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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원경 용굿

2022.02.28 12:0002.28

 

용굿

 

갈원경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나를 두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자랐다. 너는 용님의 안해가 될 사람이다, 네가 열다섯 살이 되는 그때 용님이 너를 데리러 오실 거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은 바다에서 해가 뜨며 산으로 해가 지는 곳이다. 몇 해 전에 산 너머 있는 큰말에 주재소가 들어서고 왜인矮人 순사가 칼이 박힌 총을 들고 거리를 다니게 되었지만, 이 마을은 변함없이 논의 주인인 이주사 어른이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의 서낭당, 마을 사람들이 대처로 나가기 위해 건너는 산길에도 떨어져 있는 곳이 10년 전 형이 마을을 떠나기 전에 머물렀던 곳이다. 형은 나처럼 용님의 안해가 될 사람이었는데, 대처에서 흘러온 사람이 옮겨온 역병에 걸려 죽고 말았단다. 그래서 10년 전에는 용굿이 열리지 못했고, 마을은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로는 그때 용굿이 열렸더라면, 그래서 형을 용님이 데리고 가셨더라면 산 너머 큰말에 왜놈 순사가 다닐 일은 없었을 거라고들 했다.

삭이 되는 날에 나는 그 서낭당으로 가서 보름을 머물 것이다. 보름 후, 달이 차오르는 날 밤에 용굿이 열릴 때까지 나는 누구도 만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마련해 둔 정갈한 음식들을 먹으며 매일매일 목욕 재개하고 머물 것이다. 보름의 밤, 용굿이 끝에 달해 용님이 나를 데리러 오실 때까지. 그래서 나는 지금껏 마을에서 해 주는 것을 당연하게 받으며 자랐다. 형이 죽고 미쳐버렸던 어무이가 바다에 몸을 던진 후, 겨우 다섯 살이었던 내가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용님의 안해가 될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악아, 내 마실 간다. 어디 나다니지 말고, 혹 이주사 어른 오시거든 차 한 잔 올리고.”

“예에.”

아재가 나무로 얼키설키 엮은 문을 삐걱대고 여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리고 앉아서 나는 내심 이주사 어른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이주사 어른이야 마을의 어른이라, 어느 집에서든 반갑게 아니 맞을 수가 없지마는 그 어른이 칼같이 매선 눈으로 나를 이리저리 훑으시는 것이 영 내키질 않는 게다. 꼭 잘 큰 소나 말을 보듯이 많이 컸구먼, 하는 말도 그러하고.

 

다행히 이주사 어른은 종일 오지 않았다. 정짓간에 쌓여있는 그릇들을 씻고 아재가 널어놓은 그물을 차고앉아 꿰매다 보니 어느새 눈이 침침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해가 저문다. 산으로 지는 해는 이미 내 등 뒤로 넘어갔을 게다. 아재는 어째 이리 늦으시는고, 해 저물고 나면 눈에 익은 산길도 낯설다고 늘 내게 이르시고는. 꿰매던 그물을 다시 마당에 널어놓으니 처서가 지난 계절에도 등줄기에 땀이 숭숭 맺힌다.

“누구 계십니까?”

퍼뜩 놀라 돌아서니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은 부실한 문을 붙잡고 한 그림자가 서 있었다.

“누구 찾아오셨소?”

“…아니, 누굴 찾아온 길이 아니라….”

말이 영 힘이 없다 싶더니 푸스슥 문이 내려앉으며 그림자도 내려앉았다. 황급히 일으키니 키는 꽤 큰 듯한데 비리비리한 체격의 사내였다. 이를 어쩌나, 사내를 집 안에 들였다고 아재는 질겁을 할 터지만, 다음 보름이 용굿이니 각박하게 사람을 내쳐서도 안 되는 것이 도리다. 어째 꼭 이주사댁 열네 살 먹은 아씨를 업은 듯이 가볍게 사내를 처마 밑으로 들여 툇마루에 눕혔다.

정짓간에 밥을 조금 퍼다가 물을 함빡 붓고 풀어 어설프게 미음을 끓였다. 뜨겁게 끓여 내와도 계절이 계절이니 이내 식는다. 정신을 통 못 차리는 그 사람을 흔들어 깨우니 어슴푸레 눈을 떴다. 눈뜬 얼굴은 참말로 아씨같이 곱다. 이래 갖고 사내 구실이나 제대로 하겠나. 그런 말을 밖으로야 내지 않고, 그 사람에게 미음 사발을 가리키며 한술을 떠 들이대었다. 어째어째 몇 술을 뜬다 싶더니 사발을 들고는 절반은 그냥 들어 마셨다.

“고맙구나, 덕분에 살았다.”

“곧 깜깜하니 밤일 텐데, 이 시각에 누굴 찾아오셨소?”

남자가 푸슬푸슬 웃었다.

“너 보아하니 열 두엇이나, 많아도 열대여섯이겠구만 말투는 어른이구나? 편히 말해라. 내가 올해 열일곱이니 또래라 하면 또래도 된다.”

“아재가 외간 남자한테 함부로 말 놓는 거 아니라 하셨소.”

“아직 솜털도 안 가신 것이 외간 남자도 가리니?”

어이구, 얼굴만 샌님인 줄 알았더니 말투도 숫제 계집애구먼.

“그래그래, 너 좋을 대로 말해라. 아가, 여기가 용골이 맞지? 내가 제대로 찾아온 게 맞지?”

“용골 맞소.”

나는 조금 골이 나선 돌아앉았다. 또래라고 한 것이 뉜데 또 아가라 부르누.

“거기 누구 있소? 악아, 거기 누구 있냐?”

“아재요?”

후다닥 일어나 문간으로 갔더니, 허물어진 문 앞에 아재가 멍한 눈으로 서 있다가 날 보았다.

“누구 왔냐? 말소리가 들리더라.”

“웬 사람이 집 앞에서 쓰러져서 잠시 들여다 두었는데, 이제 막 깼소.”

아재는 퍼뜩 놀라서 들어오더니 불부터 켰다. 불 아래 비친 얼굴이 창백한데 눈이 꼭 송아지 눈처럼 커다랗다. 아재는 못 볼 것을 본 듯이 얼굴이 노래지다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숨을 골랐다.

“여기 어른이시군요? 마침 잘 오셨네요. 저는 동경 제대에 다니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돌아와 보니 집안 어른들이 다 집을 옮기셨는지, 찾아볼 수가 없지 뭐예요. 아버지께서 제가 일본으로 가기 전에 용골 이야기를 몇 번 하셔서, 혹 여기로 오셨나 싶어 왔습니다.”

“여기 새로 온 사람은 없소.”

“그래요…? 저는 이 기영이라고 하고, 제 아버지께서는 인자 현자 쓰십니다만 혹시 모르십니까?”

“…어느 이가요?”

“양주 이 가입니다.”

아재는 허, 하고 난처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양주 이씨면 이주사 어른의 동본이다. 그냥 대처 사람이라고 내칠 수가 없게 되었다. 아재는 그 사람을 데리고 이주사 어른께 가겠다고는 또 나섰다. 정짓간에 앉힌 새밥이 구수한 냄새를 내고 조개를 넣은 된장이 한소큼 끓고 또 그 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재는 그 사람을 데리고 도로 돌아왔다.

“나 여기서 한참 묵을 것 같다. 잘 부탁한다.”

남자는 꾸벅 인사하는 시늉을 하고는 안 쓰던 구석방이 꼭 자기 방인 것처럼 들어가 버렸다. 아재는 나를 툇마루에 앉히고는 꼭 혼잣말처럼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인현이라고 했던 저 사람의 아버지는 이주사 어른의 사촌 형님 되시는데, 그 아들이 동경제대에 간 것도 맞다고 했다. 원래 산 너머 큰말에 사셨었는데 사촌 형님이 서울서 큰 벼슬에 오르게 되어서 집안이 모두 서울로 옮겼다 그랬다. 이주사 어른은 자기 조카인 이인영이라는 사람을, 처음 맞은 인연도 있으니 아재가 데리고 있으라고 했는데 아재는 그게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어찌 되었든, 여서 묵기야 하겠지마는 저 사람이랑 험한 소문 안 나게 조심해라. 내달이면 용굿인데, 부정 타면 큰일 난다. 내가 수태 말했지않냐, 너는 용님께서 데리고 가실 아해니까, 부정타면 네 혼자 일이 아니라 이 골 일이고, 이 나라 일이다. 되도록이면 말도 하질 말고, 밥은 내가 들일 테니까.”

“예에.”

아재는 또 형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재가 어째 겁에 잔뜩 질린 사람 같이 보여서, 아까 왜 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얼굴이 노래졌었는지 묻질 못했다.

그다음 날, 큰말에서 짐을 챙겨오겠다고 나간 그 사람은 커다란 짐을 한가득 지고는 돌아왔다. 여리여리 한 게 힘도 못 쓰게 생긴 사람이 풀어놓은 짐은 태반이 책이라, 내 힘으로는 반도 들지 못할 정도였다. 그 사람은 어디서 책상으로 쓸 상도 가져다 오고 책을 가지런히 한 쪽으로 꽂아서 구석방을 완전히 자기 방처럼 꾸며 놓았다.

그런데 아재가 말한 것 중에 한가지는 통 지킬 수가 없었다. 아재는 되도록이면 그 사람과 말도 하지 말라 했지만, 아재가 배를 타고 나가거나 마실을 가거나 할때에도 그 사람은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에게 상을 들여야 했다. 게다가 그런 날이면 그 사람은 방 안에만 틀어박혀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나와서는 바다를 보거나, 산으로 오르곤 했다.

“그런데 너는 이름이 뭐야?”

그날도 그 사람은 툇마루에 앉아서 바다를 보다가 내게 물었다.

“없소.”

“이름이 없어? 그럼 사람들이 널 뭐라고 불러?”

“악아, 그래도 부르고…, 굿녀야 라고도 부르오.”

굿녀, 하고는 그 사람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름이 없지는 않을 거 아냐. 네 어머니가 널 굿녀라고 이름 지으셨어?”

어무이. 미쳐서 죽은 어무이.

/ 얘를 굿녀라 부르지 마시오! 얘는 인애요, 인애. /

“인애.”

나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어무이 말고는 아무도 부른 적이 없는 내 이름은, 나도 불러준 적이 없어서 낯설다.

“좋은 이름인데? 무슨 한자 쓰는지 알아?”

“꽃창포 인藺에, 쑥 애艾 쓰오.”

“좋은 이름이다. 숲 내음 나는 이름이네. 꽃창포에 쑥.”

그 사람은 활짝 웃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흠칫 놀라자 금방 손을 떼어 버렸지만.

“꽃창포는 정말로 선이 유하고 아름다운 꽃이거든. 음력 사월이나 오월에 꽃이 피는데, 보랏빛 꽃잎이 늘어진 게 얼마나 고운지 모른다.”

“그렇소?”

“응 그래. 그리고 쑥이라. 쑥은 약으로 쓰니까 이롭기가 더할 나위 없지. 복통에도 쓰고, 먹은 거 못 삼키고 토하는 증상에도 쓰고, 피를 멎게 하는 데도 쓰고, 흔하게는 여름에 모기를 쫓는데도 쓰고.”

“동경서 풀 공부하고 오셨소.”

심통 맞게 대꾸하는 날 보고는 그 사람은 하하하 크게 웃었다.

“좋은 이름을 왜 안 불러줄까. 나는 불러도 괜찮지?”

“안 되오. 사람들은 그 이름 안 부르오.”

손을 휘휘 젓는데,

“그럼 다른 사람들 없을 때만 부르지 뭐.”

그 사람은 그리 말하고는 소리 없이 환하게 웃었다.

 


며칠이 지나 이윽고 달이 새까만 밤하늘에 보이지 않는 삭朔의 밤이 되었다. 고기잡이를 나가는 배들도 다들 들어와 마을의 모든 집에 사람들이 돌아와 있었지만, 밤에 불은 켜지 않았다. 그것이 용굿의 첫걸음인 삭의 날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흰 천으로 눈을 가리고 아재와 제사를 주관할 몇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걸어서 서낭당으로 왔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멀어지고 나서 나는 눈가리개를 풀었다. 형이 묵었던 곳. 10년 전의 용굿에서 굿녀였던 형의 자취는 방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달 없이 깜깜한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인애야.”

방 밖에서 낮게 말소리가 들렸다.

“여 오면 안 되오, 들어오면 부정 타오.”

“들어가지 않을 테니까, 여기서 이야기할게.”

마을 사람들도 굿이 있을 때까지 음식들도 날라다 주고 옷가지도 가져다주니, 그것은 부정 타는 일이 아닐 듯도 싶다.

“네 언니 이름 기억 나니?”

“…모르오, 잊어버렸소. 내 너무 어릴 때 형이 죽어서.”

“네 언니 이름, 혹시 혜민이 아니었니, 별 혜에 옥돌 민.”

그랬다. 나는 대답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나도 잊을 것 같던 형 이름을, 이 사람이 어째 아나 싶어서. 섬뜩하니 그게 무서워서. 아재가 이 사람의 얼굴을 보고 노래진 것처럼 지금 내 얼굴도 그럴 것 같다.

“…인애야, 용굿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니?”

“뭘 말이오?”

방문 너머에서 그 사람이 쉬는 한숨 소리가 여까지 들린다.

“왜 삭의 밤에 배들이 모두 마을로 돌아오는지는 아니?”

“거야 부정 타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오?”

“…그게 아니거든.”

그 사람은 또 한숨을 푸욱 쉬었다.

“내일 목욕하러 나올 때 말고, 한 번 밤에 바다를 봐. 왜 배들이 모두 돌아왔는지, 용굿이 뭔지, 알게 될 테니까.”

“…….”

나는 용님이 데리러 오실 거라고, 나는 용님의 안해가 될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이 사람을 보낼 수 있을 터인데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주사 어른댁의 막내 아씨뿐 아니라 이 마을 사는 모든 아이들이 다 소학교엘 다녔다. 산을 넘어서 큰말에 있는 소학교에선 글도 가르치고 노래도 가르치고 뜀박질도 가르쳤다. 나는 내 이름이 꽃창포 인 자에 쑥 애 자를 쓴다는 건 알아도 그게 무슨 글자인지는 모른다. 나는 굿녀이기 때문에, 용님의 안해가 될 사람이기 때문에 글자 같은 거 몰라도 좋다 했다. 그래서 나는, 누구나 넘어 본 저 숲을 넘어 큰말에 가 본 적이 없다. 칼이 달린 총을 차고 다니는 왜인 수사도 본 적 없고, 철로 만들어 말도 없이 달린다는 수레도 보지 못했다.

“인애야, 나 내일 또 온다.”

그리고 그 사람은 돌아갔다.

아침 일찍 날 깨우러 사람들이 왔다가 가고, 집 뒤에 있는 폭포에서 몸을 씻고 들어오면 방 바로 앞에는 삼시 세끼가 놓여 있었다. 하루에 세 번 목욕을 하고 저녁 이후에는 사람들도 오지 않고 밥을 갖다주러 온 사람들도 나와는 마주치질 않기 때문에 하루 종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가 저물고 나서 방 안에 앉아 있으니 또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다 봤니?”

“……안 봤소.”

그렇구나, 하고 그 사람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

“인애야, 이무기가 뭔지 아니?”

내가 그런 것도 모를까.

“백 년 묵은 구렁이를 이무기라 하지 않소. 용이 못 된 구렁이.”

“그러면, 이무기가 용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아니?”

“아 그거야, 여의주를 잡으면 되지 않소.”

그 사람은 왜 그랬는지, 응 그렇지… 하고는 또 한숨을 쉬었다. 계집처럼 한숨을 저리 쉬어대니 몸이 저렇게 부실하지.

“…옛날 이야기 하나 해 줄게.”

나는 어서 가라는 말은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글자는 몰라도 이야기는 좋아한다. 아이들이 소학교에서 배운 이야기들이나 할매 할배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금방 익히곤 했는데, 아재가 길겁해서 막은 뒤로는 통 듣질 못했다.

“이무기가 용이 되려면 여의주가 필요한데 말이야…, 이 여의주는 원래 용왕님에게서 받아야 하는 거래. 용왕님께서, 용이 어른이 되는 날 여의주를 내려 주신다지. 그런데 용왕님은 이무기에게는 그 여의주를 내리질 않으신댄다.”

“…그러면 어째 용이 되오?”

“여의주를 낳는 인간을 찾지. 달도 뜨지 않는 삭의 밤에 태어난 여자아이는, 달의 힘을 그 몸에 갖고 태어난다지. 하늘에도 달이 뜨지 않을 만큼. 이무기와 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첫 번째 아이는 달의 힘을 모두 받아서 구슬로 태어난대. 이무기는 백 년을 살았으니 인간의 모습으로 여자와 동침하는 것은 쉽겠지. 그렇게 아이가, 아니 구슬이 밖으로 나오면 이무기는 그 구슬을 가지고 하늘에 오른다더라.”

“말도 안 되오.”

나는 입을 비쭉 내밀었다. 그 사람이 볼 리야 없지마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길까. …그래, 연모하여 가슴에 품은 이가 인간이 아니라 이무기인 것도 놀랄 일인데, 첫 아이가 사람이 아니라 구슬로 난다면 여느 사람은 견디질 못하겠지. 그리고 그리 연모한 사람이, 그 구슬 때문에 자신을 품었다면 더더욱.”

“이런 이야기 싫소, 안 들을라오.”

“그래, 그러자.”

그 사람은 조금 쓸쓸한 목소리로는 털썩 어딘가에 걸터앉았다. 문을 열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떤 이야기가 좋을까. 그래, 심청이 이야기는 들었니?”

나는 모른다 하기가 싫어서 가만히 있었다. 그 사람은 조용히, 여의주의 이야기를 할 때보다 훨씬 다정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에 아주 효심이 지극한 청이라는 계집아이가 있었는데,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앞 못 보시는 아버님을 모시고 살았단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가 물에 빠진 것을 지나던 스님이 구해 주시는데, 공양미 삼백 석만 있으면 저 눈을 뜰 것을 혼잣말 하셨단다. 아버지가 없는 형편에 그 말이 안 떨어져서 몇날 며칠을 끙끙 앓는 것을, 청이가 계속 채근하여 물어서는 그 사연을 알았단다. 청이는 이래 저래 마음을 쓰다가, 배를 타고 먼 길 나가는 상인들이 바다에 던질 산 제물을 찾는 것을 알고는 거기로 갔단다. 아버님 부디 눈을 뜨소서 소원하며 바다에 몸을 던졌단다.

“왜 뱃사람들이 산 사람을 바다에 던졌소?”

“파도가 거칠어서 그랬대. 파도가 너무 심해서 용왕님을 달랜다고.”

그 사람이 왜 이런 이야기들을 내게 해 주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불을 켜지 않은 채로 그냥 앉아 있다가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 깨보니 여전히 깜깜하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한참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슬쩍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달이 뜨면 훤하게 좀 보이련만, 절벽 아래에 푸른 파도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그 사람은 바다를 보라고 했을까. 이리 컴컴해서야 지척도 알아보기 힘들다. 파도소리만 유난히 가깝게 들렸다.


매일 그 사람은 밤늦게 찾아와 인애야, 나를 불렀다. 가끔은 형의 이야기를 묻기도 했지만, 형의 이름도 거진 잊고 있었던 나는 그 사람에게 별로 해 줄 말이 없었다. 바깥의 말은 듣지도 말하지도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서낭당에서의 며칠은 밤이 낮보다 더 번잡했다.

“그, 여의주 이야기 말이오.”

“응?”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건 처음이라서, 그 사람은 놀란 것 같았다.

“그 여의주 낳은 아낙, 정말로 암것도 모르고 구슬을 낳지는 않았을 거요. 제 낭군이 인간이 아니란 거나, 제가 낳을 구술이 낭군이 용이 되는데 쓰인다는 거, 알고 있었을 게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잠시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과 말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 속의 생각을 이야기할 일이 잘 없고, 그래서 왜? 라는 물음엔 어떻게 대답해야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계집이 제 낭군 속도 모를 것 같소? 그런 건 다 아는 게요.”

괜히 불퉁하게 쏘아붙이고는 나는 체- 하고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그 사람은 웃지도 않고 대답했다. 나는 생뚱맞게 대답한 게 좀 미안해져서,

“어무이가 그랬소. 형이 죽은 날에 날 붙잡고는 펑펑 울면서 그랬소. 그 뒤로는 그런 얘기 들을 수가 없었지마는.”

“참 아까운 분인데 돌아가셨지.”

“울 어무이를 아오?”

“인애야.”

대답은 아니 하고, 그 사람은 또 내 이름을 부른다. 내가 이름을 불리면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 진다는 것을 알고 그러는지.

“나랑…,”

“…나랑?”

후, 하고 그 사람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다, 나 간다. 인애야, 바다 꼭 봐라.”

그 사람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 며칠을 그 사람은 오지 않았다. 매일 목욕하는 길에 나는 혹시나 그 사람이 오지 않는가 고개를 빼꼼이 내밀었지만, 밤도 아닌 낮에 이곳에 찾아오지는 못한 모양이다. 사나흘을 그렇게 기다리다가, 나는 문득 그 사람의 말이 생각났다. 왜 그렇게 바다를 보라고 그랬을꼬. 밤중에 아무도 없이 앉아 있다가 문득 밖으로 나와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깎은 듯한 절벽 아래로 한참 내려가야 바다가 보이는데, 바다는 무척이나 높게 올라와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날짜를 꼽아 보았다. 내가 서낭당으로 올라온지 거진 보름, 내일이면 보름이다. 이 사이에 바닷물이 이렇게 차 있다면. 마을을 내려다보니 마을에 다니는 배들이 다들 뭍 위로 옮겨져 있는데, 여느 때면 배를 매어 놓은 해안일 곳이 확실히 물이 차올라 있었다. 낮에 몇 번 물길을 지나도 이만한 밀물은 본 적도 없다.

- 내일 목욕하러 나올 때 말고, 한 번 밤에 바다를 봐. 왜 배들이 모두 돌아왔는지, 용굿이 뭔지, 알게 될 테니까.

배들이 왜 돌아왔는지는 알겠다. 그런데 용굿이 뭔지는 어째 알란 말고. 동경서 공부하고 돌아온 샌님이라서, 모두 저 같은 줄 아는갑지.


다음 날 아침, 굿이 있는 전날의 아침에 날 깨우러 온 아재는 어쩐지 목소리가 영 가라앉아 있었다. 꼭 밤새 굿을 하고 돌아온 날처럼 목소리가 콱 잠기어서, 나는 하마터면 ‘아재 굿 하고 오셨소’ 물을 뻔했다. 목욕을 하고 돌아와 아침을 먹을 때까지도, 나는 오늘 밤에는 혹시 그 사람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고만 있었다.

“인애야!”

화급하게 그 사람이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문 닫으시오!”

“인애야, 시간이 없어, 그자들이 곧 올거야. 서둘러.”

“…무슨….”

그 사람이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나랑 같이 가자, 인애야. 네 언니 있는 곳을 알아.”

“…형은 죽었소.”

“죽지 않았어. 지금 개성에 살고 있어. 내가 지금 개성에서 오는 길이야. 언니도 널 보고 싶어해.”

모르겠다. 내가 왜 그 말을 바로 믿어 버렸는지. 나는 입은 옷 채로 방 밖으로 나와서, 그 사람이 뛰는 대로 따라 뛰었다. 비리비리해 보이는 몸인데도 사내 몸이라 그런지 내 손목을 잡고 뛰는 걸 쫓아 걷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니 언니는, 역병에 걸려서 죽은 게 아냐. 개성에서 온 청년이 네 언니를 첫눈에 좋아해서 두 사람이 같이 이곳을 뜬 거야. 용굿이 벌어지기 전에. 너까지 마을을 뜰까봐 사람들은 너한테 숨긴 거고.”

이래 뛰면서 숨도 안 찬가 보다.

“네 어머니께서는, 언니 대신 똑같이 삭의 밤에 태어난 너를 굿녀로 삼겠다는 마을의 결정 때문에 미쳐 버리셨지. 네 언니는 늘 어머니와 너를 데려오지 못한 걸 안타까워했었어.”

나는 이래 평생 뛰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신 못 만날 거라 생각했던 형이 살아 있다는 걸 아는 이 상태로 계속 달음질만 치더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왜 이렇게 자꾸만 뒤쪽에서 나를 당기는 것 같은지, 왜 절벽에 서 있는 서낭당이 자꾸 나를 부르는지.

“거기 서!”

누군가가 버럭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탕! 하고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털썩 주저앉았다. 소리가 시작된 숲속에서 커다란 쇠막대 같은 것을 들고 나타난 것은 이주사 어른의 맏아들이었다. 이주사어른과 판박이인.

“이 사기꾼 자식! 이미 다 알아봤다. 기영이는 동경서 돌아와서 지금 서울서 같이 있다! 어디서 사기를 쳐 이놈!”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저놈 얼굴이 그때 굿녀 꼬셔낸 놈과 똑같다고.”

“이놈, 한 번 이 마을을 뒤집어 놓았으면 되었지 또 새 굿녀까지 꼬셔 내려 왔느냐!”

아재와 이주사 어른이 악다귀를 쓰는 것을 나는 주저앉은 채로 듣고 있었다. 죽었다고 한 언니가 산 것은 사실인 모양인데, 이 사람이 그 때 언니랑 같이 간 사람이랑 똑같이 생겼다는 것은 무슨 영문일꼬.

“이리 와라, 악아, 아직 안 늦었다. 아직 보름은 안 지났다, 용왕님이 더 노하시기 전에 어서. 내가 안 그랬나. 그때 용굿을 못해서 이 나라가 이래 됐다고.”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압니까? 인애야, 듣지 마. 가면안돼. 그 사람들 이야기 듣지 마.”

“닥쳐라!”

이주사어른의 맏아들이 그 커다란 쇠막대로 그 사람을 내리찍었다. 그 사람의 새하얀 셔츠 사이로 붉은 피가 배어나와, 나는 그만 아찔해졌다. 그 사람은 무릎을 꿇린 채로 나한테 소리치듯이 계속 이야기했다.

“심청이 이야기 기억하지? 인애야, 심청이 이야기. 용왕님 달래려고 심청이가 뛰어들었던 이야기. 용굿이 그거야, 이 사람들, 저렇게 차오른 바다에 널 던지는 거라고, 굿녀는 산제물이야 인애야!”

“이노무 자식! 입 다물라 했다!”

“이건 틀려, 이건 아니야. 당신들 잘못 아는 거야. 굿녀를 던져서 파도가 가라앉는 게 아니야. 단지 10년 만에 한 번, 달과 해가 지구와 가장 가깝게 일직선을 그리는 날 심한 밀물이 생기는 것 뿐이라고. 사람을 던지지 않아도, 그날만 지나면 물은 서서히 돌아가.”

나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일어섰다. 그 사람이 계속해서 뭔가 어려운 이야기로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뒤돌아서,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재를 지나 서낭당으로 돌아왔다. 그 사람이 나를 몇 번이나 부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서낭당의 문은 잠겼다. 문밖, 항상 이야기를 들려주던 자리 대신에 그 사람은 서낭당 옆의 나무에 묶였다. 부정을 타선 안 되는 용굿을 소란스럽게 해서 용왕님이 화나신 것이 분명하다고, 그 노기를 달랠 제물이 필요하다고 아재가 소리를 높였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돌아가고 만월에 가까운 달빛이 방에 어슴푸레한 빛을 비추었다.

“진짜 이름, 뭣이오?”

아무도 없는 바깥에선 소리가 잘 들릴 것이 분명하다.

“창해. 푸를 창, 바다 해 쓰지.”

“형도 그렇게 데리고 갔소? 나한테 하듯이, 그래 데리고 갔소?”

“…그건 내 형이야. 네 언니를 데리고 간 것은. 이 마을 사람들도 대단하구나. 10년 전에 나타나 네 언니를 데리고 간 사람이 나일 리가 없잖니.”

나는 피식 김이 빠져서 웃어버렸다.

“그 형님은, 지금 어디에 있소?”

“…하늘나라에.”

나는 또 피식 웃었다. 뭘 바래서 갔을꼬, 우리 형. 기억도 잘 안나지마는 그렇게 곱고 이뻤다는데, 가시버시 연을 맺고 서방을 그리 보낼려고 갔을까나. 아니, 나는 알지. 형이 무슨 생각으로 그리 갔는지, 알지.

“그 형님, 용서해 주시오.”

“……응?”

나는 최대한 서낭당 문에 가깝게 다가앉아, 또박또박 다시 이야기했다.

“그 형…, 하늘나라 갔다는 형님 말요. 그만 용서해 주시오.”

그 사람, 창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방 안에 가득 찰 것 같은 달빛을 안 듯이 받고 기대어 앉아 있었다. 내가 태어날 때에는 달도 뜨지 않았다지. 달의 힘을 모두 삼켜 버린 삭의 아이를 어무이는 둘이나 낳고, 첫 딸을 그리 가슴에 묻고, 왜 미쳐 버렸을까. 큰 딸이 마을을 뜨고 가버려서, 아니면 내가 또 굿녀가 되어서.

만월의 날, 용굿이 열리는 날 아침. 나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욕을 하고 흰 옷으로 갈아입었다. 절벽 앞에는 그 사람이 흰 옷으로 갈아입혀져 묶여 있었다. 아재가 낭낭한 목소리로 제문을 읊고, 마을 사람들은 서낭당 주변에 빼곡히 모여서 그 장면을 보았다. 동해 용왕님 남해 용왕님, 이곳을 함께 지켜주시는 두 분 용왕님께 비옵니다. 여기 달을 품고 태어난 삭의 여식이 있사오니, 부디 거두시어 노여움을 거두소서. 의식을 소란하게 하고 부정하게 한 자를 함께 올리오니, 부디 예전의 바다로 되돌려 주시옵소서.

사람들에게 이끌려 절벽으로 내몰리던 그 사람이 돌연 사람들을 물리치고는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나도 따라 걸었다. 새하얀 소복. 우리나라는 밝은 나라라서, 혼인할 때 꽃다운 옷을 입지. 경사는 눈에 잘 띄라고. 대신 제사를 지낼 때는 흰옷을 입는다. 밝은 빛에 묻혀서 숨으라고. 어무이는 내게 그렇게 말하셨었다. 어무이, 흰옷을 입을 일이 또 있소. 눈에 띄라고, 바다는 파래서, 속이 안 보일 듯이 파래서, 꽃다운 색보다 흰색이 눈에 띄어. 어무이, 그래서 나는 흰옷 입소. 내는, 바다로 가는 내는 흰옷 입소.

그 사람이, 창해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나도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무기의 꿈을 꾸었다. 푸른 바다에서 솟구쳐 올라 흰옷 입은 나를 받치고 오르는 커다란 구렁이, 용이 되지 못한 백년 묵은 구렁이의 꿈. 푸른 바다를 닮은 쪽빛의 몸으로 나를 안고, 만월을 품은 바다로 들어간다. 나는 꿈을 꾼다. 내 태어나던 날 내 태속에 숨은 달, 그 달을 닮은 구슬을 낳는 꿈.

나는, 용님의 안해가 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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