하고 A가 말했다. 그러자 여자친구는 다시 호기심어린 눈빛을 띄었다.
  "어째서 그의 여자 친구들은 늘 가지각색일까, 하고  생각했었어." 하고 B가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
  "왜냐하면 그는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야." C가 말했다. "그는 어떤 여자든지 사귈 수 있었어.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그가 어떤 여자든지 사랑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야. 그는 실제로는 사랑하지 않았어. 그랬기 때문에 어떤 여자든지 사귈 수 있었던 거야."
  "즉 그는 아무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다는 말이지." 이번엔 A,B,C가 합창했다.
  요한은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며 커피를 들이키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요한의 여자친구가 고개를 돌리며 요한에게 물었다.
  "정말이야? 오빠는 정말 그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않는 거야? 아니 사랑할 수 없는 걸까?"
  "설마" 하고 요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너만큼은 사랑하고 있지."
  그에 여자친구는 만족한 듯이 빙그레 웃었다.
  요한도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질 때, 친구A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토록 많은 여자와 사귄 요한의 여자친구들, 그리고 그 관계에는 한가지 고정적인 규칙이란 게 있었다는 사실이야.
  그것은 그의 행동으로, 과거의 6명의 여자친구 들에게서 발견되었지. 사실 발견이라고 할 것도 없었어. 다만, 4명째의 여자친구 때부터 우리는 그의 여자 친구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점을 파악했고, 후에도 같은 규칙에 의해서 여자친구를 만들지 않을까, 예측할 수 있었던 거지. 물론 그 예측은 들어맞았어."
  요한의 여자친구는, 이번에는 과연 무슨 말이 나올까, 기대하는 표정으로 친구들에게 열중했다.
  "아가씨, 혹시 최근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적 있지않아?" 이번에는 친구B가 물었다.
  "그래요." 하고 여자친구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요한을 살며시 곁눈질했다. 남자친구인 요한의 앞에서는, 옛 남자의 이야기는 꺼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은 여전히 종이커피 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이번엔 친구C가 말했다. "그리고 그 남자친구는 요한과는 친구 사이이겠지?"
  "딱 알아 맞추는군요." 하고 결국에는 그녀는 옛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역시 저보다 두 살 많은 오빠였어요. 요한 오빠와는 동갑인. 요한 오빠와 만나게 된 계기 역시, 옛 남자친구의 소개 덕분이었죠. '이 친구는 참 좋은 녀석이야.'하고 그가 요한 오빠를 내게 소개시켜주었지요. 그때부터 나는 요한 오빠에게 서서히 끌리기 시작했고. 그래요. 요한오빠가 좋아졌어요. 마침내는 당시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보다도 더욱 강렬히. 솔직히 가벼운 여자라고 비난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견딜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난 요한 오빠에게 굉장히 끌리고 있었으니까."
  "이를테면,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요한을 원하게 되었다는 것?" 하고 친구A가 물었다.
  "그래요." 하고 그녀가 대답했다. "하지만 오해는 말아주세요. 난 그렇게 가벼운 여자는 아니니까."
  그러자 친구들은 손을 내저으며, "오해따위는 하지않아. 우린 아가씨를 이해하고 있으니까." 하고 대답했다.
  "그래, 난 그게 무슨 의민지 알고 있어. 설령 남자가 있더라도, 여자쪽에서는 요한에게 끌리게 되어있지. 왜냐하면 요한에게는 그런 '특별한 매력'이 있거든." 이번엔 친구 B가 말했다.
  "동시에, 그것은 요한의 버릇이기도 하지."하고 친구C가 잘 안다는 듯이 설명했다. "요한에게는 한가지 특수한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이미 상대가 있는 여자를 유혹해낼 수 있다'라는 거야. 이미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아이를 유혹해내는 굉장한 능력이 있지.
  동시에 그는, '그런 여자들'밖에 관심을 가지지 못해. 취미가 가지각색인 이유는 거기에 있어. 이를테면, 그는 남자들에게서부터 '여자아이를 뺏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거야. 그것을 즐길 뿐이지.
  정확하게는 친구의 여자를 빼앗는다는 것을 즐거워해. 보람이라고 여기지.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는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러면서도 우정을 유지하려고 해, 그 남자들과 말야. 딱히 그가 그 남자들에게 우정을 느끼기 때문은 아니지.
  다만 그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 '자신이 빼앗고, 그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자신이 남자들을 상처 입혔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아.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빼앗았다, 라고 생각하기 전에 그저 '여자가 남자를 떠났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그랬기에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실제로 그럴지도 몰라. 여자아이는 남자의 소유물이 아니니까. 여자아이가 요한을 사랑한 시점부터는, 그녀는 자유롭게 떠나가도 별수 없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요한의 행동이 남자들을 상처 입힌다는 것이지. 그리고 그는 명백하게 그것을 즐기고 있는 거야. 빼앗는 행위자체를 말야.
  재미있는 것은, 그는 '다른 남자의 여자'를 빼앗을 때 만큼은, 정열적이지만 말야. 여자아이를 실제로 손에 쥐게 된 순간부터는, 그 여자아이에게서부터 흥미를 잃어버린다는 거야. 물론 한달 정도는 약간의 감정이 남아있겠지. 하지만, 그는 곧장 흥미를 잃어버려. 왜냐하면 그가 원했던 것은, '여자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이 아닌, '남으로부터 무언가를 빼앗는다' 라는 거니까."

  여자친구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요한 오빠, 제법 사악한데?"
  이번에 요한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에요." 하고 요한의 여자친구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오빠가 그런 짓을 할거라고 생각치도 않고요." 하고 그녀는 되도록 요한을 변호하려 했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지." 하고 친구 C가 대답했다. 그러면서 친구C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이건 사실이야. 요한의 그런 잔악한 점이라던가, 그가 곧장 얻은 여자에게서 흥미를 잃어버린다는 사실 역시. 왜냐하면 명백한 증거가 있거든.
  그것은, 우리 모두가 요한에게 한번씩 여자친구를 빼앗긴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거야. 우리는 모두 그에게 여자친구를 빼앗겼었지. 우리 말고도 우리가 아는 한, 3명이 더 있어. 하지만 그 보다 더 많이 있을 지도 몰라."
  "그래, 그 섹시한 여자는 바로 내 여자친구 였지." 하고 A가 말했다.
  "그 귀여운 여자아이는 바로 내 여자친구 였고." 하고 B가 말했다.
  "못생긴 여자아이는 바로 내 여자였어." 이번엔 C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요한에게 여자친구를 빼앗겼지. 귀여운 여자아이도, 섹시한 여자아이도, 못생긴 여자아이도. 참고로 그 못생긴 여자아이는 바로 내 여자친구 였지. 그래, 못생겼어. 하지만 굉장히 좋은 아이였어. 정말로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내게 진심으로 대해줬던 아이였지. 하지만 그녀 역시 요한을 만나버린 이상, 그에게 빠져버릴 수 밖에 없었던 거야. 요한은 내게서 그녀를 빼앗기를 원했고-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했었고-, 그녀는 요한에게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지.
  '난 이제 너와 사귀지 않을 거야. 사실 남자가 생겼거든. 당신의 친구야.' 하고 그녀는 나를 떠나버렸지. 아니나 다를까, 요한이 그녀와 사귀기 시작하더군. 그리고 사귄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그녀를 걷어차버렸어. 그녀는 어디로도 갈 곳이 없어졌지. 현재 그녀와는 연락이 완전히 끊긴 상태라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몰라.
  어쨌든 그런 거야. 우리는 모두 요한에게서부터 상처를 받고 있지. 하지만, 여전히 그와는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물론 그에게 화를 내고 떠나간 녀석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와는 친구로 남아있지. 그 이유는,
1.        그는 자신이 우리에게 '악랄한 짓을 했다'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 그랬기에 어느 정도 그의 순진한 행동을 용서할 수 있었는지도 몰라. 혹은,
2.        순전히 우리가 속이 좁았는지도 모르지. 설령 무참히 상처를 입었더라도, 누군가를 경멸할, 저주할 용기가 없을 정도로 나약했는지도 몰라. 그렇기에 우리는, 그를 저주하고 떠난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의 친구로 남아있을 수 있는 거겠지.
3.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우리를 철저히 상처 입힌 악마 같은 녀석에게 달라붙어서, 낱낱이 그의 약점을 하나하나 바구니에 주워 담는 거야. 그리고 그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철저히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라.
  물론 위의 세 가지 중에 어느것이 확실한 이유인지는 우리도 알 수 없어.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인걸, 확고하게 알아낼 수 없지.
  다만 아가씨를 위해서 한가지 충고를 해줄까?
  아가씨 역시 요한과 사귀기 시작한 시점에서,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그에게서 반드시 채여 버리고 말 거야." 그는 확신하듯, 요한의 여자친구를 노려보았다.
  "그래그래, 맞는 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하고 A가 거들었다. "왜냐하면, 아가씨가 요한과 사귀게 된 방식이, 이제까지와 똑같은 걸."
  이번엔 B가 거든다. "요한의 친구에게, 아가씨라는 예쁜 여자친구가 있는 거지. 요한은 아가씨의 존재를 알고, 아가씨를 빼앗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거야. 그래서 요한은 당신에게 접근했지. 그리고 결국엔 빼앗는데 성공했어. 아가씨는, 자신이 요한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그건 틀렸어. 아가씨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가 요한에게 홀려버린 거야."
  이번엔 C가 거든다. "그리고 이제까지 반복되어 왔듯이, 요한은 아가씨에게 흥미를 잃어버릴 거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말이지. 왜냐하면, 이미 말했듯이 요한의 흥미는, '다른 사람에게서부터 무언가를 빼앗는 것'이지, '아가씨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거든."

  -요한의 흥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부터 무언가를 빼앗는 것-

  이번에는 A,B,C 모두가 옳다는 듯이 동시에 손가락을 꺼내 들며, "그래 맞아. 아가씨는 곧 요한에게서 차이게 될 거야. 잠깐 정신을 판 사이에,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싱크대에 쏟아 붓듯이 말야. 그는 아가씨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리게 될 거라구." 하고 합창하기 시작했다. "요한은 반드시 아가씨를 떠나고, 아가씨는 홀로 비참한 눈물을 흘리게 될 거야." 마치 격렬한 토론을 하는 것 같이 아가씨를 향해 손가락을 정신없이 흔들었다.
  요한의 여자친구는 이 사실을 납득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늘 언제나 자상하던 요한이었다. 약해보일 정도로 소심해 보이는 남자이기도 한 요한이었다. 그런 요한이 그저 이기적인 취미하나 때문에,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한다고? 솔직히 납득이 되질 않았다. 오히려, 요한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요한을, 친구들이 너무 몰아붙이는 것 같아 왠지 가슴이 아파졌다. '분명히 요한 오빠를 곤란하게 하려는 게 틀림없어'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대체 저들이 과연 친구들이란 말인가! 그녀는 요한을 변호해 주고 싶어졌다. 요한이 뭔가 변명을 해주기를 바라고 싶었다.
  "농담이 너무 심한 거 같군요, 정말!" 하고 그녀는 최대한 밝은 투로 -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이, 모든 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는 듯이 - 요한에게 말했다. "별로 납득도 되지 않고 말야. 뭔가 말 좀 해봐, 오빠."
  하지만 요한은 말이 없었다.
  "오빠?" 하고 요한의 여자친구는 한번 더 그에게 되물었다.
  요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요한은 그저 그의 친구 A, B, C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손에는 커피 잔이 구겨져있었고, 식은 커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친구들을 바라보는 요한의 눈에는 살의가 담겨져 있다. 마치 당장이라도 그 친구들을 죽여버리고, 그 존재자체를 말살시켜버리겠다는 듯이. 이제까지 늘 따뜻한 눈빛만을 비쳐주던 그에게서는 상상조차도 못했던 표정이었다.
mirror
댓글 1
  • No Profile
    J2 06.09.13 21:45 댓글 수정 삭제
    친구들이 복수를 했군요. ^^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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